헌책방은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흔적을 찾아 시간 여행을 떠나볼 수 있는 소중한 곳이다. 또 한 번 뜬금없이 헌책방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 대한 기사 때문이다. 휴가철이나 가을로 접어드는 시기가 되면 신문과 TV에서 책방골목이 여행 명소로 추천된다. 오늘 아침에 생각 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보다가 네이버 메인 화면에 책방골목을 소개한 인터넷 신문기사를 발견했다. 책방골목 관련 기사를 발견하면 끝까지 읽는다. 책방골목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아서 글로나마 책방골목의 정취를 느껴보는 것이다. 오늘 내가 읽은 기사는 교통, 숙소, 식당뿐만 아니라 책방골목 전체 약도까지 친절하게 소개했다.

 

그런데 책방골목을 다룬 기사에는 항상 책방골목을 부정적으로 보는 의견의 댓글이 가장 많다. 부정적인 댓글 대부분은 책방골목을 방문하면서 겪었던 불쾌한 경험이었다. 인터넷 서점 중고샵에서 파는 5000원짜리 책을 보수동 책방에서는 10000원에 샀다는 사람이 있었다. 알라딘 중고샵에서 책을 싼 가격으로 사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불친절한 책방 주인의 태도에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책을 천천히 살피면서 고르려고 하면 책방 주인의 쌀쌀한 핀잔에 못 이겨 그냥 가게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실제로 책방에 가면 읽어 볼만한 책도 없다는 내용의 댓글도 있다. 보수동 책방을 안 좋게 보는 댓글이 넘쳐나는 사이에서도 책방을 좋게 보는 댓글이 몇 개 있었다. 마치 성을 공격하는 수많은 적에 대항하는 외로운 전사를 보는 것 같았다. 마음씨 좋은 주인이 운영하는 책방이 있다고 말하면서, 안 좋은 경험만 가지고 보수동 책방 전체를 나쁘게 보지 말라고 호소하는 댓글이 애잔하게 느껴졌다.

 

헌책방은 지식인과 학생들에게 지적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오아시스다. 오아시스 주변에 사람들이 터를 잡아 작은 마을이 생기듯이 보수동 책방골목도 하나의 책방으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50여 개의 책방이 모여 있는 특별한 골목이 되었다. 여기에 거리가 새 단장하면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북 카페까지 세워지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책방골목이 문화 명소로 알려지는 것이 기분은 좋지만, 한편으로는 이곳을 관광 명소로 생각해서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현실이 씁쓸하게 느껴진다.

 

책방골목을 찾는 손님 중에는 과연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만약에 필자가 책방골목에 가게 되어 책방 주인과 대화를 하면 반드시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책방골목에 사진 찍으러 오는 여행객을 제외하면, 순수하게 책을 사기 위해서 오는 손님들은 몇이나 됩니까?” 필자는 헌책방에 가서 주인과 대화를 나누면 무조건 이런 질문을 한다. 장사 수완이 좋지 않은 주인 입장에서는 손님의 질문이 불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손님이 점점 줄어드는 책방의 현실에 좀 더 제대로 알아보고 싶고, 주인의 심정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 조심스레 물어보는 것이다. 책만 사러 오는 손님이지만, 돈 안 되는 책방을 외롭게 운영하는 분들의 마음을 최대한 이해하고, 존중하려고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단골 책방 주인과 가격 흥정이나 외상을 한 적이 없고, 책값 때문에 서로 얼굴을 붉힌 적도 없다.

 

관광은 특정 지역의 풍경을 구경하는 행위다. 헌책방이 점점 사라지는 추억의 장소라고 해서 관광 장소로 소개되는 미디어의 태도를 부정적으로 본다. 헌책방이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어 사람들이 많이 찾으면 좋다. 하지만 헌책방의 열악한 현실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미디어는 대중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려고 한다. 필자의 눈에는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책방골목이 책을 사려는 애서가들을 위한 골목이 아니라 여행객들을 위한 골목으로 보일 뿐이다. 책을 사고 싶은 손님들을 맞이해야 할 헌책방이 여행객들의 사진 배경 장소로 전락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문화 관광 장소로 만들려는 보수동 책방 주인들의 노력이 과연 독서 문화에 이바지하는 것인지 반신반의한다. 손님에게 좋은 책을 소개해서 파는 일보다 책 가게 주변을 화려하게 꾸미는 데만 치중하는 건 아닌지 쓸데없는 걱정도 해본다. 이러다가 몇 년 뒤에 필자가 가게 될 책방골목이 책 떼로 남은 애서가들의 손길보다는 여행객들의 발길만 가득한 곳으로 변하는 건 아닌지. 부디 책방골목이 여행 관광 장소가 아닌 독서 문화 관광 장소가 되어 애서가의 성지로 오랫동안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남녀노소 누구나 책을 마음껏 읽고, 먹고, 보면서 즐기는 도심의 오아시스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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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7-17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든 관광지화 시켜버리는 것이 현실이죠~~ 겉으로만 보고 사진한장을 위해 다니게 되는...
특히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 그렇게 되어버린것을 보면 맘이 더 씁쓸해요~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자고 시작했던일인데 막상 사람은 없어지고 사람들 마저 관광상품화 되어있는걸 보면 더 그렇고요~
차라리 불친절한 그 분들이 더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cyrus 2015-07-18 15:54   좋아요 0 | URL
사실 책 파는 주인 입장에서는 책 사지 않는 손님들만 부쩍 늘어나는 상황에 신경이 예민하죠. 며칠 전에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을 관광장소로 정하자는 바보 같은 구청장이 있었어요. 가난 체험마저 관광 상품으로 만드는 자본주의의 영향력이 무섭기만 합니다.

짜라투스트라 2015-07-17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인터넷 댓글은 안 보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실감하네요^^;; 글의 주제와 상관없는 쓸데없는 얘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cyrus 2015-07-18 15:55   좋아요 0 | URL
ㅎㅎㅎ 사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맞는 말씀을 하셨어요. 거짓과 왜곡만 일삼는 허언증에 가까운 댓글이 수두룩합니다. 댓글을 너무 믿어선 안 되고, 너무 보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sslmo 2015-07-17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맘에 들어서 댓글 남겨요~^^
전 언젠가 부산 헌책방 거리를 갔다가 완전 깜놀이었어요. 아니 더 최근에는 텔레비젼에서 동묘 벼룩시장이 너무 근사하게 나와서 갔다가 완전 실망한 기억이 있어요. 책이 먼지도 한가득, 읽기도 전에 부숴져 버릴것 같이 낡았더라구요. 책의 용도는 보관이 아니라 읽기위한 것인데 말이죠~--;

cyrus 2015-07-18 15:56   좋아요 0 | URL
항상 TV에 나오는 관광지에 실제로 가보면 실망만 잔뜩 느끼는 것 같습니다. ^^

BEGE 2015-07-17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산사는 사람으로써 보수동에 책사는 사람보다 관광객이 더 많다는 데 공감합니다ㅠ 좀 더 책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드나들었으면 좋겠네요.

cyrus 2015-07-18 15:57   좋아요 0 | URL
책방골목 관련 기사 댓글 중에 이런 내용도 있었습니다. 책방 주인이 여행객만 받아들이고, 허름한 옷차림의 주민들에게는 냉담하게 대한다고요. 이게 진실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AgalmA 2015-07-18 0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 모범이 된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중고책을 파는 게 아니라 동네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문화를 만들어가는 게 돋보였어요. 주인장 윤성근 씨가 IT계를 다녔던 덕분인지 그런 네트워크 형성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잘 알았던 거 같아요. 각종 문화인들과 연계해 공연과 낭송회 등도 열고 예전에 한 달에 한번 24시간 문을 열어 밤새 책을 읽는 아이디어(장사는 필시 안 되었겠지만ㅎ)좋았죠. 요즘은 어찌 되었나 모르겠네요ㅎ;
헌책방도 시대를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손님이 띄엄띄엄 오가는 고즈넉한 풍경은 사실 우리가 헌책방에 바라는 아날로그 감성이죠. 어느 서점이 그런 식의 적막강산 영업을 원하겠습니까. 다들 너무 영세하지만 헌책방도 서로 연계해 콘텐츠를 만들어주면 싶어요.
위즈덤과 빨간 책방 덕에 팟캐스트와 북카페 혹은 출판사와 북카페가 인기가 끄는 것도 시대를 읽기 때문이니까요.

cyrus 2015-07-18 16:18   좋아요 0 | URL
어제 글을 쓰면서 이상북을 생각했었습니다. 지금도 이상북에 각종 공연과 독서모임을 하고 있어요. 이상북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가게 근황을 확인합니다. 아갈마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너무 낡은 가게 분위기을 젊은 고객들은 선호하지 않으니까요. 책방에 음료수를 팔아도 좋으니까 주인분들이 책을 고르는 손님들을 배려해줬으면 좋겠어요. 책방의 얼굴은 간판도, 책이 아니라 주인이라고 생각해요. ^^

2015-07-18 0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8 15: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0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향 2015-07-19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번에 헌책방에서 온라인으로 `설레어함` 이벤트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3권 15,000원에 다섯 가지 주제 중에 하나를 고르면 그에 맞는 책을 골라서 보내준다고 합니다. 어떤 책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어서 설레기도 하면서, 헌책방 시장을 활성화 시키는 데에도 보탬이 되는 것이라 좋은 취지의 행사 같았습니다. 이런 다양한 행사를 하면서 책을 즐기면서 읽는 문화가 많이 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ㅎㅎ

cyrus 2015-07-20 18:57   좋아요 0 | URL
‘설레어함’이라면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서 했던 이벤트 맞죠? 그 이벤트, SNS에서 봤는데 정말 신선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