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말은 오전 10, 책방 <일글책>에서 시작한다. 서양 인문 고전 읽기모임<일글책>에서 진행된다









<일글책> 공식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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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글책> 책방지기는 고전 읽기 모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파이데이아 회원이다. 파이데이아(paideia)고대 그리스식 교육을 뜻한다. 고전 읽기 모임 명칭은 위대한 저서(great books) 읽기 프로그램이다. 미국 시카고 대학은 학생들의 교양 교육을 위해 읽어야 할 위대한 저서100권의 서양 고전 도서 목록을 만들었다. 도서는 연차별로 나누어져 있으며 12년에 걸쳐 읽어야 한다. 학생들은 위대한 저서에 포함된 모든 책을 전부 읽어야 졸업할 수 있다. 독서와 토론을 병행한 시카고 대학의 커리큘럼은 오늘날 시카고 플랜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 호메로스, 천병희 옮김 일리아스(도서출판 숲, 2015)

* 호메로스, 천병희 옮김 오뒷세이아(도서출판 숲, 2015)




<일글책> ‘서양 인문 고전 읽기모임은 파이데이아 독서 토론 프로그램 방식과 같다. 위대한 저서’ 1년 차에 포함된 도서를 읽는 중이다. 올해 1, 2월에 호메로스일리아스를 완독했다. 3월부터 오뒷세이아를 읽기 시작했다.


오뒷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을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의 험난한 여정을 그린 서사시다. 오디세우스는 귀향하는 과정에서 온갖 기이한 일들을 겪는다. 오뒷세이아9에 오디세우스 일행은 로토스라는 열매를 먹는 부족이 사는 섬에 닿는다. 부족은 오디세우스 일행에게 자신들이 먹고 있던 열매를 먹어보라고 권한다. 열매를 먹은 부하들은 꿀처럼 달콤한 맛에 중독되어 귀향하기를 잊어버리고 만다. 오디세우스가 억지로 부하들을 함선으로 데려오면서 일행은 다시 바닷길에 오른다.


나는 로토스와 관련해서 발제문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반복적인 쾌락에 빠지게 만드는 로토스가 있었나요? 실제로 그런 로토스가 있었으면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쾌락 중독에 벗어나는 비결이 있나요? 아니면 오디세우스처럼 로토스를 먹지 못하도록 도움을 준 사람을 만난 적이 있나요?”



새벽에 발제문을 만들다가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이라는 로토스를 10대부터 먹기 시작했고 지금도 계속 먹고 있다. 책을 너무 많이 샀고, 너무 많이 읽는 바람에 독서보다 재미있는 다양한 경험(영화 보기, 여행, 연애 등)을 하지 못했다. 남들이 보기에 외골수 같은 내 삶이 단조롭고 지루하게 보였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책만 보는 나랑 대화하기가 쉽지 않고, 친해지기가 어려운 특이한 사람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서글픈 내 과거가 묻은 발제문을 가슴에 품은 채 <일글책>으로 갔다. 내 이야기를 모임을 통해 풀어헤치려고 했다. 아니, 그런데 모임에 참석한 분들 모두가 자신들의 로토스가 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책을 너무 좋아하면서 느꼈던 고충을 모조리 털어놓았다. 그분들이 꺼내놓은 이야기가 다 내 이야기라서 내 발언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재미있게도 대화가 옆길로 샜는데, 어느새 자신들이 가본 책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마도 우리는 20여 분 동안 책방 이야기만 계속했다. 역시‥…. 애서가는 독서가 힘들고 괴롭다고 투정 부려도 책을 손에 놓지 못하며 책을 더 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뭔가에 홀리듯이 책방으로 향한다. 나는 발제문에 관련된 내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고, 딱 이 말 한마디만 했다. “우리 언젠가는 알라딘 서점이나 다른 책방에서 만날 거예요.”


주말이면 꼭 가는 책방이 <직립 보행>이다. <직립 보행> 부부 책방지기는 내 주말 친구다. 정말 이 두 분이 없으면 내 일요일은 책만 읽는 날이 되었을 것이다. 대구의 인문학 전문 책방을 꼽으라면 나는 <일글책><직립 보행>이라고 말하고 싶다. <일글책>이 있어서 나는 고대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직립 보행> 덕분에 근현대 철학을 접할 수 있었다.
















* [절판] 오에 겐자부로, 정수윤 옮김 읽는 인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위즈덤하우스, 2015)




<직립 보행>에 가면 무조건 세 권의 책을 산다. 그런데 가방 안에 이미 알라딘 서점과 다른 책방에 구매한 책들이 있어서 딱 한 권만 샀다그 책은 바로 오에 겐자부로읽는 인간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책이 마크 트웨인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라고 했다. 이 소설 속 주인공 (허클베리 핀의 애칭)흑인 노예 짐을 그의 주인 노부인에게 돌려주려고 생각했다. 짐은 노부인의 재산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헉은 짐을 돕기 위해 남의 재산을 훔치면 지옥에 간다는 교회의 가르침을 거부한다. 그 순간 헉은 마음속에 되뇌던 말을 내뱉는다. 그래,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All light, then, I’ll go to hell).” 힘든 유년 시절을 보내고 있던 오에는 그 구절을 읽은 이후로 지옥으로 가겠다라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2년 전부터 나는 책만 사는 인간으로 살아오고 있다. 진짜 내 모습, ‘읽고 쓰는 인간이 그리워졌다. 무의미한 일상을 벗어나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을 때, 어느 분이 내 알라딘 블로그에 댓글을 남겼다. 그분은 책을 비판한 서평을 쓴 내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그 댓글을 보면서 마음속에 했던 말을 내뱉었다. “그래, 나는 로토스를 먹겠다.” 


내 곁에 책 읽는 내 욕망을 벗어나게 해줄 오디세우스 같은 구원자는 없다. 그러면 내가 만든 욕망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나 스스로 지켜야 한다. 그러려면 써야 한다. 독서가 욕망이라면, 서평 쓰기는 의무다. 좋은 책을 고르고 싶은 독자를 위해서 내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다면 독서는 중독이 아니다. 중대한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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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23-04-01 16: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파이데이아 모임을 몇 번 해봤습니다. 해보고 제 스타일이 아니라서 혼자서 고전 읽기를 계속 하게 됐죠.^^;; 지극히 제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저 시카고 플랜 자체가 너무 서양 고전 책들만 가득하다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양고전은 한 권도 포함되지 않았죠. 그래서 저 혼자서 동양고전도 찾아 읽어봤습니다. 읽어보고 나서 깨달은 건데, 동양고전이 서양고전보다 제게 훨씬 더 익숙하고 제 지금까지의 삶에 더 친근하더군요. 다른 말로 하면 더 와 닿는다고 해야할까요? 서양고전은 낯설고 이해하기가 더 힘들었습니다.^^ 어쨌든 파이데이아 모임을 하신다니 부디 잘 읽어나가시를..

cyrus 2023-04-02 08:25   좋아요 0 | URL
맞아요. 파이데이아에 오랫동안 활동하신 분들이 읽기 프로그램에 변화를 꾀해보면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예를 들어서 동양고전이 포함된 목록을 만드는 거죠. 그리고 여성 저자와 작가들이 쓴 책도 더 추가해야 해요. 그래서 책 읽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동양고전에 대한 관심과 독서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

blanca 2023-04-01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마음입니다. 저도 쓰는 일을 게을리했는데 읽지만 말고 쓰기도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책이 로토스인 사람들의 모임 저도 관심 가네요. 저는 주변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서 좀 쓸쓸할 데가 있더라고요. 저는 책이 있어 삶의 어려운 고비를 넘길 수 있었어요. 글 잘 읽고 갑니다.

cyrus 2023-04-02 08:31   좋아요 0 | URL
주변에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독서 모임에 참석하신 분들이 꽤 많아요. 그렇지만 오히려 독서 모임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분들도 있어요. 독서 모임을 통해 만나는 분들이 정말 성품이 좋아야 해요. 성품이 좋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견해가 무조건 옳다면서 고집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아요. 게다가 다른 사람의 독서 취향을 가볍게 보거나 무시하기도 해요.

레삭매냐 2023-04-01 1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welcome back bro~

cyrus 2023-04-02 08:32   좋아요 1 | URL
인스타에서도 만나요.. ㅎㅎㅎ

레삭매냐 2023-04-02 09:02   좋아요 1 | URL
책만 사는 닝겡, 여기 1인 추가요 ~~~

바람돌이 2023-04-01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전읽기 모임에 매주 서점에 가시는 cyrus님
와 진짜 진정한 독서가이자 애서가이십니다. cyrus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 꼼꼼한 읽기에 감탄하는데 오늘 글에서 그런 꼼꼼하고 세심한 글이 나오게 되는 이유를 살짝 엿본거 같네요.
저는 뭐든지 좀 대충대충인 사람이라 이런 자세를 보면 막 반성하게 됩니다.

cyrus 2023-04-02 08:37   좋아요 1 | URL
반성하지 않으셔도 돼요. 너무 꼼꼼하게 책 읽으면 피곤해요. 책 읽을 때 집중하다 보면 느끼지 못하다가, 책 다 읽고 나면 피곤함이 확 몰려와요.. ㅎㅎㅎ 제가 책 읽는 방식이 피곤한 스타일이라서 서평 한 편 쓰는 데 오래 걸릴 때가 있어요. 그래서 한동안 서평을 안 쓰고 책만 읽었어요. 그런데 서평을 쓰긴 써야겠더라고요. 요즘 엉터리로 만든 책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이렇다 보니 정작 좋은 책들을 독자들의 관심을 못 받고 있어요. 이런 상황을 그저 지켜볼 수 없어서 다시 글을 쓰기로 했어요. ^^

페넬로페 2023-04-02 0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참가하고 있는 도서관 동아리 모임 이름이 ‘클래식‘인데 거의 5년동안 고전을 읽어 와 올려주신 책들이 반가워요. 코로나 시국에도 1년동안 줌으로 만나 지금까지 한번도 빼먹지 않고 만나고 있어요.
책만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나 봅니다.
든든하네요^^

cyrus 2023-04-03 05:07   좋아요 1 | URL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독서 공동체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이런 독서 공동체 속에서 생활하다 보면 책을 더 잘 읽어야겠다는 의욕이 생기고요, 같이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면 좁았던 제 생각의 폭과 식견이 조금씩 넓혀질 수 있어서 좋아요. ^^
 
아리스토텔레스의 악어 - 그림으로 읽는 철학사
미셸 옹프레 지음, 변광배.김중현 옮김 / 서광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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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접시 깬다고 세상이 깨어지나.

, 이제부터 접시를 깨뜨리자.

 

- 김국환의 노래 <우리도 접시를 깨뜨리자>(1991) 중에서 -





라파엘로(Raffaello)<아테네 학당>은 고대 그리스 지성사를 되살리고자 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 중 하나다. 학당 안에 철학자와 수학자, 천문학자들이 모여 있다







그림 중앙에 학당으로 들어서는 두 사람이 있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 철학을 대표하는 플라톤(Plato)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플라톤의 오른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있고,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손바닥은 을 향하고 있다. 두 사람의 자세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플라톤은 현상의 순수한 본질인 이데아(idea)를 추구했다. 우리가 지각하는 이 세계의 현상들은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상 그 자체를 이해하려고 했다. 그는 현상을 관찰하고, 분류하고, 분석했다. 플라톤이 가리키는 하늘이 관념적인 이데아를 상징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가리키는 땅은 구체적인 현실을 상징한다.






 

이처럼 라파엘로는 학당에 모인 수많은 학자를 알 수 있도록 상징물(Attribute)을 그려 넣었다. 허리를 숙여 컴퍼스로 도형을 그리는 사람은 수학자 유클리드(Euclid) 혹은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유클리드는 컴퍼스와 눈금 없는 자만 가지고 도형을 그려야 한다고 했다. 전설에 따르면 아르키메데스는 죽기 직전 땅바닥에 컴퍼스로 원을 그리고 있었다. 로마 병사가 아르키메데스의 집에 침입하자 아르키메데스는 내가 그린 원을 밟지 마라고 말했다. 로마군 대장은 자신들을 괴롭힌 병기를 만든 아르키메데스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병사들에게 아르키메데스를 만나면 반드시 생포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병사는 전란 중에 태평하게 원을 그리고 있는 아르키메데스를 알아보지 못했고, 그를 죽이고 말았다.

 

예술가들은 자신이 존경하는 위대한 철학자와 그의 학문 정신을 기리기 위해 초상화나 그와 관련된 일화를 소재로 작품을 그렸다. 철학자를 본받고 싶어서 그림 속 철학자의 얼굴에 화가 본인의 모습을 그려 넣기도 했다. 이런 그림의 제작 의도를 관람자에게 알리려면 철학자임을 암시하는 상징물이 반드시 그려져 있어야 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옹프레(Michel Onfray)아리스토텔레스의 악어: 그림으로 읽는 철학사그림이 된 철학을 시대별로 정리하고, 저자 나름대로 철학이 함축된 미술 작품의 상징물을 분석한 책이다.


플라톤은 이데아의 그림자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가 사는 세계를 동굴로 비유했다. 그래서 미술 작품에 묘사된 동굴이 플라톤과 그의 철학을 의미할 수도 있다. 현실을 이해하고픈 욕망이 강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자연 현상과 만물을 관찰하고 그것에 대해 무수히 많은 기록을 남겼다. 그가 쓴 많은 책 중에 현재까지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의 박식함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을 분류하고 관찰한 기록을 토대로 동물지(historia animalium)를 비롯해 박물학 관련 문헌을 썼다고 한다. 동물지대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박물지(Naturalis historia)와 함께 세계 최고(最古)의 백과사전으로 평가받는다.[주1]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이 직접 악어를 관찰한 뒤에야 그것에 대해서 견해를 드러냈다. 플라톤이라면 악어를 관찰하지 않고도 악어가 무엇인지 설명했을 것이다. 악어를 관찰하면서 동물지를 쓰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 실제로 있다. 옹프레는 이 그림을 소개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개요를 설명한다.


옹프레를 유명하게 만든 대표작은 총 열한 권으로 이루어진 반철학사(Contre-histoire de la philosophie)’ 시리즈. 반철학사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주류 철학과 철학사에 가려지거나 잊힌 소수의 철학과 비주류 철학자들에 주목한다. 옹프레는 반철학 계보에 속한 에피쿠로스(Epikouros)의 쾌락주의를 추종한다. 그는 에피쿠로스를 비롯해 그의 철학을 계승한 쾌락주의자들의 초상화나 관련 그림이 단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성과 도덕을 중시한 주류 철학을 계승한 학자들은 쾌락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폄하했다. 당연히 예술가들은 주류 철학의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옹프레는 주류 철학사뿐만 아니라 주류 미술사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는 미술사 연구가들이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며 심지어 의문조차 제기하지 않았던 서양미술사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를 언급했다.


니체(Nietzsche)는 고결한 도덕주의자를 양성하는 데 몰두한 주류 철학과 기독교 윤리를 비판한 반란의 철학자. 니체를 계승한 옹프레는 반철학의 망치를 휘두르면서 너무 오랫동안 굳어버린 주류 철학사의 통념을 깨뜨린다. 데카르트(Descartes)는 합리주의 철학과 프랑스 철학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옹프레는 그런 데카르트를 비판적으로 재평가한다. 그동안 우리는 데카르트 이전에 활동한 철학자를 망각한 채 데카르트의 업적에만 초점을 맞춘 기존의 철학사를 답습하고 있었다


철학사는 인류 지성사에 한 획을 그은 철학자들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가 아니다. 그렇지만 철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몇몇 전문가와 철학도들은 철학사 자체를 기념비로 여긴다. 그들은 기념비가 된 철학사에 반짝반짝 광이 나도록 끊임없이 닦기만 한다. 빛나는 철학사에 새겨진 철학자들의 이름과 명성에 흠집이 생기는 것을 그들은 원하지 않는다. 그러한 태도는 지혜에 대한 사랑(philosophia), 즉 철학(philosophy)이 아니다. 그것은 맹신이다. 맹신은 쉽게 깨지지 않는 도그마(dogma)를 만든다


철학사가 신성한 기념비가 되지 않으려면 반철학의 망치를 손에 쥐어야 한다. 반철학의 망치는 주류 철학사가 외면한 소수의 철학자들을 발굴하기 위한 작업 도구가 아니다. 아무도 깨뜨리지 못한 주류 철학사의 한계와 통념에 균열을 내기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 그런 다음, 망치로 인해 생긴 빈틈에 불순물로 치부되었던 비주류 철학사를 주입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이 수월하게 이루어진다면 (니체가 강조했듯이) 우리가 옳다고 믿었던 윤리, 전통, 그리고 모든 가치를 재평가할 수 있다철학() 깬다고 세상이 깨어지나.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주1] 박물지2021년에, 동물지는 올해 초에 처음으로 번역되었다두 권 모두 같은 출판사가 펴냈다. 번역자도 같다.





* 28, ‘크산티페의 물 항아리편 중에서

 




 산파 어머니와 조각가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자신이 그의 어머니와 같은 일을 한다고 말하기 좋아했다. 왜냐하면 그는 정신들을 그 배아 상태에서 분만시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정신을 분만시키는 기술을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라 부른다. [2]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이렇게 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다고 한다.[주3] 한 사람은 크산티페로, 그녀에게서 람프로클레스라는 아들 하나를 두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의인 아리스티데스의 딸 미트로로, 그는 그녀와 지참금 없이 결혼했는데 그녀에게서 소프로니코스와 메넥세노스라는 두 명의 아들을 두었다.”



[2] 옹프레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을 설명할 때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Diogenes Laërtius)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김주일, 김인곤, 김재홍, 이정호 옮김, 나남출판, 2021)을 자주 인용한다.

 

산파술’이라는 명칭이 더 많이 알려진 소크라테스식 논변은 소크라테스 질문법’, ‘소크라테스 대화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소크라테스식 논변을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이 프로타고라스(Protagoras)였다고 주장했다. [참고: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9권 독자적인 철학자들, 8. 프로타고라스, 270]



[주3]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라 소크라테스이 책의 앞부분은 김중현 교수가 번역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다고 했다라고 잘못 썼다실제로 라에르티오스의 책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그(소크라테스)는 두 여인과 결혼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참고: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1, 2권 이오니아 학파 · 소 소크라테스학파, 5. 소크라테스, 158]

 

 



* 67 [옮긴이 미주]





 Marc-Aurele(121-180): 로마 제국의 6황제,[주4] 로마 제국의 황금시대를 상징해 온 인물이다. 스토아 철학이 담긴 명상록을 남겼다. 기독교도가 그의 재위 기간에 그전보다 많은 피를 흘렸지만 황제 그 자신은 결코 박해를 주도하지 않았다. 그는 기독교도를 좋아하지 않았다 한다.


 

[주4]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제국의 16 황제다.





* 68 [원저자 각주]

 




틴토레 틴토레토(Tintoretto)





* 87

 




피에르 놀라스크 베르제레 → 

피에르 놀라스크 베르즈레(Pierre Nolasque Bergeret)


93피에르 놀라스크 베르즈레라고 표기되어 있다.





* 95 [옮긴이 미주]

 




Simone de Beauvoir(1980-1986) [주5]

 


[주5] ‘1908’의 오자. 보부아르(Beauvoir)의 출생 연도는 1908년이다.





* 101 [옮긴이 미주]





César Borgia(1475-15070[주6]



[주6] ‘1507’의 오자. 체사레 보르자(César Borgia)의 사망 연도는 1507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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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1-15 2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정될 부분이 여러부분이네요. 책읽다보면 가끔 오탈자가 보이기는 하는데, 잘못된 내용은 다음에는 수정되면 좋겠어요. 잘읽었습니다. cyrus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우주로 가는 물리학 - 미시세계에서 암흑물질까지, 우주의 실체를 향한 여정
마이클 다인 지음, 이한음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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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점   ★★★   B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네 가지 힘(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과 모든 만물의 근원을 단 하나의 이론으로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나올까? 아인슈타인(Einstein)은 말년에 중력과 전자기력을 통합한 통일장 이론(unified field theory)’을 완성하는 일에 전념했다. 그 당시에 약력과 강력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아인슈타인 사후에 등장하거나 활동하기 시작한 물리학자들은 통일장 이론을 밝혀내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왔다. 현재 통일장 이론에 근접하는 후보 이론으로 많이 거론된 것이 초끈이론(super-string theory)’‘M 이론(M-Theory)’이다. 초끈이론은 만물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가 입자가 아니라 진동하는 끈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가정한다. M 이론은 기존의 다섯 가지 초끈이론을 통합한 이론이다. M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10차원 공간과 시간인 1차원이 합친 11차원 시공간으로 되어 있다. 11차원 시공간에 존재하는 만물은 4차원으로 이루어진 얇은 막에 붙어 있다. 물리학자들은 M 이론의 ‘M’을 저마다 다르게 해석한다.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M의 의미는 ‘membrane()’의 머리글자다.

 

초끈이론과 M 이론을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은 언젠가는 네 가지 힘과 모든 물질을 하나의 이론으로 통합하는 데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이들의 낙관적 전망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물리학자들이 있다. 초끈이론과 M 이론을 비판하는 물리학자들은 실험하여 정확한 결괏값을 도출하는 일에 익숙한 실험자. 이와 반대로 초끈이론과 M 이론을 옹호하는 물리학자들은 수학적 추론을 중시하는 이론가에 속한다. 이렇듯 물리학자는 실험자와 이론가, 크게 두 집단으로 나뉜다. 물리학계의 현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실험자와 이론가들이 서로 등을 돌린 상태로 통일장 이론을 연구하고 있을 거로 생각하기 쉽다. 모든 물리학자를 두 가지 유형으로 단순하게 분류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뉴턴(Newton)은 가장 위대한 실험자이자 이론가다. 물체의 운동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탄생한 고전역학과 뉴턴이 독자적으로 만든 미적분은 각각 물리학과 수학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물리학과 수학이 상호보완하며 발전하는 과정에서 일반상대성이론이 정립되었다.


우주로 가는 물리학을 쓴 저자 마이클 다인(Michael Dine)은 실험자와 이론가 양쪽 진영에 발을 걸치고 있는 물리학자다. 그는 물리학과 수학이 서로에게 자극을 주면서 발전해왔다고 말한다. 우주로 가는 물리학은 실험자와 이론가들이 어떻게 물질과 우주의 기원을 탐구해왔는지 보여준다에드윈 허블(Edwin Hubble)이 천문대의 망원경으로 은하를 관측하면서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전에 이미 이론가들은 우주가 정적이지 않다고 예측했다. 러시아 물리학자 알렉산드르 프리드만(Alexander Friedmann)은 방정식을 이용해 팽창하는 우주 모형을 제시했다. 그의 이름이 붙여진 방정식은 일반상대성이론을 응용해서 유도한 것인데, 정작 아인슈타인은 팽창하는 우주 모형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정적인 우주 모형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던 그는 우주상수를 도입했다. 허블을 비롯한 실험자들이 관측을 통해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자, 아인슈타인은 우주상수를 ‘자신의 최대 실수라면서 인정했고 정적인 우주 모형을 철회했다.


물리학자들은 실험을 진행하다가 어려움에 부딪히면 수학을 연결했다. 수학은 실험자들이 쩔쩔매게 했던 물리학의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만약 수학이 발전하지 않았다면 물리학자들은 우주에서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주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서로 자신의 견해를 검증하면서 협력하고 있는 실험자와 이론가의 관계를 생각하면 마이클 다인의 책 제목은 우주로 가는 물리학이 아니라 우주로 가는 물리학과 수학이어야 한다수식을 보면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독자들은 안심해도 된다. 우주로 가는 물리학에 유일하게 나온 수식은 ‘E=mc2’뿐이니까.


저자는 이 책에서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실험자와 이론가들도 소개했다. 그렇지만 한 권의 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 많은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의 뛰어난 성과 중에 핵심만 추려서 설명했기 때문에 독자들이 기억해야 할 몇몇 학자들을 언급하지 않았다. 독일에서 활동한 리투아니아 출신의 수학자 헤르만 민코프스키(Hermann Minkowski)는 기하학으로 4차원 시공간 모델을 제시했다. 아인슈타인은 민코프스키에게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배운 덕분에 특수상대성이론을 다듬을 수 있었다. 벨기에의 가톨릭 성직자인 조르주 르메트르(Georges Lemaître)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우주의 기원을 연구해서 허블보다 먼저 우주 팽창론을 발표했다. 상대성이론과 우주론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이 두 사람을 꼭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우주로 가는 물리학을 쓴 저자와 번역자가 실수를 범했다. 그들의 실수로 인해 본의 아니게 책에 오류와 오역이 생겼. 이 책의 번역자는 과학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인 이한음 씨.



* 38




 

 신을 논외로 친다면, 시간의 경과가 어디에서나 언제나 동일하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까? 사실 이 질문은 19세기 후반에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한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가 제기했다. 아인슈타인을 자신의 지적 영웅으로 여겼던 마흐는 뉴턴이 주장한 절대시간을 이렇게 평했다.


[원문]

 

 Leaving God aside, what proves that the passage of time is the same everywhere and always? Indeed, this question was raised by Ernst Mach, a physicist and philosopher who was active in Austria in the latter part of the nineteenth century. One of Einstein’s intellectual heroes, Mach wrote of Newton’s insistence on absolute time.



‘One of Einstein’s intellectual heroes, Mach’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지적 영웅으로 여겼던 마흐또는 아인슈타인의 지적 영웅 중 한 명인 마흐로 번역해야 맞다. 마흐는 뉴턴이 가정한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을 형이상학적 개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지구상 모든 물체는 뉴턴이 가정한 절대 운동이 아닌 상대운동을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를 마흐의 원리라고 한다. 마흐의 원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일부 영향을 미쳤다. 마흐가 아인슈타인을 자신의 지적 영웅으로 여겼다는 표현은 오역이다.




* 51




 

 갈릴레오의 가장 유명한 실험 중 하나는 낙하하는 물체를 연구한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르키메데스는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더 빨리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설득력 있는 추측이었지만, 꼼꼼한 관찰을 토대로 한 진술은 아니었다. 갈릴레오는 이 주장에 회의적이었고 그 문제를 실험을 통해 조사했다. 그가 정말로 피사의 사탑에 올라가 질량이 다른 물체들을 떨어뜨렸는지는 학술적 논쟁거리다.


[원문]

 

 Galileo’s most famous experiments were his studies of falling objects. Archimedes, the ancient Greek philosopher, had asserted that heavy objects fall faster than lighter ones. This was a plausible guess, but not a statement based on careful observations. Galileo was skeptical and studied the question experimentally. Whether he actually dropped objects of different mass from the Leaning Tower of Pisa is a subject of scholarly debate.



떨어지는 물체의 운동을 처음으로 언급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는 아르키메데스가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아르키메데스는 지렛대의 원리와 부력의 실체를 발견한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이며 무기와 각종 기계를 만든 공학자이기도 하다저자가 학자 이름을 착각했다. 이한음 씨는 저자의 오류를 확인하지 않은 채 그대로 번역했다.




* 178




 

 안드레이 사하로프(Andrei Sakharov)는 예전 소련에서 중요한 과학자이자 반체제 목소리를 낸 주요 인사였다. 1921년에 태어난 그는 1950년대에 소련의 수소폭탄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60년대에 그는 공산주의 체제를 비판하는 주요 인물로 떠올랐다. 그는 소련을 이렇게 평했다. “우리 국가는 암세포와 비슷하다. 절대 신념과 팽창주의, 반대자의 전체주의적 억압, 권위주의 권력 구조를 갖추고 국내 및 외교 정책의 가장 중요한 결정에 대한 대중 통제력의 철저한 부재, 그 어떤 중요한 사항도 시민에게 알리지 않고, 외부 세계에 문을 닫고, 여행도 정보 교류의 자유도 없는 폐쇄 사회다.” 인권과 군축을 옹호한 공로로 그는 1975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1980년 그는 수용소로 보내졌고, 1988에 생을 마감했다.


[원문]

 

 Andrei Sakharov was an important scientist and leading dissident voice in the former Soviet Union. (중략) For his work as an advocate for human rights and arms control, he won the Nobel Peace Prize in 1975. In 1980, he was sent into internal exile, passing away in 1988.



1980년에 안드레이 사하로프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공개적으로 규탄하자 소련 정부는 그와 가족을 고리키 시(현재 명칭은 니즈니 노브고로드)의 한 아파트에 가택 연금시켰다


‘Internal exile’은 국내의 외딴 지역으로 격리(유배)되는 형태인 내부 망명을 뜻한다. 사하로프가 수용소로 보내졌다는 표현은 오역이다. 그리고 저자는 사하로프의 사망 연도를 착각했다. 사하로프는 1989년 12월 14일에 사망했다. 이한음 씨는 ‘철학자 아르키메데스에 이어서 저자의 오류를 확인하지 못했다.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 223

 

 규소, 게르마늄, 제논[주] 같은 물질을 이용해서 다양한 검출 실험이 이루어졌다.



[주] 대한화학회는 라틴어 및 독일어로 된 화학 용어를 영어로 표기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게르마늄(Germanium)을 영문식으로 표기하면 저마늄이다. 제논은 대한화학회가 권장한 이름인데, 과거에 이 원소는 크세논(Xenon)이라고 불렸다


변경된 화학 용어를 반드시 써라는 법은 없다. 사실 대한화학회의 화학 용어 개정안에 문제점이 있고, 대부분 국내 과학자들은 화학 용어 개정안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과거 명칭을 쓴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다만 과거 명칭에 익숙한 독자는 새롭게 변경된 명칭을 잘 모를 수 있다. 저자와 번역자는 화학 용어를 쓸 때 과거 명칭과 대한화학회가 지정한 새로운 명칭을 함께 표기해야 한다. 예를 들면 저마늄(게르마늄), 제논(크세논)’으로 쓰면 된다.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쓰는 저자와 번역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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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에 제가 쓴 모더니스트 마네》(환대의식탁, 2022) 서평에 대한 저자 홍일립 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 <인상주의자로 박제가 된 모더니스트를 아시오?> 2022104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13985837

 

* 홍일립 <cyrus님께 답변해드립니다> 20221011

https://blog.aladin.co.kr/713543113/14002326




답문을 뒤늦게 써서 이제야 공개해서 죄송합니다. 서평 한 편 쓸 수 없을 정도로 연말에 개인적으로 몹시 바빴습니다. 그렇지만 저자님이 쓴 글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떤 오류를 범했는지 파악하고 검토하기 위해서 저자님이 지적한 부분을 꼼꼼하게 읽었습니다. 저자님의 견해를 인정합니다.


모더니스트 마네서평은 명백히 오류가 가득한 글입니다. 보통 잘못 쓴 글은 삭제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냥 삭제하지 않습니다. 글을 지우기만 하면 잘못 쓴 행위에 비롯한 과실은 자연스럽게 묻히기 쉽습니다. 저는 그런 상황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실수를 제대로 인정하고, 저자에게 진정성 있게 사과하려면 글 속에 있는 오류를 삭제하기보다는 그 내용에 취소 선을 표시해서 제가 어떤 오류를 범했는지 남겨야(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못 쓴 글을 지우기만 한다면 제대로 반성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저의 이러한 태도가 낯설게 느껴진다면 예전에 제가 쓴 글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이 글에 글쓰기를 하면서 생긴 실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할지 구체적으로 밝혔으며 반성문을 써야 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저의 신조와 철칙이 담긴 글입니다.

 


* <다시 글을 쓰는 용기> 2019419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10807968

 

 

그리고 모더니스트 마네서평에 있는 별점을 삭제했습니다.

 

사실 서평의 오류보다 제가 더 크게 잘못한 점은 글 속에 비속어를 연상케 하는 단어를 썼다는 점입니다. 제가 너무 오만했고 경솔했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앞으로 타인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표현을 쓰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저의 부족한 서평을 꼼꼼하게 읽어주시고, 상세하게 저의 오류를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자님의 글 덕분에 서평 쓰는 방식에 대해 반성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문헌을 좀 더 철저하게 검토하고 확인해 볼 것. 공인이 쓴 글이라도 그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회의할 것. 책의 질이 낮다고 해서 그 책을 쓴 저자를 업신여기거나 조롱하거나 깔보지 말 것. 내 의견은 틀릴 수 있으며 오류로 판명되면 실수를 인정해야 하고, 바로 고칠 것. 저자님의 글은 나태해진 저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해주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올해도 건강하시고 건필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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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01-07 17: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반가워요
잘 지내시죠!
책을 읽으며 저 역시 항상 오독을 하는 것 같아서 리뷰를 쓰면서도 걱정이 됩니다^^

cyrus 2023-01-08 12:57   좋아요 1 | URL
반갑습니다. 페넬로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잘못 읽으면 실수를 인정하고 고치면 되니까요. 틀렸는데도 맞다면서 고집을 부리거나 다른 사람의 견해를 무조건 틀렸다고 비난하는 게 오독하는 행위보다 제일 큰 문제죠. ^^

차트랑 2023-01-07 1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우 유익한 리뷰였고 좋은 사과문입니다.

cyrus 2023-01-09 12:49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차트랑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제가 쓴 <모더니스트 마네> 서평은 지금까지 제가 쓴 글 중에 최악의 글이라고 생각해요. 글을 쓰기 위한 과정과 결과 모두 좋지 못했으니까요. 그래도 제가 몰랐거나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을 알게 돼서 저자님의 글이 저에게 유익한 글이었어요. ^^

solitman 2023-01-09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cyrus님! 홍일립입니다. 새해에도 건강함과 즐거움이 가득한 날들이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 님과 같은 훌륭한 독자를 만날 수 있음을 큰 기쁨으로 받아들입니다. 님의 지적을 통해 저자인 저 역시 여러 미흡함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2023-01-09 2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망 좋은 []

 

EP. 17



2022년 10월 15일 토요일

직립보행






 토요일 오후 모두 다 기다리던 시간 그냥 보낼 수 없잖아요. 오늘 하루는 하던 일 잠시라도 잊고 춤을 춰보아요


(김완선 노래, <기분 좋은 날> 중에서)




금요일에 책을 주문(알라딘)하면 불안하다. 그다음 날인 토요일에 책을 받을 수 있다고 되어 있지만, 간혹 배송이 늦어지면 다음 주 월요일에 책을 받을 때도 있다. 오후 3시가 지났는데도 주문한 책이 알라딘 서점에 도착했다는 카톡 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포기하면 편하다고 했다. 오매불망 기다리기만 하면 해야 할 일(책 읽기와 서평 쓰기)을 못 한다.

 

오랜만에 동부도서관에 갔다. 니체(Nietzsche)횔덜린(Holderlin)과 관련된 책 다섯 권을 빌렸다. 니체를 읽고 난 이후부터 너무 오랫동안 잠잠했던 고전문학에 관한 관심이 솟아났다. 특히 내가 주목하고 있는 작가가 독일 낭만주의 시인으로 분류되는 횔덜린과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평점

       4점  ★★★★  A-







* 베르너 슈텍마이어, 홍사현 옮김 니체 입문》 (책세상, 2020)









                               평점

       4점  ★★★★  A-







* 레지날드 J. 홀링데일 니체: 그의 삶과 철학(북캠퍼스, 2018)


















* 프리드리히 니체, 이진우 옮김 비극의 탄생, 반시대적 고찰(책세상, 2005)





니체는 대학 시절인 횔덜린에 대한 평론을 썼다. 그 당시에 횔덜린의 진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 글에서 니체는 독일인의 속물근성과 편협한 애국심을 비판한 횔덜린을 옹호한다. 니체의 글을 검토한 지도 교수는 그것이 잘 쓴 작품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충고를 남겼다고 한다.



 “나는 학생이 좀 더 건강하고, 명확하고, 좀 더 독일적인 시인을 가까이하는 것이 좋을 거로 생각하네.”

 

(니체: 그의 삶과 철학, 47)



지도 교수도 그렇고, 당시 독일인들은 횔덜린이 조국을 부당하게비판한 독일적이지 않은시인으로만 기억했다니체는 반시대적 고찰 1에서 횔덜린을 불운하지만 훌륭한 시인으로 평가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이 사람을 보라(아카넷, 2022)

 

* 프리드리히 니체, 이동영 옮김 이 사람을 보라: 어떤 변화를 겪어서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세창출판사, 2019)

 

* 프리드리히 니체, 백승영 옮김 바그너의 경우, 우상의 황혼, 안티크리스트, 이 사람을 보라, 디오니스소 송가, 니체 대 바그너(책세상, 2002)




니체가 좋아한 또 한 명의 독일 시인은 하이네. 니체는 하이네가 자신에게 서정 시인에 대한 최고의 개념을 선사해주었다고 말한다. 니체는 언젠가 사람들이 독일어를 사용하는 최초의 예술가가 자신과 하이네라면서 말하게 될 거라고 주장한다(이 사람을 보라, 이동영 옮김, 나는 왜 이토록 영리한지).









                              평점

      4점  ★★★★  A-






* 하인리히 하이네 독일, 어느 겨울 동화(시공사, 2011)




하이네도 횔덜린처럼 당대의 독일을 비판한 시인이다. 1847년에 발표된 운문 서사시 아타 트롤, 한여름 밤의 꿈》(독일어느 겨울 동화》에 수록)은 이념에 맹목적으로 사로잡힌 독일의 지식인들(구체제를 지키려는 보수주의자와 현실성이 결여된 사회 변혁을 추진하는 급진주의자들)을 비판한 작품이다.

 

내가 주문한 책이 책방 직립보행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어서 책을 빌린 다음에 바로 그쪽으로 향했다그 한 권의 책을 확인만 해보려고 책방에 간 거였는데‥…
















*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2021)




보행 쌤이 읽고 있던 책은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였다. 보행 쌤의 남편인 책방지기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







                             평점

      4점  ★★★★  A-






* 움베르토 에코 추의 역사(열린책들, 2008)




사실 내가 금요일에 주문한 책이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추의 역사. 예전에 몇 번 읽은 적이 있고 서평도 썼는데, 결국 사게 됐다. 그냥 사고 싶어서 산 게 아니고, 서평을 쓰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확인하고 싶어서 샀다. 내가 이 책을 샀다고 하니까 책방지기는 책 속에 있는 도판 대부분이 무서워서 웬만하면 잘 펼쳐보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추의 역사》를 즐겨 읽은 내가 신기하다고 했다. 그럴 만도 하다. 이 책에 흉측하게 생긴 괴물이나 악마가 그려진 삽화뿐만 아니라 실제로 잘려 나간 사람의 목이 나오는 사진도 있다.


책방지기와 니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책방지기는 아포리즘(aphorism) 위주로 된 니체의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는 짧은 문장을 보면 볼수록 니체가 뭘 말하려고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 에밀 시오랑 태어났음의 불편함(현암사, 2020)


* [구판 절판]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 태어남의 불행에 대해(챕터하우스, 2013)

 


그러면서 에밀 시오랑(Emil Cioran)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개정판: 태어났음의 불편함)가 아포리즘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읽는 데 애먹었다고 했다.

 

부부 책방지기는 좋은 책을 알아볼 줄 아는 나의 안목과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나의 독서 편력을 대단하게 여기는데, 두 분의 독서 이력과 비교하면 한참 멀었다. 직립보행에 있는 책들 대부분은 부부 책방지기가 최소 한 번은 읽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책들을 사놓고도 조금이라도 읽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부 책방지기는 내가 구매했지만 안 읽은 책들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밝히는데, 나는 그게 스포일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게 자극을 준다. 책을 적극적으로, 그리고 제대로 읽게 만들도록 해준다.


책방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중에 주문한 책이 알라딘 서점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메일이 왔다. 원래 카톡 메시지도 같이 오는데, 어제 일어난 카톡 오류 사고 때문인지 카톡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책방에 세 시간 정도 있다가 오후 6시경에 알라딘 서점에 갔다. 책방에 책 한 권이라도 사지 않으면 내 머릿속에 가시가 돋는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 다섯 권, 주문한 책이 다섯 권, 총 열 권의 책을 가방에 넣고 다니면 어깨가 편하지 않다. 마침 책방에 하이네 시 선집이 있어서 그거 딱 한 권만 샀다.


진짜로 일어난 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사실 이게 어제 하루 중에 나를 가장 즐겁게 한 일이다. 알라딘 서점에 가기 위해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주변의 길을 걷다가 천 원짜리 지폐를 주었다. 지금도 그걸 어떻게 주웠는지 신기하다. 이미 해가 져서 하늘은 어두웠고, 땅에 떨어진 지폐는 길에 세워둔 차의 앞바퀴 밑에 있었다. 그리고 지폐는 네 번 정도 접힌 상태였다. 만약에 주문한 책이 어제 알라딘 서점에 도착하지 않았으면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주변을 지나갈 일이 없었다. 아니, 지나갔다고 해도 지폐를 못 봤을 것이다. 운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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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10-16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추의 역사 있습니다. 보기 힘든 사진이 많아서 저도 ㅠ 서평 기대할게요. 에밀 시오랑의 저 책은 구판 표지가 훨씬 예쁜데 새로 나왔네요.
직립보행 찾아보니 인문학 헌책방이네요.
책방지기 부부와의 대화 분위기가 느껴져요.
하이네 시집도 사고 거금까지 행운 가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