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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악어 - 그림으로 읽는 철학사
미셸 옹프레 지음, 변광배.김중현 옮김 / 서광사 / 2022년 12월
평점 :
평점
4점 ★★★★ A-
접시 깬다고 세상이 깨어지나.
자, 이제부터 접시를 깨뜨리자.
- 김국환의 노래 <우리도 접시를 깨뜨리자>(1991년) 중에서 -
라파엘로(Raffaello)의 <아테네 학당>은 고대 그리스 지성사를 되살리고자 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 중 하나다. 학당 안에 철학자와 수학자, 천문학자들이 모여 있다.
그림 중앙에 학당으로 들어서는 두 사람이 있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 철학을 대표하는 플라톤(Plato)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다. 플라톤의 오른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있고,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손바닥은 땅을 향하고 있다. 두 사람의 자세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플라톤은 현상의 순수한 본질인 이데아(idea)를 추구했다. 우리가 지각하는 이 세계의 현상들은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상 그 자체를 이해하려고 했다. 그는 현상을 관찰하고, 분류하고, 분석했다. 플라톤이 가리키는 하늘이 관념적인 이데아를 상징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가리키는 땅은 구체적인 현실을 상징한다.
이처럼 라파엘로는 학당에 모인 수많은 학자를 알 수 있도록 상징물(Attribute)을 그려 넣었다. 허리를 숙여 컴퍼스로 도형을 그리는 사람은 수학자 유클리드(Euclid) 혹은 아르키메데스(Archimedes)다. 유클리드는 컴퍼스와 눈금 없는 자만 가지고 도형을 그려야 한다고 했다. 전설에 따르면 아르키메데스는 죽기 직전 땅바닥에 컴퍼스로 원을 그리고 있었다. 로마 병사가 아르키메데스의 집에 침입하자 아르키메데스는 “내가 그린 원을 밟지 마”라고 말했다. 로마군 대장은 자신들을 괴롭힌 병기를 만든 아르키메데스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병사들에게 아르키메데스를 만나면 반드시 생포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병사는 전란 중에 태평하게 원을 그리고 있는 아르키메데스를 알아보지 못했고, 그를 죽이고 말았다.
예술가들은 자신이 존경하는 위대한 철학자와 그의 학문 정신을 기리기 위해 초상화나 그와 관련된 일화를 소재로 작품을 그렸다. 철학자를 본받고 싶어서 그림 속 철학자의 얼굴에 화가 본인의 모습을 그려 넣기도 했다. 이런 그림의 제작 의도를 관람자에게 알리려면 철학자임을 암시하는 상징물이 반드시 그려져 있어야 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옹프레(Michel Onfray)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악어: 그림으로 읽는 철학사》는 ‘그림이 된 철학’을 시대별로 정리하고, 저자 나름대로 철학이 함축된 미술 작품의 상징물을 분석한 책이다.
플라톤은 이데아의 그림자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가 사는 세계를 ‘동굴’로 비유했다. 그래서 미술 작품에 묘사된 동굴이 플라톤과 그의 철학을 의미할 수도 있다. 현실을 이해하고픈 욕망이 강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자연 현상과 만물을 관찰하고 그것에 대해 무수히 많은 기록을 남겼다. 그가 쓴 많은 책 중에 현재까지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의 박식함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을 분류하고 관찰한 기록을 토대로 《동물지》(historia animalium)를 비롯해 박물학 관련 문헌을 썼다고 한다. 《동물지》는 대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의 《박물지》(Naturalis historia)와 함께 세계 최고(最古)의 백과사전으로 평가받는다.[주1]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이 직접 악어를 관찰한 뒤에야 그것에 대해서 견해를 드러냈다. 플라톤이라면 악어를 관찰하지 않고도 악어가 무엇인지 설명했을 것이다. 악어를 관찰하면서 《동물지》를 쓰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 실제로 있다. 옹프레는 이 그림을 소개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개요를 설명한다.
옹프레를 유명하게 만든 대표작은 총 열한 권으로 이루어진 ‘반철학사(Contre-histoire de la philosophie)’ 시리즈다. 반철학사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주류 철학과 철학사에 가려지거나 잊힌 ‘소수의 철학과 비주류 철학자들’에 주목한다. 옹프레는 반철학 계보에 속한 에피쿠로스(Epikouros)의 쾌락주의를 추종한다. 그는 에피쿠로스를 비롯해 그의 철학을 계승한 쾌락주의자들의 초상화나 관련 그림이 단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성과 도덕을 중시한 주류 철학을 계승한 학자들은 쾌락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폄하했다. 당연히 예술가들은 주류 철학의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옹프레는 주류 철학사뿐만 아니라 주류 미술사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는 미술사 연구가들이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며 심지어 의문조차 제기하지 않았던 ‘서양미술사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를 언급했다.
니체(Nietzsche)는 고결한 도덕주의자를 양성하는 데 몰두한 주류 철학과 기독교 윤리를 비판한 ‘반란의 철학자’다. 니체를 계승한 옹프레는 ‘반철학의 망치’를 휘두르면서 너무 오랫동안 굳어버린 주류 철학사의 통념을 깨뜨린다. 데카르트(Descartes)는 합리주의 철학과 프랑스 철학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옹프레는 그런 데카르트를 비판적으로 재평가한다. 그동안 우리는 데카르트 이전에 활동한 철학자를 망각한 채 데카르트의 업적에만 초점을 맞춘 기존의 철학사를 답습하고 있었다.
철학사는 인류 지성사에 한 획을 그은 철학자들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가 아니다. 그렇지만 철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몇몇 전문가와 철학도들은 철학사 자체를 기념비로 여긴다. 그들은 기념비가 된 철학사에 반짝반짝 광이 나도록 끊임없이 닦기만 한다. 빛나는 철학사에 새겨진 철학자들의 이름과 명성에 흠집이 생기는 것을 그들은 원하지 않는다. 그러한 태도는 지혜에 대한 사랑(philosophia), 즉 철학(philosophy)이 아니다. 그것은 맹신이다. 맹신은 쉽게 깨지지 않는 도그마(dogma)를 만든다.
철학사가 신성한 기념비가 되지 않으려면 ‘반철학의 망치’를 손에 쥐어야 한다. 반철학의 망치는 주류 철학사가 외면한 소수의 철학자들을 발굴하기 위한 작업 도구가 아니다. 아무도 깨뜨리지 못한 주류 철학사의 한계와 통념에 균열을 내기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 그런 다음, 망치로 인해 생긴 빈틈에 ‘불순물’로 치부되었던 비주류 철학사를 주입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이 수월하게 이루어진다면 (니체가 강조했듯이) 우리가 옳다고 믿었던 윤리, 전통, 그리고 모든 가치를 재평가할 수 있다. 철학(사) 깬다고 세상이 깨어지나.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알
[주1] 《박물지》는 2021년에, 《동물지》는 올해 초에 처음으로 번역되었다. 두 권 모두 같은 출판사가 펴냈다. 번역자도 같다.
* 28쪽, ‘크산티페의 물 항아리’ 편 중에서
산파 어머니와 조각가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자신이 그의 어머니와 같은 일을 한다고 말하기 좋아했다. 왜냐하면 그는 정신들을 그 배아 상태에서 분만시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정신을 분만시키는 기술을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라 부른다. [주2]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이렇게 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다고 한다.[주3] 한 사람은 크산티페로, 그녀에게서 람프로클레스라는 아들 하나를 두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의인 아리스티데스의 딸 미트로로, 그는 그녀와 지참금 없이 결혼했는데 그녀에게서 소프로니코스와 메넥세노스라는 두 명의 아들을 두었다.”
[주2] 옹프레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을 설명할 때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Diogenes Laërtius)의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김주일, 김인곤, 김재홍, 이정호 옮김, 나남출판, 2021)을 자주 인용한다.
‘산파술’이라는 명칭이 더 많이 알려진 소크라테스식 논변은 ‘소크라테스 질문법’, ‘소크라테스 대화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소크라테스식 논변을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이 프로타고라스(Protagoras)였다고 주장했다. [참고: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9권 독자적인 철학자들, 8. 프로타고라스, 270쪽]
[주3]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라 ‘소크라테스’다. 이 책의 앞부분은 김중현 교수가 번역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다고 했다’라고 잘못 썼다. 실제로 라에르티오스의 책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그(소크라테스)는 두 여인과 결혼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참고: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1》, 2권 이오니아 학파 · 소 소크라테스학파, 5. 소크라테스, 158쪽]
* 67쪽 [옮긴이 미주]
Marc-Aurele(121-180): 로마 제국의 6대 황제로,[주4] 로마 제국의 황금시대를 상징해 온 인물이다. 스토아 철학이 담긴 『명상록』을 남겼다. 기독교도가 그의 재위 기간에 그전보다 많은 피를 흘렸지만 황제 그 자신은 결코 박해를 주도하지 않았다. 그는 기독교도를 좋아하지 않았다 한다.
[주4]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제국의 16대 황제다.
* 68쪽 [원저자 각주]
틴토레 → 틴토레토(Tintoretto)
* 87쪽
피에르 놀라스크 베르제레 →
피에르 놀라스크 베르즈레(Pierre Nolasque Bergeret)
※ 93쪽에 ‘피에르 놀라스크 베르즈레’라고 표기되어 있다.
* 95쪽 [옮긴이 미주]
Simone de Beauvoir(1980-1986) [주5]
[주5] ‘1908’의 오자. 보부아르(Beauvoir)의 출생 연도는 1908년이다.
* 101쪽 [옮긴이 미주]
César Borgia(1475-15070) [주6]
[주6] ‘1507’의 오자. 체사레 보르자(César Borgia)의 사망 연도는 1507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