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책]방
EP. 17
2022년 10월 15일 토요일
직립보행
토요일 오후 모두 다 기다리던 시간 그냥 보낼 수 없잖아요. 오늘 하루는 하던 일 잠시라도 잊고 춤을 춰보아요.
(김완선 노래, <기분 좋은 날> 중에서)
금요일에 책을 주문(알라딘)하면 불안하다. 그다음 날인 토요일에 책을 받을 수 있다고 되어 있지만, 간혹 배송이 늦어지면 다음 주 월요일에 책을 받을 때도 있다. 오후 3시가 지났는데도 주문한 책이 알라딘 서점에 도착했다는 카톡 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포기하면 편하다고 했다. 오매불망 기다리기만 하면 해야 할 일(책 읽기와 서평 쓰기)을 못 한다.
오랜만에 동부도서관에 갔다. 니체(Nietzsche)와 횔덜린(Holderlin)과 관련된 책 다섯 권을 빌렸다. 니체를 읽고 난 이후부터 너무 오랫동안 잠잠했던 고전문학에 관한 관심이 솟아났다. 특히 내가 주목하고 있는 작가가 독일 낭만주의 시인으로 분류되는 횔덜린과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다.
평점
4점 ★★★★ A-
* 베르너 슈텍마이어, 홍사현 옮김 《니체 입문》 (책세상, 2020)
평점
4점 ★★★★ A-
* 레지날드 J. 홀링데일 《니체: 그의 삶과 철학》 (북캠퍼스, 2018)
* 프리드리히 니체, 이진우 옮김 《비극의 탄생, 반시대적 고찰》 (책세상, 2005)
니체는 대학 시절인 횔덜린에 대한 평론을 썼다. 그 당시에 횔덜린의 진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 글에서 니체는 독일인의 속물근성과 편협한 애국심을 비판한 횔덜린을 옹호한다. 니체의 글을 검토한 지도 교수는 그것이 잘 쓴 작품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충고를 남겼다고 한다.
“나는 학생이 좀 더 건강하고, 명확하고, 좀 더 독일적인 시인을 가까이하는 것이 좋을 거로 생각하네.”
(《니체: 그의 삶과 철학》, 47쪽)
지도 교수도 그렇고, 당시 독일인들은 횔덜린이 조국을 ‘부당하게’ 비판한 ‘독일적이지 않은’ 시인으로만 기억했다. 니체는 《반시대적 고찰 1》에서 횔덜린을 ‘불운하지만 훌륭한 시인’으로 평가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이 사람을 보라》 (아카넷, 2022)
* 프리드리히 니체, 이동영 옮김 《이 사람을 보라: 어떤 변화를 겪어서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세창출판사, 2019)
* 프리드리히 니체, 백승영 옮김 《바그너의 경우, 우상의 황혼, 안티크리스트, 이 사람을 보라, 디오니스소 송가, 니체 대 바그너》 (책세상, 2002)
니체가 좋아한 또 한 명의 독일 시인은 하이네다. 니체는 하이네가 자신에게 서정 시인에 대한 최고의 개념을 선사해주었다고 말한다. 니체는 언젠가 사람들이 ‘독일어를 사용하는 최초의 예술가’가 자신과 하이네라면서 말하게 될 거라고 주장한다(《이 사람을 보라》, 이동영 옮김, 『나는 왜 이토록 영리한지』).
평점
4점 ★★★★ A-
* 하인리히 하이네 《독일, 어느 겨울 동화》 (시공사, 2011)
하이네도 횔덜린처럼 당대의 독일을 비판한 시인이다. 1847년에 발표된 운문 서사시 《아타 트롤, 한여름 밤의 꿈》(《독일, 어느 겨울 동화》에 수록)은 이념에 맹목적으로 사로잡힌 독일의 지식인들(구체제를 지키려는 보수주의자와 현실성이 결여된 사회 변혁을 추진하는 급진주의자들)을 비판한 작품이다.
내가 주문한 책이 책방 ‘직립보행’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어서 책을 빌린 다음에 바로 그쪽으로 향했다. 그 한 권의 책을 확인만 해보려고 책방에 간 거였는데‥…
*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
보행 쌤이 읽고 있던 책은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였다. 보행 쌤의 남편인 책방지기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
평점
4점 ★★★★ A-
* 움베르토 에코 《추의 역사》 (열린책들, 2008)
사실 내가 금요일에 주문한 책이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추의 역사》다. 예전에 몇 번 읽은 적이 있고 서평도 썼는데, 결국 사게 됐다. 그냥 사고 싶어서 산 게 아니고, 서평을 쓰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확인하고 싶어서 샀다. 내가 이 책을 샀다고 하니까 책방지기는 책 속에 있는 도판 대부분이 무서워서 웬만하면 잘 펼쳐보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추의 역사》를 즐겨 읽은 내가 신기하다고 했다. 그럴 만도 하다. 이 책에 흉측하게 생긴 괴물이나 악마가 그려진 삽화뿐만 아니라 실제로 잘려 나간 사람의 목이 나오는 사진도 있다.
책방지기와 니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책방지기는 아포리즘(aphorism) 위주로 된 니체의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는 짧은 문장을 보면 볼수록 니체가 뭘 말하려고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 에밀 시오랑 《태어났음의 불편함》 (현암사, 2020)
* [구판 절판]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 태어남의 불행에 대해》 (챕터하우스, 2013)
그러면서 에밀 시오랑(Emil Cioran)의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개정판: 《태어났음의 불편함》)가 아포리즘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읽는 데 애먹었다고 했다.
부부 책방지기는 좋은 책을 알아볼 줄 아는 나의 안목과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나의 독서 편력을 대단하게 여기는데, 두 분의 독서 이력과 비교하면 한참 멀었다. ‘직립보행’에 있는 책들 대부분은 부부 책방지기가 최소 한 번은 읽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책들을 사놓고도 조금이라도 읽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부부 책방지기는 내가 구매했지만 안 읽은 책들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밝히는데, 나는 그게 ‘스포일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게 자극을 준다. 책을 적극적으로, 그리고 제대로 읽게 만들도록 해준다.
책방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중에 주문한 책이 알라딘 서점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메일이 왔다. 원래 카톡 메시지도 같이 오는데, 어제 일어난 카톡 오류 사고 때문인지 카톡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책방에 세 시간 정도 있다가 오후 6시경에 알라딘 서점에 갔다. 책방에 책 한 권이라도 사지 않으면 내 머릿속에 가시가 돋는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 다섯 권, 주문한 책이 다섯 권, 총 열 권의 책을 가방에 넣고 다니면 어깨가 편하지 않다. 마침 책방에 하이네 시 선집이 있어서 그거 딱 한 권만 샀다.
진짜로 일어난 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사실 이게 어제 하루 중에 나를 가장 즐겁게 한 일이다. 알라딘 서점에 가기 위해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주변의 길을 걷다가 천 원짜리 지폐를 주었다. 지금도 그걸 어떻게 주웠는지 신기하다. 이미 해가 져서 하늘은 어두웠고, 땅에 떨어진 지폐는 길에 세워둔 차의 앞바퀴 밑에 있었다. 그리고 지폐는 네 번 정도 접힌 상태였다. 만약에 주문한 책이 어제 알라딘 서점에 도착하지 않았으면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주변을 지나갈 일이 없었다. 아니, 지나갔다고 해도 지폐를 못 봤을 것이다. 운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