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책방, 헌책방. 명칭은 달라도 책과 독자가 가까이 만나서 만질 수 있는 그곳은 우주. 책은 종이(로 된) 별이다. 독자는 마음에 드는 종이 별을 모으고 싶어 한다. 그들은 다양한 형태의 종이 별을 눈으로 만지면서 떠돌아다니는 여행자다. <일글책>은 책의 우주치고는 매우 작다. 우주 여행자들을 기다리는 종이 별의 수가 적은 편이다. 하지만 우주가 조금씩 조금씩 커지듯이, <일글책>도 점점 커지고 있다. 종이 별이 많다고 해서 책의 우주가 커지는 것은 아니다. 책의 우주를 사랑하는 여행자들이 많아야 한다. 우주 여행자들이 모여서 책의 우주 안에서 복닥복닥하면 작아 보이던 그곳은 거대해진다.
















* 임주혜 읽기의 의미: 의미를 찾다가 써 내려간 것들(행복우물, 2023)


 


어제 토요일은 <일글책>이 엄청 커진 날이었다. 읽기의 의미저자 임주혜 작가와 귀여운 반려종(견) 고동이가 들어오면서 <일글책>이 커지기 시작했다. 저자를 사랑하는 우주 여행자들이 한두 명씩 올수록 <일글책>은 쑥쑥 자랐다. 작가와 우주 여행자들의 만남은 차분한 책의 우주를 들썩이게 한다.







저자에게 우주는 종이 별을 만지면서 보는 것뿐만 아니라 종이 별에 있는 단어를 수집하고 문장을 만드는 행위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글 쓰는 책의 우주 여행자는 눈으로 열심히 만지면서 종이 별을 폭발시킨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에너지가 생겨서 종이 별이 폭발한다(초신성, Supernova). 그것이 폭발하면서 생긴 수많은 단어와 문장들의 잔해가 뭉치면 새로운 종이 별이 태어난다. 독서 에세이집 읽기의 의미는 저자가 여러 권의 종이 별을 만나고, 읽고, 폭발시킨 흔적들을 모아서 만든 종이 별이다. 7월에 태어난 아기’ 종이 별이다.







저자의 본업은 방송 작가다. 저자는 방송 작가의 글쓰기를 보이지 않는 곳에 쓰는 행위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글쓰기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서평 쓰는 일 또한 보이지 않는 글쓰기서평은 종이 별을 보려는 여행자들을 위한 지도다서평은 여행자들에게 종이 별을 눈으로 제대로 만지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여행자들이 피해야 하는, 오물이 넘치는 종이 별도 알려준다.
















* 파스칼 키냐르 세 글자로 불리는 사람(문학과지성사, 2023)




파스칼 키냐르(Pascal Quignard)는 세 글자로 불리는 사람이라는 종이 별에서 독서를 소리 없는 도둑질이라고 썼다. 종이 별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책의 우주 여행자가 타인이 만든 종이 별들을 훔치고, 눈으로 열심히 만지고, 글을 써야 한다독서와 글쓰기는 타인의 눈에 띄지 않고, 타인의 귀에 들리지 않는 투명한 일이다.







지금도 종이 별이 만들어지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종이 별들이 태어난다. 책의 우주에 머무른 종이 별들은 여행자들의 손길과 눈길을 기다리면서 반짝거린다. 나는 종이 별을 만들 생각은 없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은 어디선가 책의 우주 여러 곳을 전전하고 있을 여행자들을 위한 다정한 지도


나는 저자에게 서평의 의미’가 무엇인지 질문했다. 저자는 다정한 서평이 좋은 서평이라고 답했다. ‘다정한 서평은 책의 우주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초보 여행자들에게 친절해야 한다. 다정한 서평은 말한다. 오물이 넘치는 종이 별로 가지 마세요. 거긴 위험해요. 제가 괜찮은 종이 별을 소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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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9-06 1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하, 여기를 가느라 공연을 포기한거였군. 그러니까 공연 보다는 책 모임이구만. 역시 나하곤 달라. ㅎㅎ

cyrus 2023-09-07 06:49   좋아요 0 | URL
이날 공연이 오후 3시, 7시 두 번 있는데 북 토크 때문에 7시 공연 표를 예매했어요.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겨서 공연을 보지 못했어요.. ^^;;
 




에우리피데스(Euripides)의 비극 헬레네(Helen)이집트에 체류 중인 헬레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작품이다. 헬레네는 절세미인이다. 수많은 구혼자가 헬레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경쟁할 정도였다. 헬레네가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Menelaos)의 아내가 되었는데도 사람들은 그녀의 외모를 칭송했다. 결국 트로이 왕자 파리스(Paris)와 헬레네는 눈이 맞아 트로이로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다. 분노한 메넬라오스는 헬레네를 되찾기 위해 이제는 동맹군인 구혼자들에게 병력 지원을 요청한다. 이로써 장장 십 년이나 지속된 트로이 전쟁이 시작된다.

















[파이데이아 독서 목록 1년 차]

[대구 책방 <일글책> 시카고플랜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 에우리피데스, 천병희 옮김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2(도서출판 숲, 2020년 개정판)



 

헬레네는 양가적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는 찬사와 동시에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부정적 평가도 따라온다. 하지만 에우리피데스가 묘사한 헬레네는 트로이가 아닌 이집트에 있다. 그 이유는 에우리피데스가 헬레네의 행방을 둘러싼 또 다른 전설을 소재로 비극을 썼기 때문이다. 다른 전설에 따르면 헬레네는 파리스와 함께 트로이에 간 것이 아니다. 파리스가 데려간 트로이는 헬레네의 환영, 즉 가짜 헬레네다. 진짜 헬레네는 헤르메스(Hermes) 신의 도움을 받아 이집트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헬레네는 메넬라오스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이집트 왕 테오클리메노스(Theoclymenos)가 아름다운 헬레네를 가만히 지켜볼 리 없다. 이집트 왕의 구애를 견디지 못한 헬레네는 프로테우스(Proteus)의 무덤으로 피신한다. 프로테우스는 테오클리메노스의 아버지다.

 

이집트에 있는 진짜 헬레네가 살았다는 전설은 헤로도토스(Herodotos)역사에도 나온다. 헤로도토스는 헬레네가 프로테우스의 궁전에 한동안 머물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증언한다(2112). 프로테우스의 성역 안에 이방의 아프로디테를 위한 신전이 있는데, ‘이방의 아프로디테는 헬레네를 가리킨다.

















[파이데이아 독서 목록 1년 차]

* 헤로도토스, 천병희 옮김 역사(도서출판 숲, 2022년 개정판)



 

천병희 교수가 번역한 헬레네에 흥미로운 대사가 있다. 메넬라오스가 헬레네에게 한 말 중에 불타고 있는 케이크라는 표현이 나온다(547). 인터넷에 확인한 케이크의 역사와 관련된 정보에 따르면 고대 지중해 지역에 이미 케이크와 비슷한 형태의 음식이 있었다. 하지만 오븐에 구워서 만든 것이 아니라 꿀, 밀가루, 과일, 달걀 등을 섞어 오랜 시간 굳힌 뒤에 먹는 것이었다. 케이크라기보다는 푸딩에 가깝다. 화덕을 이용해서 만든 케이크의 원형은 고대 이집트에서 나왔다. 그렇다면 불타고 있는 케이크는 이집트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말 그대로 화덕에 구워서 만든 따끈따끈한 케이크임을 추측해볼 수 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871쪽 역주 43카스토르(Castor)와 폴뤼데우케스(Polydeuces)튄다레오스의 쌍둥이 아들이라고 되어 있다.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는 헬레네처럼 알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다. 스파르타 왕 틴다레오스(Tyndareus)의 아내 레다(Leda)는 백조로 변신한 제우스(Zeus)를 만나면서 세 개의 알을 낳는다. 이 세 개의 알에서 헬레네와 쌍둥이 형제가 태어났다.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는 제우스의 아들이라는 뜻의 디오스쿠로이(Dioskuroi)’라고 불리기도 한다. 따라서 카스토르와 폴뤼데우케스는 제우스의 쌍둥이 아들로 보는 게 적절하다.

 

틴다레오스와 레다 사이에 태어난 자식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이 클리타임네스트라(Klytaimnestra). 헬레네와 쌍둥이 형제의 탄생 설화에도 다른 버전이 있다. 헬레네의 어머니가 레다가 아니라 복수의 신 네메시스(Nemesis)라는 설이 있다. 카스토르가 틴다레오스의 아들이고, 폴뤼데우케스는 제우스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다.

 

케이크라는 단어에 너무 오래 꽂혀 생각해서 그런가. 케이크가 당긴다. 내가 확실히 아는 불타고 있는 케이크는 불금에 칼퇴하고 난 뒤에 먹는 케이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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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8-12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말이 제일 와닿는데요. 불금에 칼퇴하고 난 뒤에 먹는 케이크.. ㅎㅎ 생각만 해도 환상적입니다. ^^

cyrus 2023-08-14 06:14   좋아요 1 | URL
요즘 잔업이 갑자기 늘어나서 불금 케이크 먹기가 쉽지 않네요.. 일찍 마친 날, 집 근처 카페에 가서 케이크 먹으면서 책을 읽는 게 행복해요 ㅎㅎㅎ

그레이스 2023-08-22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케이크! 그렇군요^^
일단 헬레네를 읽어봐야겠네요
 




2주 전 토요일(617)서울국제도서전을 참관했다. 작년에 비해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출판사들이 참가했던 터라 책을 많이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도서전보다 제일 중요한 곳에 가야 해서 ‘꼭 사야 할 책 두 권만 샀다.

















* 김정희 책방지기 생활 수집》 (탐프레스, 2023)




두 권 중 한 권은 대구 독립서점 <서재를 탐하다>와 출판사 <탐프레스(tampress)> 운영자 김정희책방지기 생활 수집이다














전국 각지에서 온 애서가들로 바글거리는 코엑스를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나 같은 간서치(看書癡)가 좋아할 만한 곳으로 향했다그곳은 바로 세운상가 근처에 있는 <소요서가>라는 철학 전문 서점이다
















* [절판] 데이비드 C. 린드버그 서양 과학의 기원들(나남출판, 2009)




처음에 서점을 찾기 힘들어서 상당히 애먹었다서점 건물이 지상에 있는 줄 알고 한동안 헤맸다대부분 사람은 유명 서점에 가기 전에 사전 조사로 그 위치를 확인할 것이다그런데 난 그렇지 않다서점에서 어떤 책이 판매되고 있는지 먼저 본다사실 <소요서가>에 가고 싶은 딱 한 가지 이유는 절판된 서양 과학의 기원들이 책을 사기 위해서였다.








 









* 윌리엄 뉴먼 프로메테우스의 야망(도서출판 길, 2023)


* 바이얼릿 몰러 지식의 지도: 일곱 개 도시로 보는 중세 천 년의 과학과 지식 지형도(마농지, 2023)




30여 분 돌아다닌 끝에 <소요서가>를 찾았다서점 진열창에 배치된 책들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그중에 이미 내가 산 책 두 권이 있었다프로메테우스의 야망과 지식의 지도이 책들은 서양 중세의 과학이 처음에 어떻게 형성되었고유럽 전역으로 전파되었는지를 보여준다이 두 권의 책을 읽기 시작했던 터라 여기에 짝이 될만한 서양 과학의 기원들을 구매하고 싶었다하지만 서양 과학의 기원들은 이미 다른 손님이 예약 구매된 상태였다비록 목표 달성은 실패했지만, <소요서가>에 사고 싶은 책들이 엄청 많았다.


그날 <소요서가>에서 고른 책은 총 여섯 권이다그중 세 권은 예전에 이미 읽었고서평을 남겼다읽은 책 세 권만 간략히 언급하겠다.

















테레사 포르카데스 이 빌라 여성주의 신학의 선구자들》 (분도출판사, 2018)




여성도 지식인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던 교회가 어떻게 남성 중심적인 교권 제도를 고집하는 교회로 변했는가그렇다면 페미니즘 관점을 적용하여 교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재배치하는 제도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여성주의 신학의 선구자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느끼고진정한 의미의 여성과 신학이 무엇인지 접근한다책은 여성 신학 대신에 여성주의 신학이라는 용어를 내세워 그것의 의미와 역사를 다룬다그리고 남성 중심 사회 속에서 주도적인 생각으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간 위대한 여성 신학자들을 소개한다






 










* [절판] 샤를 보들레르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 (은행나무, 2014)




보들레르가 강조하는 현대는 간단히 말하면 현시대의 유행과 풍속이다결국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는 자신이 본 것시대의 풍경을 세밀하게 관찰하며 응시하는 예술가. ‘현대 예술가는 벌거벗은 여신이나 신화 속 영웅의 모습을 그리던 고전주의 화풍을 거부한다그래서 전통에 반기를 든 보들레르는 이 책을 통해 현대성이 충실히 반영된 예술가를 옹호한다국내에 출간된 보들레르가 쓴 책과 보들레르 관련 서적을 모으는 중인데, <소요서가>에 오기 전까지는 절판된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를 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드디어 이 책을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 [구판절판] 린 헌트 엮음 포르노그라피의 발명》 (책세상, 1996)

* [개정판] 포르노그래피의 발명》 (알마, 2016)



<소요서가>에서 구매한 린 헌트의 책은 책세상에서 나온 구판이다프랑스 혁명 이전의 금서목록에 포르노그래피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아이러니하게도 금서로 지정된 포르노그래피는 대중이 즐겨 보는 베스트셀러였고봉건적 구체제를 뒤흔들만한 선동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프랑스 혁명 이전까지 포르노그래피는 성적 표현을 동원해 종교적 · 정치적 권위를 비판하는 언어적 무기였다포르노그래피의 발명은 프랑스 혁명과 민주주의를 촉발한 포르노그래피의 영향력을 조명한 책이다.

















* [개정 4]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현실문화, 2022)




그날 <소요서가주인장은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를 읽고 있었다.

 

현대미술은 정말 어렵고보면 볼수록 머리 아프게 만든다사실 미술이라는 단어조차도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다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는 미술과 그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들 사이의 틈을 메꿔주는 책이다미술을 이해하고해석하는 관점과 방식은 고정적이지 않다시대적 상황에 따라 미술을 보는 눈이 결정되고시대가 달라지면 변하기 마련이다그래서 미술을 한 마디로 규정하고정의 내리기가 참 쉽지 않다저자는 현대미술이 소수의 지식인만 이해하는 문화로 전락하는 바람에 실패했다고 지적한다저자의 지적은 현대미술의 한계에 정곡을 찌른 분석이다







지난주 금요일에 <소요서가> 인스타그램 운영자가 내게 메신저(DM)를 보냈다. 서양 과학의 기원이 서점에 입고되었으니(!) 필요하다면 예약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절판된 책이라서 영영 못 구할 줄 알았는데 <소요서가>가 정말 감사하게도 귀한 책을 찾아줬다. 절판된 책 가격은 정가보다 비싸게 매겨지는 편이다. 하지만 나는 그 책 가격이 얼만지 생각하지 않고, 바로 그 책을 구매하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타이밍이 참 좋았는데 바로 다음 날인 토요일에 <달의 궁전> 독서 모임이 있는 날이라서 서울에 갈 예정이었다. 모임 시작 전에 <소요서가>에 방문해서 서양 과학의 기원을 구매했다. <소요서가> 주인장이 말하기를 <소요서가> 대표가 서양 과학의 기원을 매우 탐냈다고 한다. <소요서가> 대표는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이분 역시 내공이 깊은 간서치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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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3-06-28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제도서전 가셨군요. 저는 가고 싶었는데 못 갔어요. 소요서가라는 곳이 있었군요. 귀한 책을 구하셔서 잘 됐습니다.

cyrus 2023-07-01 21:31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몰랐던 서점이었어요. <일글책> 책방지기가 <소요서가>를 소개해서 알게 됐어요. ^^

stella.K 2023-06-28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서울에 사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대단하다. 역시 너는 진정한 애서가다.
조만간 해외로도 발을 넓혀볼 생각은 없나? 가까운 일본부터라도. 애서가에겐 언어의 장벽도 문제가 이니잖나? ㅋ 암튼 다행이다. 힘들게 서울까지 와서 원하는 책을 샀으니.^^

cyrus 2023-07-01 21:33   좋아요 1 | URL
외국어 공부하면 책을 못 읽어요. 가끔 우리말로 번역된 외국 도서를 읽다가 아리송한 문장을 만나면 외국어 공부를 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래도 영어 공부하고 싶지 않아요. ㅎㅎㅎ

레삭매냐 2023-06-28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내 글쓰기만을 고집하지만,
제가 권유한 대로 너튜브의
세계를 추천하는 바입니다.

물론 들으시진 않겠지만 ㅋㅋ
지난 주말 역시나 즐거웠습니다.

cyrus 2023-07-01 21:34   좋아요 1 | URL
글 쓰는 삶이 제게 부와 명성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해도, 저는 죽을 때까지 책 읽고 글 쓰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

페넬로페 2023-06-28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작년에도 서울국제도서전 오셨죠? 벌써 1년이 지났네요.
매냐님께서 달궁이라 표현하셨는데
‘달의 궁전‘이군요.
음, 달의 궁전이라, 좋네요~~
대구에서 서울까지 오는 열정, 역시 진정한 책쟁이십니다^^

cyrus 2023-07-01 21:36   좋아요 1 | URL
작년에 제가 도서전에 간 것을 기억하시네요. ㅎㅎㅎ <달의 궁전>이 폴 오스터가 쓴 소설 제목이기도 해요. 달궁 멤버 대부분이 폴 오스터의 소설을 좋아해서 독서 모임 이름이 ‘달궁’이 되었답니다. 그렇지만 저는 폴 오스터의 소설을 즐겨 읽지 않았어요.. ^^;;

시나브로 2023-08-09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번에 소요서가에서 <서양과학의 기원들> 재고가 있어 우연히 구매할 수 있었는데, 쓰신 글 보니까 괜히 반갑네요 ㅎㅎ
 



서한용 씨는 서울에 사는 친한 애서가다. 작년 인스타그램에서 알게 된 분이다. 그분은 본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구매한 책들을 찍은 사진과 간단한 책 소개 글, 서평을 올린다. 웬만하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을 팔로우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책과 관련한 서 씨의 글 몇 편 읽고 난 후 이분의 독서 편력에 몹시 흥미를 느꼈고 서 씨의 팔로우 신청을 수락했다. 나는 한 주에 많아야 책을 10권을 사는데, 서 씨의 책 구매량이 나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 씨의 구매한 책 중에 내가 산 책이 한두 권 포함되어 있었다.

 

서 씨의 책 사랑이 얼마나 심각한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린 6월 4일 토요일에 만나자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 솔직히 서 씨를 만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첫 만남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도 나지 않았다. 우리는 국제도서전이 열리는 코엑스 근처에 만났다. 만나자마자 책과 관련된 대화가 시작되었다.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 본명은 최해성이다나는 재미 삼아 서 씨에게 서울의 최해성(서해성)’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반대로 내 별명은 대구의 서한용(대한용)’이 되었다. 서해성, 대한용. 별명 한번 참 찰지구먼. 서해성과 대한용이 장거리 연애, 아니 장거리 우정이 맺어진 지 딱 1년이 지났다. 마침 서해성의 생일이 61일이었다. 그래서 그분의 생일을 축하할 겸 1주년 우정을 기념하고 싶어서 알라딘 기프티콘으로 책 선물을 보냈다. 선물할 책을 고르기 전에 우선 내 책을 먼저 주문했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은 소중하니까.

 

예전에 책 좋아하는 분들한테 책 한 권을 선물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서해성을 위한 책 선물은 특별하다. 해성이 해성한테 책 선물을 주는 건데 대충 막 고르면 안 되지. 나는 서해성 한 사람을 위한 북 큐레이션을 하는 마음으로 세 권의 책을 골랐다.
















* 이레네 바예호, 이경민 옮김 갈대 속의 영원: 저항하고 꿈꾸고 연결하는 발명품, 책의 모험(반니, 2023)




서해성이 구매한 수많은 책 중에 내가 샀거나 읽은 책은 기억하고 있다. 그분은 갈대 속의 영원을 구매했는데, 올해 내가 사서 읽은 책 중에서 최고의 책이다. 그래서 갈대 속의 영원과 비슷한 느낌이 날법한 책을 고르기로 했다. 그리고 나온 지 얼마 안 된 신간 도서는 고르지 않았다. 완독하고 서평으로 주요 내용을 요약한 책을 골랐다. 그래서 책 선물로 고른 책은 다음과 같다.

















* 마리엘라 구쪼니, 김한영 옮김 빈센트가 사랑한 책(이유출판, 2020)

 



애서가 지인에게 책 선물을 줄 때 반드시 고르는 책이 바로 빈센트가 사랑한 책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가 반 고흐(그다음으로 좋아하는 화가는 르네 마그리트). 사실 반 고흐가 생전에 책을 진심으로 좋아했고, 독서 욕구가 얼마나 컸던 사람인지 아는 이가 드물다. 책과 독서에 대한 열정은 동생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게는 책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열정이 있다. 끊임없이 깨우치고, 배우고 싶은 욕구가 있지. 마치 하루하루 빵을 먹어야만 하는 것과 같아.’ (6)

 


반 고흐가 생각하는 진정한 예술가의 역할은 진실하고 정직하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진실하고 정직하게 서평을 쓰는 것이 내가 책을 읽으면서 살아가는 이유. 빈센트가 사랑한 책해성이 사랑한 책이다.

















* 제이미 캄플린, 마리아 라나우로 공저, 이연식 옮김 예술가는 왜 책을 사랑하는가?: 예술에서 일상으로, 그리고 위안이 된 책들(시공아트, 2019)

 



빈센트가 사랑한 책과 같이 읽으면 좋은 책이다. 반 고흐와 같이 책을 엄청나게 좋아했던 예술가들은 책 사랑을 숨기지 않았고, 예술 작품으로 표현했다. 서해성이 구매한 책 사진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분이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엔 예술 관련 책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글보다는 도판이 많이 실려 있는 예술 분야의 책 두 권을 선택했다.

















* 마틴 푸크너, 최파일 옮김 글이 만든 세계: 세계사적 텍스트들의 위대한 이야기(까치, 2019)



 

말하기와 쓰기가 하나가 되면 한 편의 텍스트(), 또는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된다. 더 나아가 책이 읽히는 순간 인간과 세계가 만들어진다. 글이 만든 세계16편의 유명한 텍스트가 만들어지고 보급되는 과정을 추적하고, 그 텍스트들이 어떻게 세계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이 갈대 속의 영원과 잘 어울려서 골랐는데, 서해성이 이미 산 책이었다. 역시 서해성답다. 두 사람의 독서 편력이 거의 비슷하면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 이럴 줄 알고 앞에 언급한 책 두 권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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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6-08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그러니까 서한용 씨가 너한테 먼저 팔로우 하자고 했단 말이지? 대단한데? 그러니 나는 얼마나 대단하냐 이렇게 대단하신 분과 팔로우를 하고 있으니. ㅋㅋㅋ
앞으로 잘 알아 모시겠슴다. 서해성 씨!^^
서해성 씨와 대한용 씨의 우정도 더욱 짙어지길!

cyrus 2023-06-12 06:40   좋아요 1 | URL
독서 취향과 관심사가 거의 비슷한 분 만나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한용 씨가 저보다 대단한 점은 매일 아침 운동하는 루틴을 지키고요, 독서뿐만 아니라 취미가 많은 분이에요. 저는 여전히 내향적 성격이라서 책 읽는 일상이 편하고 익숙해요. ^^;;

새파랑 2023-06-09 05: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이 극찬하는 책이라니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서울과 대구의 책쟁이의 만남이라니 멋지십니다~!!

cyrus 2023-06-12 06:41   좋아요 1 | URL
제가 소개한 책들이 ‘책에 관한 책’이라서 오히려 책 속에 언급된 책들까지도 읽고 싶어질 수 있어요. 조심하세요. 책임 못집니다! ^^;;

꼬마요정 2023-06-09 1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지세요!! 두 분 우정도, 책을 사랑하는 마음도, 모두 다요^^ 두 분 우정 늘 책과 함께 깊어지길 바랍니다. 전 옆에서 이렇게 cyrus 님이 추천하는 책 읽을게요. 아, 다는 못 읽을 거 같아요. 어려워요 ㅎㅎㅎ

cyrus 2023-06-12 06:42   좋아요 1 | URL
제가 추천한 책보다는 꼬마요정님이 읽고 싶은 책을 읽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

감은빛 2023-06-09 1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명이 무척 인상적이네요. 서로의 본명이 별명 되다니. 이렇게 마음이 맞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두 분의 우정을 응원합니다.

cyrus 2023-06-12 06:45   좋아요 0 | URL
한용 님 성격이 쾌활하고 낙천적이라서 같이 있으면 제가 좋은 기운을 많이 얻고 갑니다. 이런 분들을 자주 만나면 내항적 성격인 저도 알게 모르게 외향적으로 행동하게 되더라고요. ^^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 1984텔레스크린이라는 영상 장치가 나온다. 오세아니아의 지배자 빅 브라더(Big Brother)는 텔레스크린으로 국민을 감시한다. 그뿐만 아니라 텔레스크린은 국민에게 영상과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선동 도구이기도 하다. 소설 초반부에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Winston Smith)는 고문당하는 여성이 나오는 텔레스크린 화면을 상상한다.


















* 조지 오웰, 한기찬 옮김 1984(소담출판사, 2021)



 그는 그녀를 고무 봉으로 죽도록 매질할 것이다. 그녀를 발가벗겨 기둥에 묶어 놓고 성 세바스찬[비밀리에 기독교를 믿다가 화살을 맞고 순교한 로마의 장교-역주]을 처형할 때처럼 화살을 있는 대로 쏠 것이다


(1984중에서, 26~27)



1984역자는 성 세바스찬(St. Sebastian, 라틴어: 세바스티아누스, 이탈리아어: 세바스티아노)화살을 맞고 순교했다는 내용의 주석을 달았다세바스찬이 화살을 맞은 건 사실이지만, 순교하지는 않았다.


세바스찬은 갈리아 출신의 로마 군인이었다. 그는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 황제의 친위 대원이 되었다. 황제는 이교도 금지 정책으로 기독교 박해를 단행했다. 하지만 기독교로 개종한 세바스찬은 황제 몰래 감옥에 갇힌 기독교인들을 풀어주었다. 이 사실이 발각되면서 황제는 기독교인 세바스찬에게 활로 쏘아 죽이는 사형을 명했다. 세바스찬은 기둥에 묶인 채 군인들이 쏜 수십 발의 화살을 맞았다. 화살들이 그의 몸을 관통했지만, 세바스찬은 죽지 않았다. 이레네(Irene)라는 과부가 치명상을 입은 채 버려진 세바스찬을 치료해주었다. 회복된 세바스찬은 황제를 직접 만나 기독교 박해 정책을 비판한다. 결국 세바스찬은 군인들이 휘두른 몽둥이(곤봉)에 맞아 순교했다.
















* 보라기네의 야코부스 황금 전설(크리스천 다이제스트, 2007)

 

* [품절] 로사 조르지 성인 이야기, 명화를 만나다(예경, 2006)




세바스찬의 처형 장면은 르네상스 화가들이 선호하는 주제 중 하나였다. 성 세바스찬의 일대기를 언급한 황금 전설에 따르면, 화살로 뒤덮은 세바스찬의 모습을 고슴도치로 비유한다. 화가들은 남성 신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온몸에 화살을 맞은 세바스찬을 반나체 모습으로 그렸다. 이러한 그림들이 많아서 세바스찬이 화살에 맞아 순교한 것으로 오인하기 쉽다.


황금 전설은 유럽 중세에 전해 내려온 가톨릭 성인들의 전설을 집대성한 문헌이다. 이 책의 유일한 번역본은 크리스천 다이제스트라는 출판사가 펴냈다. 크리스천 다이제스트는 현대지성출판사의 전신이며 현재 ‘CH북스로 이름이 변경되었다‘CH 북스는 현재 현대지성 출판사의 독립 브랜드(임프린트)로 운영 중이다CH북스는 기독교(개신교) 서적을 펴내는 출판사인데, 가톨릭 교리가 반영된 황금 전설을 펴낸 점이 이채롭다. 종교 개혁 이후 기독교인들은 구교가 된 가톨릭교 성인들의 기적을 미신으로 여겨 비판했다. 황금 전설의 기독교인 역자는 황금 전설에 나온 모든 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명시한다. 그렇지만 중세 미술과 신학자들에게 큰 영감을 준 황금 전설의 영향력을 높이 평가한다.

 

황금 전설번역본에는 세바스찬이 곤장에 맞아 순교했다고 나와 있다(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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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6-06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 두껍네. 읽을 것 같지않다.ㅠ

cyrus 2023-06-07 06:18   좋아요 0 | URL
네, 벽돌 책이에요.. ㅋㅋㅋㅋ

ozzy2012 2023-06-06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미디어가 텔레스크린이네요...

cyrus 2023-06-07 06:2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사회 비판적인 의식을 가지고 진실을 말하려는 훌륭한 언론인도 있지만, 대부분 언론인은 사명감 없이 일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