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한용 씨는 서울에 사는 친한 애서가다. 작년 인스타그램에서 알게 된 분이다. 그분은 본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구매한 책들을 찍은 사진과 간단한 책 소개 글, 서평을 올린다. 웬만하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을 팔로우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책과 관련한 서 씨의 글 몇 편 읽고 난 후 이분의 독서 편력에 몹시 흥미를 느꼈고 서 씨의 팔로우 신청을 수락했다. 나는 한 주에 많아야 책을 10권을 사는데, 서 씨의 책 구매량이 나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 씨의 구매한 책 중에 내가 산 책이 한두 권 포함되어 있었다.
서 씨의 책 사랑이 얼마나 심각한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린 6월 4일 토요일에 만나자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 솔직히 서 씨를 만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첫 만남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도 나지 않았다. 우리는 국제도서전이 열리는 코엑스 근처에 만났다. 만나자마자 책과 관련된 대화가 시작되었다.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 본명은 최해성이다. 나는 재미 삼아 서 씨에게 ‘서울의 최해성(서해성)’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반대로 내 별명은 ‘대구의 서한용(대한용)’이 되었다. 서해성, 대한용. 별명 한번 참 찰지구먼. 서해성과 대한용이 장거리 연애, 아니 장거리 우정이 맺어진 지 딱 1년이 지났다. 마침 서해성의 생일이 6월 1일이었다. 그래서 그분의 생일을 축하할 겸 1주년 우정을 기념하고 싶어서 알라딘 기프티콘으로 책 선물을 보냈다. 선물할 책을 고르기 전에 우선 내 책을 먼저 주문했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은 소중하니까.
예전에 책 좋아하는 분들한테 책 한 권을 선물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서해성을 위한 책 선물은 특별하다. 해성이 해성한테 책 선물을 주는 건데 대충 막 고르면 안 되지. 나는 서해성 한 사람을 위한 ‘북 큐레이션’을 하는 마음으로 세 권의 책을 골랐다.
* 이레네 바예호, 이경민 옮김 《갈대 속의 영원: 저항하고 꿈꾸고 연결하는 발명품, 책의 모험》 (반니, 2023)
서해성이 구매한 수많은 책 중에 내가 샀거나 읽은 책은 기억하고 있다. 그분은 《갈대 속의 영원》을 구매했는데, 올해 내가 사서 읽은 책 중에서 ‘최고의 책’이다. 그래서 《갈대 속의 영원》과 비슷한 느낌이 날법한 책을 고르기로 했다. 그리고 나온 지 얼마 안 된 신간 도서는 고르지 않았다. 완독하고 서평으로 주요 내용을 요약한 책을 골랐다. 그래서 책 선물로 고른 책은 다음과 같다.
* 마리엘라 구쪼니, 김한영 옮김 《빈센트가 사랑한 책》 (이유출판, 2020)
애서가 지인에게 책 선물을 줄 때 반드시 고르는 책이 바로 《빈센트가 사랑한 책》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가 반 고흐다(그다음으로 좋아하는 화가는 르네 마그리트다). 사실 반 고흐가 생전에 책을 진심으로 좋아했고, 독서 욕구가 얼마나 컸던 사람인지 아는 이가 드물다. 책과 독서에 대한 열정은 동생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게는 책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열정이 있다. 끊임없이 깨우치고, 배우고 싶은 욕구가 있지. 마치 하루하루 빵을 먹어야만 하는 것과 같아.’ (6쪽)
반 고흐가 생각하는 진정한 예술가의 역할은 ‘진실하고 정직하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진실하고 정직하게 서평을 쓰는 것’이 내가 책을 읽으면서 살아가는 이유다. 《빈센트가 사랑한 책》은 ‘해성이 사랑한 책’이다.
* 제이미 캄플린, 마리아 라나우로 공저, 이연식 옮김 《예술가는 왜 책을 사랑하는가?: 예술에서 일상으로, 그리고 위안이 된 책들》 (시공아트, 2019)
《빈센트가 사랑한 책》과 같이 읽으면 좋은 책이다. 반 고흐와 같이 책을 엄청나게 좋아했던 예술가들은 책 사랑을 숨기지 않았고, 예술 작품으로 표현했다. 서해성이 구매한 책 사진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분이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엔 예술 관련 책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글보다는 도판이 많이 실려 있는 예술 분야의 책 두 권을 선택했다.
* 마틴 푸크너, 최파일 옮김 《글이 만든 세계: 세계사적 텍스트들의 위대한 이야기》 (까치, 2019)
말하기와 쓰기가 하나가 되면 한 편의 텍스트(글), 또는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된다. 더 나아가 책이 읽히는 순간 인간과 세계가 만들어진다. 《글이 만든 세계》는 16편의 유명한 텍스트가 만들어지고 보급되는 과정을 추적하고, 그 텍스트들이 어떻게 세계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이 《갈대 속의 영원》과 잘 어울려서 골랐는데, 서해성이 이미 산 책이었다. 역시 ‘서해성’답다. 두 사람의 독서 편력이 거의 비슷하면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 이럴 줄 알고 앞에 언급한 책 두 권을 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