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한 문학 작품을 디딤돌로 삼아서 철학을 펼친 철학자다. 레비나스의 문학 작품 해석은 작가의 의도를 밝히는 분석과는 사뭇 거리가 멀다. 레비나스는 문학 작품 속 인물들의 목소리에 자신의 철학적 목소리를 덧붙인다. 그래서 레비나스의 책에 언급된 문학 작품의 의미는 변하고 뒤집힌다. 정해진 해석과 교훈에 따라 문학을 흡수하는 독자들은 레비나스의 생각이 뒤섞인 문학 작품을 어려워할 수 있다. 그래서 레비나스의 책을 번역하려면 문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풍부해야 한다. 번역자는 레비나스가 참고한 문학 작품이 무엇인지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레비나스가 어떤 해석을 부여하면서 문학 작품을 언급했는지 정확히 밝히기 어려운 문장이 있다. 레비나스는 작품 제목을 언급하지 않고, 그 작품을 쓴 작가에 대해서 설명할 때도 있다. 결국 번역자는 자신만의 해설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레비나스 읽기 모임 두 번째 도서 (8~10월)]
* 에마뉘엘 레비나스, 김도형 · 문성원 · 손영창 함께 옮김
《전체성과 무한: 외재성에 대한 에세이》 (그린비, 2018년)
* 윌리엄 셰익스피어, 최종철 옮김 《맥베스》 (민음사, 2004년)
《전체성과 무한》에서 레비나스는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비극 《맥베스》를 두 번 언급한다(213쪽, 347쪽). 그는 또 셰익스피어를 언급하는데, 이 문장은 애매모호하다.
* 399쪽
암시로 가득 찬 마녀들의 셰익스피어적 모임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이 있다. 이것은 모든 진지함의 부재인 듯, 말의 모든 가능성의 부재인 듯, 말들의 정숙함 저편에 놓인다. 이 웃음은 ‘양의적 이야기들’의 웃음이다.
번역자는 ‘암시로 가득 찬 마녀들의 셰익스피어적 모임’이라는 표현에 주석을 달았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이경식 옮김 《템페스트》 (문학동네, 2009년)
* 옮긴이 주
셰익스피어가 마법사를 등장인물로 내세우는 희곡으로는 『폭풍』(The Tempest)이 있다.
《폭풍》은 셰익스피어가 쓴 마지막 희곡이며 원래 제목인 ‘템페스트’로 불리기도 한다. 이 희곡에 나오는 마법사는 작품 주인공인 프로스페로를 가리킨다. 그런데 본문에 ‘마녀들’이라는 표현을 썼는데도 번역자는 주석에 ‘마법사’를 언급한다.
마녀들이 나오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맥베스》다. 반란군과의 전쟁을 승리로 끝낸 스코틀랜드 영주 맥베스는 귀환하기 위해 자신의 부관(副官) 뱅코와 함께 황야를 지나간다. 그곳에서 그는 세 명의 마녀를 만난다. 마녀들은 맥베스와 뱅코에게 예언을 들려준다. 맥베스가 스코틀랜드의 왕이 되지만, 뱅코는 왕이 될 수 없고, 그 후손이 왕이 된다는 예언이다. 예언은 미래를 암시하는 말이다. 따라서 ‘암시로 가득 찬 마녀들’은 《템페스트》의 마법사 프로스페로가 아니라 《맥베스》의 세 마녀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