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가는 토요일은 무조건 일찍 일어난다. 그날은 검푸른 빛 아침에 달리는 열차를 만난다. 검푸른 빛 아침 하늘에 슬며시 퍼지는 햇살은 밝지 않다. 여리여리한 햇살은 두 겹으로 된 열차 유리창을 통과하지만, 눈부시지 않다.
[서울 독서 모임 <수레바퀴와 불꽃> 열세 번째 모임(2025년 1월) 선정 도서]
* 정희진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한국 사회 성정치학의 쟁점들》 (교양인, 2023년)
이틀 전 토요일은 독서 모임 <수레바퀴와 불꽃> 모임 날이었다. 올해 첫 독서 모임이다. 모임 선정 도서는 정희진의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이다. 이 모임 장소가 있는 동네는 서울 노원구다. 모임은 오전 10시에 시작된다. 새벽 6시에 서대구역을 지나는 아침 열차를 타야만 모임 장소에 여유롭게 도착할 수 있다. 서울역에서 노원역으로 가는 지하철 4호선을 타면 30분 정도 걸린다.
그런데 작년에 해야 할 건강 검진을 계속 미루었고, 회사는 토요일에 병원에 가보라고 독촉했다. 오전에 건강 검진을 받아야 해서 독서 모임을 불참하기로 정했다. 아침 일찍 병원에 가서 건강 검진을 받았다. 오전 시간대의 열차표 전부 매진되면 서울에 가지 않으려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10시에 서대구역을 지나는 열차 자리 하나를 대기 예약했다. 다행히 자리가 생겼다. 햇살 쨍쨍한 아침에 서울로 가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수레바퀴와 불꽃>은 세 시간 동안 진행된다. 1시에 모임이 끝나면 참석자들과 점심을 먹는다. 모임 뒤풀이라 할 수 있다.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나는 모임 뒤풀이에 합석했다. 혼자 식사하는 일이 주말 일상이 되다시피 해서 여러 사람과 식사하는 일이 드물다. 무엇보다도 그날의 점심 메뉴가 중요했다. 모임 참석자들이 먹으려는 음식은 피자였다.
<수레바퀴와 불꽃>은 처음에 서한용 작가와 김지용 님, 두 분의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김지용 님은 피자를 매우 좋아하는 분이다. 단순히 피자 먹는 일을 좋아하는 분이 아니다. 다양한 형태의 피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며 어떤 재료를 쓰는지 살핀다. 지용 님이 선호하는 피자는 대기업이 만든 피자(프랜차이즈 피자)가 아니다.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피자 전문 가게에 직접 가서 먹는다. 이런 피자는 기업형 피자의 토핑과 다르다. 그리고 만드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지용 님은 정말 피자에 제대로 ‘미친’ 사람이다. 그분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피자 사진이 많이 있다. 그분은 직접 구매한 피자를 먹고 나서 느낀 점을 인스타그램에 글로 남긴다. 피자 맛집을 잘 아는 지용 님이 추천한 피자 가게에 점심을 먹는다고 하니, 안 갈 수가 없었다. 그날 내 머릿속은 책이 아닌 피자 냄새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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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서 작가, 지용 님, 이 세 사람이 점심을 먹으러 간 곳은 ‘지노피자 창동’이라는 가게였다. 가게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도봉구 창동에 있다. 우리가 먹은 피자는 ‘오리지널 디트로이트식 페퍼로니 피자’와 ‘미트볼 피자’였다.
피자 두 판이 나오자마자 지용 님은 피자의 전체 모습이 다 나오도록 사진을 찍었다. 이 가게의 도우는 두껍다. 두께가 얼추 토스트와 비슷하다. 도우의 식감은 ‘겉바촉속’이다. 피자의 겉부분인 크러스트는 바싹하고, 토핑이 올려진 피자의 속살은 촉촉하다. 피자 토핑이 된 미트볼은 피자 가게 사장이 직접 만든 것이다. 수제 미트볼위에 끈적하게 녹은 치즈가 있다.
우리는 피자를 먹으면서 책과 페미니즘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래도 대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피자였다. 세 사람의 입과 눈빛이 피자로 향하자 ‘김지용 교수님의 피자 강의’가 시작되었다.
[절판] 캐럴 헬스토스키, 김지선 옮김, 주영하 감수 《피자의 지구사》 (휴머니스트, 2011년)
김 교수님은 이탈리아 피자와 미국 피자의 차이점을 알려줬다. 그 전에 먼저 김 교수님은 ‘이탈리아 피자’라는 말을 자주 쓰면 다양한 피자를 설명할 수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이탈리아 지방마다 피자를 만드는 방식과 토핑 재료가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전역에서 만들어진 피자는 빈민층들의 주식이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피자는 ‘나폴리 피자’다. 나폴리 피자는 토마토와 치즈가 들어 있는 오늘날의 피자와 다르다. 나폴리 피자가 한참 유행했을 때 이탈리아에 토마토가 들어오지 않았다. 나폴리 빈민들에게 육류는 비싼 재료였다. 나폴리 피자에 먹음직스러운 토핑이 없었다. 둥글납작한 빵에 올려진 것은 마늘과 소금, 라드(lard: 고체 형태로 된 돼지기름)뿐이었다. 그래서 나폴리 피자의 별칭은 ‘흰 피자’였다고 한다. 미국 피자는 ‘미국인들이 만든 피자’를 뜻하지 않는다. 미국 피자를 처음 만든 사람은 미국으로 건너온 이탈리아 이민자들이다. 이들은 뉴욕, 보스턴, 코네티컷에 정착했고, 각 지역에서 나오는 특산물로 피자를 만들었다.
피자 가게에서 했던 우리의 대화는 뜨거웠다. 대화의 열기가 더욱 뜨끈뜨끈해질수록 피자는 천천히 식었다. 하루 지났는데도 내 머릿속에 여전히 따끈따끈한 피자 냄새가 진동했다. 다음날, 책에 미친 나는 도서관에 가서 《피자의 지구사》를 빌렸다. 피자에 미친 김 교수님도 이 책을 가지고 있었다. 이 책은 피자 강의의 교재였다. 교수님이 설명한 내용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해서 강의 후기를 못 쓸 줄 알았다. 강의 교재 덕분에 김 교수님이 설명한 내용을 떠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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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의 역사를 정리한 책을 봐서 그런가?
여전히 피자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다.
지나간 피자는 잊어버리고, 이제 책을 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