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한용 작가가 감사하게도 내가 진행하는 독서 모임을 위한 추천사를 썼다. 이번 달 독서 모임 선정 도서는 내가 정했지만, 이 책의 존재를 처음 알려준 사람은 서한용 작가다. 서 작가의 추천사에 보르헤스(Borges)가 예술을 정의한 말이 나온다. 예술은 불과 수학의 결합이다.’ 





















* 리사 크론, 문지혁 옮김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사람의 뇌가 반응하는 12가지 스토리 법칙》 (웅진지식하우스, 2024)




2주 전에 나는 서 작가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독서 모임 추천사를 써달라고 제안했다. 당시 서 작가는 소설 집필을 위해 창작 방식을 소개한 책을 읽는 중이라고 했는데, 그 책이 바로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였다서 작가는 이 책의 머리말에 언급된 보르헤스의 말을 다시 인용했다.



 독자를 사로잡는 이야기는, 독자의 강력한 기대를 계속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일찍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예술이란 불과 수학의 결합이다라고 말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중에서, 7)



불과 수학은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Tion, Uqbar, Obis Tertius)에 나오는 구절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송병선 옮김 픽션들》 (민음사, 2011)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황병하 옮김 픽션들》 (민음사, 1994)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는 보르헤스의 소설집 픽션들에 수록된 작품이다보르헤스가 만든 가상의 인물과 지명,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책들, 그리고 실존 인물의 이름이 나열되면서 뒤섞인 이야기는 독자에게 혼란을 준다여기에 여러 종류의 철학들도 녹아 들어 있어서 보르헤스의 글을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보르헤스의 글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꿈, 상상력, 백과사전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픽션들은 현재 두 권이다. 처음 나온 지 30년이나 된 보르헤스 전집픽션들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픽션들이 있다. 두 권의 책을 만든 출판사는 같지만, 번역자는 다르다픽션들》의 두 번역자는 불과 수학’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어느 해적판 백과사전에서 존재하지 않는 국가에 대한 피상적인 언질을 발견했었다. 이제 우연은 내게 보다 정확하고 꼼꼼히 읽어야 할 어떤 무엇을 제공하게 된 것이다. 이제 나는 그 알 수 없는 혹성에서의 건축과 놀이기구, 그곳의 신화가 가진 공포와 그곳 언어들의 흔적, 그곳의 황제들과 바다들, 그곳의 광석들과 새들과 고기들, 그곳의 기하학과 불, 그곳의 신학적이고 형이상학적 논쟁들과 함께 그곳의 전 역사를 개괄적으로 다루고 있는 방대한 자료의 일부를 바로 내 손안에 들고 있게 된 것이었다


(황병하 옮김, 27)


 이 년 전 나는 해적판 백과사전에서 존재하지 않는 거짓 국가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발견했다. 이제 우연은 보다 정확하고 보다 공들인 무엇인가를 내게 제시하고 있었다. 이제 나는 알려지지 않은 행성의 전체 역사를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다룬 자료 일부를 손에 넣게 된 것이었다. 거기에는 그 행성의 건축과 카드 패, 소름 끼치는 신화와 그 언어의 속삭임, 그곳의 황제와 바다, 광석과 새와 물고기, 그곳의 수학과 불꽃, 그곳의 신학적이고 형이상학적 논쟁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송병선 옮김, 19)




소설 속 화자인 보르헤스는 기억력이 좋다. 그는 동료 작가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Adolfo Bioy Casares)가 잠깐 언급한 말을 잊지 못한다그 말은 이교도 지도자 우크바르가 한 말인데, 거울과 성교는 사람들의 수를 늘리기 때문에 혐오스럽다는 것이다. 보르헤스는 우크바르의 말의 출처가 궁금해서 백과사전을 살핀다백과사전에 언급된 여러 편의 참고문헌까지 경유한 보르헤스는 틀뢴과 오르비스 테르티우스라는 비밀에 휩싸인 행성과 세계를 만난다.


두 권의 픽션들중에 딱 한 권만 읽으라고 추천하기가 애매하다. 왜냐하면 두 번역본에 있는 역자의 주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보르헤스 전집픽션들의 단점은 가독성이 떨어지는 문장이다. 비록 정확하지 않은 내용이 담긴 주석도 더러 있다. 그 예로, 실제 인물인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의 사망 연도를 물음표로 표시한 역주(18쪽). ‘보르헤스 전집이 출간된 1994년에 카사레스는 살아 있었고, 그는 1999년에 세상을 떠났다. 보르헤스의 창작 의도를 알려주는 역자의 주석은 보르헤스의 소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반면 보르헤스 전집픽션들의 문장은 읽기 수월하지만, ‘보르헤스 전집픽션들과 비교하면 역주의 양이 적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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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2-21 1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고가 많겠구나. 사람들은 많이 나오나? 이런 모임은 흔들리지 않는 꾸준함이 중요한 것 같아. 몇명이 나오든 상관하지 말고 꾸준히 잘 해 봐. 벌써 지원군도 있고. 든든하겠어. ㅎ 멀리서 응원한다!
이책 나도 읽어보고 싶던 책이야.

cyrus 2024-12-22 22:41   좋아요 1 | URL
문학 읽기 모임은 많으면 (저를 포함해서) 5, 6명이 참석하는 소모임이에요. 누님은 오래전부터 저의 서재를 봐서 아시겠지만, 저의 문학적 취향이 독특하잖아요.. ㅎㅎㅎ 모임에 꾸준히 참석하는 분들은 제가 추천한 문학 작품들이 재미없다고 투덜대요. 그런데도 제가 감탄할 정도로 작품 분석을 잘 해요. 문학 모임이 6월부터 시작했는데, 이번 달까지 하면 7개월째 진행했네요. 이 정도면 예상보다 오래 한 겁니다. 저는 이 모임이 길게 가봐야 3개월로 예상했거든요.. ^^;;

감은빛 2024-12-24 1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거리를 극복할 수 있다면 시루스님 모임에 가고 싶네요. 저도 예전부터 책 모임 여러 개를 나가다 말다 했었어요. 제일 오래 나갔던 건 아마 1년 넘게 가기도 했었죠. 요즘은 SF읽기 모임을 시작한 지 세 달 정도 되었는데, 재미있습니다. 참석자들이 모두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연령대가 다양하다는 점이 흥미로운 포인트인 것 같아요. 제일 연장자는 60대의 공장노동자이신데, 매주 주말은 하루종일 도서관에서 보내는 정말 책을 많이 읽고 상식이 풍부한 분이시고, 막내는 30대 후반의 예술가로 정기적인 급여를 받는 노동을 하지 않고도 어떻게든 생겨를 꾸려가면서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훌륭한 활동가입니다. 생물학적으로 유일한 여성이라 대화를 나눌 때, 여성의 시선으로 보려고 하는 흐름을 잘 이끌어 줍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훌륭한 분들인데, 각자 긴 시간 다른 분야에서 사회운동을 펼친 사람들이라, 각자의 경험과 시선이 달라서 더 재미있어요.

cyrus 2024-12-26 06:26   좋아요 0 | URL
연령대와 관심사가 서로 다른 분들이 모여서 즐거운 분위기 속에 독서 모임을 진행한다는 건 축복이에요. 제가 20대 때 참석했던 독서 모임은 감은빛 님이 말씀하신 독서 모임과 거의 비슷한 분위기라서 정말 좋았어요. 그런데 요즘 독서 모임은 과거 분위기만큼 나지 않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