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17일 《페미돌로지》(3부) 함께 읽기, 세 번째 모임 후기
장소: 카페 스몰토크
독서 모임 후기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군요. 글 한 편 쓰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요? 제가 게으른 것도 있지만, 지난달부터 읽기 시작한 《페미돌로지》가 제게는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책이라서 그래요.
* [레드스타킹 8~9월에 읽은 책] 류진희, 허윤, 김주희 외 《페미돌로지: 아이돌+팬덤+산업의 변신》 (빨간소금, 2022)
페미돌로지(Femi-dology)는 페미니즘과 아이돌로지(Idology, 아이돌 연구)를 합친 조어입니다. 페미돌로지의 정의를 쉽게 풀어 쓰면,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아이돌 산업과 팬덤을 분석하는 일입니다. 《페미돌로지》에 총 열두 명의 필자가 쓴 글이 실려 있습니다. BTS를 포함한 아이돌을 주제로 한 글이 많은 편이라서 흥미롭지만, 아이돌 중심의 대중문화의 전반적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면 글이 어려울 수 있어요. 유행의 흐름에 저만치 떨어진 채 사는 제가 《페미돌로지》를 힘겹게 읽는 이유가 이렇습니다.
《페미돌로지》 3부에 배치된 세 편의 글은 아이돌 팬덤의 활동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7장 「“항상 함께할 거예요”의 이면」은 아이돌과 팬의 친밀한 관계가 막대한 수익이 창출되는 아이돌 산업으로 확장되어가는 현상을 분석합니다. 오늘날의 팬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일거수일투족을 볼 수 있는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즐깁니다. 매니지먼트사는 소비자인 팬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콘텐츠와 상품을 기획하고 출시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팬이 자발적으로 만든 콘텐츠(팬픽, 팬아트 등)는 판매할 수 없는 상품이 되고 맙니다. 글쓴이는 이러한 팬의 활동을 ‘무보수 노동 및 소비’라고 말합니다. [주: 사실은...]
8장 「저항하는 팬덤과 소비자-팬덤의 모순적 공존」은 소비 위주로 활동하는 팬들의 행동이 아이돌 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비판적으로 검토합니다. 글쓴이는 아이돌이 크게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음원을 많이 사거나 아이돌 관련 상품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팬덤의 행위가 결국 능력과 경쟁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성공을 부추긴다고 주장합니다. 소비를 일절 하지 않은 팬은 팬덤으로 취급받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어떤 가수를 좋아한다고 말만 해도 그 가수의 팬덤 축에 끼지 못하는 거죠. 최근 들어 데뷔하자마자 실시간 음원 순위나 음악방송 1위에 단기간에 오른 아이돌이 많아졌어요. 반면에 꽤 오랫동안 활동했음에도 1위 한 번 오르지 못한 아이돌도 있어요. 1위 가수가 된다는 것은 상업적으로 성공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매니지먼트사는 자신이 만든 가수를 널리 알리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홍보할 것이고, 팬덤은 가수의 앨범이나 디지털 음원을 소비합니다. 심지어 가수의 방송 출연이 뜸하거나 신곡이 영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팬덤은 매니지먼트사의 운영 방식을 비난합니다. 방송 출연 횟수가 많으면 음악 순위 상위권에 진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쯤 되면 가수와 매니지먼트사를 향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말할 정도로 팬의 영향력이 강해졌습니다.
가수가 조금이라도 논란을 일으킬만한 발언이나 행동을 하면 팬들은 강도 높게 비판합니다. 그리고 사과문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아이돌을 포함한 공인은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리면 자필 사과문을 공개합니다. 9장 「아이돌의 자필 사과문: 소비하는 팬덤, 소진되는 팬심」은 자필 사과문이 유행처럼 돼버린 현상을 분석합니다. 아이돌은 팬들에게 친밀감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팬들이 원하는 모습이나 방송 콘셉트를 유지한 채 생활하기 때문에 감정 노동인 셈이죠. 여기다가 팬들에게 미운털 박히면 분노한 팬심을 달래기 위해 자필 사과문을 씁니다. 이런 행위 또한 감정 노동에 해당합니다. 때론 팬들의 지나친 친밀성은 아이돌 개인의 주체성마저 비난 대상으로 몰아세우게 합니다. 여자 아이돌이 페미니즘 도서를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팬들은 그녀를 페미니스트 또는 남성 혐오자라고 비난했습니다. 어떤 팬은 비난받은 가수의 사진이 있는 굿즈를 훼손한 인증 사진을 올리기도 했어요.
최근 HYBE 공식 유튜브 채널에 걸그룹 르 세라핌의 데뷔 과정이 담긴 다큐멘터리가 공개됐어요. 이 영상에서 매니지먼트사 팀장은 멤버들에게 자기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식단 관리와 다이어트를 하라고 지적했습니다. 계속해서 식단 관리와 다이어트를 병행하고 있는 멤버들은 팀장의 엄한 지적을 받은 게 서러웠던지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요. 문제의 영상이 공개되자 팬들은 아이돌에게 다이어트를 강요하는 매니지먼트사를 비난했습니다. HYBE는 왜 논란이 될 만한 장면을 편집하지 않은 채 그대로 영상을 공개했을까요? 팬들이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아이돌 산업을 비난해도 아이돌 그리고 아이돌이 되려고 하는 연습생들은 지금도 굶주려가면서 다이어트를 하고 있습니다. 팬들에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이 악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니지먼트사 중심의 아이돌 산업에 저항하는 팬덤과 아이돌을 ‘친밀한 상품’으로 소비하는 팬덤이 공존하는 문화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주: 사실은...] 퇴고하면서 삭제한 문장은 이렇다.
‘입덕’을 유발하는 팬픽과 팬아트를 자발적으로 만드는 팬들의 모습을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속담이 있어요.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가져간다. 수고하는 사람은 따로 있고 그 일에 대한 대가는 다른 사람이 받는다는 뜻이죠.
레드스타킹 인스타그램 계정에 등록되는 모임 후기는 레드스타킹 단톡방에 먼저 공개한다. 그곳에서 피드백이 이루어진다. 모임 회원 한 분이 내가 인용한 속담에 있는 ‘되놈’이 인종차별적인 단어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그래서 문제의 속담이 삭제된 것이다. 되놈은 만주 지방에 살았던 여진족 또는 중국인을 낮잡아 부르는 멸칭이다. 씻지 않아서 더러운 중국 한족을 가리켜 ‘되’라고 표현한 고려시대의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