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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괄량이 길들이기 - 전예원세계문학선 310 셰익스피어 전집 10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신정옥 옮김 / 전예원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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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괄량이 아니 '악녀' 길들이기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연극이나 뮤지컬로 자주 공연되는 인기 있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중의 하나이다.  원작 텍스트로 읽혀지기보다는 연극, 뮤지커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대중들에게 널리 소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아동용 도서로 내용이 축약되어 나오기도 하는데 완역본과 내용 구성과 분위기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전예원 판 <말괄량이 길들이기>(이하 <말괄량이>)를 읽기 전에 중, 고등학생 수준의 독자들이 읽을 수 있는 <말괄량이>를 읽어본 적이 있었다.  축약본과 내용의 차이가 있다면 완역본 제1막에서는 크리스토퍼 슬라이라는 땜장이가 등장하는 도입부가 있다는 점, 그리고 작품 제목의 ' 말괄량이 ' 인 카트리나가 아동용과 청소년판 속 모습과는 다르게 무척 험악하고 거친 여성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파두아(책에서는 ' 페두어 ')의 부호 밥티스타('벱티스터')의 큰 딸 카트리나('캐더리너)는 성격이 매우 거칠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땐 고함지르기, 여성의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서슴지 않는다. 말이나 행동이 얌전하다 못해 '악녀' 라고 불릴 정도로 사나운 기질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동생인 비앙카의 두 팔을 포박한채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채찍질을 하기도 한다)

 

 당신의 그 얼굴엔 생채기를 낸 피로 화장시켜 멀건이 상판대기로 만들어 드리리다.  

 - 셰익스피어 <말괄량이 길들이기> 1막 1장 카트리나의 대사, 신정옥 역, 전예원, pp 39 - 

  

이런 사나운 기질 탓에 카트리나를 좋아하는 남자는 없다. 오히려 남자들 사이에서는 기피대상 1호다.

반면에 그녀의 여동생 비앙카("비앵커")는 성격이 거친 언니와는 정반대이다.  순전하고 착한 성격으로 남자들이 그녀와 결혼하려고 노릴 정도로 인기가 많다.  그러나 두 딸의 아버지 밥티스타는 장녀 카트리나가 결혼하기 전까지 비앙카의 결혼을 성사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비앙카의 구혼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평소에 비앙카와 구혼하기를 바랐던 그레미오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카트리나의 결혼을 어떻게든 성사시키려는 계획을 꾸민다.   하지만 루첸티오라는 또 한 명의 젋은이가 비앙카에 첫 눈에 반하게 되면서 비앙카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계략은 극이 전개될수록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밥티스타가 비앙카에게 가정교사가 필요하다고 말했을 때, 비앙카의 구혼자들은 가정교사로 변장하여 비앙카에게 구애를 펼친다.  

그러는 와중에 카트리나에게 임자가 나타난다. 베로나의 신사 페트루치오는 카트리나에게 구혼해 결혼에 골인한다.  페트루치오는 카트리나에 대한 연정보다는 밥티스타의 재산을 탐나 말괄량이 카트리나와 결혼을 하게 되지만 그녀보다 더 거친 언동과 가혹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그녀를 길들이기 시작한다.    

페트루치오가 카트리나를 길들이기 위한 방법은 밥도 주지 않고 잠도 재우지 않는 것이다.   결국에는 페트루치오의 말괄량이 길들이기 작전은 성공하게 되고 카트리나는 예전의 난폭한 성격을 버리게 되고 남편에게 순종적인 아내로 변하게 된다. 이로써 사랑을 둘러싼 젊은 남녀의 코믹한 소동을 그린 희극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독을 독으로 다스리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에는 비앙카를 차지하기 위한 남자 인물들 간의 대립도 홍미진진하지만 역시나  페트루치오와 카트리나 간의 대립이 흥미롭다. 

특히 말괄량이의 난폭한 성질을 억제시켜서 길들임으로써 점차적으로 사랑을 싹틔워가는 페트루치오의 계획은 이 작품에서 가장 재미있는 내용이다.   그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녀의 못된 성격에 대하여 그것과 같은 수단으로 대응하고 있다.  

카트리나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페트루치오는  하인들 앞에서 난폭하게 행동을 한다. 자신의 비위을 맞추지 않는다고 욕지거리를 퍼붓고 심지어 폭행을 하기도 한다.  페트루치오의 난폭한 행동을 지켜보던 카트리나는 그의 화를 달래기 시작한다.  

하지만 페트루치오는 실제로 하인들에게 못 되게 굴 정도로 악한 성격을 가진 인물이 아니다.  그는 카트리나처럼 똑같이 성질이 급하고 화를 잘 내는 까칠남(?)으로 연극한 것이다.  

주인 페트루치오의 행동을 지켜본 두 하인의 대사를 통해서 그가 카트리나를 길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도 카트리나와 똑같은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성격을 카트리나를 동일시하게 만든다.  

 

나다니엘 : 피터, 이전에도 그러셨나?  

  피이터 : 독을 독으로 다스리는 셈이지.   

  - 같은 책, 4막 1장 pp 106 -  

  

이런 페트루치오의 모습에 카트리나는 자신이 그동안 행했던 모습들이 선연히 떠오른 것일까?   자신도 모르게 치밀하게 짜여진 페트루치오의 연극에 빠져들게 된다.  

   

  

  남편은 왕,,?   

결국 카트리나는 페트루치오의 전략 덕분에 사나운 성격을 버리게 되었지만 남편에게 순종적인 여자로 180도 완전히 변하게 된다.    

 

남편은 우리들의 주인이요 생명이자 보호자며 머리요 군주이십니다. 우리들을 걱정해주며 우리들이 편안히 생활할 수 있도록 바다에서 육지에서 힘든 일을 도맡아 하시잖아요.   

 (중략) 

그러면서도 우리들에게 무엇을 바라던가요?  사랑과 상냠함과 순종을 바랄 뿐이지요.  그토록 큰 빚에 비하면 우리의 지불은 너무나 미미한 거예요.  그러니 아내가 고집 부리고 짜증내고 퉁명스럽고 깔쭉대면서 남편의 착한 심정에 순종치 않는다면 어진 군왕에 반역하는 간악한 신화와 같을 지니 배은망덕한 배신자가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전 여자의 좁은 소견머리가 부끄럽기 그지없답니다.   평화를 위해서 무릎을 꿇어야 할 경우에 되려 전쟁을 선포한다든가, 봉사 사랑 순종을 바쳐야 할 경우에 우위와 지배를 요구하니 말입니다.  

 - 같은 책, 5막 2장 pp 145 -

  

우리의 말괄량이 카트리나, 변해도 너무 변해버리고 만다.   페니미즘 문학비평가들이 이 작품을 읽었더라면 무조건 남성차별적이라고 맹비난, 아니 맹렬한 비평을 퍼붓고도 남을 문장이다. 

조선 시대 때 부부 사이 간에 지켜야 했던 여필종부(女必從夫)로 상징되는 유교적 윤리관이 여전히 남아 있는 세상에 살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희극이 해피엔딩으로 끝났어도 카트리나의 기나긴 설교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대사 속에는 남성우월적이면서도 남성 앞에서의 여성의 존재를 비하시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조선 시대의 사대부들처럼 여필종부라는 도덕관념에 사로잡힌 16세기 엘리자베스 시대의 남성 귀족에게는 카트리나의 대사에 박수를 치고 싶을 정도로 통쾌감을 느꼈을 것이지만 오늘날 점점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무조건 남편이 왕이라는 부부 간의 미덕은 구시대적 유물로 전락되었다.   

 

 

  진정한 승리자는 누구일까?

하지만 이 문장만을 가지고 셰익스피어가 남성우월주의자이며 여성차별자라고 단언하기에는 섣부르다.    오늘날에는 권위적인 남성이 강조되는 가치관의 중요성은 남녀평등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면서 퇴색되었지만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그 당시 16세기 영국 남성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문헌이다.   16세기 영국에서는 훗날 셰익스피어의 재능을 인정해준 엘리자베스 1세가 등장하여 여왕이 등장하가도 하지만 여전히 여성이 남성들처럼 동등하게 사회적 지위를 얻게 되고 상승할 수 있는 여건은 극히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작품 결말을 놓고보면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어떻게보면 카트리나가 페트루치오에 굴복당하는 모습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페트루치오는 이제 카트리나와 정식으로 부부로 맺어지게 된 이상 책임감에 억눌린 처량한 남편으로 전락하게 된다.  카트리나가 한발짝 물러나 고개를 숙임으로써 오히려 그녀는 앞으로 가만히 앉아 페트루치오를 조종하는 여자로서 역으로 볼 수 있다.   

결말 이후에 대한 지극히 주인적인 상상이지만 카트리나가 일부러 순전한 성격으로 변한 척하는 연극을 한거 아닌가 생각도 해보게 된다.  결국에는 뛰는 페트루치오 위에 날아다니는 카트리나인 것이다.   부부가 된 이후부터 의도적으로 숨겨진 그녀의 말괄량이 성격이 나오게 된다면...   굳이 안 봐도 뻔한 비디오다.  

카트리나가 이전과 다른 제대로 된 말괄량이로 돌아온다면 과연 페르루치오는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 말괄량이 길들이기 전략을 내세울지 궁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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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11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국 로맨스 소설이 말이죠
(둘 다 요즘 쓰여진거지만) 현대물하고 중세물하고 여성의 역할이나 성격이 확연히 달라요.
중세물은 보통 드센 여자가 남자에게 어느 정도 적응하면서 끝나구요
현대물은 약한 여자가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끝난답니다.

잼나요, 관점이란게. ^^
글구 로맨스 물을 보면, 여자의 소망도 나타나죠.
자유롭고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힘들 때는 든든한 보호막을 원하는. 남자도 그럴까요?


cyrus 2011-07-11 19:04   좋아요 0 | URL
힘들 때 든든한 동반자가 필요하는 남자도 있을거에요,
제가 그런 편이거든요,, ^^;;
그렇다고 든든하다고해서 엄마처럼 매달리는 마마보이는 오바라고 생각해요.

꽃도둑 2011-07-11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량광이 길들이기 아주 오래전에 영화로 봤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크크 카트리나에게 동종요법이 먹혀들었군요.,..
ㅎㅎㅎ 근데 관계가 너무 복잡해요..
반면에 그녀의 여동생 비앙카("비앵커")는 성격이 거친 누나와는 정반대이다.(맨인용문 밑)
누나? 에잉~~ 읽다가 한참 웃었습니다. ,,^^

cyrus 2011-07-11 19:06   좋아요 0 | URL
저 같은 경우에도 셰익스피어의 희극과 비극을 처음 읽게 되면
등장인물의 관계도를 이해 못해요. 읽다가 중간에 책 앞장에 있는
인물 소개도를 꼭 보곤해요, 그러다가 두번, 세번 읽게 되면
어느 정도 인물의 이해관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정확하게 지적해주셨네요. 가끔 여성 인물에 대한 소개를 적을 때
그런 실수를 하곤해요. 바로 고칠께요 ㅎㅎ
 
사랑에 관하여 -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과 대표 단편들 펭귄클래식 70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안지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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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프트 아이스크림 ' 체호프의 단편소설  

 

과장된 말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안톤 체호프의 대표 단편소설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1899년 작)이 수록되어 있는 그의 단편선집인 <사랑에 관하여>을 두 달 사이에 스무번 정도 읽었다.    

한 번 읽었던 책을 다시 읽으려면 두 세 달 뒤에 읽는 나의 평소 독서 습관을 생각하면 두 달 동안에 수십번 반복해서 읽은 책은 아마 이 책, <사랑에 관하여>일 것이다.    

 

사실 이 책을 반복해서 읽은 특별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이 책이 독서모임 선정도서였는데 아직까지 리뷰를 쓰지 않아서 반복해서 읽었던 것이고, 또 하나의 이유는 체호프의 단편소설이 정말 좋았기 때문이다.

사실 집에 민음사에서 나온 체호프 단편소설선집이 있다보니 <사랑에 관하여>가 독서모임 선정도서가 되었을 때에는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밀린 리뷰 한 편 써내기 위해서 시험공부하다가 쉴 때 읽게 되었고, 결국에는 이 책을 수십 번 읽게 되었는데 나도 모르게 체호프의 단편소설에 푹 빠지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별다른 반응을 느끼지 못했던 타자나 대상을 자주 보게 되면 익숙해지거나 또는 호감을 가지게 되듯이 체호프를 읽는 독서가 그런 경우였다.  

체호프의 단편소설의 내용은 다채롭다. 슬프거나 혹은 감동적이거나 또는 해학적인 유머가 있는 내용도 있다.  그리고 어떤 내용이든지 간에 체호프의 단편소설 한 편을 읽고나면 감정의 여운이 감돈다.  그리고 또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생긴다.

굳이 외람된 비유를 곁들인 비교를 하자면 도스또예프스끼의 단편을 입 안에 쓴 맛이 진하게 감도는 블랙커피라면 체호프의 단편은 부드럽고 달콤한 소프트 아이스크림 정도.  

먹어도 또 먹고 싶어지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의 맛처럼 체호프의 소설도 읽어도 또 읽어보고 싶은 매력이 있다.    


 

    

 

  

  체호프의 대표적인 단편소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그 중에 제일 많이 읽었던 단편소설은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다.  

 

중년의 은행원인 드미트리 드미트리치 구로프와 ' 개를 데리고 다니는 ' 얄타의 여인 안나 세르게예브나와의 러브 스토리는 어떻게 보면 불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각자 가정을 가지고 있는 처지인데다가 드미트리는 아내에게, 안나는 남편에게 전혀 애정을 느끼지 못하는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소설 속 남녀 주인공은 배우자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는 셈인 것이다.    

두 연인은 서로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순순한 감정의 사랑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불안과 죄책감 때문에 사랑의 감정을 잊고 각자 생활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각자의 생활로 돌아온 뒤에도 드미트리와 안나는 서로를 잊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드미트리가 직접 안나를 찾아가 재회하게 되면서 둘 사이의 사랑의 진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은밀한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또는 일상에 벗어난 외도의 사랑을 포기하고 가정을 지킬 것인가라는 현실적인 고뇌를 동반한다. 망설임 속에 선택의 기로에 선 드미트리와 안나는 정신적인 고민을 빠지게 되지만 현실의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는 희망적인 인생이 시작될 것이라는 암시의 뉘앙스를 남긴 채 소설은 끝을 맺는다. 

 
 

  

  

 


  ' 호모 에로스(Homo Eros) ' 드미트리

  

개인적으로는 불륜이나 외도, 바람 피우는 것에 대해서는 반감적인 성향을 가졌는데 러시아 문학의 거장다운 체호프의 필력에 홀렸던 것이었을까?  <여인>에 나오는 드미트리와 안나의 사랑에 대해서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비록 주위 시람들이 ' 외도, 불륜 ' 이라고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랑이었지만 이들의 사랑은 지나치게 본능에 치우쳐 있지 않았다.

물론 체호프가 일탈적 사랑을 미화적으로 표현한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 소설을 중립적으로 읽게 된다면 ' 도덕주의자 '  레프 톨스토이가 이 작품에 대해서 심한 분노와 불쾌감을 느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륜, 외도를 극도로 혐오한다고해서 이 소설 한 편 가지고 톨스토이처럼 크게 분노하고 문학성을 폄하한다면 그것은 ' 내가 하면 사랑, 남이 하면 불륜 ' 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하나의 현상에 대해서 주관적이면서 단면적인 생각을 가진 채 비난하는 것과 비슷하다.  

남자든 여자든 간에 본능에 가까운 사랑이라는 감정을 충분히 조절하는 것도 쉽지 않으며 사랑의 감정에 충실하고 싶은 것이 ' 호모 에로스(Homo Eros) ' 인간이다.    

 

특히 드미트리는 전형적인 호모 에로스적 캐릭터로 구현되고 있다. 

그는 여자들 사이에 있을 때는 무슨 말을 해야하며 무슨 행동을 해야하는지 알고 있을 정도로 이성을 유혹하는데 연애 고수(?)로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안나를 처음 보는 순간 안나의 첫인상만으로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 단번에 파악하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짧은 표현의 묘사였지만 드미트리가 안나와 대면하기 위해서 그녀의 애완견에 대한 관심으로 접근하는 그의 유혹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과연 이들의 사랑은 ' 최고의 사랑 ' 될 수 있을까?  


이 소설이 발표 당시 독자들 사이에서는 큰 호응을 얻었다던데 특히 여성 독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소설 속 안나처럼 얄타의 해변에는 하얀 개를 데리고 돌아다니는 여성이 증가했으며 이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여성 독자들은 체호프에게 후속편을 써달라고 요쳥도 할 정도란다.    

 

19세기 말 러시아 여인들은 소설 속 남자 주인공 드미트리를 열광적으로 호응했을지도 모른다. 올해 초에 인기리에 종영되었던 <시크릿가든>의 ' 주연앓이 ' 와 역시 최근에 많은 호응 속에 종영되었던 <최고의 사랑>의 독고진에 푹 빠진 여성 시청자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내가 드미트리와 안나와의 사랑에 대해서 비난하고 싶은 감정은 없지만 과연 이들의 사랑이 꼭 이루어져야 할 운명적이고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드미트리의 이중생활은 외도와 이성의 바람기를 허용하지 않는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현실적으로 실현하기에는 불가능하며 실제적으로 평온한 가정을 한순간에 파탄날 수 있는 위험한 삶의 선택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의 선택을 쉽게 수긍하는 독자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만남이 운명이라 믿었다. 그래서 도대체 왜 그가 결혼을 하고 그녀가 시집을 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새장에 갇혀 살게 된 두 마리의 암수 철새 같았다.  

- 안톤 체호프『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중에서, 같은 책 pp 228~229 -

 

드미트리와 안나는 자신들이 처한 가정생활을 새장에 갇힌 새라고 비유를 하고 있는데 이 두 연인은 자신들의 사랑이 곧 또 다른 새장에 갇히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특히 바람기 있는 드미트리는 자신의 삶에 새롭고 아름다운 인생이 시작될 것이라는 사랑의 ' 희망 ' 에만 사로잡혀 있다보니 정작 마주하게 될 사랑의 진짜 ' 현실 ' 을 간과하고 있다.  

   

만약에 드미트리가 아내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안나와 재혼을 한다고 상상해보자. 

 

남성 기혼자들 사이에서는 우스갯소리로 ' 결혼은 지옥이다 ' 라는 말이 떠돌던데 드미트리는 새장도 아닌 ' 지옥 ' 이라는 결혼 생활을 견딜 수, 아니 그 때의 감정처럼 행복하게 유지할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결혼을 하고나면 예전의 연애를 했던 사랑의 감정이 쉽게 변하며 끝까지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만약에 체호프가 이 소설의 후속편을 쓰게 된다면 어떤 내용이 전개될까?   

여성 독자들의 호흥에 못 이겨 두 사람의 사랑이 이어지는 전개로 썼을테지만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집필하기 전 13년 전에 체호프는 『진창』(1886년 작) 을 통해서 남성들의 은밀하고 저속한 욕망을 날카롭게 묘사했다.  (이 단편소설 역시 <사랑에 대하여>에 수록되어 있는데 꼭 읽어보시라.  특히 남성 독자들은!) 

 

마음에 드는 이성이라면 얼마든지 유혹하고 싶은 남성이라는 종족을 제대로 알고 있는 체호프라면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의 후속작을 시간과 현실에 따라 쉽게 변하는 남녀 간의 사랑을 특유의 필체와 탁월한 표현력으로 실감나게 묘사했을 것이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감명깊게 읽은 여성 독자들에게는 지극히 현실적인 후속작을 생각하기도 싫은 ' 최악의 사랑 ' 으로 읽혀지게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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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6-25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호프의 단편은 저도 읽었는데 말을 하다가 만듯한 느낌, 쓰다 만 듯한 느낌이 항상 들더라구요. ^^ 저는 스무 번씩은 읽지 않아서 그런지도 몰라도 말이죠. 여전히 무식한 독서력에 놀라고 있습니다. 세상에 스무 번씩 읽으시다니...
체호프는 하루키가 언급해서 다시 한 번 관심을 가지게 된 작가이기도 합니다. 단편에 있어서는 고골과 체호프가 러시아의 쌍벽이라고 들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어요.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에 전염돼 있는 저는 그래서 그런지 체호프의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약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지금 여기는 무진장 비 오는데 계신 곳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시험과 더불어 리뷰, 그리고 독서모임 완전 부러운 거 있죠. 열심히 투쟁하시는 모습이 전 정말 부러워요.ㅋ
그리고 제가 일빠에요. 하하하 신난당!!

cyrus 2011-06-26 12:20   좋아요 0 | URL
어떻게 보면 체호프의 단편이 다른 러시아 작가의 단편보다 가볍게 읽혀지는
그런 느낌이 있어요. 그리고 러시아 작가 중에서 단편소설을 제일 많이
썼기도 하구요. 저도 체호프를 읽기 전에 도스또예프스끼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체호프가 좋은거 같아요. ^^

어제 독서모임에 갔었는데 비가 많이 내리더군요, 지금 대구도 비 내리고
있어요. 비가 많이 와서 집에만 있으니 답답하네요 ^^;;

saint236 2011-06-25 0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소프트 아이스크림이라...왠지 어울리는데요. 그렇지만 단지 소프트하지만은 않죠...^^

cyrus 2011-06-26 12:20   좋아요 0 | URL
그렇죠. 어떤 소설은 좀 비극적이고 슬픈 내용도 있으니까요. ^^

stella.K 2011-06-25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험은 끝났나요?
리뷰가 참 굿!입니다.^^

cyrus 2011-06-26 12:21   좋아요 0 | URL
네, 시험 끝나고 방학이에요. 이제 성적표만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잘 나올거라고 큰 기대를 하지는 않지만요 ㅎㅎ

2011-06-25 2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26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26 1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26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26 15: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6-26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 읽었을 때 얄타가 국사시간에 카이로 회담, 얄타 회담, 포츠담 회담(이렇게 섞어놓고 그 순서대로 나열한 것 고르는 문제를 냈죠)에 나오는 그 얄타인가 알아보니 맞더군요.휴양지 얄타...그 부근에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휴양지 소치가 있고 그러더라고요.이런 휴양지에 멋진 여자가 멋진 개나 고양이를 안고 돌아다니면 왠지 가서 말을 붙여보고 싶어요.

cyrus 2011-06-27 01:43   좋아요 0 | URL
생뚱맞은 이야기이지만 얄타 회담의 결과에 의해서 한반도가 미소 분할
점령으로 나누어진 원인이 되기도 했죠.
그리고 휴양지 얄타가 작품 속의 얕타 맞습니다. 저는 이 지명을
얄타 회담으로만 들어봤는데,, 이 곳 역시 세졔적인 휴양지였다던데
체호프의 단편을 읽고나니 한 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

노이에자이트 2011-06-27 15:56   좋아요 0 | URL
아...요즘도 중고교에선 얄타에서 미,소가 한반도 분단을 밀약했다는 설을 가르치는군요.역시 이승만 대통령의 주장이 여전히 힘을 가지고 있네요.학계에선 이미 오래전에 잘못된 학설로 판명났는데...

그리고 저도 작품 속 얄타가 얄타회담에 나오는 그 얄타라고 썼습니다만...

cyrus 2011-06-27 23:1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는 최근에 어느 교수님으로부터 얼핏 들어서 알게 된
내용인데 한국 현대사에 대해서 정말 제대로 아는게 중요한거 같아요.
제가 알고 있던 내용이 이승만 대통령의 주장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혹시 기회가 된다면 얄타회담에 관한 글을 써주시면 안되나요?
갑자기 노자님 댓글을 보니 얄타회담에 대해서 알고 싶어지네요 ^^

노이에자이트 2011-06-27 23:43   좋아요 0 | URL
제가 쓰는 것보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책을 알려드리죠.<해방전후사>제1권의 김학준 논문, <분단전후의 현대사>(일월서각)의 조순승,브루스 커밍스,이리예 아키라,이용희 논문, 이 책 뒤 부록의 38선을 둘러싼 논쟁문을 읽어보세요.이용희가 얄타밀약설에 가깝고 나머지는 얄타밀약설을 부정합니다.이용희 논문은 꽤 어려우나 학자들의 필독서이니 꾹 참고 읽어야죠.이 논문들은 카이로,테헤란,얄타,포츠담회담을 모두 다루고 있습니다.루스벨트는 얄타 회담 끝나고 두 달 후 사망하고 포츠담 회담 때는 트루먼이 나옵니다.

마녀고양이 2011-06-27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무번이나 읽으셨단 말인가요? 와와....
시루스님이 더욱 멋져보이는 이 순간.

새장 비유 아주 좋은데요? 사람이란 이 새장에서 저 새장으로 건너뛰는 존재인지도.
다른 새장의 색깔이 더 멋져보이나봐요, 다른 새장의 물은 더 달콤해보이고. ^^
음, 결혼은 새장이 맞긴 하지만, 가끔 완전한 자유보다 어설픈 새장이 훨씬
마음의 위안이 되기도 한답니다. 자자, 연애를 하세요, 시루스님~

cyrus 2011-06-27 23:16   좋아요 0 | URL
간혹 체호프의 단편에는 주옥 같은 문장이 많아요.
어설픈 새장이라,, 맞아요. 연애를 해야되요, 저는 새장에 갇혀도
좋으니 좋은 사람 만났으면 좋겠어요 ㅠ_ㅠ

blanca 2011-06-27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큼한 리뷰예요. 저도 저 단편을 읽었는데 체호프의 단편들은 정말 소프트 아이스크림 같다는 절묘한 비유가 맞는 것 같아요. 단편이 재미있기 힘든데 유일하게 단편이 재미있었던 작가이기도 하구요. 톨스토이라면 기겁했을 만해요^^

cyrus 2011-06-27 23:19   좋아요 0 | URL
체호프의 희곡도 읽어본 적이 있었는데 단편 못지않게 재미있고
인상 깊었던 내용이 있었어요. <벚꽃 동산>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제인 에어 세트 - 전3권 펭귄클래식
샬럿 브론테 지음, 류경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1001-101] 제인 에어

 

  

  여성들의 필독 도서, <제인 에어>

모 출판사에서 출간된 <제인 에어> 뒷표지를 보게 되면 ' 딸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싶은 일본의 부모들이 선물하는 책 1위 ' 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저 일본인들에게만 제인 에어의 매력에 사로잡힌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제인 에어>는 항상 ' 청소년 필독 독서 ' 라는 거룩한 타이틀의 목록 속에서 빠지지 않았다. 사실 ' 청소년 ' 이라기보다는 순수한 사랑을 꿈꾸었던 ' 청소녀 ' 들이 축약본으로나마 읽었을 것이다.  셜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는 지금으로부터 160여 년 전에 쓰여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된 횟수도 자그마치 총 22회에 달할 정도로 현재까지도 제인 오스틴의 소설과 함께 로맨스 소설의 고전으로 불리우며 미래를 꿈꾸는 젋은 여성들의 위한 도서로 손꼽히고 있는 것이다. 

<제인 에어>의 줄거리 전개는 부모를 잃고 새엄마와 이복언니의 구박을 받던 소녀가 왕자님을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는 신데렐라 이야기식과 유사하다. 소설 제목의 동명 여주인공인 제인 에어는 일찍 부모님을 잃고 자신을 학대하는 숙모 밑에서 자라면서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귀족 로체스터를 만나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인데 설정만 놓고 보면 오늘날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도 볼 수 있는 신데렐라식 스토리의 전형이다.   

하지만 극적인 해피엔딩을 위해서 말도 안 되는 설정들을 집어넣는다거나 어떻게든 결말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 과도하게 줄거리 전개를 생략해버리는 요즘 드라마와는 다르게 <제인 에어>에는 여주인공이 당당히 사회의 역경을 뛰어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행로, 그리고 여주인공의 다양한 심리적 변화들을 볼 수 있는데 독자 입장에서는 여성의 지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보수적인 사회 속에서 당당함과 꿋꿋함을 드러내는 여주인공의 모습을 반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귀족과 가정교사라는 신분의 차이에 불구하고 제인 에어는 사랑 앞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 제인 에어의 모습은 남성이 만들어 낸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억압에 시달려야했던 소설이 출간되었던 그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들에게는 쉽게 공감하고 동경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과연 우리는 <제인 에어>를 제대로 읽었을까?

하지만 어렸을 때 <제인 에어>를 어린이용 축약본으로 읽었던 여성들이 수십년이 지난 오늘날, 원전에 충실한 번역본으로 나온 <제인 에어>를 읽었다면 어렸을 때의 감동과 낭만이 또 다시 재현될 수 있었을까?   단순히 로맨스적인 요소가 가미된 여주인공의 극적인 성공 스토리라는 이유만으로 청소년 필독 도서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인식하고 있다거나 혹은 아직까지도 <제인 에어>를 그저 그런 여주인공의 성공 스토리를 그린 순수 로맨스 소설 또는 어린이용 동화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제인 에어>의 문학적 가치를 자칫 소홀히 할 우려가 있다. 아니, 우리는 <제인 에어>를 제대로 읽지 않았을 수도 있다.

  

 

  <제인 에어> 속에 숨겨진 다양한 문학적 메타포

만약에 누가 나에게 <제인 에어>라는 책이 어떠냐고 물어보게 된다면 불행한 인생을 살았던 여주인공 제인 에어가 사회의 역경을 헤쳐나가는 신데렐라식 스토리의 소설이라고 대답하지 않겠다. <제인 에어>에는 단순히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라고 말하고 싶다.  

<제인 에어>라는 소설에 <제인 에어>만 있는 것이 아니라니,,, ?  아직 <제인 에어>를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물론, <제인 에어>를 읽어본 사람들도 이런 애매모호한 간략평을 쉽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제인 에어> 속에 등장하고 있는 인물들의 대사나 여주인공 제인 에어가 자신의 인생을 고백하는 형식에서 나오게 되는 상황 묘사와 감정 전달의 내용에는 수많은 문학 작품들의 텍스트에서도 볼 수 있다.  펭귄클래식에서 나온 <제인 에어> 판본을 보게 되면 수많은 주해를 달고 있는데 주해를 보게 되면 샬롯 브론테가 다양한 독서 경험을 있다는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맥베스><오셀로>존 버니언의 <천로역정>, 밀턴의 <실낙원>, 조지 바이런의 시 등 다양한 문학작품 속 문장 문학뿐만 아니라 <성서> 속 구절도 많이 인용되고 있다.   

여주인공 제인 에어가 마주하게 될 상황 전개라는 원관념은 독자들 앞에서 자연스럽게 숨김으로써 다른 문학작품에서 인용된 문장, 즉 보조관념만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형식의 문장을 사용하여 소설 전개에 대한 암시적 은유을 이루고 있다.

  

 

  샬롯 브론테의 분신, 제인 에어     

<제인 에어>가 오늘날에도 읽어야 하는 고전이라고 불리게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사회 앞에서도 능동적으로 존재하는 당당한 여성상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수백년 전 남성들이 지배하고 있었던 영국 빅토리아 사회에서 제인 에어의 등장은 보수주의자 입장에서는 썩 반갑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여성이 소설을 쓴다는 것은 그 당시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파격적인 행위였다.  그래서 샬롯 브론테는 ' 커러 벨 ' 이라는 남성 필명으로 <제인 에어>를 출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작가인 샬롯 브론테가 자신 인생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발표한 이 소설의 성공을 바랬었는지 모르겠지만(원래 브론테가 처음 쓴 소설이 <교수>(배미영 역, 열린책들, 2009)이다. 이 소설은 수많은 출판사로부터 거절을 당할 정도로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뻔하다가 그녀가 죽은 후에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소설이 출간되자마자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게 되었다.  

<제인 에어>가 의외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사회적 억압 속에 억눌려 남자들을 위한 수동적인 존재였던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 독자들에게 공감을 주었을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표출할 수 없었던 사회적 신분의 상승에 대한 욕구를 제인 에어라는 가정교사의 이야기를 통해서 충족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제인 에어가 쓴 자서전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작가인 샬롯 브론테 역시 엄격하고 보수적인 시대 속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가난한 생활을 맞아야하는 사회적 불만에 절망했을 것이며 동시에 절망의 해소를 소설 창작으로 승화시켰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가난이란 어른들에겐 달갑지 않은 일로 여겨진다. 아이들에겐 더 그렇다. 아이들은 열심히 일하는데도 맞이하게 되는 고상한 가난 같은 건 모른다. 아이들에게 있어 가난이란 그저 누더기 옷과 부족한 음식, 불 꺼진 난로 연료관, 거친 행동거지, 품위 없는 언행 같은 것들과 관련된 단어로 여겨질 뿐이다. 내게 있어서도 가난은 낙오란 말과 동의어였다.  

- 샬롯 브론테 <제인 에어 1> 류경희 역, 펭귄클래식코리아,  p 81 -   

 

재미있게도 제인 에어의 인생은 샬롯 브론테의 인생과 유사하다. 제인 에어가 존 리드 부인의 구박을 피하기 위해서 로우드 기숙학교에 입학했던 것처럼 샬럿 브론테도 실제로 어렸을 때 기숙학교에 경험한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제인 에어처럼 가정교사로 일한 전력이 있기도 하다.  ' 여성 ' 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사회적 대우를 받았던 그녀의 경험이 제인 에어라는 자신과 유사한 가공적 분신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와 원작 사이 

 

인간이란 평온한 삶에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건 헛된 일이다. 인간은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인간은 그런 활동을 찾을 수 없으면 만들어낸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 운명명보다도 더 정적인 운명에 처해지고 있지만,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에 대해 무언의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중략)

대체로 여성들은 지극히 온건한 심성의 소유자들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여성들도 남성들이 느끼는 만큼의 감정을 지닌 사람들이다. 여성들도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 샬롯 브론테 <제인 에어 1> p 222 -

 

<제인 에어>가 고전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은 거대한 사회의 장벽을 넘어 삶의 주체와 열정을 가지고 있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분명 문학사적 관점에서는 대단한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제인 에어야말로 알파걸(Alpha Girl)의 원조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여성의 주제적 지위와 능력이 강조되는 사회의 시류 속에서 개봉된 캐리 후쿠나가 감독의 <제인 에어>는 국내 여성 관객들의 기대감을 고조시키기에 충분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영화가 원작에 충실히하였다고는 하지만 이번에 나온 캐리 후쿠나가 감독의 <제인 에어>는 원작소설과는 살짝 다르다고 한다. (영화 내용 스포과 관련이 있기에 이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제인 에어>에 대한 어느 영화평에 의하면 방대함을 살리는 대신 주체적으로 사랑을 선택하는 여인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하는데 사회적 관습에 대항하여 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살고자 했던 주인공의 드라마틱한 인생유전을 통해서 여성 관객들에게 여주인공의 해피엔딩의 감동을 극대화하여 전달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이미지가 강한 나머지 원작이 그저 멜로가 가미된 여주인공의 신데렐라형 스토리의 소설로만 인식된다면 <제인 에어>가 왜 고전이라고 불리우는지에 대해서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독서모임을 통해서 원전으로 번역된 소설을 처음 읽게 되었는데 다양한 문학작품을 인용한 샬롯 브론테의 창작 능력과 섬세하게 묘사된 제인 에어의 심리묘사가 이 소설의 압권이라고 생각된다.  안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들, 책은 잘 안 읽는 반면에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잘 보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데 리메이크된 영화 혹은 어렸을 때 읽은 축약본에 대한 독서의 기억 때문에 정작 원작의 문학적 진가가 묻히는거 아닌지, 그리고 ' 제인 에어 ' 라는 자신의 분신을 창조한 샬롯 브론테라는 원작자의 이름이 잊혀지는거 아닌지 쓸데없는 기우(杞憂)를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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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5-24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월 초에 영화를 보고 원작을 다시 보는데 민음사 번역된 문장이 좀 별로라 호감도가 떨어져 1권 중간쯤 보다가 덮있어요.ㅜㅜ
펭귄 클래식으로 보면 괜찮을까요?^^

cyrus 2011-05-25 10:51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은 영화를 먼저 보셨군요, 저도 원작을 먼저 읽고나니 최근에 개봉된
영화가 무척 보고싶더라구요.

저는 민음사에서 나온 거 조금 읽어봤는데 펭귄클래식에서 나온 것이라는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이 판본이 좋다고 말할 능력이
없어서 민음사가 좋다, 펭귄클래식이 좋다라고 말 할 수 없네요 ^^;;

그리고 펭귄클래식 판본을 읽게 되면 영화를 먼저 본 사람들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가 있을겁니다. 원작에는 1840년대 영국 특유의 음습한
배경을 묘사하는 장면이 많은데다가 이야기 전개에 불필요한 장면도
많거든요. 아무래도는 영화는 원작에 충실하되 관객들에게 이야기의
중점을 최대한 전달하려다보니 영화로 봤던 느낌이랑 원작으로 보는 느낌과
차이가 있을겁니다. ^^

stella.K 2011-05-27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인에어를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역시 작가는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쓰게되는 것 같습니다.
소설이 허구라고는 해도 진실을 바탕으로 해야하는데
작가의 경험만큼 진실한 것이 어디겠습니까?
그것이 비록 주관적이라고 해도요.
알파걸의 원조에서 피식 웃음이 났지만, 그도 그러네요.
브론테가 그 시절 알파걸이란 말을 알았겠습니까?ㅋㅋ
아, 시루스님 보내주신 책 빨리 읽어야 하는데
늘 다른 책에 묻혀 아직도 못 읽고 있네요.ㅠㅠ

cyrus 2011-05-26 16:27   좋아요 0 | URL
읽기 전에는 큰 기대를 안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생각보다
재미있었어요. 천천히,, 생각날 때 읽으세요. ^^
 
아저씨의 꿈 열린책들 세계문학 123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박종소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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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코디미로군요! " 

- 도스또예프스끼 <아저씨의 꿈>중에서,  p 216 -

  
 

 

 

  익살과 해학이 넘치는 소설  

도스또예프스끼의 유명한 대표작들을 열거하게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죄와 벌><백치><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다.  이들 작품들은 도스또예프스끼의 문학 인생 중 후기를 대표하는 불후의 명작이면서도 인간 존재의 근본 문제, 신, 이념 등 그리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읽는데 쉽지가 않다. 

하지만 <아저씨의 꿈>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도스또예프스끼적인 문학 세계과 상반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도스또예프스끼가 기나긴 시베이라 유형 생활을 끝마치고 난 후에 본격적으로 작가 생활을 다시 하기 위해서 썼던 것인데  이 시기부터가 도스또예프스끼 문학 인생에서 과도기에 해당한다.  도스또예프스끼의 문학을 거대한 산으로 표현하자면 이제 막 중반에 이르렀을뿐이다. <죄와 벌><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라는 험한 산봉우리에 등정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지금까지 읽은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들 중에서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것이 바로 이 소설이다.  소설 속의 사건 전개가 한 편의 코믹한 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던 중후한 도스또예프스끼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익살과 해학이 넘치는 분위기의 소설이라서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 아저씨 ' 공작 노인의 꿈, ' 어머니 ' 마리야의 꿈

세속적이면서도 허영심으로 가득한 귀족 부인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자신의 딸인 지나를 부유하면서도 노화 때문에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공작 노인에게 시집을 보내기 위해서 계략을 꾸민다는 에피소드이다.  자신의 딸에게는 할아버지뻘이 되는 늙은 공작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하는 마리야의 계략에는 자신의 부귀영달을 누리려고 하는 속셈이 숨겨져 있다.  

그러나 지나는 이미 어머니의 속셈을 눈치를 채고 공작 노인과의 결혼을 반대하였다. 사실 그녀는 폐평으로 생사를 넘나들고 있는 가난한 가정교사를 짝사랑하고 있었으며 아직까지도 마음 속에는 가정교사를 향한 사랑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누가 늙어빠진 영감쟁이와 결혼을 하겠는가?  

특히 소설 속 공작 노인은 과장될 정도로 치매기 가득한 희화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자신이 왕년에 나폴레옹과 시인 바이런, 음악가 베토벤을 만났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만났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횡설수설하는 코믹한 캐릭터이다.

공작 노인과 딸의 결혼이 성사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여생의 행로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마리야는 딸의 완고한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 공작과의 결혼이야말로 부와 명예로 가득한 삶을 위한 지름길이라는 식으로 간곡하게 사정을 한다.    

그 당시 유럽 사회에서는 상류층으로 진출하여 부유한 삶을 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는 상류층 집안과의 혼사를 맺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말이 부정할 수 없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중대한 결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지나는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공작 노인과 청혼을 하게 된다.  자신도 공작 노인과의 결혼이야말로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한편 그런 지나를 사모하는 또 다른 남자가 있었는데 젊은 관리 모즈글랴꼬프는 한 때 지나에게 고백을 했다가 퇴짜 맞은,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지나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우연히 마리야의 계략을 알게 된 모즈글랴꼬프는 지나와 늙은 공작과의 결혼을 어떻게든 막기 위해서 공작에게 접근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 결혼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지나의 청혼은 한낱 꿈 속에 있었던 일이라는 식으로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공작 노인에게 늘어놓는다.    

치매기가 있는 공작 노인은 모즈글랴꼬프의 어설프게 짝이 없는 속임수를 곧이 곧대로 믿어버린다.  결국에는 모즈글랴꼬프의 계략 때문에 지나와 공작 노인의 결혼은 파기되었고 마리야의 계락마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이 기회에 틈타 모즈글랴꼬프는 다시 한 번 지나에게 고백을 하게 되지만 도리어 또 한 번 실연을 당하게 된다.  지나는 이전부터 쭉 모조글랴꼬프의 계락을 이미 눈치 채고 있었으며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 비겁한 속임수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청혼을 거절한다.  

' 사랑 ' 이라는 이름으로 둘러싼 간계가 실타래처럼 꼬여 버리는 바람에 아리따운 처녀와의 사랑을 꿈꾸었던 공작 노인 ' 아저씨 ' 의 꿈은 산산히 부서지게 되었고 화려한 여생의 앞날을 고대하던 마리야의 장밋빛 꿈마저도 한순간에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모즈글랴꼬프는 자신이 만든 속임수로 인해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이 되고 말았다.     

 

 

  최후에 웃는 자는 마리야와 지나  

 

 


SBS 주말 드라마 <웃어요 엄마>에서 출연중인 이미숙 씨  

자식의 성공을 통해서 자신의 안락한 행복을 누리려고 하는  

어머니 조복희로 등장하고 있다. 

 

자신의 딸을 통해서 사교계 상류층으로서의 명성과 부귀를 통해 안락한 삶을 누리고 싶어하는 마리야의 모습은 S 방송국 주말 드라마 <웃어요 엄마>에 등장하고 있는 조복희(이미숙 분)와 유사하다.    

조복희는 자신의 딸인 신달래(강민경 분)를 무명 연예인에서 톱 스타 연예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일거수일투족 딸을 감시하고 최대한 자신의 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그리고 제일그룹 사장인 구현세(박성민 분)과 정략결혼을 시키려고까지 한다.  연예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야하는 말 못하는 정신적 고통과 오직 명예 때문에 진정한 사랑을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억지 결혼에 신물이 난 신달래는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드라마 초반부터 딸의 출세에 눈이 먼 나머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끝없이 다그쳤던 조복희는 후반기에 이르러면서 자신의 딸이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녀를 위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주는 딸을 지극히 사랑하는 진정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  

과연 드라마 제목처럼 조복희는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고 마지막에는 웃을 수 있을지 결말을 끝까지 지켜봐야하지만 소설 속 마리야는 결혼 파기라는 굴욕을 깨끗이 씻어내고 웃을 수 있었다.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때문에 이수일과의 사랑을 파기시켜버린 심순애처럼 사랑의 참된 가치를 강조하였던 지나도 정신적인 교감보다 물질적 가치가 중요시되는 사랑의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가 보다.  지나는 예전에 연분을 맺은 가난한 가정교사이 아닌, 자신에게 두 번이나 고백을 한 모즈글랴꼬프도 아닌, 고위직 장군의 아내가 되고 만다.  

결말에는 마리야가 어떻게 되었는지 상세한 속사정을 알 수 없지만 지나가 고위직 장군과 결혼을 했으니 마리야는 마음 속으로 웃었을 것이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상류층 인사와의 혼사가 이루어졌으니 이제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으니까.  

이 소설에서는 딸의 결혼에 집착하며 엄격하기만한 마리야와 반대로 우스꽝스러운 노인으로 등장하는 공작의 등장이 돋보이지만 지나라는 인물 역시 쉽게 무시할 수 없다.  소설 전반부에서는 사랑이라는 정신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여성으로 등장하지만 결말에서는 고위직 장군과 결혼함으로써 세속적인 사랑을 선택하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사랑에 실패를 하게 된 공작 노인과 모즈글랴꼬프의 모습과는 무척 대조적이다.  결국 이 소설에서 최후에 웃는 자는 마리야와 지나, 두 모녀인 셈이다.  

 

 

  사랑보다는 다이아몬드

이 소설은 얼핏 도스또예프스끼의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의 전개와 유사하다. <가난한 사람들>에 등장하는 가난한 하급관리인 마까르 제부쉬낀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가 결정적으로 이별을 맞이하게 되는 이유가 물질적인 안정을 영위할 수 있는 잘 사는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이 소설에서도 바르바라는 마까르보다 더 잘 사는 부유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면서 서신을 나누면서 오랫동안 유지해오던 애틋한 사랑은 슬픈 결말로 끝나게 된다.   

앞에서도 잠깐 심순애를 언급했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바르바라와 <아저씨의 꿈>의 지나, 이 세 여인의 공통점은 부모가 시키는 대로 부유한 권세가와 결혼을 하고마는 봉건적인 사회체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플라토닉 러브는 엄격한 가족 제도와 명예 그리고 부(副)가 만들어낸 상류 사회가 만들어낸 사회적인 장애물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무조건 나쁘다고만 매도할 수 없다. 이 여성들에게는 견호하게 세워진 사회적인 장애물을 뛰어 넘으려고 하는 의지가 미약했고 지금도 그 장애물은 무너지지 않았다.  

사랑이 1순위인 결혼보다는 더 잘 사는 것에 1순위로 두고 있는 취집을 선호하는 오늘날의 결혼 세태와 월평균 수입이 400만원이 넘어야 행복한 결혼생활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20, 30대 남녀의 결혼관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도 사랑으로만 밥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랫동안 연인의 끈을 이어가면서도 밥을 먹고 살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가치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순애는 김중배와 결혼 이후에도 이수일에 대한 사랑을 못 잊어서 괴로워하는데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 속에 사랑에 실패하는 여성들은 이상하게도 사랑의 후유증 때문에 괴로워하는 묘사가 없다. 반면에 남자들이 더 고통에 시달린다. <가난한 사람들>의 마까르는 부당한 현실 때문에 이루어진 사랑의 실패 앞에서 괴로워하고 <아저씨의 꿈>의 모즈글랴꼬프는 고위직 장군의 아내가 된 지나의 모습을 보면서 억지로 인생의 쓴 맛을 삼켜내고 있다.   

과연 지나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그녀의 생애에서 첫 사랑은 가난한 가정교사였다.  마음이 여린 그녀 역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병 때문에 고통 속에서 살다 간 가정교사를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랑과 행복으로 번쩍거리는 다이아몬드 앞에서 갈등을 하고 괴로워하는 여성의 고뇌를 세밀하게 묘사한 소설 한 편을 코믹한 드라마가 아닌 정말로 진지하게, 도스또예프스끼가 마음 먹고 제대로 썼다면 어떤 작품이 나왔을지 내심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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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03-07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이아몬드보다 사랑이요^^

cyrus 2011-03-07 22:02   좋아요 0 | URL
저도 명예, 부보다는 사랑이 우선이에요. ^^

stella.K 2011-03-07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옙스키가 코믹소설도 썼군요.
그 할배는 항상 심각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물질만능의 사회일수록 사랑을 믿지 않는 것 같아요.
사랑은 언제든 식을 수 있지만 물질은 영원하다 내지는 오래 간다고
보잖아요. 이것저것을 다 떠나서 빨리 결혼해서 자손을 번식시키고
인류 공영에 이바지하다 죽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큭~

cyrus 2011-03-07 22:04   좋아요 0 | URL
전에 다른 소설들은 심각한 주제에다가 약간은 지루하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재미있게 읽었어요. 분량도 그리 많지 않은 중편인 것도
있구요 ^^

마녀고양이 2011-03-07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예프스키가 남자라서 그런걸까요?
여자는 사랑에 목 매지 않지만, 남자는 진정한 낭만을 안다는 듯한. ^^
사회를 뛰어넘기란 쉽지 않죠... 그리고 인간의 본질은 비슷한거 같아요.

사이러스님, 고전 참 많이 읽으시네요. 감탄스러워요.

cyrus 2011-03-07 22:04   좋아요 0 | URL
고전도 읽어보면 무척 재미있는게 많아요. 단, 니체 같은
철학고전은 제외에요 ^^;;

노이에자이트 2011-03-07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예프스키의 해학이 가장 두드러진 소설이 또 몇 편 있는데 단편으로 '악어', 장편으로 <스쩨빤치꼬보 마을 이야기>가 있습니다.도스토예프스키 하면 칙칙하다는 것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읽어보면 괜찮을 작품이죠.

cyrus 2011-03-07 22:06   좋아요 0 | URL
<아저씨의 꿈>이 발표되고 난 후 다음 소설이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
이더군요, 지금 연도순으로 차근차근 읽어나고 있는데 다음 소설도
무척 기대가 됩니다.

아이리시스 2011-03-08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죄와벌>도 못 읽어가지고~~~~~~~~~~~~~ 아 부끄러워, 부끄러워.
이건 그것보다 좀 얇나요? 물론, 두꺼워도 더 빨리 읽히는 내용이 있다는 걸 잘 알지만.^^
 
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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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든 콜필드의 재림    

 

 

올해가 J. D. 샐린저의 불후의 명작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 1951년 작)>이 세상에 나온지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단 한 권의 소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뷰는 물론 사진 촬영까지 단호히 거부하면서 은둔 생활을 즐기는 ' 괴짜 ' 작가로도 알려져 있지만 여전히 샐린저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읽혀지고 있다.   

특히 <호밀밭의 파수꾼>에 등장하는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기존 사회에 반항하려는 문제적인 인물답게 지금도 독자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엇갈리는 문제적인 평가를 받는 독특한 캐릭터이다.  존 레논의 암살범 마크 채프먼" 모든 사람들은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야 한다. " 라는 단 한 마디의 발언으로 소설은 논란의 중심이 되었으며  심지어 전국 학교에서는 청소년들이 읽어서는 안 될 금서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현대 미국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면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지금도 매년 적지 않은 판매부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반항끼가 넘치는 전형적인 10대 청소년을 가리키는 ' 콜필드 신드롬 ' 이라는 용어가 탄생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호밀밭의 파수꾼> 출간 51주년이 되는 올해 우리나라에 기가 막히게도 우연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한 권의 소설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필립 로스<울분>이다. (미국에서는 2008년에 출간되었다) 

국내에서 새롭게 소개된 필립 로스의 <울분>은 냉전 체제를 겪고 있는 격동의 역사 한가운데에서 살아가는 미국의 젋은 청년 마커스 메스너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재미있게도 소설 속 배경은 한 6.25 전쟁이 한창 진행중이었던 1950년대 초이다.  소설에는 당시 6.25 전쟁에 참전하고 있는 미국의 정세를 간간이 언급되고 있는데 특히 1951년 4월 11일에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권한을 정지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나오는걸로 봐서는 이 소설의 배경은 전쟁이 처음 발발했던 1950년에서부터 1953년 사이로 설정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는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난 마커스 메스너의 삶의 이력을 읽어보게 되면 메스터라는 인물이 평범하지가 않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자신은 유태인임에도 불구하고 유태인과 관련된 사교적 모임을 피하거나 또는 기숙사 룸메이트로 같은 혈족이나 마찬가지인 유태인이 되는 것을 꺼리기도 한다.  오직 법학대 졸업생 대표가 되어 고별사를 한 훌륭한 법률가가 되는 것을 목표를 삼아 공부하는데 열중하고 있는 요즘 젊은이들과 같은 현실적인 삶을 사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을 규제하고 있는 사회 체제나 사회 집단의 한 구성원으로서 시민의 삶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자신의 일상에 대해서 사사건건 간섭하고 아버지와 설전을 벌이기도 하며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진지하게 도움을 주려는 코드웰 학생과장과의 면담은 이 소설에서 가장 압권적인 장면이다.  

코드웰 학생과장은 기존의 평범한 학생의 삶의 방식과 다른 메스너에게 진지한 삶의 조언을 주고 있지만 메스터는 법률가 지망생답게 버트런드 러셀의 사상을 정확하게 인용하면서까지 자신보다 학식의 연륜이 깊은 학생과장 앞에서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삶의 방식을 논리정연하게 반박하여 설명하고 있다.  자신을 간섭하려는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걸로 봐서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리 콜필드를 연상시키고 있다.  소설의 첫 장면이 콜필드가 문제아로 낙인 찍혀버려 스펜서 선생과 면담을 하게 되는 것인데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짜증과 분노를 억지로 참아내면서까지 스펜서 선생의 지적에 어떻게든 넘어가보려고 대응하고 있다.  콜필드는 자신의 감정이 가는대로 반항심 가득한 모습으로 대응하는 식이라면 메스너는 나름 지적이면서도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고 있다.   

  

  

  주변인으로 남게 된 마커스 메스너   

무엇보다도 홀든 콜필드와 마커스 메스너는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인 관계의 흐름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정도로 반항으로 가득한 홀리 콜필드나 상대방에게 허를 찌를 정도로 박식하고 논리적인 메스너나 결국에는 삶의 행동양식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한 주변인으로 남게 된 것이다.   

보통 20대의 젊은 시기는 ' 청춘 ' 또는 ' 인생의 황금기 ' 라고 하여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 붙게 된다.  하지만  땅 속 깊이 오랫동안 자랐던 굼벵이가 매미가 되기 위해서는 어둠으로 가득찬 땅 속에서 벗어나 햇빛과 공기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천적으로 가득한 또 하나의 자연 세계와의 만남을 피할 수 없듯이 20대에 들어서는 인생의 관문에도 환경의 변화를 무시할 수 없다.   

20대들은 그 동안 집안이나 학교의 울타리 안에 자랐던 ' 청소년 ' 이었다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직업선택, 경제문제, 이전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인간 관계 등으로 이루어진 ' 어른 ' 의 세계에 직면하게 되면 고민과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청소년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원래의 집단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애 대한 향수가 남아 있으며 새로운 사회집단에도 부적응을 하게 되는 주변인의 성향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런 부적응한 사회생활을 감당하다 못해 자신을 향한 타인들의 시선마저도 곱게 느껴지지 않게 되며 어느 사회집단의 일원으로 소속되기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나는 늘 나 자신을 밀어붙였다. 늘 어떤 목표를 추구했다. 부모를 절대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주문을 전달하고, 닭털을 뽑고, 도마를 닦고, A를 받았다.  (중략) 

아버지의 비합리적인 구속에서 달아나려고 로버트 트리트에서 학교를 옮겼다. 오직 공부에만 집중하려고 클럽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한반도에서 죽지 않으려고 ROTC에 아주 진지하게 참여했다. 이제 목표는 올리비아 허턴이었다. 나는 그애를 내가 주말에 버는 돈의 거의 반이 들어가는 레스토랑에 데려왔다. 나도 그애와 마찬가지로 세상을 알 만큼 안다는 인상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략) 

자, 또 하나의 목표가 생긴 것이다. 2차 대전 직후 중동부의 자그마한 아류 대학의 캠퍼스를 아직도 엄격하게 틀어쥐고 있던 관습의 속박에도 불구하고, 나는 죽기 전에 성교를 하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 필립 로스 <울분> p 61~62 -  

 

19살의 메스너는 진정으로 ' 어른 ' 이 되고 싶어했다.  세상을 알만큼 알고 있으며 이성을 유혹할 줄 아는 ' 어른 ' 으로 말이다.  열심히 공부에 매진해서 법률가가 되려는 모범생 메스너의 목표 뒤에는 어른의 세계에 안정적으로 안착되기를 바라는 막연한 희망과 동시에 자신의 삶에 압박을 가하고 있는 부담감이 작용하고 있다.  열심히 공부하면 법률가라는 좋은 직장도 가지게 되지만 무엇보다도 더 열심히 공부해야하는 결정적이 이유는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6.25 전쟁에 참전하지 않는 것이다.  제대로 학업을 관리하지 못하게 된다면 장밋빛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로 끌러가게 된다.  메스너 역시 냉전 체제가 만들어낸 인류의 비극이 주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에게 6.25 전쟁의 참전은 자신의 장래희망은 물론이고 목숨마저 한순간에 사라지는 인생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살고 있는 메스너에게 젊은 청년의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 진심으로 걱정을 하고 조언을 주는 아버지와 학생과장의 말이 삶의 방향을 어렵게 정하도록 만드는 세상에 대한 ' 울분 ' 을 유발하는 듣기 거북한 소음에 불과했던 것이다.    

메스너는 청소년기 특유의 불안에 시달리면서 그것을 떨쳐내버리기 위한 정신적 강박증으로 고통스러워하다가 결국에는 피하고 싶었던 비극적인 인생의 결과를 맞이 하게 된다. 젋음의 꽃봉오리를 제대로 피우지 못한 채 6.25 전쟁 참전 중에 20살의 나이로 전사하고 만다.  어른이 되지 못한, 그렇다고 청년이라고 불릴 수 없는  ' 주변인 ' 으로 남게 된 채 마커스 메스너는 1953년에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1951년 미국과 2011년 대한민국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리 콜필드는 3일이라는 암울하기 짝이 없는 삶 속에서의 방황의 짧은 여정 끝에 자신을 향한 여동생 피비의 믿음과 사랑 덕분에 드디어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예전에 만났던 사람들을 그리워하기까지 한다.  방황과 비행 그리고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던 유년 시절이 나중에 어른이 되면 그리워지게 되듯이 16세의 콜필드는 이미 어른의 세계로 향할 수 있는 한층 더 성숙된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1951년에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렸던 콜필드의 나이가 16세라는 것을 감안하면 올해 콜필드의 나이는 67세이다.  어쩌면 67세의 콜필드는 지금도 51년 전의 방황을 그리워하면서 추억에 빠져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험난한 인생의 과정을 자신보다 나이 어린 젋은 독자들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울분>의 마커스 메스너는 콜필드의 삶과 비교하면 너무 비극적이면서도 불행하다. 그렇다고 청춘 특유의 열정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채 전쟁의 포화 속으로 사라져야했던 죽음이  불행하다는 것은 아니다.  콜필드와 같이 자신의 말 못하는 고통을 위로해주고 이해해주는 따뜻한 사랑과 믿음을 느끼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 것이 더욱 불행하다. 그리고 삶에 대한 불만을 수도 없이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메스너는 자신의 정신적 고통을 어느 누구에게도 속 시원하게 알리지 못했고 반항으로 가득찬 울분마저 토해내지 못했다. 그가 울분 대신에 토해낸 것이라고는 그동안 계속 쌓인 채 묵혀왔던 울분들이 가득 차 썩어버린 구토물이었다.   

유일한 외아들에 대해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던 메스너의 부모는 ' 아들의 부재 ' 로 인한 상실감 때문에 반 미치광이로 되어버렸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관계 속에 자란 젋은 인간 그리고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인생이 어떻게 파멸되어 가는지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역자 정영목 씨의 말을 비유하자면 완전하지 못한 ' 어른 ' 으로서의 메스너가 그나마 최선을 다해서 선택한 끝에 나온 극단적인 결과가 바로 ' 죽음 ' 이다. 그리고 메스너의 죽음은 비단 1950년대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특정 시대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비극적인 현상도 아니다.  

5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에도 마커스 메스너의 후손들이 등장하고 있다. 88만원 세대라고 불리우고 있는 이들은 현재 나이로는 24세이다.  숫자로 따져 보면 사회생활이 어떤 것이지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어른으로 봐도 무방한 나이다.  하지만 24세가 된 88만원 세대들은 여전히 ' 어른 ' 의 세계 속에서 앞날을 알 수 없는 삶에 대한 불안과 방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는 취업이 우선이다. 그러나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대학이라는 인생의 과정을 무시할 수 없다.  어떻게든 취업률이 보장되는 대학을 다니기 위해서 한창 놀아야 될 나이부터 공부에 매진한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공부는 계속 된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는 공부에 싫증을 느꼈음에도 이상하게도 대학교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그토록 싫었던 공부를 하게 된다.  학교 도서관 가득히 자리잡아  하루종일 공부를 하는데 그들이 보고 있는 책은 TOEIC과 각종 공무원 시험 교재들이다.  이것이 88만원 세대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이들에게 자유롭게 캠퍼스를 노닐 수 있는 대학가의 낭만 그리고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준비되지 않은 자는 오직 경쟁사회에서 낙오될 뿐이다. 경쟁사회에서의 낙오는 결국 자신의 인생에 스스로 사망선고를 내리는 것과 똑같다.  결국 눈 뜨고 살아 있음에도 숨통이 막혀 오는 어른의 세계 속에서 죽게 되거나 정말로 삶의 이중고를 견디다 못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삶을 조금씩 죄어오는 기형적인 세상 속에서 젋은 세대들은 기성 세대들을 향한 불만으로나마 마음 속으로 가지고 있던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불만을 어떻게든 해소하려고 한다. 그러나 기성 세대들은 요즘 젊은 세대들의 모습에 대해서 눈살을 찌푸리면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 희망이 없다고 ' 말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1950년대 미국이나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한 단면을 통해서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울분>을 읽어봐야 한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의 저자 엄기호는 오늘날의 젋은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성세대는 그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하며 그들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들이 내놓는 불만과 자조 섞인 답을 가지고 왈가왈부한다면 그것은 삶에 대한 모독이라고 하였다.   

만약에 메스너의 아버지 그리고 학생과장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기성세대들이 메스너와 같은 1930년대 출신의 전후 세대들의 고민과 방황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주었다면 못다 핀 꽃 한송이가 되어버리는 세대의 비극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비록 필립 로스의 소설이 구 세대를 묘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사회집단에서 관통하고 있는 세대 간의 단절 그리고 젋은 세대들의 정신적 성장통을 볼 수 있다. 

정영목 씨의 말을 인용하여 말하고 싶은 것은 감정의 혼란으로 가득했던 젋은 시절의 노스탤지어를 기대하기 위해서만으로 이 소설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은 비극적인 인물 마커스 메스너로 대표되는 젋은 세대에 대한 삶의 모독이다.   

모든 사람들은 <울분>에서 묘사된 ' 필립 로스 식 ' 세상을 읽어봐야 한다.  다른 세대에 대한 이해와 성찰이 없는 기성 세대의 사회가 얼마나 위험하고 그들에게 어떻게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만드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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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1-02-18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의 폭풍책읽기 도 끝이 보이는구나 ㅋㅋㅋㅋ

그거 뭐지? 오늘 니가 한 말이 하루종일 멤돌았어 아리스토 정치학 말이야

내 대학은사 는 그 책을 20번 이상 읽었다고 하더군~ 자기 밥그릇 이니까 뭐 ㅎㅎ

근데 말이다. 아직도 50퍼센트 반액대매출 하나 한 번 검색해보니까 끝났군 ㅋㅋ

하긴 잘된 일이야~ 난 지금 가지고 있는 책 만으로도 2번 살아도 다 못 읽을테니까 말이다

책은 싸다고 하면 사들이는데 부질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도 오늘은 너 때문에

아리스 아리스 시달렸다 ㅋㅋㅋㅋ 몇 시간 고민끝에 그래 결심했어 안 사는거야 마음

먹었는데 막상 세일 안 하니까 지금까지 내가 고민한 시간이 아깝네~ 시간당 알바를 해도

만원 짜리 이하면 하지 않는데~ 왜 푼돈에 연연하는지 모르겠다. 큰 살마 되기는 글러먹은

거 같다 캬캬캬캬

cyrus 2011-02-19 00:22   좋아요 0 | URL
이제 복학도 해야되니 천천히 독서를 하려고 해요. 자주는 아니더라도
간간이 글 한편씩 올릴려고 해요. 그리고 반값할인 하루동안만 하는거에요.
특정 도서를 하루만 반값으로 파는거죠. 저는 그전부터 읽고 싶어서
마침 반값할인한다기에 구입했어요.

아이리시스 2011-02-18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진짜 완전 샐린저 좋아해요.
<아홉가지 이야기> 읽어보셨어요? 단편집이요.
그거 완전 좋아해요.^^

예전에 필립 로스를 한 번 읽었는데 이 작가가 유태인 출신이었나요?
그때도 혼혈 유태인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었던 것 같은데.
사실 미국소설이기도 하고, 여러 모로 거부감이 좀 있어서(그래도 샐린저는 짱!)
이 책 나온 거 보고도 큰 기대 없었는데 홀든 콜필드와 비슷하고 우리와도 비슷하다면 읽어볼만 할 것 같아요. 고마워요. 편견도 없애주고, 좋은 리뷰도 보게 해줘서, 아하하.

cyrus 2011-02-19 00:26   좋아요 0 | URL
아니요, 아직 단편집은 안 읽어봤어요. 단편집도 좋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필립 로스 유태인 출신 맞아요. 국내에 필립 로스의 작품이
출간된게 이번에 나온거랑 <휴먼 스테인> <에브리맨> 단 두권뿐인데,
제가 아는 지인은 필립 로스를 선호하더군요. 그래서 읽게 되었어요.
사실 리뷰 이벤트 때문인 것도 있지만요,,^^;;

저도 <호밀밭의 파수꾼>을 감명깊게 읽어서그런지 <울분>을 읽으면서
콜필드가 떠올랐어요. 그래도 마커스 메스너보다는 콜필드가 더 나은거
같아요.

stella.K 2011-02-19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 책 읽고 있는데 평소 미국문학 그다지 안 좋아해서 잘 읽힐까 싶었어요.
별로 두껍지도 않으면서 빨리 읽히는 건 아니지만, 작가가 정말 이야기꾼이구나
싶더군요. 처음 멋 모르고 봤을 때 내가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었지만
소설을 이렇게도 쓰는구나. 나름 좋게 읽고 있는 중입니다.
이 책이 좋다면 저도 늦게나마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봐야겠는데요?^^

cyrus 2011-02-19 19:54   좋아요 0 | URL
제가 아는 지인분이 필립 로스를 추천해준 것도 있어서
다른 소설들도 읽어보려고 해요. 저도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필립 로스, 참 괜찮은 작가인거 같습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1-02-19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립 로스 작품 제일 먼저 번역본 나온 게 <콜롬버스여 안녕>(삼성출판사 세계문학전집)입니다.중편 정도 분량입니다.헌책방엔 지금도 가끔 나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2-19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립 로스는 그 이전 유태인 작가와는 달리 박해받는 유태인 운운 하는 이야기를 별로 안 하는 게 특징이더군요.이 책들도 그런지 궁금하네요.

cyrus 2011-02-19 19:56   좋아요 0 | URL
알고보니 제가 다니는 도서관에서 필립 로스를 검색해봤더니
알라딘에서도 찾을 수 없는 70년대에 번역된 작품이 몇 권 있더군요.
물론 노자님이 소개하신 작품도 있었구요,, ^^
저는 필립 로스의 작품으로는 <울분>이 처음이라서 잘 모르겠는데
이번에 나온 소설의 주인공이 단지 유태인일뿐 유태인 차별에 관해서는
크게 운운하지 않은거 같았습니다. 이번 기회에 작가의
다른 소설들도 읽어보려고 합니다.

양철나무꾼 2011-02-20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필립 로스'를 '정영목'님 때문에 알게 됐어요.
이 책 울분과 에브리맨에는 그럭저럭 만족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휴먼 스테인'은 좀 우울해요~^^

cyrus 2011-02-20 11:36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에브리맨>에 대해서도 블랑카님도 호의적으로 보시더라구요.
국내에서 소개된 필립 로스 작품이 이 세 권 이외에도
새물결이라는 출판사에 낸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라는 소설도
있는데 알라딘에서는 찾을 수가 없더라구요, 책 제목을 검색하면
찾을 수 없는 책이라고 나오네요. -_-;;

꽃도둑 2011-02-21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 리뷰를 읽으면서 저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접근했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각지대라고나 할까요?... 제목도 좋았어요...^^

cyrus 2011-02-21 19:38   좋아요 0 | URL
저는 <울분>을 읽으면서 샐린저의 소설이 떠올렸는데,, 지금 글 쓴거 보고나니
너무 억지로 써낸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예전에 샐린저의 소설을
감명깊게 읽어서 그런지 그런 인상이 떠올린거 같습니다. ^^;;

stella.K 2011-03-03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cyrus 2011-03-04 00:21   좋아요 0 | URL
축하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스텔라님은 리뷰가 당선되었는지
잘 모르겠네요, 알라딘 이벤트 당첨자 공지사항 같은 경우에는
닉네임을 기재하지 않아서 불편하네요,,^^;;

stella.K 2011-03-04 11:36   좋아요 0 | URL
ㅎㅎ 미역국이어요.ㅠ
거 한턱 쏘라니까. 말 참 안 들어요. 그럼 내 이름
가르쳐 줄 수도 있는데...ㅋㅋ3=3=33

cyrus 2011-03-04 22:10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이 서울에 사신다면 서울쯤이야 찾아갈 수 있지만,,
저는 가난한 청년이랍니다. ㅎㅎ

stella.K 2011-03-05 11:07   좋아요 0 | URL
ㅎㅎ 그뜻이 아닌 것 같은디...
모르시면 할 수 없구요.ㅠㅠ

레삭매냐 2011-03-05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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