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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세트 - 전3권 ㅣ 펭귄클래식
샬럿 브론테 지음, 류경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1001-101] 제인 에어
여성들의 필독 도서, <제인 에어>
모 출판사에서 출간된 <제인 에어> 뒷표지를 보게 되면 ' 딸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싶은 일본의 부모들이 선물하는 책 1위 ' 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저 일본인들에게만 제인 에어의 매력에 사로잡힌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제인 에어>는 항상 ' 청소년 필독 독서 ' 라는 거룩한 타이틀의 목록 속에서 빠지지 않았다. 사실 ' 청소년 ' 이라기보다는 순수한 사랑을 꿈꾸었던 ' 청소녀 ' 들이 축약본으로나마 읽었을 것이다. 셜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는 지금으로부터 160여 년 전에 쓰여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된 횟수도 자그마치 총 22회에 달할 정도로 현재까지도 제인 오스틴의 소설과 함께 로맨스 소설의 고전으로 불리우며 미래를 꿈꾸는 젋은 여성들의 위한 도서로 손꼽히고 있는 것이다.
<제인 에어>의 줄거리 전개는 부모를 잃고 새엄마와 이복언니의 구박을 받던 소녀가 왕자님을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는 신데렐라 이야기식과 유사하다. 소설 제목의 동명 여주인공인 제인 에어는 일찍 부모님을 잃고 자신을 학대하는 숙모 밑에서 자라면서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귀족 로체스터를 만나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인데 설정만 놓고 보면 오늘날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도 볼 수 있는 신데렐라식 스토리의 전형이다.
하지만 극적인 해피엔딩을 위해서 말도 안 되는 설정들을 집어넣는다거나 어떻게든 결말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 과도하게 줄거리 전개를 생략해버리는 요즘 드라마와는 다르게 <제인 에어>에는 여주인공이 당당히 사회의 역경을 뛰어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행로, 그리고 여주인공의 다양한 심리적 변화들을 볼 수 있는데 독자 입장에서는 여성의 지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보수적인 사회 속에서 당당함과 꿋꿋함을 드러내는 여주인공의 모습을 반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귀족과 가정교사라는 신분의 차이에 불구하고 제인 에어는 사랑 앞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 제인 에어의 모습은 남성이 만들어 낸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억압에 시달려야했던 소설이 출간되었던 그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들에게는 쉽게 공감하고 동경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과연 우리는 <제인 에어>를 제대로 읽었을까?
하지만 어렸을 때 <제인 에어>를 어린이용 축약본으로 읽었던 여성들이 수십년이 지난 오늘날, 원전에 충실한 번역본으로 나온 <제인 에어>를 읽었다면 어렸을 때의 감동과 낭만이 또 다시 재현될 수 있었을까? 단순히 로맨스적인 요소가 가미된 여주인공의 극적인 성공 스토리라는 이유만으로 청소년 필독 도서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인식하고 있다거나 혹은 아직까지도 <제인 에어>를 그저 그런 여주인공의 성공 스토리를 그린 순수 로맨스 소설 또는 어린이용 동화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제인 에어>의 문학적 가치를 자칫 소홀히 할 우려가 있다. 아니, 우리는 <제인 에어>를 제대로 읽지 않았을 수도 있다.
<제인 에어> 속에 숨겨진 다양한 문학적 메타포
만약에 누가 나에게 <제인 에어>라는 책이 어떠냐고 물어보게 된다면 불행한 인생을 살았던 여주인공 제인 에어가 사회의 역경을 헤쳐나가는 신데렐라식 스토리의 소설이라고 대답하지 않겠다. <제인 에어>에는 단순히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라고 말하고 싶다.
<제인 에어>라는 소설에 <제인 에어>만 있는 것이 아니라니,,, ? 아직 <제인 에어>를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물론, <제인 에어>를 읽어본 사람들도 이런 애매모호한 간략평을 쉽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제인 에어> 속에 등장하고 있는 인물들의 대사나 여주인공 제인 에어가 자신의 인생을 고백하는 형식에서 나오게 되는 상황 묘사와 감정 전달의 내용에는 수많은 문학 작품들의 텍스트에서도 볼 수 있다. 펭귄클래식에서 나온 <제인 에어> 판본을 보게 되면 수많은 주해를 달고 있는데 주해를 보게 되면 샬롯 브론테가 다양한 독서 경험을 있다는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맥베스><오셀로>와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 밀턴의 <실낙원>, 조지 바이런의 시 등 다양한 문학작품 속 문장 문학뿐만 아니라 <성서> 속 구절도 많이 인용되고 있다.
여주인공 제인 에어가 마주하게 될 상황 전개라는 원관념은 독자들 앞에서 자연스럽게 숨김으로써 다른 문학작품에서 인용된 문장, 즉 보조관념만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형식의 문장을 사용하여 소설 전개에 대한 암시적 은유을 이루고 있다.
샬롯 브론테의 분신, 제인 에어
<제인 에어>가 오늘날에도 읽어야 하는 고전이라고 불리게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사회 앞에서도 능동적으로 존재하는 당당한 여성상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수백년 전 남성들이 지배하고 있었던 영국 빅토리아 사회에서 제인 에어의 등장은 보수주의자 입장에서는 썩 반갑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여성이 소설을 쓴다는 것은 그 당시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파격적인 행위였다. 그래서 샬롯 브론테는 ' 커러 벨 ' 이라는 남성 필명으로 <제인 에어>를 출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작가인 샬롯 브론테가 자신 인생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발표한 이 소설의 성공을 바랬었는지 모르겠지만(원래 브론테가 처음 쓴 소설이 <교수>(배미영 역, 열린책들, 2009)이다. 이 소설은 수많은 출판사로부터 거절을 당할 정도로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뻔하다가 그녀가 죽은 후에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소설이 출간되자마자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게 되었다.
<제인 에어>가 의외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사회적 억압 속에 억눌려 남자들을 위한 수동적인 존재였던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 독자들에게 공감을 주었을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표출할 수 없었던 사회적 신분의 상승에 대한 욕구를 제인 에어라는 가정교사의 이야기를 통해서 충족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제인 에어가 쓴 자서전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작가인 샬롯 브론테 역시 엄격하고 보수적인 시대 속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가난한 생활을 맞아야하는 사회적 불만에 절망했을 것이며 동시에 절망의 해소를 소설 창작으로 승화시켰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가난이란 어른들에겐 달갑지 않은 일로 여겨진다. 아이들에겐 더 그렇다. 아이들은 열심히 일하는데도 맞이하게 되는 고상한 가난 같은 건 모른다. 아이들에게 있어 가난이란 그저 누더기 옷과 부족한 음식, 불 꺼진 난로 연료관, 거친 행동거지, 품위 없는 언행 같은 것들과 관련된 단어로 여겨질 뿐이다. 내게 있어서도 가난은 낙오란 말과 동의어였다.
- 샬롯 브론테 <제인 에어 1> 류경희 역, 펭귄클래식코리아, p 81 -
재미있게도 제인 에어의 인생은 샬롯 브론테의 인생과 유사하다. 제인 에어가 존 리드 부인의 구박을 피하기 위해서 로우드 기숙학교에 입학했던 것처럼 샬럿 브론테도 실제로 어렸을 때 기숙학교에 경험한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제인 에어처럼 가정교사로 일한 전력이 있기도 하다. ' 여성 ' 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사회적 대우를 받았던 그녀의 경험이 제인 에어라는 자신과 유사한 가공적 분신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와 원작 사이
인간이란 평온한 삶에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건 헛된 일이다. 인간은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인간은 그런 활동을 찾을 수 없으면 만들어낸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 운명명보다도 더 정적인 운명에 처해지고 있지만,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에 대해 무언의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중략)
대체로 여성들은 지극히 온건한 심성의 소유자들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여성들도 남성들이 느끼는 만큼의 감정을 지닌 사람들이다. 여성들도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 샬롯 브론테 <제인 에어 1> p 222 -
<제인 에어>가 고전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은 거대한 사회의 장벽을 넘어 삶의 주체와 열정을 가지고 있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분명 문학사적 관점에서는 대단한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제인 에어야말로 알파걸(Alpha Girl)의 원조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여성의 주제적 지위와 능력이 강조되는 사회의 시류 속에서 개봉된 캐리 후쿠나가 감독의 <제인 에어>는 국내 여성 관객들의 기대감을 고조시키기에 충분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영화가 원작에 충실히하였다고는 하지만 이번에 나온 캐리 후쿠나가 감독의 <제인 에어>는 원작소설과는 살짝 다르다고 한다. (영화 내용 스포과 관련이 있기에 이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제인 에어>에 대한 어느 영화평에 의하면 방대함을 살리는 대신 주체적으로 사랑을 선택하는 여인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하는데 사회적 관습에 대항하여 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살고자 했던 주인공의 드라마틱한 인생유전을 통해서 여성 관객들에게 여주인공의 해피엔딩의 감동을 극대화하여 전달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이미지가 강한 나머지 원작이 그저 멜로가 가미된 여주인공의 신데렐라형 스토리의 소설로만 인식된다면 <제인 에어>가 왜 고전이라고 불리우는지에 대해서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독서모임을 통해서 원전으로 번역된 소설을 처음 읽게 되었는데 다양한 문학작품을 인용한 샬롯 브론테의 창작 능력과 섬세하게 묘사된 제인 에어의 심리묘사가 이 소설의 압권이라고 생각된다. 안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들, 책은 잘 안 읽는 반면에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잘 보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데 리메이크된 영화 혹은 어렸을 때 읽은 축약본에 대한 독서의 기억 때문에 정작 원작의 문학적 진가가 묻히는거 아닌지, 그리고 ' 제인 에어 ' 라는 자신의 분신을 창조한 샬롯 브론테라는 원작자의 이름이 잊혀지는거 아닌지 쓸데없는 기우(杞憂)를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