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에 책을 사고 난 뒤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책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는 일이다. 일단 가게 밖으로 나와 책을 쥐고 나머지 손으로 책을 몇 번 친다. ‘탁탁’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쳐야 한다. 책에 쌓인 미세먼지를 공중에 내보낼 수 있다. 그다음에 먼지가 남아 있을 만한 책의 부위를 꼼꼼하게 휴지로 닦는다. 반면 알라딘 중고서점에 사는 책은 먼지를 털지 않는다. 거의 책 상태가 깨끗하기 때문이다. 물론 중고서점에 진열된 모든 책이 먼지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책의 먼지는 휴지로 닦는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산 책을 깨끗하게 닦는 일보다 제일 중요한 과정은 책 뒷면에 붙여진 바코드 스티커를 제거하는 것이다. 손으로 스티커를 살살 긁어내서 떼어내면 된다. 어찌 보면 별것 아닌 일이지만, 재수가 없으면 끈적거리는 스티커 접착제나 스티커 종이 일부가 지저분하게 달라붙어 있다. 이럴 땐 아세톤이나 선크림을 천에 묻힌 후에 스티커 자국에 살살 문지르면 말끔하게 제거할 수 있다. 헌책방에 산 책에도 도서관 혹은 대여서점 바코드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제거하려면 아세톤이나 선크림은 필수다. 오랫동안 동안 스티커가 책에 붙어 있어서 알라딘 중고서점 바코드 스티커처럼 수월하게 떼어내기 힘들다.
알라딘 바코드 스티커 안에는 중고매장과 이 책이 진열된 책장 위치가 적혀 있다. 작년 9월에 청주점이 들어선 것을 포함하면 전국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은 총 19개이다. 지금까지 서울 대학로점, 종로점, 신촌점 그리고 울산점을 가본 적이 있는데 책을 주제별로 분류한 책장을 가리키는 알파벳 기호가 달랐음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대구점에서 G 코너 책장에 가면 소설, 시, 만화책이 있다. 반면 종로점의 G 코너에는 베스트셀러 혹은 새로 매장에 들어온 책들이 꽂혀 있다. 알라딘 중고매장 통합 사이트에 들어가면 전국에 있는 매장 안내도를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인터넷으로 중고 책을 주문하거나 매장에서 책을 직접 사는 사람들은 바코드 스티커를 자세히 눈여겨보지 않는다. 이들에게 스티커는 떼어내야 할 작은 종잇조각일 뿐이다. 나는 스티커를 떼기 전에 이 책이 어느 매장에 있는지 확인한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중고 책 대부분은 서울에서 온 것이 많았다. 간혹 중고 책에 바코드 스티커가 두 겹으로 붙어 있는 경우도 있다. 지난번에 대구점에서 《괴테의 프랑스 기행》(인화, 1998)이라는 책을 샀다. 젊은 괴테가 프랑스 혁명에 참전하면서 겪은 경험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희귀한 글인데 절판되었다.

책 뒷면에 스티커가 두 장 붙어 있었다. 원래 같았으면 두 장의 스티커를 동시에 떼어냈다. 그런데 그날따라 ‘대구점’이 적힌 스티커 밑에 있는 처음 붙여진 스티커 속 내용이 궁금했다. ‘대구점’이 적힌 스티커를 조심스럽게 떼어내자 ‘분당점’이라고 적힌 스티커를 확인했다. 그렇다면 이 《괴테의 프랑스 기행》은 경기도 성남에 있는 분당점에 새 주인을 만나기를 고대하면서 진열되어 있었다가 대구점으로 옮겨진 것이다. 멀리서 온 책은 대구에서 사는 책 좋아하는 사람의 손에 들어갔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바코드 스티커에 적힌 매장 위치만으로도 책의 이력을 추측해볼 수 있다. 종로점에 진열되었던 책이 대전점으로 옮겨져서 대전에 사는 사람이 그 책을 살 수 있다. 다만 내가 알라딘 중고매장의 유통 과정을 자세히 알지 못하므로 분당점에 있는 책이 어쩌다가 대구점에 오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헌책방에 잠들고 있는 책들도 마찬가지다. 가끔 헌책방에 이미 사라지고 없는 대형서점 ‘종로서적’이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는 책을 발견할 때가 있다. 먼 곳에서 온 책은 그저 침묵할 뿐이다. 알고 보면 헌책방이나 중고서점에 있는 책 속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연이 있다. 제대로 된 책 주인을 만나지 못해 이리저리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다가 결국엔 허름한 헌책방에 정착했다. 책의 입장에선 서글픈 사연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