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오후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를 찾았다. 'KB국민은행 2007 한국바둑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 제3, 4, 5국과 고객 초청 프로기사 지도다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잘 모르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 한국바둑리그에 대해 소개하면, 이번이 제3회(혹은 4회)째로 후원기업(8개팀)들이 상위권 프로기사와 선발전을 거친 기사들을 드래프트로 뽑아 팀을 구성하여 야구나 축구의 프로리그처럼 운영하는 대회이다. 작년(혹은 제작년)부터는 다양한 팬서비스 차원에서 각 연고지(후원기업들이 기반으로 삼고 있는 지역)를 방문하여 대국현장을 공개하고 지도다면기 행사들을 개최하는 투어형식의 이벤트를 열고 있는데, 나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이 투어들을 따라다녔다.

올해는 지방투어 총 4곳을 돌아다녔다. 먼저 지난 여름 1박 2일 일정으로 인터넷 동호회 사람들과 청주(충북 투어)엘 내려갔는데, 그때는 고근태 사범(2006년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중국 최강으로 꼽히는 구리9단을 꺽고 한중천원전에서 우승하는 등(당시까지 구리9단이 3연패(혹은 4연패) 중이었는데 혜성같이 등장한 고근태 프로가 엄청난 일을 해낸 것이다.) 고근태 프로는 요즘도 잘 나가서 한국 프로기사 랭킹 상위권에 올라있다.)과 지도 대국을 두는 행운을 얻었다. 이어서 수원투어에선 하호정 3단과 5점에 두어 이기기도 했고, 서울투어에서는 송폭풍 송태곤 8단과 역시 5점에 두었지만 무참히 졌다. 그리고 오늘, 오늘은 최강의 기대주로 꼽히는 백홍석 사범과 두었지만 역시 무참히 패, 지금까지 나의 투어 성적은 총 4전 1승 3패가 되겠다.

조금 옆으로 샌 감이 있는데, 한국바둑리그나 이 투어 행사 등 바둑이 살아남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다분히 고무적이란 생각이 들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즐겨보는 바둑TV도 다양한 형식의 시도를 통해 바둑을 보다 활성화 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는 정말 몸부림,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다. 바둑이 올림픽에 한 종목으로 채택되고 스포츠로서 인정받는 상황이지만 역시나 바둑 인구는 줄고 있고 젊은 층들에게 외면받고 있는 실정이다.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로서 이는 무척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바둑계의 노력이 고무적이면서도 안타까운 것은 어쩌면 이것이 기존의 바둑 팬들만의 행사 혹은 축제에 그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보다 획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긴다. 이를테면 어느 광고에서 쇼를 하라면서 바둑 대국 중 옆에서 훌라우프를 돌리는 것처럼, 획기적인 발상 말이다. 하여간 그런 것이 없고서는 바둑이 살아남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바둑리그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받기 위해서는 지역 연고제를 정착시키고 각 팀별 소속감을 고취시키는 방안 등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야구나 축구처럼 프로기사를 각 팀들이 연봉을 주고 계약하는 방식들이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바둑이 더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다.

** 오늘 투어 일정이 끝나고 동호회 사람들과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다소 시간이 여유가 있어, 서울 온 김에 광화문의 교보문고엘 들렀다. 한 달에 한 번씩은 서울구경 삼아 가는 곳이 이 교보문고다. 서울 지리에 감감한 나로서는 그나마 이 교보문고만은 이제 잘 찾아다닌다. 교보문고엘 들러 한 시간 쯤 책 구경하고, 몇 권을 사들고 내가 사는 인천으로 돌아왔다.

인천행 지하철을 타고 나는 주안역에서 내린다. 오늘도 어김없이 주안역에서 내려 역사를 거쳐 나오려는데, 역사 안에 넓직한 공간의 서점이 들어선 것을 보고 무척이나 반가웠다. 반가운 마음에 무작정 서점엘 들어가 평소 보관함에 담아두었던 책들을 눈에 띄는 대로 손에 집어 들었다. 녹생평론사에서 나온 『간디의 물레』(김종철 저), 『우리들의 하느님』(권정생 산문집), 『삶은 기적이다』(웬델 베리 저, 박경미 역)와 『진보의 역설』(그레그 이스터브록 저, 박정숙 역, 에코리브르), 『무례한 복음』(김경재 外 저, 산책자, 2007)을 사버렸다.

 

 

 

 

서점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판국에 역사 안에 비교적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서점이 들어섰다니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 반가운 마음으로, 나 아니면 잘 안 사갈 것 같은 책들 위주로 골라서 산 것이다. 교보문고에서도 한 보따리를 사가지고 있는 길이었는데도 말이다. 책들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고 사장님께 반갑게 인사를 건냈다. 너무 반갑다고, 앞으로 자주 오겠다고.(그리고 카드를 내놓았지만, 내일이 오픈이라 아직 카드가 안 된단다. 지갑을 열어 탈탈 털어 겨우 현금으로 계산할 수 있었다.)

내가 사는 인하대 주변엔 얼마전 서점들이 전무하게 됐다. 98년엔 2~3군데 서점이 있었는데(헌책방은 제외하고) 근래에 그중 하나 밖에 남지 않았었다. 그러던 서점이 이내 인하대학교의 구내서점으로 입주하고는 인하대 주변엔 서점이 죄다 없어진 것이다.(헌책방은 한 곳 있지만, 대부분 대학교재들을 팔 뿐이다.) 대학가에 변변찮은 서점 하나 없다는 사실은 못내 불만 스럽다. 인천 시내에서도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서점이라고는 버스를 타고 주안엘 나가야 2군데 정도 있다. 그리고 인천 터미널 근처에 인천 교보문고가 몇 년 전에 들어섰을 뿐이다. 인천이 이 모양이니 매번 전국에서 애들 성적이 꼴찌인게 당연한 것 같다.

*** 돈을 얼마나 모아야 할까? 내 나이 한 50쯤 되면, 그때는 더더욱 서점을 보기가 어려워 질 것이다. 내 작은 바람이 있다면 그 즈음 되서 하던 일 다 때려치우고 작은 서점이나 하나 운영하면서 책이나 읽고 소일 하면서 지내고 싶다. 그런데 얼마나 있어야 서점을 차릴 수 있을까? 그리고 책 잘 안팔려도 먹고 살면서 그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얼마나 될까? 얼마면 되냐고? 근데, 이대로 가다간 얼마나 나발이고 그때까지 땡전 한 푼 모으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맘 같아서는 나중에 나한테 서점 하나 차려준다는 여자 있으면 눈 딱 감고 장가들 수도 있을거 같다. 그럴 능력 있는 여자가 나 같은 것 데려갈 리는 만무하고, 지금부터라도 나중에 서점하나 차려서 먹고 놀 만큼의 돈을 차근차근 모아야 할 듯 싶다. 재테크 관련 책을 읽어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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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12-24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주안역사에 생겼단 말이죠. 이번에 친정가면 꼭 들려보렵니다.
전 동인천역앞에 '대한서림'단골이었고요. 지금도 친정갔다가 가끔 터미널 영풍문고에서 하나씩 사들고 옵니다. 나의 인천사랑을 누가 알아줄려나? ㅎㅎ
저도 한때 서점을 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마을도서관으로 만족합니다!

멜기세덱 2007-12-24 19:49   좋아요 0 | URL
주안역 안에 생겼더라구요. 저도 대한서림에 아주 가끔 갑니다..ㅎㅎ
순오기님의 인천사랑은 잘 몰라도, 멜기사랑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ㅋㅋㅋ

순오기 2007-12-25 06:14   좋아요 0 | URL
ㅎㅎ 멜기사랑뿐 아니라 인천사랑도 알아주시지잉~~ㅎㅎㅎ

바람돌이 2007-12-24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처럼 예쁜 아이 하나 낳아서 그 아이를 도서관 사서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시는게 나을듯합니다. ㅎㅎ 근데 멜기세덱님한테 제가 인사는 햇었나요? 자주 드나들기는 했는데 전에 댓글을 남겼는지 어쨌는지는 기억이 가물 가물.... ㅎㅎ

멜기세덱 2007-12-24 19:50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은 아직 아이신가요? 아님....아이를 낳으셨단건가요? ㅋㅋㅋ
저도 자주 뵈었던거 같은데, 안녕하시지요? ㅋㅋㅋ

마늘빵 2007-12-24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깐 이 페이퍼는 서점 차릴 돈 있는 여자를 향한 구애 페이퍼란 말이지 =333

멜기세덱 2007-12-24 19:51   좋아요 0 | URL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말하자면 다목적 페이퍼라고나 할까요...ㅋㅋ

심술 2007-12-24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히, 맞춤법 틀린 게 눈에 띄네요. 찾아보시길. '돈을 얼마나 모아야 할까?'로 시작하는 마지막 문단에 있습니다.

멜기세덱 2007-12-25 00:49   좋아요 0 | URL
크크크, 전 무척 많이 띄네요. 혹시 '안팔려도'를 말하시나요? 띄어쓰기를 해야되는데요.ㅎㅎ 그냥 주저리다보니...ㅋㅋ
몇 개 더 찾아보죠. '되서'는 '돼서'로, '있을거'는 '있을 거'로, '할 듯 싶다'는 '할 듯싶다'로, 아잉...만타...ㅋㅋㅋ근데 수정하기가 귀차나요...ㅋㅋ

심술 2007-12-25 01:35   좋아요 0 | URL
돼서라고 써야 할 되서를 말한 거였는데 님 댓글 읽고 보니 띄어쓰기 잘못된 것도 보이는군요. 뭐 맞춤법이랑 띄어쓰기 틀린다고 세상 끝나는 것도 아니고 좀 게으르다고 잡아 가는 것도 아니니 편하게 삽시다.
 

오늘은 알라디너를 위한 명언이기 이전에 저 스스로를 위한 명언인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까지의 이 카테고리의 글들 모두가 그런 것이긴 하지만, 오늘은 얼마 전의 우연찮은 행운도 있고 해서, 성원해 주신 알라디너 지인들께 감사의 인사를 이 글로 대신하려고 합니다. 아울러 연말이잖아요? 한 해 동안 다른 알라디너 분들보다는 턱없이 미미하지만, 많다면 많은 저의 1년 간의 독서를 반성하는 차원이기도 하답니다. 요 며칠 제 머릿속을 맴돌던 명언은 이것이었습니다.

   
 

書中自有千鐘祿(서중자유천종록)

책 속에 천종(千鐘)의 녹(관원에게 주는 봉급)이 저절로 들어 있다.

 
   

정말 그럴까요? 잘 아시다시피 천종의 녹은 아니더라도, 꽤 많은 알라딘 적립금은 들어있더군요. 이 말과 관련해서 성종과 구종직의 이야기가 전해지더군요. 낮은 관직에 머물던 구종직이 어느날 우연히 궁을 거닐던 성종을 만나 그 앞에서 『春秋(춘추)』를 줄줄이 외웠다는군요. 그런 놀라운 능력을 가진 구종직을 성종은 하루 아침에 부교리로 승차시켰답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7급정도 공무원이 하루 아침에 장차관급으로 승진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책을 많이 읽고 열심히 공부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 노력에 걸맞는 결과가 따라온다는 것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온 이 행운이 이런 말로 미화하기에는 제게 너무 자격이 없습니다. 고작 리뷰 하나 용케 써서 어떨결에 봉잡은 것 가지고 "書中自有千鐘祿(서중자유천종록)"을 말하니 이 아니 가당찮은 노릇입니까? 민망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을 계기로 얼마간 숙연히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과연 나는 독서를 통해서 무엇을 얻고, 독서는 내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그럴 때 참 막연합니다. 어떤 가시적인 결과는 전연 보이지 않고, 매일 매일 허송세월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고 리뷰를 써서 이주의 마이리뷰도 당선된 적이 있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 책이 내게 무엇을 주었다면, 그것은 부끄러움일 뿐이고, 그 이상은 없습니다. 『88만원 세대』도 『만들어진 신』도 천종록은 커녕 일종록 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괜히 머리싸매기만 할 뿐, 내게 돈이 될만한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재테크 관련 서적이나 자기 계발서 같은 것을 읽으면 좀 다를까요? 저는 그런 것들을 가급적 읽지 않습니다만, 그런 책을 읽고 천종록을 얻었다는 얘기를 아직은 듣지 못했습니다. 고사를 보아도 그런 책에서 천종록이 나올 것 같지는 않기도 하구요. 『희망의 인문학』의 리뷰가 당선이 되서 꽤 많은 득을 얻었지만, 그것이 제게 진정한 천종록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책이 가르쳐 준 것은, 책, 나아가 인문학을 통해 어떻게하면 천종록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그 왕도를 얼핏 엿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말이 참 정리가 안 됩니다만, 오늘은 이렇게 정리가 안 되는 대로 그냥 주저릴까합니다. 앞으로 저나 여러분이나 책 읽기는 계속하시겠지요? 천 만 금, 억 만 금을 벌기 위해 기를 쓰고 책을 읽으시는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무턱대고 읽는 저같은 사람은 간혹 이거 뭔 한가한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든답니다. 그러나 "書中自有千鐘祿(서중자유천종록)"을 생각하면서, 그 천종록이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그렇게 감내하면서 책을 읽으려고 합니다. 과연 천종록은 무엇일까요? 입신양명도 아니고 일확천금도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아직 진정 잘 모르지만, 내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세상에 그나마 쓸만한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책이 제게 주는 천종록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올해의 책 중에 가장 값진 것으로『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꼽는데요, 이것은 그 책을 통해 내가 사는 이 세상은 참으로 얼마나 부조리한가를 깨달았기 때문이고, 그러면서도 아무 것도 그런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어떤 노력도 못하고 있다는 부끄러움 때문입니다. 내가 변화할 때 이 책은 내게 천종록을 준 것이 아닐까요? 지금까지의 독서가 천종록을 움켜 쥘 듯 하면서도 놓쳐버린 것만 같습니다. 내년에는 좀 달라질 수 있어야겠죠? 여러분들도 그렇게 되시길 바랍니다. 이미 그렇게 되셨다면, 만종록(萬鐘祿), 억종록(億鐘祿)에 도전해 보시구요. 모두들 편한 밤 되십시오. 멜기세덱이었습니다.

* 이 말의 출처가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보니 속담이라고 하기도 하고, 다양한 고사들에서 인용되고 있는 것도 같고, 잘 모르겠더라구요. 그런데 아마도 중국 北宋(북송) 제3대 황제(997-1022)였던 眞宗(진종)의 권학문이지 싶더군요. 「眞宗皇帝勸學文(진종황제권학문)」의 "書中自有千鍾粟 (서중자유천종속)"의 변형이 아닐까 싶네요. 말이 나온 김에 이 「권학문」을 한 번 감상해 보시지요. 느끼는 바가 참 많습니다.

   
 

富家不用買良田(부가불용매량전)
                                  집을 부유하게하려고 좋은 밭을 사는 것은 소용없다.
書中自有千鍾粟(서중자유천종속)
                                  글 가운데 자연히 천종의 곡식이 있도다.
安居不用架高堂(안거불용가고당)
                                  삶을 편하게 하려고 큰 집을 짓지마라.
書中自有黃金屋(서중자유황금옥)
                                  글 가운데 자연히 황금옥이 있다.
出門莫恨無人隨(출문막한무인수)
                                  문을 나설 때 따르는 사람 없다고 한하지 마라.
書中車馬多如簇(서중거마다여족)
                                  글 가운데 수레와 말이 떼지어 있도다.
娶妻莫恨無良媒(취처막한무량매)
                                  장가를 들려는데 좋은 중매 없다고 한하지 마라.
書中有女顔如玉(서중유녀안여옥)
                                  글 가운데 얼굴이 옥같은 여자가 있도다.
男兒欲遂平生志(남아욕수평생지)
                                  사나이가 평생의 뜻을 이루고자 한다면,
六經勤向窓前讀(육경근향창전독)
                                  육경을 부지런히 창 앞에 두고 읽어라.

-「眞宗皇帝勸學文(진종황제권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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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12-21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많이 음미하고 갑니다.
'책을 읽고 변화할 때 천종록을 준 것이 아닐까'에 공감...
책을 읽고 깨달은 것은 나의 삶에 실천해야겠다는 다짐과 같이!

마노아 2007-12-22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의 사고에서 깊은 깨우침을 새기는 멜기세덱님이 근사합니다. 많이 공감하며 고개 끄덕여보아요.

2007-12-23 16: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가 있을 겁니다. 푸하하하...

저를 보고 싶으신 "미모의" 여성 알라디너 분들은 내일 롯데월드로 달려오세요.ㅎㅎㅎ

제가 아이스크림도 사드리고, 회전목마도 태워드릴게요.ㅋㅋㅋ

전, 회전목마 이상은 못 탑니다. 무서워서~~

아참, 오전에 투표는 하고 간답니다. 우리 영길이 형님~~~

글고, 왜들 제게 관심이 없으신 거에요.ㅠㅠ;;

이벤트도 뜸하시고, 결과 발표도 호응이 거의 없네요...ㅜㅜ;;

이글 보시는 nabi님, 나루님, 낡은구두님, 순오기님께서는

http://blog.aladin.co.kr/criticahn/1768178 를 확인해주세요...ㅎㅎㅎ

ㅋㅋㅋ

내일 롯데월드 오셔서 저와 뜻밖의 '동행(同行)'을 해보시지않으시렵니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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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12-19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는 큰 상관이 없는 멜기님의 페이퍼지만 혹시라도 멜기님을 뵙기 위해 롯데월드로 달려가실 분들을 위해 사족을 붙이자면...제목의 내일이란 19일일까요? 20일일까요?

멜기세덱 2007-12-19 02:42   좋아요 0 | URL
크아~~~오늘이군요....ㅋㅋㅋ오늘,...

푸하 2007-12-19 0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성 알라디너는 안 되나요? 그러면 정말 '뜻밖의' 동행이겠군요.^^
근데 남성끼리 노는 것도 재밌을 수 있겠어요.ㅎ~

멜기세덱 2007-12-19 22:24   좋아요 0 | URL
안 됩니다...^^;;

웽스북스 2007-12-19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멜기님 근데 롯데월드를 혼자 가시는 거에요?

멜기세덱 2007-12-19 22:24   좋아요 0 | URL
혼자는 아니고요, 남자 후배 하나, 여자 후배 하나...ㅋㅋㅋ

웽스북스 2007-12-20 00:07   좋아요 0 | URL
아이쿠! 셋이 가시다니, 짝맞추기 힘들었겠다 ㅋ

멜기세덱 2007-12-20 00:10   좋아요 0 | URL
그래서 이 페이퍼를 썼습니다만....웬디양님은 오시지 않았지요...ㅋㅋ

웽스북스 2007-12-23 16:16   좋아요 0 | URL
저 따옴표 해놓으신 말에 지레 쫄아서요 ㅋㅋㅋㅋㅋ

마늘빵 2007-12-19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혼자 거기서 뭐하세요 -_-

멜기세덱 2007-12-19 22:24   좋아요 0 | URL
혼자 아니라고요...~~

마노아 2007-12-19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곡, 거기서 뭐하십니까? 정말 회전목마 이상은 못 타요? 대관람차도???

멜기세덱 2007-12-19 22:25   좋아요 0 | URL
대관람차가 뭐죠?ㅎㅎㅎ
자이로드롭을 타자기에 극구 거절했습니다.
번지드롭은 좀 덜 해보이기에 탔다가 토하는 줄 알았습니다.
범퍼카가 재밌더군요.ㅋㅋㅋ

웽스북스 2007-12-20 00:07   좋아요 0 | URL
자이로드롭, 전 정신적으로 버틸 수 있는데 나이가 드니까 심장이 걱정되서 못타겠더라고요. 정말 진지하게 정색을 하고 이 말을 했더니 애들이 어이없어했어요 진심인데. 번지드롭은 자이로드롭보다 더 잔인하지요- 자이로드롭은 한방이지만 번지드롭으 끝났구나 싶으면 또올라가잖아요 ㅋㅋ 그래도 저 바이킹이나 청룡열차는 잘타요 ;p 범퍼카는 짱 좋아해요 제가 면허가 없어서 ㅋㅋㅋ

2007-12-19 2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멜기세덱 2007-12-19 22:26   좋아요 0 | URL
거의 매일같이 들어가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근데, 제가 워낙에 법없이 살 사람이라서...
열심히 살펴보고 있으니 제 능력 닿는데로....ㅎㅎㅎ

세실 2007-12-19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동지 만났습니다. 저두 회전목마이상은 타지 못해요. ㅎㅎ
물론 회전목마 타는것도 즐기지 않습니다. 그저 사람 구경하는 재미로 갑니다.
롯데월드 사람이 넘 많아서 가볼 엄두가 나지 않아요~~ 즐거운 시간 되셨나요?

멜기세덱 2007-12-20 00:14   좋아요 0 | URL
오늘은 사람이 무척 많더군요. 언제 한 번 같이 가셔서, 우리 회전목마 신나게 타요...ㅋㅋㅋ

라로 2007-12-20 0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커피잔까진 탑니다~.ㅎㅎ
미모인 제가 빠져서 쫌 그랬겠다요, 미안해요,,제가 바빴어서 페이퍼를 이제야 봤다요,ㅎㅎ


순오기 2007-12-20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애들 어릴 때 데려가서 하루 온전히 살고 나왔어요.
뭐 하나 타려면 어찌나 줄서서 기다려야 하는지... 쩝!
그후 안 가봤습니다. 애들이 다 커서 갈 일도 없고요 ^^
멜기님, 즐거우셨나요?

실비 2007-12-20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재미겠다.+_+
 

[語文生活 바로잡기]

外來語 原音主義 表記의 明暗

沈在箕(서울大 名譽敎授)

우리나라 語文生活(어문생활)의 不條理(부조리)를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漢字語(한자어)를 漢字로 적지 않으려는 風潮(풍조)라 하겠다. 外來語(외래어) 原音主義(원음주의) 表記(표기)도 漢字로 적을 수 있는 中國(중국)과 日本(일본)의 人名(인명) · 地名(지명)에 와서 딜레마에 빠진다.

外來語란 원래 외국어이지만 우리나라 안에서 우리말 次元(차원)으로 쓰이는 낱말이다. 잉크, 펜, 마이크, 필름 같은 일반명사도 외래어이고 아이젠하워, 아웅산 수지, 오사마 빈 라덴 같은 사람 이름이나 샌프란시스코, 블라디보스토크, 프랑크푸르트 같은 땅 이름도 외래어의 범주에 드는 것이다.

그런데 世界(세계)의 모든 나라가 이 外來語를 表記하고 發音(발음)할 때에는 자기 나라 말소리의 성질에 맞추어 발음하는 것을 慣行(관행)으로 하고 있다. 예컨대 英語(영어)에서는 프랑스의 땅 이름 'Paris'를 '빠리'라 발음하지 않고 '패리스'라고 발음하며, 러시아의 땅 이름 'Moskva'를 '모스크바'라 발음하지 않고 '모스코우'라 발음한다. 이것이 生硬(생경)한 外國語(외국어)를 자기 나라 音韻體系(음운체계)에 맞추어 歸化(귀화) 定着(정착)시킴으로써 日常(일상)의 言語生活을 편하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일찍이 이러한 外來語 受容(수용) 原則(원칙)에 따라 二重(이중)의 體系가 通用(통용)되던 때가 있었다. 즉 가까운 나라, 중국과 일본의 人名 · 地名은 모두 漢字로 적을 수 있으므로 漢字로 적고 우리나라 한자음으로 읽었고, 그 외의 먼 나라는 그 나라 발음을 존중하여 그것을 한글로 音寫하는 이른바 原音主義를 채택하였었다.

그래서 魯迅(노신), 蔣介石(장개석), 毛澤東(모택동), 北京(북경), 延吉(연길), 上海(상해)가 우리에게 익숙하였고, 伊藤博文(이등박문), 臣秀吉(풍신수길), 東京(동경), 大阪(대판)이 우리 입에 편하게 오르내렸던 것이다.

그런데 1986년에 改定(개정) 施行(시행)한 外來語 表記法은 大原則을 原音主義 하나로 固定(고정)시키고, 다만 필요한 경우 漢字를 倂記(병기)하도록 하였고 종전 慣行을 약간 許容(허용)하는 것으로 規定(규정)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이 세 가지 表記가 共存할 수 있게 되었다.

· 鄧小平 / 떵샤오핑 / 등소평
· 胡錦燾 / 후진타오 / 호금도
· 黃河 / 황허 / 황하
· 臺灣 / 타이완 / 대만
· 北海道 / 홋카이도 / 북해도
· 玄海灘 / 겐카이나다 / 현해탄

그러나 言論(언론) · 出版物(출판물)에서는 漢字가 실질적으로 사라졌으므로 '쑨원', '와이멍구'가 각각 '孫文(손문)'이요, '外蒙古(외몽고)'인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더구나 일본의 人名에 이르러서는 철저한 원음주의가 지켜져서 '후꾸사와류기치'가  '福澤諭吉(복택유길)'이요, '나쓰메소세키'가 '夏目漱石(하목수석)'이라고 짐작할 수도 없다.

저들은 우리나라 固有名詞(고유명사)를 모두 자기네식으로 부른다. 金大中(김대중)을 '찐따종', 盧武鉉(노무현)을 '루우쒠'으로 부르고 三星(삼성)을 '싼씽', 現代(현대)를 '쎈따이'로 부른다. 李承晩(이승만)을 '리쇼방', 全斗煥(전두환)을 '젠또깡'으로 부른다.

우리도 중국 · 일본의 고유명사는 우리 한자음대로 읽는 전통을 다시 찾아야 할 것이다.

- 『語文生活』통권 제121호 2007.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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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12-18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예전처럼 우리 한자음대로 읽는 것이 좋아요!
원음으로만 써 놓으니 도대체 뭔 소린지 모르겠더라고욧!
 

* 중학교 때, 우리 국어 선생님은 예뻤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의 나와는 얼추 곱절의 나이 차이가 아니었을까 한다. 1학년 때부터 그 선생님께 국어를 배웠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국어는 잘하는 편이었지 싶다. 그러니 그렇게 튀는 편이 될 수가 없었다. 특출나게 국어를 잘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좋아하는 선생님께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에 생각해 낼 수 있는 방법은 선생님께 장난을 치는 것 밖에 없어보였다.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는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되려 더 심하게 장난질을 치듯이, 그때의 어린 나도 선생님께 장난을 많이 치고 어리광도 부리고 그랬던 것 같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나를 혼도 내기도 하셨지만, 대부분 자상하게 어리광을 받아주셨던 것 같다. 2학년이 되어서도 그 선생님께 국어를 계속 배우게 됐다. 나이가 좀 들었으니 좀더 강력한 방법을 써야 되겠다 싶었는지, 쉬는 시간 우리 교실 복도로 지나가는 그 선생님을 발견하고는 교실 안에서 큰소리로 "어이, 서 선생"하고 불렀다. 어른들의 목소리를 흉내내겠다고는 했지만, 변성도 안 된 나의 목소리로 그것은 불가했다. 교실 문이 열리고 나를 쳐다보시는 그 선생님의 눈빛은 예사롭지 않았다. 화가 많이 나셨던 것 같다. 그런데 별 말씀은 없으시고 나를 몇 초간 노려보시더니 교실 문을 닫고 나가셨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5교시 수학시간. 수학자 오일러와 끝자리 하나가 달라서 우린 그를 오일러 동생쯤으로 여겼다. 수학 선생님 말이다. 5교시가 끝나갈 무렵, 그는 나를 불러 따라오라고 했다. 나는 왠일로 그러는지 궁금한 가운데 그 선생님을 따라갔다. 그 선생님을 따라서 간 곳은 이상하게도 교무실이 아니었다. 복도 끝의 한 구석진 공간으로 나를 데려가더니, 나를 막무가내로 패는 것이 아닌가. 백 대를 넘게 맞았다. 당구 큐대를 잘라만든 그의 몽둥이로 나는 손이고 엉덩이가 몽둥이 가는 대로 참 무참하게 맞았다. 그렇게 맞고 나서 나는 내가 왜 맞았는지를 알았다. 감히 학생으로서 선생님께 무례한 언행을 했기 때문이다. 맞을 때는 그렇게 아팠는데, 그 이유를 알고는 왠지 모르게 아플 수가 없었다. 후에 교실 문을 닫고 나간 국어 선생님이 울었다고 들었다. 못내 미안했다.

그렇게 그 국어 선생님을 볼 때마다 고개를 들 수 없었고, 장난도 칠 수 없었다. 나는 죄송해서 피해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그 선생님의 결혼 소식이 들렸다. 다른 학교로 전근 간, 나를 무참하게 때렸던 그 오일러, 수학 선생님과 결혼을 한다는. 나 때문이었을까? 교단에 선 지 얼마 안되는 젊은 여 선생님에게 한낱 어린 중학생의 그 말은 큰 상처를 주었을 것이고, 그걸 앞장서서 응징한 그 선생님에게 마음이 간 것은 아닐까? 아 그렇게 나의 어린 로망은 끝나버렸다.

** 중학교 3학년때 성적이 꽤 많이 올랐다.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것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되어서일까? 이유는 잘 모르겠다. 고등학교를 가서부터는 반에서 1등도 한 적이 있다. 다 중학교 3학년 때 잠깐 공부해서였다고 생각된다. 그때부터 내가 공부를 잘 한다고 동네에 소문이 나더니, 나를 대하던 어른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마냥 장난꾸러기, 말썽쟁이로만 보시던 어른들이 나를 어느 정도 인정해 주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 아닌가.

나도 으쓱해져서 제대로 잘 다니지 않던, 교회를 열심히도 다녔다. 고등학교 2, 3학년 때는 성가대도 하고, 찬양단도 하면서 누구보다도 열심이었다. 그때 나는 학교와 집, 그리고 교회밖에 모를 정도였으니 말이다. 내가 그래도 노래를 잘해서 교회 안의 학생 찬양단의 리더가 됐다. 고 3 때였는데, 그 때 그 찬양단에서 키보드와 피아노를 치던 한 살 아래 여학생이 있었다. 키도 작고, 통통하고, 흔히 주걱턱이라고 불리던 얼굴에, 수줍음 많고 말 없고 조용한, 남학생들한테 정말 인기가 없었던, 그런 여자아이였다. 예전부터 같은 동네에 살면서 쭉 알아왔지만, 찬양단을 함께 하면서 피아노를 치는 그 아이의 모습이 차츰 내 눈에 크게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내가 그 아이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 아이가 피아노를 칠 때마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보였다. 그런 그 아이가 나한테는 언제나 친절하고 정답게 대해주니, 그 아니도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생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아이도 그렇고 나도 별다른 말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무척 연애시집을 많이 읽으며 원태연을 천재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손가락 끝으로 원을 그려봐,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이야!! 내겐 이 말이 그때 무척 절절했었다.

발랜타인데이 때, 그 아이가 내게 교회에서 만나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헉. 그 아이도 나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확신을 하고 기쁜 마음에 달려가보니, 한 여자아이가 함께 나와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엔 같은 찬양단에서 드럼을 치던 내 친구도 오는 게 아닌가? 그렇게 넷이 모였다. 두 여자아이의 손에 각각 초콜렛이 들려 있었다. 그런데, 내 앞에서 내게 초콜렛을 건내는 여자아이는 그 여자아이가 아닌 게 아닌가? 아뿔싸. 이런. 그 아이는 내 친구를 좋아했던 거였고, 나와 또 다른 여자아이는 들러리 비슷한 것이였던 것이다. 나의 로망은 그렇게 또 식어버렸다.

*** 고 3이 끝나갈 무렵, 그래도 열심히 다니던 교회에서 지역 합창대회를 나간 적이 있었다. 독창, 중창, 합창을 부문별로 각 교회 대표들이 모여 겨루는 대회였는데, 나는 우연찮게도 독창에 나가게 됐다. 그렇지만 입상은 못했다. 너무 떨었던 것이 원인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친구녀석이 내게 편지를 건내는 것이 아닌가? 그 대회에서 나를 본 한 여고생이 친구의 친구를 통해서 내게 편지를 보내왔던 것이다. 받아 들고 집에와서 읽어보니, 앞으로 좋은 사이로 지냈으면 좋겠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여자아이였지만, 그날부터 한 달 동안 심장이 두근거렸다.

답장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편지지도 예쁜 걸로 사고 펜도 얇게 잘 써지는 걸로 사고 매일 매일 편지를 썼다. 그런데, 어째 한 문장도 제대로 나가지 않는 게 아닌가? 학교 백일장에서 대필 전문이었던 내가 연애편지를 그렇게도 못 쓸 수가 있다니, 내가 참 이상했다. 한 달이 넘게 수십통의 편지를 쓰고, 구겨버리고 찢어버리고, 결국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이후 그 여고생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편지도 없었다. 거절당한 것이라고 생각할까봐 걱정이었고, 답장도 못 보낸 내가 못내 밉고 아쉬웠다. 오 마이 로망이여

**** 대학에 들어와서 무척 방황을 많이 했다. 사실 내가 원했던 진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주변 여건이 여의치 않아 사범대학을 오기는 했지만, 대학 생활이 제대로 될리가 없었던 것이다. 학고라는 것도 맞고 어쩔 수 없이 휴학을 하고, 그렇게 지내는 동안 당구도 배우고 바둑도 배우고, 심지어 친구들하고 고스톱이나 섯다, 당구 내기 등등등, 그렇게 밤생활을 하면서 1년을 넘게 지내다가, 군대를 갔다.

군대를 제대하고는 어느 정도 마음을 잡았다. 선생님이라는 것도 전혀 내 적성에 안 맞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길도 무척 흥미롭고 보람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것이다. 대학 생활을 그때부터 무척 열심히 했다. 대학 친구들과도 어울리고 과내 동아리였지만 동아리활동도 열심히 했다. 시를 쓰고 읽는 동아리였다.

어느덧 대학을 졸업할 무렵, 나는 중간에 휴학 기간이 있어서 내 동기들보다 길게는 2~3년, 짧게는 1년이 차이가 났다. 후배들과 함께 졸업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범대학생들에게는 매년 1회 중요한 시험이 있다. 임용시험이라는 건데, 후배와 함께 그 시험에 원서를 접수하러 가던 택시 안에서, 나는 이대로 대학생활을 끝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11월의 어느 날인가, 나와 高군은 택시를 동승했다. 중등교원임용시험에 당당히 원서를 넣기 위하여 가는 길, 거기서 우리의 시집은 탄생을 엿본 것이다.

7, 8년간의 대학생활이 끝이 보일 무렵, 우리가 당당해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생일대 가장 중요한 시험에 원서를 접수하러 가는 그 길목에서 우리는 왜 시집을 생각했는가?

택시를 타고 가면서, 나는 조금 우울해졌다고나 할까, 그리고 조금 아쉬웠을까, 무엇인가 그냥 이렇게 대학생활을 접기는 싫었던 것이다. 낭만이 없고, 이상이 없고, 도전이 없는, 현실에 얽매어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닭장 안에 갇혀서 알을 낳고, 알을 낳고, 도축되고 말 그런 현실, 거기에 얽매이는 것만 같아서 그 무엇인가 획기적 돌파구가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이 시집이 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생각을 공유하고 또 한 명의 동참자를 떠올렸다. 李군!

…(중략)…

우리의 낭만은 무엇일까? 명색이 우리는 문학하는 사람들이고, 시 쓰는 사람들인 고로, 최고의 낭만은 다름 아닌 이 한 권의 시집인 것이다. 윤동주 시인을 기억하는가? 그는 연희전문시절 손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하여 만든 시집이 있었다. 백석을 기억하는가? 그는 그의 한 권의 시집을 온 심혈을 기울여 아름답고 멋진, 그리고 가장 소중한 추억의 한 권으로 만들기에 힘썼다. 우리도 그런 낭만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의 이상과 도전은 무엇인가? 우리의 이상은 제각각이고 도전은 무한하다. 낭만이 있는 이들에게 이상과 도전은 그 누구도 제한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원대할 것이다.

『청록집』을 기억하는가? 우리의 시집이 거기의 견줌을 얻는다면 유쾌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시집은 우리만의 시집으로 기억되는 것이 가장 기쁜 일일 터이다.

…(후략)…

- 시집 서문중에서

 
   

그렇게 세 명의 친구와 함께 돈을 모아서 시집을 만들었다. 도서관에만 처박혀서 시험공부에만 매달려, 잔디밭에 앉아모여 선후배가 막걸리를 돌려 마시는, 그런 여유조차 없이 대학은 너무 각박해져만 가고, 기타를 치면서 신나게 노래부르며 놀던 그런 낭만도 전혀 찾아볼 수 없던 대학생활을 마감하면서 뭔가 기억에 남을 만한 그 무엇을 갖고 싶었던 것이다. 로맨스는 못해봤지만, 낭만을 가져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그리고 이렇게 썼다.

   
 

우리들이 만든 것은 시집만이 아니다. 10년이 지난 후에 쑥스러운 웃음이라도 지을 수 있는 추억이다. 그리고 낭만이다.

"별이 없는 꿈은 잊혀진 꿈"이라고 폴 엘뤼아르는 말했다. 그렇다. 우리들의 꿈이 잊혀지지 않도록 '별' 하나 하늘에 띄운 것이다.

 
   

***** 며칠 전 3번째 임용시험을 봤지만, 결과는 예측가능하다. 낙방이 불을 보듯 뻔하다. 하지만 실망하거나 낙심하진 않는다. 현재 나는 교사가 되기에는 노력도 능력도 매우 부족함을 절감한다. 설령 누구의 백으로 사립에 갈 기회가 생겨도 나는 지금 마음으로는 사양할 것이다. 내년에는 그 부족함을 열심히 노력하여 채우고 싶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멋진 국어선생님이 되는 게 내 당면 목표이다.

누보 로망이라고 할까? 나의 새로운 로망은 멋진 로맨스다. 임용시험에 합격해서 첫 부임하는 학교는 여고였으면 좋겠다. 여고생들의 국어선생님.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선생님이 나오면 죄다 국어선생님이다. 얼마전 KBS에서 한 드라마에서도 양동근이 국어선생님으로 나왔다. 일단 조건은 갖춘 셈이다. 나도 국어선생님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여기서 과감하게 나의 이 누보 로망을 밝히자면, 나는 나의 첫 제자와 아름다운 사랑을 해보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것은 없지 않을까? 선생님을 사랑하고 제자를 사랑하는 것은 선생과 제자라는 관계에 제한될 수 없는 숭고한 것이다. 그러나 그 관계에서 사회윤리 도덕적 문제를 항상 주의를 해야하겠지. 사랑하는 제자를 끝내 잘 지켜주고 가르치고 키워서, 장차 멋지게 결실을 맺는다면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예쁜 여제자와 신참 교사의 사랑. 내 가슴 속 깊이 품은 로망이다. 이 로망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아 내년이면 서른인데, 이 늙은 신참 교사를 어느 여고생이 좋아해줄까? 걱정은 거기에 있다. 일단 공부나 제대로 해야겠지만.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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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7-12-14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잘 가다가... 마지막에서..
사회면에서 멜기세덱님을 만날 수 있겠네요 ㅋㅋㅋㅋㅋㅋㅋ

멜기세덱 2007-12-14 01:56   좋아요 0 | URL
언제부턴가, 제 페이퍼에 첫 댓글 단골이 되셨네요. ㅎㅎㅎ
진실게임 같은데도 함 나가보려구요...ㅋㅋㅋㅋ

조선인 2007-12-14 08:14   좋아요 0 | URL
흑흑 저도 걱정이 눈앞을 가립니다. ㅠ.ㅠ

멜기세덱 2007-12-14 09:57   좋아요 0 | URL
ㅎㅎ 괜한 걱정이세요. 아직까지 로맨스는 안 이뤄지더라구요...ㅋㅋㅋ

웽스북스 2007-12-14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 로망스 보셨어요? 크크 그건 정말 모든 선생님들의 '로망들'이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ㅋㅋ 난 선생이고, 넌 제자야!! ^^
그리고 우리 감우성님께서도 '사랑해 당신을' 드라마에서 채림양과 함께 멜기님의 로망을 현실화하셨었죠 ^^ 마지막 부분은 어제의 태그 '드라마'와도 나름 어울리네요, 일단은 임용 첫해에 남고/남중으로 가는 불행이 없길 먼저 기도해야겠네요 ^^

멜기세덱 2007-12-14 01:57   좋아요 0 | URL
어젠 아침드리마폐지론을 쓰려다가 힘들어서 말았어요..ㅋㅋㅋ
아참드라마때문에 맨날 지각을 해서리....ㅎㅎㅎ
아~ 나의 사랑은 어디서 지금 잘 크고 있겠죠? ㅋㅋㅋ

마늘빵 2007-12-14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잘 나가다가.... ㅋㅋㅋ 그나저나 그 시집 한 권 주세요. 제가 시집은 안 읽지만 멜기님 시집은 고이고이 간직하겠습니다.

멜기세덱 2007-12-14 01:57   좋아요 0 | URL
앗, 시집 제고가 많긴 하지만, 민망한뎅....ㅋㅋㅋ

순오기 2007-12-14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멜기님은 진짜 제대로 된 로망을 쓰신 거야요.
아~ 우리 막내가 이제 중학교 가는데...그쪽으로 전학시킬까...
은근, 이런 사람이 내 사윗감이었으면 했다고욧! ^^

멜기세덱 2007-12-14 10:00   좋아요 0 | URL
헉! 이제 중학교요?
그럼 앞으로 6년은 더 기다려야 되는 거네요? ㅋㅋㅋ
그럼 36인뎅....ㅋㅋㅋ 하여간 장모님으로 깎듯이 모실 자신은 있습니다.ㅋㅋㅋ

순오기 2007-12-14 10:43   좋아요 0 | URL
호호호~ 장모님으로 깎듯이 모실 자신 있다니, 이번에 거기로 대학가는 큰딸도 있는데... ㅎㅎㅎ

마늘빵 2007-12-14 10:55   좋아요 0 | URL
엇 그렇담 큰 딸은 제게... =333

멜기세덱 2007-12-14 11:43   좋아요 0 | URL
어허,,,,아프군이 나설 자리가 아니에요...ㅋㅋㅋㅋ
근데,,,거기라뇨? 여기 우리 대학 말이에요? ㅎㅎㅎ

마늘빵 2007-12-15 00:48   좋아요 0 | URL
저두 껴주세요.

순오기 2007-12-15 11:14   좋아요 0 | URL
ㅎㅎㅎ~~ 알라딘에서 사위 둘을 맞아볼까요!
큰사윈 아프님, 멜기님은 막내사위?
거기는 00교대거든요.
교사커플... 최상일텐데... 아이는 내가 잘 키워줄 수도 있고! ㅎㅎㅎ
크~~~~우리애들이 알라딘에서 자기들 팔아먹지 말라네요~ 헉 ^^

멜기세덱 2007-12-15 02:26   좋아요 0 | URL
우왕 거기 교대도 들어가기 꽤나 힘든뎅....ㅎㅎ
큰따님께 축하한다고 전해주세요...^^;;
제가 그쪽 교대 수학교육과 교수님 한 분을 잘 아는뎅...ㅎㅎㅎ
아무래도 큰사위는.....ㅋㅋㅋ

순오기 2007-12-15 15:06   좋아요 0 | URL
오우~ 멜기님, 수학교육과 교수님을 아시면 우리딸한테 도움되려나!^^
우리애들 전설의 56점 아시나요? 태그주제 성적표에 올린...ㅎㅎ
과 선택을 무슨 과로 해야 할지....

Mephistopheles 2007-12-14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기님이 선생님이 되신다면 왠지 여고생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고 다니실 것 같은 느낌이..^^

멜기세덱 2007-12-15 02:34   좋아요 0 | URL
이거이거,,,,완전 방송용 멘트처럼 들리는데요....ㅎㅎㅎ

엔리꼬 2007-12-14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멜기세댁님이 이렇게 나이 어리신(?) 분이었나요? 저는 저보다 많다고 생각했는데.. 쿠쿠쿵 아직 서른이 안되셨다니... 님의 페이퍼를 샅샅이 훑지 못했던 저의 불찰이네요.. 전체적으로 한자도 많고 어려운 글이 많아서 그랬나요?? 아무튼 리뷰 대박 축하드립니다.

멜기세덱 2007-12-15 02:35   좋아요 0 | URL
전 아직 어리답니다....ㅎㅎㅎ

깐따삐야 2007-12-14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제의 서재글 보고 찾아왔어요! 전 첫 발령을 남중으로 받았었는데 로망은 커녕, 완전 호형호제하며 지냈더랬죠. 야멸찬 현실이 아닐 수 없었지만 듣자하니 멜기님은 꽃미남이라시니깐 여중, 여고로만 가면 대박이겠는걸요?
근데 전 처음에 멜기세덱님이 멜기새댁인줄 잘못 봤어요. 새신랑 앞에서 부채 들고 황진이춤 추는 고운 새댁 쯤으로 생각했다는. 쿠쿠.^^

멜기세덱 2007-12-15 02:35   좋아요 0 | URL
하하하....황진이 춤 추는 멜(랑꼴리)한 새댁....ㅋㅋㅋ

심술 2007-12-14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왜 이렇게 웃기는지. 한참 즐겁게 웃고 갑니다.

멜기세덱 2007-12-15 02:36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

2007-12-15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