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정희진 선생님은 화이트보드에 마르크스프로이트를 나란히 쓰셨다. 근대, 구조, 개인 등에 대해 말씀하시던 중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적어도 이 두 사람의 사상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마르크스는 물론 프로이트도. 내게는 너무 먼 당신이여, 머나먼 당신 그대 프로이트여.

 















프로이트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프로이트 본격 비판서(?)’인 베티 프리던의 <여성성의 신화>가 생각난다. 엄격한 도덕관념과 여성 혐오가 지배하던 빅토리아 문화 속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던프로이트와 그의 이론은 그 시대 여성이 간절히 원했던 것이 남근이 아니라, 남근을 가진 사람들이 마음껏 누리는 자유와 지위(232)”였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프리던은 비판했다.

 















프로이트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필립 로스. 남녀 사이의 성적 긴장이야말로 이 세상 가장 중요한 일이며, 섹스야말로 남녀 사이의 가장 긴급한 용무라는 그의 주장. 뼛속까지 프로이트주의자. 프로이트와 연결해서 보자면 결정판은 역시 <포트노이의 불평>이 될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아는 것이 섹스라는 기발한 주장은 <프로이트 패러다임>에 나온다. 2020년 당시, 엄청 유행하던 ‘syo님표 프로이트 리스트중 하나다.

 


 적당한 말이 없어서 일단 인식애적인 충동이라고 번역했는데 원래는 지식을 좋아하는 충동입니다지식을 대상으로 하는 충동인 것이죠.

지식을 좋아하는 충동물론 이 충동은 당연히 성적인 충동입니다성적인 충동 중에는 구강 충동이나 항문 충동이 있듯이 인식애적인 충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입이나 항문으로 충동 활동을 하듯이 머리로 하는 충동 활동이 있다는 것이죠그런데 이것이 단순히 지식욕은 아닙니다여기서 지식을 좋아하는 충동이란 뭔가를 알고자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지적인 욕구이긴 한데그것이 곧 성적인 충동의 일종인 경우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아는 것이 섹스가 되는 경우입니다뭔가를 알고자 하는 욕구가 곧 성적인 충동의 연장선상에서 작동하는 것입니다지식이 곧 성적인 충동의 대상이 되는 경우죠. (157)


 















양자오의 <꿈의 해석을 읽다>도 프로이트 사상을 대략 이해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으나, 지금은 다 잊어버렸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다윈주의에서 받은 영감과 암시에 따라 프로이트는 이렇게 주장한다사람이 사람인 이유, 인간이 다른 생물과 다르게 진화의 최첨단에서 고등생물로 진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한편으로 강렬한 성욕을 가졌음에도 다른 한편으로 성욕을 억압하고나아가 성욕이 품고 있는 거대한 잠재력을 다른 곳에 쓰도록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131).


 















(미리 읽어 두어) 뿌듯한 책은 <인간 모세와 유일신교>이다.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과 닿아 있는 부분이 있어 확인한다고 꺼내 두었다. 프로이트 저작은 이 책, 딱 한 권 읽었다. 192, 책은 작고 두께는 얇다. 다음 책은 <늑대 인간>으로 찜해 두었다.

 

















(이제야 나온다) 이 책 <프로이트를 위하여>는 프로이트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츠바이크의 애정이 곳곳에 묻어나는 책이다. 1부는 프로이트 평전이고, 2부는 두 사람 간의 편지 & 엽서. 그리고 3부는 프로이트에 관련된 서평, 추모 연설 등을 묶어 두었다.

 


질병의 유일한 원인이 이었던 시대, 치료 또한 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었다. 현대 의학은 종교적인 것, 마법적인 것과 분리되었고, 이제는 일종의 과학으로서 대학에서 연구되기 시작했다(26). 과학적 의학에서 주도권은 의사가 쥐고, 오직 의사만이 치료의 주체가 된다. 기적적 치유의 탈신비화에 맞서 싸운(30) 첫 번째 사람인 파라켈수스는 이러한 현실에 반대한다.

 


'취급Behandlung'이라는 단어에 문제의 핵심이 놓여있다. 다시 말해 과학적 의술에서는 환자가 대상으로 취급되는 behandel' 반면, 영적 치유는 환자에게 우선 그 자신이 영적으로 '행위하기handeln'를 요구한다. 그 자신이 '주체'로서, 치료의 담당자이자 실행자로서, 질병에 맞서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능동성을 펼쳐 보이라는 것이다. 스스로 영적으로 떨쳐나서라, 의지의 통일에 집중해라, 자신의 존재 전체를 질병 전체를 향해 내던져라, 하는 환자를 향한 이 호소 속에 모든 정신적 치유의 본질적이고도 유일한 치료제가 존립하며, 그렇기에 많은 경우 치료사의 치료 행위는 다름 아닌 말하기에 국한된다. (33)



 




수술과 약물을 통해서가 아닌 말하기를 통한 치료. 이 황당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치료법 앞에서 일부는 부정적 감정을 드러냈고, 일부는 혐오의 시선을 보이기도 했다. 과학적 성과와 결과물, 객관성에 역행하는 사기꾼, 거짓말쟁이. 성의 문제를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온 사회에 맞서 정면승부를 벌였을 때는 그에 대한 비난이 한층 더 고조되었다. 프로이트는 끝내 정교수가 되지 못했다. 궁정 고문관도, 추밀 고문관도 되지 못했다. 정교수들 사이의 비정규 교수, 끝까지 프로이트는 비정규 교수였다. (90)  

 



프로이트를 비난하기는 얼마나 쉬운 일인가. 츠바이크는 정신 분석의 한계를 지적한다. 프로이트가 주장한대로 소수정예의 훈련된 전문가를 통한 정신 분석만이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기술이 심리 치료 영역에서 최종적이자 결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짚어냈다.(146)

 


하지만 츠바이크는 더 많은 시간 공을 들여 프로이트의 공로를 치하한다. 무의식이라는 대륙의 발견이 어떤 의미인지, 기존의 관념을 깨어 부수기 위해 온 사회와 맞서 혈혈단신으로 싸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말한다. 타협하지 않는 의지의 소유자, 프로이트와 같은 불굴의 의지를 가진 자만이 이루어낼 수 있었던 역사적 성과들을 꼼꼼히 되짚는다. 프로이트의 천재성과 위대함에 감탄하게 된다면, 그 반은 츠바이크의 몫이다.

 


그러나 로고스, 창조력을 지닌 말이 어떤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지, 입술이 허공 속에 일으킨 그 마법적 진동이 얼마나 많은 세계를 일으키기도 하고 허물기도 했는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다른 모든 영역과 마찬가지로 치료술에서도 오로지 말로 인해 진짜 기적들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위로의 말과 눈길만으로 인격이 인격에게 보내는 그 신호만으로, 오로지 정신에 의해, 때때로 완전히 망가져버린 기관들이 다시 한 번 재건된다는 사실에 그다지 놀라진 않을 것이다. (35)

 


몸과 정신, 신체와 영혼, 그리고 정신 분석의 역사를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1독을 해 봄직하다. 나는 츠바이크의 다음 책으로 간다.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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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당신이 무의식으로 흘려보낸 기억을 찾아드립니다
    from 의미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의미 2023-03-30 15:09 
    찾아가는 서비스ㅋㅋㅋㅋㅋ단발머리님의 페이퍼에 엮인 글 쓰려고 나 굳이 책장에서 이 책 다 빼오는 수고와 노동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여기서 추천하는 책이 굳이 있다면? 정도언 아저씨의 책(프로이트의 의자)정도 인 것 같고, 여기서 퀴즈. 여기서 제가 가장 뽑아오기 싫었던 책은? ㅋㅋㅋ향후 맞이하게 될 수많은 정신분석 지식, 무의식, 상징계 등을 다루는 페미니스트들의 이론을 더듬더듬 읽어보기 위해 양자오 선생님의 프로이트 설명을 한번 더 가져와서 가까운 전
 
 
다락방 2023-03-30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 앙투아네트 이후로 츠바이크에 완전 푹 빠지셨군요!

저는 여성학 처음 관심갖고 책 읽으면서 또 강연을 여기저기 들으러 다녔는데요. 그 때 정말 프로이트에 대한 여성주의 선생님들의 비난을 많이 들었어요. 저는 프로이트에 관심도 없다가 그 험담으로 프로이트를 먼저 접했는데, 그런데 그게 저에게는 나름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프로이트에 대해 관심도 좀 생겼고요. 정작 프로이트가 쓴 책은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는데, 저 모세 책.. 봐야겠어요. 저 책 보겠다고 벼른지 한참된 것 같은데 ㅎㅎ

단발머리 님의 책읽기 빠샤!!

단발머리 2023-03-30 22:22   좋아요 0 | URL
저의 첫 츠바이크는 <초조한 마음>이죠. 다락방님 서재에서 발견한 책이고요. 띄엄띄엄 읽는 편인데 연달아 두 권 읽었습니다 ㅋㅋㅋㅋ 한 권만 더 읽으려고요.

저도 다락방님과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아요. 프로이트 꼭꼭 씹는 이야기를 많이도 들었습니다. 정희진 선생님이 프로이트를 높이 평가하시는 걸 글에서도 강연에서도 언뜻언뜻 들으면서 많이 궁금하기는 했는데, 이 책 읽고나니 ‘프로이트 팬‘ 정도는 아니어도 프로이트편 될 거 같더라구요. 정말 대단한 사람인 건 분명하고요. 시대적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분명코 시대를 넘어선 사람이고요.

무엇보다 ‘말‘을 통한 ‘치료‘에 전 관심이 많은데요. 기독교가 특히 ‘말‘에 대해 ‘강박적으로‘ 주의하고 또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들을 제가 알고 있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아요. 프로이트는 어렵기도 하거니와 너무 두꺼워서 좀 두렵기는 한데, 그래도 저는 <늑대 인간>을 ㅋㅋㅋㅋㅋㅋ 찜해 두었어요. 그 늑대인간, 우리가 바라고 생각하는 그 늑대인간, 아닐 테지만요^^

다락방 2023-05-24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로이트의 늑대인간을 사려고 했는데 이렇게 또 단발머리 님과 만나네요. 땡투 드립니다요!! ㅎㅎ
 



싱가폴에 갔을 때였다. 그때 우리는 호텔을 잡지 않고 동생 숙소에서 머물렀다. 동생이 출근하면 수영장으로 나가 한국에서 가져간 돌고래 튜브에 바람을 잔뜩 불어 넣고는 작은 애를 태워 큰애가 쓱쓱 밀고 다녔고, 동생이 돌아오면 큰애와 동생이 펼치는 삼촌-조카배 수영대회를 구경하기도 했다.

 


한가한 오전에 동네를 배회할 때면 휠체어를 밀고 있는 사람과 휠체어에 앉은 사람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휠체어에 앉은 사람은 대부분 남성 노인이었고, 휠체어를 밀고 있는 사람은 젊은 여성이었다. 인종적 구분이 무의미하지만 내가 쓰려는 것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 굳이 언급하자면 휠체어의 노인은 아시아인이었고, 뒤쪽의 여성은 좀 더 검은 피부였다. 세탁실 뒤쪽으로 작은 공간이 있었고, 동생은 그곳이 메이드가 살도록 만들어진 방이라고 했다. 1평이나 됨직한 좁은 공간이었다. 필리핀 출신의 젊은 여성들이 싱가폴에 살면서 가사 도우미, 간병인, 메이드 등의 일을 하면서 본국으로 돈을 송금하는데 그 금액이 필리핀 의사의 월급과 비슷하다는 말도 했다. 10년 전 일이다.

 


가사 도우미 일을 하던 젊은 여성들의 추락사가 흔하다는 말도 했다. 앞 베란다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싱가폴 주택의 경우, 문을 열면 바로 바깥으로 연결되는데, 돈을 모아 본국으로 보내고 부모님과 동생들의 생활비를 내어주던, 실질적 가장 역할을 하던 젊은 여성이 어느 날 갑자기 창문 밖으로 추락할 일이 무엇일까. 남자 고용주의 노골적인 성적 학대와 이를 질투하는 여성 고용주. 안쪽에서 밀지 않고서야 스스로는 떨어질 수 없는데의심은 남성 고용주와 여성 고용주에게로 향하지만, 대부분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살로 결론지어진다고 했다.

 

 
















'사회적 재생산'이란, 인간 존재와 사회적 유대를 생산하고 지탱하는 상호작용, 필수재 공급, 돌봄 제공의 형태들을 뜻한다. '돌봄', '감정노동', '주체화subjectivation'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 이러한 활동은 자본주의의 인간 주체들을 형성하고, 그들을 육체를 지닌 자연적 존재로 지속시킨다. 또한 그들을 사회적 존재로 구성하고 그들의 활동반경을 이루는 아비투스habitus 와 사회-윤리적 내용 혹은 인륜성Sittlichkeit 을 형성한다. (40)

 


자본주의의 존립을 위해 필수적인 사회적 재생산 활동이 시장 바깥에서, 즉 가정과 지역사회, 그리고 학교와 어린이집을 포함한 공공기관에서 이루어질 때, 그 대다수는 비-임금 노동 형태(41)로 이루어진다고 낸시 프레이저는 쓴다. 자본주의의 구성 단계에서 생산을 남성에게, 재생산을 여성에게 배분함으로써, 노동자 1인 가정의 소득 대부분이 남성의 임금으로 채워질 때, 여성의 종속은 빠르게 강화되었다. 여성의 소득이 남성의 소득과 상당 부분 가까워지고 있는 현재에도 여전히 생활을 의미하는 재생산노동은 여성만의 것이어서, 일하는 여성은 정규직이든 파트타임이든 상관 없이 집안일을 병행해야만 한다. 이중, 삼중노동을 강요받고 있는 셈이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서 마리아 미즈는 제1세계 여성의 안락한 삶을 위해 제3세계 여성들의 삶이 희생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3세계의 여성들은 임금 노동자로서가 아니라 직장에 나온 ‘가정주부로서 인식되기 때문에 온전한 임금을 지불 받지 못 한다3세계의 여성들 중 특별히 농촌 여성들은 가정의 주요 부양자임에도 불구하고 가정주부화는 저임금을 정당화한다.(262또한 제1세계 여성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구매하고 폐기해 버리는 상품은 제3세계 여성 노동자에 대한 열악한 처우와 비인간적 노동시간저임금으로 얻어진 것이며, 이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교묘한 결합으로 가능했다양 세계에 속한 여성을 모두 억압해 얻은 결과라고 주장한다.

 


남성과 여성, 어린이와 노인에게 필요한 재생산 노동이 여성에게만 요구되고, 무임금으로 그 일을 수행하던 제1세계 여성들은 적은 비용으로 제3세계 여성을 고용한다. 남성과 여성이 공동으로 짊어져야 하는 재생산 노동이 임금화되는 순간, 그 노동은 가시화되어 정당한경제 활동으로 인정받는다. 이는 제3세계 여성에게는 중요한 수입이 되는 것으로, 가혹한 이중 노동에 처한 제3세계 여성의 아이들은 돌봄 노동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피라미드의 맨 아래에는 제3세계의 아이들이 있다, 여성들과 함께.

 

 

















그제 밤에는 <자두>를 읽었다. 눈은 피곤해서 자꾸 감기는데, 그다음이 너무 궁금해서 멈출 수가 없었다. 중환자실 앞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리던 순간들과 병실에 누운 환자를 바라보며 이어졌던 기도, 간간히 흘러내렸던 눈물을 생각했다. 어려움을 겪을 때 모든 관계가 더 단단해지는 건 아니라는 것, 오히려 봉합되었던 감정과 미움이 폭발할 수도 있다는 걸 배워야 했던 시간이었다. 억울하다고 말할 수 없어서 복받치는 감정에 휘둘리던 때도 그때였다. 또렷한 기억과 선명한 문장들이 쌍둥이처럼 만나는 순간이었다. 세진의 시아버지가 좋은 분이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느껴지던 불안감은 무난한 세진의 성격과 맞물려 소용돌이를 쳤다.

 


처음부터 그들은 한통속이었습니다. (104)

 


아직도 철없는 나는, ‘그들에 남편이 속하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남편은 비겁한 자식이었다. 알고 보니, 어려움을 겪고 보니, 눈을 뜨고 다시 살펴보니, 그랬다. 남편은 비겁한 자식이었다.

 


도둑년이라며 간병인 황영옥의 머리채를 잡아채던 시아버지는 새로 맞이한 남성 간병인을 선생님이라 부르며 깍듯이 대한다. 덜 일하고 더 많이 버는 남성 간병인은 틈이 날 때마다 쉬는 시간을 갖는다. 이게 현실이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 는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지고, 쉽게 변하지 않으며, 그 사회를 사는 사람들을 규정하고 억압한다. 그래서 가능하다. 남성 간병인은 덜 일하고 더 많이 번다.

 



 

<자두>에 대한 극찬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찾아 읽게 된 건 바람돌이님의 페이퍼 덕분인데, 에이드리언 리치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말에 솔깃했다. 이주혜 님이 번역하신 에이드리언 리치의 책은, 이 책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일 테고, 원서는 이 책 <Essential Essays: Culture, Politics, and the Arts of Poetry (2018)>일 것이다.  



 














에이드리언 리치에 대해서 생각할 때.

 


그러니까 나는 그의 시, 그의 산문, 그의 사상을 잘 알지 못하고 그의 삶, 결혼과 이혼에 대해서도 간결한 몇 개의 문장으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지만.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자살로 잃고 그 일로 세간의 비난을 받는 일에 대해서, 엘리자베스 비숍과의 대화(<자두>, 17)에 대해서 생각하기는 했다. 내가 헤어지자고 했던 사람이 내게 더 이상 매달리지 않고, 자신을 파괴하는 형식으로 내 요구를 거절했을 때. 내게는 키워야 하는 아들 셋이 남겨져 있어 나도 그처럼 똑같이 죽을 수 없을 때. 한없이 쏟아지는 세상의 비난을 피해 갈 수 없을 때. 그 남자가 생각보다훨씬 더 괜찮은 남자라는 걸, 내가 기억할 때. 리치는 어땠을까. 리치는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아냈을까. 그런 생각을 종종 하기는 했다. 딸이며, 어머니이며, 페미니스트이며, 레즈비언이며, 비평가이며, 시인이며 운동가이며 그리고 사상가인 리치는. 내 고민과 생각과 상상의 원천이다.

 


내 남편은 섬세하고 다정한 남자로 아이들을 원했고 학계에 직업을 가진 50대 남자로서는 드물게 기꺼이 '도와주려’ 했다. 그러나 이 '도움'은 너그러운 행동으로 이해되었고, 가족 안에서 진짜 일은 그의 일, 그의 직장생활이었다. 사실 이 사실은 몇 년간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나는 작가로서 나의 몸부림이 일종의 사치이자 나만의 특이성이라고 생각했다. 내 일은 대개 돈이 되지 않았다. 일주일에 단 몇 시간이라도 글을 쓰기 위해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면 심지어 돈이 더 들었다.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144)

 


리치를,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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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 이야기에 진지하게 응해줄 친구들이 있다는 것
    from 의미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의미 2023-04-16 12:58 
    수술을 앞두고 서울에 올라와 한 밤 자고 간 A에게 책 한 권을 쥐어서 보냈다. 정희진의 공부 팟캐스트도. 신나고 재밌는 일로 삶이 가득하다는 엔프피종 답지 않게 수술을 앞두고 살짝 침울해진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이과형 인재임을 어필하며 즐겁게 읽은 소설을 이야기할 때 즈음에는 내가 아는 신나는 A로 돌아와 있었다. 다시 만나기 전까지 이과형 소설을 조금 더 찾아놓기로 내심 마음을 먹긴 했는데, 글쎄 이건 나의 마음일 뿐.<애프터 양>
 
 
건수하 2023-03-25 16:49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가사 도우미 일을 하던 젊은 여성들의 추락사… 섬뜩하네요. ㅠㅠ 성추행 성폭행을 피하려다가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 같고..

오랫만에 단발머리님 단정한 글을 읽으니 좋아요.

단발머리 2023-03-25 17:45   좋아요 4 | URL
저도 오래오래 마음에 남더라구요. 휴일에는 그 여성들이 다같이 모여서 공원 같은데서 도시락 나눠먹고 이야기하고 그런다고 그래요. 동그랗게 원을 그려 앉아서요. 그 시간이 얼마나 달콤하고 행복할까. 인생의 무거운 짐을 같이 지고 가는 친구, 언니, 동생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됐구요.

단정하다고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단정하게 다시 태어날거에요. 진심입니다^^

2023-03-25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25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3-03-25 20:3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오늘 리뷰도 너무 좋아요. 방금 인생 영화가 될듯한 영화를 한편 보고 왔는 데요, 가까운 미래세계에서 돌봄은 안드로이드의 몫이에요. 리퍼 제품 안드로이드의 리셋 안된 메모리에 접속해서 펑펑 울다 왔고, 그 안드로이드가 수행하는 것이 너무도 너무도 (어쩌면 저의 과잉해석이겠지만요.) 인격없는 위치로서의 엄마의 이야기로 또 읽고 말았기 때문에 저는 한동안 가슴이 아파서 영화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답니다.

페이퍼 읽으며 묻고 싶었던 이야기는요. 왜요. 왜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시간들을 규정짓는 언어가 생기고 나서야 저는 그것들이 폭력이었음을 알게 되고 이렇게 아픈 걸까요. 고통에 언어가 없었기 때문인가요, 그걸 고통으로 인식하는 언어를 가졌기 때문인가요? 만약 내가 빠져나오지 않고 그 시간들이 지속되었다면, 언어를 공부해서 획득하려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폭력이 아닌 것이 되고 그냥 계속 그대로 머물러서 그 안에서 행복했으면 정말 행복하게 되었을까요?

그러니까 1세계 여성이 3세계 여성의 돌봄을 싸게 산다는 건 그건 1세계의 언어고 3세계 여성의 경우는 가족에의 기여가 더 행복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제 언어를 가진 나는 그게 안되고.... 저는 아직도 아빠 밥‘만‘해줘도 돼서 너무 좋은데, 다른 가족들 밥하다가 아파서 아빠 밥을 못하는 게 슬프다는 엄마를 어떤 식으로 바라보아야 윤리적인 건지 고민되거든요. 공부를 하면할 수록 다 어휴~ 아무튼 슬픔이 밀려와요~ 난 그런 세상과의 눈물의 이별을~~ 답은 없죠. 다만 먼저 고민하고 아파한 여성들의 글씨를 읽는 방식으로 연대할 뿐.... 공부의 슬픔이여... 리치여.... ㅜㅜ

건수하 2023-03-26 08:12   좋아요 1 | URL
그건 1세계의 언어... 사실 그렇긴 해요 ㅠㅠ

그 언어를 다른 상황에 있는 누구에게 강요할 수는 없고...
그래서 결국 자기 만족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단발머리 2023-04-03 21:03   좋아요 1 | URL
쟝쟝님 / 저도 그건 잘 모르겠더라구요. 근데 언어를 획득한다는 것, 설명한다는 것 말이에요. 어쩌면 그렇게 어렵지 않을 수도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설명‘하지 않은채로 받아들이는 거 같더라구요. 일부는 체념이고요. 일부는 수용이고요. 그런 순간을 모두 ‘불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건 또 다른 문제인 거 같아요.

돌봄을 싸게 산다는 건 1세계의 언어이고 3세계 여성의 경우는 가족에의 기여가 더 행복할 수도 있을 테지만. 모성을 어떤 범위로 설명하던지 간에 어떤 여성이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자기 아이를 떼어 놓고 돈 벌러 간다면 말이지요. 놓고 가는 아이들에 대한 걱정을 ‘행복‘이라는 말로 바꿀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내 새끼 입에 밥 넣어줘야 해서 나가는 거니까요.

수하님 / 네, 맞아요. 저도 항상 그게 고민이에요. ‘너, 억압 받고 있는 거야.‘ ‘너, 그거 따져야 하는 거야‘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ㅠㅠ

잠자냥 2023-03-25 21:0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페이퍼 ㅎㅎㅎ

단발머리 2023-04-03 21:04   좋아요 2 | URL
라고 굽쇼? 신난다!!!!!!!!!!!!!!!!!!

건수하 2023-03-26 08: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일주일에 단 몇 시간이라도 글을 쓰기 위해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면 심지어 돈이 더 들었다.

전에 <돌봄과 작업>이라는 책 북토크에 갔었는데, 홍한별 번역가가 그러더군요. 베이비시터를 쓰니까, 그만큼 돈을 벌어야한다는 동력이 생겨서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고... 사실 베이비시터 비용이 더 들 수도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을 채찍질했던 것 같아요.

독서대도 예쁘고, 컵도 예쁘고, 깨끗한 책상도 예쁩니다 :)

단발머리 2023-04-03 21:06   좋아요 1 | URL
전 오히려 그런 생각 들었어요. 에이드리언 리치니까..... 가사도우미 고용해서 글 쓰면 우리 모두에게 땡큐.
만약 그 여성이 그렇게 많이 벌지 못한다면, 혹은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적다면... 그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앞으로 제 모든 사진은 이 독서대와 함께할 것임을 약속드리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상은 이미 더러워졌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4-04 13:57   좋아요 0 | URL
저게 다미여 찻잔이었군요. 왜 안샀는가... ;ㅁ;
독서대여 자주 만나요~ ^^

책읽는나무 2023-03-26 09: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사 노동의 고통 하지만 그 이면의 차별의 고통, 그리고 끝없는 자식 돌봄. 자식으로서의 죄책감이 깃드는 부모님의 간병 돌봄.
그리고, 마지막은 에이드리언 리치!
맞네. 아직도 안 샀네? 뒤늦은 깨달음!
그리고 다미여 찻잔! 저건 나 또한 잘 산 굿즈ㅋㅋㅋ

단발머리 2023-04-03 21:07   좋아요 2 | URL
저 아직도 에이드리언 리치 안 읽은 책 많이 남아서 무척 기쁘고 감사합니다.
다미여 찻잔, 너무너무 좋아요. 물 부어 마셔도 근사하고, 얼음 동동 띄우면 더 좋구요.

다락방 2023-03-27 09: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주 오래전에 홍콩에 처음 갔을 때요, 그 때 버스 안에서 바깥 풍경이 바로 그 풍경이었어요. 가사도우미들이 바깥에 다들 나와 있던 풍경이요. 그 때는 그게 도대체 뭘 뜻하는지 몰랐어요.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길래 시위인가? 했는데 분위기는 시위가 아니었거든요. 다들 가만 있는데 그건 시위가 아니잖아? 도대체 그게 뭘 뜻하는지 모르고 대체 뭘까, 하다가 나중에야 그 풍경이 가사도우미들이 집에서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 만나서 나름의 쉼을 갖는다는 것임을 알게 됐어요. 그러나 그 쉼은, 노동하는 집에서 계속 머무르면서는 불가능했기에 나와야만 했던 것이고, 나와서는 돈이 드니까 마땅히 갈 데가 없었던 것이고요.

저는 홍콩에 처음 갔을 때 좋은 감정보다 좋지 않은 감정이 더 많았었어요. 정확히는 불편한 감정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제가 있던 호텔 근처와 도심의 풍경이 정말 너무 심하게 달랐거든요. 빈부의 격차가 확 느껴지더라고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었고, 그리고 제가 갔던 당시에도 시위가 있었어요. 이 사람들은 살아보겠다고 시위하는데 나는 호텔에 있네, 하면서 굉장히 복잡한 감정이 들었더랬어요.

저도 <자두> 읽고 에이드리언 리치 꺼내놨는데 여태 못읽었네요.

단발머리 님, 계속 읽고 써주세요. 생각도 많이 많이 해주시고요!!

단발머리 2023-04-03 21:13   좋아요 1 | URL
저는 필리핀 갔을 때 그랬어요. 공항에서 호텔로 이동하는데 옆으로 보이는 풍광이 좀 그랬거든요. 근데 호텔이랑 근처 섬으로 들어가니 여긴 뭐, 천국이 따로 없는 거에요. 음식도 다 고급이고요. 저도 맘이 참 거시기했습니다.

집을 떠나 돈을 벌어 그 돈으로 고국의 가족을 부양하는 젊은 여성들이 서로를 의지할 수 있다니 다행이고요. 쉬는 날 같이 도시락 까먹으면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친구면서 동료가 되어 연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더 읽고, 더 쓸게요. 근데 오늘은 아니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3-03-29 1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거 사야 하나요? 파랑이??

단발머리 2023-04-03 21:14   좋아요 1 | URL
일단 쪼금 읽어보니 어렵습니다. 하지만 수이님은 읽으실 수 있을 거 같아요. 읽어야 합니당!!!!!!!!!
에이드리언 리치 아닙니꽈. 에/이/드/리/언/리/치/
 


 














겨울에는 기타를 쳤다.

 

겨울이 길었다. 급하게 할 일, 해야 할 일이 없던 시간에, 아이는 기타를 쳤다. 기타를 꺼내 달라는 말에 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내자마자 바짝 끌어안고는 소파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G-Em-C-D의 단조로운 진행은 나도 연주할 수 있어서. 어서 기타를 달라던 아이가 기타를 끌어안고 교본 책을 펼쳤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크리스마스가 지난지 얼마인데, 흰 눈 사이로 썰매를 달리느냐. 종일 캐롤을 부르다가 고된 야자 학습으로 지칠 대로 지친 한국의 한 고등학생이 띠리릭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청하지도 않은 스탠딩 공연을 시전했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그리고는 봄이 되었다. 고미숙 선생님은 그의 책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에서 운명을 바꿀 비책 두 개를 가르쳐 주셨다.  

 















일간이 뭐건, 사주팔자가 어떤 격과 형식을 가졌건 간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취해야 하는, 또 취할 수 있는 보편적 용신이 있다. 약속과 청소다! 약속을 지킨다는 건 시공간과 몸이 일치한다는 뜻이다. 또 말과 행을 일치시킨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선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말아야 한다. … 청소가 중요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유불도를 막론하고 동양의 공부법은 청소를 쿵푸의 기초로 삼았다. 쓸고 닦고 정돈하고…. 요컨대, 약속과 청소, 이 두 가지만 잘 지켜도 인생역전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255-6)


 

약속과 청소. 약속 시간에 자주 늦는 걸 고쳐야겠다 다짐을 하고, 청소를 하자. 봄이니 대청소를 하자. 봄맞이 대청소. 청소로 내 운명을 바꿔보자. 해서 청소한 것은 아니고. 거실 책상에 더 이상 물건을 놓을 곳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책상 위를 정리했다. 책상 위와 아래, 옆과 긴 나무 의자에 올려두었던 책들을 모두 꺼내 종류별로 구분했다. 크게 6개 더미였다. 두 무더기는 도서관 책들, 하나는 내 꺼, 또 하나는 식구들꺼. 세 번째는 둘째 아이 문제집들. 네 번째는 피아노 책(치지도 않으면서 왜 갖고만 있나요. 바하, 베토벤, 찬송가 편곡 악보). 다섯 번째는 영어책들(문법책, 회화책, 어휘책, 수능특강까지) 마지막은 완전 따끈한 신간들(대부분 안 읽은 것들).

 

 

책상 위, 아래, 옆에 쌓아둔 책들을 하나로 모아서 종류별로 구분하고, 옆의 빈자리에 종류별로 쌓았다. 차이점이라고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긴 것뿐인데, 그래도 책상 위가 깨끗해졌고. 이제 다시 책을 쌓을 수 있게 되었으며.



 




기쁜 마음에 인증샷. 가로로 찍으면 이런 모습이다. 210센티미터니까 사람 하나 누워도 된다. 그래서 골라보는 책들. 곧 이 책상 위에 누워있게 될 아름다운 면면들. 견딜 수 없는 사랑.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 인간의 우주적 초라함과 삶의 부조리에 대하여.

 



 













그리고는 독서대를 샀다. 새마음 새시대를 새 독서대로 열어보겠다는 야심 찬 계획. 버린 독서대만 세 개에, 독서대 두 개가 있는데 높이 조절 독서대는 처음이다. 은오님 방에서 본 독서대가 너무 이뻐서 은오님과 똑같은 걸로 샀다. (근데 은오님 안 오시네?!?)  

 



 

큰아이 꺼는 알라딘의 <바른 자세를 위한 2단 와이드 높이 조절 독서대>인데, 사진 좀 보내달라 했더니 이런 사진을 보내왔다. , 아름다운가? 다른 건 모르겠고, 예쁘기는 내 독서대가 더 예쁜 것 같다.

 


 


 




요즘 자주 듣는 노래는 이 노래다. GOD<>이 아니라, 마커스라는 찬양 및 예배 사역 단체에서 만든 <>이다.




 

어느새 지금 여기 서있네 생각조차 못했던

어떻게 내가 여기까지 왔는지 감사하기만 한걸

조금씩 보인 길을 따라 걸음 걸음 걸어왔었지

인생의 끝에 삶을 반겨줄 기다리고 있으니

내게 주어진 길을 걸으리 담담하게 길에 나서리

쉬운 길을 찾았던 지난날과 아쉬움은 소망으로 덮고

주어지는 인생의 위에 후회 없이 삶을 그리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대도 결코 포기할 없네

내 심경과 완벽하게 똑같다고 할 수 없는데 마지막 두 단이 특히 그렇다. 후회 없이 내 삶을 그리리, 를 난 할 수 없는데 내 삶에는 아직도 후회가 너무 많고. 나는 내 후회를 놓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난 결코 포기할 수 없네, 도 아닌 것이 나는 작심삼일이 아니라, 작심1일의 연약한 심정의 소유자로서. 그래서, 내 심정에 제일 가까운 문구는 담담하게 이 길에 나서리.


어떻게 될지 모르는 채로, 아쉬움과 걱정을 뒤로 하고, 담담하게 이 길에 나서리. 나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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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3-19 20:18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크크 마침 북플 들어왔을때 단발님의 글이!! 내 이름이!! 단발님 저 뜸하다고 잊으면 안대여 저 독서대 볼때마다 저를 떠올리세요..... 전진짜 방학때 1일2청소 햇는데 요즘은 청소도 못하겟고 쉬는날은 걍기절이고 죽겠어요ㅠ 그래도 책상은 깨끗한데 바닥에 옷 널부러져있고 어휴ㅋㅋㅋ

단발머리 2023-03-19 20:21   좋아요 6 | URL
은오님!! ㅋㅋㅋㅋㅋㅋㅋ 은오님 책상이 너무 근사해서 저 독서대를 가지면 나도 그리되리라 싶어서 ㅋㅋㅋㅋㅋㅋㅋ 일부러 타원형 받침으로 똑같은 걸로 샀어요 ㅋㅋㅋㅋㅋㅋㅋ
학교 생활이 고되군요. 에구....... 청소 못 하죠. 청소는 그냥 두고 밥을 잘 챙겨먹는 걸로 하시고. 옷은 자주 안 갈아입는 걸로 하시고..... 은오님, 힘내요! 독서대 볼 때마다 생각날 사람이여!!

책읽는나무 2023-03-19 20:59   좋아요 4 | URL
와...은오님이다.
은오님 안녕?!!!^^🤗

건수하 2023-03-19 21:10   좋아요 5 | URL
은오님은 다음 방학때는 운동을 하셔야겠어요! 그래야 학기 중에 서재 들어올 체력이 생깁니다… 응? 화이팅!

책읽는나무 2023-03-19 21: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들 봄맞이 책상 정리하는 때이군요?^^
얼마전엔 난티님 작업 책상 치운 사진 보구선 와~~ 했었는데, 단발님 작업 책상도 우아합니다^^
마샬 스피커랑 라마? 맞나요? 인형도 이쁘고, 아렌트님은 여전히 빛나시군요?
다 읽었지만, 계속 모셔두는 건가요?
읽고 계신 건가요?^^

건수하 2023-03-19 21:11   좋아요 2 | URL
저도 라마? 알파카? 인형 눈여겨 보았습니당 ㅎㅎ

난티님 책상도 보러가야겠네요

단발머리 2023-03-20 06:33   좋아요 3 | URL
책나무님 / 봄맞이는 아니구요 ㅋㅋㅋㅋㅋㅋ 너무 많이 쌓여서 단번에 우르르 밀어냈어요.
마샬 스피커 맞고요 라마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제가 구입한 곳에서는 알파카라고 하더라구요. 저희집에서는 알숙이라고 부릅니다^^
아렌트님의 <전체주의 기원>은 여전히 앞쪽이지만 책장에 꽂지 않고 밖에 두고 있습니다. 언제든 다시 읽으려고요. 여전히 ‘읽고 있어요‘

수하님 / 딩동댕 알파카 입니다 ㅎㅎㅎㅎㅎ

건수하 2023-03-19 21: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청소에 관심없는 자로서…. 부끄럽구요 ㅎㅎ
(그래서 책상 책장 샷은 올리지 않음)

독서대 예쁩니다 그리고 인형도 ㅎㅎ

<좌파의 길> 저도 시작했어요. 요즘 넘 우울해서…

단발머리 2023-03-19 21:18   좋아요 3 | URL
책상 쓸고 나니 손이 시커멓게 변해서 깜놀했습니다. 3년 만의 묵은때를 한 번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대 마음에 듭니다. 오래오래 잘 사용했으면 좋겠구요. 이제 눈만 잘 지키면 되겠습니다.

<좌파의 길> 읽으시는군요. 우울할 때는 역시 빨간책이죠. 저는 앞부분 쪼금 시작했어요 ㅎㅎ

공쟝쟝 2023-03-19 21:45   좋아요 4 | URL
수하님 우울한 데 왜 좌파의 길을 걸으시려해요............네...? 역시 우울함은 더 깊은 우울함으로.. 인생 좀 살아본 자의 합리적 책략인가....

단발머리 2023-03-20 05:57   좋아요 2 | URL
대통령 때문에 우울해지신거라 예상합니다. 저는 그렇거든요. 요 며칠 너무 피곤한 것이었다. 이게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먼 산)

건수하 2023-03-19 22:07   좋아요 2 | URL
쟝님/ 단발머리님 말씀이 맞아요.
배고프긴 한데 그렇다고 못 먹을거 아무거나 먹을 순 없으니깐…?

건수하 2023-03-19 22:08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님/ 100% 대통령 때문은 아니겠지만요.. 하여간 현 상황이 우울합니다…

공쟝쟝 2023-03-19 22:08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ㅋ 아니 굥은 멀쩡한(?) 사람을 좌파로 만들어버리네 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 역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인갘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3-20 08:46   좋아요 0 | URL
쟝님/ 나 원래 안 멀쩡했음요 ㅋㅋㅋ

아니 왜 식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 - 를 좌파의 길로 번역해가지고...
번역자가 진보신당 정의당에서 한 자리씩 했던 분이더군요.
어쨌든 우리나라의 ‘좌파‘ 와는 거리가 멉니다 =ㅁ=

공쟝쟝 2023-03-19 21: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나.. 오늘 번아웃 와중에도...... 청소했어요......... 으하하하하하..... 동양의 공부법 청소.... 너무 웃곀ㅋㅋㅋㅋ 내일 아침에는 에에올의 양자경을 떠올리며 쿵푸하듯 청소 하겠어요 ㅜㅜㅜㅜㅜㅜㅜㅜ

단발머리 2023-03-19 21:58   좋아요 3 | URL
아... 그 와중에 청소하는 마음.... 칭찬합니다. 청소가 쿵푸의 기본이라서 제일 먼저 마당쓸기 시키나 봐요. 대충하지 말라고 쉬운 거부터 ㅋㅋㅋㅋㅋㅋㅋ 살살해요, 청소도.... 저는 3년만의 청소였으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끼 2023-03-19 22: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몇년만에 청소중인데… 청소시간을 내는게 그렇게 어렵다니 막상 시작하니 청소끝낼때까지 다른 걸 하는 게 싫은… ㅠㅠㅠ 할일 산더미인데 교통정리가 안되네요.. 청소 해도해도 안끝나서 며칠 더 걸릴것같지만요.. 자주 청소하시는 분들 존경합니다

그런데 전체주의의 기원 읽고계신가요…!!

단발머리 2023-03-25 17:48   좋아요 1 | URL
청소 무사히 잘 마치셨는지 궁금합니다 ㅎㅎ 저는 자주 청소하는 사람은 아니구요. 3년 만에 청소하고 자랑은 많이 했네요 ㅎㅎ

<전체주의 기원>은 제게 성경 같은 책입니다. 항상 근거리에 두고요. 여전히 ‘읽고 있어요‘라고 주장하는 책이요^^

건수하 2023-03-20 08: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제는 폰으로 대충 봤었고요 오늘 컴으로 다시 보니 (9시까지만 딴짓하기로 결심)

보일락 말락하는 분홍색 연필깎이, 블랙윙, 스티커 붙은 독서대, 어버이날 카드 (언제껍니까...), 그리고 백미를 찍는 알파카 인형 (읭?)
단발님의 기획이 돋보입니다.
2단 독서대에 올라가 있는 책도 레이 브래드버리라 반가워요.

책상... 치우면 사진을 하나 올릴 수 있겠지만.
꼭 치워야 할까... 엄두가 나지 않네요 흐흑
책상도 책장도 정리가 시급하긴 한데;

단발머리 2023-03-25 17:50   좋아요 1 | URL
저의 기획을 알아봐주시는 그 안목에 감사와 박수를!! 드립니다. 슥삭 찍어도 예쁘게 찍으신 분들 많은데 저는 엄청 설정샷이라서 노골적이라 좀 아쉽구요 ㅋㅋㅋㅋㅋㅋ 레이 브래드버리 알아봐주시는 안목도 환영합니다.

저, 이제 한동안은 책상 정리는 안 합니다. 저 책상이 책으로 가득차면 다시 돌아올게요^^

자목련 2023-03-20 09: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 책상 근사해요! 나만의 책상 하나 구매하고 싶은 욕망이 불쑥 올라옵니다.

단발머리 2023-03-25 17:52   좋아요 0 | URL
자목련님!!! 나만의 책상 구입하시기를요. 물론 저 책상, 저만의 책상은 아니지만요. 제 책이 주로 올라가 있어서 제 책상이라 우깁니다. 자목련님만의 공간과 책상과 의자를 응원합니다!

다락방 2023-03-20 09: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 기타도 치시나요? 와 너무 대단하신 분. 피아노도 치시고 기타도 치시는거죠? 오와 오와- 너무 근사하네요! ㅠㅠ

인용하신 고미숙 선생님 구절은 저도 기억납니다. 사소한 것 같지만 잘 해내기 위해서는 의지가 필요한 것들이죠.

그나저나, 저 정갈한 책상과 책과 놋북 사진을 보니.. 놋북 사야겠습니다. 흠흠.

담담하게 나서세요, 단발머리 님. 응원합니다!!

단발머리 2023-03-25 17:54   좋아요 0 | URL
고미숙 선생님의 저 문장은 제 인생 최고의 ‘청소 독려‘ 문장으로서 ㅋㅋㅋㅋㅋㅋ 책상만 치웠어도 이렇게 흐믓합니다.

보내주신 아름답고 화사하고 향긋한 응원,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귀한 마음 오래오래 간직할게요!!!!

수이 2023-03-20 20: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담담하게 나아가시는 그 길을 응원합니다. 그대 만날 이들 모두 짱 행운아들입니다!

단발머리 2023-03-25 17:55   좋아요 1 | URL
담담하게 나아갈게요. 생각보다 모르는 거 많아요. 깜짝 놀란 에피소드 개봉 박두이며 ㅋㅋㅋㅋㅋㅋㅋ
짱 행운아들은 수이님 만난 인생들입니다. 플랭카드로 만들어서 걸어두시옵소서!

난티나무 2023-03-21 0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책상이 저렇게 깔끔 깨끗 여유로울 수 있다니요!!!! 독서대, 은오님 페이퍼에서 애써 외면했는데 여기서 보니 어웅 사고 싶어랑 ㅎㅎㅎㅎㅎ

단발머리 2023-03-25 17:56   좋아요 0 | URL
난티나무님 저도 이렇게 치워질 수 있다는데 깜짝 놀랐으며 ㅋㅋㅋㅋㅋ 오른쪽에 책들이 착착착 쌓여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독서대 너무 좋아요. 만족도 200%인데 좀 무거운 편이라서 배송은 좀 어려울 듯 싶어요. 배송료 많이 나올 각입니다 ㅠㅠ

건수하 2023-03-26 08:28   좋아요 0 | URL
앗 저거 무거운 거였군요! 보기엔 가벼워보이는데 ^^

hijwkim 2023-03-25 14: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하고 비슷한 부분이 많네요^^ 자신의 길을 계속 걸으세요~

단발머리 2023-03-25 17:56   좋아요 0 | URL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제로 그들(살인자들) "너무나 강렬한, 거의 동물적인" 살해 욕구를 느꼈는데, 아라우호의 "성적 기만, 속임, 배신"이 그런 욕구를 촉발했다고 했다. 이러한 주장들에는 이 남성들에게 옷차림 너머의 성기 형태에 대해 알아낼 권리는 물론 "미친 듯이 분노할" 권리, 심지어는 (그들의 성적 특권 의식에 도전한 아라우호를 살해할 권리가 있었다는 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남성 특권>, 175)

 



17세의 트랜스 여성 아라우호를 살해한 남성들에게 가장 강력한 범죄 동기는 그 트랜스 여성이 여성처럼보였다는 데 있다. 여성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에게 성적 매력을 느꼈는데, 알고 보니 그는 남성의 성기를 가진 사람이었고, 자신들을 속인그에게 느낀 미칠 듯한 분노를 폭행의 형식으로 표현했다는 것이, 그들 살인자들의 주장이었다.

 


남성과 여성을 다른 계급으로 구분하기로 했을 때, 제일 중요한 지점은 두 계급 간에 구별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급의 형성은 다른 계급에 속한 사람들을 구분할 시각적 수단을 요구한다의복, 장신구 착용 혹은 장신구 없음그리고 노예들의 경우 그들의 지위를 나타내는 시각적 표시들 등은 그런 구분을 중요하게 만든 모든 사회에서 나타난다. (『가부장제의 창조), 247)

 


이것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건 당연히 외적인 표식, 특별히 미용 관습을 통해서다. 적절한 화장과 단정한 옷차림이 여성에게만 요구될 때, 이는 분명 두 계급 간에 차이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차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코르셋>, 71) 여성에게 요구되는 꾸밈노동성 구별의 가장 확실한 방책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에 화장하는 남자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좀 다른 측면의 이야기라서, 이번에는 다루지 않기로 한다.)

 


<6장 통제되는 몸>. 남성에게, 사회적 시선을 통해, 그리고 스스로에 의해 통제되는 몸은 누구의 몸인가. 남성의 몸인가 아니면 여성의 몸인가.




이러한 분석에 따르면, 여성들의 말은 그들이 타인을 위해 돌봄을 요청할 때나 사회가 용인하는 중대한 사유(예를 들어 여성이 사회적으로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들에게 더 나은 돌봄노동자가 되도록 조력할 때)가 있을 때만 예외적으로 수용된다. 바로 여기서 여성을 위한 의료 제도의 빛과 그림자가 드러난다. 다수의 백인 특권층 여성들에게 미국의 산전 관리prenatalcare 제도는 비교적 양호한 수준이다. 비록 산모의 필요보다 태아의 필요를 우위에 두지만 말이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엄마가 되다Like A Mother》의 저자 앤절라 가브스Angela Garbes가 기록한 것처럼, 유색인 여성을 위한 산전 관리 제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가브스와 같은 유색인 여성들을 위한 산전 관리제도는 엉망이다. 많은 레즈비언, 퀴어, 논바이너리의 상황 또한 마찬가지다. - P137

백인우월주의가 지배하는 환경에서 임신 중인 백인 여성, 그러니까 (짐작컨대 혹은 많은 경우 실제로) 백인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여성은 자궁 안에 천국으로 가는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임신한 유색인 여성은체 가능하며 쓰고 버릴 수 있는 존재, 심지어 백인우월주의를위협하는 존재로 간주된다. - P138

심장 질환에서 여성들을 누락시키는 것은 딱히 이례적이지 않다. 심장 질환은 지난 30년간 미국에서 가장 흔한 여성사망 원인으로 밝혀졌다. 여성은 심근경색에 이어 심장 질환으로 사망에 이를 확률이 남성보다 높았다. 그 한 가지 이유를 의료진이 여성들이 겪는 증상(복통, 호흡 곤란, 구토, 피로)을 자주 놓쳤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여성에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증상들임에도 대개 "이례적"인 것으로 여긴 것이다. 스웨덴의 경우, 심근경색을 겪은 여성들은 동일 증상을 보인 남성에비해 평균적으로 앰뷸런스 우선순위에서 밀렸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까지 20분 더 기다려야 했다. 영국에서는 여성들이 심근경색 이후 오진을 받을 확률이 50퍼센트나 더 높게 나타났다. - P141

소비자 안전의 측면에서 접근하더라도 특권의 세례를 받는 남성 신체를 기본값으로 설정하는 일이 훨씬 더 지대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동차가 충돌할 때여성들은 안전벨트를 하고 있더라도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을확률이 동일 조건의 남성보다 73퍼센트 더 높게 나타났다. 이것은 최근까지도 모든 자동차 충돌 실험에 쓰이는 마네킹이 시스젠더 남성을 중심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방 분포도, 골격 구조 등에서 나타나는 시스젠더 남성과여성의 상당한 차이를 무시하고 남성의 신체를 기준으로 제작된 마네킹을 활용한 것이다. 결국 자동차 충돌 테스트용 "여성" 마네킹이 도입되었는데, 대부분 실제 여성보다 더 가볍고 신장이 작았다. - P143

출산후 여성은 자기 자신을 지워내는 방식으로 아이를 보살펴야한다. (자신의 남성 파트너에게 기대되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강도로 말이다.) 그러나 여성이 자신의 인간 됨됨이를 의심받지않을 때조차 그것은 타인의 덕택으로 여겨진다. 여성은 인간존재가 아니라 인간 증여자의 위치를 배정받는다. 즉 감정노동, 물질적 지원, 성적 만족뿐 아니라 재생산노동까지 제공하는 존재 말이다. 그리고 남성은 태어날 때부터 여성이 제공하는 이런 재화들을 받고 누릴 권리 뿐 아니라 포기할 권리 또한갖는다고 여겨진다. 권력을 가진 수많은 남성 공화당 의원들이 낙태 금지를 외칠 때, 가장 중요한 예외 대상은 상대 남성이 원치 않는 아이를 임신한 소위 정부(남성의 외도 상대)일 것이다. - P164

또한 한 번 엄마가 되면 영원히 엄마여야 한다. 아이를 돌보는 일로 혹사당하는 차원을 넘어 주변 사람들의 감정적, 물질적, 도덕적 필요를 책임지는 존재 말이다. 말하자면 여성은[아이 외에] 다른 이들에게까지 엄마가 되어 원조와 위로, 양육과 사랑과 관심을 제공해야 한다. 앞 장에서 살폈듯 여성이 자기 자신을 위해 〔타인에게] 그런 도덕적 재화를 요청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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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3-03-17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밑줄로 다 올리지는 않았지만 책에 그은 밑줄이랑 모두 같아요.^^

단발머리 2023-03-19 16:49   좋아요 0 | URL
앗! 너무 기쁩니다! 난티나무님과 밑줄 동기네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침에 RM의 인터뷰 내용을 담은 카드 뉴스를 보며 독어 선생님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 내가 선택한 제2외국어는 독일어였다. 작은 키에 단정한 단발머리셨던 독어 선생님께 배웠던 독일어는 당연히 1도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한국의 낙후성을 한탄하시던 선생님의 목소리와 톤. 거의 매시간 선생님은 한국과 한국 사람들을 비난하셨는데, 한국 사람들은 게으르고, 무식하고, 공중도덕을 안 지킨다는 내용이었다. 울분에 가까운 감정이 담긴 언설이었기에 나는 종종, 저렇게 한국이 싫은데 왜 한국에 사시는 걸까, 라고 생각했다. 전해 들은 바로는 선생님은 짧게 외국 생활을 하셨다고 하는데, 그래서 더욱 선명한 비교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한국을 미워하셨다. 또박또박 전해지는 한국말. 바로 그 말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시면서, 한국을, 한국이라는 나라를, 한국 사람들을 한결같이 멸시하셨다.

 


딱 한 번, 선생님이 한국과 한국인을 변호하신 일이 있었다. 선생님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유럽을 위시한 선진국 사람들은 이미 커다란 원(쳇바퀴)을 만들어놓고 그 안을 천천히 산책하듯이 걸으면 그 원이 앞으로 나아가는데, 우리가 만든 건 작은 원이어서 선진국 사람들이 큰 원을 한 번 돌릴 때, 우리는 두 번, 세 번 돌려야 겨우 그들 비슷하게나마 따라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걸어도 되고 우리는 뛰어야 한다고. 내 기억엔 그때가 유일하다. 선생님이 한국을 옹호하신 경우는.


 

선생님의 대한민국 변호와 RM의 인터뷰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판단 유무다. 선생님은 판단하지 않으셨고, 순진하게 현재의 상황에 짜증을 내셨다. 한국 사람들은 무식하다. 한국 사람들은 예의범절을 모른다. 힘들게 살았던 사람들에게 예의를 요구하셨다. 고생한 사람이 우아하게 말하기를 기대하셨다. RM은 다르게 말한다.



 


서양 사람들은 이해 못 합니다.

한국은 침략당하고 파괴되었고,

둘로 갈라진 나라입니다.

 

70년 전만 해도

아무 것도 없던 나라

 

지금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서른이 안 된 사람이 이걸 알고 있다는 것, 이런 인식.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알고 있다는 게 내게는 놀라우면서도 감격스러웠다. <탐욕의 시대>에서 장 지글러는 이렇게 말했다.  

 















출생의 우연이라는 수수께끼는 죽음만큼이나 신비롭다. 나는 왜 유럽에서 태어났는가? 어째서 잘 먹고, 가진 권리도 많고, 자유롭게 살 수 있으며, 고문으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로운 백인으로 태어났는가? (330)



시간이라는 요소를 무시할 수 없겠지만, 유럽에서 태어났다는 것, 백인으로 태어났다는 것, 남성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특권이다. 3개의 특권이 결합한 형태. 여기에 영어가 모국어라면 완성형이다. 우리는, 태어난 조건에 지배당하고, 어떤 사람의 조건은 어떤 사람의 것보다 명백하게 유리하다.

 


우리는 명백하게 불리한 조건 속에서 현재를 만들어냈다. 엄청난 변화가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RM은 이 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세상에, 내가 RM의 말에 해설을 달고 있다니… RM, 짱이야!)

 




그래요. 우린 그렇게 목표를 달성해 왔거든요.

그리고 이 방식이 K팝을 그토록 매력적으로 만드는 점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부작용도 있겠죠.

빠르고 급박하게 진행되는 모든 일이 그렇듯이요.

 


교육전문가 이범은 그의 책에서 사회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서구에서 2~300년 동안 이룩한 일들을 우리는 5~60년 만에 해냈다. 두 세대가 지나야 가능한 일들이 한 세대 안에 일어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자식들을 자식으로봐서는 안 된다. 손자 세대라고 봐야 한다. 그 정도의 세대 차이를 인정해야만 세대 간의 갈등에 올바로 대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중요한 건은 자기 인식이고, 주제 파악이다. 너희는 과하다, 과하게 열심이다, 라고 말하는 서구의 기자에게 ‘(너희 나라들의) 제국주의 침략으로 인해 우리는 파괴되었다. 개인의 삶을 희생하고, 극한의 스트레스와 압박을 이겨냄으로써, 우리는 이러한 성과를 이루어냈다라고 대답하는 젊은이. RM을 평범한 사람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이 정도다. 이 정도가 한국 20대의 인식이다.

 


RM에게 미안하다. 여기에 윤대통령을 엮어야 하다니. 윤대통령의 자기 인식을 고려해볼 때, 그러니까 이런 기사를 읽게 되었을 때.

 


윤 대통령은 한-일 관계가 꼬인 것이 역사문제에 대한 일본의 태도가 아닌 2018년 대법원 판결 때문이라는 인식을 보였다. 그는 “강제징용과 관련해 1965년 협정이나 양국 정부의 조치를 문제 삼아 한-일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2018년 대법원 판결로 한-일 관계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1083682.html)

 


윤대통령은 한국의 대통령이라기보다는 일본의 총리가 되었어야 맞다, 고 생각한다. 독도를 지키지 않으면, 돈까스 한 접시와 오무라이스 한 그릇에 독도까지 팔고 올 거라 예상되어. 나는 심히 불편하고, 걱정스러우며. ㅆㅂ. (생각하시는 그거 맞습니다. ㅆ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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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3-15 20: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심히 걱정됩니다….

RM은 예전에 UN 연설문도 심상치 않았는데.. 목소리를 내는 멋진 청년이네요.

단발머리 2023-03-15 21:43   좋아요 2 | URL
수하님도 그렇게 보시죠... 휴우....

RM은 영어할 때 매력 터집니다. 물론 한국말 할 때도 매력 철철 ㅎㅎㅎㅎㅎ 이 무슨 댓글입니까. 굿나잇^^

책먼지 2023-03-15 23: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에 BTS의 인문학적 소양은 다 알엠에게서 나온다는 댓글 보고 물개 박수쳤던 적이 있는데.. 단발님의 이 페이퍼에서는 주해 다는 사람의 품위마저 느껴집니다..💕

저는 저 자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ㅠㅠ 가슴이 너무 답답합니다 진짜

단발머리 2023-03-16 19:22   좋아요 1 | URL
BTS의 인문학적 소양은 다 알엠에게서 나온다는 댓글에 저도 박수를 칩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오무라이스만 먹고 오면 좋겠는데요. 그러지 않을 거 같아요, 그죠? ㅠㅠㅠ

책먼지 2023-03-17 08:42   좋아요 0 | URL
구상권 행사 안한다고 그사이 촘촘히 일 저질렀더라고요..??? 화딱지 나서 자세히 안 읽었는데 들여다봐야겠죠..? ㅠㅠ

은하수 2023-03-15 2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요. 가만히 있다 가면 참 즣겠어요 가슴이 답답!

단발머리 2023-03-16 19:23   좋아요 0 | URL
전 어제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차라리 술 먹고 뻗었으면 ㅠㅠㅠ 다른 일 안 하고 먹고 놀고 왔으면.....

독서괭 2023-03-16 04: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bts 잘 모르는 저도 rm 은 많이 들어봤는데, 자세히 몰랐어요. 존경스럽네요. 아들 키우는 데 롤모델로 삼아야겠습니다 ㅎㅎ
누구랑 넘 비교되네요 ㅠㅠ

단발머리 2023-03-16 19:24   좋아요 1 | URL
좋은 롤모델이 될 것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물론 인생에는 ‘반면교사‘라는 게 존재하니까요.
그 쪽을 반면교사로 삼아... 아, 슬프네요.

책읽는나무 2023-03-16 14: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RM은 참....♡
알쓸인잡을 보면서 RM은 어쩌면 내가 모르게 더 훌륭해질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종종 했었거든요. 고 부분을 단발님이 똭!!!!
얘기해 주시네요^^
RM 짱이에요ㅋㅋㅋ

단발머리 2023-03-16 19:25   좋아요 1 | URL
전, 일단 알엠이 머리가 좋다고 생각해요. 근데 노래 만드는 일/랩에 재능이 있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믿어준 거니까요. 그런 면에서 부모님도 큰 일 하셨다~~ 생각합니다. 결론은, 알엠 짱!!

책읽는나무 2023-03-16 19:52   좋아요 0 | URL
근데.....단발님 화가 많이 나셨군요? 욕도 하시공~ㅋㅋㅋ

단발머리 2023-03-16 20:42   좋아요 1 | URL
저 요즘에 욕해요, 책나무님.... 뉴스 보다가 불현듯 확!! 빠바바바바바바박!

공쟝쟝 2023-03-17 06: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엠씨가 하는 유엔 연설문 듣고 감격해서 한동안 bts 열심히 이름외웠던 기억이납니다. 잊고 있던 국뽕을 차오르게 만든 알엠 너란 남자....못생겼지만 내가 좋아해. 하지만 얼굴은 뷔가 제일 좋앙... 응? ㅋㅋㅋㅋ
좋았어! 이 글을 읽고 오늘 저는 스피박 갑니다. (마감 하루 앞당겨 한 자의 여유) 후훗!!!

DYDADDY 2023-03-17 08:12   좋아요 3 | URL
드디어 프로젝트를 끝내셨군요. 무사히 끝내신 것을 축하드려요. 그동안 못 읽으신 책도 보시고 홉스와도 놀아주시고 무엇보다 지친 몸과 마음을 잘 추스르시기를 바라요. ^^

단발머리 2023-03-17 18:49   좋아요 0 | URL
쟝쟝님 / 비티에스 얼굴 보고 이름 맞추기, 담에 만나면 해봅시다요 ㅎㅎㅎㅎㅎ 난 완벽합니다.
저도 알엠 좋아하고 얼굴은 뷔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스피박 말고 마리 쪽으로 간거 맞죠?

DYDADDY님 / 저도 축하해 주세요ㅋㅋㅋㅋㅋㅋ 저도 이번 일주일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DYDADDY님도 축하드리구요!!

공쟝쟝 2023-03-17 18:56   좋아요 1 | URL
네 마리루티 69페이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사랑해요 단발머리 ㅠㅠㅠㅠㅜ 난 내 영혼의 지문의 일부가 같은 것으로 구성된 듯한 루티를 루티를 루티를 선물해준 단발머리 감사합니다 ㅠㅜ 피박온니 미안 ㅠㅠㅠ 루티랑 같아요 난 ㅜㅜㅜㅜㅠㅠㅠㅠㅠㅠ

단발머리 2023-03-17 18:59   좋아요 2 | URL
나도 이 책 넘나 은혜로워서 리뷰를 못 썼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선물해 준 내 안목을 나도 칭찬합니다 ㅋㅋㅋㅋㅋㅋ
나가 나를 칭찬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03-17 19:01   좋아요 1 | URL
은혜다 ㅠㅠ 은혜 ㅠㅠㅠ 아니ㅜ이 시점에서 이거 읽어버리면 이건 세상이 나를 사랑한다는 근거없는 확신에 휩싸이게 되고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3-03-17 19:04   좋아요 1 | URL
한량없는 은혜와 끝없는 감탄은 감사와 기쁨으로 마무리되어 겁나게 긴 페이퍼를 탄생시키며,
새 생명 새 인생 새로운 나로, 나를 이끌어가는데....

DYDADDY 2023-03-17 19:29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님 // 이번주 무사히 보내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
저는 축하받을 일이.. 단발머리님과의 첫 대화인 것 같아 축하 받고 싶어요. 전부터 같은 정치 성향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내적 친밀감은 있었지만 제가 수줍음을 타다보니 그동안 답글을 못달았어요. 처음으로 직접 인사드려요. ^^

단발머리 2023-03-19 20:15   좋아요 0 | URL
DYDADDY님 / 에고!! 첫 대화 당연히 축하드려야죠. 저도 축하받고 싶고요 ㅎㅎ 내적 친밀감 숨기지 마시고 앞으로도 자주 뵈어요^^
저도 인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