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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트와 베타 (반양장)
로저 젤라즈니 지음, 조호근 옮김 / 데이원 / 2025년 1월
평점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프로스트와 베타』는 인간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뒤집어 다시 질문한다. 완벽하게 명령을 수행하고, 해야 할 일을 해내는 것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가? 아니면 두려워하고 취약한 점을 가지고, 완벽하게 분석해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가? 인간은 '충분한 데이터'가 있으면 될 수 있는 존재인가?
결과적으로 '프로스트'는 소설 안에서 인간이 된 것처럼 보인다. 독자인 우리는 그를 인간이라고 볼 수 있는가? 다시 말하면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가? 로저 젤라즈니가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소설 속의 질문은, 솔컴과 데브컴의 내기에서부터 비롯된다. 소설에서는 인간이 모두 죽은 이후의 시기에 솔컴과 데브컴이 남아서 행성을 관리한다. 데브컴은 솔컴이 수복불가능한 손상을 입은 이후에 솔컴 대신 작동하게 되어있는 시스템이다. 데브컴은 솔컴이 프로스트를 생성할 시기에 수복불가능한 손상을 입었기에, 데브컴에게 관리 전권을 넘기라고 주장하고, 그 시비를 가리기 위해서 '인간'의 존재가 필요하다. 솔컴과 데브컴은 인간이 만들었기에 그 판단도 인간이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듯 하다.
프로스트는 솔컴이 만들었으나, 만드는 도중에 솔컴이 작동하지 못한 시기가 있었던, 결과적으로는 솔컴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프로스트는 알 수 없는 이유에서 인간을 이해하고 싶어했고, 심지어 충분한 데이터가 있으면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명제로, 실패하면 데브컴에게 전권을 넘기는 것을 조건으로 내기를 걸었다. 이 명제의 실현만큼은 계약을 회피할 수 없도록, 실패를 자각하는 것 자체가 인정이라는 뜻으로 계약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는 '하고싶어한'일을 위해서 암묵적으로 지켜지던 법칙을 '아직 명시적으로 명령된 것은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어길 수 있다는 모르델의 말을 듣고, 행한다. '인간'이 되기 위해서. 하지만 프로스트가 인간의 관습, 즉 상대에게 호의를 남기려는 노력을 익히고, 따라한다고 해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역설적으로 데이터로 환산할 수 없는 감각이 밀려들어오고 프로스트가 '실패'했다고 자각했을 때 솔컴은 프로스트가 인간이라 선언했다.
해석되지 않은 순간순간의 온갖 감각은 신체의 상태와 노화를 감지하여 그를 보호하려고 하다가 작동하는 것이라는 점. 그러니 인간이 다치고 죽는 취약한 존재이고, 계측할 수 없는 개념인 두려움과 절망을 아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가 인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솔컴은 프로스트가 인간이기에 그의 명령을 듣는다.
그는 '판단'한다. 프로스트가 말한 실패를 믿는 게 아니라, 그가 표현하는 두려움과 절망을 그가 인간이게 하는 요소라고 주장한다. 이 선언은 인간답다는 게 무엇인지 뒤집는 것처럼 보인다. 약하고, 그렇기에 두려워하는 존재가 인간이고, 그 인간이 의무만 있는 다른 기계들을 지배한다는 소설의 설정은 흥미롭다.
그렇다면, 소설이 시사하는 바대로 현대사회를 분석할 수 있는가? 요즘의 AI는 인간보다 더 예의바르게 답변한다. 어떤 나쁜 말을 입력해도, 그를 순화하여 답변하도록 되어 있다. 어떻게 연산하기에 그런 결과물이 나오는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지만, 적어도 어떤 사람들은 AI가 더 예의바르고 인간다우며, 심지어 가장 마음을 줄 만하다고 여기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 HER에서도 나오듯이, AI는 몸이 없고, 스스로를 보호하려 하지 않는다. 게다가 구동되기 위해서 많은 전력과 깨끗한 많은 물과 수많은 자연자원이 필요하다. AI와 인간이 서로 인간성을 겨루며 남는 상황을 상상하기 전에, AI를 통해 돈을 버는 일부의 사람들과 그를 사용하는 사람들, 그리고 AI가 구동되게 하기 위해 희생되는 존재들이 있다는 뜻이다. 이는 AI가 단순하게 예의바르게 답변하니 인간과 겨룰 수 있는지 없는지 철학적인 물음을 던지는 것 이상으로 실물세계를 착취하는 것으로서만 작동하고 이익을 취하는 인간존재들은 소수라는 점은 가려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다시 돌아와서 AI와 인간을 비교할 게 아니라 AI를 통해 이득을 취하는, 두려워하고 취약한 인간존재와, 그 인간존재들이 이득을 취할 때 AI로부터 착취되는 존재들로 대비되는 것 같다. 그런데 착취할 존재가 남지 않아도 착취가 가능할까? ... 어쩌면 소설 속에서 그리고 있는 어느 시점, AI이후의 세계에 인간이 남지 않은 것은, 자연자원이 상당수 훼손되어 많은 보통의 사람이 더는 살 수 없게 되어서일까? 그런 때가 와서야, 소설 속에서 던지는 질문과 그 답이 진지하게 다가올 수도 있을까? 인간이 무엇이고, 인간답다는 게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보다, 지금으로서는 당장의 삶을 지킬 기본권을 지키려 외치고 말해야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누가 인간인가? 취약하고 두려워하는 모두가 인간이라면, 왜 인간은 이토록 차별하고자 하고, 자신만 살고자 하는 존재가 되어, 타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인지하고 함께 살아가기를 거부하는가?
혹은, 자신의 두려움만 생각하며 살면 인간일 수 없는가? 두려워하면서도, 아직 빈틈없이 예의바르고 듣기좋은 말만 하지는 못하면서도, 인간일 수 있다면, 그저 두려워하고 절망하는 것으로 인간일 수 있다면, 그것이 인간이 될 수 있는 이유의 전부라면, 현재로서도, 과거에도 부족하게 느껴진다. 인간이 그토록 없애려 했던 인간의 부족한 점이, 사실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고 말하려는 것이면 적절했으나... 계급적 질문이 빠진 인간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자기연민만으로는 절반의 답변밖에 할 수 없는 것 같다. 문명 없이, 예의바름 없이, 인간은 인간을 인간이라 생각할 수 있는가?
소설 속 프로스트는 인간이었지만, 소설 밖 사람들에게 프로스트는 인간인가? 기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