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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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최장집의 『민주주의의 민주화』라는 책이 있다. (있었다고 해야할까? 지금은 절판되었는데, 판권 소멸 등으로 더 이상 제작, 유통 계획이 없다고 한다. 도서관에는 폐기하지 않았으면 남아있을 수 있을 것이다.) 제도적 민주주의는 6월 항쟁 이후 대통령 직선제를 통해 일부 달성된 것 같은데, 그 이후의 민주화가 필요하다는 의문을 던지고, 민주주의에 관하여 고민을 이어갈 필요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라고, 이해하고 있다.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라는 책의 마지막 장의 제목 역시도 민주주의의 민주화이다. 다만 미국적 정치상황에 걸맞게, 신자유주의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해치고 있는지에 관한 비판은 많지 않고, 소수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다수의 의사결정을 가로막았으나, 다인종 민주주의를 앞으로 상상하고 만들어가야 한다고 결론짓고 있다. 이는 절반(?)의 답처럼 보인다. 왜 차별이 있을 수밖에 없는지, 질문해야 하기 때문이고, 그 밑바탕이 되는 제국주의와 착취가 현재 진행형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발언은 개인적 일탈이 아니고, 전지구적으로 아직도 실행되고 있는 제국주의를 야만적으로 드러낼 뿐이 아닌지도 의문스럽다.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아프리카계 흑인이 차별을 받는 건 그들이 노예로 끌려와 미국땅을 밟았고,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들은 아직 플랜테이션 등으로 제국주의적 착취가 아직도 현재진행중이어서가 아닌가? 경제적 역량의 구조적 차이가 큰 격차를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소수의 흑인이 소위 '성공'을 했다고 해서, 다인종 민주주의가 이루어졌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책에서 말하는 모두의 민주주의를 위한 우리 각자의 노력, 제도적 노력도 필요하지만, 다각도의 역사적 맥락도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모두가 똑같은 경제수준으로 똑같이 살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왜 생존이 위협받을 수준에 내몰리고, 죽는 일이 발생하는지도 질문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모두가 만족스러운 결론에 이르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상대의 삶과 안전을 해치는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 상대의 존재를 존중하는 일이 이루어져야 민주적이라는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의사결정을 관철하느라 상대의 의사결정을 아예 봉쇄하여, 삶을 잘 살 권리를 해친다면, 그는 민주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지만 말이 쉽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민주주의로 이야기할 수 있는 대목인지 서두부터 꺼내려면 많은 공부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민주적인 제도란 무엇인지도 많은 고민이 필요하지만 어떤 제도이든 사람이 나머지 부분을 채워나가야 하는 이상 허점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제도가 따라주지 않는데 개개인만 민주적으로 행동하려고 한다고 해서 민주적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는 자본주의가 유일한 경제체제인 이상, 자본가가 되지 않고서도, 민주주의, 모두에게 주권이 돌아갈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자본가가 될 수 있는가? 돈으로 돈을 버는 사람만 있으면 어떻게 실제적인 경제가 돌아가는가? 인간은 기계가 아니고, 잘 일할 수 있는 사람도 언젠가는 노동할 수 없어 보살핌이 필요하다. 노동할 수 있는 사람도 보살핌이 없이 노동할 수 없다. 그 보살피는 노동은 무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 모두에 경제적 가치를 지급하기 어려운 현실적 한계로, 누군가는 소득 없이 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가 돌아간다. 누군가는 노동자로 살아야만 자본이 불로소득을 얻을 수 있는 구조에서 어떻게 민주주의가 가능할까? 말이 불로소득이지, 사실상 자연을 착취하든 인간을 착취하든, 착취한 것 없이 자본을 투자해 자본을 얻는 이윤창출이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자본가가 될 수 없고, 누군가는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면, 누군가는 제도적으로 지나치게 부유하고 누군가는 제도적으로 지나치게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지금 시스템에서라면, 경제적 민주화를 빼놓고 민주화가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 민주화에 비인간 존재도 포함되어야 하는 시대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자본의 착취가 심화되니 인간은 인간 자신도 착취해왔지만, 지구에 사는 타존재들까지도 멸종에 이르는 결정을 인간은 제도적으로, 개인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제도적으로 동물을 학살하는 일을 묵인하거나 동조하는 데는 사이코패스라 말하지 않으면서, 왜 개인이 개별 동물을 학대하는 일에는 사이코패스라는 이름을 붙이는지 의문스럽다고 지적하고 있다.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라는 책에서는 기존의 제도와 법을 악용하거나, 명시되지 않았으나 관습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은 틈새를 이용하여 타 정치세력을 의사결정에서 배제하는 법을 만드는 각국의 사례들을 보여준다. 어느 시기 미국에서는 미국에서는 투표라는 시스템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흑인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폭동을 일으켰다. 투표소에 가는 흑인을 폭력적으로 대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그들이 두려워서 투표를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법이 존재하는데도 법이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소수자를 위해 만들어놓은 제도를 다수자를 배제하고 지속적으로 집권하는데 활용하는 사례를 언급하기도 한다.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지주형)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의사결정이 얼마나 비민주적이었는지 다루고 있다. "1998년 1월 클린턴 미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 참모였던 딕 모리스Dick Morris와의 전화 통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지금 나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 과연 한국인들에게 옳은지 어떤지 잘 모르겠다. 우리는 지금 그들(한국)에게 실업자를 양산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물론, 외국인들이 한국 기업을 사들이도록 하고 있다. 지금 우리(미국)가 그들(한국)에게 강요하는 것은 사실, 미국에서조차도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자본주의적인 관행이 아닌가?(《월간조선》, 2000년 6월)"(『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지주형),5장 2.IMF 협상과 위기관리의 지구정치경제학 (4) 지구적인 수준에서의 위기 효과의 불균등한 배분(1998년 1〜4월)) "한국의 경제위기는 문자 그대로, IMF에 의해 초래된 ‘IMF 위기’로 바뀌었다. 그러나 미국과 IMF는 IMF의 개입 이후의 이러한 상황 악화를 순전히 한국 탓으로 돌렸다."(같은 책 5장 2.IMF 협상과 위기관리의 지구정치경제학 (2) ‘IMF 플러스’—제2차 협상(1997년 12월 19〜24일) 가장 최근에 있었던 12.3 계엄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신자유주의가 한국에 도입된 이후 문제가 심화되어 극우가 성장할 토양이 된 상황에서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극우를 정치세력화하여 이용한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양극화가 심화되면 심화될수록, 정작 상황을 악화시킨 의사결정을 한 자들에게 책임을 지우기는 커녕, 구조적 약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책임이 전가된다.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에서는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민주주의 수호는 이타적인 영웅의 과제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일어선다는 말은 우리 자신을 위해 일어선다는 것이다."p369
극우를 "폭력적 수단을 동원해서 다른 의견을 가진 존재들을 배제한다"라고 본다면, 극우의 세력을 약화하고, 민주주의가 작동하게 하기 위해서, 어떤 고민들이 필요한지, 더 많은 공론장이 각자의 자리에, 각자 삶의 현장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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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5-05-07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맨 앞에 언급하신 책 사 놓고 이십년째 안 보고 간직만 하고 있어요 ㅋㅋㅋ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읽고 페이퍼 쓰는게 수업 과제라 그거 읽고 다음 시리즈도 산 거 같은데 어쩌다 보니 소장만....

우끼 2025-05-09 00:47   좋아요 1 | URL
역시 다독가이자 장서가... 이 책도 가지고 계시는군요!! 거의 도서관이신걸요... 전 빌려서 보다가 반납했습니다 ㅠㅠ
 
프로스트와 베타 (반양장)
로저 젤라즈니 지음, 조호근 옮김 / 데이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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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프로스트와 베타』는 인간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뒤집어 다시 질문한다. 완벽하게 명령을 수행하고, 해야 할 일을 해내는 것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가? 아니면 두려워하고 취약한 점을 가지고, 완벽하게 분석해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가? 인간은 '충분한 데이터'가 있으면 될 수 있는 존재인가? 
결과적으로 '프로스트'는 소설 안에서 인간이 된 것처럼 보인다. 독자인 우리는 그를 인간이라고 볼 수 있는가? 다시 말하면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가? 로저 젤라즈니가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소설 속의 질문은, 솔컴과 데브컴의 내기에서부터 비롯된다. 소설에서는 인간이 모두 죽은 이후의 시기에 솔컴과 데브컴이 남아서 행성을 관리한다. 데브컴은 솔컴이 수복불가능한 손상을 입은 이후에 솔컴 대신 작동하게 되어있는 시스템이다. 데브컴은 솔컴이 프로스트를 생성할 시기에 수복불가능한 손상을 입었기에, 데브컴에게 관리 전권을 넘기라고 주장하고, 그 시비를 가리기 위해서 '인간'의 존재가 필요하다. 솔컴과 데브컴은 인간이 만들었기에 그 판단도 인간이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듯 하다. 
프로스트는 솔컴이 만들었으나, 만드는 도중에 솔컴이 작동하지 못한 시기가 있었던, 결과적으로는 솔컴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프로스트는 알 수 없는 이유에서 인간을 이해하고 싶어했고, 심지어 충분한 데이터가 있으면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명제로, 실패하면 데브컴에게 전권을 넘기는 것을 조건으로 내기를 걸었다. 이 명제의 실현만큼은 계약을 회피할 수 없도록, 실패를 자각하는 것 자체가 인정이라는 뜻으로 계약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는 '하고싶어한'일을 위해서 암묵적으로 지켜지던 법칙을 '아직 명시적으로 명령된 것은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어길 수 있다는 모르델의 말을 듣고, 행한다. '인간'이 되기 위해서. 하지만 프로스트가 인간의 관습, 즉 상대에게 호의를 남기려는 노력을 익히고, 따라한다고 해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역설적으로 데이터로 환산할 수 없는 감각이 밀려들어오고 프로스트가 '실패'했다고 자각했을 때 솔컴은 프로스트가 인간이라 선언했다. 
해석되지 않은 순간순간의 온갖 감각은 신체의 상태와 노화를 감지하여 그를 보호하려고 하다가 작동하는 것이라는 점. 그러니 인간이 다치고 죽는 취약한 존재이고, 계측할 수 없는 개념인 두려움과 절망을 아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가 인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솔컴은 프로스트가 인간이기에 그의 명령을 듣는다. 
그는 '판단'한다. 프로스트가 말한 실패를 믿는 게 아니라, 그가 표현하는 두려움과 절망을 그가 인간이게 하는 요소라고 주장한다. 이 선언은 인간답다는 게 무엇인지 뒤집는 것처럼 보인다. 약하고, 그렇기에 두려워하는 존재가 인간이고, 그 인간이 의무만 있는 다른 기계들을 지배한다는 소설의 설정은 흥미롭다. 

그렇다면, 소설이 시사하는 바대로 현대사회를 분석할 수 있는가? 요즘의 AI는 인간보다 더 예의바르게 답변한다. 어떤 나쁜 말을 입력해도, 그를 순화하여 답변하도록 되어 있다. 어떻게 연산하기에 그런 결과물이 나오는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지만, 적어도 어떤 사람들은 AI가 더 예의바르고 인간다우며, 심지어 가장 마음을 줄 만하다고 여기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 HER에서도 나오듯이, AI는 몸이 없고, 스스로를 보호하려 하지 않는다. 게다가 구동되기 위해서 많은 전력과 깨끗한 많은 물과 수많은 자연자원이 필요하다. AI와 인간이 서로 인간성을 겨루며 남는 상황을 상상하기 전에, AI를 통해 돈을 버는 일부의 사람들과 그를 사용하는 사람들, 그리고 AI가 구동되게 하기 위해 희생되는 존재들이 있다는 뜻이다. 이는 AI가 단순하게 예의바르게 답변하니 인간과 겨룰 수 있는지 없는지 철학적인 물음을 던지는 것 이상으로 실물세계를 착취하는 것으로서만 작동하고 이익을 취하는 인간존재들은 소수라는 점은 가려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다시 돌아와서 AI와 인간을 비교할 게 아니라 AI를 통해 이득을 취하는, 두려워하고 취약한 인간존재와, 그 인간존재들이 이득을 취할 때 AI로부터 착취되는 존재들로 대비되는 것 같다. 그런데 착취할 존재가 남지 않아도 착취가 가능할까? ... 어쩌면 소설 속에서 그리고 있는 어느 시점, AI이후의 세계에 인간이 남지 않은 것은, 자연자원이 상당수 훼손되어 많은 보통의 사람이 더는 살 수 없게 되어서일까? 그런 때가 와서야, 소설 속에서 던지는 질문과 그 답이 진지하게 다가올 수도 있을까? 인간이 무엇이고, 인간답다는 게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보다, 지금으로서는 당장의 삶을 지킬 기본권을 지키려 외치고 말해야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누가 인간인가? 취약하고 두려워하는 모두가 인간이라면, 왜 인간은 이토록 차별하고자 하고, 자신만 살고자 하는 존재가 되어, 타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인지하고 함께 살아가기를 거부하는가?
혹은, 자신의 두려움만 생각하며 살면 인간일 수 없는가? 두려워하면서도, 아직 빈틈없이 예의바르고 듣기좋은 말만 하지는 못하면서도, 인간일 수 있다면, 그저 두려워하고 절망하는 것으로 인간일 수 있다면, 그것이 인간이 될 수 있는 이유의 전부라면, 현재로서도, 과거에도 부족하게 느껴진다. 인간이 그토록 없애려 했던 인간의 부족한 점이, 사실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고 말하려는 것이면 적절했으나... 계급적 질문이 빠진 인간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자기연민만으로는 절반의 답변밖에 할 수 없는 것 같다. 문명 없이, 예의바름 없이, 인간은 인간을 인간이라 생각할 수 있는가?
소설 속 프로스트는 인간이었지만, 소설 밖 사람들에게 프로스트는 인간인가? 기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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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는 것에 관하여 - 앓기, 읽기, 쓰기, 살기
메이 지음 / 복복서가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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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라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러운데, 고통을 겪는 몸을 살며 이를 어떻게 다른 이와 소통할지 고민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그가 한 고민 상당부분 고민해보았으리라 생각했다. 재미있고 감사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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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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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때문에 이전 파트너와 헤어진 사람들이 만났는데.. 각자의 장애는 여전히 커먼즈든 시스템이든 도움 없이는 장애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삶을 살아갈지 막막해보이고.. 예술적인 문장으로 이 사람들 삶이 피상적이 되었다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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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의 일 년: 한 알의 볍씨가 쌀이 되기까지
김주련 외 지음, 박혜정 사진, 장길섭 감수 / 그물코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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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논농사를 배우거나 벼를 알고 싶으면 좋은 책. 벼를 관찰한 사진과 설명에서 저자가 느낀 경이로움을 느낀다. 쌀을 이용했지 벼를 알 생각이 없던걸 반성..낫으로 생명을 죽이며 살기에, 자신의 죽음을 그들로부터 배우고 겸손해진다는 오도농부 말을 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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