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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밀양 - 서울 - 밀양 탈송전탑 탈핵 운동의 이야기
김영희 지음 / 교육공동체벗 / 2024년 1월
평점 :
"죄책감은 우리를 움츠리게 만들고 때론 나의 죄와 연결된 참혹하고 남루한 현실을 외면하게 만든다. 누군가에게 빚진 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죄책감이 만들어 내는 마음의 고단함을 벗어던지고자 우리는 그 빚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친다. 그래서 내 몫을 대신해 위험을 부담한 이들과 내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으려 하거나 애써 외면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정작 위험을 떠안고 어디론가 떠밀린 이들이 잡아 달라 손을 내미는 순간, 혹은 들어 달라 목소리를 드러내는 순간 그 중요한 만남의 순간을 외면하고 도망친다.
그러나 아무리 도망쳐도 연결은 끊어지지 않는다. 가정용 전력보다 산업용 전력이 소비량이 월등히 높다는 사실만으로는 마음의 빚을 모두 감당하기 어렵다. 전기를 사용한 모든 산업 생산물을 하루하루 소비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 더 많은 물건을 쓰고 더 오래 전기를 사용하며 우리는 살아간다.
자본은 애써 이 연결을 은폐한다. 우리가 이토록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도록 하루하루 정신없이 우리를 몰아세우고 우리는 눈앞에 닥친 일들을 겨우 해치우면서 정작 중요한 사실을 깨닫지고 못한 채 가장 큰 책임의 한 부분을 지우고 정신없이 내달린다. 그러다 문득 이 연결이 우리의 눈앞에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불현듯 솟아난 출현은 고개를 돌리는 작은 움직임조차 허용하지 않은 채 우리를 꽁꽁 묶어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든 후 이 연결을 직시하게 만든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을 누가 만들었는지 알지 못할 떄 우리는 마음껏 쓰고 버릴 수 있다. 이 연결을 덮고 외면하고 있을 때 산업 재해나 부당 노동은 타인의 일일뿐 나의 일이 아니다. ... 하지만 내가 쓰는 전기를 실어 나르는 송전선로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매일같이 송전탑 아래에서 웅웅거리는 소음과 번쩍거리는 거대한 불빛을 마주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나면 이것을 더 이상 생떼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 '거기'서 살고 있는 '누군가'가 이름을 가진 존재가 되고, '여기'서 살고 있는 '내'가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순간 '그'와 '나'사이에 연결된 끈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나'는 더이상 이 끈을 외면할 수 없게 된다. '그'가 경험하는 고통과 위험이 '나'의 문제가 되는 순간 비로소 '연대'가 시작된다.
'그'의 일이 '나'의 일이 되는 순간 이 갑작스런 깨달음은 '나'를 실천으로 이끈다. 이제 더 이상 가만히 앉아서 일이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거대한 중장비 기계를 사이에 두고 건장한 용역들에 맞서는 '밀양 할매'들 옆에 서 있을 떄 누군가 영상 촬영 카메라를 그의 손에 쥐어 주며 '찍지 않아도 좋으니 들고만 있으라'고 말했다. 그때 카메라는 그에게 용역들이 할머니들에게 험한 일을 벌이지 못하도록 지키는 도구였다. 그렇게 영상 촬영 장비를 손에 처음 쥐게 되었던 그는 결국 몇년 뒤에 밀양에서의 싸움을 내용으로 하는 다큐멘터리의 감독이 되었다. "p18-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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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 혹은 보여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폭력을 막거나 폭력의 수위를 낮출 수 있다는 것. 그에 더해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는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되고 말하게 된다. 그럼에도 죄책감때문에, 나도 그렇고 종종 함께하는 다른 사람도 참혹한 현실을 외면하곤 한다. 개인적인 계기때문에, 들었기 때문에 그것을 따라 말하기 시작하면서 삶을 건 행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그게 어떤 방식일지는 누구도 모르고, 함께 찾아가야 한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할 수도 없고, 하지 않아도 되고, 언제든 중단해도 된다. 꼭 내가 아니어도 되지만, 나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건 의미가 있다.
전국적으로 신규 재생에너지 설비가 생산할 전기를 송전하려고 신규 송전선로가 세워질 예정이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입지선정위원회가 열리고 있고, 사람이 아닌 비인간존재만 사는 곳에는 그조차도 없을 것이다. 신규송전선로를 계획에서부터 거부할 수 있는가? 그를 시도하려 제11차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에 찾아가 발언한 사람들이 있다. 이미 몇 십년을, 주민에게는 제대로 동의조차 구하지 않고 세워진 전력수급기본계획때문에 고통받아온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대로 계획을 통과시켜서는 안된다고 작년 하반기에 단상에서 외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중 일부에게 약식 재판으로 벌금형이 나왔다. 그들은 그 판결이 부당하다고 정식 재판을 청구해 재판을 이어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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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차 전기본 공청회 연행 사건 관련 재판> 기자회견 참여 요청
작년 9월,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 공청회가 세종시 정부종합청사에서 있었습니다. 그날 전국에서 기후 위기와 탈핵을 요구하는 많은 시민과 주민들이 공청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날 20명의 활동가와 주민들이 연행되었습니다. 단상에 올라 ‘11차 전기본 폐기’를 외쳤었는데, 주최 측의 퇴거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이후 법원은 10명에 대해서 ‘기소유예’, 나머지 10명은 벌금 100만 원씩의 약식 처분을 내렸습니다.
약식 처분을 받은 6명의 활동가와 주민들은 정식 재판을 받기로 했습니다. 11차 전기본은 기후위기의 대응이 될 수 없을뿐더러, 기후 위기를 더 가속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핵폭주 정책을 담고 있어 수많은 지역에서의 폭력과 고통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공청회는 전기본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기보다 이들을 모두 연행하고, 벌금까지 부과했습니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윤석열 정부에 들어서 공청회에서 연행되고, 처벌받는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위태로운데 말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처벌받는 것은 옳지 못하며, 경종을 울려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이에 오는 8월 19일, 첫 재판이 예정되어있습니다. 기후 및 탈핵을 지지하는 많은 시민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재판을 방청하고 싶습니다.
많은 관심과 지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 11차 전기본 공청회 폭력연행 사건 형사재판 기자회견 ; 처벌 받야할 사람은 우리가 아니다
-일시 : 2025. 8. 19.(화) 10:30
-장소 : 대전지방법원 정문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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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송전선로 입지선정위원회는 주민에게 위치조정권한만을 이야기하는 비폭력대화전문가가 회의를 주재할 뿐, 송전탑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는 의사결정권을 제공하지 않는다. 사람 몇몇에게는 보상금이 돌아갈 수 있지만, 돈으로는 비인간존재의 죽음을 막을 수 없고, 인근주민이 계속 살기로 결정할 때 그 피해는 지속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함께 이 학살에 반대하자고 하고 싶은데, 전기를 사용하고 있는 개개인에 관하여 이야기하면 다시 물러선다. 전기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산업은 가정에서 쓰는 전자제품을 만들고, 그걸 가정에서 사용하려면 전기가 필요하다. 산업이 어마어마한 전기를 사용하는 건 맞지만, 산업만 비판할 수도, 가정만 비판할 수도 없다. AI 개발 이후에는 AI사용을 위한 순수한 물이 필요하여 신규 댐을 두자리수로 짓고, 전력도 더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한편 필요를 다시 인식하고 함께 사는 삶들을 돌보는 관계들도 있다. 외지인에게도 열려 있는 관계라 고이지 않는다. 만약 전기를 줄여 살아야 한다면, 어떤 삶을 살 수 있는지 가늠할 시간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전기 없이 살았던 사람들은 돌아가시거나 자신들이 살아온 삶의 노하우가 필요없어져 잊었을 것이다. 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고립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게 전기라는 다른 폭력을 매개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 있고, 살아가는 동안 필요를 다시 인식할 답을 찾아나가고 싶다.
이 책은 송전선로를 세우는 과정에서 송전선로 부지 인근에 사는 주민들에게 송전선로가 세워졌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그 여파를 알리지 않고 송전설로 건설을 시작하였던 그때를 기록한다, 계획이 세워질 때 주민이 개입하지 못한 채로 확정된 계획을 진행하기 위해, 보상금명목의 돈을 몇몇의 대표자 아닌 대표자에게 지급하고, 주민들을 이간질하고, 반대하는 것을 포기하게 하기 위해 인간성을 말살하려 하는 등,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폭력적으로 주민들을 제압한 밀양의 기록이다. 이때의 일을 국가폭력이라 표현하는 것을 우아한 말이라고 말하는 주민들이 있다. 한편 함께 싸우다가 최근에 돌아가신 구미현님은, 탈핵,탈송전탑운동할 때가 전성기였다고 말한다.
최근에 제정된 전력망 특별법은 기존의 입지선정을 위한 절차마저도 생략하였다. 그리고 앞으로 세워질 신규송전선로에서 벌어질 일들, 세워진 이후에 벌어질 일들. 이 반복을 막을 수 있을까? 착취와 폭력을 막고서도, 함께 잘 사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찾아야 할까?
"밀양에서 벌어진 일들은 밀양에서 그치지 않는다. 수탈과 약탈의 폭력은 밀양 이전에도 있었고 밀양 이후에도 있다. 밀양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조사하여 보고하는 발표회장에 온 다른 지역의 주민들은 송전탑 건설 예정지인 자신들의 마을에서 곧 벌어질 일들을 들으면서 두려워했다. 서울로 오는 전기는, 도시로 오는 전기는 지금도 누군가의 두려움과 불안, 구체적인 위험과 폭력을 지우며 우리에게 오고 있다. 그리고 두려움과 위험에 직면한 이들은 그 땅의 주인들이 자신들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나는 그들과 함께 이 땅의 주인이 될 것인가.' 밀양 탈송전탑 탈핵 운동의 이야기를 듣는 청취의 연대는 이 질문과 함께 시작된다." p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