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있어요’를 정리해 둔다.
<the idea of you>는 지난주에 읽었다. 영화를 먼저 보고 나중에 책을 읽었는데, 나처럼 영화를 보고 좋아하셨던 분이 또 다른 감동을 기대하신 거라면, 책은 그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라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다.
노력하지 않아도, 애쓰지 않아도 <the idea of you>는 앤 해서웨이의 영화라서, 이런 아름다운 여성이라면, 얘가 셋이든 넷이든 상관없이, 이 사랑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된다. 앤은 너무 예쁘고, 너무 사랑스럽고, 너무 핫하다. 책 속의 화자는 앤이 역할을 맡았던 ‘Solen’인데, 소설 속의 솔렌은 딱 엄마다. 헤이즈를 바라보는 눈빛이, 그의 행동을 관찰하는 시선이, 내면의 목소리가 모두 ‘엄마로서의 솔렌’이다. 두 명의 솔렌 중에 나는 확실히 소설 쪽의 솔렌이어서(당연하지 않은가, 영화 쪽으로는 얼씬거릴 수 ‘없음’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훨씬 덜 행복했다. 내가 앤 해서웨이가 되고 싶었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40살의 싱글맘이 20살의 청년을 연인으로 앞에 두었을 때의 심경이 너무 적나라했다는 뜻이고, 그 마음이 잘 이해되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직진남의 귀여운 돌진은 이어지고.
계속해서 칭송되는 헤이즈의 특질은 젊음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바로 그것이 그를 가장 빛나게 하는데, 그걸 가지고 있는 그는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다만, 그는 자랑한다. 자신이 바로 그것을 가지고 있음을 말이다. 나는 남자들이 어린 여자를 좋아한다거나, 나이 든 여자도 젊은 남자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나는 차은우만큼 블랙핑크의 제니를 좋아한다. 나는 김수현을 좋아하고, 뉴진스의 민지를 좋아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건, 젊음이다. 내가 사랑하는 건 그가 가진 젊음이다. 헤이즈가 가진 젊음. 솔렌에게 작동하는 헤이즈의 힘은 그의 젊음에서 나온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단장의 아픔을 주는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과 영속성을 잃어버린 사랑의 위치가 어디쯤인지에 관해서도 쓰고 싶지만, 그건 다음 기회에.
정보라의 <저주토끼>가 유행했을 때, 나는 그 책을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인터뷰 기사를 읽고는 정보라 작가의 팬이 됐다. 모든 사람이 사회 정의를 위해, 대의를 위해, 신념을 위해 자신의 삶을 갈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대의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자신의 에너지를 바치는 사람들에 대해 마음 깊이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더 존중받아야 한다고, 사회의 발전을 위해 애쓰는 만큼 일정 정도의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보완책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고독한 작업이고, 사회는 예술가들의 그런 고립과 고독을 이해해 준다. 예술가들은 마음을 흔드는 노래로, 그림으로, 연주로, 작품으로 고립과 고독의 결과물을 사회에 돌려준다. 그 사회를 풍요롭게 한다. 그 누구보다 혼자이고 싶은, 그 누구보다 고립되고 싶은 예술가가, 작가가, 소설가가 길 위에서 써 내려간 이 기록이 특별한 이유다. 세월호 농성과 오체투지와 전장연 투쟁 이야기 등은 한 단어, 한 단어 모두 절절해서 이 얇은 책을 30여 페이지 읽는 동안 자주 덮을 수 밖에 없었다. 더 읽을 수가 없었다. 부당한 현실에 몸으로 부딪치는 사람들. 소중한 사람들. 고마운 사람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알라딘 이웃님들과 같이 읽던 그때, 지금 사는 이 집으로 이사를 왔다. 막 코로나가 시작된 때였고,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쓸 때였다. 사회활동의 마지막 근거지였던 교회까지 가지 못하게 되자, 장보기 이외에는 외출할 일이 없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죄책감과 무력감에 힘입어 ‘올해는 옷을 사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초반에는 잘 되는 듯했지만, 1+1 행사 때문에 요가 레깅스를 두 개 샀고, 여름 원피스를 하나 샀다. 굳은 결심은 작년에 일을 하게 되면서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책을 펼치자마자 또다시 밀려오는 죄책감의 파도. 먹을 것을 줄일 수 없다면 다른 소비를 줄여야 한다. 소비 행태를 바꿔야 한다. 덜 먹고, 덜 사야 한다. 덜어내고 더 덜어내야 한다.
<일류의 조건>은 자기 계발서다. 예전에 출판된 책이 절판된 상태에서 박문호 박사의 추천으로 화제가 되어 재출간 되었는데, ‘일류가 될 수 있는 조건’이 따로 있는가 하는 의문으로 읽기 시작했다. 첫 번째 원칙은 ‘훔치기’인데, 도제식 교육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기술을 훔치는 비법이란, '암묵지'와 그것을 활성화한 '형식지'의 순환을 기술화하는 것이다. 이 순환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적확한 '요약력'과 전문가를 상대로 하는 '질문력', 그리고 '코멘트력'과 같은 중요한 능력들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일이라는 것 자체는 '과정'에 따라 진행하기 때문에, 결국 기술을 훔치는 것은 과정을 훔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기 스스로 일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정리하며, 그것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 때까지 수련하는 것은 '일의 추진력'을 단련하는 일이기도 하다. (49쪽)
나는 이런 생활이 아직도 익숙지 않아서 오늘 내내 놀았는데도 더 놀고 싶다. 한없이 오래오래 놀고 싶다. 내일 출근한다는 생각은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처리해야 할 일 하나를 화요일 퇴근 전에 급하게 처리했던 터라 딱 그만큼은 마음이 가볍다.
아침에 흰 빨래 한 판 돌려서 저녁에는 청소기 돌리고, 지금 검은 빨래를 한 판 돌리고 있다. 시간은 흘러가고 이제 곧 잘 시간. 그리고는 아침이다. 아침이 찾아올 테다.
그래서 책을 샀다. 나도 책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