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전야에 손에 들고 있는 책은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까치, 1996/2009)이다. 맹자와 함께 프롬이 어제오늘 관심 저자다. 꼬투리를 따지자면 애기가 길지만, 맹자는 프랑수아 쥴리앙의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한울아카데미, 2004)를 읽으면서 다시금 흥미를 갖게 됐고, 프롬은 며칠전에 문득 20년 전 베스트셀러였지만 요즘 안 읽히는 책 중 하나가 <소유냐 존재냐>가 아닐까란 생각에 다시 읽고 싶어졌다(바쁜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종강 이후라고 '여유'를 부리는 중이다). 그래서 <소유냐 존재냐>와 함께 <에리히 프롬의 현대성>(영림카디널, 2003)을 며칠전에 주문해서 어제 받았고, 오후에 동네 도서관에서 대출해온 책도 백민정의 <맹자: 유학을 위한 철학적 변론>(태학사, 2005)과 박홍규의 <우리는 사랑하는가: 에리히 프롬의 생애와 사상>(필맥, 2004)이다. <소유냐 존재냐>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20년 전에 읽을 때보다 훨씬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다. 그리고 그의 제자인 라이너 풍크가 프롬의 사상에 관해서는 권위자라는 것과 국내에도 풍크의 책이 소개돼 있다는 사실도 덤으로 알게 됐다. <우리는 사랑하는가>를 가이드북 삼아서 프롬의 책 두어 권을 이 참에 읽어보려고 한다. 겸사겸사 리스트도 만들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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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 지음, 차경아 옮김 / 까치 / 1996년 5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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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는 사랑하는가- 에리히 프롬의 생애와 사상
박홍규 지음 / 필맥 / 2004년 1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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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과의 대화
박찬국 지음 / 철학과현실사 / 2001년 8월
10,000원 → 10,000원(0%할인) / 마일리지 0원(0% 적립)
*지금 주문하면 "4월 3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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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냐 삶이냐 / 사랑한다는 것
에리히 프롬 지음, 고영복.이철범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1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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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12-25 08:30   좋아요 0 | URL
소문에 듣던 책을 손에 넣기까지는 좀 시간이 거렸지요.
그때는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다시 읽어보면 많은 내용이 닿을 것 같습니다.
오늘 꺼내 봐야겠는데요. '가질 꺼냐, 그냥 있을까?'

로쟈 2009-12-27 09:18   좋아요 0 | URL
'소유냐 삶이냐'란 제목으로도 번역본들이 나와 있지요...

sophie 2009-12-25 08:06   좋아요 0 | URL
하하 크리스마스 이브에 <소유냐 존재냐>를 읽는 로쟈님! 출판문화대상은 아무나 타는 게 아니군요, 정말. 크리스마스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고원에도 놀러오시구요.

로쟈 2009-12-27 09:18   좋아요 0 | URL
그저 갑자기 생각이 미쳤을 뿐이에요. 요즘 글을 쓰지 않아서 고원에는 자주 못 가고 있어요.^^;

jungan 2009-12-25 19:19   좋아요 0 | URL
님을 찿았습당 기쁨!!

로쟈 2009-12-27 09:17   좋아요 0 | URL
숨어 있지 않았는데요.^^;

사이 2009-12-28 14:14   좋아요 0 | URL
"소유냐 존재냐"는 현대인들, 그리고 특히 책 읽기를 좋아하는 현대인들은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친구들에게도 많이 선물했던 책이기도 하구요) 개인적으로 이 책의 서평중 가장 뛰어 났던 것은 Yes24의 서평이었습니다. "http://www.yes24.com/chyes/ChYesView.aspx?cont=3455&title=001007"

...

하지만 너무 존재하려고 하는 것도 해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이 부분은 제 생각을 글로 표현하기 어렵네요 ^^

그리고 프롬의 책중 "환상에서의 탈출"이란 책도 굉장히 볼만 했는데 아쉽게도 현재 절판되어 인터넷 서점에 보이지 않네요.

로쟈 2009-12-29 20:22   좋아요 0 | URL
저도 다시 읽으며 몇몇 대목이 흥미로웠습니다. '휴머니즘'이란 입장만 고집하지 않았다면 더 멀리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들고요...

페크pek0501 2009-12-30 12:26   좋아요 0 | URL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저서에서 프로이트와 마르크스가 자신의 두 개의 정신적 기둥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프롬도 그런 정신적 기둥을 우리에게 심어 줄 만한 학자이지요. 한때 그의 저작들을 탐독했어요. 아직 읽지 못했던 그의 저작을 찾아 읽고 싶어지네요.
 

출판이나 문화계 동향 기사를 스크랩해놓는 것도 제대로 하자면 '일'이다. 기록 혹은 자료로서의 가치만 고려하더라도 매일 몇 건씩은 페이퍼감이 뜨기 때문이다. 그래도 블로그를 '스크랩북'으로만 만들 수는 없어서 자제하는 편이지만, 가끔은 '의무감'을 갖게 하는 기사도 있다. 어제 피곤하다는 이유로 제쳐놓은 오태석 공연대본 전집 완간 소식이 그런 경우다(엊그제 경향신문의 김우창 선생 인터뷰 기사도 조만간 코멘트와 함께 스크랩해놓아야 한다). 연극 관련서로는 올해의 가장 중요한 성과가 아닌가 싶다. 나는 평민사에서 나온 대본 몇 권을 오래전에 챙겨놓은 적이 있는데, 판본을 연극과인간사 걸로 바꿔야 할 모양이다(이윤택 공연대본 전집도 출간돼 있다는 건 이번에 알았다). 16권 전체를 챙겨놓는 건 현재로선 가능하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한겨레(09. 12. 23) 연극계 큰어른 오태석 ‘걸작의 유산’ 물려주다 

“열한살 때 한국전쟁에서 세상이 뒤집히는 것을 본 뒤로 세상을 믿지 않게 됐어요. 그래도 살아가야 하니까 아마 세상 아닌 것을 만들어 보려고 했던 것 같고…. 내 고향인 충청도 아롱구지 마을 옆에 있는 이야기만 좀 모아놓으면 ‘그래도 이런 삶이 있었다’는 정도는 되지 않을까 했는데 그것도 잘 안 되었어요. 횡설수설한 것이 작품이 아닌데 활자화까지 될 줄은 몰랐지요.” 



칼바람 매서웠던 지난 19일 저녁 서울 대학로의 한 피자집에서 원로 극작가이자 연출가 오태석(69)씨의 공연대본 전집(16권, 연극과 인간 펴냄) 출판을 기념하는 모임이 열렸다. 1984년 극단 목화 창단 이래 ‘오태석 사단’을 지켜온 조상건, 한명구, 정원중씨 등 나이 지긋한 배우들과 지인 등 20여명이 마련한 자리였다. 한국 연극계의 봉우리로 우뚝 선 노 연출가의 출판기념회치고는 검박했으나 분위기는 흥겨웠다. 연세대 철학과 2학년 시절인 1962년 발표해 자신의 연출로 서울 옛 명동국립극장(현 명동예술극장) 무대까지 올린 첫 작품 <영광>부터 미발표 신작 <아롱구지 흥망성쇠>까지 노 작가가 47년간 조탁한 작업들을 전집 한두름에 꿰어 첫선을 보이는 행사였다.   



두달 전 고희를 넘긴 오씨는 “부끄럽다. 책이 될 만한 글이어야지. 괴발개발 다 모아놓은 거야”라며 쑥스러워했다. 그러면서도 제자들의 깜짝 선물에 기분이 좋았던지 “앞으로 스무 권은 채워야지”라며 특유의 쩌렁쩌렁한 웃음을 터뜨렸다.

전집은 그의 오랜 지우인 서연호(68)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빙교수와 장원재 경기영어마을 사무총장(43·전 숭실대 교수)이 2000년 8월부터 매달려온 고된 공동작업의 결산이다. 두 사람은 “한국을 대표하는 극작가의 대본에 정본이 없다면 후학들의 연구가 어렵다”는 데 뜻을 모으고 그를 설득했다. 장씨는 “오 선생님이 저희 말씀을 다 듣고 난 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며 허락하셨다”고 떠올렸다.

그 뒤 세 사람은 4박5일간 함께 생활하면서, 오씨가 서씨와의 대담에서 밝힌 연극 제작원리를 <오태석 연극: 실험과 도전의 40년-원리, 방법, 세계관>이란 대담집으로 정리했다. 오씨의 공연 일지·목록을 짜고 인터뷰로 확인하면서 대본을 수집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김미도 서울산업대 교수, 이상우 고려대 교수 등 후학 30여명도 무료 봉사로 매달렸다. 유실된 일부 초기작들은 수집조차 어려웠고, 작가가 기억하지 못한 작품도 있어서 거의 탐문수사를 방불케 하는 수작업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끝내 1962년 발표한 첫 작품 <영광>과 그 이듬해 공연된 두번째 작품 <사중주>는 기록만 남길 수밖에 없었다. 또 1968년 공연된 <고초열>도 소장자가 공개를 꺼려 대본을 구하지 못했다.

전집에는 그가 쓴 대본 78편과 작품연보, 평론가들의 글이 실렸다. 그 가운데는 연습, 리허설만 하고 공연되지 못했거나, 육필 원고로만 보관된 작품도 있다. 그럼에도 전집은 오태석이라는 걸출한 극작가·연출가를 세상에 올바르게 드러내는 일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고 저자들은 입을 모았다.

다시 말해 한국의 전통적 소재와 공연 기법을 활용한 실험적·창의적 연극으로 독자적 세계를 구축해온 한 연극인의 자화상인 셈이다. 생략과 비약, 의외성, 즉흥성이라는 전통연희 기법에 능란한 장인, 전통의 현대화를 겨냥해 우리 말과 우리 몸짓, 우리 소리에 매달려온 고집쟁이의 모습이 담겨 있다. 또한 그가 11살 때 한국전쟁에서 부친이 북한군에 납치되고 집안이 풍비박산 난 상흔이 다양한 작품에 변주되는 과정도 엿볼 수 있다.

연극평론가 안치운 호서대 교수는 “작가의 완간본이 나왔다는 것은 개인의 유산에서 사회의 유산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될 정도로 중요한 일”이라며 “연극계에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오씨도 언젠가 말한 적이 있다. “연극은 콘크리트 담긴 레미콘 트럭과 같다. 자갈과 모래, 시멘트가 뒤섞여 끊임없이 돌아가야 한다. 안 그러면 굳어버린다.”

그는 현재 <춘풍의 처>(31일까지)와 <분장실>(내년 1월31일까지)을 대학로 소극장에 올리고 있기도 하다. “멍석 한 잎 넓이에서도 연극은 가능하다”는 노 연극인의 끊임없는 실험은 “스무 권의 전집을 채우고 싶다”는 바람처럼 계속될 것 같다.(정상영 기자) 

09. 12. 24. 

P.S. <춘풍의 처>는 시한이 촉박하지만, <분장실>은 꼭 한번 보고 싶은 연극이다. 간단한 소개기사도 참고삼아 옮겨놓는다.     



주간한국(09. 12. 22) 순수한 여배우들과 천진한 귀신들… 연극 '분장실'

일본의 대표적인 극작가 시미즈 쿠니오의 원작을 바탕으로 오태석 연출이 우리 정서와 언어에 맞게 각색한 작품. 극에는 생전 주연을 하지 못해 한이 맺혀 분장실에 머무는 두 여배우 귀신과 주연을 연기하면서 자신의 삶이 잔혹하다고 느끼는 한 여배우가 등장한다. 3명 외에도 현재 주연의 뒤에서 대사를 불러주는 프롬프터 역할을 맡고 있는 한 여배우도 있다. 이들 4명이 '하고 싶은 일'과 '하고 있는 일'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끼며 벌이는 사건이 극의 중심이다.

극의 공간적 배경은 안톤 체호프의 연극 <갈매기>가 무대에 올려지고 있는 어느 극장의 분장실. 현실 세계와 죽은 유령의 세계가 공존하는 분장실이라는 공간 구성(관객을 비추는 대형거울과 바퀴가 달려 움직이는 화장대)이 특징적이다. 러시아풍의 음악, 브레히트 극의 음악은 극적 구성을 돕는다.

2001년에 이어 오태석 연출과 오랫동안 함께해 온 4명의 여배우가 출연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우 조은아와 문현정, <맥베스>의 장은진,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의 구옥자 등이다. 그들은 인간적인 순수한 내면을 가진 여배우들과 천진한 귀신을 연기한다. 또한 놓쳐버린 기회 혹은 그 기회마저 포기해버리는 현대인들의 삶을 어루만진다. 12월 18일부터 1월 31일까지. 디마떼오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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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12-25 08:32   좋아요 0 | URL
관심있는 스크랩에 대한 의무감에 동감합니다. 로쟈님의 스크랩 덕을 봅니다. 저 역시 쌓여 갈 수록 특별한 것들이 일반화되는 것을 봅니다. 원로 연출가에 대한 공연대본집은 후학들에게 좋은 책이 되겠습니다. 특히 어려서 가족을 잃은 상처로 인해 세상을 보는 남다른 눈이 작품에 선명히 드리워저 있겠습니다.

로쟈 2009-12-27 09:16   좋아요 0 | URL
'스무 권'이 마저 채워지면 좋겠어요.^^
 

'나만의 길을 찾은 17인의 청춘 에세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책 <그 삶이 내게 왔다>(인물과사상사, 2009)에 필자의 1인으로 참여했다(알라디너로는 마태우스님도 '기생충들아 고마워'란 재미있는 글을 쓰셨다). 뒤늦게 제안을 받고서 영문도 모른 채 쓴 원고라(부분적으론 예전에 쓴 글을 편집했다) 기획 취지에 맞는 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책은 나왔고 오늘 필자본도 배송받았다. 말 그대로 다양한 필자분들의 다양한 인생 체험담이다. '죽음'의 문제를 다룬 나만 빼고는. 내가 쓴 꼭지는 '게으른 저공비행'이란 제목이다. 글의 서두만 일부 옮겨놓는다. 행여 궁금해하실 분도 계실까봐서... 

 

나의 삶이라는 난감한 문제를 받아들고

어쩌다 보니 ‘그 삶이 내게로 왔다’란 테마로 글을 쓰게 됐다. 그냥 어떤 글을 써달라는 제안을 받고 기꺼이 승낙했을 따름인데, 참고하라고 보내준 책을 보고 나서야 ‘그 삶이 내게로 왔다’란 꼭지에 맞는 글을 써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삶이 오기 전에 내겐 그 책이 먼저 와버린 셈이다. 하여 뒤늦게 내가 해야 할일이 무엇인지 헤아려본다. 일단은 낭패스럽다. 막상 ‘그 삶’이 어떤 삶인지 모호하고, ‘내게로’란 말이 전제하는 ‘나’의 정체성이 불분명하며, ‘왔다’라는 사건이 무얼 지칭할 수 있을지 막연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인터넷 서평꾼으로 활동하는 처지이지만 ‘대학 강사’나 ‘서평꾼’이 모두 ‘소명’으로서의 직업이라고 하긴 어렵다. 즉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통해서 천국에 갈 수 있을지는 지극히 의심스럽다. (그러고 보니 “블로거도 천국에 갈 수 있나요?”라고 네이버 지식iN에 한번 물어봐야겠다). 하여 나의 ‘사회적 정체성’과 관련하여 ‘그 삶’에 대해 말하기는 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이럴 땐 고육지책이 비책이 되곤 한다. 문제가 안 풀릴 땐 문제를 비틀어라! ‘그 삶’에 대해서 말하기 어렵다면 ‘그 죽음’에 대해 말해보는 건 어떨까? 그건 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물론 아직 죽지 않았고 직접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없으므로 ‘그 죽음’은 ‘죽음에 대한 관념’이라고 해야겠다. 혹은 ‘죽음에 대한 공포’. 그러니까 ‘나의 삶’이 오직 삶으로만 충만한 것이 아니라, 죽음의 그늘과 맞닿아 있으며 죽음과 등을 맞대고 있는 죽음의 짝이라는 것, 더불어 삶은 죽음과의 내기에 언제나 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패배의 운명을 떠안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언제 처음 알게 되었을까? 기억엔 초등학교 1학년 때다.

죽음이라는 형이상학적 문제에 봉착한 날

아마도 어떤 모임이 있어서 부모님이 집을 비우신 날 밤에 나는 동생과 집을 지키고 있다가 문득 내가, 그리고 우리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실감’하고서 울기 시작했다. 머리가 더 큰 다음에 읽은 하이데거는 ‘죽음에의 존재(Sein zum Tode)’ 혹은 ‘죽음을 향한 존재’라고 좀더 멋들어진 말로 표현했지만 그런 관념 이전에 여덟 살짜리는 그냥 ‘나의 죽음’과 ‘가족의 죽음’이라는 심연 앞에서 아무런 방비책도 갖지 못한 채 몸을 떨어야 했다. 

그 나이까지가 평생이었다면 내 평생 가장 많이 울었던 밤이었고, 그 이후의 나날을 고려하더라도 더 많이 운 날은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그날 나는 가까운 사람들 모두가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이 두려웠고 망연자실했다. 그런 것을 ‘원체험’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어떤 준거체험이자 반복되는 체험 말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읽은 세계위인전집 가운데는 석가모니도 들어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고행하는 석가모니’의 이미지. 어린 시절 왕자였던 석가모니가 4대문 밖으로 행차했다가 그때마다 병과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보고서 인생의 ‘생로병사’에 대한 고뇌에 빠지게 된다. 이후에 출가한 그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행에 나선다. 다시 찾아보니 6년간의 고행이었다고 한다. 내가 본 건 그 고행의 객관적 상관물이기도 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석가모니의 육체적 실존이었다. 나는 기이한 낯설음을 느꼈던 듯싶다. 두렵고 경이로웠다. 정신적 고행에 의해 학대받는 육체라는 이미지, 그러니까 정신과 육체는 서로 대립된다는 관념은 그때 강하게 각인되었던 듯싶다.  

이런 것이 특별한 경로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언제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아이는 죽음에 대해서 알게 될 것이고 그 공포에 떨게 될 것이다. 부모가 더 조심해야 할까? 카롤린 봉그랑의 소설 <밑줄 긋는 남자>를 읽다 아이가 그러한 문제에 봉착하게 될까봐 근심하는 주인공이 등장하여 미소 지은 적이 있다. 이런 식이다. “파니는 아이가 마음을 다칠까봐 신중하게 처신을 해야 했고, 그래서 고추를 넣어줄 때도 싱싱한 것으로만 골라주었다. 자기 아들이, 어느 날 아침, 고추 네 개 중에서 쭈글쭈글하고 빛이 바랜 묵은 것을 발견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일로 아이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슬픔을 맛볼 수도 있고,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봉착할 수도 있다고 파니는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1학년을 앞뒤로 하여 나는 그런 형이상적인 문제에 봉착했던 듯싶다. ‘죽음에의 존재’라는 것. 그렇다면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든 것이다. 대학 1학년 때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를 읽으며 감명을 받은 것은 그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그는 다짜고짜 이렇게 적어놓았으니까.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라고. 나머진 다 장난이라고. 그랬다. 죽음(자살) 외에는 모든 것이 장난처럼 여겨졌다.(...) 

09. 12. 23. 

P.S. 출간에 즈음하여 출판사측에서 댓글 이벤트를 제안해왔다. "<그 삶이 내게 왔다>에서 가장 기대되는 저자의 이야기는 어떤 것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댓글을 달아주시면 세 분을 선정해서 <그 삶이 내게 왔다>를 보내드릴 예정이다. 참고로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1. 공선옥 - 생의 한데에서 불안에 떨며
2. 정성일 - 영화, 당신에게는 어떤 의미입니까?
3. 박래군 - 인권운동, 나의 영원한 숙제
4. 이진숙 - 땅의 힘으로 세상을 향해
5. 이현우 - 게으른 저공비행
6. 서민 - 기생충들아 고마워
7. 남경태 - 편집-번역-집필의 트리클다운
8. 김창남 - 어느 얼치기 쾌락주의자의 대중문화 편력기
9. 안건모 - 내가 버스기사 직업을 버린 까닭
10. 강홍구 - 캔버스 / 카메라 / 도망자
11. 이영미 - 대중의 문화, 나와 당신의 취향
12. 이희수 - 공존과 상생의 종교 이슬람과 함께
13. 염형국 - 단 한 번뿐인 삶이므로
14. 박승숙 - 우울증의 나날들, 그 길에서 만난 미술치료
15. 양희규 - 아이들에게 행복한 학교를
16. 김신명숙 - 페미니즘, 내가 사랑하는 방식
17. 전진삼 - 나는 어떻게 건축을 배웠는가?
 

이 중에서 아무래도 '정실' 관계를 고려해야겠기에 알라디너 두 사람(이현우, 서민)을 제외한 나머지 15분의 필자 가운데 '기대되는 저자'와 '그 이유'를 적어주시기 바란다. 마태우스님도 따로 이벤트를 하실지 모르겠는데, 여하튼 내게 할당된 인원은 3명이다(마태우스님 3명). 일주일간 이벤트를 진행해달라고 요청해왔지만, 너무 긴 듯싶고, 27일(일)까지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 가운데, 세 분을 28일에 선정하여 발표하도록 하겠다. 관심 있으신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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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 삶이 내게 왔다' 이벤트 결과발표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12-28 08:58 
    불미스런 일로 잠시 서재를 쉬겠다고 했는데, 제가 깜박 잊은 게 있습니다. <그 삶이 내게 왔다>(인물과사상, 2009) 출간 기념 '댓글 이벤트'의 결과는 오늘 공지하기로 한 것인데요. 휴가 중이라도 일처리는 해놓아야겠습니다.      댓글로 응모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총 14분이 응모해주셨고, 예고한 대로 3분에게 책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세 분의 당첨자는 아래와 같습니다.  
  2. 17인의 짧은 수상록(隨想錄)
    from 내가 읽은 책과 세상 2010-01-13 11:32 
       『그 삶이 내게 왔다』는 부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나만의 길을 찾은 17인의 청춘 <에세이>'다. 이 책에 수록된 글은 출판사의 소개대로, 지금 대한민국에서 (어떤 의미에서든지)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자전적 에세이다. 하나의 테마로 각자 스스로 글을 진행하다보니 글의 편차도 제각각이다.      책에 수록된 내용을 (나름) 유형별로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다. 어떤
 
 
다락방 2009-12-23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벤트는 참가하지 않겠습니다.(얼마전에 이미 선물을 받았으므로)
그리고 저는 꼭 사서 보겠습니다!! 지금 바로 주문하겠습니다!!

로쟈 2009-12-24 00: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저도 대부분 안 읽어본 글들이라,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바밤바 2009-12-23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인물과 사상에서 글 쓰시던 '서민'씨가 마태우스 님이었네요~ 첨 알았네요~
신기한데요. ㅎ

로쟈 2009-12-24 00:02   좋아요 0 | URL
알라딘 '초보'란 말씀?!..

rolla 2009-12-23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벤트 참여합니다!!
공선옥 작가의 글이 기대됩니다. 작가들이 좀처럼 이야기해주지 않는 '가난'에 대해서 끊임없이 치열하게 글을 써온 그의 행보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고요. 2살난 딸아이의 엄마로서 공선옥 작가의 글들을 읽으며 많은 위로와 희망을 얻었었거든요. 이번 글을 읽으면 위로와 희망 뿐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아이가 커가면서 이 사회 속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 고민이 많거든요.

얼마전에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읽고 마음이 많이 아렸습니다. 지금은 동인천 헌책방 아벨서점에서 득템한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를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공선옥 작가님 글 속에는 강한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살아있는 한 아무리 파헤쳐져도 재생되는 생명력 같은 것이. 글 속에서 흙냄새가 나는 것도 너무 좋아요.

늘 로쟈님 블로그에 놀러오면서 댓글 한 번 안달았는데, 책이 탐나서 첫 댓글을 달게되다니 웬지 부끄럽네요. 으하하하하(멋적은 웃음)

로쟈 2009-12-24 00:03   좋아요 0 | URL
이런 이벤트는 종종 해야겠네요.^^

다이조부 2009-12-23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에 언급된 분들도 궁금하지만, 저는 이영미씨가 쓴 글이 먼저 보고 싶네요.

지난 시절 연극, 대중가요 텍스트를 가지고 글을 썼는데, 요즘에는 드라마

관련 비평을 기고하는데 관심있게 보고 있거든요

로쟈 2009-12-24 00:04   좋아요 0 | URL
매버릭꾸랑님의 글도 궁금하네요.^^

2009-12-24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24 0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globebox 2009-12-24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일~~!! 대학1학년 때 당시 '민언련'이라는 곳에서 주최한 강연프로그램에 참여중이었는데, 특강 강사로 정성일씨가 오셨었죠. 그 때 무려 10시간이 넘는!! 논스톱 특강을 해 주셨습니다. 다음날 새벽에나 집에 들어가게됐죠. 영화를 향한 열정이 정'말'이'지' 대단하신 분 이더군요. 그 날 이후,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순수한 열정'이라는 수식어가 딱 들어맞는 분 입니다. 저도 어떤 한 분야에 이렇게 미쳐보고 싶네요. 정성일씨의 글은 그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반갑습니다. ^^ 정성일 감독(!)의 영화도 기대되는군요. "영화를 찍지 못한 나는 실패한 시네필"이라 자학했었는데.. ㅎㅎ

로쟈 2009-12-24 00:47   좋아요 0 | URL
첫 영화평론집도 내년에는 나오나 싶은데, 저도기대하고 있습니다..

루체오페르 2009-12-24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염형국 - 단 한 번뿐인 삶이므로

삶은 단 한번뿐이다. 항상 그리 생각하고 그에 어울리는 삶을 살고자 하지만 참 쉽지 않습니다. 육친의 죽음을 접하면서 어릴적부터 느끼고 찾아왔던 죽음과 삶에 대해 실제 몸으로 느꼈지만 정말 삶은 단 한번뿐일까? 란 생각도 들더군요. 최소한 이 생에서의 삶은 단 한 번뿐인 삶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솔직히 작가님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작가님의 이야기는 저의 이런 이야기,생각과는 다른 관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목에서 꽂혔습니다. 어떤 삶이 저자에게 왔길래 단 한 번뿐인 삶이라고 했으며 삶이므로 어떠했다 하는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로쟈님 이름이 들어간 책이 또 한 권 나오는군요. 축하합니다.^^

로쟈 2009-12-24 17:50   좋아요 0 | URL
곁다리로 이름을 걸친 책들이 연말에 여러 권 나오네요.^^;

알라딘 2009-12-24 0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삶이 내게로 왔다..내가 지금 끌어가고있고 끌려가고있는 이삶속에도 <그삶>이 존재할까요어쩌면 머물고 있는 고요한 이삶속에 오고말,올수도있는 그삶의 예리한 필연적삶의 회귀욕구로 평생갈 평화와 무리없는 안녕에 도발적인 혁명을 가져온다면 과연 그개인에게 다행한 축복일까 문득 생각하게하는 문구입니다..
많은 이들이 어쩌면 꿈꾸고 있는 삶의방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솔직히 작가님들의 글은 이책을 통해 첨 접하는거라 기회되면 꼭 펼쳐보겠읍니다...

로쟈 2009-12-24 17:50   좋아요 0 | URL
네, 골라잡아 읽으실 수 있을 듯...

saint236 2009-12-24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희규님의 아이들에게 행복한 학교를 기대됩니다.
집에 아이가 둘이 있는데 아직은 21개월 9개월인데요, 이 아이들이 자라서 다니게 될 학교를 생각해보면 답답합니다. MB정권에서 행하는 교육 정책들도 답답하고요. 지금부터 고민하지 않으면 머릿 속에 꾸역꾸역 집어넣느라고 고생은 많이 하지만 생각은 없는 공허한 삶을 살게 될 것같네요. 요즘 아이들을 봐도 그렇고요. 여러가지 문제 중에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네요. 교육, 학교..

로쟈 2009-12-24 17:49   좋아요 0 | URL
역시나 사교육과 부동산이 대한민국의 '국가대표급' 문제들이죠...

글샘 2009-12-24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양희규의 학교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간디학교의 교훈은 얼마나 진보되었는지가 가장 궁금하네요. 학교에 맨날 나가곤 있지만, 무책임교육...의 슬픔을 맨날 맛보며 퇴근하거든요. ㅠㅜ

로쟈 2009-12-24 17:49   좋아요 0 | URL
동네 도서관에 잠깐 다녀오는데, 오늘도 교육청 앞에서 시위가 있더군요. 한 초등학교 학교장 비리와 관련해서...

homania 2009-12-24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캔버스/카메라 /도망자가 땡기는군요
어줍잖게 사진관련 연구소도 맡고 있다보니 괜히 카메라가 들어가 있는 글이 땡긴다는 아주 단순한 이유지요 ㅎㅎㅎ

로쟈 2009-12-24 17:48   좋아요 0 | URL
대학에도 그런 연구소가 있나요? 아님 대학 바깥?..

Tomek 2009-12-24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일 - 영화, 당신에게는 어떤 의미입니까?
'영화'로 밥을 벌고 사는 정성일 '감독'의 글이 궁금합니다. 임권택 감독에 대해 쓰셨다고 하니 더 궁금해지네요. 그가 그렇게 존경하는 임권택 감독은 '굶는 것을 면하기 위해' 영화판에 들어왔다고 하셨죠. 조감독생활을 하다가 감독으로 데뷔를 할 때, 본인은 그렇게 하기 싫었다고 하셨습니다. 조감독은 영화가 흥행하건 망하건 월급이 나오지만, 감독은 실패하면 끝이기때문에. 그에게 영화는 밥을 버는 수단으로, 그리고 연좌제에 얽혀있는 자신의 정치성향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했었지요. 그리고 어느순간, 그 밥벌이의 수단을 꾹꾹 눌러놓았던 자신을 드러내는데 사용하지요. 70년대 말부터 임권택 감독에게 '영화'는 자신을 드러내는 '예술'의 도구였습니다.
정성일 감독은 그런 임권택 감독을 보고 '영화'란 자신에게 어떤 의미라 생각할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겐 '삶' 그자체였던 '영화'를 그저 '구경거리'로 밖에 소비하는 게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임권택 감독같이 치열하게 살다보면, 직장생활이 '예술'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말이 길었습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시길 바랍니다.

로쟈 2009-12-24 17:48   좋아요 0 | URL
제가 읽기엔 '감독' 이전에 '평론가' 정성일의 글입니다. 예전에 라디오방송 때도 한번 들었던 에피소드를 얘기해요. 임권택의 <길소뜸>에 나오는 한 장면에 대해서. 제 힌트는 거기까지...^^

펠릭스 2009-12-24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진숙-땅의 힘으로 세상을 향해"입니다. '파란여우'님의 '09년도 사자성어인 "마부작침"처럼 '님'의 독서에 대한 꿈이 세상에 실현되길 바라면서요.

Leyu 2009-12-24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염형국-단 한 번 뿐인 삶이므로.

"낮은 곳에 임하는 용기로 소외된 희망을 되살리겠습니다."

이 문장 하나가 뜻을 가진 이들의 마음을 동하여 "가난한 이들의 로펌"을 일구어 내었습니다. 사법연수생이었던 그는 편한 앞길을 마다하고 왜 하필이면 이런 고단한 길을 택했을까?

작년, 쌀쌀한 바람이 불 무렵 대학교 법률문장론 강의 시간에 국내 최초 비영리 공익 변호사 그룹 "공감"의 초청강연이 있었습니다. 염형국 변호사는 이제껏 그가 이끌어온 "공감"이 이루어낸 쾌거-언론에서도 많이 조명을 받았던-들에 대한 자부심이나 만족보다는, 패소한 판결들을 주로 언급하면서 아직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우리 사회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제가 한 소송들 중에선 승소한 게 별로 없네요.."라며 씁쓸한 미소를 머금던 그를 보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당신과 같은 이들의 손길이 의지가지 없이 떨고 있는 심장들을 어루어만져 얼마나 큰 희망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 주었듯이 그와 그의 "공감"은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에게 법의 무기를 선사해주고 있습니다.

다른 길들도 있었겠지만, 굳이 힘든 길, 하지만 진정 보람된 길, 모든 이들과 함께 걷는 길을 그가 걸어간 이유를 알만도 하겠습니다. 지상 위에 "단 한 번 주어진 삶이므로"!

그의 이야기를 가장 읽고 싶은 것은 법대생으로서 지침을 얻고 싶음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각박해져가는 지금 이 세상에서 '지구의 반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달라'고 외치고 있는 듯한 그의 휴머니즘의 원동을 엿보고 싶은 소이입니다.


Leyu 2009-12-24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안녕하세요?^^ 매일매일 로쟈님의 블로그를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정말 제 삶의 소소한 행복 중 하나예요!:) 사실 로쟈님이 강사로 계신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언젠가 꼭 로쟈님의 강의를 듣고 싶어요!^^ 그땐 블로거로서가 아닌, 스승님으로서?!^^ 저에게 있어 최고의 소설이 <죄와 벌>, 그리고 그 주인공 로쟈! 여러모로 로쟈님이 좋을 따름입니다!:) 벌써 연말인데..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시고! 멋진 새해 맞이하시길 바래요~!^~^

꼼미 2009-12-25 0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 얘기가 많으니 번호로...
1. 무엇보다 먼저, 오늘 로쟈님의 "그 책"을 잘 받았습니다. 물건너 잘 왔네요. 크리스마스 이브에 받은 책이니 로쟈님이 산타가 되어주신 셈이네요. 제 인문학의 지평을 넓혀준 중요한 인물과 책으로 소중히 간직하고 잘 읽겠습니다. 책을 보니 블로그의 느낌을 살린 것 같아 그것도 반갑네요.
2. 로쟈님의 글을 담은 또 한권의 책이 나왔다니 축하드립니다. 저자들의 이름이 문화계에서 반가운 분들(이영미를 포함)이라 좋습니다. 너무 욕심을 내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멀리 있다는 걸 핑계로 이벤트에 다시 한 번 참가 할까 합니다.
3. 이벤트 참여: 정성일씨 입니다. 그의 영화 잡지 <키노>와 라디오에서 자신의 영화평을 "읽어 주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독자로서 이번 책에서도 그의 글이 가장 기대가 되고 읽어보고 싶네요. 그 자신도 밝힌 적이 있듯이 (씨네21에서 정윤철 감독과 인터뷰에서), 그의 영화평에는 인간윤리에 대한 정당하게 편파적인 (제 개인적 소견으로는) 멋진 시각이 있습니다. 그의 글은 깊이를 보여 주는 데 타협이 없고, 열정에 다가 가는데 한계가 없습니다 (영화제에 가면, 밥먹고 영화 보고, 쓰고...만을 반복한다는). 제가 그를 통해서 영화를 보는 다른 눈을 가지게 되었다는 건, 그가 저의 한 부분을 변화시켰다는 증거지요. 마치 영화, <멋진 인생: It's a Wonderful Life, 1946> 의 베일리가 그 마을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던 것처럼 말이죠. 그의 글이 그리울 때마다 왜 지금까지 정성일은 영화평론집을 한권도 안낸 걸까 의문스러워하고 있었던 중입니다. 첫 평론집이 나올꺼라니 너무 기쁘네요. 그분은 이벤트 안하시려는지...^^

쉽싸리 2009-12-25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물과 사상을 한 2년여간 구독하면서 대부분 본 것 같네요.
못 본 글 중에 김신명숙 님의 이야기가 읽고싶네요.

제목에서 아름답고 치열한 삶이 느껴지는 점이 끌립니다.
 

기억에서 거의 잊혀진 조각가 권진규의 회고전이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다. 작가의 사진을 보고서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는 기억을 떠올렸을 정도. 이번이 최대 규모의 전시회라고 하니까 모처럼 이 겨울에 걸맞은 한 철저한 예술혼과 대면할 좋은 기회가 될 듯싶다.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국일보(09. 12. 22) "인생은 공, 파멸"… 인물상에 깃든 영원한 삶 

한국 근대조각의 선구자로 꼽히는 권진규(1922~1973ㆍ사진) 회고전이 22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 개막했다. 얼굴상과 동물상 등 조각 100점, 드로잉 40점을 통해 그의 작품세계 전체를 조명하는 이번 전시는 그간 국내에서 열린 권진규 전시 중 최대 규모다. 대학 졸업작품인 '나부'(1953) 등 처음 공개되는 작품도 16점 포함됐다. 



이번 전시는 일본에서 비롯됐다. 권진규의 모교인 일본 무사시노미술대학이 개교 80주년을 맞아 이 대학 출신 대표 작가로 권진규를 꼽으면서, 지난 10월부터 이달 초까지 도쿄 국립근대미술관과 무사시노미대에서 동시에 전시를 열었다.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에서 한국 작가의 개인전이 열린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일본의 두 전시를 합친 것이 덕수궁미술관의 권진규전이다. 전시는 대학 재학 시절 제작한 작품, 인물상, 자소상, 부조, 동물상으로 나뉘어진다. 인물상의 경우 머리와 목 아래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유난히 긴 목선과 무표정하지만 강렬한 눈빛으로 시선을 잡는 권진규 특유의 기법이 뚜렷하다. 



'애자' '명자' 등 각기 다른 이름이 붙어있지만, 그 얼굴들은 특정 인물의 것이 아니라 작가가 추구한 순수와 영원성의 반영이다. 자소상(自塑像)을 통해 만나는 권진규는 삭발한 종교적 구도자의 모습이다.

그는 비구니상에 자신의 얼굴을 중첩시켜 표현하는 등 불교에 심취했다. 1961년 숭례문 중수 때 제도사로 참여한 경험을 담은 부조 작업들은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전통 문양의 변형과 콜라주 등 다양한 조형적 실험을 볼 수 있다.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 실린 '지원의 얼굴'로 익숙한 권진규는 한국적 리얼리즘을 정립한 조각가로 평가된다. 일본 유학 시절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다 1959년 귀국해 테라코타와 건칠(乾漆)이라는 특유의 기법으로 절제된 형상의 인물상을 빚어냈다. 

그러나 추상이 득세하던 당시 한국에서 그의 작품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치부됐고, 병고와 외로움에 시달리다 "인생은 공(空), 파멸"이라는 유언을 남긴 채 51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생전에 "인간의 아이는 언젠가 죽지만 내가 만든 아이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다. 테라코타를 선호한 것도 고대 무덤의 부장품들이 입증하듯 쉽게 썩지 않는 시간성을 지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전시는 내년 2월 28일까지.(김지원기자) 

09.12. 22.  

P.S. 작가에 관한 책은 어린이 그림책을 제외하면 <권진규>(삼성문화재단, 1997)가 유일한 듯하다. 이미 오래 전에 절판된 듯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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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12-22 0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물사진과 인물조각품이 좋습니다. 예술인의 일생은 순탄치 않군요. 프랑스 화가였던 '모딜리아니'도 처음엔 조각가 였지만요. 작품의 질감에서 풍기는 단호함이 겉은 차갑지만 속은 따뜻해서 겨울에 감상하기에 좋겠습니다.

로쟈 2009-12-22 08:47   좋아요 0 | URL
'지원의 얼굴' 같은 작품은 굉장히 오랜만에 보게 되는데, 새삼 좋은 작품이란 생각이 듭니다...

펠릭스 2009-12-23 12:14   좋아요 0 | URL
저마다 '지원의 얼굴'이 있을 것 같습니다. 반짝이 설원을 넘은 환상일까요! 북쪽 출신 애국자(김구,안중근 등)나 예술가들이 더 강인하게 느껴집니다.

로쟈 2009-12-23 23:44   좋아요 0 | URL
인상 자체는 좀 서구적인데요. 작가도 그렇고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그런지도...

Mephistopheles 2009-12-22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과서에 실렸던 조각품들 중에 권진규, 자코메티의 작품들은 아직도 잊지않고 기억하고 있어요.

로쟈 2009-12-23 23:42   좋아요 0 | URL
네, 요즘 교과서에도 실려 있나 모르겠네요...

무해한모리군 2009-12-22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보고 싶네요.
지원의 얼굴은 리움에서 본적이 있어요.
제자였던 지원님도 꽤나 어려운 삶을 보냈다고 하던데..

로쟈 2009-12-23 23:43   좋아요 0 | URL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나 보군요...

homania 2009-12-24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진규의 조각 "지원의 얼굴"
홍대 조소과 다니던 여성이 나와 비슷한 이미지라고 이 조각의 사진을 액자로 만들어 내게 줬던 기억이..
사귐이 끝나면서 뭐 사진도 어디로 갔는지 사라졌지만...-_-;;
어쨌든 권진규는 그때 이후 항상 내가 가장 친근함을 느낀 조각가였지요 ㅎㅎ

로쟈 2010-01-10 22:45   좋아요 0 | URL
전시회는 꼭 보려가셔야겠는데요.^^

josephine 2010-01-10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 선생님, 여기서 만나뵙게 되는군요. 전시보러 덕수궁 한번 오시죠. 오래 간만에 드릴 말씀도 많을 듯 하네요.

로쟈 2010-01-10 22:44   좋아요 0 | URL
저 지난주에 다녀왔는데요.^^;
 

이번주 시사IN의 별책부록 에 실은,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길, 2009)에 대한 서평을 옮겨놓는다. 폴라니의 기본사상은 이미 여러 차례, 여러 지면을 통해서 소개/조명됐고, 간명하게는 역자 홍기빈 박사의 해설이나 인터뷰를 참고할 수 있다. <인물과 사상>(12월호)에도 인터뷰가 실려 있다. <거대한 전환>은 출판 편집자가 꼽은 '올해의 번역서'이기도 한데, 인터뷰 기사를 보니 내년엔 또 다른 대표작 <다호메이 왕국과 노예교역>과 논문집 <인간의 경제>도 출간될 예정이라 한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의 전망대로, '대안의 삶'이 내년 출판계의 키워드라면, 폴라니는 내년에도 가장 중요한 이론적 지주이자 전거가 될 듯하다.    

시사IN(09.12. 26) '거대한 고통'의 기원을 찾아서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의 부제는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이다. 그가 우선 염두에 둔 ‘우리 시대’는 책이 출간된 1940년대를 포함한 20세기 전반기일 터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가?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으며 경제 대공황에 빠져들었고, 파시즘의 광풍이 몰아치다가 급기야는 다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대체 이런 전대미문의 사건들이 어찌하여 일어난 것일까? 폴라니는 이 ‘거대한 고통’의 기원을 19세기 초 영국의 산업혁명과 그로 인해 나타난 자기조정 시장경제의 출현이라는 ‘거대한 전환’에서 찾는다.     

문제는 이 ‘거대한 전환’의 동력이자 이념인 ‘자기조정 시장’이란 것이 실상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적나라한 유토피아’, 곧 ‘완전한 망상’이라는 점이다. 가령, 노동을 상품화하여 필요에 따라 팔고 살 수 있으며, 이러한 매매가 오직 시장가격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이상적인’ 노동시장은 결코 자연적으로 형성되지 않았다. 폴라니는 산업혁명 초기의 백인 노동자와 함께 식민지 원주민을 노동자의 원형으로 들었다. 식민주의자들을 원주민을 노동자로 만들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식량부족 사태를 일으켰다. 굶주림에 빠뜨려야만 원주민들의 노동력을 끄집어낼 수 있었기에 그들은 빵열매 나무도 베어 넘어뜨렸다. 세금을 징수함으로써 원주민들이 화폐 벌이에 나서도록 강제했다. 그렇게 하여 앉아서 굶을 것인가 아니면 노동을 시장에 내놓을 것인가라는 선택지로 내몰았다.  

왜 굶주림이란 징벌적 수단만이 사용되었나? 임금이 높아질 경우에 원주민은 기를 쓰고 일할 이유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식민지 원주민이나 백인 노동자나 일정한 체벌로 위협을 당하지 않는 한 자발적으로 노동에 매달리지 않았다. 때문에 공장주들은 “노동자들을 과로 상태로 몰아넣고 완전히 밟아버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야지만 동료들과 작당하지 않고 고분고분한 몸종처럼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협박과 강압에 의해 형성되고 유지된다는 점에서 노동시장은 수용소를 떠올리게 한다. 가령 2차 세계대전시 독일군의 포로가 돼 채석장에서 강제노동을 해야 했던 한 러시아군 포로는 “저들에겐 4입방미터의 돌을 캐낼 필요가 있지만, 우리는 각자의 무덤을 위해 1입방미터의 돌만 캐내도 충분하다”고 불평을 토로했다. ‘1입방미터’로 충분하지만 ‘4입방미터’의 돌을 캐내야 했던 이유는 물론 총구를 들이대고 있는 독일군의 감시 때문이다. 이러한 강압에 누구도 굶주려서는 안 된다는 전통사회의 원칙 또한 파괴된다. 영국의 경우에도 1834년에 빈민구제법이 폐지됨에 따라 임금노동으로만 생계유지가 가능하게 되면서 노동시장이 형성되었다는 사실은 시사적이다.  

폴라니는 이런 방식으로 노동이 다른 활동으로부터 분리되어 시장법칙에 종속되면 인간적 사이의 유기적 관계는 소멸되고 대신에 전혀 다른 형태의 조직, 원자적 개인주의의 사회조직이 들어서게 된다고 말한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 아닌가? 따라서 문제는 시장경제의 비인간성이나 비합리성이 아니다. 모든 것을 상품화할 수 있다는 불가능한 믿음이다. 그런 믿음이 가져온 파행적 현실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거대한 전환>은 2009년 또한 폴라니의 ‘우리 시대’임을 말해주면서 진정한 전환으로의 결단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09.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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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밤바 2009-12-21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물과 사상을 그제 다 읽었는데요. 올 해 나온 인물과 사상 중 최고 좋았던 듯~
제 주위에도 로쟈님 팬이 늘고 있습니다~ㅎ 좋은 밤 되세요^^

로쟈 2009-12-21 23:49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사두길 잘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