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의 평전이 출간돼 ‘묻지마 구입‘을 했다. 도가와 신스케의 <나쓰메 소세키 평전>(AK)으로 이와나미문고본이 원저이므로 가장 대중적인 소세키 평전이 아닐까 싶다. 욕심으로는 문고본보다 더 방대한 분량의 평전이면 좋았겠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평전도 나쁘지 않다. 게다가 희소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입문서로는 역자가 앞서 번역한 <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AK)도 참고할 수 있다. 역시 이와나미 시리즈로 나온 책이다. 그리고 아내인 교코의 <나쓰메 소세키, 추억>(현암사)도 당연히 추가할 수 있다.

저자 도가와 신스케는 근대일본문학전공 학자로 1936년생이니까 원로다. 대학의 명예교수이면서 현재 일본근대문학관의 고문으로 재직중이라고. 아득히 먼 기억처럼 여겨지지만 지난겨울 일본근대문학기행차 일본에 갔을 때 공사중이어서 일본근대문학관을 보지 못한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대신에 요코하마에 있는 근대문학관에 들렀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다면 필히 확인하고 둘러봐야겠다. 소세키와 일본근대문학 기행의 한 필수코스로. 그때는 소세키 작품에 등장하는 가마쿠라 해변도 가볼 수 있겠다.

일본근대문학 강의를 몇 차례 진행했는데, 현대문학 쪽 강의를 겨울에 진행하고 내년에는 다시 근대문학 주요 작가나 유파에 대한 강의를 기획해봐야겠다. 언젠가는 소세키 전집 강의도 다시 진행하고. 아, 온통 강의와 여행으로 채워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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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스 워튼(1862-1937)의 뒤를 잇는 여성작가는 누구일까란 질문을 던졌는데, 그에 화답하는 듯한 책들이 나왔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1966)의 작가 진 리스(1890-1979)의 단편선 <진 리스>(현대문학)와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무명?) 주나 반스(1892-1982)의 대표작 <나이트우드>(1936)다.

생년은 진 리스가 앞서지만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는 물론이고 출세작 <한밤이여, 안녕>(1939)도 <나이트우드>보다 늦게 발표된 작품이어서 문학사의 자리는 주나 반스가 앞설 것 같다. 그럼에도 거의 동시대를 살았기에(둘다 90세의 수명을 누렸으니 장수한 편이다) 같이 묶어도 되겠다.

‘여성‘작가나 ‘여성‘문학이란 용어를 쓰는 것은 특히 진 리스의 경우 여성 문제에 대한 예민한 자각과 첨예한 인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이트우드>는 퀴어문학의 고전으로 지칭되는데 여성문학과 퀴어문학의 차이 혹은 페미니즘문학에서 퀴어문학의 자리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한다. 진 리스의 작품들을 강의에서 다루었고 강의한 내용을 정리해야 하는 시점에서 숙제를 더 떠안은 느낌이지만, 이런 부담은 언제나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한다. 그 비명이 앓는 소리와 분간은 잘 안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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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학기에 20세기 미국문학을 다루면서 드라이저에 이어 이디스 워튼을 읽었다. 두 대표작 <기쁨의 집>(1905)과 <순수의 시대>(1920) 강의가 일단락되었는데, 여유가 있어서 더 다루게 된다면 몇권 더 얹을 수 있겠다. 다행히 주요작들이 모두 번역돼 있는 상태인데, <순수의 시대>와 관련해서 같이 읽어볼 만한 작품들은 <암초>(1912), <그 지방의 관습>(1913), 그리고 <여름>(1917)등이다. <이선 프롬>(1911)역시 주요작이지만(<겨울>이란 제목으로도 번역되었다) 워튼이 즐겨 다루는 ‘옛 뉴욕‘과는 무관한 작품이다.

워튼의 작품들은 뉴욕 상류사회의 풍속도를 보여주는 사회소설(더 정확하게는 ‘사교계소설‘)로서 의미를 갖지만 주제적 차원에서는 여성 문제를 다룬 소설로 19세기초 영국의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과 비교된다. 사회 속의 여성의 삶과 그 조건(혹은 굴레)를 두 작가의 소설에서 읽을 수 있는데, 워튼이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결혼뿐 아니라 이혼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당장 <순수의 시대>의 여주인공 엘렌(올렌스카 백작부인)은 남편의 곁을 떠나서 이혼소송을 제기하려 한다. 비록 가족의 압력과 악화된 재정상황에 굴복하여 남편에게 다시 돌아가고 말지만 그런 ‘포즈‘조차도 희귀하면서 파격으로 받아들여지던 시대였다.

‘주체적인 결혼‘이 여성 주체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여성문학의 주요 주제라면 그에 이어지는 것은 ‘주체적인 이혼‘이다. 이혼 미수가 아닌 이혼을 다룬 워튼의 작품이 따로 있는지 모르겠지만 워튼 자신은 1913년에 28년간 살아온 남편과 이혼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함으로써 하나의 전범이 된다(그녀는 곧장 파리로 건너가서 1937년 그곳에서 생을 마친다. 23살에 결혼했던 워튼은 이혼 이후에 24년의 삶을 더 살았다). 100년 전의 사례인데 여성문학의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21세기의 이디스 워튼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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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카페에 들고온 책들 가운데 허수경 시인의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문학과지성사)를 아무데나 펼쳐 읽는다. 재작년 가을에 나온 시집이고 내가 구입한 건 올봄에 나온 5쇄다. 시인은 지난주에 세상을 떠났다. 꼭 그렇게 읽을 필요는 없지만 시를 읽는 맥락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기에 ‘푸른 들판에서 살고 있는 푸른 작은 벌레‘에 눈길이 멈추었다. 이렇게 시작하는 시다.

바지에 묻어온 벌레를 털어냈다
언젠가 누군가를 이렇게 털어낸 적이 있었다
털리면서도 나의 바짓단을 누군가는 무작정 붙잡았다
나는 더 모질게 털어내었다
서늘하고 아팠다
벌레여 이 바지까지 온 네 삶은 외로웠나
이렇게 말하는 건 나, 중심적임을 안다네,
사라져가는 생물들이 쉬는 마지막 숨을
적어본 적이 없고
모든 살았던 것들의 눈동자 역사를
적어본 적도 나는 없었으므로

시의 서두이자 전반부이고 후반부는 상상에 맡긴다. 다만 시인이 털어낸 벌레가 ‘날개 달린 벌레‘라는 걸로 보아 풍뎅이 종류가 아닐까 싶다. 고고학 답사 현장에서 묻어온 벌레이지 않을까 싶고. 이 벌레로 인하여 언젠가 벌레인 양 털어낸 한 사람이 생각났고 그 모진 행동에 뒤늦은 자책감이 들었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더라도 시인은 다시 한번 털어내지 않을까. 그렇지 않는다면 회한이 남지 않을 테고 이런 시도 쓰일 수 없을 테니. 시쓰기는 회한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택의 산물이다. 우리는 반복해서 후회하고, 혹은 후회를 반복하고 그 후회를 밑천으로 시를 쓴다. 상실을 시로 보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잃어버려야 하니까. 시인은 잘 잃어버리는 자이고 기필코 잃어버리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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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10-09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할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후회와 회한, 상실을
기필코 부여잡고 있어야 하는게
시인이라면
시인의 운명을 타고나지 않은 것에 감사를~

로쟈 2018-10-10 23:07   좋아요 0 | URL
상실을 피해간다는 게 만만치 않습니다.^^
 

포르투갈의 시인이자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의 시선집 두 권이 동시에 나왔다.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과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민음사)다. 역자는 페소아가 살았던 도시 리스본에 대한 책 <페소아: 리스본에서 만난 복수의 화신>(아르테)를 쓴 김한민 씨로 페소아의 산문집 <페소아와 페소아들>을 옮기기도 했다. 페소아의 유작이자 대표작 <불안의 책>이 소개된 이후에 이제는 꽤 자주 출간소식을 접하게 되는데, 우리에게는 그간에 다소 멀게 느껴졌던 포르투갈문학을 조제(주제) 사라마구와 함께 대표하는 이름이다.

번역과정에서 아무래도 산문보다 더 많은 것을 잃게 되는 게 시인데 그럼에도 일부 시들은 살아남기도 한다. 아무곳이나 펼쳤다가 읽게 된, <초콜릿>에 수록된 ‘직선의 시‘가 그렇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얻어맞은 사람이 없다
다들 모든 것에서 챔피언이었다

이후에 이어지는 건 자학적이고 자조적인 토로다.

내가 알거나 나와 얘기하는 모든 이들은
한 번도 어리석은 행동을 하거나, 창피를 당한 적이 없다,
인생에서 왕자가 - 그들 모두 왕자님들 - 아닌 적이 없었다...

(...)

그렇다면, 이 지구에 비열하고 잘못된 사람은 나 혼자란 말인가?

아무래도 번역을 통과해서는 읽히는 시들은 이런 어조와 정서를 담은 시들이 유리한 것 같다. 세사르 바예호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없었다‘ 같은 시처럼. 페소아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시선집도 선택지가 되겠지만 <페소아>부터 읽어보는 게 빠를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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