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발견'으로 앤드류 포터의 <진정성이라는 거짓말>(마티, 2016)을 꼽는다. '진정한 나를 찾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이유'가 부제. 소개는 이렇다.

 

대량생산, 대량소비되는 주류문화에 저항하려 한 반문화가 사실은 후기 자본주의의 최대 히트상품이었다는 점을 날카롭게 꼬집은 <혁명을 팝니다>를 조지프 히스와 공동 집필해 한국에 이름을 알린 앤드류 포터가 이번에는 진정성을 문제 삼는다. 사람들은 진정성을 당연히 좋은 것으로 여긴다. 일반인 다수가 생각하는 진정성이란 스스로에게 진실하고, 삶의 의미를 찾고, 자기 행동이 외부에 미치는 결과를 의식하고, 타인과 자연을 배려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시도다. 그런 시도는 물론 중요하고 존중받아야 하지만, 행위의 작동방식은 결코 단순치 않아서 종종 다면적이고 모순된 결과를 야기한다. 나의 행동이 불필요한 겉멋은 아닌지, 혹시 남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기 위한 행위는 아닌지 생각해보고, 또 설사 각 개인의 의도가 순수하고 진지하다 해도 그 행위의 총합이 의도했던 것과 상반된 결과를 일으키는 건 아닌지 이 책을 통해 숙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진정성이란 말을 제목에 포함하고 있는 몇 권의 자기계발서가 시사하는 바대로 진정성은 긍정적인 의미로 널리 쓰인다. 앤드류 포터가 꼬집는 것은 그 이면이다. 바버라 에런라이크 3부작 제목을 따자면, '진정성의 배신'이라고 할까. 한국정치의 유행어(전락한 언어) 가운데 하나가 된 '진실성'(혹은 '진실한 사람')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볼 수 있겠다. 역설적으로 사이비 진정성/진실성에 맞서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배신'이다.

 

'진정성이라는 거지말''진정성이라는 속임수''타락한 진정성'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정확히 때맞춰 출간되었다. '이주의 발견'에 값하는 이유다...

 

16. 02.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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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분야의 책으로 '이주의 발견'은 세라 로즈의 <초목전쟁>(산처럼, 2015)이다. 제목만으로는 내용을 가늠하기 어려운데, '영국은 왜 중국 홍차를 훔쳤나'가 부제다. "19세기 초목전쟁을 통해 본 영국과 중국의 사회문화사." 그런데 왜 '초목전쟁'인가.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화한 뒤 그곳에서 아편을 만들어 중국에 팔았다. 그러다가 이 불법 행위를 통제하려는 중국과 충돌해 아편전쟁을 일으켰다. 영국이 전쟁을 벌이면서까지 아편 판매에 집착한 것은 그 자체가 수익성이 높은 사업이기도 했지만, 그런 벌이가 없어진다면 막대한 양의 차를 중국으로부터 수입하고 그 대금을 치를 다른 방도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공업혁명이 일어나고 도시화가 진척되는 사회 변동을 겪으면서 차가 전 국민의 기호품이 되고 있었다. 따라서 수요는 늘어나는데 그것을 사올 돈줄이 막히는 것은 전쟁을 해서라도 막아야 했다. 공교롭게도 양국이 교환하던 상품들인 차와 아편은 각기 동백나무와 양귀비라는 두 가지 식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어서, 두 나라 사이의 전쟁은 이들 초목을 둘러싼 전쟁이었다.

이 전쟁 이야기는 다른 한편 "당시 청나라의 국가 비밀이었던 차 제조공정 등을 입수하기 위해 식물 채집자이자 원예사이지만 도둑과 스파이를 겸해야 했던 로버트 포천(1812∼1880)을 파견하여 차나무를 빼내오는 데 성공한 뒤 차 재배가 정착하면서 영국이 홍차의 나라가 되기까지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국 홍차에 대한 가벼운 읽을 거리로는 박영자의 <홍차 너무나 영국적인>(한길사, 2014)도 더 얹을 수 있다. "이 책은 영국과 홍차 사이에서 찾은 이야깃거리 23가지를 수록한 문화교양 에세이다. '홍차 아우라', '홍차 스파이', '홍차 중독자' 총 3부로 구성되었다." 영국에 가보지 않아서 실제로 얼마나 홍차를 마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러시아에서도 홍차도 필수 기호품이다. 대부분의 끼니에 뒤이어 홍차(그냥 '차'라고 부른다)가 식탁에 오른다. 아니 식사와 함께 마시기도 한다(오래 전 모스크바대학 구내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던 시절, 음료의 선택지는 쥬스 아니면 홍차였다). 대개 '립톤'이었던가. 카페인 때문에 커피와 함께 홍차도 금지돼 있어서 메밀차를 마시고는 페이퍼를 적었다...

 

15. 03.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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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벅모스의 <헤겔, 아이티, 보편사>(문학동네, 2012) 출간 소식을 전한 바 있지만, 책은 그냥 낱권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문총서의 하나로 출간됐다. '엑스쿨투라'가 총서의 타이틀이다. 인문학 전공자로선 이런 총서야 언제든지, 얼마든지 반길 일이다.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 

 

 

 

연합뉴스(12. 01. 16) 문학동네 인문총서 '엑스쿨투라' 출간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두툼한 인문 서적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인문총서 '엑스쿨투라'는 문화에 대한 무거운 관념의 외투는 벗어버리고 새로운 사유가 가능한 세계로 홀가분하게 지적 여행을 떠나자는 취지에서 출판사 문학동네가 기획한 인문총서다. '엑스콜투라'는 '엑스(Ex)'와 '쿨투라(Cultura)'의 합성어. 쿨투라는 '갈아엎다' '농사짓다'를 뜻하는 라틴어로, 문화를 뜻하는 컬처(culture)의 모태가 되는 단어다.

 

문학동네는 16일 "오늘날 무한정 외연이 커진 '문화'는 다시 질문되어야 하며 기존 학계에서 놓쳤던 낯선 주제, 다가올 날을 예비했던 과거의 명저, 첨예한 논점의 최신 담론까지 다양한 저작이 있어야 한다"며 "문화의 텃밭에서 캐낸 사유, 문화의 교차로에서 찾아낸 미지의 담론으로 대안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총서 발간 배경을 설명했다.

 

문학동네는 총서 1권 '헤겔, 아이티, 보편사'와 2권 '주크박스의 철학-히트곡'을 잇달아 펴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수전 벅모스 코넬대 교수가 쓴 '헤겔, 아이티, 보편사'는 현대 서구철학의 한 축이 된 헤겔 철학과 아이티 노예들이 일으킨 독립혁명의 연관성을 추적한다. 저자는 식민지 노예제에 대한 서구 근대의 의도된 망각을 날카롭게 파헤치면서 특히 식민지 노예제에 대한 헤겔 학계의 침묵이 헤겔 철학을 이어받은 20세기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책을 우리말로 옮긴 김성호 서울여대 교수는 "이 책은 헤겔 철학과 18세기 말의 노예 반란인 아이티 혁명의 관계, 그리고 이 혁명이 담고 있는 보편사적 의의를 다룬다"면서 "이 연결로 인해 헤겔은 물론 그의 사상에 자양분을 제공한 계몽주의 철학, 국가 아이티, 자본주의 발전사, 인류와 인류의 보편성에 관한 우리의 통념은 보기 좋게 전복된다"고 평했다.

 

'주크박스의 철학-히트곡'은 히트곡을 통해 자본주의 시대를 미학적, 철학적으로 고찰한 책이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음악 이론가인 저자 페테르 센디는 히트곡이 생겨나는 철학적 조건과 역사적 맥락을 살피면서 히트곡의 특성과 영향을 분석한다. 고혜선·윤철기 씨가 우리말로 옮겼다.(황윤정기자)

 

12. 01. 16.

 

 

 

P.S. <헤겔, 아이티, 보편사>의 책갈피에는 열권의 근간 목록이 제시돼 있는데, 우리에게 이미 널리 알려진 저자도 있고 생소한 저자도 있다. 문화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의 <저자로서의 인류학자> - 작품과 생애>와 피터 백의 <유토피아에서 묵시록으로 - SF와 파국의 정치학> 등이 눈에 띄는, 인문적 식욕을 돋구는 타이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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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부터 틈틈이 공을 들이고 있는 독서분야는 인류학과 지구사 쪽이다(덧붙여 조선시대 선비와 당쟁에 관한 책들을 몰래 읽고 있다). 탈식민주의와 탈서구주의란 지향점에서 서로 만나는 분야인데, 그런 관심에서 가장 반가운 책이 이번에 나온 수전 벅모스의 <헤겔, 아이티, 보편사>(문학동네, 2012)이다. 몇 차례 언급한 적이 있는데, 개인적으론 지젝의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창비, 2010)을 통해서 처음 존재를 알게 된 책이다. 출판사쪽도 비슷한 듯해서, <헤겔, 아이티, 보편사>의 역자도 지젝의 책을 옮긴 김성호 교수다. 아무튼 반가운 마음에 그제밤에 바로 주문을 넣었지만 당일배송이라던 책은 끝내 소식이 없다. '온다던 책 오지 않고'가 이런 경우다. 휴일에 손가락만 빨고 있자니 기분도 언짢아서 기사를 검색하다가 <지구사의 도전>(서해문집, 2010)의 서평에서 벅모스의 책이 언급된 걸 찾았다. 사실 <지구사의 도전>도 최근에 구입한 터라 내겐 '새책'이다. 재작년 가을의 기사를 '프레시하게' 읽으며 옮겨놓는다.   

 

 

 

한겨레21(10. 10. 08) 세계를 보는 창틀, 지구의 역사로 확대해보자

 

<지구사의 도전: 어떻게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설 것인가>(서해문집 펴냄)라는 책 제목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거대한 지구가 하나의 대륙에 불과한 유럽에 도전하겠다니 아이러니할 수밖에. 그러나 그 아이러니는 현실이다.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그리스·로마 시대와 프랑스혁명, 영국 산업혁명 아래 수없이 쳐놓은 ‘밑줄 쫙 별표 하나’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가 인식하는 역사의 시공간 한가운데에는 유럽이 자리하고 있다.

 

유럽중심주의는 단순히 유럽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기록한 역사에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유럽중심주의를 “근대 세계를 구축한 시각인 동시에 담론이며 자본주의 체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식민지와 전세계에 구도적으로 강요된 출세와 부국강병의 담론이자 지식 체계”이며 “유럽의 역사가 세계 역사 발전의 보편적 방향을 표현한다는 사고”라고 설명한다. 유럽중심주의는 한국을 포함해 지금 지구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의 창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지역·인종을 넘어선 세계관

 

이 창틀은 여전히 단단하고 건재하지만, 탈유럽중심주의는 더 이상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근대화 이론이 신뢰를 잃고 탈식민지에 관한 논쟁이 빠르게 퍼져나간 20세기 후반부터 있어왔고, 유럽중심주의에 관한 비판과 회의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역사학자와 사회과학자 사이에서 ‘지루하다’는 평을 들을 만큼 반복돼왔다. 이 책의 큰 제목이 ‘어떻게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설 것인가’였다면 이 책 역시 ‘지루한’ 책으로 분류됐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유럽중심주의의 폐기와 극복에 관한 해답이 나온 것은 아니다. 학자들은 유럽중심주의가 없는 그 자리를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에 대해 여전히 이렇다 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나온 대안이 바로 이 책의 큰 제목인 ‘지구사’다.

 

 

책은 유럽중심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언어와 논리구조, 역사관으로서의 지구사에 대해 얘기한다. 이화여대 지구사연구소 조지형 교수와 김용우 연구교수가 엮은 이 책은 지난 4월 이화여대 지구사연구소가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서 지구사로’라는 주제로 개최한 국제 학술회의에서 발표된 글과 논의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세계사의 새로운 대안, 거대사>(데이비드 크리스천 지음)와 <인류 최대의 재앙, 1918년 인플루엔자>(앨프리드 W. 크로스비 지음)에 이은 지구사연구소 총서의 세 번째 책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학술회의에 참가한 전세계 연구자 11명의 글이 차례로 실렸다. 책은 사학적 관점에서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비판과 지구사에 관한 쟁점으로 시작해 지구사를 통한 새로운 역사 서술의 가능성을 엿보고, 지구사의 관점과 시선에 관한 설명으로 끝을 맺는다.

 

‘지구사’(Global History)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의 창틀을 지구 전체로 확장한 개념이다. 유럽중심주의뿐 아니라 중국중심주의, 문명의 세계사, 애국적 세계사, 근대중심주의, 인간중심주의 등 모든 ‘중심주의’가 가진 편향된 눈 대신 지구 전체를 고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눈이 지구사다. 조지형 교수는 지구사를 이렇게 정리한다. “지구사는 인류의 존재 조건으로의 지구성(Globality), 하나의 역사 단위로서의 지구, 지구적·지역적 상호연관성과 상호의존성, 역사 행위자의 지구적·지역적 층위 혹은 의미를 연구하는 것이며, 서유럽중심주의와 모더니티를 뛰어넘기 위한 방법론을 제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가령 아이티 혁명을 통해 지구사와 지구사적인 관점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2년이 지난 1791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카리브해의 생도밍고에서 혁명이 일어난다. 흑인 노예들이 일으킨 이 혁명으로 아이티라는 공화국을 세우고 정치적 독립을 이뤄낸다. 오랜 시간 동안 주류 역사에 가려져 있던 아이티 혁명은 최근 그 역사를 복원하고 의미를 찾아내는 연구가 활발하다. 아이티 혁명을 프랑스 혁명의 영향 아래 일어났다고 바라보는 시각은 대표적인 유럽중심주의적 시각이다. 지구사적인 관점으로 이 혁명을 바라볼 때 중요한 것은 가려진 역사의 복원뿐 아니라 그 혁명이 위치했던 담론과 네트워크를 찾아내는 일이다.

 

 

 

아이티의 노예들은 가혹했던 학대에도 당시 국가와 지역의 경계를 넘나들던 자유와 평등 등 인간 보편권에 관한 실천 네트워크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미국 코넬대학 수잔 벅-모스 교수는 아이티 혁명에 관한 연구에서 헤겔 역시 그 네트워크에 개입했으며, 그가 아이티 혁명에 관심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의 철학적 논의에도 아이티 혁명이 영감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자유와 평등 같은 이념이 ‘문명의 땅’ 유럽에서 ‘역사 없는 땅’으로의 일방통행이었던 것이 아니라 서로 교류하며 상호작용했던, 그러나 유럽중심주의에 의해 잊혀지고 지워졌던 과정을 찾아내는 역사가 지구사다.

 

유력한 대안인 만큼 의문과 한계 또한 많아

 

지구사에 대한 밝은 기대와 전망에도 이 책에 ‘도전’이라는 단어가 붙은 데에는 그만큼의 이유가 있다. 지구사에 대한 논의가 출발 단계인 만큼 아직까지 지구사에 대해서는 확신보다 의문이 더 많다. 과연 역사가 개인이 지구사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가능한가, 지구사가 국가사나 지역사와 충돌하거나 갈등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유럽중심주의를 피하려다 다른 중심주의에 편입되지 않을까 등 수많은 의문이 제기된다. 이런 의문에도 여전히 지구사는 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 손꼽힌다.

 

그 가능성을 얘기하려면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먼저 역사가들의 소통 네트워크다. 지구사적 관점에서의 역사 재구성은 지구 곳곳의 여러 역사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역사가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유럽중심주의적 관점으로 사용되는 용어 대신 지구사적 관점의 용어를 만들고 공유하는 것 역시 중요한 전제다. 이러한 전제만 충족된다면 지구사는 충분히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설 수 있을 거라고 이 책은 강조한다.(안인용 기자)

 

12. 0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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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눈길을 끄는 책이 출간됐다. <마오의 독서생활>(글항아리, 2012). 중국 현대사의 문제적 인물이 어떤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엿볼 수 있게 한다. 개인적으론 <레닌의 독서생활> 같은 책은 나온 게 없나 궁금해진다...

 

 

경향신문(12. 01. 14) 책을 통해 중국을 바라보고 혁명의 이론 찾은 ‘독서광 마오’

 

그를 만난 책들은 피곤에 절었을 게 분명하다. 밑줄은 기본이다. 동그라미, 점, 삼각형, 의문부호 등 온갖 표시들로 가득하다. 게다가 여백도 짤막한 평들로 메워 가만두지 않는다. 마오쩌둥이 ‘독서광’이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해주는 책이다. 마오와 함께했던 동지와 비서, 도서실 관리자, 영어교사 등 측근 8명이 생생한 육성으로 전한다. 마오가 어떤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를 상세히 보여준다. 마오의 독서에 대한 철학부터 여백에 메모하고 평가하는 습관, 저자들과의 서신 토론 및 담화, 서재 풍경, 이동할 때의 책읽기까지 마오의 평생독서를 그렸다. 1부는 고전, 문학, 역사, 신문 및 잡지, 영어공부를 다뤘고 2부는 마르크스·레닌 저작, 철학, 자연과학 등을 담았다. 육필원고, 책에 남긴 표시, 저자와의 서신 등 수많은 도판 자료가 이해를 돕는다. 
 
책은 자신이 읽고 배운 지식을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는지, 어떻게 중국의 것으로 확대하려 했는지에 주목한다. 한 혁명가의 단순 독서론으로만 볼 수 없다. 역자의 말처럼 마오쩌둥이라는 한 사람의 인생 역정에 현대 중국의 역사가 집약돼 있기 때문이다. 마오에게 책은 그림자였다. 혁명전쟁도 그를 책에서 떼어내지 못했다. 식음을 전폐하면서까지 읽은 책을 측근들에게 권유했다. 독서 범위도 광대했다. 이는 배움에 대한 그의 열정에서 비롯됐다. “나이가 들어서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내가 다시 10년을 더 살고 죽는다면 9년 359일을 배울 것입니다.”

 

 

 

마오가 문학작품을 통해서도 중국을 바라봤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특히 그는 민중의 소극적이고 뒤떨어진 정신상태를 질책한 루쉰을 좋아했다. 그가 보기에 루쉰은 “암흑과 폭력의 공격에서도 독립적으로 버텨낸 한 그루의 큰 나무”이자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이며 철저한 유물론자”이다. 마오는 연설, 담화, 저작을 통해 아Q를 자주 언급했다. 혁명을 허락하되 <아Q정전> 속의 가짜 양놈 노릇을 해서는 안되며 아Q혁명을 허락하면 안된다고 했다. 그는 또 문건을 쓸 때는 <아Q정전>처럼 통속화하고 구어화할 것을 주문했다.

 

 

 
‘수불석권’이란 마오쩌둥에게 어울리는 성어다. 그는 문학책, 역사책, 마르크스·레닌의 저서, 철학책을 읽으며 줄을 치고 메모했다. 그는 또 <홍루몽>을 ‘역사’로 읽었다. 봉건사회의 계급투쟁을 묘사한 소설로 간주하며 호평했다. 그는 홍루몽의 저자 조설근이 살던 시대는 “소설 속 가보옥처럼 봉건제도에 불만을 가진 인물들의 시대”라며 <홍루몽>에서 묘사된 4대 가족의 쇠망을 통해 봉건통치계급의 쇠망을 이해하려 했다. 마오는 <금병매>도 높이 평가했지만 “다소 희망을 보여주고 있”는 <홍루몽>과는 달리 “주로 암흑을 폭로하기만 했”다고 비교한다. 그는 조카손녀에게 “네가 <홍루몽>을 읽고자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봉건사회를 알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론서나 역사서 탐독은 당연했겠지만 문학작품에까지 애착을 보인 건 왜일까. <홍루몽>처럼 봉건사회의 구체적 생활상을 묘사한 문학작품을 읽어야 봉건사회에 대해 세밀하고 생동적인 이해를 할 수 있게 되며, 이는 이론서 같은 것에서는 쉽게 얻을 수 없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마오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신봉했다. 간부라면 마르크스·레닌 저작을 읽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는 특히 레닌의 저작을 중점적으로 읽었다. 저자에 따르면 마오는 레닌의 책으로부터 식민지, 반식민지 국가에서 민주혁명을 진행하고 또 민주혁명에서 사회주의 혁명으로 바뀌는 이론을 찾았다. 중국의 실제와 밀접하게 연계시키며 반복적으로 읽었지만 그는 훗날 마르크스·레닌 저작 속의 일부 논점을 교조화하고 심지어 오해까지 해 막중한 손실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오가 모든 방면의 책을 섭렵한 것은 아니다. 외국 문학과 경제 분야의 책, 특히 생산의 사회화에 관한 외국 서적은 읽은 것이 적다고 한다. 그는 또 자연과학과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끝까지 이를 견지하지 못했다. 오히려 사회주의 개조가 기본적으로 완성된 후 그는 갈수록 “계급투쟁 중심으로” 할 것을 강조했고, 자연과학을 중시하는 사상은 희석됐다. 이런 추세는 10년간의 ‘문화대혁명’으로 변질됐고 경제에 심각한 피해를 줬으며 과학 발전도 저해했다고 저자는 평한다.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은 마오는 맹자의 한마디를 즐겨 인용했다. “<서경(書經)>을 그대로 다 믿는다면 <서경>이 없느니만 못하다.” 독서를 즐기되 책을 맹신하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마오의 단면이 엿보인다. ‘사다(四多)’, 즉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고 많이 묻는 마오의 습관에 밑줄이 그어진다. 세계든 자신이든 혁명하려면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는 얘기다. 1986년에 같은 제목으로 출판됐고 이 책은 2009년판을 완역한 것이다.(고영득기자)

 

12. 01. 14.

 

 

P.S. 마오에 관한 책은 다수 출간돼 있다. 평전들 외에 지젝이 엮고 해제를 붙인 <마오쩌둥>(프레시안북, 2009)에 특히 눈길을 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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