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장에서 펴내는 월간교양지 미르(345호)의 '시즌인문학' 꼭지에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세계를 소개하는 글을 청탁받아 실었다(편집부에서 붙인 부제는 '인간과 구원에 대한 치열한 탐구'다).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는 오늘부터 7일까지 도스토옙스키 원작의 '백치'를 무대에 올리고 있기도 하다. 겸사겸사 도스토옙스키 문학의 현재성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미르(18년 10월호)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세계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대뜸 그의 작품을 손에 드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지만, 문학사적 의의와 현재성을 가늠해보고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먼저 그가 살았던 시대에 주목해보자. 도스토옙스키는 1821년 빈민구제병원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공병학교에 다니던 10대 시절 그의 아버지는 농노들에게 피살당한 것으로 알려지는데 이 사건은 작가에게 큰 충격을 주며 훗날 마지막 작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를 집필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 


공병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공직에 재직하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이내 창작의 길을 선택한다. 학생 시절부터 당대 러시아 작가들은 물론 유럽 문학의 젊은 대가들의 작품을 탐독해온 터였다. 여기서 '젊은 대가'는 1830년대 주요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 프랑스 작가 발자크나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 등이다. 이 시기는 러시아 문학이 시 중심의 낭만주의 문학에서 산문소설 중심의 사실주의 문학으로 이행해가던 과도기였다. 러시아 근대문학의 토대를 마련한 푸시킨과 고골의 산문소설이 발표된 것도 이맘때다. 도스토옙스키는 발자크의 소설 <외제니 그랑데>를 러시아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유럽 사회는 요동치며 급격하게 변화한다. 나폴레옹 제정과 왕정복고기를 목도하며 작가의 길에 들어선 발자크는 부르주아 계급을 중심으로 사회가 개편돼가는 과정을 방대한 분량의 소설로 묘사한다. 새로운 문학의 표준을 제시한 셈인데,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세계는 그 수용과 변용으로도 이해된다. 변용이 불가피한 것은 프랑스 사회와 구별되는 러시아 사회의 특수성 때문이다. 유럽의 변방 국가로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낙후돼 있던 러시아는 영국이나 프랑스와 달리 시민(부르주아) 계급의 발달이 미진했다. 러시아의 잡계급이, 시민 계급이 주축을 이룬 서유럽의 제3계급에 해당한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데, 잡계급이란 상인과 의사, 성직자를 통칭하는 말이다. 출신으로 분류하면 도스토옙스키 또한 잡계급 출신의 작가다. 이러한 차이는 실제 문학 작품에도 반영된다. 


도스토옙스키는 1846년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하며 작가로 데뷔한다. 가난한 중년의 하급 관리 제부시킨과 그의 먼 친척 소녀 바르바라가 주고받은 편지로 구성된 서간체 소설인데 이 작품을 통해 도스토옙스키는 당대 최고의 비평가 벨린스키의 격찬을 받으며 러시아 문학의 기대주가 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1840년대에 유행한, 하층민의 삶에 대한 ‘생리학적 스케치’를 계승한 작품이지만, 도스토옙스키는 거기에 가난한 사람들의 심리학을 덧붙였다. 이를 통해 그는 고골과 그의 아류 문학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한다. 

데뷔작에 대한 열광적인 반응에 고무된 도스토옙스키는 뒤이어 야심작 <분신>을 발표한다. <가난한 사람들>보다 열 배는 더 뛰어난 작품이라고 자부했지만 평단의 반응은 냉담했다. 하급 관리 골랴드킨이 자신의 분신이 등장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는 도스토옙스키 후기 소설의 예고편으로도 읽힌다. 실제로 시베리아 유형에서 돌아온 그는 <분신>의 개작본을 발표하도 했다. <분신>을 도스토옙스키 문학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 그 출발은 결과적으로 20년 가까이 지연된 셈이다. 도스토옙스키는 1849년 한 정치 서클에 가담해 활동한 게 문제가 돼 체포, 수감되고 재판에서 사형선고까지 받는다. 이후 황제의 특사로 감형되어 시베리아 유형을 떠났고, 긴 유형 생활을 마치고 다시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것은 10년이 흐른 뒤인 1859년 말이었다. 그는 한 살 위의 형 미하일과 잡지를 발간하고 수감과 유형 생활을 소재로 <죽음의 집의 기록>을 발표하면서 작가로서 재기한다. 

1864년 자신이 주관하던 잡지에 <지하로부터의 수기>라는 문제적인 작품을 발표하면서 도스토옙스키는 비로소 위대한 장편의 시대로 진입한다. <죄와 벌>(1866)부터 <백치>(1869), <악령>(1872), <미성년>(1875), 그리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80)에 이르는 걸작을 차례로 발표한다. 러시아 문학사뿐 아니라 세계 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위대한 작가적 여정이다. 그는 2편으로 계획한 장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1편을 발표하고 속편은 시작하지 못한 채 1881년 눈을 감았다. 


도스토옙스키는 그의 작품들을 통해서 무엇을 탐구한 것인가. 핵심이자 출발점이 되는 것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다. 18세의 청년 도스토옙스키가 던진 물음이자 마지막 장편소설에서 반복되는 물음이기에 가히 그의 일생을 관통한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함께 주목할 만한 점은 '나'의 정체성이 언제나 타인의 인정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나’의 존재는 타인의 인정에 의존하기 때문에 ‘나’는 자신의 독자성을 주장하면서도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쟁투가 도스토옙스키 초기 문학의 주제였고, 시베리아 유형 이후 그는 이 문제를 국가적 정체성의 문제로 확장했다. ‘러시아는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이 경우에도 러시아의 정체성에 대한 모색은 유럽이라는 타자의 인정을 통해서만, 그리고 그 타자와의 비교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리하여 누구보다도 유럽의 사상과 정치적 상황에 관심을 기울인 작가가 도스토옙스키였다. ‘가장 러시아적인 작가’ 도스토옙스키가 ‘가장 유럽적인 작가’이기도 한 것은 이 때문이다. 


본격적인 첫 장편 <죄와 벌>에서 도스토옙스키는 페테르부르크라는 근대 도시의 빈민가에서 비범한 존재로서 자기 자신을 입증하고자 하는 주인공의 고투를 그린다. 발자크의 소설이라면 파리 사교계라는 분명한 투쟁의 상대가 주인공에게 제시되겠지만 <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에게는 모든 것이 모호하며 환영적이다. 가령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에 등장하는 라스티냐크라면 비범한 존재의 의미를 사회적 출세와 비범한 부자 되기에서 찾았을 것이다. 그것은 전혀 모호하지 않다. 하지만 라스콜니코프는 ‘인간은 범인과 비범인으로 나뉘며 비범인에게는 범인에게 허용되지 않는 권리가 허용된다’는 초인사상을 궁리하며 이를 입증하기 위해 전당포 노파를 상대로 도끼 살인을 감행한다. 어떤 출세, 어떤 투쟁이 가능한지 경로가 모호한 사회 환경에서 불가피하게 과도하고 과격한 존재 증명이 시도된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죄와 벌>의 에필로그에서, 자수한 뒤에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진 라스콜니코프의 갱생 이야기를 예고한다. 그것은 서유럽의 근대를 체현하는 동시에 그것을 극복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소설이어야 할 터. <죄와 벌>에 뒤이은 그의 소설들은 정확히 그러한 과제에 상응한다. 


작가적 여정의 두번째 기착지에 해당하는 <백치>는 도스토옙스키를 가장 극심한 창작의 고통으로 몰아넣은 작품으로 유명하다. 초고와 최종판이 완연히 다른 것은 그러한 고통의 결과다. ‘백치’의 주인공은 원래 가냐 이볼긴이었다. 몰락한 장군 집안의 차남으로 가족을 부양하면서도 주변으로부터 멸시당하는 자존심 깅한 청년이었고 간질병 환자였다. 야심을 지닌 가난한 청년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가냐는 <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지만 도스토옙스키는 결국 초고를 대폭 수정하고, 그 과정에서 주인공을 교체한다. 소설의 첫 장면. 치유차 수년간 스위스에서 머물다가 먼 친척뻘의 부인을 만나기 위해 기차를 타고 페테르부르크로 향하는 미쉬킨이 바로 교체된 주인공이다. 

가냐가 소설의 주인공이었다면 발자크 소설의 주인공 라스티냐크와 마찬가지로 속물적인 부르주아의 세계에서 출세를 위해 속악한 방법으로 고투하는 인물로 그려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이 발자크적인 이야기를 비틀고는 다른 이야기로 감싼다. 그는 투쟁을 통해 출세에 이르는 청년을 그리는 대신 정체가 불분명한 간질병 환자를 등장시켜 부르주아의 타락하고 비속한 세계를 구제하고자 한다. <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가 스탕달의 <적과 흑>의 주인공 쥘리앵 소렐의 모방이자 그 극복의 형상이었다면, <백치>의 주인공 미쉬킨은 지참금 때문에 정략결혼을 감행하려는 가냐를 물리치고 나스타샤를 구원함으로써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승리를 보여주어야 했다.

하지만 ‘백치’의 결말은 이러한 기대와 사뭇 다르다. 그리스도와 돈키호테를 모델로 한 미쉬킨은 정욕의 화신인 로고진에 의해 살해된 나스타샤의 시신 앞에서 망연자실해하며 결국 더 나빠진 상태로 스위스로 돌아간다. 작가적 구상에 비추어보면 이것은 실패다. 미쉬킨은 나스타샤를 구하는 데 실패하고, 동시에 타락한 러시아를 구하는 데도 실패한다. 도스토옙스키 역시 이 실패에 대해서는 거리낌 없이 인정했다. 다만 이 실패로 말미암아 도스토옙스키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로 이어지는 도정에 들어서는 것이기에 위대한 실패라고 불러도 좋겠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아버지와 아들의 상속이라는 유럽 가족사소설의 전형을 파괴한다. 부친 살해 테마를 정면으로 다루는 이 소설의 과제는 신에 대한 사랑이 어떻게 형제애(박애)로 이행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신의 죽음이라는 주제는 <백치>에서 로고진의 집에 걸려 있는 홀바인의 그림 '무덤 속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미 표현된 바 있다. 이 그림에서 홀바인은 성화의 관례와는 다르게 그리스도를 신성한 존재가 아닌 시신으로 그렸다. 실제로 도스토옙스키는 유럽 여행 중 스위스의 바젤미술관에서 그림을 직접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에게 홀바인의 그림은 허무주의(무신론)의 웅변이자 허무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죽음(혹은 무능력)에서 도스토옙스키는 거꾸로 구원의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는 요한복음의 구절을 작품의 길잡이로 삼은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드미트리는 <백치>의 주인공 미쉬킨의 실패에 대한 새로운 응답으로 보인다. 미쉬킨의 간질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는 가장 부정적인 인물인 스메르쟈코프에게 할당된다. 미쉬킨에게는 조화와 황홀경의 체험 계기였던 간질이 이 소설에서는 범행의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것으로 전락한다. 대신에 등장하는 것은 드미트리의 광활한 마음이다. 광활한 마음 때문에 고통 받으면서 마음을 좀 좁히고 싶다고 말하는 드미트리는 고결한 행위와 비열한 행위가 동시에 가능한 인물이다. 이는 모든 것이 그의 선택임과 동시에 책임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도스토옙스키의 구원은 그러한 자유를 전제 조건으로 한다. 이 자유가 이웃에 대한 사랑과 형제애의 조건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도스토옙스키의 현재성을 우리는 분명하게 식별할 수 있다. 자유·평등·박애라는 프랑스혁명의 이념이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인류사적 이념으로서 여전히 유효하다면,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이야말로 그러한 이념 전개에 정확히 대응하는 문학이다. 인류의 유토피아에 대한 전망을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도스토옙스키는 아직 동시대 작가다.

18. 10.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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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성 2018-10-04 0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문학 좋아하는 사람인데 로쟈님글 보면서 많은 것 얻어갑니다 늘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로쟈 2018-10-04 11:19   좋아요 0 | URL
도움이 되신다니 다행입니다.~

파란마음 2018-10-04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동안 왜 도스토예프스키를 가장 유럽적인 작가라고 하는지 의아했는데 로쟈님 덕에 배워갑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간의 구원문제에 천착하고 있는 작가는 이승우인거 같은데 로쟈님의 견해는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로쟈 2018-10-05 00:02   좋아요 0 | URL
저는 <생의 이면>만 읽어봐서 뭐라고 말씀드리기 어렵고요. 어떤 작품은 염두에 두고 계신지요?

파란마음 2018-10-05 0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의 이면도 그런 느낌이었고 당장 떠 오르는 작품으로 한낮의 시선과 지상의 노래가 있네요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를 통해서 소설이 얼마나 위대할 수 있는지 또 그렇게 깊이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지를 알 게 된 터라 집요하리만큼 작품에서 깊이 묻는 이승우작가가 마음에 와 닿아서요 로쟈님 덕택에 가장 좋아하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 감사한 마음입니다 로쟈님 내시는 책도 늘 관심 가지고 있습니다 평론은 무언가 손에 잡히지 않는 느낌이었다면 로쟈님의 러시아 문학 안내가 저에게는 오랜세월 고민했던 문제에 많은 해답을 얻었습니다 쓰고 계시는 책 더 빨리 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로쟈 2018-10-09 16:38   좋아요 0 | URL
네, 지상의 노래는 언제 읽어보려 합니다. 강의책이 좀 밀려있는데, 내년에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강의를 각각 내보는 게 목표입니다.~

돌도사 2018-10-06 0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득템입니당

로쟈 2018-10-09 16:38   좋아요 0 | URL
^^

파란마음 2018-10-09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라니 정말 기대됩니다 이왕이면 도스토예프스키를 먼저 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전 그래도 톨스토이보다 반발짝 도스토예프스키가 좋습니다 ㅎ

로쟈 2018-10-10 23:06   좋아요 0 | URL
아직 확정은 아닌데, 고려하겠습니다.~

2018-10-09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자님 써주신 글 감사히 보고있습니다. 내신 책도 잘 읽었는데 읽기 좋아서 부담없이 잘보았습니다. 쉽게 글로나마 언제든 뵐 수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고 많은 위안을 얻습니다

로쟈 2018-10-10 23:06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감사.~
 

오늘까지 대전예술의전당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 원작의 <백치>가 무대에 올려진다. 방대한 분량의 작품이 2시간 25분 분량의 연극으로 제작되었다(15분간의 인터미션 포함). 뮈시킨과 나스타샤, 로고진 등의 인물들을 국내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서 만나보는 드문 경험을 제공한다(10월 초에는 국립극장에서도 무대에 오른다). 작품해설을 청탁받아 팜플렛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 지난 화요일 아침 지방강의차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쓴 글이다. 


도스토옙스키와 백치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는 1821년 빈민구제병원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투르게네프나 톨스토이와 같은 동시대 작가들과는 달리 도스토옙스키는 잡계급 출신의 작가이다. 제정 러시아에서는 귀족도 농민도 아닌 중간층을 잡계급이라고 불렀는데, 의사와 상인, 성직자가 여기에 속했다. 공병학교에 다녔지만 문학청년이었던 도스토옙스키는 유럽문학의 거장으로 부상하던 프랑스 작가 발자크와 영국 작가 디킨스를 탐독했다. 바야흐로 1830년대는 근대 사회소설이 본격적으로 발아하던 때였다. 러시아문학사에서도 1830년대는 이전의 서정시 중심의 낭만주의문학에서 산문소설 중심의 사실주의문학으로 이행해가던 과도기였다. 도스토옙스키는 러시아 국민문학의 바탕을 마련한 푸슈킨과 고골의 작품들을 읽으며 작가의 꿈을 키워나갔다.  

공병학교 시절 도스토옙스키는 낭비벽으로 늘 돈에 쪼들렸고, 아버지에게 돈을 요구하는 편지를 줄기차게 보냈다. 작가로 데뷔한 이후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아서 투르게네프에게도 손을 벌렸다가 사이가 틀어진 일화는 유명하다. 도스토옙스키가 빌려달라는 돈의 절반만 빌려준 투르게네프가 나중에 전부를 빌려주지 않았느냐고 착각하는 바람에 도스토옙스키의 분노를 산 것이었다. 두 사람은 도스토옙스키가 죽기 수개월 전에야 화해했다. 이러한 이력을 갖게 될 작가의 데뷔작이 <가난한 사람들>이란 건 잘 어울리는 일이다. 1844년부터 쓰기 시작한 이 작품은 가난한 중년의 하급관리 마카르 제부시킨과 그의 먼 친척 소녀 바르바라가 주고받은 편지로 구성되었다. 작품은 1846년 초에 한 잡지에 발표되지만 그 전해에 도스토옙스키는 당시 시인이자 편집자였던 네크라소프와 최고의 비평가 벨린스키로부터 격찬을 받으며 러시아문학의 기대주가 된다.

청년 작가 도스토옙스키를 ‘제2의 고골’로 불리게 만든 <가난한 사람들>은 1840년대에 유행한, 하층민들의 삶에 대한 ‘생리학적 스케치’를 계승한 작품이지만, 도스토옙스키는 거기에다 가난한 사람들의 심리학을 덧붙였다. 고골과 그의 아류 문학에서 도스토옙스키 문학으로의 이행은 생리학에서 심리학으로의 이행이라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가난한 사람들>의 두 주인공은 가난한 살림살이를 걱정하면서도 늘 타인의 시선과 험담에 신경을 쓴다. 데뷔작에서부터 선보인 ‘나’와 ‘타자’의 경쟁적 관계는 도스토옙스키 문학의 핵심 테마가 된다.

<가난한 사람들>로 문단의 격찬을 받으며 성공적인 데뷔를 했지만 도스토옙스키의 작가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뒤이어 발표한 작품 <분신>은 그 자신의 자부심과는 달리 미온적인 반응을 얻는데 그쳤고, 결정적으로는 1849년에는 한 정치서클에 가담하여 활동한 게 문제가 돼 체포되어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이후에 감형되어 시베리아 유형을 떠나게 되지만 사형수로서 형집행 직전까지 갔던 체험의 그의 여러 작품에 흔적을 남긴다. 특히 <백치>에서 미쉬킨이 들려주는 사형수의 마지막 순간에 관한 이야기는 작가의 직접적인 체험에 빚지고 있다.

동토의 땅에서 긴 유형생활을 마치고 다시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것은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인 1859년말이었다. 그는 한 살 위의 형 미하일과 잡지를 발간하고 수감과 유형 생활을 소재로 <죽음의 집의 기록>을 발표하면서 작가로서 재기한다. 1864년 자신이 주관하던 잡지에 <지하로부터의 수기>라는 문제적인 작품을 발표한 이후, 우리가 잘 아는 <죄와 벌>(1866)부터 <백치>(1869), <악령>(1872), <미성년>(1875), 그리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80)에 이르는 걸작 장편들을 연이어 발표한다. 러시아문학사뿐 아니라 세계문학사의 한 장관을 이루게 될 위대한 작가적 여정이다. 도스토옙스키는 두 권으로 계획했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첫 권을 발표하고 둘째권은 시작하지 못한 채 1881년 눈을 감았다.

도스토옙스키는 여러 작품들을 통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필생의 물음을 다루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문제를 탐구했다. 그런데 이 정체성은 언제나 타인의 인정을 전제로 한다. ‘나’의 존재는 타인의 인정에 의존하기 때문에 ‘나’는 자신의 독자성을 주장하면서도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쟁투가 도스토옙스키 초기 문학의 주제였고, 시베리아 유형 이후에 그는 이 문제를 국가적 정체성의 문제로 확장했다. ‘러시아는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이 경우에도 러시아의 정체성에 대한 모색은 유럽이라는 타자의 인정을 통해서만, 그리고 그 타자와의 비교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리하여 누구보다도 유럽의 사상과 정치적 상황에 관심을 기울인 작가가 도스토옙스키였다. ‘가장 러시아적인 작가’ 도스토옙스키가 ‘가장 유럽적인 작가’이기도 한 것은 이 때문이다.


첫 장편소설 <죄와 벌>에 뒤이어 작가적 여정의 두번째 기착지에 해당햐는 <백치>는 도스토옙스키를 가장 극심한 창작의 고통으로 몰아넣은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초고와 최종판이 완연히 다른 것은 그러한 고통의 결과이다. <죄와 벌>을 발표한 이듬해에 도스토옙스키는 신속한 작업을 위해 고용했던 속기사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와 결혼하고 장기간의 유렵여행을 떠났다. 남편의 많은 채무가 창작에 방해가 될 것을 염려한 아내 안나의 결단에 따른 것이었다. 이 외유중에 구상하고 집필한 <백치>의 주인공은 원래 가냐 이볼긴이었다. 몰락한 장군집안의 차남으로 가족을 부양하면서도 주변으로부터 멸시당하는 자존심 깅한 청년이었고 게다가 간질병환자였다.

야심을 가진 가난한 청년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가냐는 <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를 떠올리게 하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발자크 소설의 전형적인 주인공도 상기시킨다. 그렇지만 이 주인공은 도스토옙스키를 만족시키지 못하며 결국 작가는 초고를 대폭 수정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을 교체한다. 소설의 첫 장면에서 치유차 수년간 스위스에서 머물다가 먼 친척뻘되는 부인을 만나기 위해 기차를 타고 페테르부르크로 향하는 미쉬킨이 바로 교체된 주인공이다. 가냐가 소설의 주인공이었다면 발자크 소설의 주인공 라스티냐크와 마찬가지로 속물적인 부르주아들의 세계에서 속악한 방법으로 출세를 위해 고투하는 인물로 그려졌을 것이다. 아니, 그런 인물의 이야기가 소설이 줄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이 발자크적인 이야기를 비틀고 다른 이야기로 감싼다. 그는 투쟁의 과정을 통해서 출세에 이르는 청년을 그리는 대신에 정체가 불분명한 간질병환자를 등장시켜서 부르주아들의 타락하고 비속한 세계를 구제하고자 한다. 이것이 가냐가 주인공인 소설에서 미쉬킨이 주인공인 소설로의 이행이며 동시에 발자크 소설(유럽소설)에서 도스토옙스키 소설(러시아소설)로의 이행이다. <죄와 벌>에서의 라스콜니코프가 스탕달의 <적과 흑>의 주인공 쥘리앵 소렐의 모방이면서 그 극복의 형상이었다면 <백치>의 주인공 미쉬킨은 지참금에 유혹되어 정략결혼을 감행하려는 가냐를 물리치고 나스타샤를 구원함으로써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승리를 보여주어야 했다.

하지만 <백치>의 결말은 이러한 기대와 사뭇 대조된다. 그리스도와 돈키호테를 모델로 한 미쉬킨은 정욕의 화신인 로고진에 의해 살해된 나스타샤의 시신 앞에서 망연자실해 하며 결국 더 나빠진 상태로 스위스로 다시 돌아간다. 작가적 구상에 비추어보면 이것은 실패다. 미쉬킨은 나스타샤를 구하는 데 실패하며 동시에 타락한 러시아를 구하는 데에도 실패한다. 도스토옙스키 역시도 이 실패에 대해서는 거리낌없이 인정했다. 다만 이 실패로 말미암아 도스토옙스키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로 이어지는 도정에 다시 들어가게 되는 것이기에 위대한 실패라고 불러도 좋겠다.

중요한 것은 실패의 원인과 과정이다. 작가 도스토옙스키의 지병이기도 했던 간질은 발작과정에서 극도의 고통을 수반하지만 한편으로는 잠시 황홀경을 체험하게 한다. 아주 짧은 시간일지언정 조화와 화해의 순간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다. 미쉬킨의 간질은 그런 의미에서 구원의 비전이 될 수 있다. 또 스위스에서 미쉬킨은 마을사람들로부터 따돌림당하고 학대받던 마리라는 처녀를 구해준 경험이 있다. 이러한 질병과 경험이 미쉬킨의 자격요건이면서 타락한 페테르부르크, 타락한 러시아를 구원하기 위한 수단이다. 미쉬킨은 이를 통해서 나스타샤를 구원하고 아글라야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


그렇지만 미쉬킨이 상대해야 하는 세계는 비속하면서도 막강하다. 구두쇠 상인이었던 아버지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고서 그것을 바탕으로 나스타샤를 손에 넣고자 하는 로고진에게 미쉬킨은 한갓 ‘유로지비‘(러시아 중세의 바보성자)에 불과하다. 로고진의 세계를 잘 대변하는 것은 그의 집에 걸려 있는 홀바인의 그림 ‘무덤속의 그리스도‘인데, 이 그림은 성화의 관례와는 다르게 그리스도를 신성한 존재가 아닌 시신으로 그렸다. 실제로 도스토옙스키는 유럽여행중 스위스의 바젤미술관에서 그림을 직접 보고 큰 충격을 받았고 이는 <백치>의 집필 동기의 하나다. 도스토옙스키에게 홀바인의 그림은 허무주의(무신론)를 웅변하연서 허무 그 자체로 여겨졌다.

도스토옙스키의 원작에서 이 허무주의를 대변하는 인물은 이폴리트다. 폐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통보받은 이 소년은 자연의 법칙에 순종하기를 거부하고 그에 맞선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자살을 시도한다. 로고진이 욕정의 만족을 위해서 어떤 행위도 서슴지 않는 반항자의 형상을 보여준다면 이폴리트는 형이상학의 차원에서 그의 짝패가 된다. 그들의 반항에 맞서야 했던 미쉬킨은 홀바인의 그림 속 그리스도처럼 창백하고 무력하며 돈키호테처럼 순수하지만 착오적이다.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인간을 묘사하고 그를 통해서 세계를 구원해보고자 한 도스토옙스키의 시도는 작품의 말미에서 리자베타의 탄식으로 마무리된다. ˝이 모든 것, 이 모든 외국 것, 당신네 유럽의 모든 것은 오직 환상에 불과해. 외국에 나와 있는 우리 모두 환상에 불과일 뿐이야.˝

비록 미쉬킨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지만 서구의 가톨릭과 사회주의 사상을 싸잡아 비판하면서 러시아와 러시아인, 러시아적인 것이 세계를 구원하리라는 그의 믿음은 도스토옙스키의 이후 작품들에서 계속 반복된다. 그 여정의 종착지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백치>는 그 여정의 중요한 이정표로서 작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는 물론 근대소설의 의미와 역할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통찰을 던져주는 작품이다.

18. 0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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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9-15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배우들은 작품을 읽고 연기를 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작품을 읽고 연기하면 깊이가 더할텐데 그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로쟈 2018-09-15 18:34   좋아요 1 | URL
네 읽는 배우들도 있겠지만, 대본 중심이기 때문에 필수적이진 않을 듯해요. 연극은 분량상 원작을 압축하면서 도스토옙스키적인 설정이 많이 빠져나가서 아쉽게 여겨집니다.

wingles 2018-09-17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립에서 예매해 둔 작품이었는데 선생님 해설이 있다니 더 기대되네요^^

로쟈 2018-09-17 22:37   좋아요 0 | URL
이 글이 해설로 실릴 예정입니다.~
 

내일자 한겨레의 '책과 생각'에 실리는 칼럼을 옮겨놓는다. 번역과 번역서에 대해서 짚어보는 '이현우의 언어의 경계에서' 꼭지인데, 이번에는 톨스토이의 대작 <전쟁과 평화>의 역사관에서 대해 적었다. 지난해 문학동네판에 이어서 최근 민음사판이 출간된 게 글을 쓴 계기다...


 


한겨레(18. 07. 20) '역사'를 입에 놀리는 사람을 경계하기


레프 톨스토이가 한국에 처음 소개된 건 1909년 잡지 <소년>을 통해서였다. 최남선과 이광수가 주선자이자 그의 숭배자였다. 투르게네프와 함께 톨스토이는 1920년대 독자들에게 이광수만큼 많이 읽힌 것으로 알려진다. 그렇지만 어떤 톨스토이였나를 묻게 되면 대답은 궁색하다. 소설가로서 그의 대표작 <전쟁과 평화>나 <안나 카레니나>는 해방 이후에야 번역되기 때문이다. 번역된 이후에도 한국 독자가 주로 읽은 건 카츄샤와 네흘류도프의 사랑 이야기 <부활>이었다. 톨스토이를 모르는 독자는 거의 없지만 그를 제대로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독자도 많지 않다. <전쟁과 평화>를 완독한 독자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한때 <안나 카레니나>도 강의에서 읽을 번역본이 없어서 애를 먹었는데 <전쟁과 평화>는 그보다 더 오랫동안 사정이 좋지 않았다. 오래된 번역본 두어 종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다 지난해에야 세계문학전집으로 새로 교정된 문학동네판이 출간되었고, 최근에 젊은 세대의 번역본으로 민음사판이 가세했다. 톨스토이의 걸작 <전쟁과 평화>를 읽을 수 있는 조건이 비로소 갖춰진 것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전쟁과 평화>는 무엇이 특별한가. 1869년판에 붙인 후기에서 톨스토이는 자신의 작품이 “장편소설도 아니고, 서사시도 아니고, 역사적 연대기는 더더욱 아니”라고 적었다.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과 그 패배라는 사건을 중심에 두고 1805년부터 1820년까지 러시아 사회의 모습을 담은 이 소설은 당시 기준으로 표준적인 유럽 장편소설을 초과하고, 과거 사실의 기록을 지향하는 역사 연대기도 훌쩍 넘어선다. 어느 한 범주로만 묶을 수 없어서 가족소설이면서 성장소설이고 전쟁소설이면서 역사소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서도 톨스토이가 특별한 비중을 둔 것은 역사관의 개진이었다. 나폴레옹 전쟁을 거리로 삼아서 역사란 무엇인가를 성찰해보려는 것이 그의 강력한 집필 동기였다. 그가 도달한 결론은 무엇인가.



놀랍게도 톨스토이는 국가적 대세에는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고 개인적 관심에만 골몰했던 사람들이 영웅적 행위를 통해 참여하려고 했던 사람들보다 훨씬 유익한 일을 했다고 본다. “역사적 사건에서 무엇보다 뚜렷한 교훈은 지혜의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는 것이다. 무의식적인 활동만이 열매를 맺을 뿐, 역사적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은 결코 그 사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문학동네) “역사적 사건들 가운데 가장 명백한 사건은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금지한 것이었다. 오직 무의식적인 활동만이 열매를 맺으며, 역사적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은 결코 자신의 의의를 이해하지 못한다.”(민음사)


이러한 역사관에서 바라볼 때 나폴레옹 같은 세계사적 영웅이 역사를 움직여간다고 보는 영웅사관은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나폴레옹은 <전쟁과 평화>에서 냉소거리가 되는데, 그가 아무리 군대를 지휘하고 명령을 내린다 하더라도 전장의 아수라장 속에서는 제대로 전달되지도 수행되지도 않는다. 나폴레옹 자신만 그렇게 믿을 뿐이다. 그렇다고 톨스토이가 민중사관에서처럼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본 것도 아니다. 톨스토이가 보기에 역사는 무의식적 과정이며 주체가 없다. 그것은 마치 사회성 곤충으로서 벌의 생활과 유사하며 실제로 톨스토이는 벌에 자주 비유한다. 개개의 벌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전체 군집의 생존과 존속에 기여한다. 역사적 과정에서는 인간도 이런 벌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톨스토이의 교훈이다.

18. 0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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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8-07-20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전쟁과 평화를 읽지 않았습니다 -.- 근데 읽어도 그 뜻을 모를 게 확실했네요. 로쟈님 글을 읽고나니 읽어야겠다 싶습니다. 힌트를 얻고나면 어려운 문제도 풀 수 있으니깐요!

로쟈 2018-07-20 08:47   좋아요 0 | URL
안식년때 한번 읽어보시길.~

jhyeon02 2018-07-20 05: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민음사판 번역자 연진희입니다. 톨스토이가 국내에 소개되는 과정이며 톨스토이의 역사관에 대한 조명을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이 작품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아무리 많은 말을 쏟아도 부족하겠지만, 특히 역사관은 <전쟁과 평화>에서도 아주 중요하고 의미 있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로자님의 서재에 댓글을 남기기로 한 것은 번역자로서 제 오역을 발견하고 수정할 기회를 주신 것에 무엇보다 감사하고 이 지면을 빌어 독자분들께 사과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인용해 주신 부분은 4권 1부 4장 33쪽입니다. ()에 적힌 글이 수정을 반영한 부분입니다.

“역사적 사건들 가운데(에서) 가장 명백(분명)한 사건(것)은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금지한 것이었다(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직 무의식적인 활동만이 열매를 맺으며, 역사적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은 결코 자신의(사건의) 의의를 이해하지 못한다.”(민음사)

바로 그 다음에 이어지는 ‘설사 그 역(그것)을 이해하려 애쓴다 해도 그는 그 무익함에 충격을 받고 말 것이다.‘에서도 수정이 필요합니다.

무심코 제가 이해하고 싶은 방향으로 독해하여 대명사가 지시하는 바를 정확히 간파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출간 전까지 최대한 검토하고 검토했는데도 이 부분의 실수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로자님의 칼럼 덕분에 감사하게도,오류를 확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혹시 앞으로도 이것만이 아니라 다른 오류나 어색한 부분을 발견하시면 꼭 연락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역사관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테마에 대해서도 로자님의 글을 또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다른 독자분들께도 동일한 간청을 드립니다. 독자분들의 의견을 제대로 확인하고 반영해서 쇄를 거듭할수록 더욱 온전하게 성장하는 번역서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민음사에는 다음 쇄부터 수정이 적용될 수 있도록 말씀을 드려놓겠습니다.

* 제 이메일 주소는 jhyeon02@hanmail.net입니다.

로쟈 2018-07-20 08:50   좋아요 0 | URL
아. 번역은 어려운 문제이고 더 낫게 혹은 다르게 번역할 수 있는 여지는 늘 있지요. 방대한 작품을 옮기느라 고생많으셨습니다. 더 나은 번역으로의 성장은 저도기대할게요.~

러브굿 2018-07-23 10:47   좋아요 0 | URL
오역은 있을 수 있는 일이고요. 빠르게 바로잡아 주시면 독자로서 고맙죠.

연진희님 번역을 뒤늦게서야 접하고서 팬이 되었습니다.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이 놀라워서, 번역문이 이럴 수 있나, 몇 번이고 다시 읽어 봤습니다. 원문 찾아서 비교도 해 보고요. 물론 저야 러시아 어를 모르지만 단어 모양과 나열 방식을 보면 짐작할 수 있거든요.

전자책으로도 어서 나왔으면 좋겠네요.

혹시 다음에 번역할 작품을 알 수 있을까요? 아직 일정이 없으신가요?

러브굿 2018-07-23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톨스토이가 왜 그렇게 공격을 많이 당했는지 이제야 알았네요. 민중사관과 영웅사관 양쪽에서 모두 싫어할 수밖에 없었네요. 정치적으로 회색주의자는 돌팔매를 맞을 수밖에 없죠.

로쟈님 덕분에 ‘전쟁과 평화‘가 새롭게 보이네요.

로쟈 2018-07-23 22:52   좋아요 0 | URL
톨스토이의 역사철학은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주 한겨레의 ‘책과 생각‘ 면에 실린 ‘책으로 떠나는 여행‘의 한 꼭지를 옮겨놓는다. 구소련을 찾아가는 여행을 제안받고서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골랐다. 알렉시예비치의 <세컨드핸드 타임>과 같이 읽어보면 구소련에 대해서 감을 잡을 수 있겠다.

한겨레(18. 07. 13) 이젠 가볼 수 없는 구소련의 하루

러시아 월드컵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이제는 러시아라는 이름이 자연스럽지만 대학에 들어가 러시아어와 문학을 공부할 무렵만 하더라도 소련이었다. 전공이 ‘소련학과‘라고 소개해도 통하던 시절이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지금은 구소련이라고 불린다. 이제는 지도에서 사라진 구소련을 어떤 책을 통해 찾아가볼 것인가.

1991년 해체 이후에 사회주의 소련은 자본주의 러시아가 되었지만 그 흔적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그 시대를 살았던 벨라루스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세컨드핸드 타임‘이라고 염려할 정도다. 중고품 시대, 더 속되게 말하면 재탕 시대라는 뜻이다. 1917년 러시아혁명과 함께 탄생한 인류사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소련이 역사의 악몽으로만 기억될 것인가.

조지 오웰의 우화소설 <동물농장>(1945)을 통해서 소련식 사회주의 신화는 진작 폭로가 되었지만 소련 내부의 고발이 전격적으로 터져나온 것은 1962년의 일이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문제적 데뷔작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발표되면서 소련문학은 다시는 그 이전 시대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실제로 8년간 수용소에서 복역했던 솔제니친은 이 소설에서 주인공의 하루를 세밀하게 복원함으로써 오웰의 우화를 실사 버전으로 제공한다. 하루에 대한 묘사로 충분했던 건 10년형을 선고받은 이반 데니소비치에게 모든 날이 똑같은 하루의 반복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이반 데니소비치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독일군의 포로가 되지만, 전쟁이 끝나면서 생환한 다른 포로들과 마찬가지로 조국에 대한 반역죄로 기소된다. 그를 기다린 건 감옥과 수용소의 나날이다. 비인간적 작업환경에서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에 강제노역에 동원되는 인민들의 모습을 통해서 솔제니친은 사회주의 이상국가의 허상을 있는 그대로 폭로한다. 더 문제적인 것은 이러한 수용소 체제에 적응하여 생존의 규칙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망실한다는 데 있다. 내일 무엇을 하고 내년에는 또 어떤 일을 할지, 가족의 생계는 어떻게 돌봐야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아예 사라져버린다. “그가 걱정하지 않아도 모든 것은 높은 사람이 대신 생각해준다.”

권력을 독점한 소수가 판단과 결정을 떠맡고 절대 다수 인민은 그에 따르도록 강요받는 사회는 어떤 의미에서도 제값의 민주주의적 체제라고 말할 수 없다. 더군다나 ‘인민의 낙원‘이라고 불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지만 솔제니친은 수용소 사회로 전락한 소련을 부정적으로만 묘사하고 있지는 않은데, 희망의 단초가 되는 것은 인민들의 소박한 인간성과 도덕성이다. 이제 마흔이 넘은 나이가 된 이반 데니소비치는 이빨도 반이나 빠져버리고 머리숱도 얼마 남지 않은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뇌물을 주거나 받은 경험이 없다. 그런 걸 배우지 못했을 뿐더러 생각해보지도 않는다.

최악의 환경에서도 최소한의 도덕은 생존수칙이다. 수용소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어 나가는 자들은 남의 죽그릇을 핥으려는 자들이나, 의무실에 드나들 궁리만 하는 자들, 그리고 쓸데없이 간수장을 찾아다니는 자들이다. 비록 죽그릇을 속여서 두 그릇을 먹는 등 수용소 생활의 요령은 터득하고 있지만, 이반 데니소비치는 최소한의 도덕과 성실성을 통해서 자신의 위엄을 지킨다. 그리하여 자칫 아침에 영창에 갈 뻔했던 하루를 거의 행복하기까지 한 하루로 만든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수용소의 하루일 뿐이다. 아무런 주장이나 설교 없이도 솔제니친은 소련이 이반 데니소비치와 같은 인민의 품성에 맞지 않다는 것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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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주부터 도스토예프스키(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문학동네)에 대한 강의를 진행할 예정이라 석영중 교수의 <인간 만세!>(세창출판사)를 손에 들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읽기‘가 부제이기에 작품을 읽으려는 독자들이 유용하게 참고할 수 있는 책이다.



저자의 관심은 인간 본성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적 탐구의 결정판으로 <카라마조프>를 읽으면서 그 현재적 의의를 강조하는 데 있다. 첫 장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인간관을 간단히 개관하고 있는데(이 주제 자체가 또 다른 한권의 책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논지에 공감한다. 다만 ‘선택하는 존재‘로 보았다는 관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도스토옙스키의 인물들은 지속적으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들은 시간 선상에서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법이 없다. 다른 작가들, 예를 들어 톨스토이의 인물들이 ‘성장‘하는 반면 도스토옙스키의 인물들은 ‘선택‘을 한다˝고 주장하는데, 두 작가의 이러한 대비는 검토를 필요로 한다.

가령 톨스토이의 인물들의 ‘성장‘하는 모습은 주로 <전쟁과 평화>까지의 초기작들에 나타날 따름이다. 저자의 톨스토이론에서 강조된 대로 후기 톨스토이는 좋은 삶과 나쁜 삶이라는 양자택일적 선택지를 제시한다. 이때 좋은 삶의 선택이란 이전까지의 나쁜 삶(기만적인 삶)의 전면적인 부정이란 제스처를 취한다. 성장이냐 선택이냐라는 이분법이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을 가르는 유효한 준거라고 생각되지 않는 이유다.

그렇다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인물들은 과연 성장하지 않고 선택하는가. 저자에 따르면 ˝도스토옙스키의 인물들은 시간을 두고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일순간 급변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비커밍‘ 범주에서 벗어난다. 또 그런 점 때문에 그들은 변증법적인 발전의 궤적을 따르지도 않는다. 정과 반이 합의 차원에서 통합되는 변증법적 상황은 도스토옙스키에게서 발견되지 않는다.˝

마지막 문장의 단언은 미국 연구자의 연구서(<도스토예프스키의 변증법과 죄의 문제>)에서 근거를 가져오고 있는데 나로선 동의하지 않는다. 원 저자가 변증법에 대해서 너무 나이브하게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정과 반의 합이라는 건 달리 지양이라고 부르는데 그 지양은 단순한 통합이나 극복을 뜻하는 게 아니라 부정과 보존의 운동으로 이해된다.

나는 이러한 의미의 지양적 구조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다고 본다. 만약 이것이 단순한 양자택일적 선택의 문제라면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윤리적 물음에 대한 해답은 너무도 단순명료해진다. 선과 악, 구원과 파멸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로 환원되거나 축소되기 때문이다. 과연 이 양자택일적 선택에 대한 판단을 위해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는 대작을 읽어야 하는 것인지.

더구나 이러한 양자택일을 선택하는 존재라는 관점은 저자가 앞서 인간을 ˝이중적이고 완결되지 않고 불합리한 존재˝라고 규정한 것과 충돌한다. 인간이 양자택일적 상황에서 ˝반드시 선택하고 결정하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 존재라면 그 선택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인간의 본질적 이중성과 비종결성, 불합리성이 다 해소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더 이상 인간이기를 멈추게 되는 것인가?

오히려 이러한 ‘선택하는 인간‘은 후기 톨스토이의 인간학에 더 잘 부합한다(그래서 후기 톨스토이는 예술로서의 문학창작을 부정한다). 도스토예프스키와 그의 문학에 대한 유용한 입문서를 여러 권 펴낸 노고와는 별개로 저자의 견해가 표준적인 게 아니며 이견도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노파심에서 적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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