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영 교수 번역의 카뮈 전집이 완간됐다. 인터뷰기사를 보니 1987년에 첫권이 나왔다. 그 여름에 내가 읽은 <결혼 여름>이 첫 권이었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내년에 카뮈의 몇몇 작품을 강의할 기회가 있는데, 그 시간의 기억을 더듬어볼 수 있겠다. '레전드'가 될 만한 역자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경향신문(09. 12. 16) “7년 예상 ‘카뮈 전집’번역 23년 씨름했어요” 

“이제 여기서 근 23년에 걸친 한국어판 ‘알베르 카뮈 전집’의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지난 10일자로 발행된 카뮈(1913~60)의 책 <시사평론>(책세상) 번역자 서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1987년 산문집 <결혼·여름>으로 시작된 카뮈 전집(총 20권) 번역을 끝낸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68)를 지난 11일 서울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카뮈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처음부터 전집 번역을 염두에 뒀던 것은 아니었다. “첫권인 <결혼·여름>은 너무나도 서정적인 산문집입니다. 일부만 번역돼 있었기에 ‘내가 한번 해볼까’ 하던 차에 책세상 주간이던 소설가 호영송씨가 86년 제안을 해서 이듬해에 출간했죠.” 출판사는 내친 김에 전집을 번역하자고 했다. 그래서 2권인 <이방인>부터 전집 23권의 목록이 책 뒷날개에 실리기 시작했다.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와 독점계약을 맺었는데 국내에서 카뮈의 작품이 정식계약을 맺고 번역되기는 이 전집이 처음이다. “독점계약이었기에 지금도 다른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에 카뮈의 작품은 올라있지 않습니다.” 내년 1월4일은 카뮈가 죽은 지 50년째 되는 날이므로 2011년 사후 저작권이 풀린다. 



김 교수에게 오랫동안 자신을 즐겁게 하기도 하고 괴롭히기도 했던 카뮈에 대해 말하는 것은 신명나는 일인 듯 보였다. 그 앞에 놓인 머그잔은 인터뷰 초반에 이미 바닥을 드러냈고 카페라테가 남긴 거품이 말라가고 있었다. 첫권을 번역할 당시 40대 교수였던 그는 1년에 3~4권씩 번역하면 7~8년이면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대학에서 은퇴해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는 나이”가 돼서야 끝났다. “해제를 쓰는 작업이 더 고역이었습니다. 마라톤을 막 끝냈는데 한바퀴 더 돌라는 격이죠.” 그래서 23권으로 계획됐던 전집은 한국 독자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시사평론> 2권과 3권, <알베르 카뮈·장 그르니에> 서한집을 제외시킨 채 20권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그동안 출판사의 담당 편집자가 여러명 바뀌었고 번역문체도 변화를 겪었다. 언어환경 전반에 한자어 사용이 급격하게 줄면서 뒤로 갈수록 한글 구어체 비중이 높아졌다. “문자에 너무 얽매였던” 그의 번역 태도도 바뀌었다. “나이가 들수록 원문도 중요하지만 우리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나 김 교수는 이 부분에서 걸핏하면 “어렵다”고 하는 독자들을 질타했다. “원문 자체가 어려운데 독자들이 아무 노력도 안하면서 쉽게만 번역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게으름의 소치”라는 것이다. 



카뮈는 1913년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며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고 있었던 42년 소설 <이방인>을 발표, 프랑스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신문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카뮈는 독일의 프랑스 점령기에 레지스탕스에 적극 가담했다. 5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카뮈는 60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작가수첩>이라고 이름붙은 책이 3권 있습니다. 이걸 보면 카뮈가 얼마나 용의주도한 작가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일기와 비슷한 사적 기록들인데 작품 계획과 변동사항을 세세하게 기록해 뒀기 때문에 그의 생각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어요. 그는 항상 자기 문제와 시대의 문제로 씨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카뮈의 작업은 하나의 주제에 대해 소설과 희곡, 에세이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이 ‘사이클’을 이루는 방식이다. 카뮈가 천착한 첫번째 사이클은 인간과 세계의 ‘부조리’였는데 소설 <이방인>, 철학 에세이 <시지프 신화>, 희곡 <칼리굴라·오해>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카뮈가 부조리에 대한 해결책으로 선택한 테마인 ‘반항’이 두번째 사이클이다. 소설 <페스트>, 에세이 <반항하는 인간>, 희곡 <정의의 사람들·계엄령> 등이다. “카뮈는 세번째 사이클인 ‘절도(節度)’에 대해 쓰다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흔히 카뮈를 ‘실존주의자’로 부른다. 그러나 카뮈는 “나는 실존주의자가 아니다”라는 글을 발표할 정도로 사르트르 등의 실존주의와 거리를 뒀다. “실존주의는 인생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하는데 카뮈는 유의미할 수도, 무의미할 수도 있다고 봤습니다. 이게 사르트르와의 차이점입니다.” 카뮈가 마지막으로 집중한 주제였던 ‘절도’가 철학적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내세운 ‘중용’을 뜻하는 것처럼 카뮈의 사상 핵심은 ‘균형’이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카뮈는 절대로 낡은 고전이 아니라 21세기 한국에서도 살아 펄떡거리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작가”라고 역설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카뮈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면서도 ‘모든 부정 속에 긍정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가 히로시마 원폭을 비판했던 것도, 사형제를 반대한 것도 이 때문이었죠. 이런 메시지는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의미를 지닙니다.”(김재중기자) 

09. 12. 16.  



P.S. 얼마전에 평론집 <소설의 숲에서 길을 묻다>(문학동네, 2009)를 내고서 김화영 교수가 주간한국과 가진 인터뷰 기사도 참고할 만하다(http://weekly.hankooki.com/lpage/people/200911/wk20091109190120105610.htm) "선생은 <마담 보바르>나 <이방인>과 같은 작품은 수백 번을 읽었고 아직도 일 년에 한 번은 읽는다고 말했는데, 국내 문학 작품을 볼 때도 이 기준은 유효하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전부 시적인 작가"라고 말했다."는 대목은 내가 이해하는 불문학자이자 비평가 김화영과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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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jjismy의 생각
    from jjjismy's me2DAY 2009-12-16 01:33 
    [알라딘서재]카뮈 전집과 씨름한 23년
  2. 김화영 교수, 카뮈전집 완간
    from 한사의 서재 2009-12-16 09:37 
      카뮈 타계 50주년 앞두고 한국어판 전집 완간           김화영 고대 명예교수         실존의 부조리(不條理)에 반항했던 작가 알베르 카뮈(1913~1960)의 한국어판 전집(책세상 출판사)이 카뮈 타계 50주년(2010년 1월 4일)을 앞두고 완간됐다.    불문학
 
 
비연 2009-12-16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화영교수 번역의 카뮈 전집을 다 모으고 있는 입장에서, 정말 큰 일을 하셨다는 생각이.

로쟈 2009-12-17 08:07   좋아요 0 | URL
전집을 다 모으시는 것도 큰일인데요.^^

sophie 2009-12-16 0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라발도 헌 책 더미 속에서 사르트르와 카뮈를 꼽으면서 특히 카뮈가 글을 잘 썼다고 하더군요. 그건 글에 대한 얘기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로쟈 2009-12-17 08:09   좋아요 0 | URL
사르트르냐 카뮈냐란 물음이 한때 유행하긴 했었죠. 프랑수아즈 사강은 사르트르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2009-12-16 0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17 0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9-12-16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경의를 표해야겠군요. 작가수첩은 읽어보고 싶긴한데
까뮈하면 왠지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어서 말이죠.ㅜ

로쟈 2009-12-17 08:10   좋아요 0 | URL
설마 수첩까지도 어려울라구요.^^;

펠릭스 2009-12-16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뮈와 톨스토이는 치밀하며 용의주도한 작가인듯 합니다.

로쟈 2009-12-17 08:11   좋아요 0 | URL
창작에 대한 태도에는 그런 면도 있는 듯하네요...
 

유종호 교수의 시비평집 출간 소식을 전한 김에, 게다가 Sati님의 부추김에 힘입어 자작시 한 편을 옮겨놓는다. 예전에 마지막 '모스크바통신'에서 인용한 적이 있는데, 모두 비공개로 돌리면서 지금을 읽을 수 없게 된 듯하다. 말하자면 '리바이벌'이다. '내가 걸어다닌 골목들과 골목어귀의 나무들과'란 제목이 여러 번 반복되는 이 시를 실제로 나는 흥얼거리며 여기저기 걸어다니곤 했다. 자작시로 그만한 쓰임새라면 더 바랄 게 있겠는가. 

 

내가 걸어다닌 골목들과 골목어귀의 나무들과
 
내가 걸어다닌 골목들과 골목어귀의 나무들과
잘 생긴 나무들과 눈이 동그랗던 꽃나무들과
그때마다 생각하곤 했던 삶의 품위와 가벼운 멜랑콜리와
그때마다 맛보던 가벼운 페이소스와

내가 걸어다닌 골목들과 골목어귀의 나무들과
잘 익은 가지들과 울타리 덩굴장미들과
그때마다 생각하곤 했던 미래의 어느 풋풋한 오후와
그때마다 이마에 맺혀 오던 땀방울과 

내가 걸어다닌 골목들과 골목어귀의 나무들과
코스모스처럼 떠다니던 한 조각 사연들과
그때마다 생각하곤 했던 한때의 미련과 미련의 부피와
그때마다 붉게 물들어 떨어지던 낮은 탄식들과
또 어느새
내가 걸어다닌 골목들과 골목어귀의 나무들마다에
소복소복 하얗게 쌓인 눈과 군데군데 뿌려진 연탄재와
그때마다 뽀얀 입김 속에 그려지던 추억들과
그때마다 눈물나게 아름답던 눈꽃들과 

내가 걸어다닌 골목들과 골목어귀의 늙은 나무들과
비와 바람과 눈감으면 바람 속 숨죽인 먼지들과……  

 

09.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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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le 2009-12-15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행가처럼 입에 짝짝 붙어요. <-와>가 이렇게 근사한 조사인 줄 몰랐어요. 어느 출판사에서 시집 내준다고 하면 군말하지 마시고 그냥 얼른 한 권 내세요. 아시죠. 시집은 한 권이면 일평생 충분하다는 거.

로쟈 2009-12-15 10:51   좋아요 0 | URL
네, 내주겠다는 출판사도 조만간 생길 거 같습니다.^^

starla 2009-12-15 0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리 내어서 읽어보았습니다.
아래 사진과 잘 어울리네요.
조금 스산하고 조금 쓸쓸하고...

로쟈 2009-12-15 10:50   좋아요 0 | URL
네, 가벼운 페이소스를 전달하고자 했지요...

비로그인 2009-12-15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래의 사진은 이국적인 느낌인데요?...ㅎㅎ'눈물나게 아름답던 눈꽃들과....'^^*

로쟈 2009-12-15 10:50   좋아요 0 | URL
네, 분위기는 비슷한데, 우리 골목은 아닙니다.^^

NILNILIST 2009-12-15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오늘 아트앤스터디에서 러시아문학강의 신청 받더군요~
당장 수강신청했습니다^^ 1월달에 뵐게요~ㅋ

로쟈 2009-12-15 23:11   좋아요 0 | URL
네, 감사. 1월에 뵐게요.^^

펠릭스 2009-12-15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걸어다닌 골목에 구멍가게 있었죠. 외상으로 빵과 우유를 사먹고,,,상점 아줌마를 피해 다니던 중학시절의 골목,,,,골목 어귀에서 바라보던 저희 집 축대에 금이가 위험스러웠어요. 언젠가 무너질 것이라는 생각에 불안했죠...골목에는 많은 얘기가 숨어 있습니다. 장미와 아이가 유머스럽습니다. 송창식의 '한번쯤' 노래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제 기억을 되살린 시입니다.(15,11:21)

로쟈 2009-12-15 23:11   좋아요 0 | URL
네, 골목은 대로와는 또 다르죠. 골목도 점점 사라져가는 듯해요...

쉽싸리 2009-12-21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 좋습니다. 며칠새 눈도 많이 오고, 골목에 대한 아련한 상념 같은게 있죠.
바삐 다니고 그러다 돌아오는 늦은 밤 쉴수 있는 곳.
 

문학평론가 유종호 교수의 시 비평집이 출간됐다. <시와 말과 사회사>(서정시학, 2009). 중간에 <시 읽기의 방법>(삶과꿈, 2005)도 있었지만, 짐작엔 <다시 읽는 한국시인>(문학동네, 2002)에 이어지는 것인 듯싶다. 더 거슬로 올라가면 <시란 무엇인가>(민음사, 1995)도 있는데, 이런 책들이 유종호 교수의 책으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쪽이다. 일찍부터 문학, 특히 시에서 언어가 갖는 중요성을 강조해온 저자의 시어에 대한 오랜 관심과 애착이 이번 책에도 묻어나는 듯싶다. 아마도 올해 구입할 마지막 비평집.  

한국일보(09. 12. 14) "당대 사회상을 알면 詩 읽기의 묘미 더해"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청록파 박목월(1916~1978) 시인의 대표작인 '윤사월'은 적막한 산골마을에서 꾀꼬리 울음을 듣고 있는 외딴집 눈먼 처녀의 외로움을 정제된 언어로 보여준 작품으로 지금도 애송되고 있다. 그러나 시인이 왜 일제시대에 흔했던 폐결핵이나 말라리아 환자가 아니라 시각장애인 여성을 시에 등장시켰을까 관심을 기울인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문학평론가인 유종호(74) 전 연세대 교수는 이 시를 통해 당시 시대상황을 들여다본다. 하사마 분이치(狹間文一)라는 일본인이 1944년 펴낸 <조선의 자연과 생활>에 따르면 해방 직전 전국의 시각장애인은 2만명이고 안과전문개업의는 20명이며 그 중 8명이 서울에 있었다. 그때 안과질환은 유아들에게 가장 흔한 질환이었다. 일상적으로 식량이 부족했던 당시 시각장애인들은 대부분 젖먹이 때 영양부족으로 안질을 앓았고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실명으로 이어졌을 것으로 추론하는 유씨는 "박목월 시에 나오는 눈 먼 처녀는 틀림없이 유아기 안질의 희생자였을 것"이라며 "그렇게 생각하고 시를 읽으면 공연히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말했다.

유씨는 새 시론집 <시와 말과 사회사>(서정시학 발생)에서 시어에 묻어있는 당대의 사회적ㆍ정치적 함의를 밝히는 일이야말로 시 읽기의 묘미를 맛보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시 연구라면 의당 작가론을 떠올리는 독자들에게 시어의 함의를 세밀하게 음미하고 당시의 사회상을 그려보는 이런 독해법은 신선하다. 가령 저자는 1950년대 서정주가 발표했던 '시월유제'의 한 구절 '한동안씩 잊었던 이 엽전(葉錢)선비의 길'에 나온 '엽전선비'라는 시어에 주목한다. 모더니즘 구호가 판치던 당시'엽전'은 구습에 젖어있는 한국인들이 자기비하적인 뜻으로 흔히 쓴 표현인데 신라정신을 내세웠던 시인이 '엽전선비'라는 시어로 자기 신세를 반어적으로 표현했다는 것. 유씨는 이는 비속어이되 비속하지 않고 자조적이되 비굴하지 않은 반속(反俗)적 함의가 짙은, 대체불가능한 시어라며 시의 재미란 이런 묘미 찾기라고 설명한다.

시각을 나타내는 표현도 세월에 따라 크게 변했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로 시작하는 김광균의 '추일서정'은 언어의 변천사를 알아야 그 시간적 배경을 추론할 수 있다.'새로 두시의 급행차가 들을 달린다'라는 구절은 젊은 세대에게 요령부득일 수 있지만, 시 해석의 단서가 된다. 1940~50년대에는'오전 두시'가 흔히 '새로 두시'로 쓰였다. 이런 세세한 것에 대한 음미야말로 시 읽기가 주는 재미라고 유씨는 강조한다.

언어의 시대사적 맥락 파악이나 다른 작품과의 비교를 통한 이런 시 읽기는 필수적이지만, 유씨에 따르면 단어 하나하나를 허술히 다루는 병폐는 문학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여전하다. 가령 정지용의 시 '촉불과 손'에 나오는 '초밤불'이라는 단어의 해석이 그런 예다. 서울대 국문과의 한 교수는 '초밤불'을 '결혼 첫날 밤에 밝히는 불'이라고 해석했는데 유씨는 이를 '저녁에 켜는 불'로 정정한다. 정지용은 이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To the evening star'를 '초밤별에게'로 번역한 바 있으며 정지용 이후에도 조지훈의 '편지'나 임학수의 '코스모스'같은 시에서 '초밤별'이라는 시어가 '저녁별'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바 있다. 



유씨는 "리얼리즘, 민족문학론 등 거시적 담론이 지배하는 가운데 메시지 중심으로 작품을 들여다보는 문학연구 풍토가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꼬집으며 "'문명이란 조그마한 차이의 감각'이라는 레비 스트로스의 말처럼 적어도 시를 이야기할 때는 시어의 뉘앙스 같은 미시적 세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실용적인 중국인들이 관료를 뽑는데 시를 시험과목에 넣었던 이유는 시 읽기를 단순히 감상이 아니라 지적 훈련의 과정으로 봤기 때문"이라며 "언어에 대한 세세한 분석과 검토를 통해 독해적 상상력의 세련을 도모하자는 것이 이 책을 낸 이유"라고 말했다.(이왕구기자) 

09.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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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12-14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속에는 당 시대의 문화가 녹아있죠. 지금에 우리가 그때의 작품을 읽음으로서 그 시대의 문화와 사상 등에 대한 인식들을 넓혀 갈 수 있어 좋습니다. 번역에 있어서도 중역보다는 원본 번역을 더 선호한것 같아요. 원뜻을 최대한 자기방식으로 되살리고 싶은 마음에서 일것입니다. 그런의미에서 말(문자)에 대한 미시적인 관심은 의미있습니다.

로쟈 2009-12-14 23:36   좋아요 0 | URL
네, 그렇게 말을 음미하는 법을 배우는 게 시 교육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Sati 2009-12-14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가 참 어려웠는데, 로쟈님 덕분에(특히 자작시^^) 시의 맛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어요...

로쟈 2009-12-14 23:35   좋아요 0 | URL
그래서 한편 더 옮겨놓았습니다.^^;
 

이번주 한겨레21에 실은 서평기사를 옮겨놓는다. 니시카와 나가오의 <국민을 그만두는 방법>(역사비평사, 2009)을 다루고 있는데, <국민이라는 괴물>(소명출판사, 2002)의 내용도 일부 포함됐다. 니시카와의 책은 <신식민지주의론>(일조작, 2009)도 출간됐는데(언제부턴가 '식민주의'란 말 대신에 '식민지주의'란 말이 쓰이고 있는데, 짐작엔 일본어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주저의 대부분이 소개된 게 아닌가 한다. 일본 학자의 책이 이렇듯 한꺼번에 소개되는 건 드문 일이어서 눈길을 끈다.  

한겨레21(09. 12. 21) 문화로는 국가에 대항할 수 없다 

국민을 그만두는 방법? 이런 제목에 눈이 번쩍 뜨이는 독자도 있을 법하다. 게다가 “당신은 계속 ‘국민’이고 싶은가, 아니면 ‘국민’을 그만두고 다른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가?”라는 둔중한 물음까지 표지에는 붙어 있다. 어떤 ‘노하우’일까 궁금해서 책을 손에 들었다. 미리 말해두자면, 잘못 골랐다! 저자의 물음은 책의 첫 문장이 아니라 맨 마지막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소득이 전혀 없지는 않다. ‘국민’을 그만두려면 ‘국민문화’에서도 벗어나야 한다는 요지 정도는 감지할 수 있으니까. 사실 책의 초점은 국민이 아니라 바로 그 국민문화에 두어진다.  

‘국민국가론’의 권위자로 알려진 니시카와 나가오의 저작은 이미 여러 권 소개돼 있는데, 쓰인 순서에 따르면 <국민을 그만두는 방법>(역사비평사)은 <국경을 넘는 방법>(일조각, 2006)과 <국민이라는 괴물>(소명출판사, 2002) 사이에 위치한다. 연작으로 읽어도 좋을 만한 이 저작들의 토대가 되는 건 ‘문명(civilisation)’과 ‘문화(culture)’에 대한 개념사적 통찰이다.  

저자가 잘 정리해놓은 걸 다시 정리하자면, 일단 문명과 문화 모두 유럽에 기원을 둔 개념이다. ‘고대문명’나 ‘고대문화’란 말도 쓰지만, 두 용어는 모두 18세기 후반에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발명품이다. 문명은 아예 신조어이고 원래 ‘경작’을 뜻하던 문화는 현재와 같은 의미로 쓰임새가 바뀌었다. 라틴어 어원(civitas)에서 알 수 있듯이 문명은 고대 도시국가와 연결된 말로서 도시생활을 모델로 하고, 문화는 농촌생활을 모델로 한다. 농작물과 가축을 기른다는 어원적 의미 덕분에 문화는 인간의 마음과 정신을 기른다는 의미의 교양도 뜻하게 됐다. 더불어 문명은 인류의 보편성을 강조하면서 물질적인 진보를 예찬하는 반면에, 문화는 생활의 다양성과 개별성을 강조한다. 물질적 진보를 중요시하는 문명이 미래 지향적이라면, 정신의 우월성을 앞세우는 문화는 과거의 전통을 중요시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개념의 전파 양상이 다르다는 점. 문명은 프랑스 및 영국과 미국 등 주로 선진국으로 전파됐고, 문화는 독일을 중심으로 폴란드, 러시아 등 후진국으로 퍼져나갔다. 곧 ‘문명=선진국 모델’, ‘문화=후발국가 모델’이었다. 프랑스 혁명과 함께 국민국가가 형성되는 프랑스에서는 문명이 국민적 이데올로기로 정착된다. 프랑스 혁명이 곧 인류의 해방이고 프랑스인은 그러한 진보의 선두에 있다는 자각이 거기엔 반영돼 있다. 반면에 프랑스에 대항하여 성장한 독일의 국민사는 기본적으로 문화사다. 독일의 지식인과 시민계급은 자신들의 독자적 가치관을 문화라는 말을 통해서 표명하고자 했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근대 이후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서 반복된 전쟁은 한편으론 문명과 문화 사이의 투쟁이란 양상도 갖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고, 문명과 문화 사이에 차이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두 개념은 각각 유럽의 선진국과 후발국의 국익과 가치관에 부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게다가 근대 국민국가 형성과정이라는 동일한 모태에서 샴쌍둥이처럼 태어난 둘의 관계는 고정적이지 않다. 한 문화가 자기의 우월성을 확신하게 되면 문명적 보편주의로 나아가려는 경향을 보이고, 반대로 패권을 잃어버릴 경우에는 문화주의로 전환하는 양상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일본이 패전 이후에 ‘문화국가’라는 슬로건을 내건 것은 기묘한 일이었다고 니시카와는 지적한다. 야마토 다마시(大禾魂)라는 일본의 정신문화가 미·영의 물질문명에 패했음에도 국가주의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문화’가 문책받기는커녕 오히려 평화의 동의어로 유행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국가이데올로기로서 ‘문화’ 개념은 ‘민족’이나 ‘국체’ 개념과 일체였기 때문에 문화로는 국가에 대항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비록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사고가 특정한 방향성을 갖도록 한다는 것이 그의 문제의식이다. ‘한국문화’는 사정이 다를 수 있을까?  

09. 12. 14.  

P.S. 지난봄 방한하기도 했던 니시카와 교수의 인터뷰기사는 http://news.khan.co.kr/kh_thema/khan_art_view.html?artid=200903311748355&code=96010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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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12-14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문명은 다를 수 있을까?"로 대입 해봅니다.

로쟈 2009-12-14 23:36   좋아요 0 | URL
'한국문명'까지는 갈길이 멀어보이는데요.^^;
 

두어 번 연재를 옮겨놓은 듯도 싶은데, 고종석 한국일보 객원논설위원의 연재 '여자들'이 책으로 출간됐다. <여자들>(개마고원, 2009). 기다렸던 책이어서 조만간 손에 들 듯싶다(오늘은 <안나 카레니나>를 챙기느라 여유가 없었다). 찾아보니 리스트를 만들어놓은 적이 없어서(놀랍게도!) 이 참에 고종석 읽기 리스트도 만들어둔다. 그가 단독으로 낸 책들만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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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 고종석의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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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긋기의 어려움- 고종석 시평집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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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루만지다-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고종석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1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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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도시의 기억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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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12-13 23:23   좋아요 0 | URL
'고종석의 여자들'중 '마더 테레사 콜카타의 성녀'장과 '히친스'의 '자비를 팔다'에서 '테레사'의 이중성에 대해 비교하여 읽고 싶습니다.

로쟈 2009-12-14 23:37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연재를 다 챙겨읽지 않아서 책이 기대가 됩니다. 동네서점엔 오늘도 안 들어왔더군요...

알케 2009-12-16 13:57   좋아요 0 | URL
한때 고종석의 열렬한 숭배자였던 시절도 있었는데 어느 시절부터 동어반복의 느낌도 들고
속살거림이 귀에 서걱거리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그의 책이 출간되면 책은 삽니다만 목차만 읽고 서가로 갑니다. 전작주의자가 될 수 없는 운명입니다. ^^

로쟈 2009-12-17 08:24   좋아요 0 | URL
저도 <도시의 기억>부터는 완독하지 못했습니다. 여유가 없어서이긴 하지만...

꼼미 2009-12-18 00:34   좋아요 0 | URL
얼마전 언니에게 한국책들을 좀 부탁해 받았습니다. 그 안에 고종석의 <감염된 언어>도 있어서 읽고 있습니다. 개정판이군요. 나온지 한참 됐는데 저자는 자기 생각에 그리 변한게 없다며 그냥 냈다고 하네요. 그런데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건 짜증과 화입니다. 복거일과 영어공용화 논쟁에 대한 견해며, 한자 문제며. 그 예전 한겨레 문학기자로 정말 책을 열심히 읽고 쓰는 듯한 그의 글이 좋아서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으로서 그에게 기대한 많은 것들이 이 책을 읽으며 너무나 실망스럽습니다. 언어학자 (언어에 오랜동안 전문적 관심을 가져온 자)로서 건네주는 응당한 철학도 정당한 판단도 없을뿐 아니라 소양있는 지식인에서 풍기는 감동도 느끼기가 힘드네요. 마지막 <서경별곡>은 참으로 더 황당합니다. 그 잡다한 이야기의 나열이라니. 나이많은 할아버지가 손가는 대로 써내려간 낡은 수필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이게 저만의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어쨋든, 위의 목록처럼 많은 책을 집필해온 또 하나의 '권위'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이런 글을 쓰고 이런 책을 다시 아무런 수정없이 개정판으로 내었다니 (그 말은 앞으로도 이 책을 사서 읽을 사람들이 꽤 될꺼라는 뜻....), 그저 혼자 씁쓸해할 일만은 아니란 생각도 들고. 뭐, 좀 그렇습니다. 적어도 제가 읽은 "새롭게 단장되어" 개정판으로 재출판된 <감염된 언어>는 그렇다는 말이지요. 갑자기 로쟈님께서는 이 책을 제대로 완독하셨는지 그것도 궁금하네요...

로쟈 2009-12-18 08:41   좋아요 0 | URL
완전 실망하셨네요.^^; 저자 자신이 이 책에서 개진된 생각에 공감하는 독자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 적었지만 저는 읽을 때(초판으로 읽었습니다) 공감했던 1人이었습니다. 고종석의 자유주의와는 입장을 좀 달리하더라도 재미있었구요. 책에 대한 판단도 취미 판단의 일종이란 걸 요즘 자주 느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