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그로스란 이름이 떠서 신간이 나왔나 했더니 아니다. 페미니즘 이론서로 <몸 페미니즘을 향해>(꿈꾼문고)가 그것인데 제목에 ‘몸‘이 들어가 있어서 확인해보니 (개정판이란 표시가 없지만) 과거에 <뫼비우스 띠로서 몸>(여이연)이라고 나왔던 책.

2001년에 나왔으니 18년만이다. 왜 바로 검색이 안 되나 했더니 그때는 저자가 ‘엘리자베스 그로츠‘로 표기됐었다. 원서도 검색해보니 아직 절판되지 않았다. 기억에는 대학도서관에서 대출해 같이 읽었더랬다(정확히는 맛만 보았다고 해야겠다).

˝불과 최근까지도 철학에서 여성은 지워져 있었다. 엘리자베스 그로스는 책의 각 장을 통해 우선 이런 현실을 정확하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기성 체계에 대한 주도면밀한 비판이 새로운 페미니즘적 대안의 도출을 위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로스는 그 대안의 중심에 다시 ‘몸‘을 위치시킨다. 그리고 그 ‘몸‘을 부재나 결핍이 아닌 ‘성차‘로써 정의한다. 다시 말해 기존의 남근중심적 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핵심 개념으로서 ‘성차화된 몸‘을 제시하는 것이다.˝

‘성차화된 몸‘이란 주제는 그로스(그로츠)와 주디스 버틀러의 페미니즘을 비교한 전혜은의 <섹스화된 몸>(새물결)의 주제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로스나 버틀러나 상당한 배경지식과 집중적인 독서를 요구하는 이론가들이라는 데 있다. 대의를 간추리는 건 어렵지 않으나 실제 독서는 만만찮다. 앞서 나왔던 <뫼비우스 띠로서 몸>이 흐지부지 절판된 이유다. 최소한 라캉주의에 대한 선이해는 갖춘 뒤에 도전해보는 게 좋겠다. 그로스 자신이 라캉에 대한 페미니즘적 입문서를 써서 이름을 알린 이론가였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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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속의 고요, 를 잠시 떠올렸다. 뒷편 베란다 창밖으론 아직 매미소리가 들리지만 더위처럼 한 풀 기세가 꺾였다. 처서도 지났고 내일이면 날짜로는 9월이다. 여름의 마지막날. 실내온도는 25도까지 떨어졌다(올여름 최고온도는 29도였다). 선선해서 책을 읽기 좋은 계절, 흔히 말하는.

아침으로 샌드위치를 먹고는 당장 읽어야 책을 펴놓고도 무릎에는 이번에 다시 나온 두 권의 <국화와 칼>(1946)을 올려 놓았다. 내가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댓종이 넘는다. 하지만 완독할 기회는 없었다(제목만으로도 읽은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탓일까?).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의 대표작이면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일본문화론. ‘일본문화의 패턴‘이 부제다.

일본정부의 도발로 시작된 ‘경제전쟁‘ 국면 때문에 책을 다시 펴낸 걸로 보이는데, 이 참에 완독해보는 것도 좋겠다(하지만 다음주가 가을개강이고 시작부터 강의가 10개가 넘는다). 일본 관련서로 요즘 출판계의 화제는 <일본제국쇠망사>(글항아리)인데, 갑작스런 수요 때문에 바쁘게 중쇄를 찍었다고 한다. 겸사겸사 일본을 쇠망으로까지 이끈 문화적 심성에 대해서도 식견을 가져볼 만하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고 <국화와 칼>을 손에 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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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신간이 <파리 스케치>(반니)라고 나왔길래 살펴보았다. ‘파리‘가 제목에 들어가 있어서 절반은 의심하고 있었는데 예상대로 <파리는 날마다 축제>(이숲)라고 나왔던 책의 새 번역판이다.

˝<파리 스케치>는 헤밍웨이가 파리에서 거주하던 젊은 시절을 회고하며 말년인 1957년부터 1960년 사이에 쓴 에세이다. 이 수필집은 1964년에 ‘움직이는 축제’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간되었고, 2010년에는 여기에 초고 상태인 ‘파리 스케치’를 추가하여 같은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다. 이 책의 2부로 소개된 ‘파리 스케치’는 비록 원고가 작가에 의해 매끄럽게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젊은 시절에 대한 헤밍웨이의 성찰과 1부 ‘움직이는 축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 있다.˝

2부를 제목으로 삼고 있을 뿐 편제는 <파리는 날마다 축제>와 동일하다. 참고로 안정효 선생 번역의 <호주머니 속의 축제>는 책의 1부, 곧 1964년판의 번역이다. 원제 ‘움직이는 축제‘는 의미전달이 어려운데 날짜가 고정돼 있지 않고 해마다 변경되는 축제를 뜻한다. ‘이동축제일‘로 옮기는데 그 또한 뜻이 바로 전달되지는 않는다. 새 번역본이 ‘파리 스케치‘를 제목으로 삼은 이유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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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죽음을 주제로 한 책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어니스트(어네스트) 베커의 <죽음의 부정>(힌빛비즈)이 재번역되어 나왔다. 언젠가 한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매우 훌륭한 책이지만 번역이 좋지 않았고 그마저도 절판됐던 책이다. 미더운 번역자에 의해 다시 출간돼 반갑다(출판사는 의외다). 단순한 재간이 아니어서 다행스럽고.

˝<죽음의 부정>은 인간의 근원적 문제인 죽음, 종교, 악에 관한 그간의 연구를 망라한 어니스트 베커 필생의 역작으로 평가받으며 1974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다. 인간의 본성에 새로운 빛을 비추며 삶과 생의 의지를 북돋는 베커의 메시지는 출간 반세기에 다다른 지금도 유효한 가치를 지닌다. 죽음에 관한 논의에 앞서 반드시 거쳐야 할 책으로 지금도 수요가 꾸준하지만 안타깝게 절판됐던 상황, <죽음의 부정>이 초판 출간 12년 만에 심도 있는 새 번역으로 다시 독자들을 만난다.˝

저자는 실제로 5년간 암투병을 하며 이 책을 썼다 한다. 이 책의 존재 자체가 ‘죽음의 부정‘의 위엄 있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 번역에 대한 불만으로 중간에 덮었던 기억이 있는데(그래도 책을 버리진 않았다) 여름이 가기전에 다시 손에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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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물론 쇼펜하우어의 주저다. 그렇게 적은 건 책이 다시 나왔기 때문인데, 을유사상고전판은 보급형 모양새이지만 책값은 오히려 높게 매겨졌다. 그래도 처음 구입하는 독자라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몇 종의 번역본을 갖고 있지만 나도 읽는다면 을유문화사판이다. 다만 대개의 철학서들이 그렇듯이 읽을 만한 여분의 시간을 갖지 못할 따름이다(여러 번 시도하고 영역본까지 구입해놓은 지도 몇년 되었다).

쇼펜하우어는 윌 듀란트의 <철학이야기>를 통해서 처음 접한 듯한데(그때가 고3때였던 듯) 이후에는 문학에 끼친 영향 때문에 독서과제가 되었다. 유럽 자연주의 문학은 쇼펜하우어 철학을 감안하지 않으면 쭉정이만 읽는 게 된다. 졸라만 예외로 하고 입센이나 투르게네프, 하디와 모파상 등이 모두 쇼펜하우어의 영향하에 놓인다. 톨스토이와 토마스 만까지도 그렇다(쇼펜하우어와 톨스토이는 니체와 도스토옙스키처럼 비교거리다).

가령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에서 직접 언급되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참조한다면 토마스 부덴브로크의 몰락 과정을 더 깊이 공감하며 따라갈 수 있으리라. 읽은 지 오래 되어 엊그제 다시 주문하기도 했는데 톨스토이의 <인생론>에도 쇼펜하우어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았던가 싶다. 니체와의 관계는(‘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 잘 알려져 있기에 군말을 보탤 필요도 없다. 갑자기 든 관심인데 후기 프로이트에도 영향을 주었는지 찾아봐야겠다. ‘괴로운 날엔 쇼펜하우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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