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철학을 인터뷰하다
하버드 철학 리뷰 편집부 엮음, 강유원.최봉실 옮김 / 돌베개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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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는가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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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
나루케 마코토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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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권을 동시에 읽어라? 이건 '내 얘기'다 싶어서 손에 든 책인데(그래서 '열권' 속에 포함된 책인데) 시작부터 거침없는 말투가 인상적이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나 <마시멜로 이야기>, <시크릿>처럼 내가 읽지 않았고 읽을 생각도 없는 책들을 편식하는 독자들에게 "당신은 구제불능이다!"라고 일침을 놓는 것도 '내 말이!'란 동감을 얻기에 충분하다. 거기에 저자는 내가 안 갖고 있는 가공할 무기까지 들이미는데, 만약 그런 식으로 책을 읽는다면 당신은 "장담하건대 중산층 이하의 삶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단언이 그것이다(흠, 한번에 열권씩 읽는 건 마찬가지인데도 '중산층 이하'인 경우는 무엇인지?).   

저자의 약력이 궁금한 대목인데, 사실 그게 이 책의 또다른 핵심이기도 하다. 간략히 말하면 이렇다. 1955년생. 대학 졸업후 마이크로소프트사 입사. "탁월한 업무 능력과 통찰력, 조직력을 인정받아 35세의 젊은 나이에 마이크로소프트사 일본법인의 사장 취임." 더불어, "일본 비즈니스계를 통틀어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독서가 중 하나". 그러니까 그는 재벌 2세가 아니면서 30대에 CEO가 된 신화적 인물이자 샐러리맨들의 '로망'적 인물인 것. 그 '비결'로 꼽는 것이 특이하게도 자기만의 독서법이다.  

"내가 서른다섯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마이크로소프트 일본법인의 사장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철저하게 남과 다른 방식으로 살고 남이 읽는 방식으로 책을 읽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8쪽) 

흥미로운 건 모든 부분에서 남과의 차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에게 "인생에서 가장 큰 차이를 만드는 것은 바로 독서법"이라는 것. 거기에 이런 부추김. 책을 읽는 방법만 바꿔도 인생이 백팔십도 달라질 수 있다! 이건 거의 '협박' 수준인데, 솔직히 나로선 부러운 감마저 없지 않다("단 한권의 책밖에 읽지 않은 사람을 경계하라!"는 영국 정치가 디즈레일리의 경구가 이 책의 에피그라프이다).  

책에 관한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이름이 알려지는 바람에 서평도 자주 끼적이는 형편이지만 나는 한번도 '인생역전'이라거나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원숭이다!'는 말을 입에 담아보지 못했다. '인문학 강사'라는 타이틀이 말해주는바, 나는 책읽고 떠든는 게 직업인 '특이한 독서가'이지 '부러운 독서가'는 아닌 것이다(흠, '인터넷 서평꾼'이란 타이틀과 운을 맞추자면 '인터넷 독서꾼'이라고도 부름 직하다). 그래서 저자의 어조가 부럽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하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면 '남과 비슷하게 살면 된다'는 지금까지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부터 버려야 한다. 남이 가는 곳에는 가지 않고, 남이 먹는 것은 먹지 않으며, 남이 읽는 책은 읽지 말아야 한다. 그것을 철저히, 꾸준히 실천하면 된다."(7-8쪽) 

 

사실 이 책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이러한 주문에 다 집약돼 있는 듯싶다. 남들이 읽는 책을, 남들이 읽는 방식으로는 절대로 읽지 말라는 것. 이것이 나루케 마코토식의 '자기에의 배려'이면서 존재미학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어떤 책을 읽고 있는가?'란 물음은 그러한 배려와 미학을 당신은 갖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많이 알려진 경구이지만(출처가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이란 건 이 책에서 알았다) "당신이 어떤 음식을 먹는지 말해보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맞혀보겠다."는 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것이 저자의 대전제이다. 그러니 남과 같은 걸 먹으면 남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고, 남과 같은 책을 읽으면 역시 남들과 구별되지 않는 인간이 된다는 게 자연스런 귀결이다.     

그렇다고 유독 나만 읽는 책, 나만 읽을 수 있는 책이 따로 존재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저자의 방점은 '남다른 독서법'에 찍히며, 그것이 '열권을 동시에 읽는' 초병렬 독서법이다. "물리학, 문학, 전기 및 평전, 경영학, 역사, 예술 등 전혀 다른 장르의 책을 적극적으로 넘나들며 동시에 읽는 것을 말한다." 개개의 책은 특별하지 않을 수 있지만, 동시에 읽는 책의 조합은, 그것도 열권의 조합 정도 되면 거의 무한대에 가까워진다(조합의 가능성이 2의 십제곱이니까!).  

나도 당장 책상 주변에 있는 책들을 꼽아보았다. 읽고 있거나 당장 이번주에 읽어야(들춰봐야) 하는 책들이다(절반은 강의나 원고와 관련하여 읽는 책이다). 파스테르나크의 <의사 지바고>와 몇권의 관련서 + 폴 벤느의 <푸코, 사유와 인간>과 푸코에 관한 책 몇 권 + 밀란 쿤데라의 <농담>과 몇 권의 관련서 + 후카사와 나오토 등의 <슈퍼노멀> + 지젝의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와 지젝의 책 몇 권 +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 + <20세기 러시아소설>(영어본) + 오이겐 핑크의 <니체 철학>과 니체 관련서 몇 권 + 대니얼 데닛의 <자유는 진화한다> + 박홍규의 <그리스 귀신 죽이기> 등. 이런 식으로 각자가 열권의 조합을 만들어보면, 누구와도 같지 않은, 유일무이한 '독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물론 내가 이런 걸 제안하면 저자도 염두에 둔 의문들이 쏟아질 것이다. "하루하루 너무 바빠서 한달에 책 한 권 읽기도 벅찬데요."(한국인의 평균 독서량이 딱 그렇다!) "동시에 여러 권을 읽으면 집중력이 떨어지지 않을까요?" "그런 터무니없는 방법으로 효과가 있겠어요?" 이런 반문에 대해서 나라면 "하긴 그렇기도 해요."라고 맞장구를 치고 말 텐데, 나루케 마코토는 당당하다. "초병렬 독서법을 실천하면 경쟁력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생 자체가 풍요로워진다." (굳의 나의 사례를 덧붙이자면, '경쟁력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변모시킬 수 있는지는 극히 의문스럽지만, 그래도 <로쟈의 인문학 서재> 같은 책은 각자가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초병렬 독서법 자체는 나대로도 하고 있는 것이므로 이 책에서 특별히 건질 건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대목은 저자의 궁핍했던 시절에 대한 회고이다. 아마도 독서가들이 공통적으로 겪을 법한 궁상이고 궁핍일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나는 자동차 부품회사에 입사했다. 그리고 3년간 옷도 거의 사 입지 않고 술 담배나 유흥비도 일절 돈을 쓰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박봉이었던 터라 재정적인 여유가 없어 매달 받는 월급의 대부분을 책을 사는 데 투자했기 때문이다."(80쪽) 

"입사 2년째에 결혼을 했으니 아마도 아내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아내는 주로 카레나 두부 등 재료비가 싼 음식 위주로 식단을 꾸려야 했고, 100원이라도 더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외식이라고는 결혼한 첫해 12월에 딱 한 번 집 근처의 횟집에서 식사한 것이 전부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책만큼은 악착같이 사서 읽었다. 생각해 보면,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81쪽) 

이 정도면 '나루케 마코토 만세!'다(그의 아내도 존경스럽다!). 하지만, 그럼에도 책에 별점을 인색하게 줄 수밖에 없는 건 문학작품을 '인생의 식량이 되지 않는 책'으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혹 문학작품에는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지혜가 담겨 있다고 거창하게 말하는 사람을 만나곤 한다. 그러나 사실 나는 대부분의 문학작품은 읽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명작만큼 '인생의 식량'이 되지 않는 것도 드물다."(165쪽)  

다치바나 다카시의 경우도 그렇지만, 이런 게 일본 독서가들의 '성공 노하우'인 것도 같다. 하지만, 이렇게 공개적으로 '일급 비밀'을 털어놓아도 된다는 것인지? 책의 서문만 읽고 덮어두었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나도 일단은 자동차 부품회사에 들어갔어야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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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 - 지식의 경계를 허무는 창조적 책읽기
    from 희망을 보고, 나는 쓰네 2010-01-07 18:26 
    얼마전에 서점에 나갔다가 이 책의 표지를 보고는 말도 안되는 소리하고 있구만하고 그냥 지나쳤다가, 라디오에서 책소개를 해주는것을 듣고 읽어본 책... 35살의 나이에 일본 마이크로소프트 사장에 오른 저자가 남들이 읽는 성공학, 자기개발 책이나 읽는것은 원숭이나 하는짓들이고, 독서를 통해서 진정한 성공을 하려면 다양한 책을 동시에 읽어서 뇌를 긴장시키며, 다양한 정보 습득을 통해서 통찰력과 창조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꽤 독설적인 내용을 담은 책입니다...
 
 
닉네임2 2009-10-18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읽고 문학작품을 읽는 것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나 회의에 빠졌어요. 단지 시간때우기나 엔터테인먼트인가. 하지만 영국에서 공부할때 도서관에서 우연히 본 과학잡지에서 문학작품이 단지 엔터테인먼트 이외에도 정말 '실용적'인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를 읽은 적이 있지요.
아래 제 블로그에다 그 글을 번역해 올려놓기도 했는데요.
http://blog.naver.com/jaeyuna/70032937732

소설은 사회의 시뮬레이션이며 소설을 읽음으로써 사회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인데요. 꼭 그렇지 않더라도 여튼 문학이 없는 세상은 글쎄요. 로쟈님 서평의 앞부분에 상당히 동감하면서 마코토 라는 사람도 참 멋있겠구나 생각하다가 마지막 부분에 명작이 '인생의 식량'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보니...별로 매력없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로쟈 2009-10-18 15:16   좋아요 0 | URL
네, 예술의 진화적 효용에 대한 주장도 그래서 나오고요. 하지만, 실용적이지 않은 일도 필요하지요. 사실 '삶' 자체가 그다지 실용적이지도 않구요...

나호명서핑 2009-10-18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의 초병렬독서법에 대해 동의합니다. 저는 지난 5개월여간(저공비행시작) 처음으로 5권이상의 책들을 펼쳐 놓고 읽었지만 조금 산만했습니다. 로쟈님의 경우는 재미와 직업적(전공적)인 속성이 함께 있지만 저의 경우는 비전공적인 호기심이 전부로 조금은 부담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구매량과 독서량은 비례한다는 체험을 하게되어 기뻤습니다.

한편으로 집중력이 떨어지는 부분이었습니다. 기초지식이 없는 분야(철학, 정신분석학, 심리학, 정치학 등)의 책은 가독력이 떨어졌습니다. 인문사회학분야에 대한 비전공자인 저로서는 장애요인이었습니다. 초병렬독서법이 현실적인 응용력은 뛰어날지 모르지만 저에게 독서의 깊은 맛을 느끼기에 무리였습니다.

저에게 기축(허브) 장르(소설)가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따라서 나라별 역사소설, 참여소설 등으로 선택을 병용함으로서 장기적인 독서력을 키워보려 합니다. 이 계획은 저비용 노후설계중에 하나입니다.

또 하나 우려스러웠던 것은 저자 및 저서에 대한 어떤 계층이 형성되어 있음에 조금은 놀라웠습니다. 마치 문화 우월주의 같은 것입니다. 선택은 자유지만 알 수 없는 장벽이랄까, 책 만큼은 순수하다는 기존의 제 관념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물론 인문학적 텍스트의 우월성은 인정하지만 혹시 편향적이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문학 전공자와 자연과학 전공자간의 소통이 생각보다 어렵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고로 타분야 대한 광범위한 기초지식이(교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했습니다.제 생각으로 대학에 인문사회교양필수를 전학년에 포함시켰으면 좋겠습니다

로쟈 2009-10-18 15:15   좋아요 0 | URL
어느 분야건 책에는 난이도가 있기 때문에, 소화할 수 있는 정도를 잘 가늠하는 것도 필요하겠습니다. 남들 따라 읽는 게 아니라 자신을 위해 읽는 거니까요...

mcjhu 2009-10-18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책을 찾아봐야겠지만,
다치바나 다카시의 경우 20대부터는 전문성을 키워야하니,
20대 이전에 문학작품을 읽어놓으라,
뭐 대충 이런 뉘앙스로 기억합니다만...
(정확한 건 집에 가서 책을 찾아봐야겠습니다.)
이 책, 아직 직접 읽어보지 않아서 단정할 수 없지만,
저자도 그런 생각이 어느 정도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무엇보다도 꼭 사봐야겠다는 생각이드는게,
저자와 저자 아내의 이야기가 많은 공감이 되는군요.
사서 지난 달 둘째를 낳은 아내에게 먼저 읽게 해야겠습니다.
자식이냐, 책이냐.
숨막히는 갈등 속에 뻔한 대답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요^^

로쟈 2009-10-18 15:14   좋아요 0 | URL
제, 그런 '입막음' 효과가 있을 듯해요. '책이나 읽고 있다'는 소리도 덜 들을 수 있겠고...

도다리맨 2009-10-18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엔 저 초병렬독서법을 강령으로서 받아들이지 말고 좀 느슨하게 습관화시키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전 제가 관심 있고 오랫동안 보관해서 읽어야 될 것 같은 책, 또는 어려워서 책 옆에 낙서를 하면서 읽지 않으면 이해가 안 될 책들은 마음잡고 공부를 하듯이 읽습니다. 주로 사서 읽는 책들.

그리고 좀 읽기에 수월한 책이면서 흥미도 있는 책(저기 위에 기타노 다케시 같은 책 또는 희곡이나 단편, 내가 익숙한 사상가들의 입문서류, 평전류)은 침대에 누워서 자기 전에 두어시간 정도 읽습니다.(물론 노트는 옆에 놔두고) 전 하품이 계속 되고 입면기환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일부러 잠을 자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하더라도 일부러 '잠자야지'하고 자는 건 뭔가 지는 느낌도 들고;; 억지로 잠도 잘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책들은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좋은 책 하나만 읽어도 다른 책들과의 연관관계가 생기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이 떠오르는데, 10권까지는 아니더라도 3~5권 정도 동시에 읽으면 더욱더 남는 독서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의 포인트는 메인으로 읽는 책 말고 다른 책들은 난이도도 좀 낮은걸로 고르고 부담없이 읽는 것입니다. 책들을 빨리 읽어야지라는 생각만 없다면 병렬독서법도 굉장히 실효성 있는 방식 같습니다.

로쟈 2009-10-18 19:07   좋아요 0 | URL
네, 대개 이런저런 사정상 병렬독서법은 하게 되지요. 저자는 '초병렬독서법'을 적극적으로 권장한다는 게 좀 다르지만. 사실 소설을 그런 식으로 읽는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의 소설을 '구성'하게 되는 것이기도 한데요...

비로그인 2009-10-18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작품은 인생의 식량이 되지 않는다" 맞는 말 같은데요... 적어도 틀린말은 아니잖습니까? 문학에서 가르쳐준다는 삶의 지혜라는 거라 해본들.. 얼마든지 요약해서 나타낼 수 있잖습니까? 그렇다면 굳이 쓸데없는 주인공들의 사생활을 시간낭비해가며 열심히 읽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즉, 인생은 약육강식이고 오로지 먹이사슬의 상위에 위치하는 것만이 삶의 목적이라 생각하는 인간 부류들한테는 문학작품이 무의미한게 당연하다 봅니다. 마치, 섹스라는 건 어디까지나 후손을 낳기 위한 수단이라 생각하는 특정 종교인한테는 오로지 쾌락만을 위한 섹스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거 처럼요.

제 결론은, 나루케 같은 사람의 발언이 틀렸다고 생각치는 않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그리고 분명 나루케 자신도 느낄, 특정 즐거움에 대한 감각(소설읽기의 즐거움 등)을 굳이 부정해가며 실용성을 무슨 신앙처럼 애써 부여잡고 있는 불쌍한 인간으로 밖에는 안보이네요.

뭐, 사실 불쌍하다고 말할 주제는, 제 입장이, 아니니까... 그래도 한마디는 하고 싶은데... 인생 뭐 급하게 살 필요 있나요? 그래봐야 당신도 결국은 죽어...요.

p.s 참고로, 저런 사람한테 인류 최고의 지적 성과물들을 낸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다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호기심에서(그 자체의 즐거움을 위해서) 연구를 했다는 걸 말해가며 설득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로쟈 2009-10-18 19:13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이 <마시멜로>나 <시크릿>의 독자들에겐 어필할 수 있고, 그건 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 대신에 저자는 역사서를 탐독하니까 '불상한 인간'까지는 아니구요. 취향이 다른 것이죠. 아니면 저도 '골프의 즐거움'을 모르는 불쌍한 인간에 불과하구요...

비로그인 2009-10-18 20:19   좋아요 0 | URL
문학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란 뜻에서 남긴 댓글은 아니구요. 제가 느끼기에는, 저만의 오해인지는 모르겠으나, 문학을 좀 우습게 여긴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즉, 골프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골프를 멸시한다는 느낌이랄까요... 너무 강한, 신념보다는, 맹신 같은게 느껴져서... 성공가도 위주로 달린 사람들의 특징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쨌든 저역시 선생님과 (아마도) 같은 의미에서 가치있는 책이라 생각은 듭니다.

로쟈 2009-10-18 20:28   좋아요 0 | URL
'전략적인' 가치죠.^^ 그래도 저자는 모험소설들은 좋아하는 듯해서 몇 권을 추천해놓고 있기도 합니다...

픽션들 2009-12-27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의 댓글들, 읽으면 참 재밌어요. 아주 재밌는 컬트소설을 읽는 것처럼요.
<나의 한국어 바로쓰기 노트>(남영신,까치)에 준?하여, 문장과 단어선택도 아주 탁월하고
읽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적확한 표현이 무릎을 탁 치게 하거든요.
가끔, 로쟈님의 댓글의 핵심에 대해 살짝 저공비행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에 대한 답글을 보면 로쟈님은 성격이 좋으신 건가요? ㅎㅎㅎ

저는 로쟈님의 저공비행 덕분에 안정비행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덕분에 위의 책은 제목만 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내내 건강하세요.

로쟈 2009-12-27 09:20   좋아요 0 | URL
댓글 독자도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페크(pek0501) 2010-01-11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작품이 읽을 가치가 없다는 건 작가의 무지인 것 같습니다. 책을 낸 작가라고 해서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겠지요. 어떤 사회생활을 하든지 인간관계가 생기는데 이 인간관계에 있어서 제일의 지혜란 상대방을 얼마나 아느냐 하는 것, 아닐까요.‘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문학을 모르고 산다면 지바고가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라라를 사랑하는 그 심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며, 불륜을 저지른 안나 카레니나를 어떻게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겠습니까. <닥터 지바고>와 <안나 카레니나>뿐만 아니라 모든 소설은 인간에 대한 탐구이며 그래서 인간학입니다.

전쟁이 왜 일어나고 그 결과는 얼마나 참혹한지도 문학을 통해 더 잘 알 수 있지요. 아마 문학을 모른다면 우리는 세상의 현상만 보고 그 본질은 알 수 없을 겁니다.

인간세상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지혜를 얻게 되는데, 모든 걸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문학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간접경험하게 만듦으로써 지혜를 얻게 합니다.

전 비즈니스맨들에게도 필요한 건 소설읽기라고 생각합니다.

로쟈 2010-01-19 09:55   좋아요 0 | URL
비즈니스맨들이 소설을 읽으면 비즈니스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페크(pek0501) 2010-01-11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를 읽고 갑니다.

hereisnt 2010-01-18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처음 이 블로그에 들어왔습니다. 처음으로 읽는 글이 이 글이구요. 음 이런 책은 별로 안좋아해서 "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 같은 모랄까 독서방법론이랄까요
책은 각자 개성대로 읽으면 되는데 딱 부러지는 어조로 이렇게 해라 이러면 왠지 정형화된 인간을 만들려는 의도가 있는지 의심하게 되서요 ㅎㅎ 각자의 개성을 창조적이게, 풍부하게 만드는게 책 읽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책, 열권을 동시에 읽어라"는 로쟈님의 리뷰로 읽은셈 치고, 저 역시 "시크릿"이나 "마시멜로우"같은 책은 읽을 생각이 없었는데 로쟈님의 글을 읽으니 마음이 한층 더 가벼워 지는 군요

문학작품의 가치는....글쎄요 이 작가가 감수성이 발달할 시기에 다른 것이 먼저 발달해 버린 사람인거 같습니다. 모 약력을 보니 이성적 면이 특수하게 발달한 사람인거 같기도 하고. 문학작품이 가치가 없다는 식의 말은...글쎄요...잘못됬다기 보다는(모 그거 안읽어도 죽진 않잖아요 ㅎㅎ) 안됬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이 작가도 나이들면서 언젠가는 문학작품의 가치를 알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항상 우리는 진리를 알기엔, 남에게 무언가 확언을 해주기엔 "너무" 젊은 법이니까요

제 개인적 경험으로는, 고등학교때 세계고전문학을 많이 읽었었는데(모 많이는 아닌거 같기도 하고 ㅎㅎ), 대학교부터 한 10년간은 그 덕에 버티고 살았던 거 같아요. 운전면허 문제집같이 정답을 딱히 주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런 생각이 드네요

이런 알찬 블로그를 이제야 알게 되다니...앞으로 종종 놀러오겠습니다...좋은 하루 되세요

로쟈 2010-01-19 09:55   좋아요 0 | URL
네, 감사. 가끔 들르시면 됩니다.^^;

쿠키별 2010-03-23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전 한나절 즐겁게 놀다갑니다. 저도 로쟈님의 댓글을 꼭 읽는 편이죠. 로쟈님의 강의에 언젠가는 꼭 또 참석하게 되기를 기대하며...

감성만족 2011-01-28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열권을 동시에 읽는 것은 별 특별한 노하우는 아닌 것 같네요. 책 욕심이 많다보면 자연스럽게 이것 저것 읽다보면 10권 정도는 항상 ~ing 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영역도 과학, 미술, 경영, 경제, 문화심리, 문학, 역사, 인문 등 8가지 분야는 되는 것 같네요.. 그런데 저는 1년에 200권의 책을 읽으면 그중에 100권은 문학 서적인데 그래서 중산층 이하의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건가 봅니다.^^ 시간 될 때 이사람 책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중산층 이하의 삶을 벗어날 수 있는 무슨 비밀을 알려 줄지도 모르니까요...^^

로쟈님 블로그 알게되서 기쁩니다. 처음 느낌대로 역시 인문학 관련 강의를 하시는 군요 ^^

Alice 2011-04-10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덕분에 책 한 권 잘 읽었습니다. 독서법에 대한 책은 잘 읽지 않는 편이지만 이렇게 잘 쓰여진 서평을 보니 한 권을 후딱 해치운 듯한 뿌듯함이 느껴지네요. ^^

yamoo 2011-07-29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이 가는 곳에는 가지 않고, 남이 먹는 것은 먹지 않으며, 남이 읽는 책은 읽지 말아야 한다. 그것을 철저히, 꾸준히 실천하면 된다.

흠 저와 비슷하게 사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엄청난 성공을 했네요..전 완전 빌빌 거리는데..ㅎㅎ 제가 사는 신조 중 하나가 남들과 다른 인생을 사는 거라... 저자가 하라는대로 꾸준히 하면 뭘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해보고 싶은 동기 부여는 되네요^^

"사실 나는 대부분의 문학작품은 읽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명작만큼 '인생의 식량'이 되지 않는 것도 드물다."는 저자의 말에 한 70%쯤은 동감합니다~ㅎㅎ

흠...저도 10권씩 조합해서 읽어 나가야 겠네요..ㅎ
레옹 뒤기의 <일반 공법학 강의> + 신채호 <조선상고사> + 스티븐 제이굴드 <풀하우스> + 사이먼 싱 <암호의 과학> + 데이비드 흄 <오성에 관하여> + 요셉 슘페터 <경제발전의 이론> + 르 코르뷔지에 <프레시옹> + 아도르노 <미학과 문화> + 서우석 <음악과 현상> + 칸딘스키 <점 선 면>

거울속정원 2013-07-26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 인터뷰를 보다 리뷰가 읽고 싶어서 들어왔습니다.
로쟈님의 글 뿐 아니라, 댓글 다신 분들도 독서를 즐기는 분들이 많으시네요. 저는 이렇게 훌륭한 독서를 죽어도 못하기 때문에 약간 의기소침 해 졌지만.

그런데 이 책,
책에 관해 말하는 것처럼 포장했지만, 실제로 저자가 하고픈 말은 성공에 관한 이야기로군요.




 
정열의 수난 - 장정일 문학의 변주
문광훈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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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지 칼럼 등에서 자주 접하던 문광훈 교수의 책을 처음 읽었다. 하지만 보론까지 포함하여 본문 365쪽의 책을 한 시간만에 읽었으니까 그냥 넘겨본 수준이다. 이유가 없지는 않다. 읽으려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지만 읽을 만한 구석이 별로 없고 또 잘 읽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저자와는 코드가 전혀 맞지 않는 듯한데, 서점에서 거의 살 뻔했으나(재고도서에는 있었지만 매장에는 없었다) 구하지 못하고 도서관에서 대출해 읽은 게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진다.    



일단 '장정일 문학의 변주'란 부제를 달고 있어서 나는 의당 '작가론' 정도의 책인 줄 알았지만 <정열의 수난>은 내가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른 책이다(물론 '역사-서사-권력-문화의 관계'도 속표지에는 부제로 돼 있다). 장정일을 다루고는 있으나 주로 <중국에서 온 편지>란 중편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에(이 작품은 나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온전한 작가론은 아니며, 그렇다고 작품에 대한 분석과 해석을 제시하고 있는 '작품론'도 아니다. 아니 애초에 그러한 것은 책의 관심사가 아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이 글은 작품에 대한 단순한 해설이나 해석을 의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소설 언어를, 그 언어의 권력 성찰적 본성을 우리 사회의 이념적-문화적 갈등의 문제 지평에 놓고, 그것이 가치의 개방과 삶의 해방이라는 관점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때 감각과 사고의 갱신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23쪽)는 게 의도이기에(하지만 나는 저자의 문제의식 자체가 너무 추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왜 장정일인가? 저자가 묻고 답하는 바에 따르면, 일단은 "기질적으로 유사하게 느껴져서"라고 한다. 그리고 그걸 보충해서 "내가 그를 읽는 가장 중대한 이유는 그의 글이 내가 말하고 싶은 바를 내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데에 가장 유쾌한 성찰 재료가 되기 때문이지 싶다."(13-4쪽)라고 적는다. 거기에 정답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책은 '문광훈이 말하고 싶은 바'를 늘어놓을 따름이지 장정일에 대해서는 별로 얘기해주는 바가 없다(그냥 저자의 '지리한' 예술론만 나열된다). 나로선 '중국'에서 온 편지만큼이나 해독하기 난해하다.

이제나저제나 하고 책장을 넘겼지만 정작 <중국에서 온 편지>가 다루어지기 시작하는 것은 전체 8장 중 5장(148쪽)에 가서이다(책의 절반이 서론이다!) 아무리 '에세이'라고 쳐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게 저자의 스타일인 것인지? 그냥 이 작품에 대해서라면 <독서일기7>(랜덤하우스, 2007)에서 장정일 자신이 말해놓은 게 훨씬 짧고 유익하다(그는 이 소설을 <일월>이란 희곡으로도 각색했는데 그에 대한 소개글이다).  

그렇게 좀 허무하게 본론이 다 끝나면 '한국 사회에서 장정일 읽기'라는 보론이 나오는데, 이 또한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나는 '장정일이 어떻게 읽혔는가, 내지는 어떻게 읽히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춘 글을 기대했지만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 장정일을 읽는다는 것'에 주안점을 둔 듯하다. 그의 결론은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민주적 사회질서는 위로부터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강제가 아니라 스스로, 위로부터가 아니라 내부로부터, 엘리트 중심의 협소한 정치 행위가 아니라 시민 중심의 광범한 참여로부터, 불신과 배제의 원리가 아니라 인정과 포용의 원리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347쪽) 너무 지당하신 말씀이라 종이가 아깝게 여겨진다.

저자의 예술론: "예술은 논리와 개념으로 삶이 비틀어지기 전의 정치 이전적 세계 - 원형적이고 근원적 진리가 비유적으로 현현하는 장소이다." 그리고 이러한 예술작품에 대한 감상, 곧 심미적 경험이 '민주주의를 내실화'하는 데 기여한다고 한다. 왜인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지지하는 평등,자유, 박애, 인권, 생명, 평화와 같은 보편 가치들이 나날의 생활 안으로, 개개인의 습관과 사고, 행동과 양식 안으로 육화되어야 한다. 작가는 바로 이런 일에 자신의 표현을 통해 참여하는 대표적 존재이다."(353쪽) 요컨대, 사회주의 예술론의 민주주의 버전 같다. "문학예술은 민주적 가치를 생활에서 육화하기 위한 상상력의 의미화이다."란 단정적인 규정은, 하지만 민주적인 규정인 것인지?



아무튼 내가 요약할 수 있는 저자의 입장은 이런 정도이다: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들지 못한다면, 그리하여 예술의 힘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어떻게 글을 쓸 것이고, 이렇게 쓰인 글을 어떤 믿음으로 읽을 것이며, 또 이렇게 읽은것이 어떻게 나날의 자양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예술-아름다움-반성과 자유-평등의 세계공화국, 이 둘 사이의 거리는 그다지 멀어 보이지 않는다.(...) 장정일의 소설 <중국에서 온 편지>가 보여주는 문제의식도, 그 문화적-문화적 의미도 이 점에 닿아 있지 않나 여겨진다."(356쪽) 이런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 350쪽이 넘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건 말 그대로 '수난'이지 않나 여겨진다.

저자로서의 변명 내지는 자긍심: "글을 쓰는 것이 간단하지 않지만, 나는 글을 쓰지 않을 때보다 쓸 때 더한 행복을 느낀다."(103쪽) 그의 '행복'을 탓하거나 말리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게 쓸 경우에라도 '구체적으로' 쓰는 게 좋지 않을까? 2장의 제목을 ''욕됨을 견디다': 나, 문광훈의 경우'라고 달아놓았지만 저자는 자신이 두세 해 전부터 '나이 마흔이 무엇인가'란 문제에 골몰해왔다는 것 말고는 그 자신의 실존에 대해서, 그리고 '욕됨'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종암결찰서의 전경들' 정도가 유일하게 구체적인 '지표'이다). 근래 드물게 읽은 기이한 책이고 저자이다. 아무래도 '마흔'이 문제였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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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들 2009-07-21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마흔이 문제였던 듯하다....
개인적으로 매력을 느낀 책이 번역되지 않아 기다리다 지쳐서
오역을 강행하는 결례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장자 & 노자 : 道에 딴지걸기 지식인마을 6
강신주 지음 / 김영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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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노자도 어쩔 수 없이 전국시대(BC 403-221)를 살다간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 떠올려야 한다. 전국시대에는 춘추시대(BC 770-403)보다 갈등과 대립이 더 심했다. 어떤 제후도 천하 통일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이 언제까지 국가를 통치할지 장담하지 못하던 시대였다. 이때 노자가 혜성같이 나타나서 국가를 오랫동안 통치하는 방법과 천하를 통일하는 방법을 제안했던 것이다.-92쪽

국가는 기본적으로 통치자(군주)와 피통치차(민중)로 나뉘는 위계적 체계다. 국가가 원활하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에 일종의 교환관계가 성립되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국가라는 체계를 지탱하는 이 교환관계의 고유한 특성이다. '교환'은 기본적으로 A에게 B로 무엇인가 전달되면 B에서 A로도 무엇인가 전달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원활히 기능하려면 통치자가 피통치자에게 무엇을 받았을 때, 통치자도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주어야만 한다. -94쪽

국가 체계를 유지하는 교환의 논리를 어긴 사람은 통치자의 자리에 있을 수 없다. 그런 사람은 통치자라기보다는 오히려 도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람은 오직 수탈만을 일삼지 그것을 재분배하려고 하지 않는다. 노자는 통치자인 군주가 반드시 걸어야 하는 길인 재분배의 도를 외면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97쪽

노자철학은 분명 영원한 진리의 철학이다. 그렇지만 그가 영원하다고 본 것은 '국가'와 '천하'라는 정치구조에 관한 것이었다. 결코 정치구조를 넘어서는 이상적이고 관념적인 세계가 아니었다.(...) 그의 철학은 국가의 형식적 작동원리를 규명하고 정당화함으로써 어떻게 하면 '군주'가 이 원리에 따라 '올바른' 통치자가 될 수 있을지에 집중되어 있다. 결국 노자는 '국가'의 존재 이유에 근본적으로 반성하지 못한 사상가였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 철학자라고 말할 수 있다. -104-105쪽

사회민주주의에서와 마찬가지로 노자철학도 기본적으로 현존하는 체제를 극복하는 전략일 수 없다. 다만 현존하는 체제를 안정적으로 작동하도록 만들어 영속화하려는 고도의 전략일 뿐이다.(...) 노자철학이 기본적으로 남음이 있는 사람에게서 출발한다는 사실과 남음의 혜택을 받을 부족한 사람이 다수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라 다시 말해 노자철학의 재분배는 '남음'과 '부족'이라는 위계성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논의될 수 있다. -109-110쪽

노자에게 진정한 통치자는 '남는 것이 있는데도 자연의 법칙을 본받아 그것을 부족한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전쟁의 와중에 휘말려 있는 국가를 통일할 진정한 큰 국가는, '작은 국가의 아래에 있게 되면 작은 국가를 취할 수 있는' 국가다. 작은 국가의 아래에 있다는 것은 작은 국가를 수탈하기에 앞서 작은 국가를 보호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마키아벨리가 말한 사랑의 방식을 적용한다는 말이다.-125쪽

노자의 '소국과민'이라는 정치이념에는 통치자의 강력한 지배의지가 함축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노자가 통치자에게 권한 정책의 결과는 물론 겉으로 보면 평안하고 질박하기까지 한 시골 마을의 풍경이다. 사람들은 바로 이것에 현혹되어 노자의 정치이념이 목가적 공동체, 원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라고 오해했다. 그러나 평안하고 질박한 풍경 뒤에는 통치자의 강력한 통치권 행사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피통치자의 자유로운 이동을 막고 문자를 통한 반성적 사유와 이론적 대화능력을 근본적으로 없애려는 정책이 어떻게 문명에 저항하는 '작은 정부'나 '유토피아적 원시공동체'와 들어맞을 수 있을까?-130쪽

노자는 대가를 바라는 뇌물(수탈)을 마치 선물인 것처럼 포장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오직 이럴 때에만 피통치자는 통치자에게 알아서 자발적으로 복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통치자는 통치자에게 자신이 알아서 복종한 것이라고 말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무위자연'이라는 노자의 유명한 주장의 실제 의미다. 통치자는 '수탈이나 억압이 아니라는 직접적인 통치 행위', 즉 유위의 정치가 아니라 '재분배나 자애로움이라는 간접적인 통치 행위', 즉 무위의 정치를 수행해야 한다. 오직 이런 무위의 정치만이 피통치자가 통치자에게 '알아서 스스로(自然)' 복종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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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7-24 0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밌죠? :) 쉬우면서 깊이도 있고 재미도 있고. 참 괜찮았던 책입니다. 저자의 생김새와는 달리;;;

가넷 2007-07-24 09:28   좋아요 0 | URL
하하;;; 저자분이 살짝 산적같기는 하지만 ...-_-;;

로쟈 2007-07-24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파격적인 노장론이라고 생각하는데('노장철학은 없다'는 것이니까요!) 학계에서도 '이단'으로 내몰린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영업비밀을 그렇게 다 누설해놓아서)...

마늘빵 2007-07-25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이 분의 관련 책이 꽤 많은걸로 알고 있는데, 아직 다른건 못봤습니다. 관심 많이 가는 철학자입니다.

로쟈 2007-08-29 19:35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론 좀더 정치한 연구서가 나왔으면 하는 생각도 갖게 됩니다.

jsshin 2007-08-29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사에서 이분을 초대하여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강의를 듣고 파격적인 언사때문에 언짢아 하시는 분들도 있으셨지만, 무정부주의자다워서, 그리고 철학자다워서 반가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책도 한번 읽어보아야 겠네요.

로쟈 2007-08-29 19:35   좋아요 0 | URL
'파격적인 언사'의 수위가 궁금하네요.^^

심승보 2007-10-28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오래 전에 출간되었던 박이문 교수의 <노장사상>과 김형효 교수의 <노장사상의 해체적 독법>이 가장 유명하면서도 깊이있는 대표적 연구서가 아닐까 합니다. 또한 김용옥의 관련서 <노자철학 이것이다> <노자와 21세기> 등을 역시 빼놓을 순 없겠구요. 책세상 문고판으로 나온 김시천의 <철학에서 이야기로 - 우리시대의 노장 읽기>는 비교적 최근까지 이루어진 국내외 노장사상 연구사 검토에 유용한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로쟈 2007-10-28 10:34   좋아요 0 | URL
'노자 읽기'목록을 예전에 이미 작성해 놓았습니다. 심승보님의 읽기를 올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심승보 2007-10-28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확인해 보았습니다. 박이문 교수의 <노장사상>과 김형효 교수의 <노장사상의 해체적 독법>이 빠진 것이 다소 아쉽지만 유용히 참고하였습니다. 저도 내년부터 시간이 좀 나게 되면, 제 나름의 리스트들을 작성해 보겠습니다.

로쟈 2007-10-28 23:53   좋아요 0 | URL
두 책 모두 저도 읽어본 책들입니다. '노자 읽기' 목록이어서 '노장' 연구서는 배제한 기억이 있습니다. 강신주에 따르면 '노자 & 장자'가 아니라 '노자 vs 장자'의 구도이기도 하구요...
 
레오 스트라우스 - 부활하는 네오콘의 대부
박성래 지음 / 김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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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의 기본단위가 개인이라면 고대 그리스철학을 따르는 스트라우스 이론의 기본단위는 레짐이다. 그리고 스트라우스가 말하는 '정치'는 근대인들이 보통 생각하는 정치보다 훨씬 광범위하며 우리 생활의 곳곳에 스며 있는 '고대적인 정치'이다.(...) 레오 스트라우스는 문화적 상대주의를 지독히도 싫어한다. 스트라우스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여러 레짐들을 비교한 뒤 좋은 레짐과 형편없는 레짐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45-46쪽

스트라우스의 입장에서는 이런 근대성과 자유주의, 가치중립주의, 역사주의는 위장된 상대주의, 허무주의에 불과하다. 스트라우스는 근대 이성주의는 그래도 도덕이 유지될 거라는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나 도덕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스트라우스에 따르면, 고대의 현인들은 '도덕'에는 절대적 근거가 없으며 그것은 사람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리석은 대중들에게까지 발설하지 않는 신중함이 있었다는 것이다. 상대주의와 허무주의가 어리석은 대중들에게까지 확산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덕을 내팽개칠 것이고 서구문명에는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게 니체의 교의를 따르는 스트라우스의 걱정이다. -70쪽

스트라우스는 단호함의 적절한 대상으로 진리를 내세운다. 스트라우스는 '무엇에 대한 단호함인가?'라고 스스로 물은 후 '진리에 대한 단호함이다'라고 스스로 대답할 것이다. "진리가 없다는 것이 진리"라는 니체의 말을 인정하면서도 정치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혼란을 막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절대적인 진리'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75쪽

"인간의 최고 활동인 철학 혹은 과학은 '만물'에 대한 의견을 '만물'에 대한 지식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다. 그런데 의견은 사회의 구성요소다. 그러므로 철학 혹은 과학은 사회가 숨쉬고 있는 기초를 해체하려는 시도다. 따라서 그것들은 사회를 위태롭게 만든다.(...) 철학 혹은 과학과 사회의 관계와 관련하여 이러한 견해를 견지하는 철학자나 과학자들은 사회의 바탕을 이루는 의견들에 대해서 다수가 갖고 있는 무조건적인 신뢰를 위태롭게 만들지 않고도 소수에게는 자신들이 진리라고 간주하는 것을 밝힐 수 있게 하는 특이한 글쓰기 방식을 채택하도록 강요받는다. 그들은 밀교적(esoteric) 가르침으로서의 진정한 가르침과 공개적(exoteric) 가르침으로서의 사회적으로 유용한 가르침을 구분하게 된다." -86-87쪽

스트라우스에 따르면 플라톤이 넌지시 혹은 우물쭈물 말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플라톤의 진짜 가르침일 가능성이 높다. '플라톤이 여기서 무엇을 말했나'보다 '플라톤이 여기서 무엇을 말하지 않았느냐'에 더 주목해서 살펴봐야 진짜 가르침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플라톤이 여기서 이 말을 했다가 저기서는 저 말을 한다면 둘 중에 하나는 진짜 가르침이고 다른 하나는 가짜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97쪽

스트라우스가 정치철학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 계기[는] 서구와 근대성의 위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정치철학의 역사를 연구했다.(...) 스트라우스는 마키아벨리가 고대 정치철학의 전통을 파괴하고 정치와 도덕을 분리시킨 근대 정치철학의 시조라고 본다. 그에게 마키아벨리는 도덕적 혼란이라는 근대성의 위기, 서구문명의 위기를 불러온 장본인이다. -108-112쪽

스트라우스는 판단을 내리기를, 인간본성과 인간사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관찰은 올바르다는 것이다. 이것은 스트라우스 자신도 마키아벨리에 동의한다는 말이다. 다만 플라톤처럼 몰래 속삭이면서 말해야지 마키아벨리처럼 그렇게 큰소리로 떠들어대면 곤란하다는 얘기다. 결국 스트라우스가 마키아벨리를 비난하는 진짜 이유는 마키아벨리가 너무 사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순진하기 때문이다. -114-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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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avinsky 2007-07-22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저 책이 나왔을 때 서점에서 잠시 읽어본 적이 있는데 니체 철학이 저런 정치철학을 나았다는 것에 뒤통수를 얻어 맞았다는...

로쟈 2007-07-22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시즘으로 전용되는 것과 비교하면 약소한 듯한데요. 책은 약간 선정적이지만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는 저자가 자신한 대로 적절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스트라우스 정치철학에 다들 입문해야 하는 건 아닐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