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10년 전에 올린 글이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의 패러디 시인데, 시 자체는 그보다 훨씬 전에, 그러니까 20년도 더 전에 썼을 것이다. 가을밤이라는 건 이제나저제나 다를 게 없어서 다시 소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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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환절기를 속이지 못한다
이디야 커피에 앉아 내내 코를 푼다
환절기와 사귀는 게 아니었다
커피는 이미 식었다
여행용 티슈는 주머니에 넣었다
거짓말처럼 콧물이 멎었다
다른 계절로 가는 차편을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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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9-10-10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낭만적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영화같은 ~
산문같은~

로쟈 2019-10-13 00:10   좋아요 0 | URL
각자의.~

손글 2019-10-10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감기 얼른 낫기를 바랍니다.

로쟈 2019-10-13 00:10   좋아요 0 | URL
코감기는 아니고 일시적인 알레르기에요.~
 

고객대기실에선 누구나 고객이 된다
분주한 하루도 일없다는 표정으로
나란히 벤치에 앉는다
고독이 벤치에 앉았다고 적으려다
한갓 고객임을 깨닫는다
무엇도 고객의 무표정을 지우지 못한다
대기실의 기계음을 잠시
우주에서 들려오는 소음으로 듣는 시간
소음이 신호로 바뀌는 걸 기적이라 부른던가
대기실의 기계음은 언제 목소리가 되는가
고객대기실에선 많은 걸 바랄 수 없다
기차는 도착할 것이고 고독은 남겨질 것이다
고독은 고독의 소음으로 오래 뒤척일 것이다
고객대기실에선 누구나 고객으로 방치된다
고객이 사랑받는 방식이다
고객대기실을 떠나야 한다
고객대기실을 나선다
고객의 유령이 벤치에 남는다
기차는 도착할 것이고 사랑은 잊혀질 것이다
고객대기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다
이제 아무도 대기하지 않는다
이제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기차가 도착했고 고객대기실을 떠났다
우주의 소음 속으로 곧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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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맘 2019-10-11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차를 기디리며 플랫폼에 앉았을때의 그 느낌이 고독이었군요ㅎ
플랫폼 벤치의 그 묘한 감정,
그 벤치에 저의 유령도 떠돌고 있겠군요 ㅎ 다시 그곳에 가는날
주변을 살펴봐야겠어요ㅎㅎ

로쟈 2019-10-13 00:13   좋아요 0 | URL
^^
 

조이스가 더블린을 떠날 때
노라와 야반도주를 했던가
새벽녘 호텔을 빠져나와 
리피 강도 숨죽인 
더블린의 야경을 옆구리에 끼고
더블린을 떠난다
지금이라면 조이스도 비행기를 탔을 테지
어둠에 잠긴 더블린 항은 깨울 필요가 없을 테지
톨게이트를 지나며 버스가 속도를 낸다
더블린을 떠나며 조이스는
다시 올 생각을 하지 않았던가
노라와 함께 떠나며 
조이스는 아버지를 떠나고
조이스는 아일랜드를 떠난다
조이스는 낯선 땅에서
조이스는 아버지가 되고
조이스는 더블린 사람들을 완성하겠지
더블린 사람들을 트렁크에 넣고
더블린을 떠난다
더블린 사람들을 읽고서
조이스를 만나러 더블린에 왔었지
다시 조이스와 함께 더블린을 떠난다
더블린은 떠나기 위해 찾는 도시
더블린은 떠날 수밖에 없는 도시
수레를 미는 몰리 말론에게
작별인사를 하지 못했다
몰리의 수레 굳은 생선들에게도
너희는 마비된 생선들이지
조이스가 진저리치며 더블린을 떠날 때
새벽녘 바람이 차가웠던가
공항의 불빛이 마중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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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266 2019-09-28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의 부지런한 문학기행중계뉴스 잘 보고 있습니다~

로쟈 2019-10-01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예이츠를 읽는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암스테르담에 들른 적이 없을 테지만
예이츠의 더블린으로 가기 위해
나는 암스테르담으로 왔다
그리고 그의 묘비명을 읽는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여기에 묻혔다고 적는 대신에
예이츠는 말탄 자를 불러냈지
말탄 자여, 지나가라
삶과 죽음을 향해 무심한 시선을 던지고
거침없이 지나가라
나도 그렇게 암스테르담을 지나간다
암스테르담의 아침을 뒤로 하고
예이츠의 더블린을 향해 
날개 돋친 말을 탄 듯이 날아가리
이곳은 오래 머물 곳이 아니기에
삶과 죽음이란 오래 마음에 둘 것이 아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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