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플을 이용한 지도 3주는 된 듯싶은데, 아직도 사용법에 익숙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구석도 있다. '친구'와 '팔로워'도 그런 구석 가운데 하나다. 설정에 따르면 친구란 '공개글을 볼 수 있으며, 친구의 독서 활동을 북플에서 뉴스피드로 받아볼 수 있'는 관계를 말한다. 그리고 팔로워는 '나에게 친구 신청을 한 서재의 리스트'로서 '친구 추가 버튼을 클릭하면 친구'가 된다. 그런데 또 팔로잉은 '내가 친구 신청을 한 서재의 리스트이며, 상대방의 팔로워 리스트에 노출'된다. 뭐가 문제인가. 팔로잉에 '친구신청'이 또 있다는 게 문제다. 예전 '즐겨찾기'가 친구신청으로 전환되면서 벌어진 일 같은데, '친구신청'이란 말을 같이 쓰다 보니, 친구신청 상태가 팔로잉임에도 불구하고 한번 더 친구신청을 해야 하는 것.

 

해서 친구를 맺는 방식이 두 가지다(어젯밤에 알게 됐다!). 팔로워 리스트에서 '친구추가'를 하면 그냥 친구가 된다. 그런데 북플에서는 또 '누구누구가 친구가 되고 싶어합니다'란 알림이 뜬다. 이때 팔로워 리스트에 뜬 이름을 찾아 친구추가를 클릭하면 친구가 된다. 팔로워는 분명 '나에게 친구 신청을 한 서재'라고 되어 있지만, 팔로워가 추가될 때마다 알림이 뜨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알림이 뜨는 팔로워가 있고 뜨지 않는 팔로워가 있다. 분명 친구신청자를 팔로워라고 부르는데, 왜 어떤 경우에는 알림이 뜨고 어떤 경우에는 뜨지 않는가(또 친구신청자라고 알림이 뜨지만 팔로워 리스트에는 없어서 친구추가가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친구신청을 바로 취소한 경우인가?). 모르겠다. 하지만, 이게 임의적인 게 아니라면, 신청 방식에 차이가 있는 걸로 보인다.

 

나의 추정은 과거 즐찾 리스트 가운데 북플 이용자는 모두 팔로워로 처리되었고, 북플 이후 신규 친구신청자만 알림의 대상이 되는 듯싶다는 것. 팔로워에 두 종류가 있는 것인데, 이를 구팔로워와 신팔로워로 지칭하면 신팔로워는 친구신청을 함과 동시에 북플에 '친구가 되고 싶어합니다'란 알림이 뜬다. 그리고 구팔로워는 그런 알림이 뜨지 않는 대신에, 친구대기 상태라 팔로워 리스트에서 '친구추가'를 누르기만 하면 친구가 된다. 그리고 과거 즐찾에서 온 구팔로잉은 친구신청을 한번 더 클릭해서 '의사' 표시를 해야 이게 알림으로 전달된다. 

 

이게 나대로 추정 내지 상상한, 북플의 친구맺기 과정이다. 북플 안내에 다 나와 있는 내용인지 모르겠지만, 워낙에 매뉴얼 같은 걸 읽지 않는 편이라 경험으로 아는 수밖에 없다. 오해라고 해도 할 수 없고. 그래서 오늘 아침까지 878명의 친구와 500명의 팔로워를 갖게 됐다. 500명의 팔로워도 친구신청한 상태이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친구추가만 하면 친구가 된다(그러니까 '맞팔' 원칙에 따르면 팔로워는 조만간 제로가 될 것이다. 모두 친구가 돼서). 그래서, 한도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주에는 1500명의 친구를 갖게 되지 않을까 싶다. 어떤 결과가 빚어지는가? 1500명이 읽고싶다는 책, 읽고있다는 책, 읽었다는 책 목록이 주르륵 올라오는 것. 이른바 '소셜 리딩 시대'다(소셜 마케팅의 일부이겠지만, 나는 독서운동도 겸할 수 있겠다 싶어서 손을 보탠다).   

 

 

지난달 말 알라딘 북플 등  책전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일간지에 소개된 적이 있다. 기사의 제목이 '책 골라주고 함께 읽는 ‘소셜 리딩 시대’ 열린다'였다.

 

 기사의 0번째 이미지

“흥미로운 책이 한 권 눈에 띄어서 ‘이주의 발견’으로 적는다. 마크 바우어라인의 ‘가장 멍청한 세대’. 디지털은 어떻게 미래를 위태롭게 만드는가란 부제에서 내용을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다. 책과는 담을 쌓은 젊은 세대가 좀 읽어봤으면 한다.”

지난달 27일 인터넷 서평가로 유명한 로쟈가 책을 소개하는 글을 올리자, 곧장 수십 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페이스북 얘기가 아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지난달 24일 선보인 책전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북플’에서 일어난 일이다.

북플에서는 페이스북·트위터와 마찬가지로 다른 이용자를 폴로하거나 친구로 맺을 수 있다. ‘좋아요’외에도 자신이 읽은 책에 별점을 매기거나, ‘읽고싶어요’‘읽고있어요’‘읽었어요’버튼을 눌러 자신만의 독서 이력을 기록할 수 있는 점도 눈에 띈다.

SNS를 통해 책에 관한 글을 공유하고 함께 읽는 ‘소셜 리딩’의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 전국민이 스마트폰을 쓰는 시대가 되면서 ‘애서가’들을 위한 맞춤형 SNS 플랫폼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북플에 앞서 출시된 ‘썸리스트’‘책속의 한줄’등의 SNS도 사용자를 늘려가고 있다. 혼자 읽는 독서에서 벗어나 사람들과 함께 읽고 공유하는 적극적 독서 문화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

‘소셜 리딩’서비스의 성패는 사용자가 특색 있는 서평을 자발적으로 꾸준히 올리느냐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 북플은 특정 분야, 작가에 대한 책을 많이 읽으면 그 분야의 ‘마니아’에 등극할 수 있도록 했고, ‘책속의 한줄’은 추천자가 많은 인기 도서 순위를 노출하고 있다. 영화전문 SNS인 ‘왓챠’가 수백만 명의 사용자를 모으며 성공한 것도 이 같은 경쟁 시스템의 도입을 통해 가능했다. 다만 협소한 국내 독서 인구로 인해 이들 소셜 리딩 서비스가 사용자를 폭발적으로 늘리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소셜 리딩은 이미 미국 및 유럽에서는 아마존을 통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아마존은 지난해 3월 당시 사용자 1600만명에 북클럽이 3만개에 달하던 소셜 리딩 서비스 ‘굿리즈(Goodreads)’를 1억5000만달러에 인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매일경제)

지적대로 '‘소셜 리딩’서비스의 성패는 사용자가 특색 있는 서평을 자발적으로 꾸준히 올리느냐에 달려 있다." 북플의 성패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낙관은 어렵지만 비관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믿고 싶다...

 

14.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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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내과에 갔다가 대기 시간에 핸드폰으로 뉴스기사들을 읽었는데, 오늘의 '특종'은 한국일보 기사다. '농협, 이명박 상금 세탁' 충격적 내막'(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1401/h2014011107321521000.htm). 기사가 사라지기 전에 일부를 옮겨놓는다(추정만 하던 일의 실상이 밝혀진 데 의의가 있는데, 법의 심판까지 가려면 아직도 긴 여정을 남겨놓고 있다). 기사의 요지는 이렇다(기사가 어느새 사라졌다).

 

기사 이미지

농협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상금세탁'을 도운 정황이 드러났다. 농협은 이 전 대통령이 해외에서 수상한 상금의 수표가 채 입금도 되기 전 이를 매입해 이 전 대통령 계좌로 송금했다. 해외에서 받은 금품을 신고해야 하는 공직자법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분석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전산기록이 돌연 종적을 감첬다는 점이다. 금융기관은 전산 자료를 10년 동안 멸실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점에서 명백한 불법이다. 결국 대통령을 위해 편법과 불법을 동원한 셈이다. 윗선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게 농협 안팎의 공통된 견해다.

그리고 주요 기사내용.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1년 해외 원전수주 과정에서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정부로부터 '자이드 환경상' 상금 50만달러(한화 약 5억5,000만원)를 받았다. 녹색성장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신성장 동력을 육성해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후 아랍에미리트연합이 지불해야 할 186억원 중 절반 이상인 100억달러를 국내 수출입은행이 28년간 대출해주는 내용의 이면 계약이 드러났다. 일각에선 이 전 대통령이 상대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한 대가로 수상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당시 정부는 이 상금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이 환경 분야 등에 기부하거나 쓸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언론은 이를 그대로 지면에 옮겼다. 국민들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돈은 전액 이 전 대통령 개인 통장으로 입금됐다. 이런 사실이 드러난 건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2012년도 고위공직자 정기 재산변동 사항'을 공개하면서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의 재산은 2011년 54억9,659만원에서 2012년 57억9,966만원으로 증가했다. 특히 예금 증가분이 컸다. 예금이 1억2,022만원에서 6억5,341만원으로 5억원 이상 급증했다. 예금 급증 원인은 자이드 환경상 상금 수령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개인에게 주는 상이기 때문에 상금 역시 이 대통령 개인에게 지급된다고 허둥지둥 해명했다.

 

당시 '상금세탁'을 도운 게 바로 농협이다. <주간한국>이 입수한 내부문건에 따르면 농협 청와대지점은 2011년 3월23일 외화수표 추심전 매입승인을 요청했다. 매입 품목은 아랍에미리트 은행 'Emirates NBD'에서 발행한 50만달러 수표, 매입신청인은 이 전 대통령이었다. 이를 통해 농협 청와대지점은 아직 입금되지도 않은 수표를 매입하는 조건으로 이 전 대통령 계좌에 5억원 이상의 현금을 송금했다. 복수의 농협 내부직원들은 외화수표 추심 전 매입은 농협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 농협 내부문건 중 '2011년 승인신청 접수 총괄대장'을 보면 2011년 3월23일까지 접수된 외화수표매입건은 이 전 대통령의 50만달러가 유일하다. 공직자는 해외에서 일정 이상의 금품을 받을 경우 이를 신고해야 한다는 규정을 피하기 위한 행보로 분석된다. 문제는 이후 해당 전산기록이 자취를 감췄다는 점이다. 시기는 2011년 4월11일 전산사태를 전후해서다. 전산사태 당시에도 여신관리시스템은 정상작동했다. 그러나 돌연 시스템이 먹통이 된 뒤 이 전 대통령의 기록이 삭제됐다. 농협 여신관리부의 한 직원은 "이 전 대통령의 외화수표 추심전 매입 전산기록이 '청와대지점 여신관리시스템 장애 복구 중'이라는 메시지가 뜬 직후 삭제됐다"며 "이 기록만이 유일하게 사라졌다는 점에서 의도적인 삭제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금융거래법과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금융기관은 전산 자료를 10년 동안 멸실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전산기록에 문제가 있다면 취소 혹은 정정은 가능하다. 그래도 여전히 기록은 남는다. 기록 자체를 삭제에는 농협 내 IT인력이 동원돼야 한다는 전언이다. 따라서 농협 안팎에선 수표 매입과 전산기록 삭제가 '윗선'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한 일로 보고 있다. 특히 농협 내부에선 이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고위층 인사의 개입을 의심하는 시선이 많다. 한 농협 내부 직원은 "청와대의 청탁이 있었는지 농협의 자진 과잉충성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이 전 대통령 수표 추심 전 매입건에 대해 알고 있는 직원들 사이에선 최 고위층이 관련됐을 것이라는 말이 정설로 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지만, 이명박과 그의 무리가 벌인 일이 신화는커녕 '대국민사기극'이었다는 게 물증을 통해서 들춰진 데 의의가 있다. <이명박 리포트>를 넘어서 <이명박 백서>가 나오길 기대한다...

 

14. 01. 11.

 

P.S. 이명박과 농협이 벌인 일에 대해서는 이미 나꼼수의 '추정'이 있었다. '나는 꼼수다 11회' 농협사태의 비밀(http://www.youtube.com/watch?v=wPAHB_HFWFk)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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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책을 뒤적이다가 박가분의 <일베의 사상>(오월의봄, 2013)도 손에 들고 후기와 서문을 먼저 읽어보았다. '일베의 사상'이란 제목에서도 연상이 되지만, 실제로 마루먀마 마사오의 <일본의 사상>을 참조했다고. 거기에 일본의 사회평론가 아즈마 히로키의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도 이론적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저자의 작업은 비단 일베의 사상에 대한 분석으로서뿐 아니라 한국사회 징후 독법으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국가와 사회라는 거대한 존재에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요구하는 연약하고 재미없는 인간들을 철저하게 구축한 자립적인 세계를 만드는 것, 나아가 '세계를 동물화하라'는 정언명령이 바로 일베의 공격적인 유머코드의 배후에 있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16쪽)는 서문의 주장과 "나는 자살로도 생을 마감한 노무현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광주항쟁 때 희생당한 시민들에 대한 조롱을 거침없이 해왔던 일베 유저들이 성재기의 죽음을 계기로 별안간 연민의식에 빠져서 침울해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성재기의 죽음을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자기연민에 빠진 사람들도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것을 보면서 일베도 실제로는 생각만큼 그렇게 아방가르드한 집단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268쪽)는 후기 사이의 흥미로운 편차가 눈길을 끌어서 몇자 적으려다가 독후로 미루고(하지만 당장은 독서의 여유가 없다) 저자 인터뷰 기사를 찾았다. 경향신문의 기사가 요긴한 도움이 되기에 일부 발췌해놓는다(전문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1091545001&code=940100).

노알라, 홍어, 보슬아치, 좌빨좀비, 민주화 같은 일베의 혐오스러운 용어들이 한국 사회를 자극했다.

일베에는 지향점이 없다. 젊은이들의 혐오문화가 현실에서 좌절한 후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로 나타난 것이다. 삐뚤어진 인정 욕구라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일베 같은 집단에서 정치적인 프로그램이나 강령이 나올 리 없다. 이들의 목적은 인터넷에서 타인이 불쾌하도록 도발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이들은 현실에 나오면 우스워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인터넷 밖으로 나서지 않는다. 공론장에 대해서는 불신하고 있다. 현실의 맨얼굴을 드러내지 못하고 감추고 있는 것이 일베의 멘탈리티다. 일베 유저들이 정치적인 프로그램을 갖는다면 파시즘에 가깝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한가한 분석이 있을 수 없다.”

일베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나.

이들을 인터넷에서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베를 어떻게 한다? 이것이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일베를 사회적 징후로 보고 분석하려 했다. 일베는 사양길에 들어섰다. 하지만 일베가 사라지더라도 이들의 혐오 방식을 잇는 커뮤니티가 있을 것이다. 일베는 인터넷에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영웅심리가 표출된 것이다. 젊은이들이 현실에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공간들이 있어야 한다. 물론 젊은이들 자신의 책임도 있긴 있다. 일베 자체를 어떻게 한다기보다, 그런 공간이 많아지면 (혐오문화가) 자연스럽게 없어질 수 있다.”

책 제목이 <일베의 사상>이다. 일베에 굳이 사상이란 단어를 붙인 이유는.

쓰레기에도 사상이 있을 수 있다. <일베의 생각>으로 제목을 정하려고 했다. 그렇게 하면 심각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심각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일베의 사상>이라고 이름 붙였다. 일베를 지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일베를 큰 의미로 보는 것도 아니었다. 사상이라고 해서 무조건 존중받아야 한다거나 긍정되는 것은 아니다.”

책에서 일베와 촛불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했다. 게다가 일베는 촛불의 사상을 계승한다고 분석했다. 진보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양쪽이 극단이고, 극단은 통한다고 이야기한 게 아니다. 일베가 촛불의 정서에서 일탈해 나온 존재라는 이야기다. 촛불이 실패했기 때문에 일베가 나왔다고 본다. 진보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자아비판이다. 일베는 진보논객과는 다른 방식으로 조롱문화를 수용했다. 예전에 그런 문화에 발을 들였던 나 자신에 대한 비판이다. 진보좌파가 잘못했으니까 일베가 다 너희들 때문이야라고 하기보다, 과거에 뭘 했는지 어디에서 잘못했는지 되짚어본다는 의미다. 사람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그 시대를 돌이켜본다는 의미다.”

일베가 사양길에 들어섰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책이 출간된다는 이야기가 나온 후 일베로부터 소위 ‘민주화’라는 것을 당했다. 예전에 내 신상을 털거나 모욕을 주면 화가 났다. 지금은 전혀 화가 나지 않는다. 진부했다. 이제 일베식 도발이 신선함을 잃었다. 일베의 선정성이 익숙하게 된 것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도 영향을 미쳤다. 사건 초기 국정원의 입장을 옹호하다 최근 선거개입이 속속 사실로 드러나면서 조용해진 느낌이 있다.”

책의 부제는 '새로운 젊은 우파의 탄생'인데, 벌써 '사양길'로 접어들었다니 '탄생'이란 말이 무색하다. 곧 다른 방식으로 재등장하게 될까...

 

13.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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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마이뉴스에서 한국근현대사 연구자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과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위원장, 그리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안병욱 전 카톨릭대 교수와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일부를 발췌해놓는다(전문은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10369).

 

기사 관련 사진

-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의 미래는 어떨 것으로 보나.
"일반적으로 국민은 권력이 무지막지하게 내리누를 때 반발하지만 그것이 늘 역사를 반전시키는 힘이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민중 역량이) 바닥으로 떨어졌다가 성장할 때 내리누르면, 역사를 바꾸는 동력으로 승화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5공화국 당시 1980년 광주항쟁으로 많은 시민이 학살당했지만 전두환 정권이 1981년, 1982년 무리한 정책을 추진해도 정권은 유지됐다. 전두환 정권이 가장 취약했던 때는 집권 후기다. 그 숱한 과정을 겪은 사람들이 다시 일어섰을 때, 비로소 정권의 억압을 뚫고 일어나 6월 항쟁을 만들어냈다.

박근혜 정부와 국민의 관계를 당시와 비교하면, 내 감으로는 국민의 역량이 이제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시점이 아닌가 한다. 1987년 6월 항쟁 전의 분위기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정부는 결코 순탄하게 연착륙 하지 못할 것이다. 그 점을 박 대통령도 알고 있다. 자신이 유화책을 쓰고 양보하는 순간, 끊임없이 양보를 하게 된다는 사실을. 옛날 박정희에게 쓸 수 있는 반전의 카드가 있었다. 계엄령이나 긴급조치 같은.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에겐 반전의 카드가 없다. 한 번 밀리면 어디까지 밀릴지 모른다는 그 두려움 탓에 김기춘 등을 기용하는 강경 드라이브를 하는 거다. 


 

결국 귀결은 어느 한쪽이 무너지는 건데, 지금은 시민사회와 국민이 무너질 수 있는 시대가 아니지 않나. 결국 누가 무너지겠나. 1995~1997년의 김영삼 정권을 보면 노동관계법 밀어붙이다가 한 번 꺾이니까 1년 동안 아무 권한도 행사 못 했다. 1950년대부터 정치를 하면서 주변에 자기 사람이 엄청 많은 김영삼 전 대통령도 그랬다. 객관적으로 보면 박 대통령은 고립무원이다. 선거 때 손 한 번 잡아보고 싶어하던 유권자들 그동안 지지해왔는데, 더는 유효하지 않다. 박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카드는 없다. 박근혜 정부의 남은 4년 반... '봄날은 갔다'."

- 국민 역량이 바닥을 치고 오르는중이라고 보는 근거는?
"국민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세계 경제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바닥까지 떨어졌다가 이제 다시 기 자리에서 뭔가를 해볼 수 있는 위치에 왔다. 정치권이 조금 와줘야 하는데 여전히 찬물을 끼얹고 있다. 국민이 반전하는 시점에 정치권은 반대로 가는데, 이런 모습이 1985~1987년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 2004년부터 3년간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국정원을 직접 겪어본 사람으로서 개혁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보나.
"사람이나 제도도 기본 바탕이 있다. 가령 '바탕은 좋은데 시대 상황이 어려워서 저렇게 꼬였다'는 말도 있지 않나. 사람들은 국내 사찰만 없으면 국정원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 생각은 맞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가 마치 국정원의 본질은 그게 아닌데, 독재자들이 잘못된 일을 시켜 악행을 저지른 것처럼 보는 사람들이 있다. 잘못된 생각이다.

5.16 쿠데타 세력이 제일 먼저 한 일이 중앙정보부 설치였다. 쿠데타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조사해서 사전에 제압해 권력을 유지하려는 목적이었다. 국정원은 그 역할을 20세기 내내 멈춘 적이 없다. 현재도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대통령을 위해 존재한다. 마치 청와대 비서실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청와대 비서실은 기능만 있지만, 국정원에겐 인력과 예산, 큰 권한이 있다. 앞으로 한국사회가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국정원을 바꿔야 한다. 하지만 제도만 바꿔서는 안 된다. 발전적 해체와 신설로 갈 수밖에 없다. 발전적 해체를 거쳐 새로운 국가정보기구를 신설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 교학사 역사교과서가 역사를 왜곡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명박 정부 때부터 시작된 일이다. 뉴라이트 우익 학자들에 의한 교과서 파동은 참으로 우스꽝스럽고 창피한 소극 같은 일이다. 그게 당당하게 정권의 비호를 받고 있는데, 현재 우리 사회 정신세계의 천박성을 보여준다. 게다가 여당 최고 실력자(김무성 의원)가 그런 학자를 불러 특강을 하고, 의원 50여 명이 그 강연에 박수를 보냈다는 것은 코미디다. 한국 정치인의 역사인식이 어느 수준인가를 보여준 사건이다. 그들의 역사인식이 1950~1960년대에서 멈춘 게 서글프다. 

국사편찬위원회가 그 교과서를 검정해줬는데, 이 역시 시대의 비극이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천박한 정치 논리에 들러리를 섰다. 한 나라의 학문을 관장하는 최고 기관이 허접쓰레기 같은 걸 교과서로 검정해줬는데, 학문적 양식을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가 무너졌다."

- 의기소침해 있는 시민에게 한마디 한다면?
"소수의 안목이 있는 분들이 역사를 내다보고 그 의지에 따라서 끊임없이 국민을 선도했을 때, 국민의 힘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사회가 바뀐다. 지금의 여론조사가 생각처럼 나오지 않기 때문에 사회가 바뀌기 힘든 게 아니냐고 얘기하는 것은 올바른 생각이 아니다."

13. 10.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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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검정을 통과한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일보에 실린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의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시각을 읽을 수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쟁점에 관한 대목을 발췌해놓는다(전문은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309/h2013091520320984330.htm 참조). 박찬승 교수는 근대사 전공자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돌베개, 2013), <마을로 간 한국전쟁>(돌베개, 2010), <민족, 민족주의>(소화, 2010) 등의 저자다. 

 

 

-교학사 교과서 근현대사 부분을 읽어보고 어떻게 느꼈나.

 

"첫 인상은 '미스'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회영 등 6형제가 만주에서 신민회를 조직한 것처럼 썼다거나, 포츠담선언 날짜가 잘못됐다든지, 애치슨 선언과 미군 철수 시기가 뒤바뀌어 있다. 교과서 검정에서는 사실 오류를 제일 먼저 본다. 검정을 거친 교과서인데도 '팩트'에 오류가 많다는 데 놀랐다. 문장이 잘 안 읽힌다. 고등학생 수준에 맞게 써야 하는데 너무 전문적이거나 고유명사 단체 이름 같은 게 한 페이지에 너무 많아 굉장한 학습 부담을 준다. 교과서는 집필에 10개월, 검토에 10개월 걸린다. 필자들이 다 모여 한 줄 한 줄 놓고 이야기를 한다. 나도 교과서 필진으로 참여했을 때 1년 가까이 매주 주말을 반납했다. 교학사 교과서는 그런 시간 투자를 안 하고 급히 쓴 것처럼 보인다."

 

-교학사 교과서는 사실 오류뿐 아니라 식민사관, 친일 미화, 이승만 띄우기 등 여러 지적이 나왔다. 무엇이 가장 문제인가.

 

"사실 오류와 의도적인 왜곡처럼 보이는 부분이다. 다른 여러 교과서에도 5ㆍ16혁명공약을 실었는데 이 교과서만 '민정 이양'을 천명한 6항이 빠져 있다. 적절하지 않은 지문이나 질문도 많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 대목에서도 '민비'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는 사건 가담 일본인의 글을 소개하면서 왜 일본이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생각해보라는 질문을 던진다. 시해범의 입장을 이해하라고 받아들이라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에서 국내 문화운동, 실력양성운동 비판하는 대목을 인용하면서 이런 주장이 타당할까 하고 묻는다.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듯 하다. 또 구한말 조선의 유생들은 학문 수양에만 힘쓰고 망국의 책임을 반성하지 않았다고 했다. 의병을 일으킨 유생이 숱하고 자결한 사람은 내가 확인한 것만 70명이 넘는다. 선조들이 무책임했던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은 자기 비하다. 대한민국 역사에 자긍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썼다면서 이런 자기 폄하적인 부분이 있다."

 

-교학사 교과서 필자인 이명희 공주대 교수는 이 교과서가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비판에 대해 "우리 민족의 내적 발전을 강조하려고 했다"고 반박한다. 그렇게 보이나.

 

"일제의 수탈을 언급하고 물산장려운동을 강조하는 등 식민지 근대화론처럼 비치지 않으려고 신경을 쓴 건 사실이다. 하지만 비판 받을 여지가 있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시간 관념의 변화는 근대의 당연한 현상인데 일제 지배 이후라는 표현을 붙여 일제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게 한다. 그런 건 일제 지배로 만들어졌다기보다는 다양한 형태의 교육과 언론 계몽 같은 것의 역할이 큰 것이다. 일본인 농장주가 수리조합을 만들고 저수지를 잘 축조해 선진적인 농장 운영을 했다는 대목에서도 그들이 간척사업을 위한 공유수면 매립 허가를 특혜로 받았다거나 수리조합에 대한 농민들의 반대 투쟁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냥 일본 사람 대단하다고 느끼게만 써놨다. 그렇게 균형 잡히지 못한 점이 아쉽다."

 

-이 교수는 이승만을 강조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이승만에 대한 일반의 잘못된 관념을 바로잡기 위한 거라고 설명한다.

 

"교과서 저자가 자기의 생각을 주입하겠다는 자세는 잘못이다. 교과서는 기본적으로 학계에서 통용되는 상식적인 이야기를 정리해 학생에게 전달한다는 관점에서 써야 한다. 저자가 특정한 목적의식을 갖고 쓰면 편향될 수밖에 없다. 안창호는 초기 임정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도 임정 부분에서 한 번도 거론되지 않는다. 그에 반해 이승만은 도처에서 언급되고, 사진도 가장 많이 나온다."

13. 0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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