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관심도서로 추가한 책은 세실 라보로드 등의 <공화주의와 정치이론>(까치, 2009)과 베르나르 마리스의 <케인즈는 왜 프로이트를 숭배했을까?>(창비, 2009)이다('케인스'와 '케인즈'조차도 고유명사 통일이 어려운 모양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리뷰가 뜨지 않는데, 공화주의의 개념을 풀어주는 책들을 보완/심화시켜줄 수 있을 듯싶다.   

 

후자의 경우엔 리뷰기사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저자는 <무용지물 경제학>(창비, 2008)을 쓰기도 했는데, 프랑스의 경제학 교수이자 저널리스트라고. 로버트 스키델스키의 평전 <존 메이너드 케인스>(후마니타스, 2009)에 대한 보충으로도 읽을 수 있을 듯싶다.

 

목차와 리뷰만 읽어도 대충 어떤 주장을 펼치고 있는지는 감을 잡을 수 있다. 리뷰기사를 하나 스크랩해놓는다. 원제는 <경제학 안티매뉴얼>인데, '안티매뉴얼'이란 타이틀은 시리즈감이다(국역본 두 권은 이 <안티매뉴얼 1,2>를 옮긴 모양이다).  

경향신문(10. 01. 09) 돈만 숭배하다 자멸할 것인가

케인스(1883∼1946)가 프로이트(1856~1939)를 숭배했다니? 두 사람 모두 천재적인 사상가이지만 한 사람은 경제학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정신분석학자인데 둘 사이를 연결시키는 것이 있었던가? 혹시 케인스에게 동성애적 취향이 있었기 때문에 성적 욕망이라는 키워드로 인간의 정신세계에 접근했던 프로이트와 연관됐던 것은 아닐까? 프랑스 파리8대학 경제학 교수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서문에서 ‘자본주의라는 모험을 선택함으로써 우리는 자멸을 택한 것일까?’라고 묻고 ‘케인스와 슘페터처럼 프로이트에 심취했던 위대한 경제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고 답함으로써 야릇한 날개를 펼치려던 상상을 접게 만든다. 



그렇다고 독자의 궁금증을 바로 해결해 주진 않는다. 저자는 오히려 인간을 노예로 만든 자본주의의 사악한 작동원리,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뻔뻔함, 인간의 합리성과 완전자율경쟁시장이라는 자유주의 경제학의 사기성을 철학적 해학으로 가득찬 현란한 문제로 헤집으며 뜸을 들인다. 프랑스어 원서가 ‘거꾸로 보는 경제 설명서(Antimanuel d’Economie)’ 정도의 평범한 제목을 달고 있으므로 저자를 탓할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케인스는 돈의 축적이 부도덕하고 더럽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목표와 제한이 있어야 하고 성공한 삶이란 모든 자본이 그 주인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삶이기 때문이다. 돈이 돈을 만드는 운동은 인류가 자연과 신에 도전하고, 돈이 인간을 삶에서 축출하는 거대한 모험으로 이끈다. 자본이 인간을 지구에서 몰아내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아마도 돈은 행복을 가져오지 못할 텐데, 특히 돈은 욕망의 근원에 다가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인간이 돈에 집작하는 것은 돈이 죽음의 공포에서 구원해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과는 죽음의 충동이다. 이 그림은 쾌락에 빠진 인류의 종말론적 결과를 암시하는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제단화 ‘쾌락의 정원’의 일부다.(스페인 프라도 미술관 소장)

그렇다면 케인스는 프로이트의 어떤 점을 숭배했던 것일까. 책에 따르면 케인스는 버지니아 울프 등이 참여한 ‘블룸스버리(Bloomsbury)’라는 예술가·지식인 그룹에 몸담았다. 이 그룹은 프로이트가 내놓은 파격적인 이론에 심취해 있었고 그의 저작을 영어권 국가에 확산하는 데 기여했다. 실제로 케인스의 저작에서는 ‘콤플렉스’ ‘리비도’ ‘우울’과 같은 프로이트식 표현이 자주 발견된다. 



프로이트에 대해 “풍부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놀랍고도 확고부동한 가설을 제시했다”고 극찬한 케인스. 우리는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케인스가 화려하게 부활했다는 얘기를 자주 접한다. 케인스주의자를 자처하는 폴 크루그먼이 노벨 경제학상을 타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만능주의’와 ‘합리적 인간’이라는 주술을 반복하는 자유주의자들이 여전히 경제학계를 주름잡고 있다. 인간 행동은 ‘야성적 충동’에서 기인한다고 말한 케인스는 그들에게 적이다. 

케인스는 ‘좋은 삶’을 위한 도구로서가 아니라 쌓아두기 위한 대상으로 돈을 숭배하는 사람들을 ‘구역질 나는 정신병에 걸린 사람들’이라고 혐오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먹고 사는 사람 가운데 이 병에 걸려 있지 않은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 왜 사람들은 돈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숭배하는가? 다시 말해 먹고 살 만큼 돈이 있는 사람조차도 돈에 대한 욕망을 자제하지 못하는가? 프로이트는 <토템과 터부>라는 책에서 동식물이나 물건에 대한 숭배는 현실에서 가장 위협적인 것을 부정하는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현실에서 가장 위협적인 것은 바로 죽음이다. 케인스는 미래에 대한 불안, 죽음에 대한 공포에 휩싸인 인간에게 불멸의 환상을 심어준 것이 바로 돈이라는 통찰을 프로이트로부터 건져 올렸다.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인간에게 사악한 환상을 심어줌으로써 스스로 돈의 노예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불안의 정신(경제)분석학’은 이자율에 대한 설명으로도 이어진다. 이자율은 경제학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일 뿐더러 일반인들의 경제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 이자율의 변동은 저축·투자·투기심리에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이자율이 미래의 소비나 쾌락을 포기하는 대가라고 생각했다. 케인스는 공포나 집단적 불확실성에 대한 가격에 다름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자본주의 경제의 작동원리에 대한 심대한 견해차를 내포한다. ‘인간의 이성 바로 아래에 두려움과 광기가 자리잡고 있다’는 케인스의 설명은 인간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자유주의 경제학 최고의 가정을 송두리째 깨부수기 때문이다. 

저자가 케인스와 프로이트를 중심축으로 펼쳐보이려 한 것은 자본주의와 인류의 음울한 미래다. 그들의 논리를 따라가면 자본주의는 죽음과 파괴에 대한 본능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미 체감하고 있는 환경 대재앙과 인간성 파괴에도 불구하고 눈 앞의 현금을 계산하기에 여념이 없는 인류의 모습은 이러한 염세적 전망을 귓등으로 흘려버릴 수 없게 만든다.

탈출구는 없는가. 케인스는 무의미하고 침울한 축적에 대한 해결책은 미적인 것, 즉 예술·아름다움·우정·포도주와 같은 삶의 질이 우선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 역시 경제학이 풀어야 하는 것은 복잡한 수학공식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초래한 인간의 불행을 설명하는 것이어야 한다면서 기술적 진보가 인류의 영생을 보장할 것이란 환상에서 벗어나 성장이 아닌 절약, 경쟁이 아닌 협력으로 경제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탈출구 치고는 순진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대재앙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더구나 현대의 최첨단 자본주의가 대공황을 연상시키는 금융위기와 함께 악마적 심연을 드러내고 있는 이때에 말이다.(김재중기자) 

10. 01. 09.  

P.S. 어제 올 들어 처음 배송받은 책의 하나는 요시카와 히로시의 <케인스 VS  슘페터>(새로운 제안, 2009)이다. 저자는 일본의 대표적인 케인지언이라고 하는데, 참고문헌을 포함해도 270쪽밖에 안되는 분량에 두 경제학자의 대표작과 경제사상을 잘 정리해주고 있다(케인스쪽에 관심이 있다면 박종현의 <케인즈 & 하이에크>(김영사, 2008)도 더 읽어볼 수 있겠다). 개인적으론 슘페터에 관심을 갖게 되어 주문했던 책. 그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현재 시중에서는 주니어 만화로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유감스럽다. 자본주의 멸망의 척도로 저출산을 들고 있는 '유니크한' 책이다. 예전에 삼성출판사 세계사상전집에 들어 있었는데, 편하게 읽을 수 있었을 땐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나이 들면서 읽을 책, 읽고 싶은 책이 점점 더 많아지는 건 '비경제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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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평]케인즈는 왜 프로이트를 숭배했을까?(베르나르 마리스/창비)
    from Habracadabrah 2010-01-10 21:38 
    번역서를 접할 때 종종 일어나는 일인데 책 제목이 말 그대로 '섹시' 그 자체여서 집어들지 않고는 못배기지만 막상 책장을 펼치면 전혀 딴판의 내용이 담겨 있곤 한다. 전혀 딴판은 아니더라도 원저의 제목은 평이한데 한국에 맥락에 맞추기 위해 책속 일부를 크게 부각시킨 제목이 나오기도 한다.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격이라고 할까? 이 책 역시 제목이 좀 뻥튀기 됐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지은이가 분명히 케인스와 프로이트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현실 자본주의..
 
 
펠릭스 2010-01-09 12:15   좋아요 0 | URL
인간의 믿음이 신이든 돈이든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출발한다면, 종교인에게 신은 더 높은 기쁨의 대상이기 때문이겠지만, 신을 부정하는 '도킨스'의 진화론은 '돈'과 더 관련되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돈'의 발명은 생존 유전자의 필연일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나 자신은 자본주의인가 사회주의자인가 공산주의자인가를 생각해봤습니다(쌩뚱맞게). 어떤 주의(이즘)라는 것이 조직 관리 시스템의 한 형태라하면 저 또한 자신을 관리하는 개인 시스템체라 궁금해집니다.

로쟈 2010-01-10 09:37   좋아요 0 | URL
돈과 진회심리의 관계는 흥미롭지만 더 설명이 필요할 듯싶습니다. 이즘은 자신이 지지하는 어떤 믿음이나 가치의 체계죠. 그걸로 자신을 다독이는 거라면 '관리'도 가능하겠구요...

꼬마요정 2010-01-09 14:39   좋아요 0 | URL
그래서 케인즈는 이자율보다는 동물적 감각을 더 사랑(?)했던 거군요.. 경제학이든 철학이든 무엇이든 왜 이렇게 복잡할까요.. 애초에 시작은 살고자 하는 바람과 행복하고 싶다는 바람이었을텐데...

로쟈 2010-01-10 09:38   좋아요 0 | URL
환경이 열악하고 인구가 많아지다 보면 단순한 바람도 복잡하게(만) 구현되는가 봅니다...

바밤바 2010-01-10 16:29   좋아요 0 | URL
이 책 볼까 말까 했는데 로쟈님이 추천해주셨으니 봐야겠네요.
생각보다 뻔한 내용이 아닌 것 같네요^^

로쟈 2010-01-10 17:03   좋아요 0 | URL
저도 실물을 본 책은 아니에요.^^;

노이에자이트 2010-01-10 16:42   좋아요 0 | URL
<자본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는 90년대 말에 완역본이 나왔어요.그 완역본에 '삼성에서 나온 것은 완역본이 아니다'고 나왔길래 그렇구나...했지요.

로쟈 2010-01-10 17:03   좋아요 0 | URL
삼성판 외에 다른 역자의 다른 번역본이 있는 건가요?

노이에자이트 2010-01-10 17:41   좋아요 0 | URL
예.정확히 기억은 못하겠는데 완역본이 있어요.그리고 원저의 마르크스 부분만 떼어내어 <마르크스 학설>이라고 나온 좀 얇은 책도 있었습니다.
 

극단 전망의 <바냐 아저씨>를 오늘 관람할 예정이다. 어제 프레스콜이 열렸는데, 소개기사를 미리 읽어보았다. 올해는 러시아 연출가 레프 도진의 <바냐아저씨>도 5월에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http://www.lgart.com/2010/micro_kor/theatre_03.html). 지난 2004년에 모스크바에서 보았던 작품이어서 감회가 없지 않다. 여러 작품이 한꺼번에 찾아와 '체호프의 가을'로 불렀던 2008년 가을에는 못 미치겠지만, 체호프 탄생 150주년을 맞는 올해는 적어도 공연에 있어서만큼 '<바냐 아저씨>의 해'로 불러도 좋겠다(개인적으론 올해 체호프에 대한 강의 레퍼토리도 <바냐 아저씨>로 바꾸었다). 두 <바냐 아저씨>에 대한 소개를 옮겨놓는다.     

아츠뉴스(10. 01. 07) 인생의 아이러니와 닮아있는, 연극 '바냐아저씨'  

2010년 1월 극단 전망이 선보일 연극 <바냐아저씨>(연출 심재찬)는 20세기 현대연극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리얼리즘 연극의 대가인 안톤 체홉의 4대 작품 <갈매기>, <세자매>, <벚꽃동산>중 하나로, 안톤 체홉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는 첫 공연이자 아르코예술극장의 2010년 첫 번째 작품으로 선정되어 관객들에게 신뢰와 기대감을 고조시킬 것이다.

 

사실주의 연극의 대가 안톤 체홉의 4대 희극중 하나인 <바냐아저씨>의 이번 연극무대는 탁자2개와 의자3개뿐인 주 공간(사실적 연기 공간)과 8명의 각자 독립된 자아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무대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있는 8개의 자아공간은 스스로에겐 자유롭지만 외부와 단절되어있어 마치 새장에 갇혀있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으며 이는 서로간의 대화와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작품의 주제를 공간적,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무대 위 주 공간 안의 두 개의 탁자는 각 막마다 그 위치가 변화하고 그에 따라 달라지는 배우들의 동선은 각 장면이 갖는 메시지들과 인물들 간의 관계, 인물의 감정선 등을 관객에게 뚜렷하게 전달해주고자 한다.

미니멀하고 비현실적인 이번 무대는 '인간에 대한 통찰력(심리, 이중성)'이 대단한 체홉의 작품을 제대로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무엇보다 <바냐>라는 인물에 포커스를 두고자하는 심재찬 연출과 하성옥(무대디자이너), 최형오(조명디자인), 김철환(음악), 김혜민(의상), 이동민(분장)등 최고의 스텝들이 참여해 관객에게 의미를 더 잘 전달해줄 것으로 조명된다.

또한 연기파배우 '김명수, 김수현, 이지하, 김지성, 조한희, 이종구, 전국향, 한성식, 강현우'가 선보일 사실주의적 연기가 완벽한 앙상블을 이룰 연극 <바냐아저씨>는 2010년 1월 7일부터 1월 17일까지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김수정기자)  

  

레프 도진&말리 극장: 바냐 아저씨

이 시대 연극이 존재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를 깨닫게 해 주는 연출가, 세계가 사랑하는 연극의 거장 레프 도진. 그가 이끄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말리극장이 2001년 <가우데아무스>와 2006년 <형제자매들>에 이어 안톤 체홉의 <바냐 아저씨>로 다시 돌아온다.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유산 위에 실험적이면서도 진보적인 연극언어를 펼쳐온 레프 도진은 1983년 상트 페테르부르크 말리극장의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이래, <모스크바의 하늘>, <집>, <형제 자매들>, <플라토노프 제목없는 희곡>, <체벤구르>, <갈매기>, <바냐 아저씨> 등 주옥 같은 레퍼토리로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이름없는 작은 극장에 불과했던 말리 극장을 세계적인 예술극장으로 키워냈다. 레프 도진은 이미 러시아 연극계 최고 권위의 황금 마스크상을 세 번이나 수상한 것을 비롯해 피터 브룩, 하이너 뮐러, 피나 바우쉬, 아리안느 므누슈킨 등이 수상한 바 있는 유럽 연극상을 수상하였고, 영국 로렌스 올리비에상, 프랑스 비평가상, 이탈리아 UBU등 세계 유수의 연극상을 다수 수상하며, 명실공히 세계 연극계의 거장으로 존경 받고 있다

피터 브룩은 말리극장을 ‘세계 최고의 앙상블’이라고 칭한 바 있다. 레프 도진의 연극이 무대 위의 삶을 실제로 믿게 하는 힘, 배우들의 삶에서 바로 나 자신의 삶을 보게 만드는 힘을 발하는 이유는 바로 완벽하게 구현된 인물들, 그리고 그 관계 속에 존재하는 뛰어난 앙상블에 있다. 레프 도진은 관객들이 지닌 평가의 잣대를 무장해제시키고 생생한 삶의 진실을 마음 가득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만든다.

레프 도진은 ‘바냐 아저씨’를 체홉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다이아몬드’(정수)로 꼽는다. 그가 스스로 고백하기를 ‘20년 동안 계속 생각해 왔으나 감히 손을 대지 못하였다가’ 2003년 드디어 무대화했다. 그의 오랜 기다림과 숙고는 체홉 연극이 담고 있는 인간성에 대한 다각적이고 깊은 통찰을 놀랍도록 디테일하게, 그리고 더할 수 없이 명징하게 그려내고 있다.

사랑과 상실, 인생의 무상함과 그럼에도 또 다시 견뎌내야 하는 삶. 레프 도진과 상트 페테르부르크 말리 극장은 ‘바냐 아저씨’를 통해 우리 각자가 어떻게 그 순간들을 살아내는지 들여다 보게 해 줄 것이다.  

10. 01. 08.  

P.S. <바냐 아저씨>의 가장 유명한 영화판은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 작(1970)이다(콘찰로프스키에 대해서는 <로쟈의 인문학 서재>에 실린 대담도 참고할 수 있다). 지금은 구하기 어렵지만, 국내에도 비디오로 출시된 적이 있다. 자막은 없지만, 유튜브에 전편이 올라와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시간을 내보셔도 좋겠다(http://www.youtube.com/watch?v=JkqQXu9T2KI). <전쟁과 평화>의 감독 세르게이 본다르추크가 바냐의 친구인 의사 아스트로프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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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숲귀신과 바냐 아저씨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4-22 00:20 
    안톤 체호프 원작의 <숲귀신>이 이번주 일요일까지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공연된다. 여유가 없다 보니 관람기회는 놓쳤는데, 그래도 리뷰는 챙겨놓는다. 드디어 내달초에 찾아오는 러시아 말리극단의 <바냐 아저씨>공연 안내와 함께. 이미 여러 차례 예고한 바 있지만 도진의 공연을 다시 보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뉴스컬처(10. 04. 19) 121년 만에 빛을 본 연극 [숲귀신]&#
 
 
sophie 2010-01-08 0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리극장이 한국에서 <벚꽃동산>도 했던 것 같은데 다른 극단이었는지 확실치 않네요. Lg 아트센터는 다 좋은데 관람료가 지나치게 비싼 것 같아요. 오늘 브로츠와프에 있는 그로토프스키연구소에 들렀다가 피터 브룩의 <11,12>를 한다고 해서 살까말까 하다가 샀습니다. 티켓값이 40즈워티(16000원)이던데요? <바냐아저씨>가 무대에 오르신다는 소식은 반가운 소식이네요.

로쟈 2010-01-08 10:31   좋아요 0 | URL
말리극장이 재작년에 <세자매>를 공연했었죠. <벚꽃동산>은 제가 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어요. 러시아에서도 관람료는 저렴한 편입니다. 우리가 상대적으로 좀 비싸죠. '일상화' 돼 있지 않아서겠ㅈ죠...

sophie 2010-01-09 05:30   좋아요 0 | URL
<벚꽃동산>은 호암아트홀 개관기념 공연이었다네요. 워낙 오래전이라 커다란 벚꽃나무만 기억에 남아있어요. <바냐아저씨>도 오래전에 읽어서 무척 좋았다는 기억만 남아있어서 아마 공연을 보게 된다면 다시 읽어야할 것 같아요. 그런데 참 이상한 건 체홉의 대표작들을 읽고 나면 전체가 한 작품인 듯 이 작품이랑 저 작품 같고 저 작품이 이 작품 같아요. ^^;;

로쟈 2010-01-09 09:41   좋아요 0 | URL
체홉을 잘 아신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2010-01-08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9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9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9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9 0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미뜨리 2010-01-13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번에는 모스크바 말리극장이 <세자매>를 선보였는데, 올해는 페테르부르크의 유럽극장이 <바냐 외삼촌>을 가지고 오네요. 한국에서는 도진 선생이 어떻게 상연하련지 매우 궁금합니다. 아무튼 모두에게 유익한 공연되리라 봅니다. 늘 좋은 소식 감사드립니다.

추신: <갈매기>와 더불어 <벚나무밭>에 이르기까지 체호프의 4대 희극이라고 하셨는데 매우 흥미로운 지적이네요^^ 저의 내공으로는 아직 이해할수 없는 점도 많지만 일면 동의하는 대목도 적지 않습니다.
 

이번주 관심도서로 보관함에 넣어둔 책은 프랑수아 줄리앙의 <현자에게는 고정관념이 없다>(한울, 2009)와 조희연의 <동원된 근대화>(후마니타스, 2010)이지만, 아직 별다른 소개기사가 뜨지 않아서 대신에 새로 출간되기 시작한 '키워드 한국문화' 시리즈를 리스트로 만들어놓는다. 1차분 다섯 권이 먼저 나왔는데,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건 아무래도 안대회 교수의 <정조의 비밀편지>이다. <정조어찰첩>(성균관대출판부, 2009) 대용으로 읽어봄 직하다. 관련기사를 참고하시길.  

한겨레(10. 01. 07) 전문연구자가 쓴 한국학 정수 

출판사 문학동네가 ‘키워드 한국문화’라는 이름의 문고판 총서를 시작했다. 한국문화를 상징하는 핵심어들을 추려낸 뒤 그 안에 온축된 한국인의 삶과 미학, 정신세계를 문화사적으로 조명하는 인문학 시리즈물이다. 2000년대 초부터 역사학계와 국문학계를 중심으로 축적돼온 미시사 연구의 성과를 친숙한 대중의 언어로 풀어내 소개하겠다는 의도다. 

총서 기획위원인 신수정 명지대 문창과 교수는 “외국인을 상대로 한 한국문화 강의교재를 찾다가 콘텐츠의 정확도와 가공 수준에 실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기존의 책에서 쓸 만한 것을 찾느니 차라리 직접 만드는 게 생산적이겠다는 판단이 들어 3년의 준비 끝에 1차분 총서를 내놓았다”고 말했다. 인문학에 관심 많은 국내의 성인 독자들을 겨냥하고 있지만, 여건이 허락하면 한국학과 한국문화의 세계화를 위해 해외출판도 고려중이라는 게 출판사 쪽 설명이다.

이번에 선보인 1차분은 <세한도>(박철상), <정조의 비밀편지>(안대회), <구운몽도>(정병설), <왕세자의 입학식>(김문식), <조선인의 유토피아>(서신혜) 다섯 권이다. 글쓴이들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전문 연구자들로, 이 가운데 고문연구가 박철상씨와 안대회(성균관대)·정병설(서울대)·김문식(단국대) 교수는 총서의 기획위원이기도 하다.

‘한국문화의 키워드’라는 총서명과 달리 출간된 책들이 조선시대 문화생산물에 치중됐다는 지적에 대해 신수정 기획위원은 “1차분이란 특성을 고려해 일단 우리 문화의 기원이라 이를 만한 과거 유산들에 집중했다”며 “추가 간행분에선 식민지 시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말 그대로 한국문화의 통시적 키워드들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판사 쪽이 밝힌 2차분 예정 도서는 <처녀귀신>(최기숙), <은행나무, 동방의 성자>(강판권), <왕의 묘호>(임민혁), <소리꾼>(최동현), <노출과 은폐의 문화사>(이민주)다. ‘기생’ ‘여학생’ ‘단발’ ‘축음기’ 등의 제재들 역시 청탁을 마치고 집필중이거나 필자 선정 단계에 있다.(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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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8 0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8 0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8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8 0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8 0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8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8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8 15: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9 1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 한 번뿐인 삶 VS 영원회귀

출판저널(1월호)에 실은 '로쟈가 읽은 책 속의 한 장면'을 옮겨놓는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다루고 있다.  

1001_january_book  

출판저널(10년 1월호) '결혼'과 '불륜'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테레사가 예고도 없이 토마스를 찾아 프라하에 온 날 그녀가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책은 <안나 카레니나>였다. 덕분에, 두 사람이 친구에게서 얻은 강아지의 이름이 ‘카레닌’이 됐다. 처음에 토마스는 ‘톨스토이’라 부르자는 제안을 하지만, 테레사는 암캉아지이기 때문에 ‘안나 카레니나’가 더 낫겠다고 한다. 하지만 토마스는 강아지의 장난기 있게 생긴 얼굴에는 ‘카레닌’이란 이름이 더 적당하다면서 카레닌으로 정한다. 남자 이름이 붙여진 때문인지 카레닌은 토마스보다 테레사를 더 따른다. 그리고 쿤데라는 두 사람의 전원생활과 카레닌의 죽음을 다룬 소설의 마지막 장 제목을 아예 ‘카레닌의 미소’라고 붙인다. 작가 톨스토이와 그의 걸작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오마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애독자 쿤데라에게 ‘책 속의 한 장면’을 골라달라고 하면 어떤 선택을 할까? 아마도 안나의 자살 장면을 꼽지 않을까 싶다. 이미 에세이집 <소설의 기술>에서 “안나 카레니나는 왜 스스로 목숨을 끊는가?”란 물음을 던지고 “전혀 뜻밖의 충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그는 답한 적이 있다. “이것은 그녀의 행위가 뜻 없는 짓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뜻은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인과성 너머에서 찾아진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또 다른 에세이집 <커튼>에서는 이 장면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내보인다. 요지는 안나가 자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브론스키와 재회하기 위해서 기차역으로 가지만 플랫폼에서 갑자기 브론스키와 처음 만나던 날 기차에 깔려죽은 인부를 기억해내고서야 비로소 자신도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즉 그녀는 자살을 통해서 자신의 사랑 이야기에 아름답고 완전한 형식을 부여하고자 했다. 그런 의미에서 안나의 자살은 도덕적 자살이 아니라 심미적 자살이다. 그녀는 자살을 통해 삶을 응징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구제하려고 했던 것이다. 안나의 이러한 자살은 분명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에 등장하는 키릴로프의 자살과 대비된다. 그 차이를 쿤데라는 <소설이 기술>에서 이렇게 대비시킨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자기 논리의 끝까지 가기를 고집하는 이성의 광기를 포착한다. 톨스토이는 그 반대다. 그는 비논리적인 것, 비합리적인 것의 개입을 드러내 보여준다.”   

이 ‘비논리적인 것’ 혹은 ‘비합리적인 것’은 소설에서 어떤 생기의 ‘과잉’으로 묘사된다. 브론스키가 기차역에서 안나와 처음 조우하는 장면에서 그가 갖는 느낌을 묘사한 대목을 보라. “마치 과잉된 뭔가가 그녀의 몸속에 넘쳐흐르다가 그녀의 의지에 반해서 때론 그 눈의 반짝임 속에, 때론 그 미소 가운데 나타나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일부러 눈 속의 빛을 꺼뜨리려 했다. 그러나 그 빛은 그녀의 의지를 거슬러 그 엷은 미소 속에서 반짝반짝 빛을 냈다.” 이렇듯 브론스키를 매혹시킨 것은 그녀의 의지에 반하여 흘러넘치던 생기였고 ‘과잉된 뭔가’였다. 그것은 안나라는 ‘주체’를 넘어선 어떤 것이면서, 안나라는 ‘장소’에서 일어나는 비인칭적 생명의 운동이다. 

안나의 그러한 생기는 오빠의 가정불화를 중재하기 위해 갔던 모스크바에서 오랜만에 활짝 꽃피지만 남편이 있는 페테르부르크로 다시 돌아온 이후에는 자취를 감춰버린다. “그녀는 옷을 벗고 침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모스크바에 머무는 동안 그녀의 눈동자와 미소에서 뿜어져 나온 생기는 더 이상 그녀의 얼굴에서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지금은 그녀 안의 불꽃이 꺼져 버렸거나 어딘가 멀리 숨은 것처럼 보였다.” 말하자면 카레닌과의 결혼생활이 그녀에겐 ‘살아있는 삶’이 아니라 ‘죽어있는 삶’이었던 것이다. 삶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라면 따로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브론스키와의 만남 이후에 안나에게 가로놓인 건 ‘도덕적이지만 죽어있는 삶’(결혼)과 ‘부도덕하지만 살아있는 삶’(불륜) 사이의 양자택일이다.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혹은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할까?  

안나의 곤경을 가장 잘 말해주는 건 그녀의 소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꿈이다. 브론스키와 남편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녀는 밤마다 같은 꿈을 꾸는데, 꿈속에서는 두 사람 모두가 그녀의 남편이고 두 사람이 동시에 그녀에게 애무를 퍼붓는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고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아, 난 지금 정말 행복하오!’ 그리고 알렉세이 브론스키도 거기에 있었으며 마찬가지로 그녀의 남편이었다.” 두 명의 알렉세이 모두 만족스럽고 행복하다면 이보다 더 간단한 해결책이 없을 테지만, 그것은 불행하게도 안나의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현실의 안나는 결국 남편에 대한 의무 대신에 브론스키에 대한 열정을 선택하고, 이 선택은 그녀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킨다. 비밀스런 불륜은 당시 러시아 상류사회에서 흔한 일이었지만 문제는 안나가 자신의 불륜을 굳이 숨기고자 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그러한 솔직함을 사교계는 용납하지 않았다. 더불어, 사교계는 안나가 갖고 있는 대단한 열정, 혹은 두 사람 몫의 생기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꿈속에서처럼 두 남자, 두 명의 알렉세이에게서 동시에 사랑받기 위해서라면 안나 또한 두 사람 몫의 열정을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브론스키의 아이를 낳은 후 산욕열로 죽어가던 안나가 열에 들떠서 남편 카레닌에게 이렇게 고백하는 장면을 보라. “내 안에 다른 여자가 있어요. 난 그녀가 무서워요. 그녀는 그 남자와 사랑에 빠졌어요. 그래서 난 당신을 증오하려고 했지만, 그래도 예전의 나를 잊을 수 없었어요. 그 여자는 내가 아니에요. 지금 내가 진짜예요.”   

말하자면 두 명의 안나가 있는 셈이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던 안나는 카레닌에게 용서를 구하고, 한술 더 떠서 곁에 있던 브론스키까지 용서해달라고 부탁한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브론스키에게는 “얼굴을 보여줘요. 이분을 봐요. 이분은 성자예요”라고 말한다. 브론스키는 고뇌와 수치로 얼굴이 일그러지고, 카레닌은 눈물을 흘리며 브론스키에게 손을 내민다. 예사 소설이라면 이러한 화해의 장면으로 마무리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나는 의사들의 예측과 달리 되살아난다. 그리고 다시금 전혀 ‘다른 여자’가 된 안나는 브론스키와 함께 아예 외국여행을 떠나버리며, 소설은 아직도 절반의 이야기를 남겨놓게 된다. 안나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생기 혹은 과잉의 자기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쿤데라가 ‘자살의 산문성에 대한 톨스토이의 탐구’라고 부른 <안나 카레니나>는 ‘비인칭적 열정’의 자기전개를 다룬 드라마이기도 하다. 

10. 01. 06. 

P.S. 알다시피 <안나 카레니나>는 여러 차례 영화화됐는데, 러시아에서 제작된 <안나 카레니나>(1967)는 http://www.youtube.com/watch?v=BCO2NimE3I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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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보코프와 예술이라는 피난처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3-04 00:15 
    저녁강의가 있어서 늦게 귀가해보니 식탁에 이번달 <출판저널>(3울호)이 놓여 있다. 원래는 지난달에 실려야 할 '로쟈가 읽은 책 속의 한 장면' 원고가 한달 늦춰졌고, 이번이 마지막 글이 됐다. 나대로의 '이어 읽기'로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다루고 있으며, 4월호 원고까지 썼더라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 이어질 참이었다. 그래도 원고 부담이 하나 줄어서 다행이
 
 
rolla 2010-01-06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민음사판으로 읽었는데, 브론스키와의 첫 대면을 묘사한 부분의 느낌이 색다르네요. 아마 문학동네판이거나, 아니면 로쟈님께서 직접 번역하신 걸까요. (뒷부분 카레닌의 집으로 돌아온 부분은 민음사판과 같네요.) 번역에 따라서 이렇게 느낌이 다르다니, 이거 문학동네판도 읽어보고 싶어지는데요^^ 위엄있는 느낌의 민음사판 표지도 멋지지만, 감성적인 느낌의 문학동네판도 끌려요. 어젯밤에 쿤데라의 <소설의 기술>과 <커튼>을 장바구니에 담아놓았는데, 오늘 로쟈님 블로그에 링크된 걸 보니 넘 반갑기도하고 신기하기도 하네요. (자주 방문하다보면 주인장과 텔레파시도 통하게 되는걸까요??)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니 구매욕이 더 불타오르네요. 로쟈님 블로그에 자주 방문하다보니 알라딘 플래티넘 회원이 되어버렸는데, 이걸 어쩌죠? 허허허.

로쟈 2010-01-06 21:43   좋아요 0 | URL
예리하신데요.^^ 글을 쓰면서 두 가지 판을 모두 참조했습니다. 범우사판까지 세 종. 제가 강의에서 즐겨쓰던 건 범우사판이었는데, 이젠 뭘 써야 하나 고민중입니다...

다크아이즈 2010-01-06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쩜 이리 잘 쓰시나요?‘도덕적이지만 죽어있는 삶’과‘부도덕하지만 살아있는 삶’그 경계에서 '과잉된 그 무엇'쪽으로 기울면 그게 소설이 되고, 안나의 운명이 되는 건가요? 저야 뭐, 과잉된 그 무엇 때문에 번민하는 사람들이 많기를 소망하는, 태생이 불온한 자입니다.

로쟈 2010-01-06 21:48   좋아요 0 | URL
생명 혹은 생기란 게 사실 초도덕적이죠. 저는 그런 과잉 때문에, 보바리 부인의 경우와는 달리 "우리는 모두 안나 카레니나다"라고 말하긴 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그만한 열정을 갖고 있는 건 아니죠...

2010-01-07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8 0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네파벨 2010-01-07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서재에서 종종 쿤데라를 만날 수 있어서 기쁩니다.....

누렇게 된 책들을 다시금 읽어봐야겠어요. 20년 전의 감동을 되찾을 수 있을까....그게 너무 두렵지만요^^ (사실 작년에 미국에서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영문판으로 읽으면서...뭐랄까...토마스나 테레사에 대해 냉소적으로 비판하게 되는 저 자신에 흠칫 놀랐어요. 너무....늙었나봐요ㅠ.ㅠ)

안나 카레리나도........이 기회에 읽어봐야 할 듯. 부끄럽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한 소설이랍니다.

로쟈 2010-01-08 00:23   좋아요 0 | URL
읽을 시간이 아직 충분하지요. 인생 기니까요.^^

페크pek0501 2010-01-07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가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나름대로의 불행을 안고 있다.-로 시작하는 소설이죠(범우사). 러시아 혁명가 레닌이 <안나 카레니나>를 표지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몇 번이나 읽었다는 일화가 있어, 얼마나 재밌길래, 하는 궁금증으로 사 본 책입니다. 실제로 톨스토이의 이웃에 사는 한 여자가 남편과 미모의 가정교사 사이를 질투하여 달리는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한 사건이 있었는데, 이것이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의 하나라고 함. 처음엔 톨스토이가 안나를 밉쌀스런 여자로 구상했는데 이 소설을 완성할 즈음엔 안나에 대해 애정을 품게 되었다고 함. 이것에 대해 쿤데라는 "그는(톨스토이는) 제가 즐겨 소설의 지혜라고 부르는 것에 귀를 기울였던 것"이라고 썼습니다.-<소설의 기술>p170 안나를 불륜을 저지른 비도덕적인 여자로 보기보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게 되고 가여운 여자로 여겨지는 소설입니다. 차라리 사랑하지도 않는 안나를 체면의 중시 등의 이유로 이혼할 수 없다고 말하는 남편에게 비난의 화살이 갈 수 있는 작품...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로쟈 2010-01-08 00:23   좋아요 0 | URL
이미 많이 알고 계신데요.^^

blanca 2010-01-07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안나 카레니나를 시도해 보려고 하고 있었는데 이런 페이퍼를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은근 스포일러인데요--; 로쟈님 페이퍼를 안나 카레니나를 다 읽고 다시 한 번 정독해봐야겠습니다.

로쟈 2010-01-08 00:24   좋아요 0 | URL
이게 책 속의 한 장명을 소개하는 거라 스포일러가 불가피하네요. 담엔 미리 주의를 붙이도록 하겠습니다.^^;

kumun 2010-01-07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범우사 판으로만 읽어봤는데 민음사판과 문학동네의 번역은 어떤가요?
또 굳이 최고의 번역을 꼽으신다면?

로쟈 2010-01-08 00:22   좋아요 0 | URL
제가 일부분만 대조해봐서 아직 전체적으론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서점에서 그냥 몇 페이지 대조해보시고 취향에 맞는 걸 고르셔도 될 듯해요...

2010-01-07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8 0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9 2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번주 한겨레21에 실은 서평기사를 옮겨놓는다. 프란시스코 바렐라의 <윤리적 노하우>(갈무리, 2009)를 다루고 있다. 관심을 끄는 주제이기도 하고 물망에 올랐던 책들 가운데 가장 얇다는 점도 고려됐다. 원고 마감 전날에야 '압구정 커피'를 마시며 읽고 이튿날 아침에 계절강의를 나가기 직전 부랴부랴 써서 넘긴 원고였다. 2010년의 시작이다.   

 

한겨레21(10. 01.11) 인지과학이 도달한 맹자와 대승불교

책을 읽는 중요한 목적이 배움이라면, <윤리적 노하우>(갈무리 펴냄)는 제목부터 그러한 목적에 충실하다. 조합은 새롭다. 윤리적 노하우? 노하우가 ‘기술’이나 ‘비법’을 뜻하는 말이니 윤리적 행위의 기술이나 비법을 전수해준다는 말일까? 힌트가 되는 건 ‘윤리의 본질에 관한 인지과학적 성찰’이란 부제다. 윤리의 본질을 다룬 책은 많으므로 이 책의 방점은 ‘인지과학적 성찰’에 두어진다. 그것이 ‘노하우’와 연결되는 것이겠다.   

저자 프란시스코 바렐라는 칠레 출신의 저명한 생물학자이자 인지과학자다. 과학자로서 생각하는 윤리 사상을 세 차례 강의를 통해 풀어나가고 있는데, 일단 그가 보기에 윤리는 '노홧'(know-what)의 문제가 아니라 '노하우'(know-how)의 문제다. 즉 이성적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자발적 대처의 문제다.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일상적인 윤리적 행위는 반사적이면서 즉각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윤리는 규칙보다는 습관을 따른다. 이것은 흔히 윤리적 행위를 윤리적 판단과 결부시켜서 이해하고자 하는 서구적 전통에 대한 도전을 함축한다.    

이러한 저자의 입장은 ‘구성적 인지주의’ 혹은 ‘구성주의’에 토대한다. 그것은 같은 인지과학 내에서도 ‘계산주의’와는 대조되는 입장이다. 초기 인공지능 연구를 주도했던 계산주의는 지식을 추상적 논리의 대응물로 간주한 반면에 구성주의는 구체적 상황의 산물이라고 본다. “간단히 말하면 이 세계는 우리에게 주어진 그 어떤 것이 아니고 우리가 움직이고 만지고 숨 쉬고 먹으면서 만들어가고 있는 그 어떤 것이다.” 

저자는 이런 예를 든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당신이 느긋하게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가두판매대에서 담배 한 갑을 사고 느긋하게 가던 길을 계속 가는데, 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 불현듯 지갑이 없어진 것을 안다. 당연한 일이지만, 느긋했던 상태는 단숨에 산산조각이 나고 생각은 뒤죽박죽이 될 것이다. 곧 바쁘게 가두판매대로 되돌아가보는 당신에게 주변의 가로수와 행인들은 더 이상 관심사가 될 수 없다. 새로운 상황으로 진입해 들어간 것이니까. 이렇듯 우리는 ‘항상’ 주어진 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으로 움직이며 살아간다. 이때 상황에 맞도록 적절하게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은 반복적인 행동이 체화된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윤리적 행위 또한 그런 노하우의 산물이다.   

윤리적 노하우의 관점에 서면, 중요한 것은 윤리적 인식이 아니라 윤리적 숙련 혹은 훈련이다. 앎이 아니라 습관, 더 나아가 성향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구성적 인지주의는 그런 맥락에서 윤리에 대한 동양의 전통적 관점과 만난다. 바렐라는 특히 맹자의 인간 본성론에 주목한다. 알다시피 맹자는 인간에게 선한 본성이 내재돼 있다고 보았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계발하고 상황에 맞도록 적절하게 확장해나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진정으로 덕이 있는 사람이란 오랜 수신(修身)을 통해서 형성된 품성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행동이 이루어지는 사람이다.” 

이 정도의 ‘윤리적 노하우’라면 별로 새로운 것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상황적’ 행위자의 행동이 중앙 통제적인 자아가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하면 어떨까? 즉 우리의 자아라는 것이 실체성을 갖지 않는 ‘가상적 인격’에 불과하다면 조금 놀랄 만하지 않을까? 바렐라가 일러주는 바에 따르면, 자아가 가상적이고 비어 있다는 것이 현대 서구과학의 발견이다. 이것은 통일된 중심 자아를 부정하는 정신분석의 윤리와 만나면서, 자아에 대한 집착을 경계해온 불교적 관점과도 조우한다. 사실 무아(無我)에 대한 불교의 오랜 가르침을 고려하면 그것은 ‘오래된 발견’이다. 대승불교의 핵심적인 교리가 ‘비어있음(공성)’과 ‘자비’라고 하면, 인지과학은 긴 우회를 거쳐서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이쯤 되면 저자가 티베트 불교도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어색하지 않다). ‘윤리적 노하우’가 열어줄 새로운 실천에 대한 명상으로 한 해를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10. 01. 05.  

P.S. 인지과학에서 말하는 무아 혹은 가상적 인격으로서의 자아에 대해서는 좀더 공부해볼 생각인데, 좀 어려운 분야이긴 하다. 바렐라의 동료 마투라나의 <있음에서 함으로>(갈무리, 2006) 외 <자유는 진화한다>(동녘사이언스, 2009) 같은 데닛의 책 몇 권, 그리고 지젝의 <시차적 관점>(마티, 2009)이 읽어볼 책들이다. <시차적 관점>에서는 4장 '자유의 고리'가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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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파벨 2010-01-05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는 진화한다...얼마전 읽다가 포기...는 아니고 보류...하고 있습니다.
넘 어려워요.........ㅡ,.ㅡ 그의 논리를 따라가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어디선가 휙 안내자를 잃어버리고 홀로 남아있는 자신을 발견......

제가 데넷을 접하게 된건...호프스태터와의 공저, 도킨스의 불독...뭐 그런 이미지여서...왠지...적어도....도킨스나 호프스태터에게 접근하듯 접근할 수 있는 철학자가 아닐까 했는데...

역시 철학자는 철학자...(제게는 외계인)...싶더군요.^^

로쟈 2010-01-05 20:24   좋아요 0 | URL
<다윈의 위험한 생각>도 너무 난해해서 출간이 늦어지고 있다는군요..

Ritournelle 2010-01-05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리적 노하우>는 오늘 지하철에서 처음 읽어봤는데, 너무 쉽고 재미있었습니다. 더불어 <앎의 나무>도 다시 읽어봐야 겠네요.

로쟈 2010-01-05 23:51   좋아요 0 | URL
네, 어떤 얘기들을 하는 건지 윤곽을 잡는 데 요긴한 책입니다.

빵가게재습격 2010-01-05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설 때문에 <한겨레21> 지면이 아닌 로쟈님 서재에서 먼저 서평을 보게 되네요. 인지과학 혹은 인지심리학에 관해서라면 <물질과 의식>에 있는 몇몇 구절을 접해본게 전부인데요.왠지 그 쪽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면 먼 훗날에는 철학(아마 인식론 분야겠죠)이나 정신분석은 모조리 과학이 대체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윤리가 인식이 아니라 숙련의 문제라...로쟈님은 맹자와 대승불교를 연결시키셨는데, 저는 그 구절을 읽으니 아리스토텔레스가 떠오르더군요. 그 뭐라더라. 숙련된(훈련된) 성품의 탁월함이었던가...좀 가물가물합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읽은 듯 한데, 찾아볼려니 책이 어디있는지 모르겠네요.^^;;

로쟈 2010-01-05 23:52   좋아요 0 | URL
프로네시스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저는 좀 다른 분야이긴 하지만, 카프라까지 생각나더라구요...

빵가게재습격 2010-01-06 01:17   좋아요 0 | URL
......
전문용어의 압박에...체할 뻔 했습니다...(갑자기 턱! 던지시면 이렇게 체합니다.^^;;;;) 그런데 프로네시스가 그거였나요? 제 기억엔 프로네시스는 덕성의 기준이 되는 사람 내지 속성 뭐 이런 정도였던 것 같은데...아무튼 가물가물입니다.(하필이면 책이 없네요. 아까 책장을 모조리 훑어봤는데 안 보이네요.) 카프라는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을 쓴 카프라 말씀하시는 거죠?

로쟈 2010-01-06 21:11   좋아요 0 | URL
보통 '실천지'라고 하는데, '실천적 앎'입니다. '이론적 앎'을 뜻하는 에피스테메와 대비되는. 네, 카프라는 그 카프라죠...

빵가게재습격 2010-01-06 23:16   좋아요 0 | URL
네~ 알겠습니다.^^ 카프라 책은 전에 도서관에서 <통섭>을 빌리면서 같이빌려왔다가, 끝내 못 읽은 책인데요. 호기심이 생기네요. 아무튼 요새 출퇴근 대란입니다.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다이조부 2010-01-05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향신문에 실린 선생님의 글 잘 봤습니다. 내용이 어려워서 잘 이해는 안 가지만,

마지막 구절에 샘의 대학신입생 시절 일화가 인상적 이었어요. 한 동안 500원 짜리

동전 보면 로쟈님 생각 날듯...

책 읽는 경향에 예전에 선생님도 책 추천하셨더군요.. 하루자 신문에 2번이나 실렸네요

ㅎㅎㅎㅎ 그 책 제목이 마음에 들어요. 내용은 난이도가 있을것 같지만,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찬찬히 읽어보고 싶네요

로쟈 2010-01-05 23:53   좋아요 0 | URL
흠, 중학생도 읽을 수 있어야 하는 건데, 좀 오버한 건가요?^^;

펠릭스 2010-01-07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빌리 밀리건-스물네 개의 인격을 가진 사나이/다니엘 키스/황금부엉이>의
다중인격체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읽을 만하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