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에서 와다 하루키 교수의 칼럼을 옮겨놓는다. 매우 흥미로운 지적들을 담고 있다. 일본 NHK에서는 러일전쟁을 다룬 시바 료타로의 대작 소설 <언덕 위의 구름>을 방영중이라고 하는데, 그와 관련하여 '조선병합'의 문제까지 짚어보고 있다(우리 TV에서는 어떤 특집들을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시바의 소설은 찾아보니 <언덕 위의 구름>(전10권, 명문각, 1991)으로 출간된 바 있지만 현재는 절판된 상태다. 때도 때인 만큼 일본을 알기 위해서라도 다시 출간되면 좋겠다. 와다 하루키 교수의 신간과 함께.  

 

경향신문(10. 02. 02) 조선병합과 일본인의 역사관   

지난해 12월 일본 공영방송 NHK는 드라마 <언덕 위의 구름> 제1부를 5주에 걸쳐 방영했다. 이는 작가 시바 료타로의 장편소설을 드라마화한 것이다. 메이지유신 100년을 맞아, 러일전쟁에 이르는 메이지시대 일본을 그린 소설 <언덕 위의 구름>은 1968년 봄 산케이신문 연재를 시작으로 이듬해 단행본으로 출판됐다. 해전의 전략·전술을 수립한 해군 형과 기병대 소속 동생, 또 같은 고향 출신인 문학가 등 세 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시바는 제1권의 맺음말에서 이 소설의 주제를 설명하고 있다. “이 긴 이야기는 일본 역사상 유례없는, 행복한 낙천주의자들의 이야기다.” 일본 국력 증강과 러시아와의 전쟁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 군인 2명과 문학가의 이야기는, 똑같이 ‘언덕 위의 구름’만을 바라보며 죽을 힘을 다해 언덕을 오른 고도성장기의 일본인들이 본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소설은 2000만부가 팔리며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러나 시바는 집필 과정에서 러일전쟁에서 우세승을 거둔 일본이 전후에 언덕을 내려오기 시작하더니 결국엔 굴러 떨어지는 최후를 내다봤다. 러일전쟁 개전 전날 밤까지를 그린 제2권의 맺음말에서 작가는 전후 일본의 변화를 예리하게 꿰뚫었다. “요컨대 러시아는 패할 수밖에 없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고, 일본은 뛰어난 계획성과 적군의 이런 사정 때문에 아슬아슬한 승리를 줍다시피한 게 러일전쟁이다. 전후 일본은 이 냉철한 상대적 관계를 국민에게 가르치려 하지 않고 국민 또한 그것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쟁을 절대화하고 일본군의 신비적인 강인함을 신앙처럼 믿게 해 민족적 치매 상태에 빠졌다.” 



러시아와의 해전에서 승리한 주인공은 연합함대의 관람식에 참석하지 않고 고향 친구의 무덤을 찾는다. 이것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시바는 소설에서 포츠머스 조약의 내용뿐 아니라 조약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일으킨 ‘히비야 방화사건’도 다루지 않았다. 마치 전후 일어난 일은 모두 괴로운 것뿐이므로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언덕 위의 구름>은 72년에 신문 연재가 끝나고 같은 해 단행본 제6권이 출간되면서 완결됐다. 시바는 ‘낙천주의자의 이야기’를 쓰려 했지만 작품을 완성했을 때의 기분은 매우 암울했다. 러일전쟁의 승리는 그로부터 40년 후의 일본 패전을 초래했다고 시바는 생각한 것이다. 96년에 세상과 이별을 고한 시바는 생전에 <언덕 위의 구름>의 드라마화를 거절했다. 그 작품이 드디어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소설 판권을 가진 출판사와 NHK 출판부는 시바와 관련한 잡지 특집호와 책을 각각 출간했다.

뜨거운 관심이 집중되는 한편으로 드라마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국병합 100년을 맞는 시점에 시작해 2011년까지 방영하는 것은 의도적인 게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이 그것이다. 앞서 조선 역사에 정통한 학자 나카쓰카 아키라는 시바의 역사인식에 의문을 제기한 책을 지난해 8월에 내놨다. 그는 시바가 메이지시대는 좋았지만 쇼와시대는 좋지 않았다는 기계적인 역사관을 세웠다며 <언덕 위의 구름>이 ‘조선’을 다루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청일전쟁 때 일본군이 저지른 조선왕궁 점령과 동학농민군 몰살작전, 그리고 민비(명성황후) 살해사건 등을 무시한 채 메이지시대 일본을 얘기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실은 필자도 시바의 <언덕 위의 구름>을 의식해 일본이 러일전쟁을 어떻게 일으켰는가라는 주제로 한 책을 구상해왔다. <러일전쟁 기원과 개전> 상권을 지난해 12월18일 출간한 것은 NHK의 드라마 방영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하권은 오는 23일 나올 예정이다. 필자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러시아와 싸우는 것이 숙명적이고 국민적인 과제였다고 판단한 일본인이 전쟁을 위해 필사적으로 준비했다는 것이 역사의 진실이라 보고, 그러한 인식은 역사적으로 옳았는지를 묻는 것이다. 시바는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제국은 이미 시베리아를 손에 넣고 연해주와 만주를 넘어 조선에까지 그 여세를 몰아가고 있었다. 일본은 절실했다. 조선을 차지한다기보다 조선을 다른 강국에 빼앗기면 일본 방위가 위태해지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러시아가 조선을 침략하려 했고 일본은 러시아에 조선을 빼앗기는 것을 허용할 수 없었다는 게 시바의 생각이다. 일본은 조선을 지배하에 놓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일본은 유신에 따라 자립의 길을 선택한 이상 타국(조선)을 괴롭혀 국가 자립을 꾀해야만 했다. 일본은 이러한 역사적 단계로서 조선을 고집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 이를 버리면 조선뿐 아니라 일본도 함께 러시아에 먹히고 만다.”

이렇게 말한 시바는 작품에서 조선 자체에 대해선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한국은 어쩔 도리가 없다. 500년 역사를 이어온 이씨 왕조의 질서는 이미 노화됐기 때문에 한국 자신의 의사와 힘으로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능력은 전혀 없다고 말하는 편이 낫다.” 시바는 이것만 언급했다. 또한 동학농민군과 관련해 서술한 전봉준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유일한 조선인 이름이다. 청일전쟁 전부터 러일전쟁에 이르기까지 왕의 자리를 지켰던 고종에 대해선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의 왕비이자, 왕궁 안에서 일본인에게 살해된 민비의 얘기는 찾아볼 수 없다. 시바는 러시아의 위협만을 강조한다. “러시아의 태도에는 변호해야 할 부분이 전혀 없다. 러시아는 일본을 의식적으로 죽음에 몰아넣고 있었다. 일본은 궁지에 몰린 쥐가 됐다. 사력을 다해 고양이를 무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시바의 이런 시각은 60년대 일본인의 견해이자 실제로 러일전쟁을 경험했던 당시 일본인의 역사관이었다. 그 시대 일본인은 신문을 통해 한국에서 벌어진 일을 매일 접하고 있었다. 1면 톱기사로 한국 정치 이야기를 다루는 일이 흔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은 한국인의 마음을 이해하지 않았다. 이 점에서 시바의 소설 세계는 당시 일본인의 인식과 궤를 같이 한다.

메이지시대 일본인 인식 해체필요
필자가 러시아 문서관에서 자료를 꼼꼼하게 살핀 결과 얻은 결론은 이렇다. 일본인은 문명개화, 부국강병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대외팽창이 필요하다고 보고 조선에 대한 야망을 품었다. 이웃 국가를 지배하고 침략하는 것은 비정상적 행동이라고 판단한 일본인은 러시아가 조선을 침략하려 하기 때문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일본이 조선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즉, 러시아 침략설로 자신들의 조선 침략을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정당화한 것이다. 고종은 1880년대 중엽 청나라와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러시아를 방패로 삼아 저항했다. 철저하진 못했지만 러시아는 ‘일본이 조선을 보호국으로 삼는 것을 승인하는 협정은 맺지 않는다’는 태도를 고수해, 중립국이 되겠다는 한국의 뜻을 지지했다. 러일전쟁의 기원은 이러한 3자 관계 속에 있다. 이처럼 역사를 새롭게 직시하면서 시바와 메이지시대 일본인의 역사인식을 해체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언덕 위의 구름’이 이웃 국가의 병합으로까지 치달은 심각한 과정을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TV 드라마 <언덕 위의 구름> 제1부는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다. 민비 살해사건은 사진을 이용해 설명했다. 그렇다고 문제시되는 시바의 역사관이 드라마에 노출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를 본 시청자가 어떻게 생각할지가 관건이다. NHK에서는 지난해 특별 프로그램 <일본과 조선 2000년>을 통해 고대부터 이어져온 양국 관계의 역사를 진지하게 재평가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과 통신사 얘기를 다룬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오는 4월부터는 새 프로그램 <한국병합 100년>에서 고종 시대부터 지금까지의 문제점을 되짚는다. 이러한 노력으로 일본 국민이 역사인식을 새롭게 고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필자의 책도 이런 변화에 일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10. 02. 02. 

 

P.S. 칼럼을 읽고 나니 1910년의 한일병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05년의 러일전쟁부터 알아두는 게 필수적이란 생각이 든다. 관련서들이 몇 권 출간돼 있는데, 언제 한번 도서관 나들이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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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선/한국의 입장에서 일본 근대의 계기로서의 서양 제국주의 비판을 어떻게 볼 것인가?
    from 혼자 사는 남자가 조용히 공부하는 곳 2010-02-03 16:49 
    로쟈 님이 옮겨 놓은 와다 하루키의 칼럼을 가지고 현재 새움에서 근동이물 세미나를 같이 하고 있는 네오풀 님과 리플을 좀 길게 나눈 리플을 옮겨 놓아 본다. 원래 리플이 붙기 시작한 곳은 지갱프(http://cafe.naver.com/think2wice/1367)이고 새움 근동이물 세미나 게시판(http://club.cyworld.com/51536042187/130358493)에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미 뒤늦었지만 그냥 블로그에는 닉네임으로 옮겨 놓..
  2. 근대와 근대극복 사이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2-06 21:11 
    출간시에 주목하지 않았다가 뒤늦게 관심을 갖게 되는 책들이 있다. 오늘 관내 도서관에서 대출한 고사카 시로의 <근대라는 아포리아>(이학사, 2007)도 그런 책이다. 필요 때문에 일본 근대사와 근대문학에 관한 책들을 주섬주섬 모아서 읽으려고 하는데, 이 책은 동아시아의 근대에 관한 상당한 다양한 주제들, 혹은 난제들을 다루고 있어서 지난주부터 새삼 주목하게 됐다.   경향신문(07. 11. 2
 
 
푸른바다 2010-02-02 17:02   좋아요 0 | URL
고려대 한승조 교수가 조선이 러시아가 아닌 일본에 병합된 것이 축복이라는 글을 썼다가 문제가 된적이 있었는데, 그의 관점이 아마도 시바 료타로로 대표되는 일본인들의 시각과 비슷했던 것 같군요.
동아시아 근대사는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한중일 3국의 관계도 재정립될 텐데, 기존의 낡은 시각으로는 새로운 변화들을 이해하고 선도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새로운 시각 속에서 남북문제와 친일파 문제도 해결해 나가야 할 듯 합니다...
가라타니 고진의 <역사와 반복>을 읽었는데, 참신한 시각이 돋보이더군요. 전적으로 그의 의견이 옳은 것은 아니겠고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좋은 참고는 되리라 생각합니다.

로쟈 2010-02-03 09:33   좋아요 0 | URL
참고할 책들이 몇 권 나와 있다는 건 이번에 알게 됐는데, 올해 좀더 나오면 좋겠어요...

노이에자이트 2010-02-02 21:07   좋아요 0 | URL
<언덕위의 구름>은 시중에 번역본이 있습니다.동서문화사 박재희 번역 <대망> 제 30권 째부터 시바 료타로 장편이 몇 개 있는데 <언덕 위의 구름>도 있습니다.길지만 박진감있는 좋은 작품입니다.아마 <대망>이라는 제목때문에 야마오카 소하치 것만 있는 줄 아는 사람이 많을 거에요.

로쟈 2010-02-03 09:32   좋아요 0 | URL
좋은 정보네요.^^ 한데, 그게 완역인가요? 분량이 다 들어갈 성싶지 않은데요...

노이에자이트 2010-02-03 16:18   좋아요 0 | URL
완역입니다.제1권은 청일전쟁부터 나옵니다.러일전쟁에 관해서는 전쟁 직전 제정러시아 말기의 궁중암투와 동아시아 정책이 상당히 자세합니다.전쟁 장면에서는 위에 소개한 쿠로파트킨이 참가한 전투도 자세히 나옵니다.

로쟈 2010-02-04 09:36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책이 상당히 두꺼울 듯합니다...
 
어떤 희미한 메시아적 힘

내일자 경향신문에 실리는 칼럼을 옮겨놓는다.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윤곽을 잡고 2시 가까이에 보낸 원고이다. 말미에 나오는 호손의 말은 어제 잠깐 훑어본 다니엘(대니얼) 네틀의 <행복의 심리학>(와이즈북, 2006)에서 재인용한 것이다. <성격의 탄생>(와이즈북, 2009)도 그의 책이다.  

경향신문(10. 02. 02) [문화와 세상]행복은 나비와 같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다.” 장편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서두를 여는 톨스토이의 말이다. 행복한 가정이 서로 닮을 수밖에 없다면, 그건 행복의 조건으로 생각하는 바가 사람들마다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적으로 궁색하지 않고 식구들이 건강하며 가정이 화목하다면 보통은 더 바랄 것이 없다. 그리고 이 정도가 행복에 대한 통념이라면 우리는 충분히 행복했다. 어느 한때였더라도 말이다.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던가를 한번 헤아려보시라. 나로선 먼저 생각나는 것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온가족이 가끔씩 콩나물공장에 가던 일이다.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콩나물공장이 있었고, 우리는 다섯 식구가 바구니와 양동이를 들고서 반찬거리를 사러 다녀오곤 했다. 그냥 가족 산책이어도 좋았다. 들녘 사이로 난 큰길을 걸으며 해 저물어가는 저녁 하늘을 보던 일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부모님이 아직 젊은 나이였고, 나는 여덟 살, 아래로는 두 살 터울의 두 동생이 있었다. 행복을 위해서 무엇이 더 필요했을까.

그렇게 치자면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어느 날도 행복했다. 월세를 살던 우리 집에 주인집에도 없는 세탁기가 들어온 날이다. 최신 세탁기를 아버지가 면세품으로 사오셨는데, 마땅히 놓을 자리가 없어서 방에 들여놓았다. 한데 호스가 짧았다. 다른 호스를 사다가 잇대고 나서야 처음 세탁기를 돌리게 됐다. 하지만, 호스의 연결부분이 수압을 견디지 못해 그만 터져버리고 말았다. 집안 바닥과 천장이 졸지에 물벼락을 맞은 꼴이 됐지만, 그래도 다들 유쾌했다. 이런 엇비슷한 기억이야 대개들 갖고 있을 법하다. 그건 적어도 우리가 행복했다는 얘기고, 또 행복이 인생의 목표라면 초과달성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 많은 콩나물’과 ‘더 좋은 세탁기’가 있어야지만 우리가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행복에 대한 얘기를 꺼낸 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얼마 전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상기시켜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치사상 면이나 군사 면에서 북한이 강국의 지위에 올라섰지만 아직 인민들에게 ‘흰쌀밥에 고깃국’을 먹게 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그리고는 최단기간 안에 ‘인민생활’ 문제를 풀어서 유훈을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말하자면 ‘흰쌀밥에 고깃국’이 북한식 사회주의의 과제이자 목표다. 북한의 경제난과 현실에 대한 이 ‘예외적인 시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는 이미 LA갈비에 비프스테이크도 먹고 있다고 응수해야 할까?

남한 또한 ‘흰쌀밥에 고깃국’이 부의 척도이자 행복의 조건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덧 옛날 얘기가 됐다. 아직도 저소득 빈곤층이 적잖게 남아있지만 국민 대다수에게 ‘흰쌀밥에 고깃국’으로 한 끼를 때우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슨 의미인가? 북한식 사회주의의 과제를 우리는 이미 달성했다는 뜻이다. 더불어 행복은 더 이상 미래의 몫이 아니라는 의미다. 여전히 ‘더 많은 행복’과 ‘더 높은 성장’을 위해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고, 한마음으로 함께 노력해야 한다면, 김일성의 유훈을 관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태도와 오십보백보다. 우리가 적어도 북한보다는 더 낫다고 으스대고 싶다면, ‘무지개 너머’를 좇는 일부터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주홍글자>의 작가 호손은 이렇게 말했다. “행복은 나비와 같다. 잡으려 하면 항상 달아나지만, 조용히 앉아 있으면 너의 어깨에 내려와 앉는다.” 

10. 02. 01. 

P.S. 애초엔 김일성의 유훈을 한국식 '먹고사니즘' 이데올로기나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와 연관지어 보려고 했으나 너무 거창한 듯싶어서 호손의 '행복=나비'론으로 마무리지었다.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에 대해서는 링크해놓은 글을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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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비의 알림
    from seoulrain's me2DAY 2010-02-07 10:33 
    “우리가 적어도 북한보다는 더 낫다고 으스대고 싶다면, ‘무지개 너머’를 좇는 일부터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 로쟈
 
 
2010-02-02 0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02 0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펠릭스 2010-02-07 0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독립운동가의 동상도 김일성 동상와 비슷하던데요.
 
로쟈와 함께하는 인문학 여행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로쟈와 함께하는 인문학 여행' 두번째 강좌 안내다. '니체에서 지젝까지'의 첫번째 강좌도 이제 중반을 넘어섰는데, '수강후기'는 아직 모르겠지만 신청시 반응이 좋은 편이어서 연이어 두번째 강좌까지 맡게 됐다. 박수칠 때 떠나라고 했듯이 반응이 좋을 때 그만두어야 하는데 또 요청을 거절할 수가 없어서 몇 가지 아이템을 제안했고, 그 중에서 '세계 명작 다시 읽기'가 채택됐다. 5주간 다섯 편의 작품을 읽게 된다. 소개의 멘트는 이렇게 돼 있다(http://www.hanter21.co.kr/jsp/huser2/educulture/educulture_view.jsp?category=academyGate7&tolclass=&searchword=&subj=F90724&gryear=2010&subjseq=0001 참조).  

로쟈와 함께 떠나는 인문학 여행, 그 두번째 여행은 '세계 명작 다시 읽기'이다.
문학 작품 중 우리의 생각을 풍성하게 해 줄 다섯 명의 작가와 그들의 대표저작 한 권씩을 선별했다. 세익스피어, 괴테, 카뮈, 베게트, 쿤테라가 바로 그들이다.
이번 수업에선 세계 명작을 단순히 읽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로쟈'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해 우리의 인문적 소양을 폭넓게 해 줄 것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광고용 멘트이고, 그냥 세계 명작 다시 읽기에 관심을 갖고 계시면서 여유가 좀 있으신 분들은 강의를 들어보셔도 좋겠다(참고로 수강정원은 35명이며 선착순 마감이다). 강의는 3월 한 달간 매주 수요일 저녁 7:30-9:30까지 신촌의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진행될 예정이다(중간 휴식이 있어서 보통 9시 40분쯤 강의가 끝난다). 강의 일정과 커리큘럼은 아래와 같다.   

1. 3월 3일_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세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인가(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 


 
2. 3월 10일_ 괴테, <파우스트>
: 파우스트는 무엇으로 구원받는가(파우스트와 근대적 욕망) 


 
3. 3월 17일_ 카뮈, <이방인> : 뫼르소는 과연 이방인인가(소외란 무엇인가) 


 
4. 3월 24일_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 절망과 구원 사이의 삶(부조리란 무엇인가) 


 
5. 3월 31일_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단 한 번뿐인 삶 vs 영원회귀(영원회귀란 무엇인가)    

 

10. 02.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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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2-01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이방인에 대한 일반적인 의견과 다른 의견을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이방인>은 출간 직후부터 너무나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으며, 우리 모두 그 책을 어떻게든 이해한 척 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합니다. 심지어 저자인 카뮈 조차도 책 발간 직후의 책에 대한 해석과 몇년 후의 해석이 달랐다 하네요... 물론 저보다 로자님께서 더 잘 아시겠지만. 흥미있는 강좌네요.. 멀지만 않다면 듣고 싶구만. ^^

로쟈 2010-02-01 23:53   좋아요 0 | URL
저는 카뮈도 자기 작품은 잘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닌가 싶어요.^^;

펠릭스 2010-02-07 07:32   좋아요 0 | URL
동감된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처럼 독서자가 적은 나라에서 한쪽으로 쏠린 경향이 있습니다. 결국은 그 나라의 독서문화는 독서 인구와 비례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외국책을 더 수이해야하는 것인지도 모르고요. 또한 비평문화에 대한 것도 국민성과 연관되어 있구요.

푸른바다 2010-02-01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템페스트, 파우스트 모두 새롭게 출간됐군요. 일단 표지가 매력적이네요.
<이방인>은 저에겐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소설 중의 하나입니다^^ 내용을 이해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 소설이 왜 이토록 유명한지, 왜 그토록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지 솔직히 아직 잘 이해 못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평을 읽어보았지만 견강부회란 생각이 들더군요^^ 평론에 씌여진 해설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더 설득력있는 소설적 장치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구요. 아무튼 퉁명스러운 뫼르소와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는 설정이 제게는 잘 와 닿지 않습니다. <시지프의 신화>는 이해할만 했는데, 카뮈가 깊이 있는 사상가로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저에겐 왠지 도스토옙스키를 좀 대중적 에세이 스타일로 반복한 것아닌가 (철학적 자살 -> 악령, 철학적 살인 -> 죄와 벌, 카라마조프)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로쟈 님이 어떤 설득력 있는 해석을 하실지 궁금해 집니다^^

로쟈 2010-02-01 23:54   좋아요 0 | URL
가라타니 고진이 사르트르와 카뮈 등의 프랑스문학이 러시아문학에 비하면 천박하다고 말한 적이 있죠.^^ 프랑스문학 애호가들은 '세련미'라고 부르지만요...

rolla 2010-02-02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 님 따라 러시아문학기행을 하다보니 요즘 머릿속에 러시아 영역이 새로 형성되서, 뇌의 새로운 부위가 활성화되는 듯한 즐거움이 지극합니다. 러시아문학을 읽다보면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고민스러울 때가 많은데, 강의 듣다보면 궁금했던 부분이 명쾌해지는 쾌감도 있고... 물론 러시아라는 나라와 러시아 문호들, 그 작품들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들도 흥미롭고요. 그런데 이 와중에 세계 명작 다시 읽기라니, 유혹적인 제안이네요. 러시아문학기행보다 기간도 짧고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어 더욱 견디기 어려울 듯 합니다. 제 경우에는 '다시' 읽는다기보다는 처음 읽는 작품이 더 많지만요^^;;

로쟈 2010-02-02 08:05   좋아요 0 | URL
아, 저희가 매주 뵙는군요.^^ 재밌게 들어주셔서 감사하고요, 3월에도 뵈면 좋겠습니다.^^;

2010-02-02 0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02 0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02 1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02-18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나에게 세계문학은 러시아인데..
에궁~좋아요.. 뭐 좋습니다. 빨리 한겨레에 접속해봐야겠군요^^

로쟈 2010-02-17 23:24   좋아요 0 | URL
닉네임도 그래서 '뻬치카'로 하셨나 봅니다.^^
 

서른을 넘는 고비에선가 나대로 짠 독서계획에서 '역사'와 '동양 고전' 쪽은 40대가 되면 읽기로 한 분야다. 너무 방대한 분야이기도 해서 시간적으로나 재정적으로 감당할 수가 없다고 판단해서다. 세월은 유수와 같아서 어느새 40대가 되고도 두 해가 더 지났다. 사실 재작년부터 은근슬쩍 준비는 해오고 있는데, 최근에는 중국사와 일본사 책들을 조금씩 긁어모으고 있다. 어디까지나 교양 수준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대로의 안목과 주관 같은 걸 10년쯤 후에는 가질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이다.   

부분적으론 중국과 일본의 근현대사 책을 몇 권 읽는 것이 올해의 목표이긴 하지만, 그와 병행하여 전체적인 그림도 그려보는 게 유익하면서도 필수적이다. 염두에 둔 책은 '통합적 지구사'를 표방한 신시아 브라운의 <빅히스토리>(프레시안북, 2009), 그리고 남경태의 '종횡무진 세계사' <역사>(들녘, 2008), 최근에 나온 시릴 아이돈의 <인류의 역사>(리더스북, 2010) 등이다. 모두 중학생 정도면 읽을 수 있는 책이다(중학교 때부터 세계사를 배우니까).       

시릴 아이돈은 <찰스 다윈>의 전기 작가로도 유명하다는데, 뜻밖에도 우리말로 번역돼 있는 책이다. <찰스 다윈>(에코리브르, 2004). 그리고 <인류의 역사>에 이어 <인류의 약사>(2009)란 책도 최근에 펴냈다. 분량도 비슷해서 어떤 차이가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인류의 역사>(원제는 <인류 이야기>. 곰브리의 <서양미술사>의 원제가 <미술 이야기>인 것과 비슷하다)에 대해서는 아래 소개기사를 참고할 수 있다.  



세계경제(10. 01. 16) 끝없는 전진? 숨겨진 퇴보!… '역사 발전론'에 경종

인류는 어떻게 진화해왔고 미래는 과연 낙관적인가. 인류가 거센 변화의 물결에 휩싸이면서 과거 인류는 어떻게 걸어왔는지 관심이 더 커지고 있다. 이 책은 15만 인류역사에서 전개됐던 도전과 좌절, 공존과 충돌, 발전과 퇴보의 사건들을 짚어본다. 



인류의 기원, 신석기 혁명, 종교의 탄생, 제국들의 흥망성쇠, 수레바퀴부터 인터넷까지 인간의 발명, 정치사상, 기술혁명 등 문명사의 패러다임을 바꿨던 주요 장면을 45개로 나눠 인류의 발전사를 추적했다. 전체적인 내용은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아시아 역사도 상당 부분 할애됐다. 특히 인간 생존의 물질적 토대가 된 두 가지 변화인 정주농업과 산업혁명을 깊이 다뤘다. 신석기 시대 세계 곳곳에서 등장한 정주농업은 문명의 근원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인간은 특정 지역에 정착해 촌락을 이룰 때까지 농사를 짓지 못했기 때문에 촌락은 진정한 의미에서 문명의 근원이라고 저자는 본다. 저자는 18세기를 전후해 유럽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을 신석기 혁명에 버금갈만한 획기적인 사건으로 본다.

산업혁명 자체가 순차적 과정의 결과가 아니라 행운의 변수를 가진 힘들이 뒤섞여 상호작용을 일으킨 결과였다고 파악한다. 단편적인 역사 지식을 하나의 큰 줄기로 엮어냄으로써 독자들이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는게 저자 시릴 아이돈의 말이다.

저자는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행복과 불행, 진보와 퇴보의 반복된 과정으로 파악하면서 중단없는 전진이 언제까지나 계속되리라고 믿는 역사 발전론에 경종을 울린다. "역사학도라면 누구나 지난 15만년간 인류가 겪은 퇴보의 횟수에 놀라고, 인간이 얼마나 허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거대한 힘을 지닌 자연 앞에서 미래를 운운하기 앞서 머리를 낮추는 자세부터 가져야 할 것이다"

인류 역사는 수많은 성공의 역사며 무한질주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발상지인 아프리카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간 인류는 달나라에도 한 발을 내딛고, 복제 동물을 만들어내며,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과거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바로 눈앞에서 현실로 이뤄지고 있고 그 속도는 체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류에게 치명적인 위험이 불어닥칠 가능성은 높아진다. 정치갈등, 종교갈등, 환경오염, 각종 범죄, 유행병 등 난제가 숨어있다. 저자는 다가올 미래를 낙관할 수만없기 때문에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해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인류는 그간 자연적이든 인위적이든 적지않은 실패를 경험했고, 같은 실책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군비제한이나 지구 온난화처럼 인간의 힘으로 해결가능 한 문제들을 슬기롭게 풀어가는 것이 당면과제라고 강조한다. 화산폭발, 지진, 치명적 전염병과 같은 것들이 인류의 진보를 가로막은 불가항력적인 요인이었다면 산업혁명에 따른 부작용,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 두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초래된 비극,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한 빈부격차등은 그 인위적 요인이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미래에 대한 최선의 예언자는 과거'라는 바이런의 말을 확인하는 작업이다.(정승양기자)  

10. 01. 31.  

P.S. 책은 참고문헌 해제도 포함하고 있어서 유용한데, 개설서로서 저자가 격찬하고  있는 책 두 권이 인상적이다. 하나는 얼마전에 번역돼 나온 <지도로 보는 타임스 세계 역사>(생각의나무, 2009). 리처드 오버리 편집인데, 2004년에 나온 6판을 평하면서 아이돈은 이렇게 적었다.  

"지도와 역사 백과사전의 결합물이라 할 수 있는 탁월한 책이다. 새 책은 새 책대로 비싸기는 해도 그만한 값어치가 있고, 헌책도 값이 싸므로 횡재를 만나는 셈이다." 

국역본의 경우 두 권의 한정특가가 18만원이니 '비싸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다. '잠자코 '헌책'을 만나는 '횡재'를 기다려야 할까. 보통 이런 유형의 책은 도서관에서도 자료실용이어서 대출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두번째 책은 J. M. 로버츠의 <펭귄판 신 세계사>(2004). 2004년에 4판이 나왔고, 2007년에 5판(증보판)이 나왔다. 분량은 1200쪽이 좀 넘는다. "현존하는 세계사 대요 중 가장 우수한 책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라는 게 아이돈의 평이다. <타임스 세계역사>도 나올 정도니까 이 책도 한국어판을 기대해봄직하다...   

P.S.2. <찰스 다윈>의 저자이기도 하니까 시릴 아이돈이 <인류의 역사>를 쓰면서 염두에 두었을 책은 <인간의 유래>일 것이다(책에서 두 차례 언급된다). 국역본 <인간의 유래>(한길사, 2006)가 나와 있지만, 새 번역본이 나온다는 소식도 있어서 나는 구입을 미뤄놓고 있다. 제이콥 브로노프스키의 <인간 등정의 발자취>(바다출판사, 2009)는 제목부터 <인간의 유래>를 뒤집어놓은 것이라 나란히 읽어볼 만하다(적어도 나란히 꽂아두어야 한다). 80년대에 범양사에서 출간된 바 있는 책인데, 재미 작가 김은국 씨가 번역에 참여한 점이 이채롭다.  

P.S.3. '인류의 역사'라고 약간 비틀어서 그렇지 '세계사'라고 하면 읽을 책들은 한정없이 늘어난다. <식민주의 흑서>(소나무, 2008)가 나왔을 때 관심을 갖게 된 마르크 페로의 <새로운 세계사>(범우사, 1994), 청소년들에게도 권장할 만한 사이토 다카시의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뜨인돌, 2009), 그리고 최근에 나온 캔디스 고처 등의 <세계사 특강>(삼천리, 2010) 등도 모두 리스트에 포함시킬 만하다. 일단은 갖고 있는 책들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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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10-02-01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류의 역사를 어디에서부터 읽어야 되는가를 생각하게 되더군요. 아프리카역사부터 읽어보는 것이 나을듯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총론적인 역사 흐름을 다시 읽고 각론적인 지역과 부분적인 역사를 분야별로 읽어내는 힘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로쟈 2010-02-01 14:55   좋아요 0 | URL
마르크 페로의 책이 아프리카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요즘 '거대사'들도 보통 그렇고요...
 

러시아의 여성 작가 빅토리야 토카레바(1937- )의 중편소설 <눈사태>(지만지, 2010)가 번역돼 나왔다. 내가 알기에 토카레바의 작품으론 <러시아 여성의 눈>(경희대출판부, 2005)에 실린 단편 <늙은 개>가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전부다(이 단편집에는 바실렌코와 울리츠카야, 페트루셉스카야 등의 작품이 더 실려 있다).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해설을 보니 현대 러시아인들의 일상생활을 담은 '세태묘사'의 대표적인 작가로 소개된다. 역자는 토카레바의 중단편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는데, 국내에서는 유일한 전공자이지 않을까 싶다.   

토카레바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현역 여성작가로 톨스타야, 페트루셉스카야, 울리츠카야 등과 함께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정도다. 이 중 톨스타야의 경우는 작품집이 두 권 번역돼 있고, 가장 기대를 걸고 있는 울리츠카야의 경우도 조만간 한두 작품이 소개될 예정인 것으로 안다.    

 

다시 토카레바로 돌아오면, '일상적 휴머니즘' 작가로 분류된다고 하는데, "고단한 일상에 지친 영혼들을 '살아있는 사랑의 작용 영역'으로 끌어들인다는 의미의 '일상적 휴머니즘'이란다. <눈사태>는 1995년에 발표된 작품인데, 흥미로운 건 2001년에 영화화되기도 했다는 점. "불륜, 욕망, 이혼, 가족의 해체, 마약, 알코올중독 등과 인간존재의 근원적 질문인 인간의 운명, 삶, 사랑, 행복" 등을 다룬다고 한다.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다고.  

주인공 메샤체프는 알코올중독자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멸시와 천대를 받았던 유년의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지만, 중년이 된 지금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며, 안정된 가정의 성실한 가장으로 나름대로 성공한 인물이다. 그러나 음악과 가족밖에 모르던 그에게 젊고 아름다운 률랴가 나타나면서 그의 인생은 한순간에 파멸을 향해 치닫는다. 결국 그는 느닷없이 밀어닥친 '눈사태'와 같은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욕망에 휩쓸려 여태까지 쌓아올린 삶의 모든 것을 상실해버리고(가족과 재산은 물론, 심지어 그의 음악적 재능까지도),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죄책감만을 안고 홀로 남게 된다.

한국형 드라마로도 잘 어울릴 만한 스토리다. 영화로는 어떻게 옮겼을까? 한번 찾아봐야겠다... 

10. 01. 31.  

P.S. 참고로, 내가 기대하는 류드밀라 울리츠카야(1943- )의 책들은 독어와 영어로 다수 번역돼 있다. 영역된 작품으론 <소네치카>, <메데이아와 그녀의 자식들>, <장례식 파티> 등이 알라딘에서도 검색된다. 외모에서부터 지성파 작가란 인상을 팍팍 심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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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10-01-31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변동과 이변 그리고 갈등 등이 호기심을 갖게 합니다. 영미문화권 외로 동아남나 일본문학,스페인 문학, 프랑스와 독일 문학 등을 비롯하여 제3세계 문학들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러시의 현대문학은 어떤 흐름인지를 여류작가의 작품으로 알 수 있겠군요.

로쟈 2010-02-01 14:56   좋아요 0 | URL
상대적 덜, 미흡하게 소개되고 있어서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