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는 시민을 위한 정치학 특강>(모티브북, 2010)이라는 다소 '구티'나는 제목의 책이 있다. 무슨 책인가 궁금했는데, 마침 저자 인터뷰 기사가 올라왔기에 스크랩해놓는다. 저자 박동천 교수는 서구 정치사상을 전공하고 퀜틴 스키너의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1>(한길사, 2004),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아카넷, 2006)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알고 보니 책으로는 '구면'이다. '사회적 자유주의'란 개념/입장이 눈길을 끈다.   



한겨레(10. 01. 28) "자유주의, 사회주의와 손잡을 여지 많아” 

2002년 노무현에게서 희망을 발견했던 유권자 가운데 300만~400만명은 5년 뒤 선거에서 이명박·이회창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이 사실은 한국사회 부동층의 우경화를 드러내는 지표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문제는 그런 우경화가 왜 그토록 급속하게 일어났는가 하는 점이다. 박동천 전북대 교수(정치학·사진)가 <깨어 있는 시민을 위한 정치학 특강>(모티브북)에서 규명하려는 것도 바로 이 문제다. 노무현을 지지하던 그 많은 자유주의자와 진보주의자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박 교수가 이 책에서 문제 삼는 것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네 가지 프레임이다. ‘마녀사냥’ ‘권력숭배’ ‘선견지명’ ‘집단생존’이란 프레임이다. 이 프레임들이야말로 “우리 정치의식을 편협하고 폐쇄적이고 피상적으로 만드는 원인”이라는 게 박 교수의 진단인데, 이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이 마녀사냥 프레임이다. “가짜 문제를 하나 찾아낸 뒤 언어적 분풀이를 영속시키는 경향”이자 “보기 싫은 일이 있으면 원인이 뭔지, 무슨 탈이 실제로 생기는지, 어떻게 고칠 수 있을지 등을 따지기 전에 무작정 그 징후를 말로만 공격해대는 증상”이다. 지역주의가 전형적 사례다.

“지난 20여년 동안 우리 사회에선 ‘지역감정’ ‘지역구도’ ‘지역주의’ 등의 구호들이 대표적인 분풀이의 과녁 역할을 했습니다. 보수·진보를 망라해 지식인들이 20년 동안 지역감정을 열심히 비난해온 결과 이제는 거의 모든 국민이 지역감정을 말하지 않고는 한국정치를 이해할 수 없다고 여깁니다.”

문제는 이런 경향들이 ‘가짜 문제’를 만들어 공론장에서는 지속적으로 그것을 공격하면서도 “사적 공간에서는 거기에 적응하는” 이중적 행위습성을 빚어낸다는 점이다. 교육 문제의 원인을 ‘대학서열화’로 돌리거나 사회위기의 근원으로 ‘신자유주의’를 지목하면서 정작 삶의 영역에서는 서열화된 대학 시스템이나 신자유주의 경쟁논리에 기민하게 적응하는 영악함이 그것이다. 이를 두고 박 교수는 “범사회적 정신분열증”이라 비판한다. 권력숭배나 선견지명(교조주의), 집단생존(민족주의)이란 나머지 프레임도 마찬가지다. 박 교수가 볼 때 이들 모두 “가짜 문제를 쫓아다니는 마녀사냥의 습성과 관계가 깊다”는 점에서, 진보진영이 결별해야 할 ‘보수적 편협성’을 대표하는 것들이다.  
 
이런 낡은 프레임에서 벗어난 새로운 제도적 지향점으로 박 교수는 두 가지를 제시한다. 절차적 민주주의와 사회적 자유주의다. 그런데 사회적 자유주의란 개념이 다소 생소하다. 박 교수는 “그 생경함이야말로 우리 사회 정치의식의 편협함과 폐쇄성을 보여주는 반증”이라 꼬집는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여러 갈래 중에는 서로 손을 잡을 수 있는 여지가 굉장히 넓”은데, 사회적 자유주의는 바로 “정치·사법의 자유주의”와 “소외계층의 복지”를 결합한 제도다. 그 사례를 박 교수는 19세기의 존 스튜어트 밀과 20세기의 케인스 등에서 찾는다.

“‘곤들매기(작은 물고기 등을 먹고 사는 연어과 민물고기)의 자유는 붕어에겐 죽음’이란 말이 있어요. 자유주의자가 이 측면을 도외시한다면 파시스트에 가까운 것이고, 사회주의자로서 절차를 배척한다는 것은 사춘기적 열사숭배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박 교수는 ‘제도의 변화’가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고 보진 않는다. 중요한 건 ‘공론의 변화’다. 공론의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도 제도를 바꿀 순 있지만, 이 경우 법률의 문구만 바뀔 뿐 사람들의 행태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요청하는 것은 공론과 제도의 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적 사고인데, 문제는 지금의 진보진영에선 그런 유연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가시화한 ‘반신자유주의 연대론’과 ‘반이명박 연대론’의 대립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히 편을 가르기 위한 명칭이란 것 말고 구체적인 내용이 있는지 회의적입니다. ‘신자유주의 반대’는 ‘자본주의 반대’와 마찬가지로 뚜렷한 정책지향을 담을 수 있는 문구가 아닙니다. ‘이명박 반대’도 적극적 가치를 표명하지 못하는 소극적인 저항 구호인 것은 마찬가지지요. 결국엔 진영 간의 주도권 다툼이 아닌가요?”

박 교수는 이러한 담론상의 대립이 실상은 자기 진영의 주도권 확보를 노린 정치적 욕망의 표현임을 서로가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쌍방이 상황을 이처럼 세속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뭔가 엄숙한 의미를 불어넣어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있다면” 타협의 가능성을 좁히고 결국엔 판을 깨는 것으로 귀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뉴질랜드에 체류중인 박 교수와의 대화는 이메일을 통해 이뤄졌다. 600쪽에 가까운 방대한 저작의 집필에 매달렸던 이유를 묻자 “한국정치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난 정부 말기 나는 일본 같은 체제가 결국 아시아의 정치모델로 고착되지 않을까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집단생존에 매몰돼 공장 부품처럼 일하는 개인들로 지탱되는 사회, 도덕이나 역사에 관한 상상력은 제한되고 손재주 또는 생산력으로 그럭저럭 버티는 사회 말이죠. 이는 민중의 요구가 임계점 가까이 가면 보수파가 선심 쓰듯 수용해 장기집권을 이어가는 엘리트 순환체제입니다. 이런 흐름을 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이세영 기자) 

10. 01. 28.  

P.S. 본문과는 별도로 이번주에는 눈에 띄는 인문번역서들이 많다. 비로소 새 '시즌'에 접어든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하이데거의 니체 강연이 새로/다시 번역돼 나오는데, 일단 <니체1>(길, 2010)이 출간됐다. 역자는 하이데거 전공자이자 니체 전문가인 박찬국 교수다. 그리고 알랭 바디우의 예술론 <비미학>(이학사, 2010)도 '인덕후'들의 입질감이다. 사회심리학자 세르주 모스코비치의 <다수를 바꾸는 소수의 심리학>(뿌리와이파리, 2010)도 '왠지' 관심이 가는데, 간단한 책소개는 이렇다.  

‘사회영향이론’으로 사회심리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석학 세르주 모스코비치의 대표 저작. 사회적 권위와 규범에 저항하는 적극적 소수가 사회의 변화와 진보를 이끈다. 동조와 복종의 심리학에서 이탈과 혁신의 심리학으로 살펴보는 저자는 다수 중심의 기존 사회심리학이 보인 성과와 한계를 평가하고 소수가 사회적 변화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그밖에 국내서로는 이진경의 '역작' <역사의 공간>(휴머니스트, 2010)과 김영민의 <김영민의 공부론>(샘터사, 2010)이 관심도서다. 다른 자리에서 언급한 김진석의 <더러운 철학>(개마고원, 2010)과 함께 이번주 리뷰가 기다려지는 책들이다...  

P.S.2. 지젝의 책도 돌라르와의 공저 <오페라의 두번째 죽음>(민음사, 2010)으로 스타트를 끊었다. 이왕이면 바디우와의 공저 <현재의 철학>(2009)도 소개되면 좋겠다. 랑시에르의 <미학 안의 불편함>(인간사랑, 2008)도 영역본이 <미학과 그 불만>이란 타이틀로 출간됐다. 책을 기다리고 있는데, 바디우의 <비미학>과 찍지어 읽어보려고 한다. 그것만으로도 얼추 2월의 독서 스케줄이 다 채워지는 듯하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이] 2010-01-28 15:40   좋아요 0 | URL
좋은책들 정말 많이 등장했군여ㅋㅋ정보 감사합니다~

로쟈 2010-01-28 18:28   좋아요 0 | URL
네,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네요.^^;

바밤바 2010-01-30 03:15   좋아요 0 | URL
김진석 교수가 또 책을 내나 보네요. 정녕 기대 되네요.^^;;

로쟈 2010-01-30 10:07   좋아요 0 | URL
이번주 한겨레에 서평이 실렸습니다...

펠릭스 2010-02-01 14:19   좋아요 0 | URL
한국사회 부동층은 실용주의적인 성향 때문일까요? 저자가 말하는 '이중적 행위습성'인 '범사회적 정신분열증'은 지젝도 언급하고 있더군요. 사회적 모순의 해결을 위한 '공론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토론 문화는 논증없는 주장이 많아 패거리화되는 성향이 있어요.
 
기술합성시대의 예술작품

오랜만에 학교에 와보니 건축전문 월간지 <공간(Space)>(506호)이 책상에 놓여 있다. 미술평론가 임근준의 <이것이 현대적 미술>(갤리온, 2009)에 대한 서평을 실었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 미술평론가 반이정씨가 꼽은 '올해의 미술책' 두 권이 진중권의 <미디어아트>(휴머니스트, 2009)와 바로 이 책 <이것이 현대적 미술>이었다. 우연찮게도 두 권에 대한 서평을 같은 지면에 썼다. 나름대로 책을 고르는 안목은 있었던 셈이다(서평대상은 편집자와 같이 고른다). 비록 두 권 다 너무 많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책이어서 개인적으론 좀 멀미를 느꼈지만... 

  

공간(10년 1월호) 이것이 현대적 미술 

<크레이지 아트, 메이드 인 코리아>(갤리온, 2006)를 통해서 “바로 지금 대한민국에서 어떤 종류의 현대미술이 펼쳐지고 있는가?”란 질문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는 미술평론가 임근준 씨가 세계미술의 동향으로 시야를 넓혔다. <이것이 현대적 미술>은 동시대 작가들이 무슨 생각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가를 소개하는 그의 두 번째 보고서다.   

왜 ‘현대미술’이 아니라 ‘현대적 미술’인가? ‘현대미술’이란 말이 좀 모호하므로 개념을 잠시 정리해보자. 미술계에서 ‘모던아트(modern art)’의 번역어로 쓰이는 ‘현대미술’은 폴 세잔 이후의 미술을 통칭하지만 보통은 20세기 전반의 미술만을 지칭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의 미술은 ‘전후미술(post-war art)’이란 이름으로 불렸고, 1980년대 이후의 미술을 가리키는 이름이 ‘당대미술(contemporary art)’ 혹은 ‘포스트-모던 미술’이다. ‘전후 미국 현대미술의 영웅’ 로버트 라우센버그에 대한 조명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으므로 이 책이 다루는 ‘현대적 미술’은 ‘전후 미술’과 ‘당대 미술’을 포함하는 ‘오늘의 미술’이다.  

‘오늘의 미술’은 과거의 미술과 어떻게 다른가? ‘오늘의 미술’이 지닌 여러 문제의 기원을 저자는 전후미술의 새로운 상황을 지탱한 두 가지 축, 곧 교육제도와 전시제도에서 찾는다. 일단 미술이 대학제도와 결합됐다. 거기에 현대미술 혹은 전후 미술만을 수집하는 미술관과 갤러리가 늘어나면서 전시 기회가 확대되고 많은 작품이 유통됐다. 그리고 비엔날레/트리엔날레 등의 전시가 유행처럼 늘어나면서 작가들에 대한 수요도 그만큼 커졌다. 그 결과 현대미술에는 현대문학이나 현대음악, 혹은 현대무용 등의 분야와 비교하여 ‘황당할 정도로’ 주요 작가가 많다. 이 책에서도 60여 명을 다루고 있지만, 저자가 처음에 작성한 목록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양적 팽창은 1980-90년대를 거치면서 부작용을 낳기 시작한다. 미술학교 수가 너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예비 작가의 수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났으며, 갤러리 수도 지나치게 많아지고 국제 비엔날레는 난립하고 있는 중이다. 2000년대 들어서 미술시장이 과열 양상으로 치닫자 많은 작가들이 ‘유행 논리’와 ‘시장 논리’에 휩쓸리게 되고 점차 예술적 혁신성을 잃어가게 됐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두 미술가의 반응이 이러한 상황을 잘 짚어준다. 먼저 전직 록 가수이기도 한 마이크 켈리의 말. “이제, 학생이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개인전을 열지 못하면, 자신을 낙오자라고 여긴다. 그들은 작가 생활로 먹고살 수 있기를 전적으로 기대한다. 나는 쓸모없는 놈이 되고 싶어서 미술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내가 젊었을 땐, 미술가 노릇이란 사회에서 정말 자신을 배척시키고 싶을 때나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현대 회화의 태두로 불리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탄식. “미술시장은 개들에게 넘어갔다. 러시아, 중국 등의 신흥 부자를 상대해야 하는데, 그들에겐 문화가 없다. 좀 느끼려면, 최소한 뭘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바로 그런 현실을 배경으로 하여 저자는 “현대예술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전후미술의 금자탑을 세운 작가, 아니면 당대미술의 승자로 미술사적 위상을 확립한 작가, 아니면 바로 지금 현대미술의 전선에서 각축을 벌이며 문제적 지점을 확보하는 데 성공작 작가”들의 사례를 통해서 답하고자 한다. 그 ‘너무 많은’ 사례들 가운데 하나는 1976년생으로 2002년 말에 <관찰을 통한 프랭크>란 첫 개인적으로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여성화가 데이나 슈츠이다.  



‘관찰을 통한 프랭크’ 연작은 “지구에 프랭크라는 백인 남자 한 명만 남았을 경우”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회화 실험으로 폐허가 된 암울한 상황하에서 원시적 삶을 연명해가는 마지막 생존자의 모습을 그림에 담고 있다. 이 ‘엉뚱한’ 연작을 통해서 작가가 던지는 ‘진지한’ 물음들은 이렇다고. “프랭크가 유일한 관객이라면, 내 그림은 여전히 예술일까?”, “내 그림을 통해서만 자아를 반추할 수 있는 프랭크는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이런 극단의 상황에서 문화란 무엇일까?”  

저자의 정의에 따르면, ‘오늘의 미술’은 “세계를 보는 방법에 관한 성찰을 담은 예술”이다. 거기서 ‘세계’란 일차적으론 미술이 처한 현재의 상황, 혹은 미술세계의 현실이 아닐까란 생각이 책을 덮으면서 들었다. 한 미술 월간지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2009년에도 ‘한국 미술계를 움직이는 인물’ 1위는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었다. 2005년 첫 조사 이후 5년 연속 1위다. 2, 3위는 각각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과 유희영 서울시립미술관장. 더 이상 특정 작가나 그룹이 아니라 미술관 운영자들이 움직여가는 미술, 그것이 ‘현대적 미술’의 상황이다. “오늘의 세계에서 미술은 무엇이고, 또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크레이지’하게 다시금 던져져야 할 지점이다

10. 01. 27.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니다 2010-01-27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학기 강의 준비 때문에 제 책상 위에도 이책이 놓여 있습니다. 몇몇 작가만 슬쩍 훓어 보았습니다만 말씀대로 너무 많은 작가 수 때문에 개략적인 소개에 그치고만 점이 좀 아쉽네요. 이정우씨나 반이정씨의 글 내용이나 스타일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호불호가 있겠습니다만 그들이 갖고 있는 미술에 대한 깊은 애정이 부럽기는 합니다.(뭐 제 오해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미술이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는 당위적 요구가 점점 남의 얘기처럼 느껴지면서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는 중년의 나이가 서글퍼지네요. 바깥에는 겨울비도 추적추적 거리는데 말이죠...그나저나 미술책은 저같은 동네 사람이 리뷰해야 되는거 아닌가요? ㅋㅋㅋ

2010-01-27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7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펠릭스 2010-01-28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색과 소리와 맛과 문자 등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습니다. 그중에 색에 대한 집착은 많은 은유나 코드를 꿈꾸게 합니다. 일정 화면의 색채와 형태에 숨겨둔 이야기로 새로운 상상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인데요. 색채를 통한 이야기를 소유하려는 장르중에 현대 미술도 활용된듯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화상은 시장원리의 주체같습니다.
 

요즘은 저녁 강의가 있어서 귀가 후에 정신을 좀 차리자면 자정이 넘는다. 매번 '어제' 일을 일기처럼 적게 되는데, 여하튼 어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글은 진중권의 칼럼이다. 사실 여러 불미스런 일들을 훌훌 떨치고(아마도 몇 가지 고소 사건만 정리되면) 3년간 외유를 떠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조금은 부러운 일이다), 어제는 그가 아직 한국을 뜨지 않았으며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걸 오랜만에, 여실히, 감동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만한 재치와 감각, 그리고 발군의 순발력과 사회적 의제에 대한 책임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 않나 싶다. 내가 먼저 읽은 건 PD수첩 재판결과와 관련하여 번역자인 정지민씨의 사과를 촉구하는 오마이뉴스의 기고 기사이고(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08323) 귀가 후에 검색해보니 정운찬 총리를 '충청부족 아바타'에 비유한 것이 또 화제에 올라 있다. 하여, 어제는 '진중권의 날'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진중권 없는 한국사회'는 아무래도 좀 심심하지 않을까? 오마이뉴스의 기사 일부와 아바타 발언에 대한 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나대로의 경의 표시다.    

오마이뉴스(10. 01. 26) 오역과 궤변, 정지민은 사과해야 한다

(...)검찰이 가진 증거(?)라고는 딱 하나, 정지민이라는 번역자의 증언이었다. 그는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여러 가지 믿을 수 없는 얘기를 했지만, 그 중 핵심은 아레사 빈슨의 가족이 의사로부터 MRI 결과를 CJD로 통보받았는데, (피디수첩 제작진이) 그것을 슬쩍 vCJD로 바꿔서 내보냈다는 것이었다. 번역자 정지민은 이 부분에 대해 대단히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얼마 전에 낸 책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내게는 방영되지 않은, 그러니까 빈슨 모친이 딸의 장례식 직후, PD수첩과의 인터뷰가 아닌 현지 코디와의 인터뷰에서 MRI 결과를 CJD로 통보받았다고 말하는 내용의 번역 파일이 있다 (202쪽) 나는 여기에, 내가 갖고 있던 일부 번역 자료 중 빈슨 모친이 딸의 장례식 날 현지 코디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MRI로 CJD 진단을 받았다'는 내용도 첨부했다. 기자는 왜 내가 이런 결정적인 자료를 진작 주지 않았는지 궁금해 했는데, 내가 '사실관계를 너무 일찍 밝혔을 경우에 대한 우려'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이 해명 방송 당일만을 목 놓아 기다렸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냥 '일단 검찰 조사에만 냈고…'어쩌고 하면서 얼버무렸다. 그리고 문자 메시지로 덧붙였다. '결정적인 자료일 수도 있죠.'" (210쪽)

문법적으로 비문(非文)에 가까워 알아듣기는 힘들지만, 대강 (1) 빈슨의 모친이 MRI 결과를 CJD로 통보받았다는 내용의 번역 파일이 있고, (2) 이는 검찰에만 제출하고 기자들에게 제공하지는 않았는데, (3) 그것은 이 사실이 새나갈 경우 행여 피디수첩 측에서 대응논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우려해서였다는 뜻으로 읽힌다. 정지민이 조중동의 기자들에게까지 비밀로 감추어 두었던 그 결정적 번역 파일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07:03) (여) 아레사는 MRI를 통해 CJD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쿱스펠트-야커병이라고 한다. 정말 잘 모르지만, 그에 대해 알아보려고 노력했다. 그 병이 내 딸을 내게서 뺏아간 것이라면 이것에 대한 더 많은 정보가 알려지길 바랄 뿐이다. 상실감을 정말 크게 느낀다."

그런데 이 부분의 원문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Well… Aretha had been diagnosed possibly through her MRI as having a variant of CJD, which is Creutzfeldt Jacob disease."

자기가 'a variant of CJD'를 그냥 CJD로 오역을 해놓고, 그것을 근거로 피디수첩에게 엉뚱한 죄목을 뒤집어씌웠다는 얘기다. 더 재미있는 것은, 딴에는 그 오역을 "결정적인 자료"로 생각하여 조중동 기자들에게까지 고이 비밀로 간직했다는 것. 그 모험이 얼마나 신났는지 책에다 자랑까지 해 놨다. 그런데 그 비장의 무기가 오역이었다. 얼마나 허무한가? 그래도 이 허무함 속에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그 '닭짓' 덕분에 검찰과 조중동이 단체로 관광버스를 타게 됐다는 것이리라.

억지와 궤변

자신의 오역이 드러나자 정지민은 다시 'a variant of CJD = CJD'라는 해괴한 주장을 들고 나섰다. 의학에서 'variant'라는 말은 그 병의 통상적 경우와 임상적 증세가 많이 다를 경우에 붙는 수식어이나, 일상에서는 간혹 'a type of' 혹은 'a kind of' 정도의 의미로도 사용된다는 데에 기댄 회피 기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언어학적 편법도 그녀를 곤궁에서 구원해줄 것 같지는 않다. 이 문제에 대해 일단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보자. 우석균 보건의료 정책국장의 말이다.

"백만명 중에 한두명 걸리는 s, f, i 등 세 종류의 CJD가 발견되고 난 뒤, 오염된 쇠고기를 먹은 인간에게서 발견된 CJD를 새로운 변종이라 하여 'new variant of CJD'라고 불렀고, 이후 'new'의 'n'이 떨어져 그냥 vCJD가 됐다." 

서울대 우희종 교수의 말이다.  

"학술논문에도 'a variant of CJD'와 'vCJD'를 병기해서 쓰며, a variant of CJD와 variant CJD를 같은 의미로 동시에 쓴다."

이름을 밝히지 말라는 한 의대교수의 말이다.

"통상 variant라는 표현은 인간광우병을 뜻하지만, 정확한 의미는 문맥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실제로 미국 농무부의 연방관보와 미국 질병관리센터의 문건에도 'a variant of CJD'는 곧 vCJD를 가리킨다고 나와 있다. 당시의 미국 신문도 그렇게 보도했다. (반면, CJD의 다른 유형들이 'a variant of'라는 표현과 더불어 있는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즉, "통상 variant라는 표현은 인간광우병을 가리킨다." 흥미로운 것은 조중동의 태도다. 그들은 그저 정지민의 궤변을 인용해 '카더라' 통신질을 할 뿐, 자기들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자기들도 정지민의 말이 억지임을 안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다면 복화술이 아니라 직접화법을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백번을 양보하여 "정확한 의미는 문맥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문맥은 어떨까? 정지민이 아무리 우겨도,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이 광우병에 걸렸을 것이라 생각했으며, 피디수첩과의 인터뷰에서도 그렇게 발언했다는 사실이다. 먼저 'a variant of CJD'가 언급된 장례식장 2권짜리 테이프에는 "인간에게 걸리는 광우병"이라는 부연설명이 나온다. 정지민이 보지 못한 다른 테이프들에는 이런 발언들이 나온다.  

"우리 딸이 vCJD에 걸렸다면, 매우 매우 희귀한 사례라고요. 지금까지 그런 경우는 3명뿐이고, 우리 딸이 그 셋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요." 
"아레사에게는 신경의가 있었어요. 그 신경의는 우리에게 MRI 결과를 통보해준 그 사람이지요. 그런데 그 사람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MRI를 통해 우리 딸이 vCJD가 의심된다고 했어요."  

상식적으로 아레사의 어머니가 제 딸이 vCJD에 걸린 게 아니라고 믿었다면, PD수첩에서 뭐 하러 미국까지 그녀를 만나러 가겠는가? 게다가 아레사의 어머니는 이 사건이 벌어진 후 피디수첩 측에 자신이 말한 'a variant of'가 vCJD를 가리킨다고 재차 확인해 준 바 있다.

우리 딸은 변종 CJD(vCJD)에 걸렸다고 의심되었었습니다. MRI 결과가 그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CJD에 포함됩니다. 그것은 변종(v)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CJD에는 다른 종류들이 있지만 항상 변종 CJD로 의심되었었어요. 그 진단은 MRI를 통해 내려졌어요. 진단을 내리는데 유용하다고 인정받은 실험방식입니다.

더 말이 필요한가? 발언한 당사자가 자기가 그 말로써 vCJD를 의미했다고 하는데, 번역자가 아니라고 우기는 것은 참으로 해괴한 일이다. (정지민의 주장은 기껏해야 왜 자신이 'a variant of CJD'를 CJD로 오역했는지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있을 뿐이다. 즉, "이러저러해서 제가 그만 착각을 했네요. 죄송합니다. 이해해주세요"라고 말할 때, 늘어놓을 얘기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아마도 아레사 빈슨의 가족이 병원 측을 상대로 낸 소장일 것이다. 피디수첩을 기소한 검찰을 관광 보낸 그 문건이다. 거기에는 아레사 빈슨이 병원에서 받은 진단명이 'variant Creutzfeldt-Jakob disease'라 명시되어 있다. 정지민의 입 하나만 바라보는 검찰이 제 힘으로 입수한 유일한 자료가 그 소장인데, 이 야심차게 입수한 그 자료가 결국 검찰의 관광 티켓이 되고 말았다. 더 황당한 것은 보수언론이다. 검찰이 이 소장을 입수했을 때, 보수언론에서는 그 소장에 아레사 빈슨이 MRI 진단 결과 CJD 판정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 분들은 도대체 뭘 보고 기사를 쓴 걸까? '오페라의 유령'이 아니라 '고소장의 유령'을 본 모양이다.

검찰에서는 그 소장이 "유족 측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제 와서 그렇게 말할 것이라면, 뭐 하러 외교라인까지 동원해 그 문건을 입수했는가? 미국에서 벌어진 민사소송에서 그것은 유족 측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검찰이 지금 하는 게 어디 그 재판이던가? 문제가 되는 피디수첩 재판과 유일하게 관계된(relevant) 사안은 '아레사 빈슨의 가족이 무엇을 주장하느냐'다. 이 주장을 피디수첩이 왜곡했다는 게 검찰의 기소 내용 아니던가? 아무리 마구잡이로 하는 기소라 하더라도 최소한 맹구 수준은 넘어야 하지 않겠는가?

순도 100% 청정 허위

정지민이 끝까지 a variant of CJD를 CJD로 옮기는 게 옳다고 우기는 근거는, 테이프에 아레사 빈슨이 광우병이 아닌 다른 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언급되어 있는데도 그 가능성들을 고의적으로 배제했다는 것이었다. 가령 2008년 7월 15일 문화일보에는 "번역자 정지민씨 또 새 사실 폭로"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랐다. 

MBC 'PD 수첩'의 광우병 보도 번역·감수자인 정지민(여·26)씨는 15일 "고 아레사 빈슨이 입원했던 메리뷰 병원은 빈슨에게 비타민을 계속 처방했다"면서 "이는 위장접합술(gastric bypass) 후유증을 의심한 처방인데, PD수첩이 사인을 인간광우병(vCJD)으로 몰아가려고 이 내용을 고의적으로 빼고 편집, 방송한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그가 a variant of CJD가 그냥 CJD를 의미한다고 우기는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런데 아주 허무하게도 이 주장은 법정에서 순도 100%의 청정 허위로 입증됐다. 판결문을 보자.   

(3) 정지민은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 또는 인터넷 카페 게시글에서, 자신이 번역한 로빈 빈슨의 인터뷰 테이프에는 아레사 빈슨이 위 절제 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했을 수 있거나 비타민 처방을 받았다는 사실이 언급되어 있는데도 피고인들이 이를 고의적으로 빼고 방송한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였다.(증제266호증의2, 제267, 268, 269호증) 그러나 정지민이 번역한 로빈 빈슨의 인터뷰 테이프는 물론 번역하지 아니한 인터뷰 테이프 어디에도 아레사 빈슨이 위 절제 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했을 수 있다거나 비타민 처방을 받았다는 부분이 언급되어 있는 것을 찾아 볼 수 없다.

이것만은 정지민 자신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정지민은 자기가 번역한 테이프에도 없고, 번역하지 않은 다른 테이프들에도 없는 얘기를 도대체 어디서 주워들은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2008년 <문화일보>의 기사에는 흥미로운 구절이 등장한다.  

정씨는 "전문가 조언과 메리뉴 병원 수술 집도의의 논문 등을 찾아본 결과, 위장접합술 시술 뒤에 비타민 B1의 흡수가 극단적으로 낮아져 뇌가 손상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그 후유증으로 '베르니케 뇌병변'이 발생, 사망할 수 있다고 논문에 적시돼 있다. 만약 사인이 베르니케 뇌병증이라면, PD수첩은 쇠고기는커녕 CJD 계열 근처에도 가지 않았을 병을 vCJD로 몰아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전문가의 조언"이라는 말이 나온다. 아레사 빈슨이 수술후 비타민 처방을 받았다거나 베르니케 뇌병변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는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사후적으로 조작한 기억이었던 셈이다. 이로써 정지민이 피디수첩의 목에 건 또 하나의 죄목도 결국 자기가 자기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허무 개그로 끝나고 만다. 그건 그렇고, 그 '전문가'란 분은 도대체 누구일까? 검찰, 보수언론과 더불어 이 '전문가'라는 분이 이번 해프닝에서 담당한 역할이 적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떤 분인지 매우 궁금하다.(...)  

단정적 표현을 사용한 것은?

검찰에서 의도적 오역이라 주장하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① "If she contracted it, how did she?"에서 if절을 빼고 번역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contracted'라는 말이 두 번 반복돼서 뺐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런 것은 자막 처리할 때 흔히 있는 일이다. 자막에 모든 말을 다 번역해 집어넣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검찰은 이런 데서도 '의도'를 의심한다. 이 엄격한 기준을 공평하게 적용하는 것은 어떨까? 가령...

검찰에서 문제 삼은 또 한 가지는 ② "Doctors suspect..."에서 suspect를 빼고 단정적 표현으로 번역했다는 것이다. 이게 의도적 오역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대목은 정지민씨가 직접 번역한 부분이었다. 얼마나 허무한가. 그렇게 오역의 의도가 의심스럽다면, 검찰은 마땅히 정지민씨의 '의도'부터 따져 물어야 하지 않을까? 검찰에서 문제 삼는 또 다른 표현은 ③ "could possibly have..."다. 그런데 이를 '걸렸다'로 번역한 부분 역시 정지민씨가 감수를 맡은 부분이란다. 그렇다면 검찰은 정지민이 감수 과정에서 이 부분을 걸러내지 않은 의도가 무엇인지도 따져 물어야 하지 않을까?

번역 대본 중에는 정말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이 있다. 가령 장례식 장에서 피디수첩이 아레사 빈슨의 친구에게 했던 질문이다.

Q: "아레사가 언제부터... " 
A: "언제 광우병이라고 생각이 들었냐고요? 지금은 모르지만 광우병이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일종의 형태가 원인이었다는 추측이 있다."

여기서 피디수첩은 명백히 빈슨의 병명을 광우병으로 단정하고, 빈슨의 친구를 상대로 유도심문을 하고 있다. 그런데 번역의 원문을 보자.

Q: "What do you think made miss Aretha Vinson sick?" 
A: "It's speculated Aretha had the mad cow in a human form. However I am not sure at this time, but that's what's been speculated to be. Some form, any form."
(Q: 아레사 빈슨이 무슨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세요? 
A: 아레사는 인간형태의 광우병에 걸렸다고 추정됩니다. 현재로서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것이 지금 추정되는 그의 병명입니다. 어떤 형태든.")

원문을 보면 위의 번역이 완전히 창작임을 알 수 있다. 이 엉터리 번역을 누가 했는가? 재미있게도 정지민이 했다. 아예 아레사가 광우병에 걸렸다고 단정을 하고 친구에게 유도심문을 하는 것은 정지민이다. 만약에 피디수첩이 이런 수준의 오역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난리가 났을 것이다. 의도가 불순한(?) 세 가지 오역에 정지민이 번역자로서, 혹은 감수자로서 연루되어 있다. 그야말로 해트트릭을 기록한 에이스로 검찰의 집중 마크를 받아 마땅하다.

검찰, 언론, '전문가'

"vCJD이니 CJD이니 이것도..사실 전 피디수첩팀의 해명은 정당하다고 봐요. 죽은 여자분 어머니가 계속 혼동해서 말하면서도, 결국은 인간광우병으로 의심하고 있었고요."

놀랍지만, 이것이 정지민이 이 사태와 관련 2008년 6월 25일 게시판에 올렸던 글이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그냥 '번역자한테 책임을 돌리는 듯한 피디수첩의 해명이 기분 나쁘다'는 얘기였다. 그것은 이해할 만하다. 나라도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정지민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문제는 조중동. 이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보수언론과 언론플레이를 하면서 정지민의 논리는 마구 자가발전을 하기 시작한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는 검찰과도 입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러다가 보니 그렇게 보수언론과 코드를 맞추어 가다 보니 결국 최초의 입장과 180도 달라진 얘기를 하게 된 것이다.

검찰이나 보수언론은 어차피 정지민의 입만 바라보는 상황이었다. 그 속에서 정지민은 의기양양해진다. 이번에 낸 책에서는 자기가 기자들 첨삭지도까지 해줬다고 온갖 자화자찬을 늘어놓은 모양이다. 그는 자신이 검찰과 언론을 마리오네트처럼 갖고 놀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진실은 그 반대일 것이다. 검찰과 조중동은 정지민을 이용하는 데에 이해관계가 있었다. 검찰에서 그의 증언을 무게 있게 들어주고, 보수언론에서 그의 발언을 비중 있게 다루어준 것은 그 때문이다. 달콤함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결국 그는 진실의 법정에서 홀라당 허위의 옷이 벗겨지는 망신을 당했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키운 데에는 검찰과 언론 외에 또 한 사람의 책임이 있다고 본다. 정지민은 지금은 거의 광우병 전문가처럼 행세하지만, 번역을 할 당시만 해도 사정은 달랐다. 가령 정지민의 번역파일에는 '크로이츠펠트 야콥 병'이 '쿱스펠트 야커 병'이라 표기되어 있다. 이게 단순한 오타란다. 하지만 '크로이츠펠트 야콥'을 '쿱스펠트 야커'로 잘못 치려면, 그 짧은 순간에 많은 수의 실수를 동시에 해야 한다. 가령 'ㅋ'을 친 다음에,

1. 모음 'ㅡ' 대신에 모음 'ㅜ'를 쳐야 한다.
2. 이어서 뜬금없이 손가락이 상단 맨 왼쪽 끝의 'ㅂ' 키로 가야 한다.
3. 자음 'ㄹ'을 빠뜨려야 한다.
4. 모음 'ㅗ'도 빠뜨려야 한다.
5. 자음 'ㅇ'을 빠뜨려야 한다.
6. 모음 'ㅣ'를 빠뜨려야 한다.
7. 키보드 맨 아래 칸의 'ㅊ' 대신에 맨 위 칸의 'ㅅ'을 쳐야 한다.
(하지만 불현듯 정신이 돌아와 '펠트'와 '야'는 정확히 쳐야 한다.
그러다가 다시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8. 모음 'ㅗ'를 모음 'ㅓ'로 쳐야 한다.
9. 자음 'ㅂ'을 빼먹어야 한다.

이런 오타를 칠 확률은, 원숭이가 타자 친 원고가 우연히 셰익스피어의 희곡과 일치할 확률에 육박한다. '쿱스펠트 야커'는 오타가 아니라, 'Creutzfeldt Jacob'의 미국식 발음을 귀에 들리는 대로 받아 적은 것에 가깝다. 이랬던 정지민이 갑자기 광우병 전문가나 되는 양 전문용어로 줄줄 늘어놓게 된 데에는 그가 밝힌 대로 "전문가의 조언"이 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민망한 것은 정지민이 여기저기서 상을 받고 다닌다는 것이다. '대한언론인회'라는 단체에서는 정지민에게 '2009 대한언론상 특별상'이라는 것을 수여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라는 곳에서는 그에게 '바른 사회를 지키는 아름다운 사람 상'을 주었다.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26살 꽃다운 나이의 여학생이 툭하면 여기저기에 행패 부리고 다니는 애국 깡패 할아버지들 상대로 강연을 다니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은 검찰대로, 언론은 언론대로, 전문가는 전문가대로, 우익단체는 우익단체대로, 정지민을 통해 자신들의 욕망을 실컷 충족시킬 뿐. 단물 다 빨린 채 법정에서 발가벗겨진 한 젊은이의 미래는 어쩌란 말인가?

앞으로 역사학을 공부하겠다고 하니, 마지막으로 같은 인문학도로서 한 마디 하겠다. 정말 장래가 걱정돼서 하는 말이다. 성경 출애급기에 이르기를 "네 이웃을 향해 거짓 증언 하지 말라."고 했다. 정지민씨, 이쯤에서 사과해라. 무엇보다도 자신의 장래를 위해서 거짓말의 행진은 여기서 멈춰야 한다. 앞으로 역사학도 그런 식으로 하겠다는 것인가?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리고 진실을 말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정지민씨는 지금 그 용기를 내야 한다.   

미디어스(10. 01. 26) 진중권, "정치권의 아바타는 정운찬 총리" 

26일 문화평론가 진중권 씨는 영화 <아바타>에 대한 여러 가지 평가와 의견을 내 놓았다.외국 영화인 <아바타>가 최초 천만 관객 돌파라는 기록을 세우자, 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서 진 교수를 인터뷰 했다.

이날 인터뷰에서 아바타 천만 관객 돌파의 의미를 묻자, 진 교수는 "한국만의 독특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밝힌 뒤,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부여했다.첫째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한 단계 올려놨다”는 것으로 “기존 CG의 고질적인 문제가 캐릭터들이 유령스럽게 느껴지는 문제”를 <아바타>는 실사처럼 보이도록 구현해 관객들이 '감정이입' 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두 번째로 3D 디스플레이를 들었다.“3D기술이 나온 지 몇 십 년 됐지만 멀미가 나고 현기증이 나는 그런 현상 때문”에 주목받지 못했지만, <아바타>의 경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많은 진전을 가져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 씨는 이러 저러한 의미 부여를 한다 해도 “결국은 영화라는 건 예술성에서 갈린다"며 ‘아바타 천만 돌파’에 대해 과장된 의미 부여를 경계했다. 이어 ‘언제쯤 <아바타>같은 세계적 대작이 한국에서 나올 수 있겠냐’는 질문에 진 씨는 “일단은 대작에 대한 열등의식에서는 벗어날 필요가 있다”며 “한국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것은 미국하고 우주산업을 놓고 경쟁하겠다는 것과 같다”며, 한국 영화가 나아가야 할 길이 아니라고 밝혔다.그 이유로 수억불 규모의 제작비가 소요된 <아바타>와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를 충무로에서 감당 할 수 있는 자본 규모가 아니라는 것이다.또한 심형래 감독이 세계 시장에 도전 했지만 실패한 사례도 언급했다. 또한 "<아바타> 같은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창의성이 밑받침 되어야 하지만 젊은이들의 희망 직업 1위가 공무원이고 그리고 카이스트 학생들은 의대 공부하고 있다”며 창의성을 키워내지 못하는 교육 현실을 꼬집었다.

진행자는 한국이 가지고 있는 우수한 정보기술(IT) 및 컴퓨터그래픽(CG)기술과 애니메이션 생산 세계 3위라는 `손재주`를 들어 영화가 미래 전략산업으로 부상할 기회라는 주장에 대해서 묻자, 진 씨는 “영화감독들한테 나라 먹여 살릴 의무를 주면 안 된다”라고 짧게 대답했다.이어 “그분들도 자기들 먹고 살기 힘들다”고 부연했다.

진 씨는 “아바타 한 편 만드는 게 현대 차 몇 만 대 수출하는 것에 해당한다, 제발 이런 기사들 좀 그만 썼으면 좋겠거든요. 아주 천박하게 들린다"며 “천박한 나라에서는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즉 “아무리 아바타가 헐리우드 영화이고 대중 영화라고 하더라도 그 밑에는 인문학 바탕이 깔려 있고 일본의 만화가 아무리 허접 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굉장히 깊은 인문학적 수준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행자가 현 정부와 유인촌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의 문화산업육성에 대한 평가를 묻자, 진 씨는 “다른 나라들 같은 경우에 지금 정보화 사회의 첨단을 향해 달리고 있는 마당에 지금 우리 각하께서는 혼자 삽 들고 70년대 산업화 사회로 지금 퇴행하고 계신다”며 “이분이 솔직히 문화적 마인드는 없는 분 아닙니까?”라고 반문한 뒤 “유인촌 장관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그런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이라는 데에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IT융합산업 해야 한다', 대통령이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는데 기억에는 제가 예술 종합학교에 있을 때 그거 하지 말라고 그러셨거든요. 그래서 뭐 다 자르고, 사람들 쫓아내고, 저한테도 뭐 강의도 절반 내 놓으라 이랬던 분들인데 갑자기 또 IT융합을 해야 한다니까 황당하다”라고 비판했다.

“정치권에 등장하고 있는 아바타와 영화에서 나타난 아바타와 좀 비교를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라는 진행자의 색다른 질문에 진 씨는 ‘정치권의 아바타’로 정운찬 총리를 꼽았다.“말씀 못 알아듣는 충청 부족들하고 소통하기 위해서 이제 충청도 유전자를 가진 아바타를 선택을 해서 그리로 내려 보냈지만 영화 <아바타>와는 다르게 도와주는 여자 친구도 없고, 반란도 일으킬 것 같지 않아 보인다"고 답했다.

‘정치권의 아바타’로 정운찬 총리가 거론되자 진행자는 세종시 문제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이에 진 씨는 ‘전 정권 전봇대 뽑기’라며 “쓸 데 없는 논란이고 순수한 국력 낭비”라며 “노무현 대통령 같은 경우에는 자기 세력이 없이 명분을 걸고 도박을 했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명분 없이 세력 걸고 도박을 하는 그런 스타일인 거 같다”고 말했다.(윤희상기자) 

10. 01. 27.  

P.S. 내가 마지막으로 읽었던 진중권의 근황 인터뷰 기사는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911241725455&code=900315 이다. "최근 중앙대, KAIST,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의 재임용에서 줄줄이 탈락한 그는 내년 초 한국을 떠날 작정이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다. 적어도 3년은 채우고 돌아올 셈이다."라고 했으니 얼마 남지 않았다. 말 그대로 3년간은 '진중권 없는 한국사회'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5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이조부 2010-01-27 08:35   좋아요 0 | URL

로쟈 쌤처럼 가방 끈이 긴 분들은 대체적으로 진중권을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는데, 선생님은 아니군요 ^^

진중권 아저씨는 자신의 전공분야를 열공해서 한 500명 정도와 공감 할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는데, 천박한 우리 사회가 그를 미학 전공자로만 내비두지 않는군요 쩝

로쟈 2010-01-27 08:43   좋아요 0 | URL
자기도 해야 할일을 대신, 도맡아 하고 있는 사람을 비난한다면 염치없거나 비겁한 일이죠. 스타일에 대해선 의견을 달리하더라도요. 우리가 10명의 진중권을 갖고 있다면 공론장의 풍경이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푸른바다 2010-01-27 09:14   좋아요 0 | URL
권력자들의 언어파괴 현상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른 지금, 저도 진중권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로쟈 2010-01-28 18:32   좋아요 0 | URL
그의 순발력에 가끔 놀랄 때가 있습니다.^^

페크pek0501 2010-01-27 11:42   좋아요 0 | URL
진중권님이‘정치권의 아바타’로 정운찬 총리를 꼽았다는 것이 놀랍군요. 정말 그런 것 같아서요. 진중권님답게 참 예리합니다. 교수임용 탈락 소식은 안타깝군요. 그리고 의외라는 생각이 듭니다. 진중권이 없는 한국사회는, 정말 좀 허전한데요. 미네르바 사건때 같은 속 시원한 멘트를 이제 어디서 들을까요. 외국 가신다니 그의 저작 몇 권 더 사봐야겠네요. 이런 글 오려주신 로쟈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냥 지나가려고 했는데 몇 자 적게 만드는 글입니다. 추천 누르고 갑니다.

로쟈 2010-01-28 18:31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 글이 안 올라왔기에 옮겨놓았는데, 뒤로 몇 분이 더 스크랩해놓으셨네요...

딸기 2010-01-27 17:17   좋아요 0 | URL
음... 자세히 읽어보니 놀랍군요.

a variant of CJD는 당연히 vCJD이지요. 그걸 그냥 CJD로 번역해놓고 자기가 맞다고 지금껏 우겼다니, 너무나 단순명쾌하면서도 황당한 스토리로군요.

로쟈 2010-01-28 18:29   좋아요 0 | URL
"너무나 단순명쾌하면서도 황당한 스토리"라는 걸 저도 이번에야 알았습니다..

펠릭스 2010-01-28 09:16   좋아요 0 | URL
정지민씨는 영국에서, 진중권씨는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군요. 정씨는 국내에서 대학을 보냈고 진씨는 독일에서 학위(?) 했습니다. 이제 한 사람은 외국에 나가 학위 공부를 계속할 것이며 다른 한사람은 경비행기 고급조정사 공부를 하게 됩니다. 이 두사람이 학창시절부터 경험하고 학습한 환경속에서 상황을 인식하는 자세가 다른듯 합니다. 진씨에게 초경량 비행기 조정에 취미가 없었다면, 정씨에게 여러 외국어 능통함이 없었다면 지금 사고방식에 독특한 표현들(?)이 있었을까 싶습니다. 사람마다 그들 나름의 특성이 있듯, 두 사람 각자 어떤 상황에 대한 인식 수준과 표현 방식있을 것같아요. 우리는 그들의 저서로 접할수 있지만요.

펠릭스 2010-01-28 09:34   좋아요 0 | URL
'아레사'에 대한 사후 검안(<인체 시장/로리 앤드루스.도로시 넬킨/궁리>)을 통한 확인검사(뇌의 병리조직학적인 또는 효소면역학적인 검사)도 필요한데요(하지만 미국인에 미국 병원이라). 한국의 병원에서는 MRI 의료장비 종류로도 진단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차별화를 부각시킵니다. 우리 사회의 '사실'과 '진실'에 대한 인식 문제같아요.

로쟈 2010-01-28 18:30   좋아요 0 | URL
정지민씨가 판사에게 공개질의까지 했더군요. 2심 판결도 기대가 됩니다...

펠릭스 2010-01-29 16:10   좋아요 0 | URL
예,,그렇군요..제 글의 빈틈을 채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꼼미 2010-01-28 01:07   좋아요 0 | URL
진중권씨가 비행기 타러 가신다니 읽고 있는 이창래의 Aloft 가 겹쳐지네요. 비행기 잘 타고 오셨음 좋겠네요. "천박한 나라에서는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없"지만 그 천박함을 그려내고 천박함을 극복할 단초를 제공하는 것도 영화를 포함한 모든 예술(코메디도 포함)이 아닐까 싶네요. 미국이라는 천박한 '때려 부시기'나 '멍청한 장난하기' 영화판에서 아바타란 영화가 나오는 걸 봐도 말이죠.

로쟈 2010-01-28 18:29   좋아요 0 | URL
우리도 가끔 좋은 영화가 나오긴 합니다.^^;
 

브라질 룰라 정부의 공과를 짚는 책이 지난주에 출간됐다. <브라질에서 진보의 길을 묻는다>(후마니타스, 2010). 저자인 조돈문 교수의 인터뷰 기사가 올라왔기에 스크랩해놓는다.  

 

한국일보(10. 01. 26) 조돈문 교수 "한국 진보진영, 룰라에게 배워야 합니다" 

노동자 출신으로 4수 끝에 2002년 좌파로서는 최초로 브라질 대통령에 당선됐고 2006년 재선에 성공한 룰라(65) 대통령. 올 연말이면 임기가 끝나지만 그에 대한 대중적 지지는 굳건하다. 지난해 9월 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은 80%를 넘었다. 그러나 룰라 정권에 대한 세계 진보 진영의 평가는 유보적이다. 과감한 사회복지정책의 시행 등 제도권 진보정당의 이상적 모델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변혁적 정책 실험이 부재했다는 반박도 나온다.  

양극화와 계급 문제에 주목해 온 조돈문(56)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는 근저 <브라질에서 진보의 길을 묻는다>(후마니타스 발행)에서 룰라 대통령과 브라질 노동자당의 공과를 소득불평등의 변화 추이, 계급별 지지도 등 다양한 통계로 분석한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을 분석한 책은 국내에서도 여러 권 나왔지만 이 저서는 국내 학자로서는 사실상 최초로 룰라 정권을 본격적으로 들여다본 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미국 유학 중 한국과 멕시코 노동계급 비교연구로 박사논문을 쓰는 등 일찍부터 중남미 연구에 관심을 기울였던 조 교수는 "1994년께부터 룰라를 주목해왔다"고 했다. 브라질 노동운동사를 정리한 이 책의 1장은 당시 쓴 논문이다. 그는 2002년 봄 브라질 대선 레이스에서 룰라가 선두를 놓치지 않자 그해 여름부터 포르투갈어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룰라가 취임한 2003년 이후 브라질을 6차례 다녀오며 글을 썼다.

조 교수는 "룰라 정권은 경제정책에서는 전임 우파 정권과 연속성을 지니되 상당 정도 차별성을 보여주었고, 사회정책에서는 두드러지게 차별적이었다"라는 평가를 내렸다. 긴축재정 운용, 고금리 유지 등이 전자의 예이고 저소득층 생계 지원, 무토지 농민을 위한 토지개혁 등은 후자의 예다.

불만족스럽긴 하지만 룰라 정권의 성공은 좌파와 중도우파를 포괄하는 국내 진보 진영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조 교수는 강조했다. "같은 시기 출범한 한국의 참여정부와 비교하면 공공부채는 5배 이상이었고, 한국은 외채가 수출규모보다 작았지만 브라질은 외채가 수출규모의 3배 이상이었습니다. 과감한 사회복지 예산을 쓰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지요. 룰라 정권이 자본주의 게임 규칙을 바꾸는 실험까지는 나아가지 못했지만 브라질의 불평등을 완화시키고 빈곤층의 규모를 줄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조 교수의 말은 자연스럽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친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룰라의 노동자당도 순수계급정당을 포기하고 대중정당을 표방하며 집권하기는 했지만 신자유주의 노선에 분명히 반대했습니다. 반면 우리 '진보' 정권은 보수 기득권 세력과 결합해 신자유주의 대동맹을 결성했지요. 그 결과 진보정당은 사회적으로 고립됐고요. 환란 이후 삶의 질이 악화됐는데도 시민들의 사회ㆍ정치의식이 보수화된 책임은 두 정권에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불만이 바로 진보 진영의 동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조 교수는 강조했다. "롤라는 저소득층 생계비 지원 프로그램 '볼사 파밀리아', 빈곤층 자녀 대상 학자금 지원 프로그램 '프로우니' 같은 성과를 보여주었기에 재집권을 할 수 있었습니다. 노동자당다운 트레이드마크를 보여준 것이지요." 조 교수는 또 롤라가 집권 전부터 지역에서 공공투자부문 예산을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결정하는 '참여예산제'등 차별화된 통치모델과 통치능력을 보여준 점도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진보 진영이 '새 세상이 올 것이다'는 말만 해서는 집권이 불가능합니다. 집권 전에 작은 변혁들을 실천해서 변혁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를 유도해야 합니다."  

비판사회학회, 한국산업노동학회 회장 등을 지낸 조 교수는 최근 진보적 학술단체 모임인 학술단체협의회 상임대표로 선출됐다. 그는 "우리 진보 진영이 브라질의 경험을 배우지 못하면 집권도 실패할 것이며, 집권하더라도 시행착오를 거듭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진보 지식인과 진보 정당이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방안을 궁리하겠다"고 말했다.(이왕구기자) 

10. 01. 26. 

 

P.S. 남미의 정세와 차베스에 대해선 국내에 몇 권 더 소개돼 있다. 과대평가된 면도 있는데, <레닌 재장전>(마티, 2010)에서 지젝이 지적하는 차베스의 한계는 '오일 머니'다.  

"차베스의 한계는 다른 곳에 있다. 그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요인인 바로 그것, 오일 머니다. 석유는 당장의 저주는 아니더라도, 언제나 길흉이 뒤섞인 축복인 것처럼 보인다. 이런 오일 머니 덕분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도,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정말로 새로운 것을 발명하지 않고서도 그는 자신의 포퓰리즘적 태도를 계속 견지해나갈 수 있다. 돈은 실제로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행위, 곧 근본적인 변화를 연기하면서 (포퓰리즘적인 반자본주의적 조치들을 취하면서 동시에 기본적으로 자본가들은 건드리지 않고 내버려두는) 모순적인 정책들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준다.(반미적인 수사에도 불구하고 차베스는 베네수엘라와 미국 사이의 협약이 정기적으로 체결되도록 꽤 신경을 쓴다. 그는 실로 '석유를 갖고 있는 피델 카스트로'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딸기 2010-01-26 12:52   좋아요 0 | URL
음... 읽어봐야할 책이네요. 보관함으로...

로쟈 2010-01-27 08:45   좋아요 0 | URL
업무상 독서가 되시나요?^^

딸기 2010-01-27 17:38   좋아요 0 | URL
업무상 독서...를 해야하는데, 지난해부터 정말 너무 안 읽고 있어서..
올해는 좀 부지런을 떨어보려고요 ^^

로쟈 2010-01-28 18:32   좋아요 0 | URL
잔뜩 쌓아놓으셨더군요.^^

펠릭스 2010-01-26 22:52   좋아요 0 | URL
중남미는 엄청난 잠재력이 있는 곳이더군요. 미국의 비밀스런 방식이 쭉 진행되겠지만요.

로쟈 2010-01-27 08:45   좋아요 0 | URL
라틴아메리카 총서들이 나오고 있어서 그래도 사정을 알 수 있는 길이 넓어졌습니다...
 

이미 포스팅을 했지만 <레닌 재장전>(마티, 2010)이 출간된 김에 같이 읽어볼 책들의 리스트를 꼽아놓는다. 개인적으론 <지젝이 만난 레닌>(교양인, 2008)과 <레닌과 미래의 혁명>(그린비, 2008)에 이은 '레닌 3탄'이라고 부르는데, '세 번째'이기 때문에 매듭으로서의 의미도 갖는다는 생각이다. 그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주어지면 좋겠다. 이미지에 이어지는 내용은 출판사의 소개글을 발췌했다.    



잊혀진 이름, 레닌
『레닌 재장전』은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프레드릭 제임슨, 테리 이글턴, 토니 네그리, 에티엔 발리바르, 알렉스 캘리니코스 등 세계에서 손꼽히는 비판적 지식인들이 왜 하필 ‘레닌’이라는 이름 아래 모이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정치경제 체제가 되어버린 지금, 이 바깥을 상상하는 것조차 힘겨운 모험과 도전이 되어버린 지금 왜 그들, 그리고 우리는 레닌의 주위를 서성이는가? 세계 각국에서 레닌의 동상이 철거되는 이미지처럼, 레닌은 1989년 현실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하면서 가장 먼저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져야 했으며, 몰락한 사회주의의 잔해더미 아래에서 영원히 묻혀 있어야 했던 인물이었다. 레닌은 영화 「굿바이 레닌」에서처럼 아직도 사회주의의 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물을 위한 허상일 뿐이었다.

마르크스가 아니라 레닌
잊혀진 레닌과 대조적으로 마르크스는 고전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공산당선언』 해설서에 붙은 ‘고전강의’라는 표현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국내 현실정치에서 ‘공산당’이라는 단어가 지닌 불온함을 여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마르크스는 저자들의 표현대로 전혀 위험하지 않도록 완전히 ‘살균’된 마르크스이기 때문이다. 인문사회과학 전문 출판사로 유명한 영국의 한 출판사에서 기획한 세계의 혁명가 시리즈(국내에도 번역되었다)에도 ‘레닌’의 자리는 없다. 스탈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순교자 트로츠키의 자리는 마련될 수 있지만 스탈린과 함께 사회주의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까지 없애버린 레닌의 자리는 망각이 아니면 외면일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쿨한 혁명가라는 이미지로 소비되는 체 게바라는 또 어떤가. 그렇다면 어떻게 레닌은 무력감에 빠진 진보진영을 위한 강장제가 되는가? 

레닌의 제스처
레닌을 재장전한다고 해서, 새로운 담론으로 레닌에게 씌워졌던 혐의를 가리겠다는 뜻은 아니다. 지젝은 스탈린주의가 궁극적으로 우발적인 일탈에 불과하다는 유혹과 공산주의가 본질적으로 전체주의적이라는 유혹을 동시에 거부해야만 우리가 레닌의 유산을 전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레닌 재장전』은 레닌의 저술을 꼼꼼히 배워야 할 고전적 텍스트로 설명하거나, 레닌의 행동을 지금 상황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지침으로 제시하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오히려 저자들은 레닌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잊고 있던 것들을 환기하는 데 주력한다. 정치, 행동, 개입, 당 등등. 그래서 각각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레닌 재장전』에 참여한 저자들은 한 가지 관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레닌은 기존의 생기 없는 이념적 좌표를 중지시키고, 우리가 처한 사고금지를 무력화시키는 자유를 의미한다. 간단히 말해 레닌은 우리가 다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레닌 재장전- 진리의 정치를 향하여
알랭 바디우 외 지음, 이현우 외 옮김 / 마티 / 2010년 1월
22,000원 → 19,8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00원(5% 적립)
2010년 01월 26일에 저장
품절
지젝이 만난 레닌- 레닌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슬라보예 지젝.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레닌 외 지음, 정영목 옮김 / 교양인 / 2008년 5월
32,000원 → 28,800원(10%할인) / 마일리지 1,600원(5% 적립)
2010년 01월 26일에 저장
절판
시차적 관점- 현대 철학이 처한 교착 상태를 돌파하려는 지젝의 도전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서영 옮김 / 마티 / 2009년 3월
37,000원 → 33,300원(10%할인) / 마일리지 1,850원(5% 적립)
2010년 01월 26일에 저장
품절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슬라보예 지젝 지음, 박정수 옮김 / 그린비 / 2009년 8월
35,000원 → 31,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7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내일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10년 01월 26일에 저장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푸른바다 2010-01-26 01:48   좋아요 0 | URL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 에드먼드 윌슨의 <핀란드 역으로>, 알튀세르의 <레닌과 철학>도 함께 읽어보면 좋지 않을까요?^^

로쟈 2010-01-26 08:55   좋아요 0 | URL
'레닌 읽기' 리스트는 따로 만든 적이 있습니다.^^

펠릭스 2010-01-26 22:52   좋아요 0 | URL
레닌의 사상은 어디서부터 출발했을까 궁금했습니다. '슬라보예 지젝'의 시각에 대해서도 더 궁금해집니다.

로쟈 2010-01-27 08:47   좋아요 0 | URL
<레닌 재장전>은 좀 어려운 편이고, <지젝이 만난 레닌>부터 시작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