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관심도서로 추가한 책은 세실 라보로드 등의 <공화주의와 정치이론>(까치, 2009)과 베르나르 마리스의 <케인즈는 왜 프로이트를 숭배했을까?>(창비, 2009)이다('케인스'와 '케인즈'조차도 고유명사 통일이 어려운 모양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리뷰가 뜨지 않는데, 공화주의의 개념을 풀어주는 책들을 보완/심화시켜줄 수 있을 듯싶다.   

 

후자의 경우엔 리뷰기사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저자는 <무용지물 경제학>(창비, 2008)을 쓰기도 했는데, 프랑스의 경제학 교수이자 저널리스트라고. 로버트 스키델스키의 평전 <존 메이너드 케인스>(후마니타스, 2009)에 대한 보충으로도 읽을 수 있을 듯싶다.

 

목차와 리뷰만 읽어도 대충 어떤 주장을 펼치고 있는지는 감을 잡을 수 있다. 리뷰기사를 하나 스크랩해놓는다. 원제는 <경제학 안티매뉴얼>인데, '안티매뉴얼'이란 타이틀은 시리즈감이다(국역본 두 권은 이 <안티매뉴얼 1,2>를 옮긴 모양이다).  

경향신문(10. 01. 09) 돈만 숭배하다 자멸할 것인가

케인스(1883∼1946)가 프로이트(1856~1939)를 숭배했다니? 두 사람 모두 천재적인 사상가이지만 한 사람은 경제학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정신분석학자인데 둘 사이를 연결시키는 것이 있었던가? 혹시 케인스에게 동성애적 취향이 있었기 때문에 성적 욕망이라는 키워드로 인간의 정신세계에 접근했던 프로이트와 연관됐던 것은 아닐까? 프랑스 파리8대학 경제학 교수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서문에서 ‘자본주의라는 모험을 선택함으로써 우리는 자멸을 택한 것일까?’라고 묻고 ‘케인스와 슘페터처럼 프로이트에 심취했던 위대한 경제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고 답함으로써 야릇한 날개를 펼치려던 상상을 접게 만든다. 



그렇다고 독자의 궁금증을 바로 해결해 주진 않는다. 저자는 오히려 인간을 노예로 만든 자본주의의 사악한 작동원리,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뻔뻔함, 인간의 합리성과 완전자율경쟁시장이라는 자유주의 경제학의 사기성을 철학적 해학으로 가득찬 현란한 문제로 헤집으며 뜸을 들인다. 프랑스어 원서가 ‘거꾸로 보는 경제 설명서(Antimanuel d’Economie)’ 정도의 평범한 제목을 달고 있으므로 저자를 탓할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케인스는 돈의 축적이 부도덕하고 더럽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목표와 제한이 있어야 하고 성공한 삶이란 모든 자본이 그 주인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삶이기 때문이다. 돈이 돈을 만드는 운동은 인류가 자연과 신에 도전하고, 돈이 인간을 삶에서 축출하는 거대한 모험으로 이끈다. 자본이 인간을 지구에서 몰아내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아마도 돈은 행복을 가져오지 못할 텐데, 특히 돈은 욕망의 근원에 다가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인간이 돈에 집작하는 것은 돈이 죽음의 공포에서 구원해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과는 죽음의 충동이다. 이 그림은 쾌락에 빠진 인류의 종말론적 결과를 암시하는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제단화 ‘쾌락의 정원’의 일부다.(스페인 프라도 미술관 소장)

그렇다면 케인스는 프로이트의 어떤 점을 숭배했던 것일까. 책에 따르면 케인스는 버지니아 울프 등이 참여한 ‘블룸스버리(Bloomsbury)’라는 예술가·지식인 그룹에 몸담았다. 이 그룹은 프로이트가 내놓은 파격적인 이론에 심취해 있었고 그의 저작을 영어권 국가에 확산하는 데 기여했다. 실제로 케인스의 저작에서는 ‘콤플렉스’ ‘리비도’ ‘우울’과 같은 프로이트식 표현이 자주 발견된다. 



프로이트에 대해 “풍부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놀랍고도 확고부동한 가설을 제시했다”고 극찬한 케인스. 우리는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케인스가 화려하게 부활했다는 얘기를 자주 접한다. 케인스주의자를 자처하는 폴 크루그먼이 노벨 경제학상을 타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만능주의’와 ‘합리적 인간’이라는 주술을 반복하는 자유주의자들이 여전히 경제학계를 주름잡고 있다. 인간 행동은 ‘야성적 충동’에서 기인한다고 말한 케인스는 그들에게 적이다. 

케인스는 ‘좋은 삶’을 위한 도구로서가 아니라 쌓아두기 위한 대상으로 돈을 숭배하는 사람들을 ‘구역질 나는 정신병에 걸린 사람들’이라고 혐오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먹고 사는 사람 가운데 이 병에 걸려 있지 않은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 왜 사람들은 돈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숭배하는가? 다시 말해 먹고 살 만큼 돈이 있는 사람조차도 돈에 대한 욕망을 자제하지 못하는가? 프로이트는 <토템과 터부>라는 책에서 동식물이나 물건에 대한 숭배는 현실에서 가장 위협적인 것을 부정하는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현실에서 가장 위협적인 것은 바로 죽음이다. 케인스는 미래에 대한 불안, 죽음에 대한 공포에 휩싸인 인간에게 불멸의 환상을 심어준 것이 바로 돈이라는 통찰을 프로이트로부터 건져 올렸다.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인간에게 사악한 환상을 심어줌으로써 스스로 돈의 노예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불안의 정신(경제)분석학’은 이자율에 대한 설명으로도 이어진다. 이자율은 경제학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일 뿐더러 일반인들의 경제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 이자율의 변동은 저축·투자·투기심리에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이자율이 미래의 소비나 쾌락을 포기하는 대가라고 생각했다. 케인스는 공포나 집단적 불확실성에 대한 가격에 다름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자본주의 경제의 작동원리에 대한 심대한 견해차를 내포한다. ‘인간의 이성 바로 아래에 두려움과 광기가 자리잡고 있다’는 케인스의 설명은 인간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자유주의 경제학 최고의 가정을 송두리째 깨부수기 때문이다. 

저자가 케인스와 프로이트를 중심축으로 펼쳐보이려 한 것은 자본주의와 인류의 음울한 미래다. 그들의 논리를 따라가면 자본주의는 죽음과 파괴에 대한 본능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미 체감하고 있는 환경 대재앙과 인간성 파괴에도 불구하고 눈 앞의 현금을 계산하기에 여념이 없는 인류의 모습은 이러한 염세적 전망을 귓등으로 흘려버릴 수 없게 만든다.

탈출구는 없는가. 케인스는 무의미하고 침울한 축적에 대한 해결책은 미적인 것, 즉 예술·아름다움·우정·포도주와 같은 삶의 질이 우선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 역시 경제학이 풀어야 하는 것은 복잡한 수학공식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초래한 인간의 불행을 설명하는 것이어야 한다면서 기술적 진보가 인류의 영생을 보장할 것이란 환상에서 벗어나 성장이 아닌 절약, 경쟁이 아닌 협력으로 경제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탈출구 치고는 순진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대재앙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더구나 현대의 최첨단 자본주의가 대공황을 연상시키는 금융위기와 함께 악마적 심연을 드러내고 있는 이때에 말이다.(김재중기자) 

10. 01. 09.  

P.S. 어제 올 들어 처음 배송받은 책의 하나는 요시카와 히로시의 <케인스 VS  슘페터>(새로운 제안, 2009)이다. 저자는 일본의 대표적인 케인지언이라고 하는데, 참고문헌을 포함해도 270쪽밖에 안되는 분량에 두 경제학자의 대표작과 경제사상을 잘 정리해주고 있다(케인스쪽에 관심이 있다면 박종현의 <케인즈 & 하이에크>(김영사, 2008)도 더 읽어볼 수 있겠다). 개인적으론 슘페터에 관심을 갖게 되어 주문했던 책. 그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현재 시중에서는 주니어 만화로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유감스럽다. 자본주의 멸망의 척도로 저출산을 들고 있는 '유니크한' 책이다. 예전에 삼성출판사 세계사상전집에 들어 있었는데, 편하게 읽을 수 있었을 땐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나이 들면서 읽을 책, 읽고 싶은 책이 점점 더 많아지는 건 '비경제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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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평]케인즈는 왜 프로이트를 숭배했을까?(베르나르 마리스/창비)
    from Habracadabrah 2010-01-10 21:38 
    번역서를 접할 때 종종 일어나는 일인데 책 제목이 말 그대로 '섹시' 그 자체여서 집어들지 않고는 못배기지만 막상 책장을 펼치면 전혀 딴판의 내용이 담겨 있곤 한다. 전혀 딴판은 아니더라도 원저의 제목은 평이한데 한국에 맥락에 맞추기 위해 책속 일부를 크게 부각시킨 제목이 나오기도 한다.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격이라고 할까? 이 책 역시 제목이 좀 뻥튀기 됐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지은이가 분명히 케인스와 프로이트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현실 자본주의..
 
 
펠릭스 2010-01-09 12:15   좋아요 0 | URL
인간의 믿음이 신이든 돈이든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출발한다면, 종교인에게 신은 더 높은 기쁨의 대상이기 때문이겠지만, 신을 부정하는 '도킨스'의 진화론은 '돈'과 더 관련되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돈'의 발명은 생존 유전자의 필연일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나 자신은 자본주의인가 사회주의자인가 공산주의자인가를 생각해봤습니다(쌩뚱맞게). 어떤 주의(이즘)라는 것이 조직 관리 시스템의 한 형태라하면 저 또한 자신을 관리하는 개인 시스템체라 궁금해집니다.

로쟈 2010-01-10 09:37   좋아요 0 | URL
돈과 진회심리의 관계는 흥미롭지만 더 설명이 필요할 듯싶습니다. 이즘은 자신이 지지하는 어떤 믿음이나 가치의 체계죠. 그걸로 자신을 다독이는 거라면 '관리'도 가능하겠구요...

꼬마요정 2010-01-09 14:39   좋아요 0 | URL
그래서 케인즈는 이자율보다는 동물적 감각을 더 사랑(?)했던 거군요.. 경제학이든 철학이든 무엇이든 왜 이렇게 복잡할까요.. 애초에 시작은 살고자 하는 바람과 행복하고 싶다는 바람이었을텐데...

로쟈 2010-01-10 09:38   좋아요 0 | URL
환경이 열악하고 인구가 많아지다 보면 단순한 바람도 복잡하게(만) 구현되는가 봅니다...

바밤바 2010-01-10 16:29   좋아요 0 | URL
이 책 볼까 말까 했는데 로쟈님이 추천해주셨으니 봐야겠네요.
생각보다 뻔한 내용이 아닌 것 같네요^^

로쟈 2010-01-10 17:03   좋아요 0 | URL
저도 실물을 본 책은 아니에요.^^;

노이에자이트 2010-01-10 16:42   좋아요 0 | URL
<자본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는 90년대 말에 완역본이 나왔어요.그 완역본에 '삼성에서 나온 것은 완역본이 아니다'고 나왔길래 그렇구나...했지요.

로쟈 2010-01-10 17:03   좋아요 0 | URL
삼성판 외에 다른 역자의 다른 번역본이 있는 건가요?

노이에자이트 2010-01-10 17:41   좋아요 0 | URL
예.정확히 기억은 못하겠는데 완역본이 있어요.그리고 원저의 마르크스 부분만 떼어내어 <마르크스 학설>이라고 나온 좀 얇은 책도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