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서 노동 3권을 빼야 한다는 발언을 해 '설화'를 빚고 있는(더불어 자신의 인지도를 확연히 높인) 박기성 노동연구원장이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다시 도마에 올랐다. 하지만, '전체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란 요구 자체는 본인의 발언 의도와 무관하게 전체 노동자의 새로운 연대를 위한 대단히 혁신적인 발상이 아닌가 싶다. "모든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의 전도된 형태로서 이 '비정규직화'는 '정규직화'와 같은 효과를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전체 노동자의 단일대오!). 그것은 정규직/비정규직 구분이라는 효과적인 노동자 계급 통제수단을 기꺼이 포기(?)하는 반자본주의적 발상이며, 뒤집어 말하면 사회주의적 발상이다. 모든 노동자를 정규직화하라는 주장과 같은 맥락에서 그것은 사회주의적 요구이기도 한 것이다. 문제는 발언 당사자나 현 정부가 그런 정책을 실행할 역량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 사회주의에 못 미치고 있는 것은 그들의 비전이 아니라 역량이다...    

경향신문(09. 09. 22) “박기성씨, 모든 노동자 비정규직화 주장”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헌법에서 노동 3권을 빼야 한다는 게 소신’이라고 말해 물의를 일으켰던 박기성 노동연구원장이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창조한국당 유원일 의원은 21일 보도자료를 내고 “박 원장이 지난해 8월 취임 이후 노동 3권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등 반노동 발언을 해왔다”고 밝혔다. 

유 의원은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박 원장이 취임 직후인 지난해 8월 노사관계연구본부 연구원들과 점심식사 중 ‘모든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등 수차례 공·사석에서 전체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를 주장하는 반노동 발언을 반복해왔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지난 17일 노동연구원에 대한 국정 정무위의 2008 회계연도 세입·세출 결산 심의에 출석, “사석에서 노동 3권을 헌법에서 빼는 게 소신이라고 말한 적이 있느냐”는 유 의원의 질문에 “사석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저는 그게 소신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한 바 있다.

박 원장은 2007년 <한국의 노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공동 저서에서 “노사정위원회 같은 사회적 합의주의를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 2월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이 한국노동연구원에 산별교섭 참가를 요구하자 “우리나라에서는 기업별 노조가 원칙이고, 산별노조는 인정할 수 없으며 내 학자적 양심이자 소신”이라면서 거부했다.

유 의원은 “박 원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연구소장이라면 반노동 언동을 이해할 수 있으나, 노동문제를 연구하는 국책연구원장으로서는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출신인 김성태 한나라당 의원도 이날 성명서를 내고 “노동 3권은 국민주권의 핵심요체”라며 “헌법체제에 도전하고 자유민주적 질서를 위협하는 후안무치한 발언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박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이인숙기자) 

09. 0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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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09-09-23 08:44   좋아요 0 | URL
저도 어처구니가 없는 한편 로쟈님과 비슷한 생각도 했답니다^^

로쟈 2009-09-23 17:45   좋아요 0 | URL
사실 허풍이어서 문제죠. 그럴 만한 능력도 없으면서...

펠릭스 2009-09-23 15:25   좋아요 0 | URL
머릿속 삽자루!

로쟈 2009-09-23 17:47   좋아요 0 | URL
'반노동'이니 삽자루도 아닌데요.^^

무해한모리군 2009-09-23 10:30   좋아요 0 | URL
전 그저 놀라웠습니다.
그 직함과 발언의 부조화에 --;;

로쟈 2009-09-23 17:41   좋아요 0 | URL
노동부 장관의 행태에서 익히 보아온 것인데요.^^;

빵가게재습격 2009-09-23 11:44   좋아요 0 | URL
그래도, 편견과 오만을 솔직히 말하는 '정직함'은 있군요. 입만 열면 '거짓말'인 파란지붕 사람들로서는 놀라운 인물기용인데요. 오랜만에 들립니다. 로쟈님 안녕하세요?^^

로쟈 2009-09-23 17:41   좋아요 0 | URL
원장은 비정규직인지 궁금합니다...

빵가게재습격 2009-09-23 20:07   좋아요 0 | URL
원장이 비정규직이 아니면 정직한게 아니라 패러독스가 된다는 뜻인가요...'모든 그리스인은 거짓말쟁이다'라는...^^;;;

로쟈 2009-09-23 20:05   좋아요 0 | URL
솔선수범한다면야 욕할 이유는 없겠죠...

이진이 2009-09-24 13:00   좋아요 0 | URL
노동연구원 선배한테 물어보니 연구소장은 3년계약의 비정규직이지만 전용차제공등 최상의 복지혜택을 누리고 있다네요. 글고 짤리면 다시 교수로 돌아가면 되니 tenure 보장 받는 정규직으로 돌아간답니다. 쿨럭~
근데 비정규직은 2년계약후 정규직 전환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3년 비정규직이면 실정법 위반 아닌가...

로쟈 2009-09-24 16:24   좋아요 0 | URL
대학의 비정규 박사처럼 그것도 예외적 비정규직인가 봅니다. 처우는 하늘과 땅 차이지만...

philocinema 2009-09-23 12:02   좋아요 0 | URL
생각과 발언이 일치하는,
가면을 쓰고 위장하지 않는,

이 시대 보기 힘든 솔직하신 분이군요!

그의 가문 문턱위 벽면엔 이런 액자가 폼 나게 걸려있을듯,

"너의 생각을 생각나는 대로 그대로 가감 없이 얘기하라!"

로쟈 2009-09-23 17:38   좋아요 0 | URL
비정규직 발언만큼은 사회주의적입니다. 저는 스탈린시대 강제적인 농업 집산화를 떠올렸어요...

델러웨이부인 2009-09-23 12:41   좋아요 0 | URL
어쩜 바로 제생각입니다. 모든 정규직을 비정규직화 해야 합니다. 정규직이 없으면 비정규직 차별도 없을테고 정규직들의 무능과 횡포도 해결할 수 있겠죠. 모두가 프리랜서이자 자영업자가 되는거져!!!

무해한모리군 2009-09-23 14:21   좋아요 0 | URL
일단 국회의원이랑 대통령부터 비정규직화했으면 합니다!

게슴츠레 2009-09-23 12:54   좋아요 0 | URL
일전에 몇몇 분에게서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었더랬죠. 모든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는 맑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꿈꾸던 그러한 사회가 아니냐고 농반진반으로 말씀하시더군요. 재밌는 생각이기는 하지만, 비정규직이라는 고용 형태으로 어떻게 생물학적/사회적 생존을 충분히 '안정적'으로 보장해 줄 수 있을 것인가 등, 로쟈 님이 '역량'이라고 말씀하신 부분의 조치가 뒤따르지 않는 한 그럴싸한 레토릭 이상이 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발상의 참신함에 미소짓기에는 약간의 쓸씁함이 들어 사족을 달아 보았습니다..

델러웨이부인 2009-09-23 17:17   좋아요 0 | URL
충분히 안정적으로 보장.. 이라는 말은 언제나 불가능합니다. 누가 누굴 보장한다는 말의 이면에는 지배자/피지배자의 구도가 숨어 있습니다. 누군가를 착취하지 않으면서 모두가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고 사는 세상 설계.. 불가능한가요?

로쟈 2009-09-23 17:37   좋아요 0 | URL
모두가 비정규직이라면 '비정규직 독재'도 가능한 '혁명적' 상황인 것이죠. 문제는 밀어붙일 능력이 없다는 것이구요...

카스피 2009-09-23 19:35   좋아요 0 | URL
사실 정규직,비정규직의 구분을 두는 것부터 우습지요.똑같은 일을 하는데 누군 정규직,누군 비정규직입니까.근로자들도 은근히 차별을 인정하는 것 같더군요.

로쟈 2009-09-23 20:04   좋아요 0 | URL
그게 핵심이죠.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지 않는 정규직 노조 같은 '분열'을 키워주니까요...

hereisnt 2010-01-18 13:24   좋아요 0 | URL
저 책 일괄적으로 받았는데 읽어야 되나 내내 마음이 묵직했습니다.
않읽어도 되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 지면서
저런 사람이 노동연구원장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정말 무거워 집니다.

로쟈 2010-01-19 09:56   좋아요 0 | URL
이후에 아마 사직한 걸로 압니다...
 

아침에 외부 강연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번주 <씨네21>에서 영화평론가 겸 감독 정성일씨의 인터뷰기사를 읽었다. 인터뷰어는 김혜리 기자. 데뷔작 <카페 느와르>에 관해 검색해보니 베니스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고 내달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후 일반개봉될 예정이라 한다. 상영시간이 무려 3시간 17분이다. 이 '리얼 시네필'의 영화세계에 대한 기대와 함께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김혜리가 만난 사람'은 주말에나 링크해놓아야겠다). 

뉴스엔(09. 09. 17) 영화평론가 정성일 감독데뷔작 베니스영화제 호평 

영화평론가 출신 연출자 정성일 감독의 데뷔작 영화 ‘카페 느와르’(제작 영화사 북극성)이 지난 12일 폐막한 제66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상영을 마쳤다. 비록 경쟁부문은 아니지만 비평가 주간 섹션에 진출한 ‘카페 느와르’는 관객의 열띤 호응과 관심을 받았으며 상영 후 관객들의 열렬한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런 관객들의 관심도가 현지 언론과 관계자들의 눈길을 더욱 잡아 끌게 했다. 독특한 형식미와 영화 곳곳에 감독이 의도한 기발한 정치적 의미들로 인해 신인감독의 작품이지만 걸작이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영화제 집행위원장 브르노 토리는 “독특한 형식미를 지닌 영화다”, 선정위원 안토 줄리오 맨치노는 “신인감독 작품으로는 보기 힘들 걸작이다”, 부위원장 겸 선정위원 프랑체스코 디 파체는 “영화 곳곳에 숨어 있는 정치적인 의미를 발견한다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 영화다”고 호평했다.

한편 ‘카페 느와르’는 오는 10월8일 개막하는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도 진출한 상태. 이는 베니스 영화제의 비평가 주간 섹션 진출에 이어서 두 번째 국제영화제 진출이다.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은 현재 한국영화를 대표할 만한 작품을 뽑아 상영하는 섹션으로 매년 그 해에 화제와 관심을 받은 한국영화가 초청됐다.

2008년 제13회에는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 등이 상영됐다. ‘카페 느와르’는 이번 부산 영화제를 통해 첫 국내 상영을 할 예정이어서 영화 관계자들과 팬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카페 느와르’는 슬픈 사랑에 중독된 영수(신하균)와 그가 죽도록 사랑하는 여인 미연(문정희), 그를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또 다른 미연(김혜나) 그리고 영수가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다시 만나는 선화(정유미)와 은하(요조), 다섯 사람의 사랑을 그린다.(홍정원기자)  

09. 09. 21.  

P.S. 기사의 마지막 문단 정도가 내가 얼추 들었던 영화의 줄거리인데, 인터뷰를 읽어보니 영화는 1,2부로 구성돼 있고 1부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기초한 것이라면 2부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에 토대한 것이라 한다. 감독은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서 영화의 시작점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고 하는데, 그의 초점은 멜로드라마가 아니라 <베르테르>에 나타난 계급 갈등이라고("영화 곳곳에 숨어 있는 정치적인 의미"란 이런 걸 가리키겠다). 영화의 두 부분은 어떻게 관련되는가? 

"아주 상투적으로는 두 부분은 각기 삶과 죽음입니다. 1부의 원작은 괴테의 18세기 독일 이야기(<베르테르>), 2부의 원작은 도스토예프스키의 19세기 러시아 이야기(<백야>)예요. 즉, 혁명 전 유럽과 혁명 뒤 러시아죠. 한쪽이 액추얼한 가능성이라면 다른 하나는 버추얼한 가능성이죠. 주인공 영수를 따라가면서 두 개의 시대정신이 어떤 방식으로 공존하는가를 보여주는 게 중요했어요. 어느 쪽에 마음을 기댈지는 관객의 선택이에요. 저는 우리 시대가 정치나 자본주의에 대해, 자기의 삶에 대해 너무 낭만적인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제발 그렇게 낭만적으로 보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영화 중간에 브레이크를 넣을 수밖에 없었어요." 

이 정도의 배경 지식을 갖고 영화를 봐도 좋겠다. 참고로 영화의 부제는 '세계 소년소녀 교양문학전집'이다.'이 영화를 이렇게 보아주세요'라는 가이드라인인데, 감독의 표현을 빌면, 이 영화를 볼 때는 '교양'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붙였다고. 나로선 좋아하는 배우 정유미의 출연작이기도 해서 더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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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화를 통해 완성된 책의 리얼리즘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12-27 23:34 
    '라캉'으로 검색을 하니 제일 먼저 뜨는 기사가 이번주에 개봉하는 영화 <카페 느와르>에 대한 소개평이다. 안 그래도 뒤늦은 개봉 소식을 접하고 한번 보고 싶던 차였다(지난주에 언론시사회가 있었고, 오늘은 VIP시사회가 열렸다고 한다). 이 참에 스크랩해놓는다.       무비스트(10. 12. 27) 영화를 통해 완성된 책의 리얼리즘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감독으로
 
 
philocinema 2009-09-21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어달전 홍상수 감독 '극장전'의 DVD를 관람하던중
comentary를 진행하던 정성일씨의
영화에 대한 놀라운 관찰과 깊이 있는 분석을 들으면서,

안 그래도 평소 그의 글에 매료되었던 저는,

'정성일씨가 직접 영화를 찍으면 어떤 영화가 될까'라는 설레이는
상상을 해보았었는데, 그의 영화가 제작되어 상영예정이라는 소식은
가슴을 쿵쾅거리는 설레임을 안겨 주는군요!

그런데 과연 그의 영화를 개봉해줄 개봉관이 충분할지를 생각해보면 암울합니다.
제가 사는 대전에선 올 봄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단 한군데의 멀티플렉스에서 딱 1주일만 걸고 내렸는데,
그나마 홍감독은 재야의 이름값이라도 있지...

여하튼 정감독의 영화를 대전서 개봉 않는다면
다른 지역에라도 달려가 보고 싶은 마음이 한 가득입니다.

PS: 극장에서 이미 보았지만 또 보고 싶고
관심 있는 주위 사람과도 영화를 나누고 싶어
주문했던 '잘 알지도 못하면서' DVD가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오늘 퇴근후 아내와 다시 보려합니다.
기다려집니다.


로쟈 2009-09-21 18:50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대중성이 강한 영화는 아닐 텐데, 상영시간도 길어서 정말 몇 개 극장에서나 개봉될 거 같아요...

마노아 2009-09-21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런데 혹시 카테고리 정리하셨나요? 뭔가 좀 사라진 느낌이...

로쟈 2009-09-21 18:43   좋아요 0 | URL
요즘 정리할 시간도 없는데요.^^;

마노아 2009-09-21 19:35   좋아요 0 | URL
확실히 서재지수는 떨어졌어요. 그래서 글을 숨겼나 했지요.^^

로쟈 2009-09-21 20:23   좋아요 0 | URL
마이리스트의 카운트가 잘못 돼 있는데요...

펠릭스 2009-09-21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계천(?)을 비슷듬히 거니는 그녀의 마음은 어디를 향할까요?
아, 쓸어지는 그녀(진보)는 어디에 있을까요? 혹시 소주에
취해 깃발같은 꿈을 포기하지나 않았을까요? 혹시 어디 숨긴
권총을 생각하고 있지나 않을까요!

로쟈 2009-09-21 21:39   좋아요 0 | URL
<백야>에 권총 얘기는 안 나오는데요.^^

델러웨이부인 2009-09-21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유미, 저도 좋아하는 배우예요. 정성일 교수도요. 그의 <영화의 이해>를 수강했던 적이 있답니다. 무려 15년 전 일이네요. 김혜리 기자 인터뷰 좋죠. 어쩌면 그리 되는지~

로쟈 2009-09-21 21:38   좋아요 0 | URL
첫 평론집까지 출간된다고 해서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누굴까 2009-09-25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일 평론가가 드뎌 입봉을 하셨군요. 예전에 정성일씨가 쓰신 KINO 의 평론들의 현학적(?)인 표현에 좌절했던 기억이 있군요...너무 어렵게 쓰셔서..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라깡의 어법으로 말하면.... 구조화 되어 있다"..뭐 이런식..ㅠㅠ 물론 로쟈님이 보시면 다 이해하시 겠지만.... 영화도 왠지 어렵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로쟈 2009-09-25 20:53   좋아요 0 | URL
네, 비문도 가끔씩 나오죠. 그래도 그만한 열정(이면서 순정)을 가진 평론가는 반세기에 한명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월요일자 '책읽는 경향'에 소개되는 책이 오래전에 읽은 톰 울프의 <현대미술의 상실>(열화당, 1977; 아트북스, 2003)이어서 스크랩해놓는다. 미술관련서를 가끔씩 챙겨놓지만, 책을 손에 든 지는 좀 된 듯하다. 그림책을 보면서 휴일을 보낼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올까?.. 

경향신문(09. 09. 21) [책읽는 경향]현대미술의 상실  

<현대미술의 상실>(톰 왈프·열화당)은 학창시절 교내 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졸업 후 진로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던 터라 ‘상실’이라는 제목에 유독 마음이 닿았다. 문고판의 이 얇은 책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미술이론에 끌려가는 현대미술에 대한 야유와 독설이 가득 차 있었다. 책을 볼 때마다 속이 후련해지는 저자의 쉽고도 정확한 비판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이 책은 원제 'The Painted Word'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이론’을 알아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감상할 수 있는 현대미술의 현실에 대한 신랄한 공격이다. 또한 미술과 작가들의 창작활동이 미술외적인 요소들에 의해 작동되고 견인되는 것에 대한 지적과 개탄이기도 하다.   

이따금 다시 책을 펼칠 때면 깔끔한 정장에 묘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저자의 사진을 접한다. 그 사진은 1997년 작고한 미술평론가 고(故) 이일 선생을 생각나게 한다. 장안의 멋쟁이로 통했던 이일 선생은 어렵지 않으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이른바 잘 읽히는 비평문으로 유명했다. 나는 그분을 통해 미술비평과 이론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결국 그분이 학과장이었던 학과에 늦깎이로 입학했다. 졸업 후 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며 선생께 청탁한 전시도록 서문이 그분 생전의 마지막 원고가 되었다.

다양한 비평문과 평론집을 매일처럼 접한다. 공통점이 있다면, 글들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오래 살아계셨으면 하는 분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선생의 쉬운 글쓰기와 고운 웃음이 마냥 그립다.(박천남 성곡미술관 학예실장)   

09. 09. 20. 

P.S. 미술 작품 자체보다 미술 이론이나 비평이 더 득세하게 된 시대가 말하자면, 톰 울프가 진단하는 '상실의 시대'인데, 대략 그린버그의 모더니즘과 액션 페인팅 이후이다. 아서 단토의 표현을 빌면 그 '상실의 시대'는 '예술의 종말 이후' 시대이면서 '철학하는 예술'의 시대이기도 하다. 

    

소위 '이론 이후' 미술사에 대한 관심 때문에 구해놓은 책이 몇 권 있는데, 조나단 해리스의 <신미술사? 비판적 미술사!>(경성대출판부, 2004)와 마크 치담 등의 <미술사의 현대적 시각들>(경성대출판부, 2007) 등이 그것이다. 다시 검색해보니  겐 도이의 <미술사의 유물론적 이해>(경성대출판부, 2007)도 흥미롭겠다.  

 

덧붙이자면 키스 먹시의 책 두 권 <이론의 실천>(현실문화연구, 2008)과 <설득의 실천>(경성대출판부, 2008)도 챙겨놓기만 하고 아직 손에 들지 못한 책들이다. 너무 무거워서 들고다닐 수 없는, 할 포스터 등의 <1900년 이후의 미술사>(세미콜론, 2007)는 내 집 마련 이후에나 소장하려고 하는 나의 '로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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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09-21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론'이라 하면 내포한 '의미'로 체계적인 해석과 주장일테고, 반대로 '무의미 하다'는 것은 단순하다는 것과 통할 것 같습니다. 미술이 미술로서만 존재하지 않고 그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음은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아니면 서로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모호성이나(위장성) 희귀성 때문이겠지요. 현대미술에 대해 편히 읽을 수 있는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조영남/한길사'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또한 미술로부터 위안(순수한)을 얻어 개인의 위기를 극복한 사람도 있습니다.

로쟈 2009-09-21 18:5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 한데, 그게 과정을 보면 어느 정도 필연적이기도 한 듯해요...

펠릭스 2009-09-22 21:09   좋아요 0 | URL
로쟈님 빈틈이 없으세요...

2009-09-21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1 1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nousee 2009-09-24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안녕하세요, 미술하면서 이 블로그에 가끔씩 접속해 제게 밀린 소개글들 읽는 것이 소중한 시간인데 저 기사를 보면 도무지 미술은 없으면서 있는 척한다라고만 싸잡아 얘기하고 싶은 분위기로 얘기되는 거 같아 조금은 실망스럽네요.. 쿤데라가 말했듯이 '설명할 수 없는 것' 앞에서의 놀라움이 창작의 이유라고 한다면 그걸 설명하는 비평가들의 헛다리와 창작을 혼동하는게 반복되는 느낌이 들때도 있구요.. 한국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미술가가 조영남이라는 사실이 조영남의 화투그림이 좋은거라는 건 딴 얘기아닌가요? 그리고 이일 선생은 '쉬운 글쓰기와 고운 웃음'답게 주례사비평의 원조님이시기도 하지요...쉬운게 좋은 거고 좋은게 좋다는게 전 싫네요...

로쟈 2009-09-25 20:50   좋아요 0 | URL
이일 선생이 그러셨군요.^^ 사실 저는 톰 울프의 책이 인상적이지 않았어요. 기억에 남는 게 없는 걸 보면. 대신에 단토의 책들을 좋아합니니다. 아무래도 '그림'보다는 '말'이 전공이다 보니...
 

얼마전 박원순 변호사가 시민단체에 대한 국정원의 사찰 의혹을 폭로했고, 이에 대해 국정원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아니 고소 주체가 '대한민국'이란다!). 사건 관련기사와 칼럼을 스크랩해놓는다. 요즈음 이런 페이퍼조차도 다 정보 수집대상이자 감시대상이라고 하니 여차하면 비공개로 돌려야겠다...   

경향신문(09. 09. 19) 박원순 변호사가 밝힌 ‘국정원 사찰’ 의혹 

박원순 변호사는 17일 기자회견장에서 A4용지 14장 분량의 ‘진실은 이렇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며칠 동안 쓴 글이며, 내가 살아왔던 모든 것을 걸고 증언하건대 글의 내용 모두가 진실”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자신을 비롯해 시민사회 전반에 행해진 국정원의 사찰 실상을 구체적으로 폭로한 것이다. 문서에는 사찰의 시점·정황·결과가 상세히 기술돼 있다.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정치·사회적 파장은 심상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문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박 변호사에 대한 사찰과 압력
2007년 7월 하나은행과 희망제작소는 기자회견을 열고 ‘하나희망재단’ 설립을 발표했다. 하나은행이 300억원을 출연했다. 재단은 지난해 가을 설립 등기를 완료했다. 그러나 며칠 뒤 재단 이사회는 희망제작소와의 사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한두 달 후 하나은행의 한 임원으로부터 “국정원 직원들이 이 사업에 개입을 하여 희망제작소와의 협력관계가 중단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모 그룹이 세운 재단의 이사로 등재돼 있다. 재단 관계자들은 “국정원에서 연락이 와서 월급을 얼마나 받는지,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자세히 물어보았다”고 했다. 나는 한 기업의 사외이사로 수년째 활동해 왔는데, 나중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이 내 활동내역에 대해 물어보았다고 한다. 강연차 들른 한 재단의 이사장으로부터 “국정원에서 찾아와서 박 변호사에 대해 자세히 탐문했다. 너무 이상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지난 4월 ‘아름다운가게’의 모대학 카페 오픈식이 끝난 이틀 뒤 국정원 직원이 그 대학 총무과를 찾아와 ‘아름다운가게’를 왜 지원했는지 문의했다. 국정원 직원은 “좌파단체들의 자금줄이며 운동권 출신 직원들이 대다수인 ‘아름다운가게’를 후원한 사유가 무엇인지” 문의했다고 한다.

지난 6월 국정원 직원이라고 밝힌 사람이 모은행 담당자에게 전화해 “ ‘아름다운가게’와 무슨 관계가 있기에 오랜 시간 많은 돈을 지원했느냐”고 문의했다. 그 은행은 ‘아름다운가게’가 벌이고 있는 특정 프로젝트를 몇 년째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지난 5월 자선바자회 행사 관계로 만난 경기도 한 시의 관계자도 “국정원에서 전화를 받았다. ‘아름다운가게’의 행사를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했다.

민간단체에 개입하는 국가권력
어느 날 사회투자지원재단의 모 상임이사가 만나자고 했다. 그는 재단이 정부부처로부터 투자를 받는 데 나라는 존재가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얼마 후 다시 상임이사를 만났더니 “이사장과 나마저 별로 마땅치 않은지 정부가 완전히 지원을 끊었다”고 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전 사무총장이 내게 전화를 해왔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자꾸 물러나라고 한다는 것이다. 보건복지가족부의 실무자들이 노골적으로 요청해올 뿐 아니라 이사장을 시켜서도 압박을 가해온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 모임에서 사회연대은행 상임이사를 만났다. 그는 지난번 정부 지원 대상에서 사회연대은행도 완전히 배제됐는데, 이사진 가운데 참여정부와 친했던 인사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더 심각한 일도 벌어졌다. 어느 시민단체의 평생회원 중 한 사람은 기업의 임직원이다. 그 사람이 국정원으로부터 간접적으로 “어떻게 시민단체의 회원이 될 수 있느냐”는 얘기를 듣고 평생회원의 신분을 정리한 사례가 그것이다.

또 한 여성단체가 후원회를 열었는데 어느 중소기업에서 전화가 와서 “여성민우회는 불법시위단체라고 하는 명단이 와서 지원을 못하게 돼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고 한다. 공공기관에는 민변에 소속된 변호사들에게는 사건을 수임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법률고문직에서 해촉된 사람도 여럿 있다고 들었다.

국정원장과 대통령이 사찰 지휘
대선이 끝나고, 촛불시위가 일어나고, 그리고 언젠가부터 세상이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다. 어느 날 일어나 보니까 완전히 20~30년 전 세상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지방에서 기업을 하는 한 분의 말에 따르면 지금 지방의 국정원 지부도 과거와 완전히 다른 위상을 갖게 됐다고 한다. 국정원 지부장을 찾는 경우가 늘었고, 가끔이라도 이 사람들과 식사를 해야 안심이 된다는 얘기였다.

국정원의 최고 책임자인 국정원장과 나아가 대통령이 이런 일을 모를 리 없다. 이렇게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사찰과 감시가 일어나고 있다면 이것은 국정원을 운영하고 집행하는 책임자의 철학과 원칙, 기능과 활동의 방향이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국정원장과 대통령의 지휘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내년 지방선거가 끝나고 정권의 후반기로 들어서면 진실은 한순간에 터져 나올 것이다. 국정원의 비열한 사찰행위와 그 은폐는 이 정권이 끝나면 반드시 심판받을 것이다. 그것이 인과응보이고 역사의 필연의 법칙이다. 나는 이런 자리에 서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내 자신이 당하고 내 주변이 당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정확히 정리하고, 그 대안을 위해 싸우겠다는 다짐과 결의를 하게 됐다. 이 보고서는 바로 그런 다짐의 시작에 불과하다.(정제혁기자) 


 
한겨레(09. 09. 19) '살인의 추억', '사찰의 추억' 
 
2003년 봄, 영화 <살인의 추억>이 개봉되었을 때 나는 외국에 있었다. 인터넷으로 한국 소식은 자주 접했지만 인간의 미세한 감정·감각과 관련된 내용은 그저 궁금해하며 넘어가기도 했다. 이 영화 제목도 그런 것이었다. 추억이라는 말은 어떤 대상을 정 깊게 기억함을 의미한다고 대충 이해하고 있던 나에게, ‘살인’과 ‘추억’의 조합은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후에 영화를 관람하고 나서도 제목에서 두 단어를 조합한 사람의 깊은 뜻을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분명치 않았다. 어쨌거나 화제작답게 영화는 탁월했고, 영화에서 그려진 상황은 오금이 저릴 정도의 안타까움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어쩌면, 정말 어쩌면 그 누군가는 연쇄살인에 대해, 혹은 그것이 일어나던 시절과 상황에 대해, 애착 어린 추억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영화 제목이 머릿속을 휘젓게 된 것은 최근 이와 마찬가지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의 새로운 조합이 떠오르면서였다. 이름하여 ‘사찰의 추억.’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재야 정치인 사찰, 학원 사찰 같은, 정치적 목적의 민간인 사찰이 일상적 삶의 일부였다. 사찰하는 이와 사찰당하는 이가 매일 접촉하다 보니 모종의 친분관계가 형성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던가. 어쨌든 내가 아는 어느 유명한 분은 사기꾼 비슷한 인간이 괴롭히자 자기를 사찰하던 형사에게 도움을 받아 그 상황을 넘겼다니까. 그럴망정 그분이 일거수일투족을 사찰당하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기억할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국가가 누군가의 사유물로 여겨지던 그 시절을 애틋하게 동경하며 추억하는 사람들도 실제로 있는 것 같다. 사찰당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찰하고자 하는 사람들 말이다. 작년 올해 언제부터인가 주변 사람 몇몇이 “사찰성 전화를 받은 것 같다”며 불쾌해하곤 했다. 믿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때로는 우리의 믿음을 배반한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제기한 기무사 소속 군인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필두로 해서 불법 사찰의 혐의가 짙은 사건들이 잇따라 보도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박원순 변호사처럼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신망 높은 인물의 하나이면서도 온건하고 합리적인 분이 자신에 대한 국정원의 사찰 의혹을 언론에 직접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그 대가로 그는 “국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국정원의 고발을 당한 상태에 있다. 옛날 국가원수 모독죄 명목의 재판이 남발되는 것을 볼 때도 막막했지만, 민주주의의 갑작스러운 후퇴를 보는 심정은 그때와도 다르다. 그가 눈물 흘리며 기자회견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욱 고통스럽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는, 기무사(옛 보안사)나 국정원이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 그들이 자행했던 각종 국가폭력적 행위와 불법적 사찰 행위에 대해 규명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과거사 규명작업을 거쳤음에도 최근 다시 민간인에 대한 사찰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수많은 예산과 인력을 들여 진행한 자체조사와 사과·반성이 헛일·헛소리에 지나지 않았단 말인가.

사찰 의혹은 아직 의혹으로 머무르고 있지만, 실제로 사찰이 행해졌더라도 이것이 기무사나 국정원이란 조직 전체의 방침을 따른 것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 자신이 소속된 부서의 조직 이해나 출세의지에 집착하는 개인들의 실수일 것이다. 군 정보기관이나 국가 정보기관이 일반 시민이나 시민운동가를 사찰했다는 의혹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기관의 입장에서는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국정원은 엄정한 자체조사를 통해 이런 일이 실제로 자행되었는지 규명할 것이지 국가의 명예를 들먹이면서 존경받는 사회지도자를 괴롭힐 일이 아니다.(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09. 09. 19.  

 

P.S. '인권변호사 박원순'의 기념비적 저작으로 평가되는 책은 <야만시대의 기록>(역사비평사, 2006)이다. "일제시대부터 노무현 정권까지 각종 신문자료와 잡지, 단행본, 논문, 단체 자료집, 법원 판결문, 외국 정책자료 및 인권단체 보고서 등을 총망라하여 자료들을 모았고, 그를 토대로 국내외의 다양한 고문 사례들을 통사적으로 정리해낸 최초의 기록". 민간인 불법 사찰도 사실로 판명된다면, 이제 '야만시대'로의 완벽한 회귀에 '고문' 하나만 남은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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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09-20 11:01   좋아요 0 | URL
'사찰'의 반대말은 '해찰'이다(ㅋ).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을 자주 집에서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감독의 유머감각에 매료 되었기 때문이다. 연쇄살인 사건을 해결하려는 캘릭터간의 언쟁이나 수사 기법과 지방 경찰관의 열등감 그리고 취조실에서 시대적인 습관들을 볼 수 있어 재미있다. 사찰이 강화되었다면 정보수집 행태속에서도 봉 감독은 유머들을 줍게 될 것이다(선하다). 정보 전달은 사람의 신경 신호 전달과 비슷하다. 여론조사보다는 더 극밀한 내면을 전방위차원에서 알고 싶어 하고 또한 제공하게 될 것이다.

로쟈 2009-09-20 14:59   좋아요 0 | URL
정말로 영구집권을 꿈꾸는 게 아니라면, 뒷감당도 못할 일을 왜 자꾸 벌리는지 궁금합니다...

2009-09-21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1 1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델러웨이부인 2009-09-23 17:19   좋아요 0 | URL
개그콘서트를 보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왕따놀이를 하자는 것일까요?

로쟈 2009-09-23 18:40   좋아요 0 | URL
여러 칼럼에서 지적된 것이지만, 일종의 '겁박'이죠. 알아서들 기라는...
 

아이와 와우북페스티벌에 가려던 계획이 취소되었다. 굳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서 좋을 게 있겠느냐는 게 아이 엄마의 생각이고, 학교에 갔다온 아이도 친구와 노는 게 더 낫겠다고 했다. 나도 할일이 많은지라 토요일 외출 계획은 접고 책상맡에 앉았다. 이런저런 책들이 널려 있는데, 며칠전 들었던 의문이 꼬투리가 돼 자꾸 머릿속을 맴돌기에 몇마디 적는다. 소설의 시작에 대해서이다.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다. 최근에 나온 김연수의 <세계의 끝 여자친구>(문학동네, 2009)를 잠깐 보다가('읽다가'가 아니다) 몇몇 단편의 '시작하는 문장'이 좀 특이하게 여겨졌다. 가령, "그후로 십삼 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여러 번 어린 케이케이가 수영을 했다던 그 냇물을 상상했다."('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라고 1인칭 '나'로 시작하는 건 전혀 문제가 안되지만, "여름, 바다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늙어가고 있었다."('기억할 만한 지나침')에서처럼 '그(녀)'라는 3인칭 대명사로 시작하게 되면, 마치 문법에 맞지 않는 비문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1인칭 대명사로 시작하거나 다른 고유명사가 먼저 제시된 이후에 그걸 받는 것이 아니라, 다짜고짜 '그(녀)'라고 말할 경우에 '그(녀)'의 지시대상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이건 '그(녀)'를 마치 고유명사처럼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러한 시작은 몇 차례 더 등장한다.  

"그가 왜 예정에 없이 이즈미로 가게 됐는지 알 수는 없으나, 거기서 찍은 흑두루미 사진은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독특한 것들로 여겨진다."('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그러니까, 그해 여름, 그는 그 아름다운 유럽풍의 해변도시에서 지냈는데, 단 하루도 술에 취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  

모두 '그'의 이름이 끝까지 밝혀져 있지 않지만 가령, 토마스라고 하면  "토마스가 왜 예정에 없이 이즈미로 가게 됐는지 알 수는 없으나..."나  "그해 여름, 토마스는 그 아름다운 유럽풍의 해변도시에서 지냈는데..."라는 식으로 시작할 수도 있었다(덧붙여 '그해 여름'은 '어느해 여름'이라고, '그 아름다운 유럽풍의 해변도시'는 '한 아름다운 유럽풍의 해변도시'라고 하는 게 낫겠다). 소위 그런 것이 자연스러운, 곧 '무표적인' 시작이다. 한데, 직접화법도 아니면서 '그러니까'란 접속사가 문두에 들어가고, 다시 '그'라는 대명사가 고유명사 대신에 들어감으로써 이 시작은 특이해진다. '유표적'이게 된다.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이유(미학적 고려)가 있는 게 아니라면, 단지 '기분'을 좀 내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면, 독자로선 좀 난감하다.   

얼핏 몇 권의 소설을 들춰보니 다른 한국 작가들의 소설에서도 이런 시작이 아주 드물진 않다. 이것도 '유행'인데 내가 미처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최신 '소설작법'에서 권장하는 것인지 바로 알기 어렵다. 김연수가 좋아하는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에서 비슷한 사례가 있나 찾아보려고 했으나 소설집이 눈에 띄지 않아 대조도 불가능하고. 대신에 집어든 건 카버가 좋아하는 작가 체호프의 단편집이다.  

  

19세기의 사례이긴 하나 보통 단편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멋진 저녁, 이에 못지 않게 멋진 회계원 이반 드미트리치 체르뱌코프는 객석 두번째 줄에 앉아서..."('관리의 죽음') 

"드미트리 페트로비치 실린은 대학과정을 마치고 페테르부르크에 근무하다가..."('공포') 

"올가 이바노브나의 결혼식에는 친구들과 점잖은 지인들이 모두 참석했다."('베짱이') 

"이반 알렉세예비치 아그뇨프는 팔월의 그날 저녁..."('베로치카') 

"내가 아직 김나지야의 5학년이나 6학년에 다니던 때의 일로 기억된다."(미녀') 

예외 없이 모든 단편에서 인물은 1인칭 대명사나 고유명사로 먼저 지칭된다. 내가 아는 한 이것이 정석이고 소설의 문법이다. 그걸 비튼다면 하나의 '일탈의 미학'을 구성할 만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끝내 불완전한 이방인으로 남는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가족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라는 걸 알려주는 세련된 소설들이다."라고 김연수가 평한 줌파 라히리의 소설집 <그저 좋은 사람>(마음산책, 2009)의 서두는 어떤지 들춰봤다(나는 영어본의 표제작 '길들지 않은 땅'을 읽던 중이다).  

"루마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루마의 아버지는 평생 다니던 제약회사에서 퇴직하고..."('길들지 않은 땅') 

"프라납 챠크라보티는 우리 아빠의 친동생은 아니었다."('지옥-천국') 

"겉보기에 호텔을 괜찮아 보였다. 고풍스러운 스키 산장처럼 가파르게 경사진 지붕에, 초콜릿 색 벽에 빨간 창틀을 댄 건물이었다. 하지만 채드윅 인의 로비에 들어갔을 때 아밋은 실망하고 말았다."('머물지 않은 방') 

"애초에 라훌에게 술을 가르친 건 수드하였다."('그저 좋은 사람') 

"이따금씩 남자들이 전화를 걸어 생Sang을 찾았다."('아무도 모르는 일') 

체호프나 줌파 라히리의 사례만 놓고 보자면, 억지스럽게 3인칭 대명사로 소설을 시작하지 않더라도 세련된 작품을 쓰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게다가 두서없이 서두에서 '그(녀)'를 남용하게 되면, 그것이 '위반'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추가적 의미도 전달하기 어렵게 된다. 파격은 규범이 존중될 때 파격으로서의 의미와 의의를 갖기 때문이다... 

09. 09. 19.  

P.S. 필요 때문에 책을 한권 찾다가 발견한 책은 관내도서관에서 대출한 샐린저의 단편집 <아홉가지 이야기>(문학동네, 2004)이다. 사실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손에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책이 내겐 이 <아홉가지 이야기>였다. 비슷한 시기에  집어들기도 했고,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 모두 아홉 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다는 점이 샐린저의 경우와 같았기 때문에 우연의 일치만은 아닌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샐린저에 대한 김연수 작가의 생각은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마침 눈에 띈 김에 각 단편의 서두 부분을 읽어본다.  

"뉴욕에서 온 아홉일곱 명의 광고인들이 장거리 전화를 독점하는 바람에, 507호 여자는 정오부터 두시 반까지 기다려야 했다."('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 

"메리 제인이 마침내 엘로이즈의 집을 찾아냈을 때는 거의 세시였다."('코네티컷의 비칠비칠 아저씨') 

"연이은 다섯 번의 토요일 오전, 지니 매녹스는 베이스호아 선생네 반 친구인 셀레나 그래프와 함께..."('에스키모와의 전쟁 직전') 

"1928년 내가 아홉 살이었을 때, 최대한의 단체정신으로 무장한 나는..."('웃는 남자') 

"그것은 어느 인디언 서머 오후 네시가 조금 지났을 때의 일이었다. 하녀 산드라는..."('작은 보트에서') 

"최근에 나는 항공 우편으로 4월 18일 영국에서 치러질 한 결혼식의 청첩장을 받았다."('에스메를 위하여, 사랑 그리고 비참함으로') 

"전화벨이 울렸을 때, 머리가 희끗한 남자는 별다른 존중의 기미 없이 여자에게..."('예쁜 입과 초록빛 나의 눈동자')  

"이 이야기에 정말 무슨 중요한 의미가 있는 거라면, (...) 나는 이 이야기를 작고한 나의 의붓아버지의..."('드 도미에 스미스의 청색 시대') 

""야, 당장 그 가방에서 내려서지 않으면 죽여버릴 테다. 정말이야." 매카들 씨가 말했다."('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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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말해질 수 없는 삶을 위하여
    from 아흐퉁! 미잔트롭 2009-09-23 19:59 
    말해질 수 없는 삶을 위하여 - 김연수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김병익  나도 김연수가 즐겨 사용하는 수법을 따라, 그의 소설들의 첫 문장이 드러내는 글쓰기에 대한 자의식을 짚는 것으로부터 나의 김연수 작품론 쓰기를 시작해보자. 그는 소설 첫머리에서 자신은 이제 무엇에 대해 쓰기 시작하겠다는 말을 먼저 밝히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곤 한다. 가령, 제목이 시의 한 행일 법한 <그건 새였을까, 네즈미>의 첫 문장
 
 
2009-09-19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19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19 1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19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냐 2009-09-19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당히 재미난 문제 제기. 거기다 로쟈님스럽게 찾아놓은 풍부한 사례들. 더 흥미로운 건..여기 붙어있는 비밀댓글들요 ㅎㅎ

로쟈 2009-09-19 18:23   좋아요 0 | URL
분명 '반칙'이라고 할 수 있는데, 딱히 이유가 있어 보이지 않아서요. 그리고 비밀댓글이라고 별스런 내용이 오고가진 않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Sati 2009-09-19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의 시작은 아니지만,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에서 '그녀'가 전 참 거시기했어요.

로쟈 2009-09-19 22:05   좋아요 0 | URL
이번 작품집에는 빠졌네요...

perturbation 2009-09-19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언급하신 소설들에서 주인공을 '그' 혹은 '그녀'로 지칭한 것은 작품 내에서 그 인물들의 이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케이케이>에서 미국인 여성작가인 '나'의 이름은 끝까지 나오질 않습니다. 그러니까 필연적인 데가 있다는 것이지요. 일일이 확인해 보지 않아서 전부 다 그런 경우인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만. 뭐, 멋스럽게 보이려고 한 의도도 있긴 했겠지요.

(그리고, <알렉스>에서 처음에 '그'로 지칭된 인물은 알렉스가 아니라 다른 인물입니다. '그'가 나중에 해변에서 알렉스를 만나 '리 선생'을 소개받게 되지요. 제 기억이 맞다면, 이 '그'의 이름 역시 끝까지 나오질 않습니다.)

덧붙이자면, 저는 한국어의 '그/그녀'라는 대명사를 매우 사랑스러워하는 편입니다. 이름을 직접 지칭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어떤 '거리감+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것은 그저 선택(취향)의 문제일 뿐, '정석'과 '일탈'을 거론할 만한 사례는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

로쟈 2009-09-19 22:08   좋아요 0 | URL
네, 다시 보니 알렉스는 사칭한 이름이군요. 제 생각은 일인칭 화자가 등장하지 않는 한 시작부터 그/그녀가 나올 수는 없다고 봐요. 1-2칭이 사전에 세팅된 상황이거나, 앞에 나온 누군가를 다시 받을 때만 가능하지 않나요? 이름을 안 갖고 있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 같아요. '한 남자/여자'로 처리하면 되니까요. 혹은 '가방을 든 남자' '머리가 희끗한 남자' '눈이 퀭한 남자' 등등. 해서 소설문법이라는 게 있다면 '그(녀)'가 다짜고짜 나오는 건 반칙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튀는' 것이고, 일부러 튀게 쓰려는 게 아니라면(이것도 가끔 써야 효과가 있겠고요. 어떤 효과인지는 사례를 찾아봐야겠어요)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세련돼 보이지 않아서요...

로쟈 2009-09-19 22:16   좋아요 0 | URL
덧붙이자면 한때는 K, P, R 등의 이니셜이 많이 쓰이다가 요즘은 '그' '그녀'가 유행을 타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그런가요?). '거리감+분위기'라고 하신 것과 연관되는데, 저는 그런 게 구체적인 인물을 '장악'하지 못하거나 '묘사'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려는 책략이 아닌가 의혹도 갖습니다. 그(그녀)로 일관하게 되면 자연스레 이야기 추상적으로 흐르지요. 작가들이 되려 기피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perturbation 2009-09-19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것을 가능/불가능의 문제로 따질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반칙"이라는 표현이 제게는 좀 완고해 보입니다. 국어학적으로도 문제가 되는 실수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설사 그렇다 해도, 문학이 문법을 반드시 존중해야 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그냥 효과의 문제로 보면 되는 것 아닐까요? 그러니까 이런 식의 서두가 어떤 효과를 발생시키는지를 따져보는 게 제겐 더 흥미로워 보여요. 김연수 소설의 어떤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고, 더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김연수가 인물을 창조하고 다루는 태도와도 관련이 있지 않겠는가 넘겨짚어 봅니다.

그리고 알렉스는 '사칭한 이름'(?)이 아니라, 그냥 '그'와는 다른, 실제 인물입니다. 1장에서는 청도 해변에서 뒹구는 '그'가 등장하고, 2장에서는 알렉스와 재클린 커플이 등장하지요. 그리고 '그'가 '알렉스'로부터 일을 넘겨받아 '리 선생'과 대면하게 됩니다. 소설의 결말부분에서는 '그'와 '알렉스'가 언쟁을 벌이지요. 자꾸 꼬투리를 잡는 식이 되어서 좀 죄송하네요. 김연수를 좋아하다보니 뭔가 변호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예요. 이해해 주셨으면. . .

로쟈 2009-09-19 22:23   좋아요 0 | URL
네, 알렉스 건은 읽어봐야겠군요.^^; '문법'이란 말 대신에 '관행'이라고 해도 좋겠어요. 소설을 그렇게들 써왔다는 의미로. 저도 공들인 작품에 흠을 잡으려는 생각은 없는데, "그러니까, 그해 여름, 그는..." 이렇게 나가는 서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편집자라면 단호하게 수정을 요구하고 싶은.^^; 고유명사를 기피하는 건 익명화된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편승'한다는 느낌도 들고요...

노이에자이트 2009-09-19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문을 읽다 보면 그녀를 쓰지 않고 그'만 쓰는 사람도 있더군요.저는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선 3인칭 대명사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긴 합니다만....

좀 특이한 예인데 요 몇년전부터 동물다큐멘타리에서 동물을 대명사로 '녀석'이라고 하던데 이것도 좀 어색하고 거슬리더군요.대명사 용법이 익숙치 못한 언어다 보니 기껏 생각해 낸 게 '녀석'인 것 같습니다.

로쟈 2009-09-19 23:27   좋아요 0 | URL
그게 수입된 거라서 그런 듯합니다. 인칭 대명사 문제를 통시적으로 잘 정리해놓은 책도 어디 있을 듯싶은데요...

노이에자이트 2009-09-20 14:51   좋아요 0 | URL
동물을 대명사로 뭘로 하는 게 좋을까요? 권할 만한 게 있으면 일러주세요.

로쟈 2009-09-20 14:57   좋아요 0 | URL
사람도 보통 '놈'이라고 부르는데, '녀석'은 그래도 정감 있지 않나요?^^;

노이에자이트 2009-09-20 15:00   좋아요 0 | URL
그런데 어린 것들은 아직도 새끼라고 번역하더군요.

로쟈 2009-09-20 15:29   좋아요 0 | URL
'새끼'란 말 자체에 비하의 느낌이 있는 건 아닌 듯해요. 사람에게도 쓰니까요. '아이고, 내 새끼'처럼. '자식'이라고 해야 할까요? 다른 대안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펠릭스 2009-09-20 16:59   좋아요 0 | URL
'새끼'를 뜻하는 표준어휘들을 봤습니다.
결국 언어 사용은 자신의 의지가 아닐까요.

펠릭스 2009-09-20 0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일요일인데도, 그는 죽으러 나가려고 구두끈을 매고 있었다.(매일 죽는 사람/조해일), - 개니? 그가 물었다. 아뇨, 낙타예요?(낙타는 무릎이 약하다/이순원), - 눈을 뜨자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어두운 기억의 저편/이균영), - 그는 쇠사슬로 목을 졸리는 듯한 갈증에 퍼뜩 눈을 떴다.(침식/서영은), 작품의 첫 문장들입니다.

로쟈님은 번역 부분에서도 '독자'와 '효과'쪽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우리 일부 작품에도 지적한 면이 있습니다(위에). 작품의 첫 대명사 혼용은 작가가 독자에게 제공해야 할 명확성이 떨어질 우려가 있습니다(독자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독자에게 분명한 소통을 제공하려면 작가의 웃줄함 등을 빼는 것이 작품에 대한 공감성을 높이게 합니다.

저 또한 그/그녀'라는 대명사를 즐겨 자주 사용하는 편입니다. 몇 편의 글을 지인에게 건네주었더니 지인은 시쿤둥했습니다. 제 글의 불분명한 대명사에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 일요일인데도, 그는 죽으러 나가려고 구두끈을 매고 있었다, + 일요일인데도, 김사장은 죽으러 나가려고 구두끈을 매고 있었다, = 위 문장에서 그를 김사장으로 대처함으로서 죽으려는 사람의 사회적 속성을 독자에게 쉽게 제공할 수 있습니다.

유교문화의 속성상 간접 호칭을 사용합니다. 즉 직접 호칭 사용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글의 첫 문장부터 속성이 불분명한 대명사를 사용함으로서 독자에게 넌지시 드러내려는 것으로 오인받을 수 있습니다. 영어 등 번역문화의 영향도 한 목합니다(즉 he, she, her 등). 미국의 수필가 해리 골든의 수필 '연극은 계속되어야 한다'를 읽어보면 대명사는 없습니다. 글의 명확성과 간결함 때문에 독자는 쉽게 공감합니다.

로쟈 2009-09-20 09:31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전에는 별로 의식하지 않았던 문제 같기도 합니다. 한국소설의 '관행'은 따로 있을 듯도 해요. 다시 보면, 좀 '특이한' 관행입니다...

2009-09-20 0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0 0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9-09-20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지적입니다. 샐린저의 아홉가지 이야기를 그리고 체호프의 단편선을 다시 읽어보고 싶고, 앞으로 소설을 읽기 시작할때 어쩐지 조금 더 관심을 가지게 될 것 같아요. 이 페이퍼 무척 재미있습니다.

로쟈 2009-09-20 14:58   좋아요 0 | URL
네, 시작이 주요하지요. 눈에 띄는 시작보다는 신뢰감을 주는 시작을 저는 더 선호합니다...

로미 2009-10-10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을 읽다가 걸리는 표현이 있어서 몇 마디 씁니다.
'그', '그녀'가 한국 소설의 관행이라니.....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그', 특히 '그녀'의 사용은 이전 소설가, 수필가들의 문장에서도 곧잘 걸리적거리는 것으로 지적되곤 하였습니다.
번역투의 그림자가 없을수록 문장이 산뜻합니다. 외국어 직역한 듯한 문장을 좋은 문장으로 꼽지 않고요.
요즘 언급이 뜸한 것은 뭐 다 아는 얘기, 굳이 더 하겠느냐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러니 매번,
다 아는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그러게 되나 봅니다.

로쟈 2009-10-10 11:39   좋아요 0 | URL
네, 그것도 논란거리이긴 하지만, 저는 '그녀'를 써도 된다고 봅니다. 다만, 페이퍼에선 서두에 '그/그녀'가 막바로 나오는 것은 어색하다는 것이죠. 지시되는 인물이 먼저 제시되어야 나와야 문법에 맞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