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와우북페스티벌에 가려던 계획이 취소되었다. 굳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서 좋을 게 있겠느냐는 게 아이 엄마의 생각이고, 학교에 갔다온 아이도 친구와 노는 게 더 낫겠다고 했다. 나도 할일이 많은지라 토요일 외출 계획은 접고 책상맡에 앉았다. 이런저런 책들이 널려 있는데, 며칠전 들었던 의문이 꼬투리가 돼 자꾸 머릿속을 맴돌기에 몇마디 적는다. 소설의 시작에 대해서이다.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다. 최근에 나온 김연수의 <세계의 끝 여자친구>(문학동네, 2009)를 잠깐 보다가('읽다가'가 아니다) 몇몇 단편의 '시작하는 문장'이 좀 특이하게 여겨졌다. 가령, "그후로 십삼 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여러 번 어린 케이케이가 수영을 했다던 그 냇물을 상상했다."('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라고 1인칭 '나'로 시작하는 건 전혀 문제가 안되지만, "여름, 바다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늙어가고 있었다."('기억할 만한 지나침')에서처럼 '그(녀)'라는 3인칭 대명사로 시작하게 되면, 마치 문법에 맞지 않는 비문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1인칭 대명사로 시작하거나 다른 고유명사가 먼저 제시된 이후에 그걸 받는 것이 아니라, 다짜고짜 '그(녀)'라고 말할 경우에 '그(녀)'의 지시대상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이건 '그(녀)'를 마치 고유명사처럼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러한 시작은 몇 차례 더 등장한다.  

"그가 왜 예정에 없이 이즈미로 가게 됐는지 알 수는 없으나, 거기서 찍은 흑두루미 사진은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독특한 것들로 여겨진다."('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그러니까, 그해 여름, 그는 그 아름다운 유럽풍의 해변도시에서 지냈는데, 단 하루도 술에 취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  

모두 '그'의 이름이 끝까지 밝혀져 있지 않지만 가령, 토마스라고 하면  "토마스가 왜 예정에 없이 이즈미로 가게 됐는지 알 수는 없으나..."나  "그해 여름, 토마스는 그 아름다운 유럽풍의 해변도시에서 지냈는데..."라는 식으로 시작할 수도 있었다(덧붙여 '그해 여름'은 '어느해 여름'이라고, '그 아름다운 유럽풍의 해변도시'는 '한 아름다운 유럽풍의 해변도시'라고 하는 게 낫겠다). 소위 그런 것이 자연스러운, 곧 '무표적인' 시작이다. 한데, 직접화법도 아니면서 '그러니까'란 접속사가 문두에 들어가고, 다시 '그'라는 대명사가 고유명사 대신에 들어감으로써 이 시작은 특이해진다. '유표적'이게 된다.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이유(미학적 고려)가 있는 게 아니라면, 단지 '기분'을 좀 내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면, 독자로선 좀 난감하다.   

얼핏 몇 권의 소설을 들춰보니 다른 한국 작가들의 소설에서도 이런 시작이 아주 드물진 않다. 이것도 '유행'인데 내가 미처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최신 '소설작법'에서 권장하는 것인지 바로 알기 어렵다. 김연수가 좋아하는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에서 비슷한 사례가 있나 찾아보려고 했으나 소설집이 눈에 띄지 않아 대조도 불가능하고. 대신에 집어든 건 카버가 좋아하는 작가 체호프의 단편집이다.  

  

19세기의 사례이긴 하나 보통 단편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멋진 저녁, 이에 못지 않게 멋진 회계원 이반 드미트리치 체르뱌코프는 객석 두번째 줄에 앉아서..."('관리의 죽음') 

"드미트리 페트로비치 실린은 대학과정을 마치고 페테르부르크에 근무하다가..."('공포') 

"올가 이바노브나의 결혼식에는 친구들과 점잖은 지인들이 모두 참석했다."('베짱이') 

"이반 알렉세예비치 아그뇨프는 팔월의 그날 저녁..."('베로치카') 

"내가 아직 김나지야의 5학년이나 6학년에 다니던 때의 일로 기억된다."(미녀') 

예외 없이 모든 단편에서 인물은 1인칭 대명사나 고유명사로 먼저 지칭된다. 내가 아는 한 이것이 정석이고 소설의 문법이다. 그걸 비튼다면 하나의 '일탈의 미학'을 구성할 만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끝내 불완전한 이방인으로 남는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가족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라는 걸 알려주는 세련된 소설들이다."라고 김연수가 평한 줌파 라히리의 소설집 <그저 좋은 사람>(마음산책, 2009)의 서두는 어떤지 들춰봤다(나는 영어본의 표제작 '길들지 않은 땅'을 읽던 중이다).  

"루마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루마의 아버지는 평생 다니던 제약회사에서 퇴직하고..."('길들지 않은 땅') 

"프라납 챠크라보티는 우리 아빠의 친동생은 아니었다."('지옥-천국') 

"겉보기에 호텔을 괜찮아 보였다. 고풍스러운 스키 산장처럼 가파르게 경사진 지붕에, 초콜릿 색 벽에 빨간 창틀을 댄 건물이었다. 하지만 채드윅 인의 로비에 들어갔을 때 아밋은 실망하고 말았다."('머물지 않은 방') 

"애초에 라훌에게 술을 가르친 건 수드하였다."('그저 좋은 사람') 

"이따금씩 남자들이 전화를 걸어 생Sang을 찾았다."('아무도 모르는 일') 

체호프나 줌파 라히리의 사례만 놓고 보자면, 억지스럽게 3인칭 대명사로 소설을 시작하지 않더라도 세련된 작품을 쓰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게다가 두서없이 서두에서 '그(녀)'를 남용하게 되면, 그것이 '위반'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추가적 의미도 전달하기 어렵게 된다. 파격은 규범이 존중될 때 파격으로서의 의미와 의의를 갖기 때문이다... 

09. 09. 19.  

P.S. 필요 때문에 책을 한권 찾다가 발견한 책은 관내도서관에서 대출한 샐린저의 단편집 <아홉가지 이야기>(문학동네, 2004)이다. 사실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손에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책이 내겐 이 <아홉가지 이야기>였다. 비슷한 시기에  집어들기도 했고, <세계의 끝 여자친구>에 모두 아홉 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다는 점이 샐린저의 경우와 같았기 때문에 우연의 일치만은 아닌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샐린저에 대한 김연수 작가의 생각은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마침 눈에 띈 김에 각 단편의 서두 부분을 읽어본다.  

"뉴욕에서 온 아홉일곱 명의 광고인들이 장거리 전화를 독점하는 바람에, 507호 여자는 정오부터 두시 반까지 기다려야 했다."('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 

"메리 제인이 마침내 엘로이즈의 집을 찾아냈을 때는 거의 세시였다."('코네티컷의 비칠비칠 아저씨') 

"연이은 다섯 번의 토요일 오전, 지니 매녹스는 베이스호아 선생네 반 친구인 셀레나 그래프와 함께..."('에스키모와의 전쟁 직전') 

"1928년 내가 아홉 살이었을 때, 최대한의 단체정신으로 무장한 나는..."('웃는 남자') 

"그것은 어느 인디언 서머 오후 네시가 조금 지났을 때의 일이었다. 하녀 산드라는..."('작은 보트에서') 

"최근에 나는 항공 우편으로 4월 18일 영국에서 치러질 한 결혼식의 청첩장을 받았다."('에스메를 위하여, 사랑 그리고 비참함으로') 

"전화벨이 울렸을 때, 머리가 희끗한 남자는 별다른 존중의 기미 없이 여자에게..."('예쁜 입과 초록빛 나의 눈동자')  

"이 이야기에 정말 무슨 중요한 의미가 있는 거라면, (...) 나는 이 이야기를 작고한 나의 의붓아버지의..."('드 도미에 스미스의 청색 시대') 

""야, 당장 그 가방에서 내려서지 않으면 죽여버릴 테다. 정말이야." 매카들 씨가 말했다."('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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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말해질 수 없는 삶을 위하여
    from 아흐퉁! 미잔트롭 2009-09-23 19:59 
    말해질 수 없는 삶을 위하여 - 김연수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김병익  나도 김연수가 즐겨 사용하는 수법을 따라, 그의 소설들의 첫 문장이 드러내는 글쓰기에 대한 자의식을 짚는 것으로부터 나의 김연수 작품론 쓰기를 시작해보자. 그는 소설 첫머리에서 자신은 이제 무엇에 대해 쓰기 시작하겠다는 말을 먼저 밝히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곤 한다. 가령, 제목이 시의 한 행일 법한 <그건 새였을까, 네즈미>의 첫 문장
 
 
2009-09-19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19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19 1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19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냐 2009-09-19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당히 재미난 문제 제기. 거기다 로쟈님스럽게 찾아놓은 풍부한 사례들. 더 흥미로운 건..여기 붙어있는 비밀댓글들요 ㅎㅎ

로쟈 2009-09-19 18:23   좋아요 0 | URL
분명 '반칙'이라고 할 수 있는데, 딱히 이유가 있어 보이지 않아서요. 그리고 비밀댓글이라고 별스런 내용이 오고가진 않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Sati 2009-09-19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의 시작은 아니지만,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에서 '그녀'가 전 참 거시기했어요.

로쟈 2009-09-19 22:05   좋아요 0 | URL
이번 작품집에는 빠졌네요...

perturbation 2009-09-19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언급하신 소설들에서 주인공을 '그' 혹은 '그녀'로 지칭한 것은 작품 내에서 그 인물들의 이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케이케이>에서 미국인 여성작가인 '나'의 이름은 끝까지 나오질 않습니다. 그러니까 필연적인 데가 있다는 것이지요. 일일이 확인해 보지 않아서 전부 다 그런 경우인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만. 뭐, 멋스럽게 보이려고 한 의도도 있긴 했겠지요.

(그리고, <알렉스>에서 처음에 '그'로 지칭된 인물은 알렉스가 아니라 다른 인물입니다. '그'가 나중에 해변에서 알렉스를 만나 '리 선생'을 소개받게 되지요. 제 기억이 맞다면, 이 '그'의 이름 역시 끝까지 나오질 않습니다.)

덧붙이자면, 저는 한국어의 '그/그녀'라는 대명사를 매우 사랑스러워하는 편입니다. 이름을 직접 지칭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어떤 '거리감+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것은 그저 선택(취향)의 문제일 뿐, '정석'과 '일탈'을 거론할 만한 사례는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

로쟈 2009-09-19 22:08   좋아요 0 | URL
네, 다시 보니 알렉스는 사칭한 이름이군요. 제 생각은 일인칭 화자가 등장하지 않는 한 시작부터 그/그녀가 나올 수는 없다고 봐요. 1-2칭이 사전에 세팅된 상황이거나, 앞에 나온 누군가를 다시 받을 때만 가능하지 않나요? 이름을 안 갖고 있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 같아요. '한 남자/여자'로 처리하면 되니까요. 혹은 '가방을 든 남자' '머리가 희끗한 남자' '눈이 퀭한 남자' 등등. 해서 소설문법이라는 게 있다면 '그(녀)'가 다짜고짜 나오는 건 반칙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튀는' 것이고, 일부러 튀게 쓰려는 게 아니라면(이것도 가끔 써야 효과가 있겠고요. 어떤 효과인지는 사례를 찾아봐야겠어요)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세련돼 보이지 않아서요...

로쟈 2009-09-19 22:16   좋아요 0 | URL
덧붙이자면 한때는 K, P, R 등의 이니셜이 많이 쓰이다가 요즘은 '그' '그녀'가 유행을 타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그런가요?). '거리감+분위기'라고 하신 것과 연관되는데, 저는 그런 게 구체적인 인물을 '장악'하지 못하거나 '묘사'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려는 책략이 아닌가 의혹도 갖습니다. 그(그녀)로 일관하게 되면 자연스레 이야기 추상적으로 흐르지요. 작가들이 되려 기피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perturbation 2009-09-19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것을 가능/불가능의 문제로 따질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반칙"이라는 표현이 제게는 좀 완고해 보입니다. 국어학적으로도 문제가 되는 실수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설사 그렇다 해도, 문학이 문법을 반드시 존중해야 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그냥 효과의 문제로 보면 되는 것 아닐까요? 그러니까 이런 식의 서두가 어떤 효과를 발생시키는지를 따져보는 게 제겐 더 흥미로워 보여요. 김연수 소설의 어떤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고, 더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김연수가 인물을 창조하고 다루는 태도와도 관련이 있지 않겠는가 넘겨짚어 봅니다.

그리고 알렉스는 '사칭한 이름'(?)이 아니라, 그냥 '그'와는 다른, 실제 인물입니다. 1장에서는 청도 해변에서 뒹구는 '그'가 등장하고, 2장에서는 알렉스와 재클린 커플이 등장하지요. 그리고 '그'가 '알렉스'로부터 일을 넘겨받아 '리 선생'과 대면하게 됩니다. 소설의 결말부분에서는 '그'와 '알렉스'가 언쟁을 벌이지요. 자꾸 꼬투리를 잡는 식이 되어서 좀 죄송하네요. 김연수를 좋아하다보니 뭔가 변호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예요. 이해해 주셨으면. . .

로쟈 2009-09-19 22:23   좋아요 0 | URL
네, 알렉스 건은 읽어봐야겠군요.^^; '문법'이란 말 대신에 '관행'이라고 해도 좋겠어요. 소설을 그렇게들 써왔다는 의미로. 저도 공들인 작품에 흠을 잡으려는 생각은 없는데, "그러니까, 그해 여름, 그는..." 이렇게 나가는 서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편집자라면 단호하게 수정을 요구하고 싶은.^^; 고유명사를 기피하는 건 익명화된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편승'한다는 느낌도 들고요...

노이에자이트 2009-09-19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문을 읽다 보면 그녀를 쓰지 않고 그'만 쓰는 사람도 있더군요.저는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선 3인칭 대명사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긴 합니다만....

좀 특이한 예인데 요 몇년전부터 동물다큐멘타리에서 동물을 대명사로 '녀석'이라고 하던데 이것도 좀 어색하고 거슬리더군요.대명사 용법이 익숙치 못한 언어다 보니 기껏 생각해 낸 게 '녀석'인 것 같습니다.

로쟈 2009-09-19 23:27   좋아요 0 | URL
그게 수입된 거라서 그런 듯합니다. 인칭 대명사 문제를 통시적으로 잘 정리해놓은 책도 어디 있을 듯싶은데요...

노이에자이트 2009-09-20 14:51   좋아요 0 | URL
동물을 대명사로 뭘로 하는 게 좋을까요? 권할 만한 게 있으면 일러주세요.

로쟈 2009-09-20 14:57   좋아요 0 | URL
사람도 보통 '놈'이라고 부르는데, '녀석'은 그래도 정감 있지 않나요?^^;

노이에자이트 2009-09-20 15:00   좋아요 0 | URL
그런데 어린 것들은 아직도 새끼라고 번역하더군요.

로쟈 2009-09-20 15:29   좋아요 0 | URL
'새끼'란 말 자체에 비하의 느낌이 있는 건 아닌 듯해요. 사람에게도 쓰니까요. '아이고, 내 새끼'처럼. '자식'이라고 해야 할까요? 다른 대안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외투 2009-09-20 16:59   좋아요 0 | URL
'새끼'를 뜻하는 표준어휘들을 봤습니다.
결국 언어 사용은 자신의 의지가 아닐까요.

외투 2009-09-20 0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일요일인데도, 그는 죽으러 나가려고 구두끈을 매고 있었다.(매일 죽는 사람/조해일), - 개니? 그가 물었다. 아뇨, 낙타예요?(낙타는 무릎이 약하다/이순원), - 눈을 뜨자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어두운 기억의 저편/이균영), - 그는 쇠사슬로 목을 졸리는 듯한 갈증에 퍼뜩 눈을 떴다.(침식/서영은), 작품의 첫 문장들입니다.

로쟈님은 번역 부분에서도 '독자'와 '효과'쪽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우리 일부 작품에도 지적한 면이 있습니다(위에). 작품의 첫 대명사 혼용은 작가가 독자에게 제공해야 할 명확성이 떨어질 우려가 있습니다(독자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독자에게 분명한 소통을 제공하려면 작가의 웃줄함 등을 빼는 것이 작품에 대한 공감성을 높이게 합니다.

저 또한 그/그녀'라는 대명사를 즐겨 자주 사용하는 편입니다. 몇 편의 글을 지인에게 건네주었더니 지인은 시쿤둥했습니다. 제 글의 불분명한 대명사에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 일요일인데도, 그는 죽으러 나가려고 구두끈을 매고 있었다, + 일요일인데도, 김사장은 죽으러 나가려고 구두끈을 매고 있었다, = 위 문장에서 그를 김사장으로 대처함으로서 죽으려는 사람의 사회적 속성을 독자에게 쉽게 제공할 수 있습니다.

유교문화의 속성상 간접 호칭을 사용합니다. 즉 직접 호칭 사용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글의 첫 문장부터 속성이 불분명한 대명사를 사용함으로서 독자에게 넌지시 드러내려는 것으로 오인받을 수 있습니다. 영어 등 번역문화의 영향도 한 목합니다(즉 he, she, her 등). 미국의 수필가 해리 골든의 수필 '연극은 계속되어야 한다'를 읽어보면 대명사는 없습니다. 글의 명확성과 간결함 때문에 독자는 쉽게 공감합니다.

로쟈 2009-09-20 09:31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전에는 별로 의식하지 않았던 문제 같기도 합니다. 한국소설의 '관행'은 따로 있을 듯도 해요. 다시 보면, 좀 '특이한' 관행입니다...

2009-09-20 0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0 0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9-09-20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지적입니다. 샐린저의 아홉가지 이야기를 그리고 체호프의 단편선을 다시 읽어보고 싶고, 앞으로 소설을 읽기 시작할때 어쩐지 조금 더 관심을 가지게 될 것 같아요. 이 페이퍼 무척 재미있습니다.

로쟈 2009-09-20 14:58   좋아요 0 | URL
네, 시작이 주요하지요. 눈에 띄는 시작보다는 신뢰감을 주는 시작을 저는 더 선호합니다...

로미 2009-10-10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을 읽다가 걸리는 표현이 있어서 몇 마디 씁니다.
'그', '그녀'가 한국 소설의 관행이라니.....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그', 특히 '그녀'의 사용은 이전 소설가, 수필가들의 문장에서도 곧잘 걸리적거리는 것으로 지적되곤 하였습니다.
번역투의 그림자가 없을수록 문장이 산뜻합니다. 외국어 직역한 듯한 문장을 좋은 문장으로 꼽지 않고요.
요즘 언급이 뜸한 것은 뭐 다 아는 얘기, 굳이 더 하겠느냐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러니 매번,
다 아는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그러게 되나 봅니다.

로쟈 2009-10-10 11:39   좋아요 0 | URL
네, 그것도 논란거리이긴 하지만, 저는 '그녀'를 써도 된다고 봅니다. 다만, 페이퍼에선 서두에 '그/그녀'가 막바로 나오는 것은 어색하다는 것이죠. 지시되는 인물이 먼저 제시되어야 나와야 문법에 맞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