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자 '책읽는 경향'에 소개되는 책이 오래전에 읽은 톰 울프의 <현대미술의 상실>(열화당, 1977; 아트북스, 2003)이어서 스크랩해놓는다. 미술관련서를 가끔씩 챙겨놓지만, 책을 손에 든 지는 좀 된 듯하다. 그림책을 보면서 휴일을 보낼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올까?.. 

경향신문(09. 09. 21) [책읽는 경향]현대미술의 상실  

<현대미술의 상실>(톰 왈프·열화당)은 학창시절 교내 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졸업 후 진로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던 터라 ‘상실’이라는 제목에 유독 마음이 닿았다. 문고판의 이 얇은 책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미술이론에 끌려가는 현대미술에 대한 야유와 독설이 가득 차 있었다. 책을 볼 때마다 속이 후련해지는 저자의 쉽고도 정확한 비판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이 책은 원제 'The Painted Word'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이론’을 알아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감상할 수 있는 현대미술의 현실에 대한 신랄한 공격이다. 또한 미술과 작가들의 창작활동이 미술외적인 요소들에 의해 작동되고 견인되는 것에 대한 지적과 개탄이기도 하다.   

이따금 다시 책을 펼칠 때면 깔끔한 정장에 묘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저자의 사진을 접한다. 그 사진은 1997년 작고한 미술평론가 고(故) 이일 선생을 생각나게 한다. 장안의 멋쟁이로 통했던 이일 선생은 어렵지 않으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이른바 잘 읽히는 비평문으로 유명했다. 나는 그분을 통해 미술비평과 이론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결국 그분이 학과장이었던 학과에 늦깎이로 입학했다. 졸업 후 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며 선생께 청탁한 전시도록 서문이 그분 생전의 마지막 원고가 되었다.

다양한 비평문과 평론집을 매일처럼 접한다. 공통점이 있다면, 글들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오래 살아계셨으면 하는 분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선생의 쉬운 글쓰기와 고운 웃음이 마냥 그립다.(박천남 성곡미술관 학예실장)   

09. 09. 20. 

P.S. 미술 작품 자체보다 미술 이론이나 비평이 더 득세하게 된 시대가 말하자면, 톰 울프가 진단하는 '상실의 시대'인데, 대략 그린버그의 모더니즘과 액션 페인팅 이후이다. 아서 단토의 표현을 빌면 그 '상실의 시대'는 '예술의 종말 이후' 시대이면서 '철학하는 예술'의 시대이기도 하다. 

    

소위 '이론 이후' 미술사에 대한 관심 때문에 구해놓은 책이 몇 권 있는데, 조나단 해리스의 <신미술사? 비판적 미술사!>(경성대출판부, 2004)와 마크 치담 등의 <미술사의 현대적 시각들>(경성대출판부, 2007) 등이 그것이다. 다시 검색해보니  겐 도이의 <미술사의 유물론적 이해>(경성대출판부, 2007)도 흥미롭겠다.  

 

덧붙이자면 키스 먹시의 책 두 권 <이론의 실천>(현실문화연구, 2008)과 <설득의 실천>(경성대출판부, 2008)도 챙겨놓기만 하고 아직 손에 들지 못한 책들이다. 너무 무거워서 들고다닐 수 없는, 할 포스터 등의 <1900년 이후의 미술사>(세미콜론, 2007)는 내 집 마련 이후에나 소장하려고 하는 나의 '로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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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2009-09-21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론'이라 하면 내포한 '의미'로 체계적인 해석과 주장일테고, 반대로 '무의미 하다'는 것은 단순하다는 것과 통할 것 같습니다. 미술이 미술로서만 존재하지 않고 그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음은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아니면 서로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모호성이나(위장성) 희귀성 때문이겠지요. 현대미술에 대해 편히 읽을 수 있는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조영남/한길사'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또한 미술로부터 위안(순수한)을 얻어 개인의 위기를 극복한 사람도 있습니다.

로쟈 2009-09-21 18:5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 한데, 그게 과정을 보면 어느 정도 필연적이기도 한 듯해요...

돈키호테 2009-09-22 21:09   좋아요 0 | URL
로쟈님 빈틈이 없으세요...

2009-09-21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1 1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nousee 2009-09-24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안녕하세요, 미술하면서 이 블로그에 가끔씩 접속해 제게 밀린 소개글들 읽는 것이 소중한 시간인데 저 기사를 보면 도무지 미술은 없으면서 있는 척한다라고만 싸잡아 얘기하고 싶은 분위기로 얘기되는 거 같아 조금은 실망스럽네요.. 쿤데라가 말했듯이 '설명할 수 없는 것' 앞에서의 놀라움이 창작의 이유라고 한다면 그걸 설명하는 비평가들의 헛다리와 창작을 혼동하는게 반복되는 느낌이 들때도 있구요.. 한국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미술가가 조영남이라는 사실이 조영남의 화투그림이 좋은거라는 건 딴 얘기아닌가요? 그리고 이일 선생은 '쉬운 글쓰기와 고운 웃음'답게 주례사비평의 원조님이시기도 하지요...쉬운게 좋은 거고 좋은게 좋다는게 전 싫네요...

로쟈 2009-09-25 20:50   좋아요 0 | URL
이일 선생이 그러셨군요.^^ 사실 저는 톰 울프의 책이 인상적이지 않았어요. 기억에 남는 게 없는 걸 보면. 대신에 단토의 책들을 좋아합니니다. 아무래도 '그림'보다는 '말'이 전공이다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