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열한 법치주의와 사법 불의

이번주에 눈에 띄는 신간은 저널리스트들이 쓴 역사서이다. '알 카에다에서 9·11까지'를 다룬 로렌스 라이트의 <문명전쟁>(다른, 2009)과 '세계를 뒤흔든 20세기 미국의 마녀재판'이란 부제를 단 브루스 왓슨의 <사코와 반제티>(삼천리, 2009). 미국사/문명사의 한 단면을 자세하게 파헤치고 있는 책들인데, 개인적으론 내용보다도 이런 책들을 쓸 수 있는 필자와 시장 조건이 좀 부럽다. 이번주 한겨레21의 커버스토리가 '소설 쓰는 시대'이기도 했지만(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5722.html), 내가 좀더 부럽다고 생각하는 쪽은 '넌픽션 쓰는 사회'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드라마 보는 사회'도 나름대로의 '문화'일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넌픽션 쓰는 사회'가 좀더 전망이 있다고 본다.  

 

<문명전쟁>과 <사코와 반제티>는 언론리뷰에서 크게 다루어졌기에 군말을 보탤 필요는 없어 보이지만 <사코와 반제티>의 경우 한국사회의 현실도 떠올리게 해준다는 점에서, 또 그런 점에 주목한 기사도 있기에 스크랩해놓는다. 

 

한국일보(09. 09. 12) 왜 미국은 이들을 '전기의자'에 앉혔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찾아온 미국 땅에서 두 남자는 강도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전기의자에 앉아 사형을 당한다. 세계는 이를 '마녀사냥'이라고 비난했고 미국은 훗날 두 사람의 명예회복을 통해 잘못을 인정했다. 두 희생자 니콜라 사코, 바르톨로메오 반제티는 신대륙 미국을 찾아 온 이탈리아 이민자였다. 각각 제화공, 생선장수로 일했던 둘을 사람들은 온화하고 따뜻한 인물로 기억한다. 사코는 가족을 성실하고 소중하게 대했으며 반제티는 문학과 친구를 좋아했다. 그들에게는 무정부주의자라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었다. 무정부주의에 공감했고 무정부주의 조직에서 활동했다. 

사코와 반제티가 미국에 온 지 12년이 지난 1920년 4월 15일 사건이 발생했다. 매사추세츠주의 소도시 브레인트리에서 현금가방 강탈 사건이 일어나 경리 등 직원 2명이 살해됐다. 경찰은 총과 총탄을 갖고 있던 사코와 반제티를 용의자로 체포했다. 두 사람은 줄곧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들의 신념을 보여주었다. 반제티는 감옥에서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금 관용을 위해, 정의를 위해,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날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사코는 아들에게 "행복한 유희 속에서 젊음을 보내기보다 박해당하고 희생하는 이들을 도와라"고 쓴 편지를 보냈다.

뚜렷한 물증이 없었지만 사형이 언도된 것은 두 사람이 무정부주의 사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공산주의 물결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이미 18세기말부터 인권, 노동운동이 고양됐고 진보주의 진영의 사회개혁 요구가 거셌다. 무정부주의자 역시 사회개혁 요구 운동에 적극 가세했고 사코와 반제티도 그 대열에 동참했다. 하지만 진보진영의 요구가 거셀수록 반대편의 대응 또한 거칠었다. 1차 세계대전 참전 이후 미국에서는 애국주의가 확산됐고 대대적인 좌익 검거 선풍이 불었다. 두 세력은 어떤 식으로든 충돌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보수세력은 사코와 반제티를 용서하기 힘들었다. 그들은 두 사람이 무정부주의자이고 1차 세계대전 참전을 기피했다는 것만으로도 유죄를 확신하고 있었다. 재판장은 "무정부주의자 놈들"이라고 내뱉고 "미국인이라는 애국심을 갖고 나라의 부름에 응한 진정한 군인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공공연히 강조했다. 심리는 증인들의 모호한 진술과 피고에 대한 유도 심문으로 일관됐으며 반대로 무죄 입증 증거와 알리바이는 채택되지 않았다.

유죄가 확정되고 처형이 임박해지자 미국은 물론 전세계 노동자와 지식인들이 사형 반대 운동에 나섰다. 런던, 시드니, 베를린, 로마, 도쿄, 부에노스아이레스 등에서 시위가 있었고 동맹파업이 일어났다. 버트런드 러셀, 마리 퀴리, 앨버트 아인슈타인, 업턴 싱클레어, 버나드 쇼, 로맹 롤랑, 이사도라 던컨 등 명망가들이 두 사람의 구명에 나섰지만 허사였다. 1927년 사형이 집행될 당시 사코는 서른다섯, 반제티는 서른아홉 살이었다.

이들이 실제 범인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일부에서는 여전히 유죄를 의심한다. 하지만 객관적 증거 없이 사상과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뤄진 처형이었기 때문에 이 사건은 '미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린다. 한 이름처럼 늘 같이 붙어 다니는 사코와 반제티는 그 뒤 그림, 소설, 시, 노래, 드라마, 연극, 오페라, 영화, 다큐멘터리 등으로 되살아났다. 그리고 사형이 집행되고 50년이 지난 1977년, 마이클 듀카키스 미국 매사추세츠주 지사는 공식적으로 두 사람의 명예회복을 선언했다.

듀카키스는 사코와 반제티 사형 기념식에 참석해 "지금 이 사람들이 유죄냐, 무죄냐를 판결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사면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말하려는 것은 매사추세츠 주민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높은 수준의 정의가 사코과 반제티에게는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책은 그로부터 30년 후인 2007년 미국에서 출판됐다.(박광희기자)   

한국일보(09. 09. 12) '사코와 반제티'사건에 투영된 한국사회

미국이 어려움 없이 세계 최강국이 된 것은 아니다. 미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나라 역시 여느 나라 못지않게 심각한 대립과 고통을 겪으며 오늘에 이른 것을 알 수 있다.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 등을 읽으면 유럽의 백인이 원주민을 밀치고 들어온 그 순간부터 이 나라는 갈등과 혼돈에 휘말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세기 초에는 노동운동의 기운이 일기 시작한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했고 사용자와 정부는 강경 대응으로 맞섰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립은 거세져 파업과 폭동이 잇따랐고 경찰 진압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가 유입된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 영향을 받은 작가 잭 런던은 <강철군화>에서 사회주의자의 형제애를 그렸고 업턴 싱클레어는 <정글>에 사회주의를 꿈꾸는 주인공을 등장시켰다.

소비에트 혁명이 일어나자 미국 보수층의 좌익 알레르기 반응은 극에 달했다. 제1차 세계대전까지 겹치면서 애국주의 바람이 거세게 일었고 무정부주의자 등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 작전이 전개됐다. 이탈리아 이민자 사코와 반제티가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갖는다. 사코와 반제티가 사형에 이른 과정에서 알 수 있듯 그때 미국의 사법부는 법과 정의와 양심을 따르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사코와 반제티 사건을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 역시 한때 일방적인 이념의 광풍에 휩싸여 살았다. 그 시기에는 정부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사상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감옥으로 끌려가고 목숨을 잃었다. 그때 우리의 사법부도, 사코와 반제티 사건을 다룬 1920년대 미국 사법부처럼, 인권보다는 체제를 지키려고 했다.

사코와 반제티 사건은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수십만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그들은 한국 노동자보다 훨씬 나쁜 조건에서 일하고 생활하며 인권을 온전히 보장받지도 못하고 있다. 더 무서운 것은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사코와 반제티 역시 이탈리아계라는 이유로 미국에서 무시를 받았다. 혹시 우리가 이 땅이 좋아 찾아온 이주 노동자를 무시하고 비하하는 의식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돌아보아야겠다.(박광희기자) 

09. 09. 12. 

P.S. <사코와 반제티>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상기하게 된 건 엊저녁 버스에서 들은 라디오뉴스이다. 박정희 군사정부하에서 '사법살인'을 당한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의 유족에게 국가가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는 보도였다. 관련기사를 찾아 옮겨놓는다. 찾아보니 경향신문의 원희복 차장이 쓴 <조용수 평전>(1994)와 <조용수와 민족일보>(2004)가 출간된 바 있다(관련기사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22956). 나름대로 풍부한 내용을 담은, 한국판 '인저스티스'의 사례를 다룬 책들이 더 많이 나오고 더 많이 읽힐 때 '사법개혁'도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세계일보(09. 09. 12)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유족 등 10명에 국가는 99억원 배상하라”

1960년대 초 북한에 동조한 혐의로 사형당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사진) 유족 등에게 국가가 99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20부(장재윤 부장판사)는 11일 ‘민족일보 사건’으로 체포돼 사형된 조 사장의 유족과 생존 피해자인 양실근씨 등 10명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며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조 사장의 유족 8명에게 총 23억원, 양씨 등 2명에게 6억원과 이자를 각각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조 사장의 유족과 양씨 등에 대한 위자료는 총 29억원이지만 사건 발생 이후 40여년 동안의 이자까지 감안하면 정부가 지급해야 할 실제 배상액은 99억여원에 달한다. 재판부는 “반국가단체인 북한 또는 그 구성원을 찬양·고무·동조한 자의 가족이라는 멍에를 쓰고 평생을 사회적 냉대 속에 각종 불이익을 당하였음이 인정되므로 정부는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민족일보 사건은 1961년 군부세력이 혁신계 진보성향의 신문인 민족일보의 조용수 사장을 ‘간첩혐의자로부터 공작금을 받아 민족일보를 창간하고 북한의 활동을 고무 동조했다’는 혐의로 체포한 뒤 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소급 적용해 처형하고 민족일보를 폐간조치했다(*폐간조치한 사건이다).

조 사장은 5·16 쿠데타가 발생한 지 이틀 만인 1961년 5월18일 체포돼 같은 해 6월22일 제정된 ‘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 6조의 소급 적용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그해 12월21일 사형이 집행됐다. 양씨는 같은 혐의로 기소돼 징역 5년을 선고받고 2년6개월간 복역한 뒤 풀려났으나 1993년까지 정보기관의 감시 하에서 생활했다. 조 사장의 유족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법원에 재심을 청구해 사건 발생 47년 만인 2008년 1월 무죄선고를 받아냈다.(김정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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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2 15: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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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2 09: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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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09-12 17:50   좋아요 0 | URL
자유당정권(말기)'진보당 사건'에 연루로 '조봉암'선생을, 5.16이후 박정권이 '북한찬양고무죄'로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을 사형시켰군요. 조용수 사장은 조봉암 선생 구명운동까지 했는데, 특히 조용수 사장의 제2심판때 이회창 님이 민관인 심판관이었다는 사실도(?) 있습니다.

현재 백낙천 교수는 '포용정책2.0'를, 박세일 교수는 '선진화 포용통일론'(흡수통일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조용수 사장은 어떤 민족통일론을 주장했을까 궁금합니다.

결국 소비에트혁명이후 미국의 보수층도 무정주의자에 대한 잘못된 체감으로
'사코와 반제티', 우리 또한 북한과 관련하여 남한내 보수층이 자신들의 정권유지 차원에서 사상범으로 몰아 죽임을 감행했군요.

올해 서거하신 두 분 전직 대통령도 한 분은 사법적 자의에 의해, 또 한 분은 정보기관의 강제 납치 상황에서 구사일생으로 회생하였던 것을 보면 사람의 인간성에 대한 발전은 별로 없는것 같습니다.

기획된 사법살인과 일반 사형이 스페인독감(1918-20)으로 4,000만명이 죽었다는 사실보다 더 절실히 다가오는 이유는 뭘까요?

로쟈 2009-09-13 19:40   좋아요 0 | URL
'백낙청' 교수입니다. 오타가 났네요. 사법살인은 인위적 과실에 의한 것이니 자연재해와는 아무래도 다른 것이죠. 요즘은 인재도 자연재화화되어 가고 있지만요. 지난주 임진강 사건처럼요...

2009-09-14 15: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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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4 15: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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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신작 소설집이 출간되어 이미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굳이 소개를 덧붙일 필요도 없어 보이지만, 인터뷰기사가 눈에 띄기에 스크랩해놓는다. 개인적으론 얼마전 작가를 가까운 발치에서 본 적이 있는데,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등장하는 모습과 너무도 닮아서(당연한 일이지만!) 오히려 좀 낯선 느낌을 받았다. 영화에서 '어색한 연기'를 한 줄 알았지만, 그냥 그는 평소 포즈가 어색했던 것이다!(작가들은 두 부류가 있는 듯싶다. 사교적 모임에서 발군의 입담과 화색을 자랑하는 경우와 저런 보릿자루가 다 있나 싶은 경우.) 밝게 웃는 모습의 사진이 예외적이지 않나 싶다.   

 

경향신문(09. 09. 11) 소설가 김연수 “고통에 대한 글쓰기가 곧 사랑의 경험”  

소설가 김연수(39)의 네 번째 소설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문학동네)의 수록작 ‘달로 간 코미디언’의 주인공 소설가는 이렇게 호언한다. 하지만 과연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부터가 대체 쉬운 일일까. 김연수는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는 작업에 도전한다. 김씨가 2005년부터 지난 여름까지 써내려온 소설 9편을 모은 이 책은 ‘고통, 이야기, 이해’에 관한 슬프지만 따뜻한 이야기다.  



김씨가 펴낸 열 번째 소설이기도 한 이번 소설집에서 김연수는 작가로서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준다. “이전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까지는 내가 소설로 쓰고자하는 명확한 지점이 있었습니다. <나는…>을 끝내며 이제 내 얘기는 그만 쓰고 싶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2005년부터는 외부 세계에 나 자신을 맡겨두고 타인과 얼마나 소통되는 지점이 있는가를 알아보는 시기였던 것 같아요. 소설을 통한 소통에 지극히 회의적이었는데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소설로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는 그런 그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미국의 여성 소설가는 17살 연하의 한국인 애인 ‘케이케이’의 고향 ‘밤메’를 찾아 한국을 방문한다. 케이케이는 미국 LA 폭동 때 목숨을 잃었다. 그녀의 통역사 혜미는 3살배기이 아들을 잃은 상실의 고통을 겪고 있다. 혜미를 부르기 어려워 ‘헬프 미’를 본떠 ‘해피’라고 부르는 소설가. 소설가와 해피의 소통은 원활치 않다. ‘밤메’라는 지명은 어디에도 없고, 비슷한 곳을 어렵사리 찾아가도 그곳은 산업단지가 들어선 황폐한 곳이다. 초조한 마음에 소설가는 해피에게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화를 낸다. 소통이 불가능해 보이는 그들이지만 그들은 말보다는 서로의 고통을 공감함으로써 진정한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것은 불꽃의 이미지로 형상화되는데, 각자 혹은 함께 타오르는 불꽃의 온기를 그들은 공유한다.

“서로 소통이 안되니까 그게 고통이잖아”라고 말하는 주인공이 시각장애인과의 대화를 통해 여자친구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는 ‘달로 간 코미디언’, 인도인 이주노동자와의 서툰 대화를 통해 아내의 고통을 이해하게 되는 ‘모두에게 복된 새해-레이먼드 카버에게’ 역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함으로써 소통에 이르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고통의 이해는 무엇을 통해 이뤄지는가. 그것은 이야기다. ‘내겐 휴가가 필요해’는 고통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이야기, 이야기를 통한 소통, 그리고 이어지는 불통의 과정을 무겁지 않고 위트있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수십년째 매일 도서관에 나와 책만 읽는 노인이 있다. 그는 사실 대공 업무를 담당했던 경찰관으로 그가 고문하던 도중 한 학생이 목숨을 잃었다. 그 후로 그는 잠적해 도서관에서 매일 책을 읽으며 “단 한 권이라도 자기 같은 인생도 이 세상에 필요했다고 말해주는 책”을 찾아 헤매지만 그런 이야기를 발견하지 못한다. 결국 자신의 이야기는 자기가 쓰는 수밖에. 노인은 속죄의 의미로 그 이야기를 도서관 사서에게 털어놓고 자살한다. 사서는 노인의 고통이 전이된 듯 몸이 아파 휴가를 내려 하지만 상사는 자기보다 먼저 휴가를 가려는 후배가 못마땅해 고함을 지를 뿐이다.

김씨는 “점점 사회적 고통이나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민감해지는 것 같다”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말만 계속하는 소설이 부질없는 행위 같지만 절망과 고통에 대해 쓴다는 것이 반어적으로 사랑의 경험들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이영경기자) 

09. 09. 10. 

P.S. 기사를 보니 이번에 나온 소설집에서 단편 '내겐 휴가가 필요해'는 발표 당시에 읽었던 작품이다. 하지만, 우화적이어서 별로 내키진 않았다(위트보다는 작위성이 마음에 걸린 듯하다). "수십년째 매일 도서관에 나와 책만 읽는 노인" 같은 인물이 주인공이면 나는 책을 덮는다('수십년'을 한 단어나 한 문장으로 처리하는 소설을 나는 싫어한다). 하지만, 작품집이란 '배치' 속에서는 또 다르게 읽힐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나머지 작품들은 틀림없이 걸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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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1 00: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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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1 06: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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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09-11 0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통 불통 고통 자살로 이여지는 소설의 끝이 자위적인 느낌입니다.
오히려 사서에게 털어놓고 사서가 자살함으로서 고통의 전이야 말로
사람을 두 번 죽인다는 의미를 동시에 보여 줬다면?

로쟈 2009-09-11 06:31   좋아요 0 | URL
단편 하나만 놓고 보면 그런데, 다른 작품들과 같이 읽으면 의미가 좀 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델러웨이부인 2009-09-11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 꿔다논 보릿자루입니다 ^^;

로쟈 2009-09-12 08:12   좋아요 0 | URL
네, 보릿자루형도 적진 않지요.^^;

2009-09-11 15: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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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2 08: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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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2 01: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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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2 08: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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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4 10: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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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4 11: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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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sy 2009-09-12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소설책의 표지로는 무척 새로워 보입니다. 내용도 좋겠지만 표지 때문에 사고 싶어지네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학교에서 어쩌다 뵙는 조**입니다. 개강했는데, 못 뵈었네요. 여기를 빌어 짧은 인사 드립니다.

2009-09-12 11: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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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10-04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봤습니다. 말씀처럼 소설가 김연수 님도 출연하던데요. 여성은 반복된 경험속에서 빠른 규칙을 만들어 적응하는데, 남성은 그 현실속에서 더 헤메다 안주하려는 속성이 있는듯 합니다. 조물주의 조화로운 계획일지 모르지만요.
 

이번주 한겨레21의 출판기사를 옮겨놓는다. 마크 릴라의 <사산된 신>(바다출판사, 2009)에 대한 서평기사다.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긴 하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몰입하기는 어려운 책이었다. '정치가 저지른 모든 악행의 근원에는 종교가 있다'는 저자의 주장도 좀 지나친 것으로 여겨졌고 은근한 서구 근대 우월주의도 독서를 불편하게 했다. 포인트를 잡지 못해 꽤나 애를 먹으며 쓴 걸로 기억에 남을 만하다.   

한겨레21(09. 09. 14) 인간이 짐승보다 못한 이유, 종교 

‘종교는 왜 정치를 욕망하는가’란 부제가 붙어 있는,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크 릴라의 <사산된 신>(바다출판사 펴냄)은 입장이 분명한 책이다. “인간이 전쟁에서 짐승도 하지 않을 만행을 저지르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신을 믿기 때문이다. 짐승은 먹이나 번식을 위해서 싸울 뿐이지만, 인간은 천국에 들어가려고 싸운다.” 곧, 저자는 인간을 짐승보다도 더 잔혹하게 만드는 것이 광신주의이고 메시아주의적 열정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종교와 정치를 분리해서 사고하지 않는, 이른바 ‘정치신학’에서 비롯한다.  

사실 인류사의 대다수 문명과 시대, 지역에서 인간은 정치적 사안의 답을 구하려 할 때 신에게 의존해왔다. 곧 정치신학은 유구한 전통이자 인간 사고의 원시적 형태다. 하지만 서구에서 정치신학은 그에 맞선 17세기 계몽철학자들의 지적 반란과 도전에 의해 무너진다. 기독교 정치신학에서 탈피해여, 신의 계시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인간적인 관점에서만 정치를 생각하고 말하고자 한 새로운 철학이 대두한 것이다. ‘정치신학’에 견주어 말하자면 이것이 ‘정치철학’이다.  

정치신학을 대체함으로써 정치철학은 서구 사회를 정치신학의 반대쪽 강기슭으로 옮겨놓았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도 많은 문명이 정치신학에 예속된 강 저편에 남아있다는 점이고, 동시에 서구인들이 이룩한 ‘사고혁명’이 아직 확고하게 자리잡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다시금 계시와 이성, 독단주의와 관용주의, 신탁과 합의, 신성한 소명과 통속적 가치관 사이의 충돌을 목도하고 있고, 이것은 16세기 투쟁의 되풀이라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그는 정치신학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며 정치신학과 근대 정치철학의 논쟁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는 관점에서 그것을 재구성한다.    

기독교 정치신학은 신과 인간, 그리고 세상이 신성한 연계를 이루고 있다는 이미지에 의존한다. 그러한 이미지에 가장 강력한 도전장을 내민 철학자가 토머스 홉스이다. 그의 대표작 <리바이어던>(1651)의 목표는 기독교 신학의 전체 전통에 대한 공격과 파괴였다는 것이 마크 릴라의 평가다. 인간을 신의 형상에 따라 만들어진 피조물이라고 보는 성서의 관점과는 달리 홉스는 인간 자신의 경험에서 모든 것을 끌어내고자 한다. “종교의 징조나 열매가 오직 인간 속에만 있다는 점으로 보아 종교의 씨앗 역시 인간 속에 있다는 점은 의심할 근거가 없다.”고 홉스는 말했다. 그는 정치적이건 종교적이건 간에 모든 인간 행위의 기본 동기는 공포와, 무지, 욕구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법은 정치신학에 기댈 필요가 없었다. 홉스는 ‘지상의 신’이라는 절대 군주 형상으로 충분하다고 보았다. 이렇듯 정치신학의 이미지에 의존하지 않고 종교와 공익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낸 것이 홉스의 가장 기여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주의 전통에서 종교가 이전처럼 정치를 위협하거나 광신주의를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자유주의 신학’이 대두한다. 독일의 사례인데,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광신적인 신앙심이 더 이상 근대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으리라고 보았다. 다만 그들은 종교의 도덕진리를 근대 정치생활과 화합시키고자 했고, 그것이 그들이 지향했던 목표이자 ‘신’이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자유주의 신학은 부르주아 사회와 함께 무너진다. 더불어 그들이 꿈꾸었던 신은 ‘사산된 신’에 불과했다는 것이 폭로된다. 정치적 목적과 무관하더라도 종말론적 구원사상은 정치적 메시아주의를 정당화하는 데 언제라도 악용됐다.  

따라서 저자가 보기에 ‘종교의 시대’가 끝났으며 사적 신앙은 존재하더라도 정치신학은 부활될 수 없다는 확신은 아직 성급하다. 정교 분리주의는 아직도 도전이자 실험이라는 것이다. 책은 서구의 근대 사상사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지만, 서구만이 ‘정치신학’을 극복했다는 서구 우월주의적 편견도 간과하기 어렵다.  

09. 09. 10.  

P.S. 책은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리바이어선>이라고 표기하는데, 기왕에 번역본들에서의 표기가 <리바이어던>인 만큼 통일시켜주는 것이 좋았겠다. 이 <리바이어던>에 대한 반응을 소개하는 한 대목은 이렇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출간 이후 한 세기 동안 널리 비방을 당했다. 대부분의 비판은 교회와 정치신학자들로부터 날아왔고, 그들은 유럽 독자들에게 유서 깊은 기독교 체제를 벗어날 때 따를 위험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을 때마다 홉스를 희생양으로 이용했다. 인간을 짐승보다 조금 더 나은 존재로 본 홉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인간은 더욱 짐승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96쪽)   

내가 붙이진 않았지만 기사의 제목과도 연관이 있는 대목인데, 번역엔 약간의 착오가 있다. 세번째 문장의 원문은 "Hobbes treated human beings as little more than beasts, they said, and would only make them more beastly if he were listened to."(91쪽)이다. 부정의 뜻을 가진 'little more than'을 'a little more than'으로 잘못 본 듯싶다. "인간을 짐승보다 조금 더 나은 존재로 본 홉스"가 아니라 "인간을 짐승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는 존재로 본 홉스"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게 문맥상으로도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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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비의 알림
    from seoulrain's me2DAY 2009-09-10 04:31 
    [책] '사산된 신' 내용요약 — (via 로쟈)
 
 
펠릭스 2009-09-10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삭 줍는 농부의 마음!

로쟈 2009-09-11 07:01   좋아요 0 | URL
벌써 수확의 계절인가요?^^
 

일주일에 이틀 저녁수업이 있었던 지난 학기에 비하면, 일주일에 이틀 아침 아홉 시 수업이 있는 이번 학기가 조금 더 수월하지만, 그럼에도 개강초의 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듯하다. 귀가 후에 글을 쓰기 위한 '또다른 일과'가 시작되어야 하지만, 대개는 정신을 못 차리고 나가떨어지기 일쑤다(오늘은 영양제를 맞아보라는 충고도 받았다). 하기야 막바지로 향하고 있는 프로야구 선수들도 체력이 달려서 애를 먹는다고 하는데, '빈곤한' 체력으로 8개월을 버텼으면 할 만큼 한 거란 생각도 든다(더 무리할 수도 있지만, 과로사 증후군도 이젠 고려해야 할 나이다). 그럼에도 일정은 11월까지 빼곡하다. 이러다 연말까지 찌질한 노동'으로 연명하는 게 아닐까 걱정스럽다...

'찌질한 연애'에 관한 책에 대해 떠들려다가 잠시 말이 헛나갔다. 최근 각광받는 20대 필자군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활약을 펼치고 있는 이들이 <뉴라이트 사용후기>(개마고원, 2009)의 한윤형과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레드박스, 2009)의 김현진이다(나는 시사IN의 칼럼으로 처음 알게 됐다). 한 책소개 프로그램에 두 사람의 책을 나란히 후보로 올렸다가 한윤형의 책을 먼저 읽게 됐는데, 김현진의 책도 여유가 되는 대로 읽어볼 참이다. '연애'에 대한 관심은 한참 아랫순위이고 '88만원 세대의 글쓰기'에 대해서 분석해보고픈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견적이 나온다 싶으면 뭔가 써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전에 기력을 충전하는 게 우선일 테지만. 사실 연애도 그렇지 않은가? 그래도 기운이 생동해야 할 수 있는 것이 연애일 테니까. 최소한 맥 빠진 연애를 하려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김현진의 인터뷰 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09. 09. 09) “당신만 찌질한 사랑에 아픈 건 아니랍니다”

요즘 인터넷과 진보매체에서 ‘글발’을 보여주는 잘나가는 20대 칼럼니스트가 여럿 있다. 하지만 그 중 여성은 김현진씨(27)가 유일하다. 첨예한 사회 이슈에 대해 속시원히 발언하던 그가 최근 돌연 관심사를 돌려 연애에 관한 에세이집을 냈다. 속칭 ‘찌질한 연애’의 모든 것을 모았다는 책 <누구의 연인도 되지마라>이다. 

 

웬 연애 칼럼집이냐는 반응에 김씨는 “몇년 전부터 연애 이야기를 좀 써보고 싶었다”고 했다. “연애를 많이 한 편이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연애는 개인과 개인이 다 벗고 충돌하고 깨지기도 하는 것이어서 사람을 가장 많이 성장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데 요즘 자꾸 똑똑하게 사랑하라, 손해보는 사랑은 하지마라고 이야기하는 책들이 쏟아지더라고요. 그런 이야기가 지겹더군요. 20대 여성들이 소개팅 가서, 데이트 하면서 돈을 안썼네 하면서 남자들을 이용해먹는 ‘된장녀’적인 아이콘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은 분위기도 싫었고요.”

사회가 강퍅해지면서 점차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은 없어지고 기회비용을 계산하고 손해 안 보고 상처 안 받으려는 태도가 야무지고 똑똑한 사랑의 방식으로 인식되는 풍토가 싫었다. 책은 ‘찌질한’ 사랑을 해서 자신을 비관하고 있는 20대 여성들에게 건네는 위로다. 물론 자신도 찌질한 연애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사실 여자들이 그렇게 따져가면서 손해 안 보는 연애만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남자에게 이용당하고, 손해 보고 끙끙 앓고 심지어 맞기도 하고 임신했다가 애를 떼기도 하고…. 찌질한 연애로 주눅들어 있는 아가씨들이 책을 보고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길 바랐어요.”

이 책은 벌써 김씨의 6번째 에세이집이다. 1998년 고교를 자퇴한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진학한 뒤 자신의 청소년기를 되돌아보며 99년 발표한 에세이집 <네 멋대로 해라> 이후 <불량소녀백서> <질투하라 행동하라> <당신의 스무살을 사랑하라> <그래도 언니는 간다> 등을 통해 10대와 20대들에게 조언을 건넸고 잡지와 신문 등 매체에도 시사칼럼을 쓰는 등 꾸준히 글을 썼다.  

“사실 저보다 글 잘 쓰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 분들은 다들 대기업 홍보실에 가 있다고 생각해요(웃음). 사실 비결 같은 건 없고요, 제 글이 도움이 됐다고 e메일을 보내주시는 분들 보면 그냥 고마울 따름이죠. 제가 여태 살아오면서 박박 긴 ‘삽질’의 기록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위로를 얻길 바랄 뿐, 10~20대의 멘토씩이나 될 자격은 아직 없는 것 같아요.”

하나 그렇게 글을 써도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 첫 책은 무려 19쇄나 나갔는데도 말이다. 생활감각이 전무한 부모님을 대신해 집안의 생계를 꾸려가다보니 글값으로 생활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김씨는 웃으며 자신의 글쓰기를 ‘생계형 글쓰기’라 하고 자신을 일러 월 40만원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도시빈민’이라고 소개했다.

이런 상황이지만 그는 조용히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실천을 하고 있다. 얼마 안 되는 자신의 인세, 원고료의 일부를 기륭전자 비정규직 분회에 기부한다. <그래도 언니는 간다>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의 인세 중 10%,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는 매체 중 두어 군데의 고료는 그를 거치지 않고 분회 쪽에 입금된다. “사실 원고료가 얼만지도 몰라요. 요즘은 가난하다 보니 그 돈도 아쉽기는 하지만, 작년에 기륭전자 언니들이 싸우는 걸 보면서 정말 많이 배웠기 때문에 내는 수업료라고 생각해요. 현장에서 보니까 소소하게 컵라면이니 생수 등 돈 드는 게 많더라고요. 돈을 더 많이 벌면 다른 곳에도 기부하고 싶은데 저도 도시빈민이다 보니 ‘일단 한 군데만 밀자’ 하고 있어요.”

그는 자신의 기부를 “국세청과 전혀 상관없는 제 나름의 사회에 대한 납세”라고 했다. “다들 먹고 살기 힘들다 보니까 연대를 잘 못한다고 괴로워하는데 시간이 없을 땐 ‘현금빵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굉장히 신자유주의적 시각의 연대긴 하지만, 별달리 시간도 여유도 없을 땐 최선의 연대는 입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기부뿐 아니다. 그는 언제나 현장에 달려나간다. 지난해 여름에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기륭전자 노조원들의 단식투쟁에 참여해 릴레이 단식을 하고 노조원을 위한 바자를 열었다. 올여름에는 쌍용차 평택공장 파업현장에도 갔다.

“일단 제가 가난하기도 하고, 에세이스트로서의 직업윤리 같은 게 있어요. 공돈 먹을 수는 없다, 이런 거죠. 집에서 그냥 인터넷으로 보고 글을 쓰기에는 제가 많이 부족해서 몸으로 때우는 거죠. 가서 내 눈으로 본 걸 쓰자, 현장 분위기를 몸으로 느껴서 조금이라도 더 진짜인 글을 쓰자고 생각해요.”

냉철한 시선을 견지하면서도 촌철살인의 유머와 휴머니즘이 담겨 있는 그의 칼럼이 생생한 이유가 거기 있었다. 현재 서울 종암동 철거구역에서 살고 있는 그는 재개발로 변화하는 서울에 관한 책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정말 하고 싶은 건 따로 있다. 일본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걸>을 재밌게 읽었다는 그는 “원래 실없는 농담을 엄청 좋아하고 이야기 만들기를 좋아해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은 생각도 크고요. 한데 요즘 사회 상황이 왠지 결연한 분위기를 유도하네요. 앞으로 전공(그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대학원 과정을 휴학하고 있다)을 살려서 킥킥 웃으면서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는 사람들이 짬 내서 읽고 하루하루 살짝 기분 전환이라도 될 수 있는, 그 정도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윤민용기자) 

09. 09. 09.  

P.S. 날짜로만 치면 꽤 의미있는 날이로군(중국의 '구구절'이 오늘인가?). 지면에서의 인기에 비하면 실제 판매량은 두드러지지 않은 듯하다(적어도 알라딘에서는). 책 인세의 10%는 기부된다고 하므로 덩달아 '간접기부'에 참여해보는 것도 의의가 있을 듯싶다. 그래야 우리의 '언니'가 더 오래 갈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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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09-09-09 20:18   좋아요 0 | URL
제가 악착같이 읽지 않는 종류의 책이 이런 책이었는데, 인터뷰 기사와 로쟈님 P.S.를 보니 한번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드는군요^^

로쟈 2009-09-09 22:55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연애서 읽을 나이는 아니지만, 젊은 세대의 감각을 엿볼 수는 있을 듯해요...

2009-09-09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09 2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펠릭스 2009-09-09 22:51   좋아요 0 | URL
가야금연주자 황병기 님이,
"삼복 더위때에 무언가를 하면 큰 일이 되더라"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붘깡스를 즐겼던 로쟈님이나, 한 여름에 평택공장을 지켰던 작가 님이나
"무언가 큰 일"을 저축하고 있는 듯합니다. 11월을 너머 빼곡히 변화하는
서울을 온 몸으로 담아 낼 것 같습니다.

책읽는 남자가 섹시하듯 신문을 읽는 여자 또한 '누구의 연인'이기를
거부하는 가을 분입니다. 연인이 되기를 열망하는 계절에 B급 연애는
더 생생할 텐데요.

여름내 흘린 육즙으로 이젠 탈진하여 어지럽고 어깨마저 축처집니다.
가을의 숨을 몰아쉬는 야구장과 투쟁 현장과 강의실에서도 1등급 육즙을
공급 받아야만 다음 삼복에도 무언가를 도모할 수 있슴입니다.

로쟈 2009-09-09 22:58   좋아요 0 | URL
네, 여름을 잘 나지 못한 후유증 같습니다. 이제와서 물릴 수도 없구요.^^;

2009-09-09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09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체오페르 2009-09-09 23:20   좋아요 0 | URL
사실 선입견이 있었던지라 로쟈님의 이 글을 읽고나니 왠지 부끄럽네요.
푸른바다님과 같이 저도 악착같이 읽지 않는 책이 여자 뭐뭐~ 시리즈 같은 종류,
칙릿, 시덥잖은 연애학서 같은 종류의 책들인지라 이 책도 딱 제목과 표지만 보고 그런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보지는 못했으니 정확히는 알수없지만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되고 보이면 한번 살펴봐야겠네요. 배우고 갑니다. 글 감사합니다.^^
ps : 제가 그런 책들을 싫어하는 몇가지는 여자 스스로를 약자로 규정해놓고 남자를 비판하는 그런 시각도 싫고 연애학서 보고 손해보지 않는 연애하려고,사랑도 결국 자신 행복하자는 거고 즐겁지 않으면 싫은거라지만...그런게 불편하더라구요.
누군가 그러더군요. 그런 책을 통해 당신은 '연애에는 성공할지 모르나, 사랑에는 실패할 것이다' 뭐,저만의 견해입니다.^^;;

로쟈 2009-09-09 23:49   좋아요 0 | URL
저자는 저자를 먼저 봤기 때문에 의외다 싶었는데, 소개를 보면 수긍이 가는 면도 있습니다. 더불어, 저자의 나이도 생각하게 되구요...

루체오페르 2009-09-09 23:22   좋아요 0 | URL
앗 제가 남기는 순간 다른분의 글과 로쟈님의 댓글이 와르륵 달려 나타나네요. 지금 같은 글을 보고 있다니 왠지 기분 재밌습니다. ㅎㅎ

다락방 2009-09-09 23:34   좋아요 0 | URL
저는 아침에 경향신문을 읽고 회사일을 시작하는데, 로쟈님이 가끔 이렇게 경향신문 기사를 올려주시면 한번 더 보게 되는거에요.

저도 위에 루체오페르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자기계발류의 시리즈 책은 전혀 읽고 싶지 않은데, 그래서 이 책도 제목만 보고 그런책이거니 하고 넘기려다가 저자가 김현진이란걸 알고 오늘 부랴부랴 주문했어요. 시사인에 기고하는 그녀라면 연애에 대한 얘기도 제법 신랄하지 않을까 싶어 기대하고 있습니다.

로쟈 2009-09-09 23:48   좋아요 0 | URL
저도 보통은 전철역에서 사서 읽는데, 오늘은 버스를 이용한 탓에 사보지 못하고 온라인에서 읽었습니다. 마땅한 기사다 싶어서 옮겨놓았는데, 반응이 좋군요...

라로 2009-09-10 03:17   좋아요 0 | URL
저도 선입견과 편견이 강한 인간이라 "저런책~?!..."이라며 들춰보지도 않고 제목과 표지만 보고 지나쳤을텐데,,,,,,,로쟈님,,,흑

라로 2009-09-10 03:24   좋아요 0 | URL
지금 책을 보관함에 담으며 보니 알라딘에 올라온 리뷰는 대부분 참 가혹하네요,,,

로쟈 2009-09-10 16:30   좋아요 0 | URL
'찌질한 연애담'에 대한 거부감도 한몫하는가 봅니다...

필로우북 2009-09-10 10:35   좋아요 0 | URL
저도 김현진 님 팬이에요. 예전에 '또 하나의 문화'시리즈에 글을 쓰던 십대 시절부터 글을 참 잘 썼었죠. 동시대에 같은 나이를 살면서 글로 표현해 주는 게 고맙기도 했구요. (그녀는 절 모르지만 제 중학교 1년 선배이기도 해서)그 뒤의 행보를 지켜는 보고 있었지만, 얼마 전 '20대 여자들을 위한 자기격려서' 라는 부제가 붙은 <당신의 스무 살을 사랑하라> 를 읽고 다시 팬이 되었습니다. 20대를 포함한 모두, 계발에 앞서 자기를 격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



로쟈 2009-09-10 16:32   좋아요 0 | URL
네, 저는 세대가 달라서 자기세대에 대한 연민이나 격려에는 거리감을 느끼지만, 맛깔나는 자기 문체를 갖고 있어서 좋아합니다...

순오기 2009-09-10 10:45   좋아요 0 | URL
20대인 우리 딸이 보면 딱 좋겠다 싶은데... 대학도서관에서 경향신문을 챙겨본다니 기사는 읽었겠네요. 저는 '언니가 간다'가 더 땡기는데요.^^

로쟈 2009-09-10 16:33   좋아요 0 | URL
<언니가 간다>는 칼럼모음집인 듯해요...

2009-09-10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10 2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침에 만원 지하철에서 읽은 경향신문의 칼럼을 스크랩해놓는다. '어제의 오늘' 꼭지인데, 1941년 9월 8일은 독일군이 레닌그라드 공습을 감행된 날이라 한다. 이미 6월에 독일군이 침공해들어왔을 때, 당시 소련은 히틀러와 비밀리에 체결한 불가침 협정만 믿고서 전혀 무방비상태에 있었기에 피해가 더욱 컸다(스탈린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미스터리다). 결국은 독일군을 격퇴하지만 2차 대전 중 가장 많은 전사자를 낸 곳이 동부전선이었다. 칼럼은 레닌그라드 봉쇄의 눈물겨운 사연을 전하고 있다.

경향신문(09. 09. 08) [어제의 오늘]1941년 독일군에 포위당한 레닌그라드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역사와 문화, 예술이 어우러진 유서 깊은 러시아 제2의 도시다. 18세기 러시아의 개혁군주 표트르 대제가 유럽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러시아 북서부 네바강 하구 삼각주에 건설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소비에트연방공화국 수립 이후 1924년 레닌그라드로 개명했다가 1991년 소련 해체후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6월 독일이 300만 병력을 동원해 소련을 침공하면서 대독전선 전방에 위치한 레닌그라드도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 파죽지세의 독일군은 개전 두달여 만에 레닌그라드 부근에까지 이르렀으나 시민들이 2만5000㎞에 달하는 참호를 파며 항전의지를 불태우자 점령 대신 포위전으로 전환한다. 히틀러도 독일군에 레닌그라드의 항복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특별지시를 내린다. 



마침내 9월8일 독일군은 라도가 호수를 제외한 보급선을 완전히 차단하고 공습을 시작했다. 인구 300만명의 레닌그라드에 대한 보급이 차단된 뒤 한달여 만에 시민들은 극심한 기아상태에 빠졌다. 밀가루가 떨어지자 톱밥, 목화씨는 물론 말 사료로 쓰던 귀리까지 먹어야 했다. 소련 해군함대가 보낸 곡물수송선이 라도가 호수에서 격침되자 배를 인양해 썩은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9월말에는 석유와 석탄이 떨어져 공장가동이 멈췄고 11월에는 교통수단 통행이 중단됐다. 겨울로 접어들면서 아사자들이 속출했고, 사람들은 인육에까지 손을 댔다. 하지만 강원도만한 크기의 라도가 호수가 얼어붙으면서 최악의 사태는 모면했다. 말이 이끄는 수송부대가 호수를 통해 레닌그라드에 물자를 실어 날랐고, 이듬해 4월까지 50만명의 시민들이 결빙상태의 호수를 건너 탈출했다. 1942년 여름에는 라도가 호수 밑바닥으로 석유 파이프라인이 건설되기도 했다.

1944년 1월27일까지 900여일 가까이 상상조차 어려운 굶주림과 추위, 폭격에 맞선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분투는 소련국민에게 용기를 심어줬고, 스탈린은 1945년 레닌그라드에 ‘영웅도시’의 칭호를 부여했다. 포위기간에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뜨거운 동지애와 전우애로 서로를 격려하고 저항을 이어갔다. 나이 많은 시민들이 “꼭 싸워 이기라”며 젊은이들에게 배급을 양보하고 희생을 자처했다는 일화도 있다. 세계적인 음악거장 쇼스타코비치는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투쟁과 애국심을 찬양하는 레닌그라드 교향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독일군이 패퇴한 뒤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트로이도 로마도 함락됐지만, 레닌그라드는 함락되지 않았다”며 만세를 불렀다. 포위전의 희생자는 소련정부의 공식발표로는 67만명이지만 최대 120만명이라는 설도 있다.(서의동기자) 

09. 09. 08. 

 

 

P.S. 찾아보니 레닌그라드 대봉쇄를 다룬 책들은 예상대로 많이 나와 있다. 어떤 책이 가장 정평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두 권은 소개됨 직하다.

  

국내에 소개된 책은 데브라 딘의 실화소설 <레닌그라드의 성모마리아>(랜덤하우스코리아, 2007)가 있다. 전에 소개한 적이 있는데, "나치 치하 900일동안, 레닌그라드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지켰던 한 여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 그리고 네덜란드 작가의 <레닌그라드의 기적>(다림, 2007)도 나와 있는데, 어린이용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와 독일 사이의 레닌그라드 전투를 배경으로 열두 살 어린 소년의 눈에 비친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작품"이라고. 

 

물론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을 다룬 책들은 기본서일 텐데, 또다른 격전지인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그린 안토니 비버의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서해문집, 2004)는 "2차 대전의 향방을 뒤바꾼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대한 생생한 다큐멘터리". 소개만 읽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책이다. 찾아보니 동부전선에 투입된 독일병사의 회고록과 러시아 남부 쿠르스크에서의 전차전에 관한 책도 소개돼 있다.    



1941년 6월 22일 히틀러는 '바르바로사 작전'이라 이름 붙여진 소련 침공을 실행에 옮긴다. 이로써 불붙은 독일과 소련의 전투는 역사상 최대의 시가전으로 기록될 만큼 양국에 막대한 피해를 안기며 2차 대전의 향방을 뒤집는다. 전체 전사자 중 80%를 이곳에서 잃은 독일군은 이 전투 이후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고, 2차 대전은 연합군의 승리로 기울었다.

어떻게 스탈린 체제의 비효율적인 공포정치에 익숙해진 소련이 그토록 막강한 독일군을 이길 수 있었을까? 흐루시초프는 이 전쟁에 대해 "소련은 스탈린 덕분에 독일에 이긴 것이 아니다. 스탈린이 있었음에도 이긴 것이다."라고 평했다. 이 전투의 주인공이 스탈린이나 히틀러가 아니라 이름조차 없이 사라진 무명용사들이라는 것.

이 책은 이같은 입장에서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들여다본다. 전투 현장의 양쪽 군인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아무런 희망도 없이 전투에 휩쓸린 보통의 사람들이 이 전투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떻게 견뎠는지를 담아낸 한편의 다큐멘터리와 같다. 이를 위해 양측 군인의 일기와 편지, 군목들의 보고서, 개인적 메모 등 다양한 사료들을 동원했다.  

겸사겸사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도 감상해본다(http://www.youtube.com/watch?v=m3G9ZqxcR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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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09-09-08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러시아 사람을 작년에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사람 왈 레닌그라드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정확한 러시아 발음은 어떻게 되나요?^^)로 복귀했지만 스탈린그라드는 아직 스탈린그라드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스탈린그라드에서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기에, 그리고 너무나 많은 사람이 스탈린그라드 대회전과 관련되어 있기에 이름을 바꿀 수 없다고 하던데, 전 사실 금시초문이었습니다^^ 러시아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 하니 갑자기 내가 제대로 알았나 의문이 들기도 하고... 아무튼 반박을 못했는데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니 1961년 이후 볼고그라드로 복귀된 걸로 되있네요.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할리는 없을 테고, 행정적으로는 볼고그라드지만 아직 많은 러시아인 기억에는 스탈린그라드로 남아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Sati 2009-09-08 20:34   좋아요 0 | URL
검색해보니, 러시아공산당을 중심으로 개명운동이 매년 꾸준히 펼쳐지고 있는데, 아직 공식적으로는 볼고그라드입니다. 2004년에 푸틴이 국민정서를 고려하여 모스크바 크레믈린 옆 무명용사의 묘역에 있는 '볼고그라드' 명판을 '스탈린그라드'로 바꾼 일이 있었네요.

로쟈 2009-09-08 23:41   좋아요 0 | URL
'뻬쩨르부르그'라고 표기하기도 합니다. 러시아지명에 대해선 러시아인들도 모르는 수가 있군요.^^

푸른바다 2009-09-09 16:5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Sati 님 감사합니다^^ 그런 움직임들이 있군요... 업무상 러시아 인들을 만날 일이 있는데, 소련에 대해 물으면 대부분 답을 회피하더군요^^ 스탈린그라드에서의 싸움을 영웅적인 행동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시 이름을 바꾼다는 건 그 싸움의 명분이 상당부분 사라지는 것을 상징하기에 혼란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델러웨이부인 2009-09-08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음악 잘 들었습니다~

로쟈 2009-09-08 23:40   좋아요 0 | URL
중국엔 잘 다녀오셨나요?^^

노이에자이트 2009-09-08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오래전 번역된 것도 있고 국내 저자가 쓴 것도 있지만 레닌그라드 공방전 자체만을 다룬 것은 단행본으로 나온 게 없어요.해리슨 솔즈베리 것이 영어권에선 꽤 유명한데 우리나라에선 아직 번역되지 않았구요.좀 오래된 것 중 윌리엄 샤이러<제3제국의 흥망>이 자세한데 60년대에 번역된 것은 일본어 중역이라 가타카나 발음으로 나와서 좀 어지럽지요.

최근 나온 것은 데이빗 글랜츠<독소전쟁사>가 군사전문가 쪽에서 많이 읽히고 있습니다.오버리는 러시아어를 모르는데 글랜츠는 러시아어를 안다는 잇점이 있지요.그리고 전투 묘사에 더 치중하고 있습니다.

로쟈 2009-09-08 23:39   좋아요 0 | URL
언젠가 서점에서 본 듯한 책이군요. 덕분에 챙겨둡니다.^^

펠릭스 2009-09-09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소피아로렌 주연 "해바라기(sunflower)"가
"스탈린그라드 전투(1942년)" 전을 배경으로 한
이탈리아 군인의 얘기가 아닌가요?
*'독소전쟁사' : '독소(toxin)전쟁사'로 오인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9-10 23:02   좋아요 0 | URL
마츠첼로 마스트로얀니가 독일군의 동맹군으로 소련에서 전투 중 낙오되어 현지여인과 결혼한 이탈리아 남자로 나오지요.그 소련 배우가 미녀로 유명한 루드밀라 샤벨리에라입니다.배경은 우크라이나입니다.현지에서 직접 찍었지요.촬영당시는 소련 시절이라 우크라이나가 소련 내 공화국이었습니다.

펠릭스 2009-09-12 09:5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접경이군요. 주위에는 동유럽국인 '벨로루시,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가 있군요.
현재 동유럽은 '경제.금융상의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합니다.
1) 외부 유입된 부채에 의한 경제구조.
2) 사회복지에 대한 많은 재정적자.
3) 정치불안,'우크라이나'경우 은행개혁과 정부 예산 수정 등 각종 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미미한 상태로 2010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쟁으로 인해 혼돈 심화.(조선,이석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2009-09-11 0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11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