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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공간 지행네트워크의 첫번째 책이 나왔다. <나는 순응주의자가 아닙니다>(난장, 2009). 지행네트워크는 "2007년 7월 30일, ‘행동하는 지식인’을 꿈꾸는 세 명의 ‘포스트 386세대’가 만든 대안적 연구공간"이다. 책에는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의 긴 서문이 수록돼 있는데, 현 시국과도 관련하여 대안지식공동체의 의의를 짚어주고 있어서 일독해봄 직하다. 지행네트워크의 홈피에서 옮겨왔으며, 알라딘에서는 '미리보기'로 읽어볼 수 있다.  

추천사: 비주류 지식인의 몽상과 우정

전국적으로 시국선언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지식인들에 의한 시국선언은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인 고비마다 있어왔지만 이번에는 그 규모가 아마도 제일 크고, 참여자들의 정치적 성향도 비교적 다양한 것으로 얘기되고 있다. 대학교수, 교사, 언론인, 종교인, 작가, 예술인을 포괄하는 이들 지식인의 시국선언은 전직 대통령의 자결이라는 충격적인 사태에서 촉발된 측면이 많지만, 근본적으로는 이명박 정권 밑에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갈수록 후퇴하고 있다는 공통인식에서 출발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상황을 바라보는 국가권력과 보수언론의 태도이다. 그들은 지금 시국선언 참여자들의 소속 학교, 기관, 집단 전체의 규모로 볼 때 이들 지식인의 목소리가 극히 부분적인 의견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이런 반응은 지금 국가권력이 얼마나 ‘민심’을 읽지 못하고 있는가를 드러내는 단적인 증거이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보면 이것은 그들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며, 또 실제로 거기에는 상당 정도 진실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하기는 집권자나 보수세력은 국가권력의 전횡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폄하하기 위해서 언제나 ‘침묵하고 있는 다수’를 언급하는 오래된, 상투적인 습성이 있다. 그런 자세로 일관하다가 결국 처참하게 몰락하는 게 또한 권력의 속성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권력이 기대는 그런 편의적인 논리에 전혀 근거가 없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날 고도로 조직화된 산업국가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대다수 지식인들은 어디까지나 사회의 기득권층에 속해 있다. 그런 한에서 그들은 근본적으로 기성체제와 운명을 같이 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시국선언에 참여하고 있는 지식인들도 대부분 여기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시국선언 참여자들이 원하는 것은 결국 민주적 절차가 존중되는 좀더 부드러운 통치방식으로의 변화이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초래한 근원적인 조건과 요인에 주의하면서 그것을 제거하기 위한 급진적 체제변혁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정부를 향하여 민주적인 절차를 지키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게 덜 중요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문제는 민주주의가 살아나고, 좀더 인간적인 통치체제가 실질적으로 가능하려면 권력자의 단순한 선의만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현실에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게 일차적인 과제이고, 그것이 좀더 인간적인 사회를 위한 선결조건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것은 형식적인 민주주의나마 이명박 정권의 출범과 함께 어이없이 무너지기 시작한 게 과연 이명박만의 탓인가 하는 점이다. 소위 민주정권에서 보수정권으로 권력이 교체되자마자 그렇게 쉽게 무너질 민주주의라면 그 민주주의의 뿌리가 실은 매우 허약한 것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소위 민주정부 10년 동안에 이 나라에서 실질적 민주주의가 강화되기는커녕 실제로 훼손되어온 측면이 강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두 정부 역시 경제성장 논리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면서 보다 효율적인 성장을 위해 이른바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용, 일관되게 추진해온 데 주로 기인했다고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본래 신자유주의란 거대 자본이 주도하는 시장의 자유와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공공의 이익과 사회적 연대, 그리고 생존의 자연적 한계를 무시하는,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강탈에 의한 자본축적’의 메커니즘을 정책적으로 옹호하는 가장 비인간적인 자본주의 경제사상이다. 그런 노선을 채택하고 일관되게 추진하는 이상, 아무리 민주적 정부를 표방한다 할지라도, 그리고 여하한 사후적인 ‘사회안전망’이나 복지정책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책을 강구한다 할지라도, 그것들은 결국 땜질처방에 불과할 뿐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 공동체의 전면적 해체, 환경파괴는 불가피한 것이 된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그대로 정치적 발언권에 있어서의 불평등의 심화로 이어지게 마련이고, 그 필연적인 결과는 사실상 허울뿐인 민주주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 시스템이란 절대로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체제임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신자유주의 정책이 거침없이 활개를 칠수록 국가는 전면적으로 경찰국가 체제로 전락하기 쉽다. 이것은 간단히 생각해 보더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신자유주의는 흔히 국가에 의한 개입이나 공적 규제조치를 철저히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국가 공권력의 지원 없이는 한순간도 유지될 수 없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부유층에 대한 감세, 민영화, 규제완화, 자유무역 등 신자유주의의 핵심정책을 현실화하자면 오랜 세월 자본주의 역사를 통해서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이 피를 흘리며 쟁취해온 다양한 기본적 권리를 포함하여, 문명사회가 지구환경을 지키기 위해서 합의해 놓은 최소한의 환경규제까지도 짓밟거나 내팽개치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권력은 시장권력의 이러한 요구에 응하여 법률을 만들거나 개정하고, 그리하여 법치의 이름으로 집회와 표현의 자유라는 가장 기초적인 민주적 권리를 억압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경찰 특공대의 투입도 주저하지 않는 만행을 자행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국가가 쉽사리 경찰국가 체제로 전락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가 국가개입을 반대한다는 것은 따져보면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따져보면, 신자유주의가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게다가 작년 가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체제의 붕괴와 그로 인한 범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의 유효성은 사실상 소멸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멀쩡한 정신의 소유자라면 그 누구도 신자유주의의 강화를 통해서 이 파국을 벗어날 수 있다고 믿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최근에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그동안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력히 지지하거나 옹호해왔던 이데올로그들 중에 기왕의 자기 신념이 더 이상 현실적합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솔직히 시인하고, 반성의 자세를 표명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유감스러운 것은, 이명박 정권과 그 지지자들은 이런 세계적인 추세를 정면으로 거스르고 아직도 신자유주의적 노선을 고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세계적인 차원에서 명백히 실패한 것으로 판명된 논리를 포기하지 못하는 그들의 이 시대착오적인 우행(愚行)이 성공할 리는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 노선을 완강하게 고집하는 한, 국가권력은 저항세력을 통제하고 탄압하기 위해서 갈수록 강도 높은 강압통치에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게 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더욱 심대한 타격을 입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시대착오적인 행태는 단명하기 마련이다. 지금 온 세계에는 약육강식을 부추기는 배타적인 경쟁 논리로는 조만간 문명사회 전체가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긴박한 인식이 광범하게 퍼져 나가고 있다. 유독 한국 사회만 이런 세계적인 흐름을 언제까지나 외면하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사실, 작년의 대규모 촛불집회-시위에 이어서 지금도 온갖 탄압을 무릅쓰고 다양한 형태로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는 민중의 저항운동은 그때그때마다의 현안에 대한 문제제기이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좀더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강한 욕구의 분출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이미 이 사회가 ‘경제 살리기’라는 명분만 내세우면 모든 게 허용될 만큼 정신적 빈곤에 갇힌 열등사회가 더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현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희망적인 징후를 구체적인 현실로 전환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시회현상의 의미를 좀더 깊이 있게, 정확히 읽을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거리와 광장에서 혹은 작업장이나 농성장에서 억제할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온갖 분노와 슬픔, 불안과 불만의 목소리는 지금까지 이 사회와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규율해왔던 주도적인 가치와 제도와 관습이 총체적으로 크나큰 위기에 도달했음을 증언해주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점에 특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이 그렇다면 지금은 단순히 형식적인 차원의 민주주의의 회복 운운할 단계는 이미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깊이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들이 국내외적으로 직면하고 위기는 통상적인 의미의 정치적・경제적 위기를 넘어선 총체적 문명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국가 간의 그리고 국가 내부의 양극화, 도농격차, 인구・실업문제, 남북격차, 전쟁위협, 에너지・자원 고갈, 지구온난화라는 가공할 사태를 비롯한 범세계적 생태위기, 그리고 공동체의 붕괴와 사회적 연대의 해체 등, 이 모든 위기는 실제로 서로 긴밀히 얽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각기 따로 분리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따져보면 이 모든 위기는 결국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산업자본주의 문명의 종언이 임박함에 따른 위기로 해석될 수 있다.

돌이켜볼 때, 오늘날 사람들이 대개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거의 모든 근대적 제도와 관습은 대부분 산업자본주의 시스템의 불가결한 일부로 형성・발달해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규모 산업 생산과 유통망, 화폐제도와 금융제도는 말할 것도 없고 학교, 병원, 교통, 통신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서비스 역시 자본주의 시스템을 뒷받침하고 유지하는 데 빠트릴 수 없는 요소들이다. 나아가서 정당정치, 대의제 민주주의 등 근대적 국가의 통치체제의 근본 골격을 구성하는 정치제도 역시 산업자본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성장해온 역사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역사적인 산물인 한, 이것은 시작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종말을 맞을 것이 틀림없다. 아마도 지금과 같은 총체적인 문명의 위기는 그러한 종말의 시작을 알리는 징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요컨대 작년의 대규모 촛불시위는 한국의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와 실패를 명백히 드러낸 현상이었다. 그토록 많은 시민들이 저녁마다 촛불을 들고 거리와 광장으로 모여들어 한 목소리로 민주주의를 절규했던 것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든 무엇이든, 국회가 민중의 의사를 정당하게 대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아무도 믿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행 헌법과 정치제도 밑에서, 거리와 광장에서 아무리 강렬하게 표출된다 할지라도 그 민중의 목소리에 대한 경청을 권력자가 거부하는 한, 민중은 깊이 좌절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리하여 국가권력이 폭력수단으로 전방위적인 탄압을 개시하면 시민들은 퇴각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와 우울 속에 갇혀 지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말 문제는 권력자의 인간적인 자질이나 정치적인 신념이 아니라, 권력자의 선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는 지금과 같은 정치 시스템 그 자체인 것이다. 이 경우 권력자는 대통령 한 사람일 수도 있고 의회라는 집단 권력자일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현행의 정치제도로는 이 근본적인 문제의 해소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현재와 같은 대의제 민주주의란 기득권층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과두(寡頭) 통치 시스템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대의제 민주주의는 자유시장 논리에 의거한 자본주의를 뒷받침하는 정치적 틀로서 확립되어온 제도이다.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 근대문명이 그 역사적 유효성을 상실하고 쇠퇴기에 접어든 오늘날, 대의제 민주주의 역시 그 수명을 다했다고 보는 게 옳을지 모른다. 그리하여 광범한 민중의 욕구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정치체제의 근본적인 탈바꿈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탈바꿈은 밑으로부터의 민중의 능동적인 정치참여를 보장하는 전면적이고 근본적인 변혁이어야지, 정치 엘리트들 사이의 권력배분에 집중된 부분적 개헌 따위로 될 일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엄청난 역사적 대변환기에 서 있다는 근본적인 성찰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일까. 사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주류 지식인은 자본주의 국가 체제에 기반을 둔 근대문명의 지속을 위한 지식과 기술을 연마하고 제공하는 일을 수행하는 데 종사해왔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기관이 대학이든 연구소든, 혹은 언론기관이든 가릴 것 없이 결국은 ‘싱크탱크’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왔다고 할 수 있다. ‘싱크탱크’란, 간단히 말하면, ‘탱크’를 만드는 사람들이 주는 돈으로 움직이는 연구와 교육 및 선전기관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 지식인은 근본적으로 ‘탱크’로 상징되는 국가와 자본의 결합체를 위해 봉사하는 체제 순응적인 존재인 셈이다.

체제 순응적인 지식인들이 오늘날 우리의 삶의 지층에서 요동치고 있는 근본적인 변화에의 욕구에 기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들은 기성의 체제에 문제가 있다면 부분적인 수선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뒤흔들어놓을지도 모를 근본적인 변혁을 위한 지적・사상적 모험에 위험을 무릅쓰고 몸을 던질 가능성이 그들에게는 거의 없다.

역사의 변환기에 항상 그랬듯이 근본적인 변혁을 위한 열망과 욕구는 체제의 변두리에서 싹트고 성장한다. 체제 비판적 지식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실,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 근본적인 질곡으로 작용하고 있는 자본주의 근대문명이라는 기본적인 틀을 비판적으로 극복하지 않는 한, 우리가 직면한 총체적인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전망은 열리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오늘날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아직도 경제성장 논리에 알게 모르게 붙들려 있다. 그런 한에서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스스로 어떻게 규정하든 본질적으로는 주류파 지식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그들에게서 지금과 같은 폐색상황을 뿌리로부터 뛰어넘을 수 있는 지적・사상적 결단을 기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된다. 새로운 전망을 열어줄 지적・사상적 에너지는 역시 비주류 지식인에게서 나올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지금 이 사회의 다수 민중과 마찬가지로 늘 생활의 불안정에 시달리고 현실의 압력 밑에서 계속해서 좌절을 경험하면서도, 새로운 삶에 대한 억제할 수 없는 꿈과 열망으로 결합된 가난한 젊은 지식인들의 진지한 사색과 탐구의 기록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들은 세계의 변혁을 위한 거창한 설계도를 제출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자본주의 체제의 근저적(根底的) 변혁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그러한 변혁이 있기 위해서는 아마도 먼저 세계 전역에 걸친 사회적・생태적 대파국이 닥쳐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그런 어두운 전망 앞에서 낙담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세계를 당장에 뿌리로부터 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우리 각자의 삶을 새롭게 하고, 또 가까이에 있는 이웃들의 작지만 의미 있는 삶의 변화를 위해서 도움을 줄 수는 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성취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의 성취에는 반드시 우정과 연대의 그물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공동작업으로 엮어내는 지행네트워크의 젊은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비타협적인 삶이 오로지 자신들 사이의 우정의 그물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그러한 우정의 논리가 궁극적으로는 그들이 몽상하는 새로운 정치공동체의 기본적 구성원리가 될 수 있다는 가정 밑에서 여러 실천적 가능성을 성실히 모색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이것이 이 책의 아마도 가장 소중한 미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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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07-27 11:35   좋아요 0 | URL
행동하는 지식인(양심), 지적 공간에 머물러 있으면,
초원과 정맥의 바람을 느끼기 어렸습니다.
비주류 지식인에게 거는 기대가 큼입니다.

로쟈 2009-07-28 21:42   좋아요 0 | URL
저보다 더 기대가 크신 듯.^^;
 

귀가길 버스에서 읽은 칼럼을 옮겨놓는다. 엊그제 국회에서 통과된(되었다고 여당에서 우기는) 방송법 개정안이 왜 '부결'된 것인가를 짚어주는 칼럼이다. 헌법에다가 국회법까지 공부시키는 정권과 집권당의 행태에 어떻게 응전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들을 해봐야겠다. 저들은 이미 '전쟁' 모드에 돌입한 듯싶으므로...   

경향신문(09. 07. 24) 의사-의결정족수 구별 못한 여당  

지난 22일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었다. 투표 종료 선언과 함께 드러난 전자표결 결과는 출석의원 145명에 찬성 142명. 하지만 곧바로 국회부의장은 “다시 투표해 달라”고 주문했고, 그 결과는 출석의원 153명에 찬성 150표. 국회부의장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했다.

방송법 첫 투표 불성립 아닌 부결
민주당 등 야당은 일제히 이 같은 ‘재투표 행위’에 대해 국회법 제92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일사부재의의 원칙에 위반되어 위법하며 무효임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여당과 국회사무처는 국회법 제78조에 근거한 행위로 적법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야당은 첫번째 표결을 통해 이미 방송법 개정안이 부결되었다고 보는 것이고, 여당과 국회사무처는 부결된 것이 아니라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첫번째 표결이 불성립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의 차이는 어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까? 의결정족수 규정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 내지 해석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여당의 주장은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이라는 의결정족수에 관한 규정에서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을 의결을 위한 선결조건으로 이해하고, 조건이 충족되지 못한 표결은 표결로서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는 논리형식을 띠고 있다. 반면 야당의 주장은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을 표결이 성립되기 위한 선결조건이 아닌 의안이 가결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라는 논리형식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 헌법과 국회법은 여러 규정에서 국회의 회의가 성립하기 위한 최소한의 출석 의원 수와 국회의 의결이 성립하기 위한 최소한의 찬성의원 수를 규정하고 있다. 전자를 의사정족수, 후자를 의결정족수라고 말한다. 따라서 의안을 상정하고 표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의사정족수를 충족해야 하며, 의사정족수를 충족해 일단 표결에 부쳐진 의안이 국회의 의사로서 유효하게 성립하기 위해서는 의안에 따라 헌법과 국회법에서 요구되는 의결정족수를 충족해야 한다. 의결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한 의안은 부결된다.

이렇게 볼 때, 여당과 국회사무처가 첫번째 투표에 대해 주장하는 ‘표결 불성립’은 의사정족수와 의결정족수의 구별에 대한 이해의 부족 혹은 방송법 개정안 가결을 정당화하기 위해 의도된 해석상의 오류라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즉,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첫번째 표결은 의사정족수(재적의원 5분의 1 출석)를 충족했다는 점에서 적법한 표결이었으며, 의결정족수인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이라는 요건 가운데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이라는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함으로써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해 부결되었다고 하겠다.

재투표는 일사부재의 원칙 위반
따라서 국회부의장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진 재투표는 그 용어 사용의 적절성 여부에 대한 문제는 차치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부결된 안건을 같은 회기 중에 법률안에 대한 발의 등 의사절차조차 생략한 채 다시 표결처리한 것으로 이는 국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일사부재의의 원칙에 명백히 위반된 것으로 위법하다고 하겠다. 재투표에 대해 여당과 국회사무처가 제시하고 있는 정당화 논거를 보며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이 떠오르는 건 우연일까?

방송법 개정안의 법안처리 과정은 그 결론 도출 과정에서 소수의 의사를 반영하지도 않았고 헌법과 법률에서 정하고 있는 정당화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다수라는 수에만 의지하여 진행되었다. 정당화 요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수에 의지하여 이뤄진 행위는 ‘다수의 횡포’이고 ‘다수의 폭력’이며 이는 민주주의 원리와 법치주의 원리에 비추어 어떠한 경우라도 허용될 수 없다.(고민수 | 강릉 원주대 교수·법학) 

09. 07. 24.  

P.S. '의사정족수'니 '의결정족수'니 하는 법률용어들이 그래도 머리에 잘 안 들어오시는 분은 화투판의 '낙장불입'을 떠올리셔도 좋겠다.   

한겨레(09. 07. 24) 일사부재의와 낙장불입

이명박 정권의 언론법 밀어붙이기는 나로 하여금 과거 우리 국회의 날치기 처리 주역, 그리고 사기도박꾼들을 존경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들이 자신이 속한 곳의 최소한 기본규칙을 존중하기 위해 얼마나 분투하고 번민의 밤을 보냈는지를 뒤늦게 깨닫고,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22일 국회에서 방송법 의결 상황은 3단락으로 요약된다. “투표를 종료하겠습니다.”→“어! 통과가 안 됐네.”→“그럼, 다시 투표하겠습니다.” 동네 꼬마들의 홀짝 쌈치기, 양로원 할머니들의 점10 고스톱, 직장인들의 김밥·떡볶이 내기 사다리타기도 그러지는 않는다. 방송법 의결 상황을 꼬마들의 홀짝 쌈치기에 비유하면 이렇게 된다. “까봐!”→“어! 내가 못 먹었네.”→“그럼, 다시 접어.” 구슬주머니로 머리를 맞고, 쌈치기 동네에서 영원히 왕따당할 짓이다.

중·고교 사회 시험에 잘 나오는 일사부재의 원칙은 별게 아니다. 쌈치기, 고스톱, 사다리타기에서도 결과가 나왔으면 받아들여야지, 다시 하자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당연히 아는 원칙이다. 일사부재의 원칙은 바둑으로 치면 일수불퇴이고, 화투판이라면 낙장불입이다. 화투장 뒤집고 나서 패가 마음에 안 든다고 다른 화투장 뒤집어서는 안 된다. 동네 축구에서도 자책골 넣었다고 무효라며 경기 다시 하지 않는다. 더구나 그 경기에서 구경하던 동네 친구들이 간간이 운동장으로 들어와 부정선수로 뛰었는데도 그랬다면, 더욱 할 말이 없게 된다. 지금 한나라당은 그런 동네 축구 상황을 연출해 놓고도, 연장전 선언하고 텅 빈 경기장에서 골 넣고 이겼다고 하는 꼴이다.

공적인 의사결정 과정에서 내용적 다수는 절차적 과정을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돼야 한다. 의사 및 의결정족수를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는 소수를 보호하는 기술적 절차도 될 수 있다.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필리버스터가 대표적이다. 필리버스터의 원어인 스페인어 ‘필리부스테로’는 해적·약탈자란 뜻이다. 부정적인 방법이지만, 이런 것으로라도 소수를 보호하는 것은 의미가 있기에 의회에서는 합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사실 미국 의회의 최장 필리버스터는 미국의 자유와 인권을 상징하는 민권법안을 놓고 이뤄졌다. 보수파인 스트롬 서먼드 상원의원은 1957년 민권법안을 저지하려고 무려 24시간 18분 동안 연설을 해서, 기록을 경신했다. 1964년에도 민권법안을 저지하려고 보수파 의원들이 돌아가며 75시간 동안 연설했다. 필리버스터를 하는 쪽이나 당하는 쪽이나 의사결정의 절차적 과정은 존중하는 것이다.

사기도박꾼도 도박판의 승부 결정 규칙은 존중한다. 자신이 도박판 규칙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다. 한국 국회의 오랜 전통인 날치기도 의사결정 절차에 대한 존중 때문에 나온 것 같다. 찬성 의원 수를 반올림한 사사오입 개헌, 회의장 바꾸기 전술을 선보인 3선개헌 발의, 의장이 방청석에서 등장한 지난 96년 노동법 통과 등 신기원을 이룩한 날치기도 의결정족수 충족에 대한 존중은 있었다.  

그때 그 주역들이 방송법 의결 상황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은 밤을 새우며 고민하고 번민했던 날치기 통과의 노력에 허탈해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쉬운 방법이 있는데 허튼 노력을 하고 욕은 욕대로 먹었다고 할 것이다. 사기도박꾼들은 분노할 것이다. 영화 <타짜>를 보니, 사기도박하다가 걸리면 손목을 잘라버리던데, 대놓고 규칙을 어기면 무엇을 자를까? 사기도박판만도 못하고, 과거의 날치기를 그리워하게 하는 국회의 방송법 밀어붙이기. 민주주의의 조종이 정말 울리고 있다.(정의길 국제부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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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07-25 05:03   좋아요 0 | URL
관련 인터뷰,토론을 반복해 들었습니다.
어떤 경우는 진보가 보수성(언론장악),
보수가 진보성(미디어시장확대) 발언을 합니다.

한 사람은 처음부터 내여 줄 마음없이 없었고,
맞은 쪽은 어떻게든 설득하려 했지만, 인내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막내는 형들 싸움에 입닫고
배회하는 형국입니다.

로쟈 2009-07-24 21:41   좋아요 0 | URL
이번 사안은 진보/보수라기보다는 민주/반민주의 문제죠. 보수는 법을 존중합니다...

하이드 2009-07-24 22:03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이 부분이 궁금했는데, 의사정족수와 의결정족수의 차이였군요. 알수록 갑갑하네요.

로쟈 2009-07-25 09:51   좋아요 0 | URL
네, 그럼에도 헌재 판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듯해요...

Crete 2009-07-25 03:43   좋아요 0 | URL
안녕하십니까. 로쟈님...

아주 오랫동안 RSS 구독을 하며 좋은 책 소개와 수준높은 식견을 접할 수 있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감사할 것 같네요.

제가 사회자팀으로 활동하는 공론사이트가 하나 있습니다. 아크로(acro.pe.kr)라고요... 이번 로쟈님의 '의사정족수와 의결정족수' 내용이 아크로 회원들께 품격높은 토론을 할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된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부탁을 좀 드리자면.. acro.pe.kr 의 메인게시판에 이 '의사정족수와 의결정족수'를 좀 포스팅해 주시면 안될까요?

너무 잘 정리된 글이라 보다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은 욕심이 생기네요. 그럼 편안한 주말되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로쟈 2009-07-25 09:52   좋아요 0 | URL
제게 저작권이 있는 글들도 아니므로 그냥 편하게 옮겨가시거나 인용하시면 됩니다...

게슴츠레 2009-07-25 23:57   좋아요 0 | URL
이렇게 하나하나 따져도, 그에 상관없이 이런 일들이 '현실'로 관철되는 걸 보면 정말 무력해집니다..

로쟈 2009-07-26 10:29   좋아요 0 | URL
무기력은 잠시고 국민을 무시하는 권력의 종말을 지켜봐야지요...

2009-07-26 0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26 1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소냐 볼테르냐

오늘 눈에 띈 한권의 책은 박호성의 <루소 사상의 이해>(인간사랑, 2009). 루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편역자가 루소에 관한 대표적인 연구논문들을 엮고 옮긴 책이다. 김용민 교수의 <루소의 정치철학>(인간사랑, 2004) 이후에 드물게 나온 연구서가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론 4부에 실린 몇 편의 논문을 기회가 되면 우선적으로 읽어보고 싶다.     

제1부 루소 사상의 시대적 의의
1장: 루소와 현대-----------------------------에이나우디
2장: 루소와 역사------------------------마에가와 테이지로
3장: 루소와 플라톤-----------------------------매스터스

제2부 루소와 자연
4장: 루소와 ‘자연으로 돌아가라’----------------------코반
5장: 루소와 자연법-----------------------------매스터스
6장: 루소와 자연권-----------------------------매스터스
7장: 루소와 인간의 완성능력-----------------------워클러

제3부 루소와 근대사회
8장: 루소의 근대사회 비판-------------------------콜레티
9장: 루소의 근대경제학 비판-----------------------콜레티
10장: 루소의 경제사상----------------------------펠레드
11장: 루소와 근대사회 쟁점--------------------------멜저

제4부 루소와 근대성
12장: 루소와 근대성----------------------------피더스톤
13장: 루소와 근대성의 역설--------------------------버만
14장: 루소와 상상력의 역설--------------------------바버
15장: 루소는 자유의 철학자인가?--------------------쾨르너
16장: 루소의 자유와 공화국------------------------비롤리  

아직 별다른 소개기사가 뜨지 않았고, 실물도 보지 못한지라 목차와 간단한 출판사 소개를 참조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내용이다. "근대의 위대한 사상가 루소는 1712년에 태어나 1778년에 사망하였다. 그러나 본문에서 상세히 소개되겠지만, 루소가 사망한 지 2세기 이상 지났어도 그의 사상은 여전히 살아있다. 특히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어야 날아오른다’는 헤겔의 말처럼, 루소 사상의 참된 가치는 근대 계몽주의 시대에 그치지 않고 그의 탄생 300주년을 앞둔 이 시기에 더욱 두드러진다."

루소에 관해 참고할 만한 전기는 그의 자서전을 빼면 게오르크 홀름스텐의 <루소>(한길사, 1997)와 루버트 위클러의 <루소>(시공사, 2001) 두 권이다. 특히 홀름스텐의 책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는데, 현재로선 둘다 품절된 상태다... 

09. 0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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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07-21 21:10   좋아요 0 | URL
호기심, 확~ 땅기네요...고교때 루소의 '고백론'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소개된 책을 읽어 봐야겠는데요.

로쟈 2009-07-22 22:36   좋아요 0 | URL
여하튼 읽을 책이 너무 많습니다.--;

바라 2009-07-22 00:51   좋아요 0 | URL
오 저도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예전에 루소에 관한 글을 쓸 때 보니 은근히 루소에 관한 국내 연구서가 거의 없어서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번역서도 크게 다르진 않아서 위에 목차만 봐도 모리치오 비롤리 정도 외에 사람 외에는 번역 소개된 사람이 없는 거 같고.. 대개의 경우 루소는 정치학이나 불문학의 고전으로만 여겨지는 듯 해서 철학 전공자가 쓴 루소에 관한 책이 나오면 좋을 거 같네요.

로쟈 2009-07-22 22:37   좋아요 0 | URL
스타로벵스키의 책 같은 건 저도 기대를 해보는데, 쉽게 나올 거 같진 않네요...
 

재일동포 학자로 한국 현대 사상사의 지도를 그려온 윤건차 교수의 신작이 출간됐다. <교착된 사상의 현대사>(창비, 2009). 600쪽이 넘는 두툼한 책이다. 부제는 '1945년 이후의 한국.일본.재일조선인'. 물론 '재일조선인'이라는 독특한 입각점이 사상사를 바라보는 시각과 어떻게 관련되는가가 포인트겠다. 강상중, 서경식과 함께 '자이니치(在日)' 의식의 또 한 가지 유형을 보여줄지도 모르겠다.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9. 07. 21) ‘자이니치’ 빼곤 일본 전후사 생각도 못해

“일본과 조선의 사이에서 ‘자이니치’를 자각한다/ 오른쪽 왼쪽으로 흔들려 움직이는 진자.”(시집 <겨울숲> ‘진자(振子)’ 중에서)

재일동포 2세인 윤건차 가나가와대 교수(65)의 정신적 궤적은 ‘자이니치(재일·在日)’라는 ‘디아스포라(이산·離散)’ 의식에 다름 아니다. 교육학 전공인 그가 일본·한국·자이니치의 관계사 및 사상·정신의 교착사(交錯史)에 천착하게 된 것도 ‘자이니치’로서의 정체성에 눈 뜨면서다. 

 

최근 국내 출간된 <교착된 사상의 현대사>(창비)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자이니치’로서의 체험과 사상을 바탕으로 “일본의 패전과 한국의 해방 후 지금까지 일본과 한국, 그리고 재일조선인이 걸어온 발자취를 역사에 각인된 사상체험으로써 더듬어보고자 한” 저서다. 

 

지난 17일 만난 윤 교수는 “사상이라는 게 위대한 철학을 말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탐구하는 것”이라며 이번 책에 대해 “사회과학적인 엄격함보다 자기 생각을 많이 쓰려 했다”고 밝혔다. 책과 함께 동시출간하는 시집 <겨울숲>(화남)을 통해 68편의 시를 발표하는 것도 이 때문. “사회과학만으로는 인간 사회를 전부 알 수 없다. 시를 통해 시대상황이나 정신을 반영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한·일 관계는 양국의 역사나 사상의 근간이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패전, 헌법, 한국전쟁, 미·일 안보조약 등 전후 일본을 관통한 중요한 사건 뒤에는 모두 ‘조선’ 문제가 있습니다. 게다가 일본에는 식민 지배의 소산인 ‘자이니치’가 있습니다. 그걸 빼곤 일본 전후사를 생각할 수 없어요.”

책을 가로지르는 핵심 사상체험은 “민족문제와 식민지문제에 관한 탈식민지화의 과제”이다. 이는 일본에서 ‘천황제’와 ‘조선’이라는 키워드로 집약된다. “일본은 천황제에 대해선 사고정지, 조선·조선인에 대해서는 방치 상태입니다. 전쟁 책임 문제도 모두들 ‘위에서 시켰다’면서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위’의 정점에 있는 천황은 정치에 관여를 안하니까 책임이 없다는 무책임주의가 횡행합니다. ‘평화헌법’이라는 것도 거짓말이에요. 일본 헌법에는 ‘외국인’이라는 단어가 없고 국민만이 있을 뿐입니다.”

윤 교수가 보기에 진보적인 지식인들 가운데서도 이 문제를 정면에서 대응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가 지난해 잡지 <세카이(世界)>에 천황이 한국에 가서 사과하라는 내용의 글을 기고한 것은 천황을 이용하는 것일 뿐이지 진정한 극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탈민족’ ‘탈국가’를 논하고 ‘화해’를 말하는 이들에게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희미한 기억을 잊어버리지 않고 용서와 화해의 단어를 안일하게 입에 담지 않으며 엷은 껍질을 한장 한장 벗겨내듯이 오로지 노력하는 것이 현재 그리고 앞으로 요구되는 자세”라고 밝혔다. 뉴라이트의 ‘자학사관’ 비판에 대해선 “일본 측의 자학사관 비판이 가해자의 입장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한국 측의 경우는 피해자의 입장을 잊어버리고 탈식민지화의 최대 과제인 남북통일국가의 수립을 소홀히 한 것으로 외세의존의 비주체성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일본에서 출간된 이 책은 집필에만 5년이 걸렸다. 그 과정에 아내를 폐암으로 먼저 떠나보내야 했다. 2000년 <현대 한국의 사상 흐름>(당대)에서 ‘지식인 이념 지도’를 그려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윤 교수는 “ ‘자이니치의 정신사’를 정리하는 일이 다음 작업이자 마지막 작업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다음 학기 숙명여대에서 강의할 예정이다.(김진우기자) 

09. 0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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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orin 2009-07-21 01:25   좋아요 0 | URL
강상중의 글을 읽으며 재일에 대한 눈을 떴고, 서경식을 읽으며 또다른 재일을 느끼게 되었는데, 윤건차는 어떨지 매우 궁금합니다. 괜찮은 저자에 대한 소개가 정말 고맙습니다.

펠릭스 2009-07-22 06:04   좋아요 0 | URL
저 역시 재일조선인 지성들에게는 공통된 어떤 의식이 잠재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디아스포라)

로쟈 2009-07-22 22:36   좋아요 0 | URL
저는 소개를 '불법적으로' 옮겨놓았을 뿐이고요. 저작권법이 강화된다고 하니까 이런 스크랩도 접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2009-07-23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람혼 2009-07-21 02:40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윤건차 선생의 <현대 한국의 사상흐름>을 본 지도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렀군요. 첫 번째 사진에서도 시간의 흐름이 느껴집니다. 역시나 이번에도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독서에의 욕망에 불타오릅니다.^^

로쟈 2009-07-22 22:35   좋아요 0 | URL
그 욕망들을 좀 식히셔야 할 텐데요.^^
 

'번역과 번역가' 카테고리에 적합한 기사가 있어서 스크랩해놓는다(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719134035&section=04). 번역문제와 관련하여 자주 입에 오르내린 오래전 책인데, 마루야마 마사오의 대담집 <번역과 일본의 근대>(이산, 2000)를 다루면서 번역과 근대의 문제를 곱씹어보고 있다. 필자는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번역에 참여하고 있다. 

프레시안(09. 07. 19) 낯섦의 체험…한국과 일본은 왜 운명이 갈렸을까? 

<번역과 일본의 근대>는 마루야마 마사오와 가토 슈이치가 공동으로 쓴 책이다. 정확히 말하면 당시 병상에 있던 마루야마를 가토가 찾아갔고, 그 둘이 번역의 문제를 놓고 대화한 내용을 가토가 정리해서 나온 책이다. 이 대화가 일본근대사상대계(1988~1992, 이와나미쇼텐 펴냄) 중 <번역의 사상>(1991)을 편집하던 과정에 있었다고 하니 1990년께쯤 될 것 같았다(번역서에는 대화의 시기가 나와 있지 않았다).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이것을 글로 정리한 가토가 1919년생이라니 당시 70살이 다 되었을 듯하다. 나이도 나이지만 약력을 보니 <일본문학사서설>이라는 대작을 남기기도 한 유명한 전방위 비평가이자 작가란다. 그런 사람이 일일이 찾아가서 질문을 하고 그 대화의 내용을 글로 정리했던 상대방 마루야마는 어떤 사람일까?

평소 일본 문화에 밝은 편이 못 되는 나는 그의 약력을 보고서야 내 처의 장서 중에 마루야마 마사오의 <현대 정치의 사상과 행동>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식한 생각은 계속 이어진다. 일본 정치학계뿐만 아니라 지성계의 흐름을 주도했다는 일본의 대표적인 학자가(그는 1996년에 <번역과 일본의 근대>의 출간을 못보고 타계했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논문 실적보다도 못하게 쳐주는 번역이라는 주제에 자신의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공을 들였을까? 몇 년 전에 읽었던 이 책을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읽으면서 나는 이런 궁금증들을 품었고, 책장을 덮으면서 어렴풋한 짐작이 또렷한 확신으로 바뀌었음을 알았다. 적어도 일본의 근대는 번역이 곧 학문이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메이지 시대와 일본의 번역주의 

이 책에서 문제 삼는 일본 역사의 시기는 주로 메이지(明治) 시대(1868~1912)이다. 지은이들은 메이지 정부의 정책을 번역주의라고 요약한다. 이 번역주의의 성립과 내용, 그 공과를 따져보는 것이 두 노학자들이 무릎을 맞대고 나눈 이야기의 핵심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번역주의는 19세기 초에 일본 해안에 서양의 배들이 출몰하지만 서양에 대한 정보는 없던 상황에서 아편전쟁(1840~1842, 1856~1860)의 발발과 중국의 패전으로 충격을 받은 일본이 서양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성립했다고 한다.

세계의 중심인 중화의 몰락과 이에 연이어지는 서양의 쇄도, 아시아의 몰락, 그리고 그에 따른 서양에 대한 추종. 여기까지는 많이 듣던 이야긴데, 다른 아시아와 일본이 사정이 다를 수 있었던 이유를 이들은 두 가지로 요약한다. 공교롭게도 서양이 일본을 침략할 시점에서 서양 쪽에 보불전쟁, 남북전쟁, 크림전쟁 등이 벌어져 아시아 침략이 지체되었다는 점, 그리고 일본의 대응이 굉장히 재빨랐다는 점이다.

중국은 아편전쟁에서 영국에 패하고서도 여전히 중화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해 대응이 느렸으나 일본은 몇 차례 서양과 벌인 전투와 중국의 패전을 통해 초반의 쇄국 정책(존왕양이론)에서 재빨리 개국으로 돌아섰고, 그 시기가 서양의 여러 전쟁 시기와 맞물려 운 좋게 근대화를 위한 시간도 확보하고 식민지로 전락하는 위기도 벗어났다는 말이다.

이 상황에서 일본은 막부 시절부터 각 번(藩)에서 앞다퉈 유학생을 서양으로 보내 서양의 정보를 흡수하였다고 한다. 두 사람은 이런 일본의 발 빠른 대응에는 전사인 무사가 지배 계급이었던 점이 중요하게 작동했다고 본다. 전쟁터에서 전쟁을 수행하듯이 일본의 지배 계급은 서양과 관련해서 벌어지는 당시의 상황을 대부분 군사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였고, 군사작전 하듯이 서구화를 진행시켰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메이지 시대의 세계 정세와 일본 정부의 계급 구조로만 번역주의가 내 놓은 성과를 설명할 수는 없다고 한다. 짧은 시간 내에 상당한 수준의 번역의 질과 양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메이지 이전 시대인 에도 시대(1603~1867)의 학문적 성숙이 번역과 맞물렸기 때문이라는 것이 두 사람의 평가다.

예컨대 에도 시대의 오규 소라이(1666~1728) 같은 학자는 "우리가 읽고 있는 <논어>, <맹자>라는 것은 외국어로 쓰여 있다. 우리는 옛날부터 번역해서 읽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해서 일본의 학문적 근간을 이루던 중국의 유학에 대해서 비판적 거리를 취했다고 한다. 중국식 발음을 가급적 원음대로 읽고 그것을 체화시키려 했던 조선과는 달리 음으로도 읽고 뜻으로도 읽는 일본식 한문 독법을 사용했던 것을 두고 한 말이라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현대 일본의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도 했던 것으로 들었는데, 그 원조가 오규 소라이였던 모양이다. 여기서 '낯섦'의 체험으로서 번역의 문제가 발생한다.

추상어를 수입하는 번역
나도 서양 고전 번역을 업으로 알고 공부를 하는 사람이지만 번역은, 특히 고전 번역은 번역을 하는 매순간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예를 들면 플라톤의 그 유명한 '이데아'가 있다. 이 말은 보통 '형상'으로 번역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문제는 이 '이데아'가 플라톤 시대 일반인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일반 용어이기도 했다는 데 있다. 일반 용어로 '이데아'는 '얼굴', '용모', '보임새' 등의 뜻이 있다.

플라톤은 이 일상어로부터 자신의 철학의 핵심을 표현하는 의미를 길어낸다. 개별적인 사물들이 하나로 묶이는 그 사물 자체, 예컨대 얼굴색과 성별과 나이가 다 다른 사람들을 묶는 사람 그 자체를 '이데아'라고 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플라톤의 철학은 대화편이라고 하는 일상적인 대화의 형식을 취한 글에 담겨 있다. 따라서 플라톤의 대화편에는 철학 용어와 철학적인 사고 내용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 울고 웃기고 분노하는 일상의 희로애락이 담기는 일상의 일과 언어가 들어 있다. 그래서 때로는 이데아가 누군가의 얼굴이 되고, 때로는 사람 자체를 표현하고 좋은 것 자체를 표현하는 말이 된다.

그러면 여기서 갈등하게 된다. 다 형상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문맥에 따라서 달리 번역해야 하나? 물론 현재의 선택은 문맥에 맞는 번역이다. 그리고 주석을 달게 된다. '이 말이 여기서는 얼굴이라고 번역되었지만 희랍어로는 형상이라고 번역되는 말과 같은 말이다. 플라톤은 이런 일상어를 통해서….' 이렇게 해 놓으면 이해는 되겠지만, 플라톤이 희랍어를 사용하는 언어 대중에게 희랍어를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그들이 느꼈을 짜릿함, 일상적인 감각이 추상적인 세계로 비약하는 상승의 느낌은 강 건너 불구경이 되고 만다.

독일 철학자 피히테는 <독일 국민에게 고함>에서 바로 이 이데아를 예로 들면서 언어에 대한 감각적 이해의 단계를 거치지 않은 채 추상적인 의미로 도입된 번역어들이 개념의 이해를 어렵게 한다는 말을 한다. 이후 피히테는 이런 논의를 독일 민족의 우수성을 찬탄하는 쪽으로 끌고 가지만 거기까지는 안 가더라도, 피히테의 말을 통해서 현재 우리말이 갖는 처지를 살펴볼 수는 있다.

예컨대 우리말에 '좋다'라는 말은 일상적이고 감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반면에 같은 맥락에서 사용되는 영어의 'good'을 보면 '도덕적 선'이나 '상품'의 뜻으로 추상화되어 사용된다. 희랍어도 마찬가지여서 희랍어의 'agathos'는 일상적인 '좋다'라는 말에서 '도덕적 좋음' 즉 '선(善)'의 뜻으로 발전하여, 심지어 '좋음의 형상(또는 '선의 이데아')'이라는 표현에도 등장한다.

우리말은 감각적이고 일상적인 수준에서 추상적 수준으로 발전해야 할 때, 한문에 치이고 영어에 밀리고 각종 외래어에 자리를 내줘 여전히 일상어의 수준에서만 통용된다. 아직도 우리는 몸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을 '컨디션'이라는 말로 간편하게 사용함으로써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할 우리말을 골라 쓰지 못하고 있다. 말이 그저 우리 생각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면야 문제가 없겠지만, 말은 우리 생각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에 그치지 않고, 생각 자체가 되고, 생각을 길러내는 창고가 된다는 점에서 고민은 깊어진다.

번역, 낯섦의 체험
그렇다고 번역을 하지 않고 문화 교류를 거부하며 순수한 우리말을 고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대 사회에서 그런 고립된 문화관이 성립할 수도 없으려니와 문화라는 것이 그런 식으로 고립되어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체적인 문화는 낯섦의 체험으로부터 형성된다는 것이 <번역과 일본의 근대>의 두 저자가 하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설명이 더 붙어야 한다. 낯선 것을 낯선 줄 알아야 낯섦의 체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중심과 주류에 동화되려고만 하고, 우리 안에 있는 비주류와 주변적인 것을 끌어안지 않고서는 낯섦의 체험은 불가능하다. 이 지점에 일본 근대를 준비한 오규 소라이의 탁월함이 있고,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했다고 하는 조선 유학의 정통성이 갖는 문제점이 드러난다. 오렌지를 오륀쥐라고 발음해야 직성이 풀리는 주류추종의 의식을 벗어나야 문화의 주체성이 드러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개화기에 우리의 독자적인 번역 문화를 갖지 못했다. 일본은 아편전쟁에 패한 중국에 대한 충격으로 개화를 서둘렀고, 중국은 중국대로 뒤늦게나마 번역국을 설치해가며 독자적인 번역 문화를 형성해나갔지만, 우리는 중국의 것을 편리하게 가져다 볼 수 있는 한문 식자층이 있었기 때문에 별도로 번역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듯하다.

일본은 중국보다 개화가 빨랐기 때문에든 또 어떤 이유에서든(거기에 대해서는 이 책에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중국과는 독자적으로, 또는 경쟁적으로 서양 문물을 번역해 나갔고, 중국은 중국대로 뒤늦게나마 자신들의 문화유산의 토대 위에서 서양 문물을 번역해 나갔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번역은 하겠다고 맘먹으면 바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번역을 할 수 있는 문화적 토대와 여건이 있어야 한다. 이런 토대와 여건이 없고서는 낯섦의 체험도 체화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달리 말하면 번역이 해석이 되는 지점도 여기다.

재미있는 사례를 이 책이 제공한다. 이 책의 저자들에 따르면 중국은 형이상학이 발달한 나라고, 도리(道理)의 사상이 그 형이상학의 중심을 차지하는 나라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변하지 않는 원리의 탐구가 중요하지 역사는 부차적인 것이라, 유교에서 독서의 순서도 경(經), 자(子), 사(史), 집(集)의 순서로 역사가 세 번째로 온다고 한다. 반면에 일본은 성현의 나라인 중국을 섬기는 처지라 경(經)도 물론 중시하지만 그런 경전이 성립한 중국의 역사를 아는 것이 대단히 중시되었다고 한다. 이는 달리 말해 중국은 이(理)를 중시하고 일본은 기(氣)를 중시하여 중국은 변하지 않는 것을, 일본은 변화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러한 두 나라의 문화적 차이가 19세기 서양 사상의 중심에 서있던 진화론을 번역하고 해석하는 차이를 이루었다. 중국에서는 옌푸(嚴復)가 1898년에 진화론의 사상가 토마스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라는 책을 <천연론(天演論)>이란 이름으로 번역하여 진화론을 소개했다. 중국인들은 '하늘이 변한다('천연'의 뜻이 그런 듯하다)'란 사상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반면에 일본인들은 변화를 받아들이는 기(氣)를 중시했기 때문에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일본의 사상가들은 자연을 유기적인 것이 아닌 무기적인 것으로 파악한 뉴턴 역학의 자연관에 더 혁명적인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의리와 도리를 중시하는 중국인들은 '적자생존'의 원리를 '살아남은 것이 반드시 선한 것은 아니다'란 뜻으로 받아들여 약자의 입장에 서서 해석했고, 일본인들은 강자가 적자가 되어야 한다는 제국주의적 입장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번역을 갖지 못했다. 조선에 진화론을 소개한 유길준은 1881년 일본에 사절단으로 가서 경응의숙(慶應義塾)을 다니며 독일 사회진화론의 영향을 받았던 일본의 진화론을 나중에 한국에 수입하였다. 여러 이유가 더 있겠지만 개화 사상가의 선두에 있던 유길준은 이렇게 일본의 번역을 통해 일본이 해석한 강자가 살아남아야 하는 제국주의 논리의 진화 사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번역은 반역이라는 말이 있지만, 때로 번역은 번역 주체를 다시 번역하기도 한다. 본래 철학은 희랍에서 성립하여 그 뜻이 '지혜에 대한 사랑(philosophia)'이었다. 그 말을 일본 학자 니시 아마네가 어원을 잘 살려 '희철학(希哲學)', 즉 '지혜의 상태에 도달하기를 바란다'란 뜻으로 옮겼다. 이 말이 오늘날 줄어 철학이 되었는데, 본래 동양에는 '철학'이란 학문 분류는 없었다.

물론 서양에서도 고대에는 오늘날처럼 철학이 분명한 분과학문은 아니었지만, 서양의 근대를 거쳐 동양에 번역되어 수입된 철학은 동양의 학을 거꾸로 규정하였다. 그래서 오늘날 유학자도 도학자도 동양철학자란 이름을 얻게 되었으니 번역된 말이 서양의 문물을 등에 업고 번역하는 자를 규정하고 말았다. 개화한 지 100년이 넘었어도 아직도 우리의 것을 찾아야 살려야 하고, 우리 것이 좋은 것이라고 외치고 있으나 딱히 우리 것이 무엇인지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우리가 다시 또 번역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낯선 것을 낯선 것으로 의식하지 못하면 그 낯선 것이 침투해 우리를 우리에게 낯설게 하기 때문이다.(김주일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회원·정암학당 연구원) 

09. 0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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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h.의 생각
    from sanghyun's me2DAY 2009-07-20 11:25 
    낯섦의 체험 - 한국과 일본은 왜 운명이 갈렸을까 by 로쟈
 
 
펠릭스 2009-07-21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깝게도 우리는 개화기에 우리의 독자적인 번역 문화를 갖지 못했다"

로쟈 2009-07-22 22:34   좋아요 0 | URL
그건 지금도 크게 나아진 것 같진 않습니다...

열매 2009-07-20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용옥선생의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의 학문의 방법으로서의 번역에 대한 선도적 문제제기를 제외한다면, 그 이후 이런 번역문제 관련한 담론 역시 일본에서 수입, 유통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지적하는 점 역시 하나같이 똑같은지, 꼭 잘못된 석,박사논문을 베낀 석사논문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전자도서관에서 '번역'관련해 논문을 검색하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문제의식마저 수입하는 시대가 된 것일까요?
단순히 번역의 문제가 아닐 것이라는 추측 아닌 확신이 듭니다.

로쟈 2009-07-22 22:34   좋아요 0 | URL
일반적인 수입과는 사정이 좀 다른 거 같습니다. 번역 담론 이전에 막대한 번역어 유입이 먼저 있었으니까요...

Sati 2009-07-22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과 일본의 차이점은 번역 문화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죠...

로쟈 2009-07-22 22:32   좋아요 0 | URL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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