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박원순 변호사가 시민단체에 대한 국정원의 사찰 의혹을 폭로했고, 이에 대해 국정원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아니 고소 주체가 '대한민국'이란다!). 사건 관련기사와 칼럼을 스크랩해놓는다. 요즈음 이런 페이퍼조차도 다 정보 수집대상이자 감시대상이라고 하니 여차하면 비공개로 돌려야겠다...   

경향신문(09. 09. 19) 박원순 변호사가 밝힌 ‘국정원 사찰’ 의혹 

박원순 변호사는 17일 기자회견장에서 A4용지 14장 분량의 ‘진실은 이렇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며칠 동안 쓴 글이며, 내가 살아왔던 모든 것을 걸고 증언하건대 글의 내용 모두가 진실”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자신을 비롯해 시민사회 전반에 행해진 국정원의 사찰 실상을 구체적으로 폭로한 것이다. 문서에는 사찰의 시점·정황·결과가 상세히 기술돼 있다.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정치·사회적 파장은 심상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문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박 변호사에 대한 사찰과 압력
2007년 7월 하나은행과 희망제작소는 기자회견을 열고 ‘하나희망재단’ 설립을 발표했다. 하나은행이 300억원을 출연했다. 재단은 지난해 가을 설립 등기를 완료했다. 그러나 며칠 뒤 재단 이사회는 희망제작소와의 사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한두 달 후 하나은행의 한 임원으로부터 “국정원 직원들이 이 사업에 개입을 하여 희망제작소와의 협력관계가 중단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모 그룹이 세운 재단의 이사로 등재돼 있다. 재단 관계자들은 “국정원에서 연락이 와서 월급을 얼마나 받는지,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자세히 물어보았다”고 했다. 나는 한 기업의 사외이사로 수년째 활동해 왔는데, 나중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이 내 활동내역에 대해 물어보았다고 한다. 강연차 들른 한 재단의 이사장으로부터 “국정원에서 찾아와서 박 변호사에 대해 자세히 탐문했다. 너무 이상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지난 4월 ‘아름다운가게’의 모대학 카페 오픈식이 끝난 이틀 뒤 국정원 직원이 그 대학 총무과를 찾아와 ‘아름다운가게’를 왜 지원했는지 문의했다. 국정원 직원은 “좌파단체들의 자금줄이며 운동권 출신 직원들이 대다수인 ‘아름다운가게’를 후원한 사유가 무엇인지” 문의했다고 한다.

지난 6월 국정원 직원이라고 밝힌 사람이 모은행 담당자에게 전화해 “ ‘아름다운가게’와 무슨 관계가 있기에 오랜 시간 많은 돈을 지원했느냐”고 문의했다. 그 은행은 ‘아름다운가게’가 벌이고 있는 특정 프로젝트를 몇 년째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지난 5월 자선바자회 행사 관계로 만난 경기도 한 시의 관계자도 “국정원에서 전화를 받았다. ‘아름다운가게’의 행사를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했다.

민간단체에 개입하는 국가권력
어느 날 사회투자지원재단의 모 상임이사가 만나자고 했다. 그는 재단이 정부부처로부터 투자를 받는 데 나라는 존재가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얼마 후 다시 상임이사를 만났더니 “이사장과 나마저 별로 마땅치 않은지 정부가 완전히 지원을 끊었다”고 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전 사무총장이 내게 전화를 해왔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자꾸 물러나라고 한다는 것이다. 보건복지가족부의 실무자들이 노골적으로 요청해올 뿐 아니라 이사장을 시켜서도 압박을 가해온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 모임에서 사회연대은행 상임이사를 만났다. 그는 지난번 정부 지원 대상에서 사회연대은행도 완전히 배제됐는데, 이사진 가운데 참여정부와 친했던 인사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더 심각한 일도 벌어졌다. 어느 시민단체의 평생회원 중 한 사람은 기업의 임직원이다. 그 사람이 국정원으로부터 간접적으로 “어떻게 시민단체의 회원이 될 수 있느냐”는 얘기를 듣고 평생회원의 신분을 정리한 사례가 그것이다.

또 한 여성단체가 후원회를 열었는데 어느 중소기업에서 전화가 와서 “여성민우회는 불법시위단체라고 하는 명단이 와서 지원을 못하게 돼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고 한다. 공공기관에는 민변에 소속된 변호사들에게는 사건을 수임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법률고문직에서 해촉된 사람도 여럿 있다고 들었다.

국정원장과 대통령이 사찰 지휘
대선이 끝나고, 촛불시위가 일어나고, 그리고 언젠가부터 세상이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다. 어느 날 일어나 보니까 완전히 20~30년 전 세상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지방에서 기업을 하는 한 분의 말에 따르면 지금 지방의 국정원 지부도 과거와 완전히 다른 위상을 갖게 됐다고 한다. 국정원 지부장을 찾는 경우가 늘었고, 가끔이라도 이 사람들과 식사를 해야 안심이 된다는 얘기였다.

국정원의 최고 책임자인 국정원장과 나아가 대통령이 이런 일을 모를 리 없다. 이렇게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사찰과 감시가 일어나고 있다면 이것은 국정원을 운영하고 집행하는 책임자의 철학과 원칙, 기능과 활동의 방향이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국정원장과 대통령의 지휘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내년 지방선거가 끝나고 정권의 후반기로 들어서면 진실은 한순간에 터져 나올 것이다. 국정원의 비열한 사찰행위와 그 은폐는 이 정권이 끝나면 반드시 심판받을 것이다. 그것이 인과응보이고 역사의 필연의 법칙이다. 나는 이런 자리에 서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내 자신이 당하고 내 주변이 당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정확히 정리하고, 그 대안을 위해 싸우겠다는 다짐과 결의를 하게 됐다. 이 보고서는 바로 그런 다짐의 시작에 불과하다.(정제혁기자) 


 
한겨레(09. 09. 19) '살인의 추억', '사찰의 추억' 
 
2003년 봄, 영화 <살인의 추억>이 개봉되었을 때 나는 외국에 있었다. 인터넷으로 한국 소식은 자주 접했지만 인간의 미세한 감정·감각과 관련된 내용은 그저 궁금해하며 넘어가기도 했다. 이 영화 제목도 그런 것이었다. 추억이라는 말은 어떤 대상을 정 깊게 기억함을 의미한다고 대충 이해하고 있던 나에게, ‘살인’과 ‘추억’의 조합은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후에 영화를 관람하고 나서도 제목에서 두 단어를 조합한 사람의 깊은 뜻을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분명치 않았다. 어쨌거나 화제작답게 영화는 탁월했고, 영화에서 그려진 상황은 오금이 저릴 정도의 안타까움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어쩌면, 정말 어쩌면 그 누군가는 연쇄살인에 대해, 혹은 그것이 일어나던 시절과 상황에 대해, 애착 어린 추억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영화 제목이 머릿속을 휘젓게 된 것은 최근 이와 마찬가지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의 새로운 조합이 떠오르면서였다. 이름하여 ‘사찰의 추억.’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재야 정치인 사찰, 학원 사찰 같은, 정치적 목적의 민간인 사찰이 일상적 삶의 일부였다. 사찰하는 이와 사찰당하는 이가 매일 접촉하다 보니 모종의 친분관계가 형성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던가. 어쨌든 내가 아는 어느 유명한 분은 사기꾼 비슷한 인간이 괴롭히자 자기를 사찰하던 형사에게 도움을 받아 그 상황을 넘겼다니까. 그럴망정 그분이 일거수일투족을 사찰당하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기억할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국가가 누군가의 사유물로 여겨지던 그 시절을 애틋하게 동경하며 추억하는 사람들도 실제로 있는 것 같다. 사찰당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찰하고자 하는 사람들 말이다. 작년 올해 언제부터인가 주변 사람 몇몇이 “사찰성 전화를 받은 것 같다”며 불쾌해하곤 했다. 믿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때로는 우리의 믿음을 배반한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제기한 기무사 소속 군인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필두로 해서 불법 사찰의 혐의가 짙은 사건들이 잇따라 보도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박원순 변호사처럼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신망 높은 인물의 하나이면서도 온건하고 합리적인 분이 자신에 대한 국정원의 사찰 의혹을 언론에 직접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그 대가로 그는 “국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국정원의 고발을 당한 상태에 있다. 옛날 국가원수 모독죄 명목의 재판이 남발되는 것을 볼 때도 막막했지만, 민주주의의 갑작스러운 후퇴를 보는 심정은 그때와도 다르다. 그가 눈물 흘리며 기자회견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욱 고통스럽다.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는, 기무사(옛 보안사)나 국정원이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 그들이 자행했던 각종 국가폭력적 행위와 불법적 사찰 행위에 대해 규명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과거사 규명작업을 거쳤음에도 최근 다시 민간인에 대한 사찰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수많은 예산과 인력을 들여 진행한 자체조사와 사과·반성이 헛일·헛소리에 지나지 않았단 말인가.

사찰 의혹은 아직 의혹으로 머무르고 있지만, 실제로 사찰이 행해졌더라도 이것이 기무사나 국정원이란 조직 전체의 방침을 따른 것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 자신이 소속된 부서의 조직 이해나 출세의지에 집착하는 개인들의 실수일 것이다. 군 정보기관이나 국가 정보기관이 일반 시민이나 시민운동가를 사찰했다는 의혹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기관의 입장에서는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국정원은 엄정한 자체조사를 통해 이런 일이 실제로 자행되었는지 규명할 것이지 국가의 명예를 들먹이면서 존경받는 사회지도자를 괴롭힐 일이 아니다.(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09. 09. 19.  

 

P.S. '인권변호사 박원순'의 기념비적 저작으로 평가되는 책은 <야만시대의 기록>(역사비평사, 2006)이다. "일제시대부터 노무현 정권까지 각종 신문자료와 잡지, 단행본, 논문, 단체 자료집, 법원 판결문, 외국 정책자료 및 인권단체 보고서 등을 총망라하여 자료들을 모았고, 그를 토대로 국내외의 다양한 고문 사례들을 통사적으로 정리해낸 최초의 기록". 민간인 불법 사찰도 사실로 판명된다면, 이제 '야만시대'로의 완벽한 회귀에 '고문' 하나만 남은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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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 2009-09-20 11:01   좋아요 0 | URL
'사찰'의 반대말은 '해찰'이다(ㅋ).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을 자주 집에서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감독의 유머감각에 매료 되었기 때문이다. 연쇄살인 사건을 해결하려는 캘릭터간의 언쟁이나 수사 기법과 지방 경찰관의 열등감 그리고 취조실에서 시대적인 습관들을 볼 수 있어 재미있다. 사찰이 강화되었다면 정보수집 행태속에서도 봉 감독은 유머들을 줍게 될 것이다(선하다). 정보 전달은 사람의 신경 신호 전달과 비슷하다. 여론조사보다는 더 극밀한 내면을 전방위차원에서 알고 싶어 하고 또한 제공하게 될 것이다.

로쟈 2009-09-20 14:59   좋아요 0 | URL
정말로 영구집권을 꿈꾸는 게 아니라면, 뒷감당도 못할 일을 왜 자꾸 벌리는지 궁금합니다...

2009-09-21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1 1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델러웨이부인 2009-09-23 17:19   좋아요 0 | URL
개그콘서트를 보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왕따놀이를 하자는 것일까요?

로쟈 2009-09-23 18:40   좋아요 0 | URL
여러 칼럼에서 지적된 것이지만, 일종의 '겁박'이죠. 알아서들 기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