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인문학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

이번주 대학신문에서 '제도권 밖 인문학' 동향에 관해 짚어주고 있는 기사를 옮겨놓는다. <창작과 비평>(여름호)에 내가 실었던 글도 참조하고 있어서 먼댓글로 링크해놓는다.   

대학신문(09. 09. 12) 제도권 밖 인문학, 지금 만나러 갑니다

독재정권 시절. 청년들은 소위 말하는 ‘불온서적’을 들고 자발적으로 한데 모여들었다. 제도권 밖 인문학 단체의 시작이었다. 지식에 대한 사회적 규제가 완화된 지금, 이들 단체는 더욱 성장하고 있다. 제도권 인문학이 문학·사학·철학 등 인문학과의 위상이 축소되고 인문학 교육이 감소하는 등의 문제점을 드러내자 제도권 밖 인문학이 ‘인문학 위기 담론’의 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제도권 인문학의 위기에는 신자유주의적 기조가 큰 영향을 미쳤다. 백종현 교수(철학과)는 저서 『한국 인문학 진흥의 길』을 통해 “우후죽순으로 대학이 생겨났고 인문학 전공자들이 대량으로 양산됐다”며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져 인문학의 위기가 시작됐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제도권 인문학이 소수 학자끼리만 소통되는 것도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창작과 비평』의 전 주간 최원식 교수(인하대 한국어문학과)는 “대학의 폐쇄성이 인문학 위기 형성에 일조했다”며 “제도권 밖의 인문학 단체들이 인문학 대중화의 토양을 마련하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문학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가치가 대중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 허브로 성장한 ‘인디 인문학’들의 향연
제도권 밖 인문학 단체들은 꾸준히 성장해 지식 허브의 한 축으로 기능 하고 있다. 분과 학문에 갇히지 않는다는 강점으로 각종 학문을 망라하며 연구하는 이들은 그 성과를 단행본으로 내놓기도 한다. 제도권 밖 인문학 단체의 대표격인 ‘연구 공간 수유+너머’(수유+너머)는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한국사회』,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 등의 저서를 발간했다. ‘수유+너머’는 공부와 생활을 함께 하는 단체의 성격을 특별히 ‘지식 코뮌’으로 규정하고 그에 대한 자체적 실험결과를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호모 쿵푸스』 등의 단행본으로 내기도 했다.

제도권 밖 인문학 단체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는 ‘수유+너머’를 비롯해 일반인 대상의 강연 ‘콜로키움’과 재소자 대상의 강연 ‘찾아가는 인문학 강좌’를 주최하는 ‘지행네트워크’, 인문학 연구 공동체 ‘다중네트워크 센터’, 문학과 미디어아트를 접목한 대안 문화공간인 ‘문지문화원 사이’를 주목해볼 만하다. 1980년대 ‘불온서적의 성지’에서 세미나와 토론회를 유치하며 학술문화공간으로 변신한 전남대 앞 서점 ‘청년 글방’과 ‘좋은 책방’ 그리고 서울대 근처 녹두거리의 ‘그날이 오면’ 또한 제도권 밖 인문학 단체라고 할 수 있다.

대학생과 일반인의 자발적 참여로 유지되는 이들 단체는 올가을에도 풍성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자본주의와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고픈 독자는 ‘수유+너머’에서 오는 18일(금)부터 매주 금요일 개최하는 ‘대학생 케포이필리아’를 통해 마르크스와 루쉰의 삶을 배울 수 있다. ‘문지문화원 사이’는 황지우 시인이 21일부터 시민들의 문학적 감수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시학과 비극의 향연’을 주제로 아이스퀼로스와 소포클레스 등의 명작읽기 강의를 진행한다. 

◇‘성역’ 없는 온라인 인문학 공동체
언론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오프라인 단체들보다는 인지도가 약하지만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단체들 또한 인문학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한다. 이들은 단순히 오프라인 단체들이 활동 영역을 인터넷상으로 옮긴 것과는 다르다. 대표적 단체로는 올해 창립 10년을 맞은 인터넷 비평카페 ‘비평고원’이 있다.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의 역자 조영일 문학평론가가 카페장으로 활동하는 이 단체는 이미 인문학도라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대중적 단체로 성장했다.

‘비평고원’에는 성역이 없다. 철학·문학·영화 등 이들이 비평하지 않는 성역은 없으며 체면과 나이로 보호막을 갖던 선배들이 ‘기 센’ 후배들의 혹독한 비평을 피할 수 있는 성역은 더욱 없다. 온라인 커뮤니티가 오프라인 지식 코뮌과 비교해 갖는 강점이다. 조영일씨는 “비평고원의 모토는 자유로운 비평뿐”이라며 “오프라인 인문한 단체들은 상주 회원끼리의 유대로 신입 회원들이 배제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그는 “비평고원은 그러한 점을 고려해 오프라인에서의 모임을 지양한다”고 밝혔다. 또 ‘비평고원’은 참여자들이 자주 바뀌어 진입 장벽이 낮다는 점에서 일반인과의 소통이 용이하다. 실제 ‘비평고원’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회원의 절반 이상이 직장인, 자영업자, 주부 등 인문학 비전공자다. ‘비평고원’은 올가을 그간의 성과를 집대성한 동인지 『비평고원 프로젝트』를 발간할 계획이다. 이 동인지는 ‘가라타니 고진’과 ‘근대 문학의 종언’을 주제로 무크지 형식으로 출간된다 하니 이를 통해 제도권 밖 온라인 인문학의 수준을 느껴봄도 좋을 듯하다.

◇인터넷 공간은 학술활동의 변방이 아니다…중요한 것은 ‘의지’
온라인 인문학 단체는 피상적이고 부정확한 지식공동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또 지식 담론을 형성할 역량이 부족하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인터넷 서평꾼 ‘로쟈’로 알려진 이현우씨는 『창작과 비평』에 기고한 글을 통해 ‘비평고원’을 비롯한 온라인 인문학 단체의 가능성을 인정한 바 있다. 인터넷 공간의 인문학 단체는 개방성과 공유성, 현장성과 순발력을 통해 기존의 학술단체들이 창출하지 못했던 ‘중간지대적 담론’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대중화를 넘어선 새로운 학술담론의 창출에도 긍정적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의지’다. 인터넷 공간의 활용과 지식의 공유는 사용자의 의지에 달렸다.

“인문학의 위기라고는 하지만 오히려 대중들의 인문학 수요는 높아지는 실정”이라는 ‘수유+너머’의 대표격인 최진호씨의 말처럼 제도권 밖 인문학은 이미 새로운 지식 원천으로 각광받고 있으며 이들 단체는 해외에도 알려졌다. 최원식 교수는 “제도권 밖 인문학 단체들은 대중적인 인문학 가치 함양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며 “대중과의 친화력에 덧붙여 제도권 인문학과도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김은열기자)  

09. 09. 16.   

P.S. 기사에서 "백종현 교수(철학과)는 저서 『한국 인문학 진흥의 길』을 통해"라고 언급한 것은 기자가 잘못 옮겨적은 것이다. '한국 인문학 진흥의 길'은 저서명이 아니라 <인문정신과 인문학>(아카넷, 2007)에 실린 논문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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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9-16 23:08   좋아요 0 | URL
온라인에서만 치열하게 논쟁하고 실제로 만나선 안된다...아무리 진보적인 사람들도 우리나라 인간관계는 위계질서 따지는 짓을 안 할 수는 없나 봐요.같은 유교문화권인 일본이나 중국도 학교 선후배 위계는 없던데 왜 우리나라는 이럴까요...

로쟈 2009-09-17 19:31   좋아요 0 | URL
대부분은 진보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죠...

펠릭스 2009-09-17 21:43   좋아요 0 | URL
인터넷이 없었던 70,80년대는 제도권 밖에서 전.비전공자 함께 인포말구룹화하여 왕성했지요. 그때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은 못들어 봤지요. 현재는 가상공간 덕분에 다양한 계층이 참여할 수 있으니 양적으로는 팽창할 수 있습니다. 지식 담론을 형성할만 역량이 우려되기 합니다만 지식은 얇아도 예전보다 공감력이 일반화되기 때문에 '중간지대적 담론'을 형성할 수 있어 오히려 더 고무적입니다.

로쟈 2009-09-19 09:08   좋아요 0 | URL
네, 아직은 가능성이지만요...
 
'프랑켄슈타인' 다시 읽기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글을 옮겨놓고 나니까 지젝의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그린비, 2009)에서 <프랑켄슈타인>을 다룬 부분이 생각나 마저 읽었다. 책의 2장 '이데올로기의 가족신화'의 한 절이 <프랑켄슈타인>을 다루고 있는데, '프랑켄슈타인의 역사와 가족'이 그 타이틀이다. 원문은 'History and family in Frankenstein', 그러니까 '<프랑켄슈타인>에 나타난 역사와 가족' 정도로 이해하는 게 좋겠다. 질 메네갈도가 편집한 논문모음집 <프랑켄슈타인>(이룸, 2004)에 더 집어넣고 싶을 정도로 역시나 명쾌하고 자극적이다.  

  

지젝은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표준적인 맑스주의적 비판(비평)을 재검토한다. 그 비판의 요지는 이 작품이 "진정한 역사적 지시대상을 지우기(혹은 억압하기) 위해 불투명한 가족-섹슈얼리티 네트워크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즉, 역사는 가족 드라마로 외현화되고, 보다 큰 사회-역사적 경향(혁명적 테러의 '괴물성'으로부터 과학기술 혁명의 충격을 향한 경향)은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아버지, 약혼자, 괴물 자식과 겪는 갈등으로 왜곡되면서 반영/상연된다는 것이다."(115-6쪽) 

그러니까 이 작품의 진짜 지시대상은 '역사'이지만, 저자는 그것을 '가족 드라마'로 바꿔치기했다는 것. 이때 역사는 프랑스 혁명 이후의 흐름을 가리키는 "보다 큰 사회-역사적 경향"이다. 이 경향의 내용은 원문이 "larger socio-historical trends(from the 'monstrosity' of revolutionary terror to the impact of scientific and technological revolution)"이므로 "'혁명적 테러의 '괴물성'으로부터 과학기술 혁명의 충격을 향한 경향'이라고 옮긴 건 부정확하다. 여기서 'from A to B'는 '-로부터 -를 향한'이 아니라 '-에서 -까지'라는 종류를 가리키기 때문이다('trends'가 복수형이니까). 고쳐 말하면, "혁명적 테러라는 '괴물'에서 과학기술 혁명이 가져온 충격까지 당대의 보다 넓은 사회역사적 흐름"이 <프랑켄슈타인>의 원 지시대상이다. 

'표준적인 비판'이란 단서에서 알 수 있지만, <프랑켄슈타인>이 프랑스 혁명이 낳은 혼란(괴물로서의 무질서)을 염두에 둔 작품이라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것이다(프랑스혁명에 대한 에드먼드 버크의 주된 시각이기도 하다). 한데, 지젝의 독해에서 내가 배운 것은 이것을 콜리지(코울리지)의 상상력론과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는 점. 콜리지는 상상(imagination)과 공상(fancy)을 구분하는데, 그에 따르면 "상상력은 유기적이고 조화로운 신체를 발생시키는 창조적 힘인 반면에 공상은 서로 어긋나는 파편들의 기계적 조합을 표현한다." 따라서 "공상의 생산물은 아무런 조화로운 통일성도 없는 괴물 같은 조합"이며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야말로 이러한 공상의 산물이다. 그리고 이 '괴물 이야기'로서의 <프랑켄슈타인>에는 괴물성이란 주제가 다양한 차원에서 관통하고 있다.   

(1)첫번째 차원에서 빅터에 의해 생명을 부여받은 괴물은 조화로운 유기체가 아니라 부분 기관들의 기계적 구성물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빅터는 시체 조각들을 짜깁한 후 전기충격을 가해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낸다.    

(2)다음 차원은 소설의 사회적 배경으로, 사회의 괴물적 해체는 사회적 불안과 혁명으로 나타난다. 괴물성의 출현과 함께 조화로운 전통사회는 산업화된 사회로 바뀐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이기적 인간관계에 따라 기계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개인들로 해체되어, 보다 큰 단위의 '전체'를 느끼지 못할뿐더러 가끔씩 폭력적 반란에도 참여한다. 근대 사회는 압제와 무정부 상태를 왔다갔다 한다. 근대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통일성은 난폭한 권력에 의해 강제된 인공적인 통일성이다. 

즉 사회적 차원에서 근대 사회는 '공상의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 이 대목에서 '괴물성의 출현과 함께'라고 옮긴 건 착오인데, 'with the advent of modernity'를 잘못 본 것이다. '근대의 도래와 함께"라고 교정되어야 한다.   

(3)마지막 층위로, 이질적인 파편들과 서사 양식들과 성분들로 구성된, 흉물스런 괴물처럼 비일관적인 소설 자체가 있다.  

즉, <프랑켄슈타인>이란 소설 자체가 이런저런 파편들을 짜깁한 듯한 '공상'의 산물이라는 것. 사실 작품을 읽은 독자라면 <프랑켄슈타인>이 문제적인 작품이긴 하지만 걸작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하다는 걸 느낄 것이다. 어느 연구서에선가는 "영문학사에서 가장 문제적인 B급 소설"이라고 평해놓았다.  

지젝은 이 이 세 가지에다가, 소설에 의해 환기된 해석의 차원을 네번째 괴물성의 차원으로 추가한다. "괴물이 의미하는 것, 괴물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적 혁명의 괴물성, 아버지에 항거하는 아들의 괴물성, 근대 산업의 괴물성, 비성애적 재생산의 괴물성, 과학 지식의 괴물성을 의미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조화로운 전체를 이루지 않고 단지 나란히 병치되는 복수의 의미를 갖게 된다. 즉, 괴물성의 해석은 해석의 괴물성(공상)으로 귀결된다."(117쪽) 다시 말해서, 이 작품에 대한 유기적이면서 정합적인 해석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  

다시 반복하자면,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진정한 초점을 다루지 않았다. 대신 그것을 탈정치화된 가족 드라마 내지 가족 신화로 표현했다." 이미 에드먼드 버크 같은 당대의 보수주의 논객은 프랑스의 혁명 체제를 '집단적인 부친 살해 괴물'이라고 경고했고, 이러한 "혁명의 여파 속에서 메리 셸리는 혁명과 아버지 살해의 상징적 등가를 홈드라마로 축소시켰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축소'의 불가피성이다. "하지만 <프랑켄슈타인>은 왜 자신의 진정한 역사적 지시대상을 모호하게 표현해야 했을까?" 

지젝의 대답은 이렇다: "왜냐하면 그 진정한 초점/주제(프랑스 혁명)와의 관련성 자체가 참으로 모호하고 모순적이기 때문에, 가족 신화의 형식 자체가 이런 모순을 중화시켜서 한 가지 이야기 속에 양립 불가능한 관점들을 동시에 환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켄슈타인>은 레비-스트로스적 의미에서의 신화, 즉 실재적 모순의 상상적 해소이다."(119-20쪽) 더불어, 이러한 해소는 <프랑켄슈타인>의 다양한 변주(영화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보리스 카를로프(칼로프)가 괴물을 연기한 가장 유명한 프랑켄슈타인 영화인 제임스 웨일 감독(번역엔 '제임스 웨일즈'로 오기됐다)의 <프랑켄슈타인>(1931)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이지만, 영화화된 <프랑켄슈타인>은 대개 원작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제거했다. '주체화된 괴물'이란 특징이다. 혁명을 괴물로 상징화하는 것, 곧 '혁명의 괴물성'이란 모티브는 전형적으로 보수주의적인 요소이지만,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그런 보수주의로만 규정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선 괴물이 직접 말을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이것은 표현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자유주의적 태도이다."  

자신의 창조주이자 아버지인 프랑켄슈타인에게 괴물은 무어라 말하는가? "괴물은 우리에게 자신의 반역과 살인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학습된 것이라고 말한다. 버크처럼 괴물을 악의 화신으로 보는 것과 달리 이 피조물은 프랑켄슈타인에게 "나는 자비롭고 선하게 태어났습니다. 불행이 나를 악마로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한다. 놀랍게도 괴물은 철학자의 말로 항변한다. 그는 전통적인 공화주의자의 논리로 자신의 행위를 변호한다."(122쪽) 

지젝은 괴물의 이러한 형상화를 작가가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에게 받은 영향일 것이라고 지적한다. 울스턴크래프트는 <프랑스 혁명의 기원과 과정에 대한 역사적이고 도덕적인 관점>(1794)이란 저작에서 버크 류의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바대로 모반(혁명)의 괴물성에는 동의하지만 동시에 이 괴물들이 사회적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즉 그들은 구체제의 압제와 실정과 독재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메리 셸리가 직면했던 모순은 '압제와 무정부' 사이의 모순이었다. "질식할 것처럼 압제적인 집과 그걸 파괴하려는 시도의 살인적 결과 사이의 모순". 지젝의 결론은 이렇다. "그녀는 이 모순을 해소할 수도 없었으며 정면으로 응시할 의지도 없었다. 그녀는 오직 그것을 가족 신화로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09. 0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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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4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14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교 독서평설>(7월호)에 실은 갑론을박 꼭지를 뒤늦게 옮겨놓는다. 배송과정에서 책이 유실되는 바람에 지면의 글은 확인하지 못했다. 최종 교정본을 올려놓는 것이라 실제 지면의 연재와는 약간 다를 수도 있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고른 건 나름대로 '납량특집'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고교 독서평설(09년 7월호) 공포 소설의 고전, <프랑켄슈타인> 다시 읽기 

괴물이 아닌 창조자, 프랑켄슈타인
‘프랑켄슈타인’이란 말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일단 프랑켄슈타인을 소재로 한 대중 영화들 덕분에 괴물의 형상을 떠올리기 쉽다. 시체 조각들을 긁어모아 거기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만든 인조인간 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영화사상 가장 널리 알려진 괴물’의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오인하곤 한다. 그런데 메리 셸리(1797~1851)의 원작 『프랑켄슈타인』(1818, 원제는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판 프로메테우스’)에서 ‘프랑켄슈타인’은 그 괴물이 아니라 창조자의 이름이다.  

하지만 문화사적 기억 속에서 이 ‘창조자’와 그가 이름을 붙여 주지 않은 ‘창조물’은 서로 분리되지 않고 마치 하나인 것처럼 붙어 다닌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작품을 ‘프랑켄슈타인이 만들어 낸 괴물’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괴물’에 관한 이야기로도 읽게 되는 것이다. 이 두 이야기가 함축하는 바는 무엇일까? 먼저 저자인 메리 셸리의 삶과 이 작품의 탄생 배경에 대해서 조금 알아 두는 게 좋겠다. 『프랑켄슈타인』의 창조자답게 결코 평범하진 않은 이야기다.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메리 셸리는 1797년 영국의 저명한 철학자 윌리엄 고드윈(1756~1836)과 여권주의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1759~1797)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모두 당대의 유명 인사였다. 어머니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에게도 남성과 동등한 사회적 기회가 부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여성의 권리 옹호』(1792)의 저자였다. 이 책은 ‘근대 최초의 페미니즘 저작’이라고 찬사를 받는 고전이다. 그녀는 공화국 시민이 되는 것이 좋은 엄마가 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여겼고, 결혼은 합법적인 매춘에 불과하다는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하지만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 1797년에 고드윈과 결혼했으며, 5개월 뒤에는 딸 메리를 낳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녀는 산후 합병증으로 곧 세상을 떠났고, 그 바람에 메리는 아버지와 계모 슬하에서 성장하게 되었다. 메리는 어릴 적부터 다방면에 걸쳐 아버지의 장서를 탐독했는데, 탁월한 문필가 부모의 딸답게 글쓰기를 즐겼다.  

아버지가 사회적 명사였던 만큼 그녀의 집에는 많은 손님이 드나들었는데, 그중에는 고드윈을 숭배했던 시인 퍼시 비시 셸리(1792~1822)도 있었다. 그 당시 셸리는 첫 번째 결혼 관계를 정리하지 못한 유부남이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그들은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동거에 들어갔고, 1816년 마침내 결혼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셸리’가 되었다. 그녀가 자신의 이름에 ‘고드윈’이란 아버지의 성(姓) 대신 어머니의 성 ‘울스턴크래프트’를 넣은 데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읽을 수 있다. 실제로 그녀가 가장 즐겨 찾아 책을 읽던 장소는 어머니의 무덤가였다.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쓰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였다. 1816년 여름, 유럽 여행을 하던 중 셸리 일행은 스위스에서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 바이런(1788~1824)과 어울리게 된다. 비가 많이 오는 날씨 탓에 갇혀 지내야 했던 그들에게, 바이런은 각자가 초자연적인 이야기, 곧 ‘유령 이야기’를 써 보자고 제안한다. 이야기를 궁리하던 중에 메리는 갈바니(1737~1798)의 실험과 생명의 본질 같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 당시 이탈리아의 의학자인 갈바니는 전기 자극을 통해 죽은 개구리의 다리가 움직이는 현상을 발견하여 화제를 모았다. 일부에서는 죽은 시체도 전기 자극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 발상에서 영감을 얻은 메리는 어느 날 자신의 피조물 앞에서 공포를 느끼는 창조자에 대한 악몽을 꾸었고, 이것이 『프랑켄슈타인』의 직접적인 출발점이 되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생명이 없는 육체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2년 가까이 노력한 끝에 결국 생명을 창조하는 데 성공한다(그의 이름은 ‘빅터(Victor)’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흉측하고 혐오스러웠다. 그가 꿈꾸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괴물’이었던 것이다. 그에겐 아름다운 꿈 대신에 공포와 역겨움이 엄습해 온다. ‘괴물’을 창조하고 나서 그가 꾸는 악몽은 그런 점에서 매우 암시적이다.  

“사실 잠이 들긴 했지만 사나운 꿈에 시달렸다. 엘리자베스를 보았다. 건강한 모습으로 잉골슈타트 거리를 걷고 있었다. 놀랍고 반가운 마음에 그녀를 껴안았는데 나의 첫 번째 입맞춤에 그녀의 입술은 죽음의 납빛이 되었다. 그녀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내 품에는 죽은 어머니의 시체가 안겨져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생전에 어머니가 ‘선물’로 데려온 고아 소녀로, 남남이긴 해도 프랑켄슈타인에게는 동생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나중에 두 사람은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1818년에 발간된 『프랑켄슈타인』에서는 사촌동생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성홍열에 걸린 엘리자베스를 간호하다가 세상을 떠나는데, 그녀가 남긴 유언은 두 사람의 결혼이었다. 그렇기에 프랑켄슈타인의 악몽에서 엘리자베스와 어머니가 차례로 등장한 것이다. 

엘리자베스에게 하는 입맞춤이 새로운 생명 창조에 대한 프랑켄슈타인의 열망과 상응한다면, 죽은 어머니의 시체는 자신의 피조물에 대한 환멸과 공포를 상징한다. 실상 새로운 생명은 그가 엘리자베스와 결혼하면 얻을 수 있었을 테고, 또 그것이 자연의 법칙에도 부합한다. 하지만 작품의 부제대로 ‘현대의 프로메테우스’가 되고자 한 프랑켄슈타인은 여성의 몸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가 생명의 창조자가 되고자 한다. 그 결과는 그가 견딜 수 없을 만큼 섬뜩하고 소름 끼치는 것이었다. 결국에는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마저 괴물에게 잃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프랑켄슈타인의 인간 창조가 거둔 비극적 결말이다.  



프랑켄슈타인, 괴물과 마주하다
소설로서 『프랑켄슈타인』은 액자형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가장 바깥의 이야기는 북극의 새로운 항로를 발견하기 위해 탐험에 나선 로버트 월튼 선장이 누이에게 보내는 편지로, 항해 일지와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는 북극을 지나가기 위해 항해하던 중 프랑켄슈타인을 만나서 그가 창조해 낸 괴물 이야기를 듣는다. 이때 프랑켄슈타인은 복수를 위해 그 괴물의 뒤를 쫓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 그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 속에서는 다시 괴물이 등장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그의 창조자에게 들려준다. 곧 전체적으로는 괴물이 프랑켄슈타인에게, 프랑켄슈타인은 월튼에게, 월튼은 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렇게 중층으로 이루어진 이야기 구조는 이 공상적인 이야기에 사실감을 부여해 준다.   

전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프랑켄슈타인과 괴물의 만남이다. 괴물은 자신을 창조해 놓고도 혐오하며 방치한 창조자 프랑켄슈타인에게 복수를 결심한다. 그리고 프랑켄슈타인은 그의 피조물이 자기 가족과 친구를 해쳤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를 제거하려고 한다. 서로가 서로를 찾는 셈인데, 이 둘의 조우 장면에서 괴물은 그의 창조자에게 이렇게 호소한다. “제발, 프랑켄슈타인. 다른 사람한테는 잘해 주면서 나만 짓밟지 말아 주시오. 나는 당신의 정의를, 당신의 너그러움과 애정을 받아야 마땅하오. 당신의 피조물이잖소. 나는 당신의 아담이어야 했지만 타락한 천사가 되었고, 당신은 아무 죄도 없는 나를 기쁨에서 몰아내었소.”   

괴물이 ‘아담’과 ‘타락 천사’를 비유로 든 것은 그가 밀턴(1608~1674)의 『실낙원』을 감동적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실낙원』은 『성경』의 「창세기」를 바탕으로 하여 쓴 방대한 서사시다.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이 쓴 실험 기록, 곧 자신의 탄생 과정에 관한 기록을 모두 읽었다고 말하면서 자기가 느낀 역겨움과 참담함을 토로한다. 그러고는 프랑켄슈타인에게 항의한다. “저주받을 창조자! 왜 당신조차 역겨워 고개를 돌릴 소름 끼치는 괴물을 만들었는가? 신은 자신의 형상을 본떠 인간을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만들었건만 내 모습은 추잡한 인간의 모습이고, 인간과 비슷하기 때문에 더욱 끔찍해졌다.”  

여기서 괴물은 신의 창조와 프랑켄슈타인의 창조를 대조시키면서 그를 원망한다. 프랑켄슈타인은 생명 창조라는 신의 영역을 넘겨다보고 도전한 셈이지만, 자신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혐오스러운 결과만을 얻는다. 그리고 이 점은 그와 유사한 야망을 갖고 있는 분신적인 인물 로버트 월튼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월튼 또한 누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프로메테우스적인 야망을 털어놓는다. 그는 북극 근처의 항로를 발견하여 수개월씩 걸리는 대륙 간 여정을 단축하거나 자력의 비밀을 밝혀내려 한다. 그리고 이러한 업적이 전 인류에게 헤아릴 수 없는 혜택을 줄 수 있으리라고 장담한다. 하지만 그의 고백대로 가끔씩은 자신이 가장 불행한 사람처럼 느껴지는데, 그것은 그의 성공을 기뻐해 줄 사람도 없고, 괴로울 때 격려해 줄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프랑켄슈타인과 마찬가지로 월튼 또한 자기만의 광기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인 것이다.    

배가 빙산에 갇혀 있던 중에 프랑켄슈타인을 만난 월튼은 ‘친구’를 만난 듯이 반가워하지만, 그의 탐험에 동원된 선원들은 점차 인내심의 바닥을 드러낸다. 선원들은 더 이상의 무모한 항해를 포기하고 남쪽으로 되돌아가자고 요구한다. 프랑켄슈타인은 월튼과 선원들에게 끝까지 곤경과 죽음에 맞서 싸우고 영웅이 되어 돌아가라고 독려한다. 그러나 결국 빙산에서 풀려난 월튼의 배는 기수를 고향인 잉글랜드로 돌린다. 이는 월튼에겐 인류에 이바지한 사람으로서 명예를 얻겠다는 희망을 포기한 결정이지만, 선원들은 그의 결정을 반긴다. 프랑켄슈타인과 윌튼은 똑같이 프로메테우스적인 야망을 실현시키고자 했지만, 이 지점에서 둘의 운명은 갈라진다. 그리고 사실 월튼이 보내는 편지의 수신자인 누이 ‘사빌 부인(Mrs Saville)’은 프랑스 어에서 ‘그의 고향(Sa ville)’이란 말과 음성적으로 유사하다. 그래서 그의 누이가 있는 잉글랜드로의 회항은 그의 귀향이자 여성의 품으로의 귀환이기도 하다. 

프로메테우스 신화의 새로운 뒤집기
잘 알려진 대로,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위해 신들의 화덕에서 불을 훔쳐 전해 주고, 인간은 이를 바탕으로 문화를 발전시킨다. 한편으론 그가 진흙으로 인간을 만들어서 인간이 신성을 가지게 되었다고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의 창조자다. 물론 이 때문에 코카서스 산정에 포박되어 제우스가 보낸 독수리에게 매일 간을 쪼이는 고통을 당하지만, 대신에 그는 신에 대한 반항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영웅성’은 많은 시인과 작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메리의 남편 셸리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해방된 프로메테우스』(1820)에서 그는 자신이 시를 통해 새로운 세계와 인간을 창조하는 창조자임을 자임하였다. 그 당시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들이 가졌던 ‘새로운 인간’에 대한 비전을 그 또한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인 메리에게도 큰 영향을 준 『해방된 프로메테우스』에서 퍼시 셸리는 프로메테우스를 사탄과 동일시하고, 프로메테우스와 제우스의 싸움을 한 개인(시인)의 내적 드라마로 변모시킨다. 프랑스 혁명(1789)이 진행 중인 시기여서 이 내적 드라마는 ‘정치 우화’적 성격을 겸하고 있었다. 새로운 질서에 대한 시인의 열망과 정치적 희원(希願, 앞일에 대한 바람)을 적극적으로 형상화해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퍼시 셸리의 창조자-시인의 형상이 프로메테우스와 사탄을 결합한 거라는 데 주의해야 한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지 않는가? 어째서 그런가? 다음의 표를 함께 살펴보자.   


 


그리스 신화


기독교 신학


최고신


제우스


하느님


반항자


프로메테우스


사탄

그리스 신화(헬레니즘)의 제우스는 기독교 신학(헤브라이즘)에서 하느님에 대응하고, 프로메테우스는 사탄에 대응한다. 하지만 가치론적 위계에서 이들은 결코 동일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다. 헤브라이즘에서는 ‘하느님(+)/사탄(-)’이라는 가치론적 위계가 설정되지만, 헬레니즘에서는 ‘제우스(-)/프로메테우스(+)’로 전도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상반된 가치론적 형상을 가진 두 존재를 ‘반항자’라는 성격에만 초점을 맞추어 동일시하게 되면, 곧 ‘프로메테우스(+)=사탄(-)’이 되어 버린다. 이는 인간을 하느님이 아닌 사탄이 창조한 것이 되니 중대한 신성 모독이 아닐 수 없다. 남편이 서문을 쓰기도 한 『프랑켄슈타인』에서 메리 셸리는 혹 그러한 프로메테우스 신화에 대해 또 한 번의 새로운 뒤집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영웅 신화’의 폐해에 대한 경고
그녀의 프랑켄슈타인 이야기가 프로메테우스에게서 끌어 오고 있는 것은 ‘한 영웅의 인간 창조와 그로 인한 주변의 평범한 인간들의 피해’라는 신화소다. 어쩌면 그녀는 아버지 고드윈이나 남편 셸리가 추구했던 그 당시의 급진적 이상주의에 대해 암묵적인 비판을 시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메리 셸리는 천재 시인이었지만 오만하고 과시적이었던 남편에게서 지식인의 이면을 목격하기도 했고, 이념이 얼마나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는지도 직접 체험했다. 그런 그녀의 『프랑켄슈타인』이 프로메테우스라는 헬레니즘 ‘영웅 신화’를 다시 쓰면서 그것의 폐해를 경고하는 일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09. 0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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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프랑켄슈타인의 역사와 가족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9-13 17:51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글을 옮겨놓고 나니까 지젝의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그린비, 2009)에서 <프랑켄슈타인>을 다룬 부분이 생각나 마저 읽었다. 책의 2장 '이데올로기의 가족신화'의 한 절이 <프랑켄슈타인>을 다루고 있는데, '프랑켄슈타인의 역사와 가족'이 그 타이틀이다. 원문은 'History and family in Frankenstein', 그러니까 '<프랑켄슈타인>에 나
 
 
펠릭스 2009-09-14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켄슈타인'의 원조 발상은 개구리의 다리 근육에 대한 전기 자극이며,
유추 발상은 '사람의 시신 근육'에서의 동일한 상상입니다.
'신종플루'는 돼지(Mixing Bowl)에 의한 변종 바이러스입니다. 또한
카프카의 '변신'은 사람이 벌레로, 단군신화는 곰이 사람으로 변종되었습니다.
인간에게는 스토리를 변종시키는 본능이 있는가 봅니다.

로쟈 2009-09-14 13:1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이야기를 꾸며내는 재능이 다른 동물들과의 차이죠...

카스피 2009-09-14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기 저도 책 읽기 전에는 괴물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인줄 알았죠 ^^;;;

로쟈 2009-09-15 20:02   좋아요 0 | URL
그게 '괴물'은 이름이 없어서 더 혼동되는 듯합니다...
 

지난주 서점에 들렀을 때 눈에 띈 재간본은 바타이유의 <에로티즘>(민음사)이다. 중간에 여러 쇄가 나오긴 했지만 1989년에 초판이 나왔으니 20년 전이다. 말하자면 '20년전 화제작'이다. 표지가 달라졌는데, 일부 논란이 되기도 했던 번역은 그대로인지 궁금했다('개정판'이 맞는지 확인해볼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는데, 외관상으론 달라진 게 없는 듯했다). 그간에 저자의 이름이 '바타이유'에서 '바타유'로 바뀐 것도 변화라면 변화이겠다(개인적으로 별로 달갑지 않은 변화다. 나는 고유명사의 표기는 어느 정도 '고정적'이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베이유'가 '베유'가 되고, '바타이유'가 '바타유'가 되는 사정이야 어림짐작할 수 있지만, 그것이 과연 '필수적'일까? 결과적으로 우리는 두 개의 고유명사로 한 사람을 지칭하게 됐을 뿐이다). 

 

<에로티즘>과 함께 또 눈에 띈 책은 “우리가 알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가?”란 질문을 화두로 던지는 로저 샤툭의 <금지된 지식>(텍스트, 2009)이다. 예전에 같은 역자에 의해 두 권짜리로 출간됐던 책. <금지된 지식>(금호문화, 1997)이니까 12년 전이다.    

  

매스컴의 주목을 받긴 했으나 당시엔 좀 '고루한' 제목 때문에 나는 손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학기에 <실낙원>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도서관에서 대출하여 참고문헌으로 읽었다. 전체를 통독한 건 아니고 <실낙원>과 <파우스트>, <프랑켄슈타인>, <이방인> 등에  대한 '작품론'으로 읽은 것인데, 그런 차원에서도 아주 유익했다. 이미 절판된 이 책이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게 된 건 당연한 일. 예기찮게도 이렇듯 일찍 나와서 반갑다. 한권으로 묶인 것도 더 마음에 든다.   

 

'옮긴이의 글'을 보니 저자 샤툭 교수는 지난 2005년에 전립선암으로 사망했고, 그 사이에 두 권의 책을 더 남겼다. 한권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가이드북이다. 나도 지난 학기에 저자에 대한 '뒷조사'를 하면서 궁금했던 책이다. 프루스트 단편전집의 서문을 쓰고 있기도 하므로 프루스트 전문가이기도 하다. 저자 소개엔 <마르셀 프루스트>란 책으로 미국도서상을 수상했다고 돼 있는데, 1982년에 나온 책에 <마르셀 프루스트>가 있지만 180쪽 분량이어서 수상도서가 맞는지는 모르겠다(다시 찾아보니 1974년에 쓴 프루스트 평전이 수상작이다).    

새로 출간된 <금지된 지식>의 의의? 출판사에서는 이런 기대를 적어놓았다. "12년 전 처음으로 국내에 번역 소개된 이 책은 당시 복제양 탄생과 함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후 2005년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로저 샤툭은 자신의 최종적인 세계관과 인간관을 종합적으로 체계화한 역작인 이 책의 논지를 반복하며 강연을 하러 다녔다. 생전에 핵무기 확산 반대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평생에 걸쳐 대체로 보수의 손을 들어주는 듯한 논지를 펼친 샤툭이 첨단 과학과 학문 및 예술의 기수들에게 얼마나 호소력을 가질지는 의심스럽다. 하지만 ‘순수한 앎’의 추구와 ‘알고자 하는 탐욕’의 제한 사이에서 긴장과 조화를 고민하고 문명의 향방을 가늠하려는 노력에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을 수는 없다는 데 동의한다면 샤툭은 분명 현대를 사는 독자들에게 유익한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나는 그냥 한권의 인문서로도 일독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09. 0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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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9-14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티시즘과 금지되 지식 두권 모두 오래전에 읽었는데 내용이 가물가물 하네요.로쟈님 글을보고 창고에 먼지쓴 책좀 찾아서 다시 읽어 봐야 되겠군요^^

로쟈 2009-09-15 22:16   좋아요 0 | URL
그러실 것까지야...^^
 
포스트 소비에트 시대 해체하기

그린비출판사의 블로그에서 리클린의 <해체와 파괴>(그린비, 2009) 역자 인터뷰를 옮겨놓는다(http://greenbee.co.kr/blog/739). 책을 읽는 데 참고가 될 듯싶다. 더불어 블로그의 '인문학 해외통신' 코너에는 역자의 글 '러시아 인텔리겐치아와 사회적 죄의식의 기원'이 연재되고 있는데, 러시아 지성사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흥미롭게 읽어봄 직하다.  

 

『해체와 파괴』역자 인터뷰 ― 러시아의 지적 전통과 현대 유럽 철학의 결합 

자기소개를 간략하게 해 달라. 지금까지 어떤 공부를 해왔는가?
원래 한국에서 전공한 것은 ‘러시아 문학비평사’, ‘러시아 근대 지성사’였다. 그런데 박사과정 중에 연구공간 수유+너머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다음에 방향이 조금 변하였다. 대학 안의 분과제도 밖으로 나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 유학을 할 때는 문화연구로 방향을 틀었다.

미하일 리클린은 우리에게 낯선 인물이다. 어떤 인물인가?
이 책은 우연한 계기로 접하게 되었다. 운이 좋았는지 모스크바에 있을 때, 리클린을 두 차례 만나서 인터뷰까지 했었다. 그는 우리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다. 이 사람은 유럽에서 자신의 책을 내고 있고, 조금씩 자신의 이름을 알려나가고 있다. 처음에는 제임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를 러시아어로 번역하는 등, 인류학적인 연구를 했었다. 하지만 박사학위는 ‘구조주의 연구’ 였다. 1980년대 중 후반, 당시로서는 운이 좋게도 베를린, 파리에서 현대철학의 흐름을 접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데리다와 세미나를 오래했다. 이 세미나를 통해 ‘해체주의’라고 하는 자신의 공부에 밑천이 될 수 있는 중요한 흐름을 만날 수 있었다. 이후 그는, (소비에트의 몰락, 새로운 러시아가 시작하는 시점에서) 유럽의 현대철학을 주도하던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2000년대에 들어와서야 그 내용을 잡지에 올리고, 책으로도 묶어낼 수 있었다.

『해체와 파괴』는 제목부터 뭔가 강력한 인상을 준다. 어떤 의미의 제목인가?
해체와 파괴는 데리다와 하이데거에서 논점을 끌어다 쓰는 대구적인 표현이다. '해체'는 당연히 데리다와 해체주의에서 온 것이다. 파괴라는 말은 하이데거가 근대 형이상학의 종점을 보면서 이야기 한 말인데, 이걸 끌어다 쓴 것이다. 물론 니체에게도 쓴다. 전통적인 사유의 '틀'을 조각내버리는 (요즘은 잘 사용하지 않는 말로) 포스트 모던한 사유이다. 리클린 본인의 이야기로는 들뢰즈의 사유를 '파괴'라는 말로 설명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한국과는 들뢰즈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다 보니, 나도 리클린을 만났을 때, 꼭 그 단어 밖에 없는가 물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받아들이는 지형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다.  

들뢰즈 사유에서 이야기 하는 '탈주선'의 사유를 리클린 자신은 파괴적인 선들로 이해한다고 이야기 했다. 국민으로서, 한민족으로서,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와 같은 '~로서'의 규정들을 비켜나가는 힘들, 이것들이 기존에 규정된 것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선들을 만들 때 그 선은 분명 파괴의 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해체'가 기존 전통철학의 고정된 틀을 깨는 동력이 된다면, '파괴'는 그런 규정들을 넘어서는 힘으로 볼 수 있겠다.

『해체와 파괴』에 대담자로 등장하는 철학자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별된 것인가?
리클린이 90년대를 전후해서 유럽에 체류할 때, 본인이 생각하기에 유럽의 현대 지성,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가장 현대적인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뽑은 것이다. 다만, 지금과는 (시간적인) 격차를 가지고 있어서 지금 우리에게 얼마나 시의성이 있는가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조금 다른 문제가 될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말의 유럽 사유를 정리하는 의미에서라면 이들이 갖는 대표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리라 본다.

향후 개인적인 작업 계획이 있다면?
내가 러시아 전공자이기 때문에 러시아의 뭘 끌어와서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서 지적 담론이 구성되고, 그것이 구체적으로 실천되는 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러시아로부터 받아들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한다. 그것은 지금 러시아의 정치적 상황, 경제적 상황이 어떻다는 것과는 무관할 것 같다. 러시아가 거지나라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지적 자원은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이고, 러시아 정치제도가 후진적이라고 해도 역시 그로부터 반발적으로라도 우리의 지적자원으로 유용하게 쓰일 것들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앞으로 러시아 사유의 면면한 흐름들을 한국에 소개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서구와도 비슷하면서도, 서구와는 다른 것들, 현재 러시아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들을 조감해 보는 것은 러시아의 과거를 보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09. 0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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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3 00: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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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3 09: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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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3 03: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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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3 09: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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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09-13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통철학에 대한 현대적 사유의 관계 규정', '지적자원으로 유용', '사유의 도정' 이라는 말에 대해서 음미해봅니다. '도정'과 '보리개떡'에 대해서도.

로쟈 2009-09-13 19:37   좋아요 0 | URL
마지막은 유머신 거지요?^^

펠릭스 2009-09-14 08:39   좋아요 0 | URL
산행중 선배에게 '왜,,산을 다니십니까?' 물었더니,
"생각을 깨기 위해서'라고 대답했습니다.
'도정'은 곡립의 등겨층을 벗기는 조작입니다.
저는 '사유의 도정'과 '생각을 깬다"는 말을 같은 의미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모친께서 만들어 주신 "보리개떡"을 추억했습니다.
호밀가루 대신 사용한 '맥강'은 보리를 보리쌀로 몇 번
도정하면 나오는 보리가루입니다.
모친는 물먹인 '맥강'을 부풀리기 위해 '소다'를 넣고, 단맛을 내기
위해 '사카린'를 넣었습니다.
가마솥에 물을 붓고,시누대를 건 다음 모시천을 깔고, 그 천위에 어른 손바닥만한 맥강빵(보리개떡)을 찌셨지요.
저에겐 최초의 빵이었습니다. '사유의 도정'은 제 유년의
추억속에 남아 있는 '보리개떡'처럼 반가운 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