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종합편성 채널의 건강 프로그램이 날이 갈수록 인기를 얻고 있다. 어머니가 드라마 다음으로 많이 보는 방송이 건강 프로그램이다. 한 번은 건강 프로그램에 치매를 예방하는 건강 비법이 소개된 적이 있었다. 방송 스튜디오에 치매 판정을 받은 70대 노인이 출연하여 자신의 건강 비결을 밝혔다. 노인은 치매를 막기 위해 손가락 체조와 필사를 꾸준히 했다고 말했다. 노인이 성서를 필사한 노트도 공개되었다. 그 방송을 본 어머니는 필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나는 그 마음을 확인하고, 어제 《동주 따라 필사하기》를 주문했다. 다행히 어머니는 필사 노트에 흡족해하셨다.

 

나는 필사가 두뇌 발달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믿지 않는다. 손을 열심히 움직이면 두뇌를 자극할 수는 있다. 암기해야 할 내용을 손으로 글씨를 여러 번 쓰면 기억력이 향상된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하지만 실험 결과만 믿고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확실히 두뇌를 좋게 하려면 필사만 하는 게 아니라 소리 내어 글을 읽고 글자를 암기해야 한다. 두뇌를 확실하게 사용하면서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과거의 필사는 공부하는 방법의 하나였다. 오늘날의 필사는 자기 성찰을 위한 힐링 문화로 재조명받고 있다.

 

필사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물은 간단하다. 펜, 공책, 필사하고 싶은 책. 이게 전부다. 세 개의 준비물 모두 집에 있는 것들이다. 아차, 책과 담 쌓은 사람이라면 집에 글자만 있는 책이 단 한 권도 없을 수 있겠다. 아, 사람들아 책 좀 사라! 필사하고 싶은 책은 아무나 해도 좋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시집이나 소설이 좋다. 필사는 소박하게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독자들은 필사를 시작하려고 필사용 책을 구입한다. 2년 전에 컬러링북이 출판업계에서 힐링 아이템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어른들은 복잡한 생각에 벗어나 색칠 놀이에 푹 빠졌다. 그 힐링 문화 트렌드를 이제 필사가 바통을 이었다. 독자들은 좋은 문장을 정독하고 손으로 직접 쓰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컬러링북이 시각의 자극을 통해 생각을 비워나가는 방법을 알려줬다면, 필사용 책은 ‘문학’이라는 감성적인 콘텐츠를 통해 생각의 속도를 차분하게 해준다. 필사는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다. 필사용 책은 가장 일반적인 시집부터 소설, 수필, 성경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선보여지고 있다. 필사용 책을 찾는 사람들이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 

 

내가 주문한 《동주 따라 필사하기》의 정가는 13,900원이다. 알라딘 할인 가격은 12,510원이다. 《동주 따라 필사하기》는 읽는 용도의 시집과 필사용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외에는 특별한 것은 없다. 집에 시집과 공책 두 권 다 있으면 《동주 따라 필사하기》를 사지 않아도 된다. 내가 세상의 유행에 둔감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필사용 책을 사는 것이 무척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필사용 책을 구입하는 결정은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인 행위다. 이미 앞에서 언급했듯이 필사는 소박한 준비물만 있어도 충분하다. 서재에 꽂힌 윤동주, 김소월 시집을 필사용 도서로 사용해도 된다. 그 다음에 쓰다 만 공책이나 수첩에 필사할 수 있다.

 

 

 

 

 

 

 

 

 

 

 

 

 

 

 

 

 

 

필사용 책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게는 불쾌한 말로 들리겠지만, 필사 유행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해 필사용 책을 사는 행동은 어리석다. 행동경제학 측면에서 본다면 필사용 책을 구입한 독자들은 눈앞의 이익에 눈멀어 이성적인 선택을 하지 못한 것이다. 이들은 눈앞의 즐거움에 더 많은 가치를 두는 ‘현재 편향(Present Bias)’의 덫에 걸렸다. 우리는 현재 자신이 원하는 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그래서 먼 훗날의 일보다 당장 눈앞의 일을 중시해 돈을 쓰는 경향이 있다. 필사를 꾸준히 실천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 필사가 아무리 좋아도 살다 보면 바빠서 필사하는 일을 점점 미루거나 필사의 재미를 예전보다 덜 느낄 수 있다. 이러면 후회가 확 밀려온다. 아, 내가 13,900원을 내면서까지 필사용 책을 왜 샀을까?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책 상태를 유지했으면 알라딘 중고시장에 팔면 된다. 하지만 이미 필사 흔적이 남아있는 책을 과연 누가 사겠는가.

 

필사는 조용히 자신의 세계에 몰두하는 소박한 기록 행위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과 공책만 있으면 된다. 알고 보면 그리 대단하지 않다. 필사 유행을 감지한 출판사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필사용 책을 내놓기 시작한다. 일단 독자들의 지갑을 열리게 하는 책만 만든다. 출판사들은 감성이라는 단어를 남발하면서 필사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책을 더 많이 팔아보려는 그들의 노력이 가상하다. 열려라, 지갑! 평소에 책을 사지 않던 독자들은 필사용 책 앞에서는 지갑을 자연스럽게 연다. 우리나라 작년 가구당 책 사는 데 쓴 돈이 한 달에 16,623원이다. 책 읽는 데 사용한 시간은 하루 평균 6분. 서점 주인들은 시집이나 수필집이 안 팔린다고 울상을 짓는다. 아이러니하게도 ‘필사용 시집’을 선호하는 젊은 고객층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만약 필사가 유행되지 않았으면 윤동주 시집은 지금처럼 꾸준히 팔려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독서와 필사 모두 ‘아날로그 행위’에 속한다. 사실 필사는 독서를 기반으로 하는 활동이다. 먼저 글을 읽고, 그 글 속의 문장을 천천히 손을 써보면서 이해하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요즘 사람들은 독서를 멀리하고 필사를 좋아한다. 지금의 출판 시장은 정말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3-16 1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17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6-03-16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팔아프고 손가락 아픈데 그게 힐링이 된다는 게 참... 어릴 때 받아쓰기 틀리면 종이 가득 줄그어서 써오는 숙제 생각나네요. ㅋ

cyrus 2016-03-17 12:47   좋아요 0 | URL
제 학창 시절에는 시험문제 틀리면 틀린 문제와 풀이 내용을 공책 한 장 안에 빽빽하게 써오라고 숙제를 시키는 선생님들이 많았습니다. 시험에 자신 없는 친구들은 틀린 문제 개수당 매를 맞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

하양물감 2016-03-16 2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손가락이 아프니 필사할 일은 없겠으나....

독서문화운동을 하면서
대상을 책을 읽는 사람과 책을 읽지않는 사람 중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방법이 달라져야하더라구요.

필사용책도
스스로 필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필사가 무엇인가 궁금한 사람을 위한 책이 아닐까요

cyrus 2016-03-17 12:52   좋아요 0 | URL
제 주변에 필사 유행을 잘 모르는 친구도 있었어요. 이런 사람들이 필사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필사용 책을 살 겁니다. 필사용 책을 구입하기 전에 실물을 확인하고 사야겠어요.

꿈꾸는섬 2016-03-17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굳이 필사용책을 사야하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책을 사고 공책에 쓰면 되는거 아닌가요? 자본시장이란 모든게 다 상품화되는군요. 근데 왜 슬플까요ㅜㅜ

cyrus 2016-03-17 12:59   좋아요 0 | URL
저는 고등학생 때 문학 교과서나 문제집, 모의고사 언어영역 시험지에 좋은 시를 발견하면 공책에 따로 필기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시를 공책에 옮겨 적는 일이 즐거웠어요. 그때부터 시를 암기하고, 문제 푸는 교육 현실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ㅎㅎㅎ

영화와 초판본이 큰 인기를 얻게 되니까 출판사들이 윤동주 시집을 내는 상황이 씁쓸했습니다. 이제는 이육사, 김소월, 백석, 한용운까지 다 나오네요. 좋게 포장하면 아날로그 문화의 회귀라고 말하지만, 그 속을 잘 살펴보면 자본주의의 손이 숨어 있어요.

corcovado 2016-03-17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사관련 책은 알라딘온라인에서 처음 보게되었는데 ˝필사노트˝라는 문구를 보고도 (이게 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하고 이해를 못했습죠..지금은 웬만한 서점에 모두 진열이 되어있던데,사실 아직도 공급하는것과 수요가 있다는것이 믿기지않습니다.불과 며칠전 서점에서 따로 필사책구역을 만들어 판매하는걸 보고 입을 삐죽-거렸는데 cyrus님이 콕 집어 써주시니 제가 다 후련합니다.

cyrus 2016-03-17 13:05   좋아요 0 | URL
알라딘 검색창에 ‘윤동주 필사’라고 입력하면 제가 주문한 책과 다른 출판사의 윤동주 시집 필사용 도서가 나옵니다. 교보문고 같은 오프라인 서점에 가면 이런 유사한 책이 더 많이 있어요. 처음에 저도 필사 유행이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과열된 상태입니다. 출판사들은 필사용 책을 만들어서 수익을 올리려고 할 겁니다.

eL 2016-03-17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같은 정통 인문학 영역 마저도 트렌드화 되어가는걸 보면 참 씁쓸하죠. 요즘엔 인권운동마저도 트렌드화된다는 느낌을 받게 되니..

저는 요즘엔 다른 측면도 함께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하양물감님 댓글처럼, 유행따라가는 무수한 사람들 중에 단 몇사람이라도 이런 트렌드를 계기로 독서의 참맛을 알게되면 그 또한 의미가 있겠구나 하구요. 물론 cyrus님 말씀처럼 비판적 시각도 함께 가져가면서 말이죠. `-`

cyrus 2016-03-17 13:0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처음에 필사가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긍정적으로 봤습니다. 그런데 일부 출판사들은 독자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유행이 있으면 거기에 편승해서 책을 만들려고 합니다. 전 이게 장기화되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컬러링북이 유행했던 과정을 그대로 보는 것 같습니다.

세실 2016-03-17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끼는 노트 한 권에 읽은 책 제목이랑 기억하고 싶은 글 적어 놓아요. 자연스럽게 필사가 되던데 필사 책도 인기군요.

cyrus 2016-03-17 17:45   좋아요 0 | URL
세실님의 필사 습관이 제일 바람직합니다. 평소에 필사 습관이 없던 사람이 필사 책을 사면 꾸준히 하지 못합니다.

나와같다면 2016-03-18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신문 칼럼을 필사해요..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만나면..

cyrus 2016-03-18 11:37   좋아요 0 | URL
아주 바람직한 필사 습관입니다. 신문 칼럼 속에도 좋은 문장이 많이 있어요. ^^

앤의다락방 2016-03-17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필사책 보관함에 담아두긴 했으나 구입으로까지 이어지진 않더라구요. 그냥 노트에 와닿는 내용만 적어둬도 좋을 듯 해서요. 정말 책을 그저 많이 팔려고 하는 것으로밖에는...

cyrus 2016-03-18 11:40   좋아요 1 | URL
필사 책을 구입하려면 직접 눈으로 보면서 확인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인터넷에 있는 사진만으로는 실물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확인하기 어려워요. 책값을 아끼려면 원래 쓰던 공책에 필사를 하는 것이 낫습니다.

에이바 2016-03-18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사하면 손목터널 증후군 생길 것 같은데요...ㅋㅋㅋ 사은품으로 주는 필사노트는 좋지만 사서 보는 필사노트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이 현상이 의아하긴 합니다.

cyrus 2016-03-18 17:33   좋아요 0 | URL
색칠도 오래 하면 손목이 금방 피로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저희 어머니도 컬러링북 색칠을 오래 하니까 손목과 어깨에 통증이 온다고 말했어요. ^^;;
 

 

 

바둑에는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와 달리 복기(復棋)라는 독특한 절차가 있다. 한 판의 대국을 마치고 나면 두 대국자는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바둑의 판국을 비평하면서 두었던 대로 다시 처음부터 놓는다. 그 과정에서 본인과 상대방이 놓은 수들의 잘잘못을 검토한다. 대국에서 패배한 대국자는 자신의 실수를 분석하면서 되씹는다. 복기를 해보면 대국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묘수가 발견될 수 있다.

 

출판사 혹은 인터넷 서점이 주관하는 서평대회는 글로써 승부를 겨루는 게임과 같다. 나는 누구보다 서평대회에 응모하는 것을 즐긴다. 평소에 글 쓰는 날보다 집중력이 높아진다. 퇴고를 엄청나게 열심히 한다. 대회 심사 위원에게 잘 보이기 위한 문장을 쓰려고 며칠 동안 고민한다. 그렇지만 노력한다고 해서 좋은 성과가 무조건 오는 것은 아니다. 나보다 열 배나 뛰어난 작문 실력을 갖춘 분들이 많다. 달콤한 축배보다 쓰디쓴 고배를 많이 마셨던 날이 더 많다. 보통 서평대회에 응모했다가 낙선되면 씁쓸한 감정을 애써 지우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나만의 절차가 따로 있다. 서평 대회 결과를 확인하면 내가 응모한 글과 대회 당선작들을 다시 읽어 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는 편이다. 왜냐하면 내 글이 낙선된 이유를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행동은 결과를 승복하지 못한 태도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내가 쓴 글을 다른 글과 비교하면서 읽는 절차를 나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냥 내 스스로 내 글의 문제점을 진단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바둑이 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바둑을 기록하고 복기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서평대회에서 당선될 만한 글을 잘 쓰고 싶어서 내 글을 복기(復記)한다. 즉, 완성된 글을 해체하고 마음으로 다시 써보는 것이다. 내 글과 잘 쓴 글을 비교해서 읽어 보면, 표현력과 내용 전개 방법 등에서 확연한 차이가 나는 사실이 눈에 보인다. 이 일이 생각보다 재미있다. 글 속에 글쓴이 생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글쓴이가 책을 읽으면서 자신만의 관점으로 느낌을 풀어나가는 글의 전개를 눈으로 따라가면 감탄을 하게 된다. ‘저 사람은 이 책을 이런 관점으로 읽었구나, 정말 대단한걸!’ 내가 책을 읽으면서 놓쳤거나 생각하지 못한 사실을 알게 된다. 덤으로 글쓴이의 문장 표현법도 배우게 된다. 그러면 내 글이 왜 당선되지 못했고, 어디가 부족했는지 파악할 수 있다.

 

가끔은 당선작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글을 볼 때가 있다. 내 눈에는 당선작인데도 2% 이상 부족하게 보일 때가 있다. 그런 글들은 대부분 책과 저자를 향한 찬양의 수사로 휘황찬란하게 장식되어 있다. 그러면 나는 절대로 저런 글을 쓰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끝까지 읽지 않는다. 이런 글에는 일정한 레토릭(rhetoric)이 있다. 글쓴이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는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책 속의 저자 생각이 자신의 삶에 끼친 사례를 열거한다. 글의 결론에서는 독자에게 호소한다. ‘이 책을 꼭 읽어보십시오. 최고로 좋습니다요.’ 이러한 레토릭은 약장수들의 언변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약, 건강에 좋아요. 내가 한 번 약을 먹고 나니까 병이 씻은 듯이 다 나았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이 약 먹으면 나처럼 건강해질 수 있어요.” 칭찬의 수사에 쓰는 일에 재미 들린 글쓴이는 자신이 독자인지 책을 판매하는 사람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서평대회 심사를 맡은 출판사 직원은 이런 글을 안 좋아할 수가 없다. 독자가 자신들 대신해서 책을 열정적으로 홍보하고 있으니까. “그래, 글이 아주 좋아서 책 홍보용으로 써도 손색이 없군. 이 글을 최우수작으로 선정하자고.”

 

어떤 이는 자신의 경험담을 고백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글쓴이는 자신이 경험했던 일을 책의 내용에 투영하면서 책을 소개한다. 이런 전개 방법은 좋다. 읽기 쉬운 글이다. 하지만 이 글도 단점이 있다. 글쓴이가 경험담 소개에 치중하면 책에 대한 단점이 가려질 수 있다. 즉, 책을 평가하는 태도를 놓치고 만다. 서평이든 독후감이든 글 한 편 속에 자신에 관한 이야기가 책 이야기보다 더 많이 보이는 것도 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건 잘 쓴 에세이지, 잘 쓴 서평/독후감이 아니다. 평소에 이렇게 글을 써도 좋다. 서평/독후감을 에세이의 일종으로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서평 대회에 응모하려면 서평/독후감에 부합되는 내용을 써주는 것이 맞다. 그렇다고 해서 책 소개만 이루어진 지루한 글을 쓰라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경험담을 아예 쓰지 말라고 엄격한 자세를 취하는 것도 아니다. 책의 저자가 하는 말에 조금이라도 의문이 나거나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면 솔직하게 쓰는 것이 좋다.

 

책을 비판하면서 읽는 방법 또한 독서의 한 과정일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독서법이 독자가 함부로 해서는 안 될 금기처럼 여긴다. 특히 서평 대회에 응모하는 글에 책이나 저자에게 조금이라도 시비를 걸면 심사 위원이 된 출판사 직원에게 밉보여서 당선에 불리하다고 생각한다. 책을 비판적으로 읽은 관점이 다른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을 정도라면 자신 있게 써도 된다. 자신감이 부족한 글쓴이는 책에 대한 찬사 위주의 내용을 쓰려고 고집한다. 이런 글들이 서평대회 당선작이 되면 결국 불리한 건 우리 독자들이다. 당선작을 읽는 독자들도 글을 제대로 보는 눈이 있다. 책의 단점이 뻔히 드러나는 데도 책을 좋다고만 쓴 서평을 보면 눈살을 찌푸린다. 그러면 글쓴이를 오해하게 된다. 혹시 저 글을 쓴 사람은 출판사 직원일까? 그런 의심을 한 번쯤을 할 수 있다. 서평/독후감을 작성한 독자와 그 글을 읽는 독자들 간의 보이지 않는 오해가 생기고, 독자가 독자 서평을 신뢰하지 않는 상황까지 생긴다. 

 

“출판사 직원들에게 잘 보이도록 쓴 글은 서평대회 당선작이 될 확률이 높다” 꽤 많은 사람이 서평대회 당선작을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이 생각을 정말 싫어한다. 그리고 억울하다. 나도 예전에 서평대회 응모하는 글을 썼을 때 책을 칭찬하는 레토릭을 포기하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안 쓰면 손해를 볼까 봐 두려웠다. 그러다가 책을 칭찬하는 서평이 당선작이 된 적이 있었다. 기분은 좋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서평이 출판사 직원들의 기분만 맞춰주는 글이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칭찬의 수사를 자제하고 책을 꼼꼼하게 따지는 서평/독후감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출판사가 서평대회를 여는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책 홍보다. 그러나 서평대회는 책과 서평을 좋아하는 독자들을 위한 특별한 행사이기도 하다. 그만큼 서평대회에 참여하는 독자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책을 보는 생각이 사람마다 제각각 다를 뿐만 아니라 책이 모든 사람을 다 만족하게 해주지 못한다. 책 그리고 저자의 생각에는 장단점이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책에 대한 평이 없는 서평과 독후감은 출판사의 손아귀에 들어간 영혼 없는 글이다. 저자와 책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도 사람들의 감흥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니까 문제를 아주 예리하게 알려준 서평과 독후감은 독자, 출판사 직원 그리고 저자 모두를 공감하게 한다. 이런 글이 서평대회 당선작이 되어야 한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독자들 앞에서 솔직해지는 서평/독후감을 쓰고 싶다.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16-03-15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출판사에서 하는 서평 대회는 장단점이 있기는 하지.
그런데 그런 출판사 허투로 안하는 것 같아.
나름 공정하게 하는 것 같고, 안 좋은 얘기 했다고 해서 당선에서 제외하는
이런 초등학생 같은 짓은 안하는 것 같아.
문제는 참가하는 독자의 태도가 아무래도 좀 다른 것 같아.
나부터도 흔들리긴 하지.
평소엔 읽지도 않을 책을 읽고 좋은 쪽으로만 쓰고 싶고.
요즘엔 서평 대회하는 출판사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지만
난 꼭 내가 읽고 싶은 책에만 서평을 하기로 했어.
마침 그게 대회로 이어지면 금상첨화겠지만.

cyrus 2016-03-15 18:25   좋아요 0 | URL
누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제가 출판사를 마치 독자를 무시하는 회사처럼 나쁘게 표현한 것 같군요. 비록 저의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서평 심사를 평가를 공정하게 하는 출판사가 몇 개 있었어요. 그런데 출판사가 글을 제대로 심사하는 건지 아닌지 독자 입장에서는 구분하기 어려워요. 심사하는 사람 마음에 따라 당선작을 선정하는 것이라서 당선 기준도 모호하니까요. 아무튼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 언제 또 이런 글을 써보겠어요.

stella.K 2016-03-15 19:17   좋아요 0 | URL
헉, 그런가? 난 많이 못 봐서 말이야.
아마도 내가 소견이 좁은지도 모르겠네.
내가 좀 더 신중히 댓글을 달 걸 그랬구만.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면 용서하길...ㅠ

cyrus 2016-03-15 19:37   좋아요 0 | URL
제가 봐도 누님이 잘못한 점이 없는데요. ^^

고양이라디오 2016-03-15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대회는 오프라인 대회인가요ㅎ?
저도 한 번쯤은 참가해보고 싶네요ㅎ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6-03-15 18:56   좋아요 1 | URL
오프라인은 아니고요, 온라인으로 진행됩니다. 알라딘 이벤트 게시판에 들어가면 서평대회 소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JK 2016-03-15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의 장점,단점 위주보다는 책을 독자한테 소개한다는 마음으로 써보심이 어떨런지요. 아무튼 저는 서평은 귀찮고 능력도 모자라 잘 안쓰게되더라구요.

cyrus 2016-03-15 18:59   좋아요 0 | URL
옳은 말씀을 하셨는데, 이상하게 저는 책을 소개하는 것을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쓰면 출판사 서평, 언론 서평처럼 보이거든요. 그래서 책 소개는 잘 안 써요.

blanca 2016-03-15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기`가 바둑에서 나온 용어라는 게 흥미롭네요. 안 그래도 <미생>을 잠깐 보면서 바둑을 조금이라도 알면 얼마나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참 아쉬웠거든요. 사는 일도 이렇게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새는 통 서평대회 소식을 못 들었네요. cyrus님의 성실한 글쓰기 과정이 참 인상적입니다.

cyrus 2016-03-15 19:21   좋아요 0 | URL
평소에 복기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는데 바둑 용어라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습니다. ^^

출판사 시장이 너무 안 좋다보니 서평대회가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책을 독자들에게 많이 알릴 수 있는 전략이지만, 거기에 따른 경제적 비용을 감수해야합니다. 아무래도 출판사 입장에서는 서평 대회를 진행하는 일이 부담스러울 겁니다. 심사하는 일도 어렵고, 최악의 경우에는 심사 결과에 논란까지 생길 수 있으니까요.

syo 2016-03-15 1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님은 서평과 독후감을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시나요?

눈금선의 양쪽 끝에 책과 독자를 놓고 독후감과 서평이 위치하는 지점이 어딘지 생각해보면, 저는 서평은 책 쪽에 조금 더 가까이, 독후감은 독자쪽에 조금 더 가까이 위치하는 게 아닐까 해요. 그러니까 서평이 에세이를 곁들인 비평이라면 독후감은 비평을 곁들인 에세이라고 보는게 제 분류법이거든요. 서평은 어쨌든 그 책이라는 객체에 대해 써야 하지만, 독후감은 책을 읽고 난 후의 자신에 대해 쓴달까요. 그래서 서평은 몰라도, 독후감이라면 설령 그게 자기 블로그에 올리는 글이 아니라 대회에 출품하는 글일지라도 책보다는 내게 더 가까운 지점에서 글을 써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cyrus 님이 이 글을 쓰신 논지와 다른 이야기인것은 알지만, 이렇듯 서평/독후감에 대한 cyrus님과 저의 판단 기준이 다르다는 사실 자체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봅니다. 책-독자 좌표축에서 서평/독후감의 위치를 어디에 놓느냐 하는 판단이 사람마다 다르듯이, 잘 쓴 서평에 대한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전 다만 cyrus님과 심사위원간에 판단기준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최소한, 그게 대회라면 그 대회의 목적과 평가 기준은 심사위원의 권한 범위겠지요.

저는 항상 cyrus님의 서평을 잘 보고 있습니다. 제가 읽은 것들 중 가장 좋았던 서평 몇몇은 cyrus님의 손끝에서 나왔다는 것을 자백합니다^^. 그러니까 cyrus님도 다른 독자들을 믿어 보세요. 대회에서의 당락과 관계없이 좋은 서평과 그렇지 않은 서평을 구분할 수 있는 매서운 눈을 가진 독자들이 항상 cyrus님의 다음 서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cyrus 2016-03-15 19:34   좋아요 0 | URL
댓글 길게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syo님의 글이 여기 댓글에 있는 것이 너무 아깝습니다. 이 글을 먼댓글 형식으로 syo님이 직접 서재글로 작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syo님의 생각에 공감할 겁니다.

예전에 제가 서평과 독후감의 정의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많은 분들의 생각을 확인했고, 역시나 서평과 독후감을 이해하는 인식도 달랐습니다. 오늘도 이 글을 쓰면서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으려고 신중히 생각하면서 썼습니다. 저는 서평과 독후감을 동등한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니까 독후감에도 책에 대한 평을 쓸 수 있다고 봤습니다.

서평과 독후감에 대한 의미도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듯이 `잘 쓴 서평 혹은 독후감`에 대한 기준도 다릅니다. 그 점을 syo님이 잘 말씀해주셨습니다. 제가 그 부분을 놓쳤습니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제가 편안하게 글 쓰시는 분들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말을 쓴 것 같습니다. syo님 덕분에 저의 잘못된 생각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

2016-03-15 1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3-15 20:04   좋아요 1 | URL
제가 쓴 글 때문에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   이벤트 응모 목적으로 쓴 서평/독후감에 대한 저의 주관적인 생각을 솔직하게 밝힌 것뿐입니다. 제가 오래전부터 이벤트용 서평에 대한 잡생각이 많았거든요. 알고 보면 제가 좀 별나요. ㅎㅎㅎ

사실 이런 주제로 공개적으로 대화를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비판 받을 각오하고 제 생각을 풀어봤습니다.

L.SHIN 2016-03-15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복기하다`

저는 이런 표현이 좋아요.
이런 색다른 시선과 사고를 하는 cyrus님이 좋아요.

cyrus 2016-03-16 11:10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엘신님의 댓글 진짜 오랜만에 봅니다. ^^

레삭매냐 2016-03-18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서평대회 당선은 운빨이 아닌가 싶습니다.
심사위원과 어떻게 교신이 돼서 적확하게 원하는 바
를 찌르게 되면 당선되는 게 아닐까 망상해 봅니다.

cyrus 2016-03-19 12:52   좋아요 0 | URL
맞아요.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어요. 서평대회에 참여하면 좋은 결과를 얻는 분을 보면 대단해요. `이 분`이 누구신지 레샥매냐님도 아실 겁니다. 달궁 멤버 중 한 사람이죠. ^^
 

 

 

 

 

 

 

 

 

 

 

 

 

 

 

 

 

 

 

 

 

 

나는 법륜 스님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법구경을 추천하고 싶다. 법구경은 인생에 지침이 될 만큼 좋은 게송(偈頌)들을 모아 엮은 최고(最古)의 경전이다. 스님이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삶의 해법들 대부분은 법구경에 나오는 내용이다. 사실 법구경은 아무나 소화하기 어려운 경전이다. 짧은 잠언에는 비유와 암시가 가득하다. 스님은 법구경의 심오한 지혜를 편안한 언어로 알려준다. 해당 출판사 서평에 보면 《법륜 스님의 행복》을 ‘우리가 알아야 할 총체이자 인생을 사는 데 필요한 지혜의 보물창고’라고 소개했다. 어이없게도 법구경이 ‘의문의 1패’를 당하고 말았다. 출판사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지혜의 보물창고가 존재하고 있는데, 스님의 책을 마치 대단한 책인 것처럼 알렸다. 이래서 출판사 서평의 팔 할은 과장이다.

 

 

 

 

 

 

 

 

 

 

 

 

 

 

 

 

 

 

《법륜 스님의 행복》의 표지를 펼쳐 보면 법구경에 나오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 구절은 행복으로 향하는 길에 대한 스님의 생각을 응축해놓은 것 같다. 나는 이 구절이 어디에 나오는지 법구경 역서를 살펴봤다. 내가 참조한 법구경 역서는 김달진의 《법구경》(김달진 전집 7, 문학동네), 법정 스님의 《진리의 말씀》(이레)과 한명숙의 《법구경》(홍익출판사)이다. 글자 토씨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꼼꼼하게 읽어본 결과, 《법륜 스님의 행복》의 법구경 구절과 비슷한 것이 없었다. 이 구절이 법구경 어디에 나오는지 정말 궁금한데, 달랑 경전 이름만 써있으니 당황스럽다.

 

법구경의 번역본은 두 가지가 있다. 팔리어본과 산스크리트어본이 전해지는데, 현재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역서는 팔리어본을 국역한 것과 한역본을 국역한 것으로 나뉜다. (팔리어는 스리랑카, 미얀마, 타이 등에서 발달한 언어) 두 번역본에 차이가 있다. 팔리어본은 26품 423송(26장 423개의 문장이 있다고 보면 된다)으로 이루어졌고, 한역 법구경은 39품 752송이다. 그리고 글의 배열이 다르고, 원문 해석과 한문 해석을 비교하면 일치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만 가지고 특정 역서가 오역이라고 주장하기 어렵다. 법구경이 널리 애송되면서 유포되는 과정 중에 각각 시대적 정서가 반영된 번역본들이 많이 나왔다. 또는 다른 번역본을 참고하여 가필되면서 일부 문장이 달라졌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스님의 책에 있는 법구경 구절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시간이 조금 걸리지만, 역서를 대조해가면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면 문장의 의미와 비슷한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제12품 애신품(愛身品)에 있는 문장으로 보인다. (김달진은 12품 제목을 ‘기신품’으로 옮겼다) 각각의 인용문들을 한 번 비교해보시라.

 

 

1) 《법륜 스님의 행복》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 《김달진 전집 7 : 법구경》 (김달진 번역, 188)

 

스스로 악을 행해 그 죄를 받고

스스로 선을 행해 그 복을 받는다

죄도 복도 내게 매였으니

누가 그것을 대신해 받으리

 

※ 원문 : 惡自受罪 善自受福 亦各須熟 彼不自代 習善得善 亦如種甛
(악자수죄 선자수복 역각수숙 피불자대 습선득선 역여종첨)

 


3) 《진리의 말씀》 (법정 스님 번역, 92쪽)

 

내가 악행을 하면 스스로 더러워지고
내가 선행을 하면 스스로 깨끗해진다
그러니 깨끗하고 더러움은 내게 달린 것
아무도 나를 깨끗하게 해줄 수 없다

 


4) 《법구경》 (한명숙 번역, 158쪽)

 

악행은 스스로 그 죄를 받고
선행은 스스로 그 복을 받는다.
그 열매는 지은 사람에게서 무르익으니
다른 사람이 자신을 대신할 수 없다.
선행을 하면 선의 열매를 얻으니
또한 달콤한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다.

 

 


 

법륜 스님 책 인용문이 애신품에 있는 구절이 맞으면 원문의 배열을 무시하고 풀어쓴 것이 된다. 출판사는 책의 주제인 행복을 강조하려고 법구경 원문의 ‘善’을 행복으로 옮겨 썼다. 법구경은 부처의 말씀이다. 부처의 진리를 통달하더라도 개인적인 관점에 덧붙여 문장을 해석하면 독자가 경전을 스스로 이해하는 과정에 방해가 된다.

 

 

 

 

 

그래서 ‘善’을 행복의 동일어로 보는 해석이 과연 타당한 건지 의심이 든다. 법구경 공부가 많이 부족한 입장이라서 내 의견을 확실하게 표명하기가 어렵다. 출판사의 문장 해석이 미심쩍지만, 일단 눈 감아 주겠다. 하지만 문장 배열이 달라진 사실을 알리지 않고, 법구경을 인용한 점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법구경을 읽어보지 않은 독자는 문장의 출처를 의심하지 않은 채 ‘법구경에 나오는 문장’이라고 믿는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출처를 알려고 하지 않고, 원문을 변형한 법구경 구절을 열심히 인터넷에 공유한다. 법구경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을 어이없어하면서 바라봤을 것이다.

 

법구경에는 우리 삶에 비추는 거울이 되어 줄 좋은 문장이 많다. 그래서 문장 인용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법구경은 아주 매력이 넘치는 텍스트다. 글 쓰는 식자들은 자신의 문장을 세련된 모습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잘 안 읽는 법구경 같은 텍스트의 문장을 인용한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법구경 한 권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으면서 문장을 인용하는 건 자신을 속이는 일이며 자신의 무지함을 공개하는 것이다. 법구경 원문을 제멋대로 해석한 문장을 인터넷에서 수집해서 마치 법구경을 읽고 이해한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에게 식자라는 호칭이 아깝다. 그들은 식자가 아니라 아는 척하는 무식한 자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곰생각하는발 2016-03-13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저는 이 표현에 반감이 드네요...
불행은 내가 만들지만
행복은 반드시 내 스스로 100%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좋은 사회 시스템이 덧대어서 행복을 만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끄적였슴돠..

cyrus 2016-03-14 08:19   좋아요 0 | URL
법구경의 문장은 한 번 봐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문장입니다. 그리고 어떤 문장은 현실과 맞지 않는 것도 있어요.

어제 법구경을 다시 살펴봤습니다. 법륜스님이 인용한 문장을 찾지 못했습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행복으로 시작되는 문장이 단 한 개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인용한 문장의 정체가 의심됩니다. 그런데도 스님의 책을 읽은 독자들이 서평을 작성할 때 문제의 문장을 재인용하고 있어요. 법구경이 어떤 책인지 모른 채 좋은 말이라고 인용하고 있는 셈이죠.

양철나무꾼 2016-03-13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저 글씨 님이 쓰신 건줄 알고 반가워서 헐레벌떡 달려왔는데...법륜스님 필체란 말이죠?

오랜 수도 생활을 하신 스님의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 평이해서 말이지요~!

고전을 공부하다 보면, 원본과는 전혀 달라서 출처를 의심하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순서가 바뀌거나 가감 정도는 애교로 봐주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고 있던 차에 님의 문제제시 반갑습니다, 꾸벅~(__)

cyrus 2016-03-14 08:25   좋아요 0 | URL
진짜 스님이 쓴 건지 아니면 책을 만든 출판사가 문장을 넣은 건지 모르겠어요. 스님의 친필 사인이 있어서 일단 스님이 쓴 걸로 생각했어요.

법구경을 여러 번 훑어봤는데 스님의 책에 있는 문장이 없었습니다. 원문을 살짝 고쳤거나 아예 법구경에 없는 문장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법구경은 `부처가 남긴 진리의 말씀`입니다. 번역자가 자신의 관점으로 해석하면 법구경 원래 의미를 왜곡할 수 있습니다. 법구경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밝히면 되는데 달랑 경전 이름만 적혀 있어서 문장의 정체가 의심됩니다.

표맥(漂麥) 2016-03-13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법구경은 정말 권할만한 책이라 생각합니다.
종교에 걸림이 없는 분, 아니 걸림이 있어도 한번쯤 읽기를 권하는... 그런 느낌의 책 입니다...^^

cyrus 2016-03-14 08:26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저는 무교인데도 어렵고 생각할 기회를 많이 주는 경전을 좋아합니다. ^^

빨강앙마 2016-03-16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정말 이해가 어려운 말들이 너무 많아서... 쉽진 않더라구요^^;;

cyrus 2016-03-16 12:46   좋아요 0 | URL
맞아요. 경전을 읽다 보면 앞에 있는 문장과 뒤에 나온 문장이 서로 모순되는 것도 있어요. 한 번만에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워요.

법정 스님의 《진리의 말씀》은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문 해석과 약간 차이가 있어요.
 
법륜 스님의 행복 - 행복해지고 싶지만 길을 몰라 헤매는 당신에게
법륜 지음, 최승미 그림 / 나무의마음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이 밥 먹여주랴.” 이 한마디면 누구나 할 말이 없다. 여기서 책에 대한 냉소적인 힐난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책에서 행복의 비결을 찾으려고 했다가 실망해 본 사람에게 이 말 한마디 해주고 싶다. “그래, 밥 먹여준다.” 책을 읽고 나서 깨달음이 퍼뜩 떠오른 경험 있는 독자라면 자신 있게 대답해야 한다. 행복해지고 싶은 인생길을 찾는 것. 누구나 고민해본 적 있는 심오한 문제다. 사람들은 《법륜 스님의 행복》(약칭 ‘스님의 행복’)이 어려운 고민을 해결해주는 책이라고 믿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행복해졌다는 사람이 있다면 나도 할 말이 없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사람의 뒤통수를 치고 싶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문법상 명사지만, 현실에선 동사에 가깝다. 행복을 글로 배운다고 해서 완전히 내 삶의 기쁨이 충만하기 어렵다. 행복을 글로 배우는 것과 정말 행복해지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한 것은 서로 엄연히 다른 경우다. 행복하기 위한 방법은 삶의 과정 또는 행위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스님의 행복》을 읽은 독자는 자신의 서평에 책 속에 있는 가르침을 가슴에 끌어안은 채 눈물을 흘렸고, 드디어 해답을 찾았다고 썼다. 그 독자는 수행자도 이루지 못한 깨달음을 불과 며칠 만에 알았으니 스님을 죽이는 일만 남았다. <임제록>에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달마를 만나면 달마를 죽여라’는 그 유명한 말이 있지 않은가. 이제 스스로 자기 삶을 다스리면 된다. 그런데 마음으로만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부처의 실체를 만나지 못한다. 즉 진정한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이러면 힘든 현실 앞에서 가슴이 답답함을 호소한다. 이러면 스님의 말씀이 별 의미가 없어진다.

 

스님은 인생에 정답이 없으므로 자기가 선택한 대로 사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스님의 명성을 믿고 이 책이 인생을 유익하게 해주는 정답이라고 믿으면 크나큰 오산이다. 스님의 가르침이 무조건 옳고 실천해야 한다고 볼 수 없다. 스님의 말씀도 자유로운 사유의 길을 막아버리는 편견과 구속의 벽이 되기도 한다. 나는 과거의 불행했던 기억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스님의 조언을 수긍하지 않는다. 스님은 고통스러운 삶의 한 장면을 그냥 지나가야 할 과거로 생각하고, 현재에만 집중하라고 말한다. 과거의 나쁜 기억을 계속 안으면 자신만 더 괴로워진다. 그래서 스님은 자신에게 불행의 씨앗을 안겨준 사람의 심정을 헤아려보면서 그동안 쌓인 원망의 짐을 내려놓으라고 조언한다. 나를 괴롭힌 가해자가 반성한다면 갈등 관계를 청산할 용의가 있다. 그렇지만 가해자가 일말의 반성도 없다거나 자신의 죄를 모르는 척하는 안하무인으로 행동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 상황에서 피해자가 가해자의 심정을 헤아리고 그를 용서하는 것은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양보하는 태도처럼 느껴진다. 오히려 피해자의 마음에 상처가 덧날 수 있다. 나쁜 기억을 스스로 내려놓으려는 의도는 좋다. 하지만 스님은 상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간단하다고 말한다. 고통의 짐이 너무나도 많으면 레테의 강 속으로 던져버리기가 쉽지 않다.

 

스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님의 행복》을 읽은 독자들까지 지적하는 나의 까칠한 태도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당연히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내 생각의 허점을 알려줘도 좋다. 그런데 다름을 인정하지 못한 사람은 내 생각을 비난한다. 불만이 있어도 제발 그러지 마시라. 스님이 말씀하셨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자고. 우리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스님의 보호 속에서 내 행복을 쌓을 이유가 없다. 법륜 스님을 만나면 그를 죽여라!

 

 

 

 

※ 서평대회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3-12 1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12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한엄마 2016-03-12 18:5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16-03-13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집에 이 책 있는데, 읽어봐야겠네요.^^
cyrus님, 좋은 저녁 되세요.
오늘도 퀴즈 준비합니다.^^

cyrus 2016-03-13 14:50   좋아요 1 | URL
왜 평소와 다르게 비밀댓글을 달았습니까? ^^;;

서니데이 2016-03-13 15:00   좋아요 0 | URL
쓰다 잘못 눌렀나봅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2016-03-12 2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3-13 14:53   좋아요 0 | URL
종교인, 선생님도 카운슬러가 되어야하는 세상이죠.

2016-03-13 2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14 0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6-03-13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제목 보고 놀랐어요. ^^
하지만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경험도 사고방식도 나이도 성별도 처한 환경도 다르며, 자신만의 과정에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글이예요. 사이러스님의 요즘 글, 참 좋네요.

제 의견으로는
과거의 나쁜 기억을 과거로 여기고 현재에 집중하라는 의미가
가해자로 인해 더 이상 영향받지 않는 삶을 살라는 의미로 해석되었어요.
피해를 입은 것도 억울하고 화나는데, 현재도 얽매여서 연연하면서 자신의 삶을 망쳐버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으니까, 그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닐까 싶구요. 하지만 화가 나는 건 사실이니까요!

말처럼 쉽나요, 어디.
시간이 필요하더군요, 저는. 그리고 아직도
미운 사람이 있어요. ㅎㅎ.

cyrus 2016-03-14 08:4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단시간 내에 잊고 해결하기가 어려워요. 스님의 책의 독자서평에 보면 스님의 글을 읽고난 뒤에 마음이 편해졌다는 식으로 쓰던데 저는 이런 표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법구경에는 우리 삶이 괴로움의 연속이라고 적혀 있어요. 스님의 책을 살다가 힘들 때 읽는 구급 비상약처럼 읽을 수가 없어요. 행복하기 위한 방법은 너무나도 어렵고, 정답이 엄청 많아요. 스님의 가르침만 믿고 의지하는 방법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상황에 따라서 행복하기 위한 방법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거기에 맞춰서 능동적으로 자신이 직접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을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싶어서 좀 과한 표현을 쓰게 되었습니다. ^^;;

JK 2016-03-14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엔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끌어안고 가는 사람들이 드문것 같아요. 외부에 의존하려하고. 그만큼 세상사는게 힘들다는 거겠죠.

cyrus 2016-03-14 12:55   좋아요 0 | URL
사회가 각 사회구성원이 겪는 문제의 고통을 경감해주면 되는데 그 기능이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레삭매냐 2016-03-18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무지 쎕니다 :> 모쪼록 좋은 결과 기대하겠습니다.

cyrus 2016-03-19 12:54   좋아요 0 | URL
제 글이 심사위원의 눈에 띄기 위해서 일부러 과감한 제목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내용이 더 과격해서 입상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역사를 공부할 때 흔한 오해 중 하나는 역사가 반복된다는 믿음이다. 반복될 수가 없다. 실제로 역사가 그렇게 진행된다면 역사가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예측하게 된다. 역사가들이 지난 경험을 아무리 잘 알아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전혀 예측하지 못한다. 지난 역사 경험을 들여다보면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고 사회는 대개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이해하는 수준이다. 그러니까 역사는 예측하기 위한 학문이 아니라 해석을 할 뿐이다.

 

역사에 어떤 명확한 방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공식적인 과거라는 틀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인류 각자는 특정한 경제 정치 질서에 의해 지배받는 세계 속으로 태어난다. 그 결과, 인류는 태어날 때부터 접한 주변의 현실을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사람들은 지금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유일하게 가능하고 우월한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특히 유럽인들은 먼 옛날부터 자신들만이 가진 합리성과 과학기술 등 특유의 능력으로 인류역사를 이끌어 오고, ‘세계의 중심역할을 해왔다고 믿었다. 그러다 보니 과거의 손아귀에 잡힌 유럽 학자들은 아시아나 아프리카 대륙 국가들이 유럽의 방식을 습득하여 근대화로 향하는 열차에 뒤늦게 탑승했다고 주장한다.

 

 

 

 

 

 

 

 

 

 

 

 

 

 

 

 

 

 

최근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로부터 유발 하라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가 쓴 사피엔스는 인류가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과정을 되짚어간다. 유발 하라리는 이 책을 통해 인류가 어떻게 지구를 지배하게 됐는지, 역사의 심층적 구조를 체계적으로 증명한다. 하지만 그도 기존 세계사 해석을 지배한 유럽중심주의 장벽을 완전히 넘어서지 못했다.

 

유발 하라리는 인류 역사의 경로를 결정지은 세 가지 중요한 사건으로 인지 혁명과 농업 혁명, 과학 혁명을 꼽았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눈여겨 본 사건은 과학혁명이다. 과학, 자본주의 그리고 제국주의, 이 세 가지 요소가 자본주의를 움직이게 한 엔진으로 봤다. 다시 말하자면, 경제가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제국의 확장과 과학의 발견 덕분이라는 것이다. 즉 근대 과학의 발달이 유럽 제국의 성장과 함께 진행되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유발 하라리는 근대 과학이 고대 그리스, 중국, 이슬람 등 고대 과학 전통에 빚을 진다는 점을 밝혔지만, 근대 과학 발전에 이바지한 세력은 유럽 제국을 지배한 지적 엘리트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유럽 제국의 엘리트들이 피지배 민족을 지배하는 동안 이들에게 진보의 혜택을 가져다주었다고 말한다. 유발 하라리는 이러한 주장을 바탕으로 제국이 발달하는 과정을 하나의 주기로 만들어서 정리했다.

 

 

작은 집단이 큰 제국을 건설한다 제국 문화 구축 제국 문화가 피지배 민족에게 받아들여진다 피지배 민족이 공통의 제국적 가치의 이름으로 동일한 지위를 요구한다 제국을 설립한 자들이 지배력을 잃는다 피지배 민족이 스스로 채택한(받아들인) 제국 문화를 계속 발전시킨다. (사피엔스290)

 

 

그의 주장에 대해서 유럽중심주의 역사관에 반기를 든 학자들이 반박할 수 있다. 유럽 제국주의자들이 근대화의 수호자를 자처하면서 피지배 민족의 침략과 억압을 정당화한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발전과 안전을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었다.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비판을 예상했다. 그 또한 비판점을 이해했다. 그가 제국주의자들이 주도한 과학혁명의 어두운 그늘을 쿨하게 인정하고 심도 있게 비판했더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억지스러운 논리를 내세워가면서 자신의 주장을 보호하려고 애쓴다. 피지배 민족들이 서구가 물려준 지적 유산을 자신의 필요에 맞춰서 변형해왔으니 과학혁명을 이끈 유럽 제국주의자들에게 선과 악으로 간단하게 딱지를 붙여가면서 평가하지 말자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면 유발 하라리 본인의 의도와 다르게 유럽 제국주의자들의 세계 지배를 정당화하는 꼴이 된다. 유발 하라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제국주의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말았다.

 

 

 

 

 

 

 

 

 

 

 

 

 

 

 

 

 

 

 

유발 하라리는 분명히 유럽중심주의 역사관의 문제점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오래된 역사의 손아귀에 잡혀있었기 때문에 그런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우리 또한 알게 모르게 유럽 학자들이 발명한 유럽중심주의에 세뇌당하고 있다. 비유럽 관점에 벗어난 시각으로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면 유발 하라리의 주장의 허점이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이미 안드레 군더 프랑크, 로버트 B. 마르크스 등 여러 학자들이 세계적 관점(global view)으로 유럽중심주의가 왜 신화이자 허구인지 조목조목 비판했다. 안드레 군더 프랑크는 유럽인들이 금과 은을 확보하면서부터 세계의 주도권을 갖기 시작했고, 19세기에 들어서자 드디어 식민지까지 가지게 되는 대박을 터뜨렸다고 주장한다. 유럽인들이 대박을 터뜨리기 전에는 아시아가 세계무대의 중심이었다. 로버트 B. 마르크스 역시 프랑크의 주장과 동일하다. 서양이 동양을 앞선 것은 겨우 200여 년 전의 일이다. 인도, 중국은 1400년대만 해도 유럽보다 월등한 경제 수준을 유지했고, 유럽이 이들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일 뿐이다. 유럽의 땅에는 석탄이 많이 매장되었고, 이를 통해 산업기술 능력을 확보하여 산업혁명을 이룰 수 있었다. 여기에 탄력받은 유럽은 고귀한 제국주의자로 변신하여 한순간에 동양보다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비유럽중심주의 역사관은 세계사의 정전(正典)에 억눌린 자들의 시선으로 전복하려 한다는 점에서 인정받을 만하나, 지구의 새로운 주인으로 아시아나 제3세계를 주목하고 예측하는 주장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나 또한 서양이 아닌 국가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역사가들의 낙관을 완전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역사를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학문이 아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최고의 책이라는 호들갑스러운 호평을 받고 있는 상황이 의아스럽다. 그 책 속에 제국주의자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던 논리의 흔적이 남아 있음에도 이를 문제 삼은 학자나 서평을 보기가 어렵다. 사실 일본의 식민 제국주의를 겪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제국은 불편하고 논란이 많은 주제다. 서양 헤게모니를 진리처럼 떠받드는 자세를 경계하고, 낯선 관점에서 역사를 다시 읽는 시도가 필요하다

 

 

 


댓글(22)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6-03-10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많이 읽는 모양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오늘 바람불고 날이 많이 추웠습니다.
cyrus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cyrus 2016-03-10 20:49   좋아요 1 | URL
제가 사는 지역이 남부라서 그런지 바람이 차도, 많이 춥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저녁에는 진짜 추웠습니다. 제발 이번 주 추위가 마지막 꽃샘추위였으면 좋겠습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 ^^

시이소오 2016-03-10 22: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마치 영국의 인도 지배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이 저도 좀 거슬리긴 했습니다. 고진의 구분에 따르면 하라리가 말한 제국은 엄격히 따지면 제국주의겠죠.
인도같은 경우엔 제국주의에 대한 반감보다 카스트제도에 대한 반감이 크지 않았을까 해석되네요. 왜냐하면 하라리는 역사의 필연성을 거부하고 있거든요. 호모사피엔스는 다른 종들을 멸종사켜왔고 과학혁명기에 강대국과 가진자들은 약소국과 없는자들을 착취해왔으며 이제 사피엔스는 자신들마저 멸절시킬 위기에 봉착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라고 이해했거든요.
아무튼 날카로운 지적이십니다^^

cyrus 2016-03-10 23:11   좋아요 1 | URL
시이소오님이 《사피엔스》의 내용을 이해한 점은 저와 비슷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과학혁명을 설명하는 부분이 조금 걸리긴 합니다. 저자가 애매하게 주장만 하지 않았으면 별점 네 개, 다섯 개를 부여했었을 겁니다.

 《사피엔스》를 읽었거나 독자서평을 남긴 분 중에 저의 해석에 대한 비판을 해주길 은근히 바랐는데, 반응이 저조하네요. 내일 다시 《사피엔스》를 읽어보면서 제가 쓴 글을 재검토해봐야겠습니다. 책을 읽으신 분 중 유일하게 댓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빨강앙마 2016-03-11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 님 남부쪽이시군요..오호~ 어디신진 모르지만..저도 따닷한 이 아래쪽인지라 반갑네요^^
이 책 제목은 들어봤는데..흠.. 과연 읽고 제가 이해를 할 수 있을지 엄두가 안나네요^^

cyrus 2016-03-11 17:30   좋아요 0 | URL
제가 어디 사는지 알면 깜짝 놀랄걸요. 힌트를 살짝 알려드리자면, 제가 사는 곳이 그네공주님을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입니다.

어려운 내용은 없습니다. 인류 초기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를 소개하는 책이예요. ^^

페크pek0501 2016-03-11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역사에 관한 책만 본 적이 있었는데 요즘은 읽게 되지 않네요.
요즘은 다른 분야에 관심 있어요.
언젠가는 역사에 꼭 도전해 볼 테예요.

긴 페이퍼인 줄 알고 글자를 크게 확대해 읽었는데 금방 읽었네요.
술술 읽혀서인가, 하고 생각했네요. ㅋ


cyrus 2016-03-11 17:33   좋아요 0 | URL
페크님. 제가 요즘 A4 용지 1장 반 정도로 글의 분량을 잡고 쓰는 중입니다. 몇 년 전에 쓴 제가 썼던 글들과 비교하면 많이 줄어든 겁니다. 최근에 서평대회 참여하려고 열심히 글 한 편 썼는데 그건 분량이 A4 용지 2장 채웠습니다. 예전에는 2장 반까지 쓴 적이 많았습니다. ^^

간서치 2016-03-11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지 않은 분야의책을.. 많이 읽으시는 님 덕분에 읽고 싶은 책이 한권 더 늘었네요.. 아.. 이 편식쟁이에 게으름쟁이가 반성을 또 하네요 ㅋㅋ

cyrus 2016-03-12 12:03   좋아요 0 | URL
저도 편식 독서가 심합니다. 호기심이 너무 많아서 한 분야의 책들을 깊이 읽지 못한 상태입니다. ^^

책한엄마 2016-03-12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다시 cyrus님 글 읽어야 겠어요.제 여덟단어 책 리뷰가 페이퍼로 되어 어쩔 수 없이 다시 글을 썼어요.그래서 예전 글을 지워 귀한 cyrus님 글이 지워졌어요.죄송합니다.ㅠㅠ

cyrus 2016-03-12 12:05   좋아요 1 | URL
사과하지 않아도 됩니다. 괜찮습니다. ^^

《사피엔스》 읽어보고, 제 글의 논리가 허점이 있거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댓글로 알려주세요.

단발머리 2016-03-12 12: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리뷰 잘 읽었습니다. 지금 방금 cyrus님 답글에 답글달고 왔어요.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네요.ㅎㅎㅎ

궁금한 점이 있어요. 제가 지금 책이 없어서.... 저는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거든요. 정확히 확인이 안 되는 점을 이해해 주세요.

1. 근대에서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이유와 배경에 대한 것과 대제국의 건설에 대한 부분은 연관성이 적은 것으로.... 저는, 그렇게 이해했어요. 지금 책이 없어서 정확히는 모르겠는대요....

유럽이 과학과 자본주의 그리고 제국주의를 통해 세계 제패가 가능했다고 보는 견해에 대해서는 다양한 판단이 있을 수 있지만, 대제국의 설립 및 건설 부분은 로마 혹은 페르시아 제국등의 다른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봤어요. 유럽의 경우도 하나의 예가 될수는 있지만 두 가지가 직접적으로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저는 느슨하게 봤거든요.

2. 저는 유럽의 세계 제패에 대해서는 이 부분에 밑줄을 그었어요.

˝유럽인들이 이례적인 점은 탐험과 정복의 야망이 어느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이 탐욕스러웠다는 데 있다.˝

제가 보고 싶은 부분이 더 크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어요. 저는 돈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 자본주의에 대한 맹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무한대의 탐욕이 유럽인의 세계 제패를 가능하게 한 가장 주요한 요인으로 보았거든요. 그들의 체제보다는 그들의 욕망이요.



cyrus 2016-03-12 13:32   좋아요 1 | URL
저도 《사피엔스》를 도서관에서 읽었던 터라 일단 제가 따로 메모한 내용을 근거로 설명하겠습니다. 잘못되었거나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

1. 유발 하라리의 관점(`제국의 주기`)대로 고대 로마 제국와 페르시아 제국의 등장과 전성기를 해석하면 피지배 민족보다 우월한 제국문화의 형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유럽 또한 제국의 주기 사이클에 따라서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고 설명합니다.

 * 키루스는 전 세계를 지배한다고 주장했을 뿐 아니라 이것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페르시아인들은 ˝우리가 너희를 정복하는 것은 너희를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키루스는 복속당한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기를 바랐으며, 페르시아의 신민이 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하기를 원했다. (280쪽)

* 근대 유럽인들은 지구의 많은 지역을 정복하면서 우월한 서구 문화를 전파한다는 것을 구실로 삼았다. 이들은 워낙 성공했기에,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그 문화의 상당 부분을 점차 받아들였다. 20세기에 서구의 가치를 받아들인 지역의 집단들은 바로 이런 가치의 이름 아래 유럽 정복자들과 동등한 대우를 요구했다. 수많은 반식민지 투쟁이 민족자결, 사회주의, 인권의 기치 아래 벌어졌다. 이런 가치들은 서구의 유산이다. 오늘날 인도, 아프리카, 중국 사람들은 예전에 자신들을 지배했던 서구 군주의 제국 문화에서 많은 것을 받아들이고 이를 자신의 필요와 전통에 맞춰 변형시키려 노력해왔다. (289~290쪽)

저는 이 내용에서 유럽중심주의 역사관과 유사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단발머리님의 생각과 다르게 대제국의 건설 과정과 유럽이 세계를 재패하는 과정을 연관성이 있다고 해석습니다.

2. 로버트 B. 마르크스의 책 《어떻게 세계는 서양이 주도하게 되었는가》에 보면 유럽이 야망을 크게 가진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1400년대에 유럽의 세력은 미미했습니다. 이 시기 무역업에 적극적이었던 나라가 오스만 제국과 아프리카에 위치한 제국들이었습니다. 특히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을 때 유럽은 무역로가 막혀버렸습니다. 유럽 입장에서는 세계의 주류에 뒤처질 뻔한 위기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정복에 대한 욕망이 크게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alummii 2016-03-25 2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cyrus 님의 날카로운 리뷰를 좋아합니다 ㅎㅎ

cyrus 2016-06-21 19:42   좋아요 1 | URL
댓글 지금 확인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훌라댄서 2016-06-21 04: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에 동의합니다. 재미는 있었지만 참으로 불편하고 힘든 책이었어요.

cyrus 2016-06-21 19:43   좋아요 1 | URL
책을 비판하는 내용의 서평이 많이 나오길 바랐는데 생각보다 보이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북프리쿠키 2016-07-17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 독서모임 선정책인데 다 읽고 제가 어떤식으로 토론할지 기대됩니다!!

cyrus 2016-07-17 12:30   좋아요 1 | URL
토론할 때 나온 내용들을 소개해주시면 읽어보겠습니다. ^^

아찌언니 2017-06-06 0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또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읽지 않았습니다 한때 글로벌트랜드였던 마이클센더스 그리고 김영사의 치밀하고얕밉기까지했던마케팅 이둘다 싫어서요ㅋ 유발 하발리 테드영상 보면서 책을 읽을지 말지 하다 마치 웅변대회나고 말쏨씨 뽑내는 모냥새가 싫어 읽지않기로다짐했고 여태까지 지키고 있네요 그 약속ㅋ 다들찬양하는 이 작가 저는 글쓴이가 언급한것처럼 유럽중심사고방식가진그냥 백인우월주의사상을기베이스로깔고 양념해놓은 책 싫증나고 가증스러워서 안읽잘햇다고 생각햇네요 글이 너무 신박하고 산란하고 까는 포인트들이 아주 좋습니다 ^^

cyrus 2017-06-07 08:39   좋아요 1 | URL
《사피엔스》에 유럽중심주의의 흔적이 남아 있어도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가 책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본다면 문제가 없어요. 비판적인 독서가 가능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