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미술 -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모든 것의 시각 자료집
S. 엘리자베스 지음, 박찬원 옮김 / 미술문화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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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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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장막을 걷어라.

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더 보자.

 

접어드는 초저녁

누워 공상에 들어 생각에 도취했소.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 한대수 행복의 나라(1974) 노랫말 일부 -



사진은 1977년에 재발매된 한대수 1<멀고 먼 길> 앨범 앞표지다.





상상화는 그리기 쉽다. 내 생각과 상상한 것을 그대로 그리면 된다. 어떻게 보면 상상화는 꾸밈이 전혀 없는 솔직한 그림이다. 하지만 완성된 상상화는 온통 검다. 알록달록하게 색칠해도 상상화는 까맣다.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상상화는 어두컴컴하다. 상상화를 그린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그렸는지 잘 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도대체 뭘 그린 거야?” 그들은 깜깜한 상상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눈앞이 깜깜하기만 하다.


비현실적인 상상화는 이상하고두렵고불쾌하고난해하다이해하기 힘든 상상화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까만 상상화가 낯선 사람들은 상상화를 그린 사람의 내면과 정신세계를 의심한다. 아름다움을 찾을 수 없는 상상화는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지 못한다우리 눈은 실물과 실체를 보는 것에 익숙하다익숙하지 않은 것이 시야에 들어오면 눈동자가 좁아지면서 저절로 눈꺼풀이 감긴다그래서 상상화가 항상 까맣게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창문으로 비유한다. 그러나 우리 눈은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세상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상하다고 느낀 물체나 존재에 거부감을 느낀다. 보기 좋고, 친숙한 세상만 보려고 하는 눈은 항상 열려 있는 창문이 아니라 장막이다.

 

상상화의 매력을 모르는 사람은 환상의 미술: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모든 것의 시각 자료집검은 책으로만 보일 뿐이다. 반대로 상상력이 흘러넘치는 사람은 이 책이 깊고 광활한 검푸른 바다로 보인다. 그들은 공상에 취한 상태다. 익숙해서 지루한 일상을 잠시 잊어버리고 환상의 검푸른 바다로 풍덩 뛰어든다환상의 미술솔직 과감한 상상화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장막을 걷어내는 책이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오컬트, 죽음, 공포와 같은 어둡고 음산한 주제로 한 예술 작품을 좋아한다


바다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준비 운동을 해야 한다. 몸이 물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환상의 바다는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곳에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먹고 자란 괴물이 득시글거린다. 환상의 바다를 처음으로 유영하는 사람들은 잠자는 예술가들이 세운 드림랜드를 헤맨다상상하는 일을 시간 낭비로 여기는 사람이 환상의 바다로 무턱대고 뛰어들면 눈동자가 깜짝 놀라서 갑자기 눈이 감겨버린다. 환상의 바다로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에 눈 풀기 독서를 해야 한다상상력이 부족하면 눈이 뻑뻑해진다. 이미 출간된 저자의 또 다른 책들, 오컬트 미술: 현대의 신비주의자를 위한 시각 자료집》(하지은 옮김, 미술문화, 2022년)어둠의 미술: 무섭고 기괴하며 섬뜩한 시각 자료집》(박찬원 옮김, 미술문화, 2023년)은 환상의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데 필요한 상상력을 한껏 끌어 올려준다.


상상하는 것은 현실에서 도피하는 행위가 아니다. 새로운 현실을 확장하는 일이다. 상상하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혁신적인 일이 아니다. 기존의 유를 새로운 유로 바꾸는 일이다. 상상하면서 환상의 세계를 그리는 예술가들은 개방된 세계를 묘사한다. 개방된 세계는 현실적인 것과 비현실적인 것, 과거와 현재, 아름다움과 추함, 인간과 비인간이 혼재되어 있다개방된 세계에서는 어떠한 제한도 없이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 상상력은 이상하고, 환영받지 못한 사물과 존재를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상상력이 충만한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는다. 예술가에게 상상력이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잊게 만드는 담력이다.







<cyrus의 주석>

 



* 13

 




 느릿느릿 걷고 힘이 센 퉁명스러운 성격의 외눈박이 거인, 장난스럽고 심술궂은 마법을 부리는 반짝반짝 날개 달린 자그마한 존재, 빛을 발하는 뿔이 달린 말을 닮은 짐승, 그 외에도 인어, 미노타우로스, , 난쟁이, 스핑크스, 사티로스, 백조 아저씨[주1], 잠 귀신! 키클롭스의 흙투성이 동굴에서부터 버섯들이 빚어낸 요정의 반지, 그리고 세상의 끝 어두운 숲에 숨겨진 마지막 유니콘까지. 모든 문화에는 환상적인 생명체에 관한 신나는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원문]


 Lumbering one-eyed giants with surly personalities and prodigious strength; diminutive, winged beings twinkling with magic both mischievous and malicious; luminous equine beasts with shimmering horns, elusive and rare. Mermaids and minotaurs, dragons and dwarves! Sphinxes, satyrs, swan maidens and even the Sandman from the Cyclops’ dusty cave to the mushroom-spotted faerie rings to the last unicorn hidden in a dark wood at the end of the world, there are clamouring, tales of fantastical creatures to be found in every nook and cranny of every culture.

   


[1] 백조 아저씨는 오역이다. ‘maiden’처녀, 아가씨를 뜻한다. 백조 처녀(Swan maiden)’ 전설은 우리나라의 민담 선녀와 나무꾼과 비슷하다. 하늘에 내려온 백조가 여자의 모습으로 목욕하고 있었는데, 이를 훔쳐본 남자는 백조의 깃옷을 감춘다. 여자는 원래 백조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자의 아내가 된다.





* 47

 




 보리아 삭스는 상상의 동물: 괴물, 불가사의, 인간(2013)에서 모든 유인원에는 설인이 어느 정도 들어 있고, 모든 말에도 페가수스가 조금 들어 있다. 남성과 여성은 천사 같은 면도 있고 악마 같은 면도 있다. 켄타우로스, 늑대 인간, 마법사 맨드레이크[2], 스핑크스 같은 면도 있다라고 쓴다.

 


[2] 맨드레이크(mandrake)는 전설에 묘사된 식물 이름이다. 전설에 따르면 교수형을 당한 사람의 몸에 나온 정액에서 피어난다. 맨드레이크의 뿌리는 사람 형상과 닮았다. 맨드레이크를 뽑으면 뿌리가 비명을 지른다. 이 비명을 들은 사람은 미치거나 죽는다. 맨드레이크는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에 나온다. 맨드레이크는 중세 시대 마법사들이 마법의 약을 제조할 때 사용한 약초였다. 식물 이름이 아니라면 필 데이비스(Phil Davis)와 프레드 프레드릭스(Fred Fredericks)의 만화 <마술사 맨드레이크>(Mandrake the Magician, 1934년부터 2013년까지 연재)에 나오는 동명의 주인공 이름일 수 있다. 원서에 ‘mandrake’라고 적혀 있는데 맨드레이크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전자의 의미에 가깝다.






* 72~73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무의식에 관한 20세기 이론은 경계를 허무는 초현실주의자들에게 특히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새로운 현대 신화를 추구하는 가운데 괴물 같은 기괴함을 포옹하여 강렬하고도 불안한 이미지를 만들어 냈으며, 꿈과 악몽에서 영감을 얻어 대체 현실의 끔찍한 장면이 연상되는 광경을 그려냈다.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 파블로 피카소와 같은 선구자들은 악마와 유령으로 구성된 어둡고 환상적인 동물원을 창조했는데, 그것은 인종차별주의, 민족주의의 너무나도 현실적인 위협과 파시즘의 폭력을 상징하였다. [3]




[3]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는 온갖 기행을 일삼은 괴짜로 유명하다. 달리는 히틀러(Adolf Hitler)를 찬양했는데 그 일이 문제가 되어 초현실주의자 그룹에 제명당했다.





* 111

 





J. J. 그랜드빌 J. J. 그랑빌(Grandville)






* 143


 





 『백설 공주이야기를 소름 끼치도록 뒤틀린 반전으로 재해석한 닐 게이먼의 단편 , 얼음, 사과[주4]는 공주와 계모를 경쟁 관계로 보고, 실제로는 그리 사악하지 않은 여왕이 뱀파이어 같은 의붓딸 때문에 공포에 질려 이 괴물로부터 왕국을 구하기 위해 애쓴다는 내용이다.

 


[주4] 1995년에 발표된 닐 게이먼(Neil Gaiman)의 단편 소설 원제는 ‘Snow, Glass, Apples’. 소설의 모티프는 그림 동화집(Grimm’s Fairy Tales)에 실린 백설 공주. 게이먼의 단편 소설 제목의 ‘Glass’는 원작 동화 속 계모가 소유했던 말하는 거울을 상징한다. 따라서 소설 제목은 , 거울, 사과. 이 소설은 닐 게이먼 베스트 컬렉션(정지현 옮김, 하빌리스, 2023)에 수록되어 있다.






* 203

 




 만일 타임머신이 있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가? 선사시대를 목적지로 해서 트리케라톱스와 익룡과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티렉스에게 잡아먹히기 전에 돌아오고 싶은가? [주5]



[주5] 타임머신이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기계라는 사실을 잠시 제쳐두고, 똑똑한 타임머신이 실용화된 세계에 살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공룡을 만나고 싶으면 타임머신에 선사시대로 가자고 부탁하면 안 된다. 만약 타임머신이 당신의 부탁을 들어준다면 그 기계는 정품이 아니다. 정품이 아닌 타임머신을 타다간 짝퉁 과거로 가거나 현재로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 선사시대에 가면 공룡을 볼 수 없다. 공룡은 이미 멸종되어 사라졌고, 그 대신에 두 발로 걷는 인류의 조상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의 조상님들을 만나 보고 싶으면 목적지를 선사시대로 하면 되고, 트리케라톱스와 티라노사우루스를 보려면 백악기로 가면 된다.





* 더 읽어보기, 236

 

Dinotopia: A Land Apart from Time, James Gurney, 1992 [주6]

 

Fairs and Elves(The Enchanted World), Colin Tuubron, 1984

Wizards and Witches(The Enchanted World), Brendan Lehane, 1984 [주7]

 

Fantasy, The Literature of Subversion, Dr Rosemary Jackson, 2008. [주8]



[주6] 1993년에 다이노토피아: 공룡 나라 여행(오경아 옮김, 디자인하우스)이라는 제목의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주7] 분홍개구리라는 출판사가 총 아홉 권으로 이루어진 <인챈티드 월드>(Enchanted World) 시리즈를 번역 출간했다. ‘Fairs and Elves’의 국역본 제목은 요람을 흔드는 요정(박종윤 옮김, 2005)이다. <인챈티드 월드> 시리즈 전권 모두 절판되었다.

 

[주8] 로즈마리 잭슨(Rosemary Jackson)의 저서 <Fantasy: The Literature of Subversion>1981년에 출간되었다. 국역본 제목은 환상성: 전복의 문학(서강여성문학연구회 옮김, 문학동네, 2001)이다. 현재 절판되었다.





* 책 뒤표지

 






이 책에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de Goya)의 그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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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4-02-23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울과 얼음의 차이는 많이 나는데^^;;

살바도르 달리 하면 ‘숟가락? 스푼과 낮잠‘ 일화가 압도적이어서 그것만 떠오르는데 히틀러랑 얽힌 사연도 있군요

cyrus님 어떻게 이런 고퀄 분석을 하실수가요. 번역가분들이 cyrus님 모셔서 강의하실 기회를 만들어주셔도 진짜 유익할 것 같아요^^

cyrus 2024-02-26 06:29   좋아요 1 | URL
달리의 작품 중에 <히틀러의 수수께끼>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어요. 그림을 보면 왜 저런 제목을 붙인 건지 알 수 없어요... ㅎㅎㅎ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전문가들 앞에서 가르칠 수준은 아니에요. ^^;;

감은빛 2024-02-27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그런데 알라딘에서 글 쓰면서 어떻게 이렇게 이미지들을 깔끔하게 예쁘게 넣으신 건가요? 저는 이미지를 넣으면 편집이 잘 안 되던데요. 신기하네요.

cyrus 2024-03-01 10:01   좋아요 0 | URL
사진을 편집하는 과정이 번거로워요. 사진 이미지 크기를 작게 조절해요. 사진 원본을 올리면 너무 크게 나오거든요. 그렇다고 사진이 너무 작으면 글씨가 작아지는 경우가 있어서 일단 보기 좋게 크기를 조절한 다음에 알라딘 블로그에 올려요. 마음에 들 때까지 사진 크기를 조절하고, 알라딘에 올리고, 다시 지우고.. 저는 이 과정을 반복해요. ㅎㅎㅎ
 
미술관에 갑니다
미리엄 엘리아.에즈라 엘리아 지음, 신해경 옮김 / 열화당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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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나는 미술을 무지[1] 좋아합니다. 하지만 현대미술은 무지 어려워요. 그래서 나는 현대미술에 무지[2]해요.










현대미술이 어려워도 괴롭혀도 나는 안 울어요.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요? 울면 바보예요. 나는 웃으면서 미술관에 갑니다라는 책을 읽습니다.


미술관에 갑니다5살 미만 유아를 위해 쇠똥구리 출판사가 펴낸 배움 책시리즈 첫 번째 책입니다쇠똥구리 출판사는 영국의 조그만 마을 똥골(Dunging)’[3]에 있는 교육 전문 출판사입니다출판사의 신조는 배움은 똥에서 온다입니다


본문 밑에 새로운 낱말이 있어요. 책에 나온 모든 낱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받아쓰기 시험 성적을 잘 받기를 원한다면 이 책을 권하세요. 아이가 단어를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반복적으로 쓰도록 하세요. 교육비를 최대한 아끼면서 자녀에게 조기 교육을 해주고 싶은 현명한 부모라면 배움 책시리즈를 선택하세요.







미술관에 갑니다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현대미술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요즘 나오는 작품들의 가격은 계속 치솟고 있습니다. 미술품 하나 사들이세요. 당신이 소유한 미술품의 가격이 상승하면 매력적인 상품이 되거든요. 당장 미술품을 살 돈이 없으면 아이에게 미술품에 투자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세요. 그러려면 제일 먼저 현대미술을 알아야 해요. 미술관에 갑니다는 현대미술의 모든 것을 알려 줍니다. 이 책을 읽은 자녀는 미술품을 가지고 노는 벤처 자본가가 될 수 있습니다.


자녀와 함께 미술관에 가길 원하는 부모는 미술관에 갑니다를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 미술관을 죽도록 즐기는[4] 방법을 알 수 있어요. 현대미술을 어려워하는 자녀에게 죽도[5]로 때리면서 가르치지 마세요. 자녀가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에 미술관에 같이 가도 늦지 않습니다. , 자녀가 미술관에 갑니다를 반복해서 읽어야 합니다. 자녀가 미술관을 좋아하도록 세뇌[6]해야 합니다.


이 책의 주인공 수전(Susan)(John)은 엄마와 함께 미술관에 갑니다. 엄마는 술은 싫어해도 예술은 좋아해요. 미술관에 간 엄마는 예술에 취해 기분이 좋은 상태예요. 하지만 수전과 존은 미술품을 볼 때마다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쓰러질 지경입니다.







현대미술을 처음 접하는 아이들은 이 책을 보자마자 당혹스러워할 겁니다. 그러면 당신은 자녀에게 이렇게 얘기하세요. 이해 안 되는 게 좋아.”







만약에 자녀와 미술관에 같이 가게 되면 부모인 여러분이 직접 도슨트가 되십시오. 호기심 반 의문 반을 품은 자녀가 부모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할 겁니다. 당신은 친절하게 대답해 주세요. 되도록 어려운 용어를 섞으면서 말하세요. 아이들은 부모의 말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대답을 잘하면 아이들은 현대미술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알고 싶어서 질문을 계속하는 아이가 있을 거예요. 더 이상 대답하기가 곤란하면 아이에게 스마트폰으로 직접 검색해 보라고 말하세요요즘 아이들은 책보다 스마트폰을 더 좋아하거든요. 


미술관에 갑니다를 구매하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하세요. 당신의 자녀가 이 책을 수백 번 지겹도록 읽었는데도 현대미술을 모르겠다고 말할 수 있어요. 책값과 자녀가 이 책을 읽는 데 허비한 시간이 아까울 거예요. 그렇지만 쇠똥구리 출판사는 이 상황에 대해서 절대로 책임지지 않습니다.







현대미술을 이해하지 못한 아이를 꾸짖지 마세요현대미술을 모르겠다고 솔직히 말한 아이는 지혜롭답니다. 본인이 무지하다는 것을 잘 아는 자녀는 미래에 소크라테스(Socrates) 뺨치는 철학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이에게 현대미술 대신에 철학을 공부하도록 권장해 보세요. 쇠똥구리 출판사는 올해에 어린이를 위한 철학책 시리즈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시리즈 이름은 개똥철학 배움 책입니다. 쇠똥구리 출판사는 신조를 철저히 지킵니다비록 중소 출판사이지만, 직원들은 구텐베르크 은하계를 지탱할 정도로 똥이 단단합니다.


쇠똥구리 출판사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은 미술관에 갑니다미술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린 이걸 기서[7]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새로운 낱말 사전>

 


[1] 무지: 아주 대단히

[2] 무지: 無知. 아는 것이 없음

[3] Dunging: 비료를 뿌리는 행위, 배설

[4] 죽도록 즐기기: 미국의 평론가 닐 포스트먼(Neil Postman)의 저서 제목

[5] 죽도: 대나무로 만든 칼. 한때 교사들이 선호했던 사랑의 매’였음.

[6] 세뇌: 가스라이팅

[7] 기서奇書, 내용이 기이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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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4-02-10 0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올해도 건강하고 좋은 한 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새해복많이받으세요.^^

cyrus 2024-02-11 19:16   좋아요 1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니데이님. 설 연휴 잘 보내고 계시죠? 벌써 마지막 연휴 하루가 남았어요. 시간이 금방 흘러가서 아쉽지만, 마지막 날도 즐겁게 보내세요. ^^

stella.K 2024-02-10 1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 세뇌라고 하면 될걸 어느 때부턴가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이 가스같이 화~악 퍼졌어. ㅋ 역시 책을 많이 읽더니 언어유희가 장난이 아니군. 죽도 가지고 널 죽도록 패 줄 수도 없고. ㅋㅋㅋ 암튼 명절 연휴 잘 보내라.^^

cyrus 2024-02-11 19:18   좋아요 0 | URL
제 글을 잘 읽어 보면 개그 포인트가 여러 개 있어요. ㅎㅎㅎ 마지막 연휴 하루 남았지만, 내일 좋은 하루 보내세요. ^^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
가와우치 아리오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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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점  ★★★★☆  A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


예문에 밑줄이 친 감상에 해당하는 한자를 고르시오.

 

感賞  感想  感傷  鑑賞  監床



나는 2번이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국어사전은 내게 2번이 정답이라고 말하면서도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려주었다. 새로운 사실이란 내가 여태까지 몰랐던 또 다른 감상의 한자 표기. 국어사전이 가르쳐준 감상4번이다. 2번 감상의 뜻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나 생각이다. 4번 감상은 예술 작품을 이해하여 즐기고 평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 사람은 예술 관련 지식이 없으면 작품 감상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예술에 무지하기 때문에 걸작 앞에서 이러쿵저러쿵 말할 자격이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예술 작품을 어떻게 볼지 설명해 주는 전시회 해설자(docent)를 찾는다. 과연 작품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알고 있으면 예술 감상이 쉬워질까? 일단 쉬워진. 하지만 재미없다예술 상식으로 차려진 밥상은 처음에 맛있다. 그러나 책과 전시회 해설자가 계속 떠먹여 주는 상식은 식상하다모든 사람이 다 아는 상식만 채워진 감상이 재미만 없는 게 아니다. 예술을 이해하고 느끼는 본연의 를 표현할 기회도 없다.


4번 감상은 거울 감()’ 상줄 상()’이 만나서 생긴 단어다. 나는 예술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4번 감상의 한자어를 머릿속에 떠올려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그러면 예술에 대한 낯섦과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질 거로 믿는다예술 작품이 막연히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것을 거울이라고 생각하면서 바라보자. 예술 작품이 거울로 변하는 순간, 거기에 작품을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이 나타난다. 예술 작품에 비친 본인 모습을 만나면 이제부터 내가 느낀 것을 편안하게 이야기하면 된다. 작품에 관한 지식, 몰라도 된다. 여기서부터 예술 감상이 시작된다


,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작품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해석이 상식과 다르다는 이유로 틀렸다고 생각해선 안 되고, 타인의 주관적 해석을 지적해서도 안 된다. 예술 감상하는 자신 또는 타인을 칭찬하라, 틀려도 좋으니 즐겨라. 지적(指摘)하는 태도는 예술 감상을 방해하는 적()이다. 자유롭게 작품을 해석하는 관점을 존중하지 않는 감상은 지적(知的) 대화가 아니.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는 우리의 예술 감상을 막는 진입 장벽을 무너뜨리는 책이다. 시라토리 겐지(白鳥 建二)는 시각장애인이다. 매년 수십 번씩 미술관에 다닌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그는 작품을 본다. 이 책의 저자는 시라토리 씨와 함께 미술관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오직 눈으로만 보는 행위에만 초점이 맞춰진 감상법을 해체한다. 예술 작품은 다양하다. 예술 작품에 눈으로 보는 그림만 있는 게 아니다. 관람자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예술 작품은 손으로 만져야 하고, 때로는 움직여야 한다.


예술 작품의 형태가 다양해질수록 관람자 스스로 작품을 바라보고 생각할 기회가 많아진다. 전시회나 미술관에 관람자의 감상을 안내해 주는 해설자의 역할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해설자와 함께 걸으면서 작품을 바라보면 관람자의 마음과 머릿속에 채워진 건 상식이다. 마음과 머리가 무거워지면 예술을 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시라토리 씨와 함께 미술관에 가면 마음과 머리는 항상 가볍다. 미술관에 들어오기 전에 머릿속을 비워 두어야 한다. ‘아는 상태에서 예술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예술을 감상한다. 이것이 시라토리 씨가 지향하는 감상법이다.



* 33~34


 “나는 다 함께 보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아보거나 발견하는 게 재미있어.”

 아, 그렇구나. 그는 아는 것이 아니라 알지 못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구나. (중략)

 시라토리 씨의 미술 관람에는 적당히 무지한 상태가 꼭 필요한 듯했다. (중략)

적당히 무지한 상태란 좋은 것이었다. 선입견 없이 무심하게 그저 작품과 마주할 수 있으니까. 마치 안내서 없이 다니는 나 홀로 여행처럼.



상식이 넘치는 상태에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면 결국 눈으로 본 것과 입에서 나오는 말은 내가 아는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따라서 작품을 거울로 인식하면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려는 내 모습이 나타난다. 예술 작품의 입은 무겁다. 그래서 감상이 서투른 사람들은 예술에 관한 지식이 꾹 닫아버린 작품의 입을 열게 하는 열쇠라고 믿었다. 하지만 예술 작품이 아닌 오직 자신만의 감상을 위해서라면 스스로 열쇠가 되어야 한다.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힘, 그것이 바로 예술 감상을 위한 열쇠다. 관람자를 위한 거울로 변신한 작품이 비로소 입을 열기 시작한다. 그리고 관람자에게 말을 걸어온다. , 그럼 무엇이 보이는지 말해주세요.”


저자는 작품에서 무언가를 느끼거나 의미를 찾는 것은 관람자의 몫이라고 강조한다(127). 다양한 해석을 용인하는 작품의 넓은 품은 예술로 표현된 세상과 사람을 거울처럼 보여준다. 예술 작품은 모든 관람자의 생각들을 안아줄 수 있을 만큼 품이 넓다. 왜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예술 작품의 참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일까? 이걸 제대로 봤으면 예술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cyrus의 주석>



* 41

 

 최근에는 이것도 저것도 예술 작품이 되어서 포르말린에 담근 소[]나 대부호의 부동산 매매 기록을 작품으로 하는 예술가도 있다니까.










[포르말린에 담긴 소가 나오는 예술 작품은 영국 예술가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황금 송아지(2008)일 수 있다포르말린에 담긴 박제된 송아지의 발굽과 뿔, 그리고 머리 위에 있는 원반은 금으로 되어 있다. 


허스트는 상어(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불가능성,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1991), (황금 뿔이 달린 검은 양, The Black Sheep with the Golden Horn, 2009) 죽은 동물을 포르말린 수조에 넣은 작품을 전시회가 아닌 경매에 공개하여 살아 있는 가장 비싼 예술가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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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 선보이는 공연작 다섯 편 중 두 편은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살로메>(Salome)<엘렉트라>(Electra). 나머지 세 편의 공연작은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Giuseppe Verdi)의 오페라다. 106일에 <살로메>가 스무 번째 축제의 포문을 열었다. 10월 21일과 22일, 이틀 연속 막이 오른 <엘렉트라>는 국내 초연작이다. 나는 22일 토요일 공연을 예매했다베르디의 오페라 세 편도 예매하고 싶었으나 오페라 공연을 보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라서 과욕을 부리지 않았다.


















[대구 책방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파이데이아 독서 목록 1년 차]

소포클레스천병희 옮김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도서 출판 숲, 2008)


소포클레스, 김종환 옮김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 (지만지드라마, 2019)




원작은 고대 그리스 비극 작가 소포클레스(Sophocles)의 동명 비극이다. 오스트리아의 시인 · 극작가 후고 폰 호프만슈탈(Hugo von Hofmannsthal)이 각색을 맡아 오페라 대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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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데이아 독서 목록 1년 차]

에우리피데스천병희 옮김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1》 (도서 출판 숲, 2020)


에우리피데스, 강대진 옮김 메데이아: 메데이아, 힙폴뤼토스, 엘렉트라, 알케스티스》 (민음사,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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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데이아 독서 목록 1년 차]

아이스킬로스천병희 옮김 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 (도서 출판 숲, 2008)


아이스킬로스, 김기영 옮김 오레스테이아 3부작》 (을유문화사, 2015)


아이스킬로스, 두행숙 옮김 오레스테이아》 (열린책들, 2012)


















아이스킬로스, 김종환 옮김 아가멤논》 (지만지드라마, 2019)


아이스킬로스, 김종환 옮김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지만지드라마, 2019)


아이스킬로스, 김종환 옮김 에우메니데스》 (지만지드라마, 2019)





소포클레스와 함께 거론되는 아이스킬로스(Aeschylos)에우리피데스(Euripides)도 엘렉트라가 나오는 비극을 썼다(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 중 2부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 세 편 중에 문학성이 높은 <엘렉트라>는 소포클레스가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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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데이아 독서 목록 1년 차]

에우리피데스천병희 옮김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2》 (도서 출판 숲, 2021)


* 에우리피데, 김종환 옮김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지만지드라마, 2019)




엘렉트라는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Agamemnon)클뤼템네스트라(클리타임네스트라, Clytemnestra) 사이에 태어난 둘째 딸이다. 장녀는 이피게네이아(Iphigeneia). 아가멤논은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는 연합군의 총지휘자였다. 수많은 함대가 항구에 집결하지만, 순풍이 불지 않아서 2년 동안 출항하지 못한다. 신탁에 따르면 이피게네이아를 희생 제물로 바치면 신의 분노가 풀려서 순풍이 생긴다. 이피게네이아는 아가멤논의 간계에 속아서 희생되고, 이 사실을 뒤늦게 안 클뤼템네스트라는 아가멤논을 복수하기로 결심한다(에우리피데스의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을 복수하려는 아이기스토(Aegisthus, 아이기스토스)와 합세하여 트로이 전쟁 종전 이후 십 년 만에 미케네로 돌아온 아가멤논을 살해한다(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 중 1부 <아가멤논>).


아이기스토와 클뤼템네스트라가 미케네를 지배하면서 아가멤논의 아들이자 엘렉트라의 남동생 오레스트(오레스테스, Orestes)는 후환을 피하고자 탈출한다. 혼자 남은 엘렉트라는 아가멤논의 무덤에 찾아가 복수를 꿈꾼다. 여기서부터 오페라 <엘렉트라>가 시작된다.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에 엘렉트라의 여동생 크리소테미스(Chrysothemis)가 등장한다. 엘렉트라는 크리소테미스에게 어머니와 아이기스토를 함께 죽이자고 제안하지만, 크리소테미스는 소극적인 반응을 보인다. 미케네 전역에 오레스트가 죽었다는 풍문이 들려온다. 엘렉트라는 복수를 실행하지 못하는 상황에 좌절하지만, 극적으로 오레스트와 재회한다. 그녀는 오레스트와 힘을 합쳐 아이기스토와 클뤼템네스트라를 살해한다.
















최혜영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푸른역사, 2018)


* [품절] 김기영 신화에서 비극으로: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 삼부작(문학동네, 2014)




엘렉트라는 어머니와 새 남편을 증오한다. 그녀는 두 사람의 손에서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를 위해서 복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자신 또한 어머니처럼 살인으로 불의를 응징하고자 한다. 엘렉트라와 클뤼템네스트라는 강인한 여성상과 표독스러운 악녀를 동시에 보여준다. 하지만 엘렉트라가 진정 원하는 것은 아가멤논이 잃어버렸고, 오레스트가 가질 수 없는 권력이다. 오페라에 생략되었지만, 비극에 묘사된 오레스트는 어머니를 죽인 죄로 복수의 여신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 중 3부 <자비로운 여신들>). 그는 또다시 유랑자 신세가 된다. 아이기스토와 클뤼템네스트라를 싫어하는 세력이 있다고 해도 엘렉트라는 현실적으로 미케네의 실권자가 되지 못한다.






존 싱어 사전트

맥베스 부인 역의 엘렌 테리

1889




복수에 성공한 엘렉트라는 미케네 왕관을 아버지의 무덤에 바친다. 이때 왕관을 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미국의 화가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가 묘사한 맥베스 부인을 연상시킨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최종철 옮김 맥베스(민음사, 2004)

 

* 권오숙 셰익스피어, 그림으로 읽기(예경, 2008)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비극 맥베스의 맥베스 부인은 스코틀랜드 영주인 남편을 설득해 덩컨 왕(Duncan)을 죽이도록 부추긴다. 맥베스 부부는 왕권을 차지하는 데 성공하지만, 맥베스 부인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몽유병을 앓다가 자살한다. 아주 잠깐이지만, 엘렉트라는 왕관을 직접 손에 쥠으로써 눈부시게 빛나는 권력의 무게감을 느껴본다. 그 순간 그녀는 황홀감에 취해 춤을 추다가 무덤 앞에서 죽는다. 엘렉트라가 심장으로 들은 무덤 속 아버지 목소리의 실체는 자신이 그토록 갈망했던 권력이다.


맥베스 부인은 맥베스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인상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름이 없다. 부인에게 권력에 대한 야망을 숨기지 않은 엘렉트라라고 부르면 이상한가. 이번 주 오페라 공연작은 베르디<맥베스>. 베르디는 맥베스 부인 역에 매우 높은 음을 내는 소프라노 배우가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 이건 꼭 봐야 하는데‥…. 어떡하지

















* 유진 오닐, 이형식 옮김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지만지드라마, 2019)



[제목에 대한 주석] 오페라 공연 리뷰 제목을 미국의 극작가 유진 오닐(Eugene O’Neill)의 희곡 제목에 따왔다.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고대 그리스 비극 <엘렉트라>를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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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10-25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오페라를 첨 본 느낌은 어떤감? 좋았나? 난 짐까지 두 번 봤나했는데 좀 지루했던 것 같아. 솔직히는 살짝 지루할 무렵에 끝나서 다행이었지. ㅋ 요즘 오페라 도 구성이 다양해졌다고 하던데 어떤지 궁금하네. 난 뮤지컬이 좋아.^^

cyrus 2023-11-01 21:26   좋아요 0 | URL
오페라 공연 본 사람들 의견 모두 똑같군요. 다 재미없대요.. ㅋㅋㅋㅋ 직립보행 책방지기는 예전에 본 오페라 제목이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재미없었다고 했어요.. ㅋㅋㅋ
 










대구 국제 오페라 축제가 올해로 20회를 맞이한다. 개막작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살로메(Salome). 원작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가 쓴 동명 희곡이다.



















* 오스카 와일드, 오브리 비어즐리 그림, 임성균 옮김 살로메(지만지드라마, 2023)


* 오스카 와일드, 정영목 옮김 오스카 와일드 작품선(민음사, 2009)




오페라 공연을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공연 장소인 대구오페라하우스를 처음 가본 터라 예매표를 어디서 받는지 몰랐다. 살짝 마음이 움츠러든 채 건물로 들어서는 순간, 어깨 너머로 익숙한 향기가 났다. ? 이 향기는? 누구지? 뒤돌아보니 <일글책> 토요일 고전 읽기 모임의 프론트우먼(Frontwoman: 밴드나 그룹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핵심 인물) 향기님이었다. 연보라색 옷을 입은 향기님은 남편과 같이 오페라 공연을 보러 왔다. 향기님의 친절한 안내 덕분에 표를 구할 수 있었다.

 

공연 시작하기 전에 무대 뒤에 있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악기를 조율하고 있었다. 공연장 안에 서로 다른 악기들이 내는 소리가 뒤섞인 채 울려 퍼졌다. 예매하면서 지정한 자리를 금방 찾았다. 자리 뒤에 낯선 이름이 적힌 명찰이 있었다. ? 여기 내 자린데 내 이름은 없고 왜 다른 사람이 있지? 내가 자리를 잘못 찾았나? 다시 살펴보니 분명 내 자리가 맞다. 당황한 나는 안내자에게 자리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안내자가 알려준 자리는 분명 내가 찾은 그 자리가 맞았다. 자리 뒤에 이름표가 있는데, 이거 뭐예요?” 내 질문에 안내자는 대구오페라하우스에 기부한 사람들 이름이라고 답변했다. 물어보길 잘했다. 오페라 공연 감상 초보자는 오늘도 하나 배웠다.


원작의 시간적 배경과 장소는 고대 이스라엘의 헤롯(Herod) 왕의 궁전이다. 오페라의 시간적 배경은 휴대전화가 카메라가 있는 현시대. 무대 장치는 반투명 유리로 둘러싸인 원형 형태로 되어 있다. 거대한 원형 무대는 헤롯 왕의 사치스러운 삶을 암시하는 연회장, 헤롯 왕과 새 아내 헤로디아스(Herodias, 원래 헤롯의 제수였다)의 왕좌, 세례자 요한(Johannes)이 갇힌 지하 감옥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 원형 무대 장치가 빙글빙글 천천히 돌아가면서 다음 이야기 속 장소를 보여준다.


지하 감옥을 지키는 병사 두 명의 복장은 선글라스를 낀 경호원과 흡사하다. 눈을 가린 그들은 살로메의 유혹에 넘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경비대장 나라보트(Narraboth)의 눈은 무방비 상태다. 그는 살로메의 매력에 빠져 계속 그녀를 쳐다본다. 헤로디아스의 시종은 나라보트에게 살로메를 너무 보지 말라면서 여러 차례 경고한다. 반면 살로메의 눈은 요한의 목소리가 나오는 지하 감옥으로 향해 있다. 살로메는 병사들에게 요한을 풀어달라고 명령한다. 요한의 실제 모습을 본 살로메는 본격적으로 그를 유혹한다. 하지만 요한의 눈은 오로지 주님에게 향해 있다. 의붓아버지 헤롯은 살로메를 음침하게 바라보면서 다가온다. 늙은 욕망덩어리 왕의 요구에 지친 살로메는 왕 앞에 일곱 베일의 춤을 출 테니 자신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요구한다춤을 다 추고 나서야 살로메는 왕에게 소원을 말한다. 요한의 머리를 주세요!”















* 오광수 · 박서보 감수 모로(재원, 2004)

[책 소개] 귀스타브 모로의 작품들을 유일하게 소개한 화집 형태의 책이다. 책 앞표지의 작품 제목은 출현이다. 살로메가 요한의 잘린 머리를 얻는 순간을 묘사한 그림이다.




원작 살로메는 남자들을 정복하려는 요부로 묘사되어 있다. ‘일곱 베일의 춤은 살로메의 요염한 자태를 상상하게 만드는 에로틱한 춤이다. 화가들도 살로메의 성적 매력에 끌렸다. 특히 프랑스의 상징주의 화가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는 살로메를 주제로 한 그림을 여러 점 그렸다그가 묘사한 살로메는 알몸이 비치는 투명한 동양풍 옷을 입고 있다이 이미지는 요부로서의 살로메를 충실히 구현했다

















* 미레이유 도탱-오르시니 외, 박아르마 옮김 살로메(이룸, 2005)




하지만 오페라 살로메는 요염함과 거리가 멀다그녀는 흰옷을 입고 있다흰색은 순결을 상징하는 색이다실제로 오페라를 작곡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원작 살로메가 춤을 추면서 나체가 되는 묘사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슈트라우스가 쓴 오페라 공연 지침서에 보면 살로메는 순결한 소녀인 동양의 공주로 설정되어 있다. [주]


오페라 살로메는 의붓아버지와 함께 춤을 춘다여기서 살로메는 춤을 추는 자신과 왕의 모습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는다이때 거대한 반투명 유리는 스크린이 된다. 스크린 화면은 휴대폰에 담긴 헤롯 왕과 살로메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여준다. 그녀는 헤롯 왕을 껴안기도 하고성교를 암시하는 행위를 한다하지만 살로메는 절대로 옷을 벗지 않는다춤을 추고 난 후 그녀는 양손에 머리를 쥐면서 좌절한다살로메는 요한의 목을 가지기 위해서 요부인 척 행동하고 마치 헤롯을 꼭두각시 인형을 조종하듯이 춤춘다옷을 벗지 않은 살로메의 춤은 왕의 음탕한 요구를 순순히 따르지 않겠다는 저항의 몸짓이다.


살로메는 요한의 머리를 포기하지 않는다그녀는 자신의 몸이 타들어 가면서까지 태양 빛으로 직진하는 나방과 같다살로메는 기어이 자신의 입술을 쓰디쓴 피 맛이 나는 요한의 붉은 입술에 갖다 댄다하지만 잘린 요한의 머리는 태양처럼 빛나지 않는다그래서 살로메는 씁쓸하다태양 같은 거룩한 요한을 가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태양처럼 빛나던 요한의 생명력을 끊어버렸기 때문이다자신에게 곧 다가올 죽음을 예감한 살로메는 요한의 머리에 여러 번 입맞춤한다그런 다음에 차가워진 살로메의 팔을 껴안는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소녀는 진심으로 요한을 사랑했다

 

공연을 본 관객 대다수는 여전히 광기 어린 집착을 보인 살로메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요한의 머리를 탐낸 살로메의 사랑은 퀴어(gueer: 기묘한, 괴상한)하다. 남들이 멸시하고, 헤롯이 괴물 같다고 해도 살로메는 자신마저 파멸시키는 사랑을 끝까지 고집했다. 원작자 오스카 와일드는 퀴어한 동성애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멸시받다가 쓸쓸하게 죽었다. 요한의 머리 앞에서 절절하게 고백하는 살로메의 노래 속에 오스카 와일드의 서러운 이야기가 들렸다.


관객을 위해 우리말로 번역된 오페라 대사가 자막으로 나왔는데, 여기서 옥에 티가 있었다. 헤롯 왕이 최상급 포도주를 로마 시저 황제가 주신이라면서 말하는 대사가 있다. ‘시저는 로마의 정치가 카이사르(Caesar)에서 유래된 단어로, 황제를 뜻한다. 원작에서는 시저라고 적혀 있다. 아마도 대사 자막을 만든 번역자가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시저 황제라고 썼을 것이다. 하지만 로마 황제라고 써도 된다. 원작에 언급된 시저는 카이사르가 아니라 티베리우스(Tiberius).





[] 살로메(이룸, 2005)는 문학 작품과 예술 작품(회화, 음악)으로 묘사된 살로메를 입체적으로 분석한 글들을 모은 책이다. 오페라 감상문을 쓰기 위해 이 책에서 참고한 글은 오스카 와일드와 슈트라우스, 혹은 춤추는 몸이다. 이 글에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공연 지침서 일부 내용이 인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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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10-08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페라 관람하고 오셨군요. 대구에서 오페라축제를 하는 건 몰랐는데, 좋은 공연이 많을 수 있겠어요. 근데 오페라 공연은 한국어로 하는 건가요. 아니면 영어나 이탈리아어 등 외국어로 진행되는지 궁금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cyrus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cyrus 2023-10-08 15:17   좋아요 1 | URL
올해 오페라 축제 공연작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 <엘렉트라>와 베르디의 오페라 세 작품, 총 다섯 작품이에요. 베르디의 오페라가 정말 유명한데, 전부 다 보려면 매주 토요일 정오 이후 시간대를 다 비워야 해요. 공연 예매했다가 공연 보는 날에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 보면 돈이 아까워요. 그래서 욕심부리지 않고, <살로메>와 <엘렉트라>만 예매했어요.

오페라 가수들은 외국어로 노래했는데, 이게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르겠어요. 오페라 작곡가가 독일인이라서 노랫말과 대사가 독일어일 수 있어요. 자막은 영문과 한국어로 나왔어요. ^^

얄라알라 2023-10-08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cyrus님 지난번 정독도서관 포스팅이랑 이번 포스팅 .....완벽남이실 것 같은데, 은근 빵터지게 하시는 매력이 있으시네요.

기부자 이름을 그렇게 생각하셨군요^^ ㅎ
대구오페라하우스 , 다음 [엘렉트라] 포스팅에서 내부 사진 한 번만 보여주시면 아니될까요?^^ 천장이 엄청 궁금하옵니다. 아...귀찮게 해드려 죄송해요 cyrus님, 제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공연장이라서...

cyrus 2023-10-09 05:39   좋아요 1 | URL
제가 실제로 좀 어설픈 구석이 있긴 해요.. ㅎㅎㅎㅎ

죄송한 일 아니에요. 사실 오페라 공연장 내부 사진을 몇 장 찍으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제가 휴대폰으로 사진 찍는 일이 익숙하지 않고, 찍어도 화질이 별로더라고요. 그래도 다음 공연 보러 갈 땐 사진을 많이 찍을게요. 얄라알라 님의 부탁하신 거 기억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