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매혹 사이 - 왜 현대미술은 불편함에 끌리는가
이문정 지음 / 동녘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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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똥. 정량 30g. 신선하게 보존됨. 1961년 5월에 생산됨.

 

 

 

1961년 이탈리아의 피에로 만초니(Piero Manzoni)는 자신의 똥을 90개의 깡통에 담아 ‘예술가의 똥’이란 이름을 붙여 전시했다. 이 전시 작품(?)은 당시 같은 무게의 금값으로 매겨져 팔려나갔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이렇게 묻고 싶어질 것이다. “이게 미술이냐?” 당신이 『예술가의 똥』 앞에 서 있다면 그것을 보면서 무슨 생각할까? 우선은 그동안 학교에서 배운 미술을 이것저것 떠올리다가 그 작품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 수 없는 난처한 입장이 되어 버릴 것이다. 우리는 미술 작품을 시각적 쾌락을 주는 대상으로만 생각해서 이런 지저분한 미술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 알 수 없는 작품을 하물며 내 삶과 관련한 그 무엇으로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많은 사람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그것, 사진을 찍어 놓은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 곧 작품이다. 그래서 고전미술은 이해가 쉽다. 반면 현대미술은 그렇지 않다.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두개골(데미안 허스트), 박물관 전시실 바닥에 놓은 침대(트레이시 에민), 심지어 예술가의 똥도 미술 작품으로 인정된다. 현대미술은 눈에 보이는 형태보다 ‘의미’에 방점을 찍어 해석하고 분석하며, 관객 스스로 이해해야 하는 조형 세계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현대미술, 즉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의 한 지점을 차지하는 예술가들은 작품의 생경함 때문에 대중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이들의 작품은 산뜻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추하고, 혐오스럽고, 엽기적이다.

 

《혐오와 매혹 사이》는 혐오와 매혹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현대미술을 집약한 책이다. 작년 말에 나온 《불편한 미술》의 개정판이다(알라딘에는 구판에 관한 정보가 없다). 비위가 약한 독자는 책을 펼치기 전에 읽을지 말지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책에 실린 도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시각적 충격’을 주는 미술 작품의 도판 몇 점 있기 때문이다.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는 포르말린 수조에 동물 사체를 넣은 작품을 선보였다. 마크 퀸(Marc Quinn)은 자신의 피를 직접 뽑아 모은 것을 굳혀 자신의 두상을 만들었다. 안드레 세라노(Andres Serrano)는 시체 안치소에 있는 시체 모습을 클로즈업해서 찍은 작품을 선보였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 거부감과 두려움. 피하고 싶지만 어쩐지 끌리는 두 갈래 길에 직면한다.

 

인간의 혐오 심리를 분석한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의 이론을 연구한 저자는 폭력, 죽음, 질병, 피, 배설물, 섹스, 괴물 등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소재들이 어떻게 현대미술에서 표현되는지 소개한다. 작가들이 유독 추한 것에 집착하는 것은 ‘아름다움’으로 포장되어 있는 현실의 이면을 바라보는 확고한 신념 때문이다.

 

크리스테바에 따르면 인간에게 있어 혐오를 유발하는 대상은 단지 아름답지 않거나 청결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어떤 대상이 적절한 자리에 있지 않으면 기성 체계나 기존 정체성에 벗어난 것이 된다. 크리스테바는 혐오를 유발하는 대상을 ‘애브젝트(abject)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우리는 불쾌한 애브젝트를 피하려고 한다. 문제는 그것을 일시적으로 피할 수 있어도 우리가 죽지 않는 한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이를테면 우리는 몸을 씻을 때마다 때를 민다. 몸에서 떨어져나간 때는 목욕하기 전까지만 해도 가장 소중한 몸의 일부였다. 때는 애브젝트다. 우리는 이 애브젝트를 벗겨 내서 몸을 깨끗하게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여러 번 씻어도 때는 다시 생긴다. 역설적으로 애브젝트는 우리가 살아 있음을 보여 주는 기호이다.

 

데미안 허스트와 안드레 세라노 등은 ‘죽음’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들은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무관심과 냉소로 끔찍한 살육을 보여주는 작품 이면에 어떤 숭고함과 비장함이 어려 있어 죽음에 대한 경고와 성찰을 불러일으킨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현대미술은 작가의 다양한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조형 세계이다. 이 조형 세계에는 과거 미술의 단골 인물이었던 신, 영웅 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미술의 주인공은 작가와 관객이다. 그리고 아름다움과 거리가 먼 것, 죽은 것, 폐기물도 미술 작품의 소재가 된다. 과거 미술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조형 세계라면, 현대미술은 관객들에게 더럽고 불편한 ‘현실’을 과감하게 보여주는 조형 세계이다. 현대미술에서의 애브젝트는 아름다움을 강요하는 사회 체제에 저항하는 상태이자 물체들이다.

 

이 책을 본 독자들은 엇갈린 반응이 내놓을 것이다. 어떤 독자는 ‘그래도 이걸 미술이라고 하다니. 요즘 예술가들은 미술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아’라고 생각할 수 있고, 또 다른 독자는 ‘아름답지 않지만, 계속 보니 이 작품이 관객에게 무얼 전달하고 싶은지 알겠어’하면서 수긍할 것이다. 전자의 반응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아름다움이 동시대 미술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사실 오늘날에는 ‘아름다운 그림’으로 알려진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들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당대 사람들은 ‘추한 그림’이라고 놀리면서 비난했다. 지금 난해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현대미술이 시간이 좀 지나지 않으면(이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알 수 없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작품으로 새롭게 인정받을지 모른다.

 

 

 

 

 

※ Trivia

 

* 103, 105쪽

허스트는 주물을 떠 백금으로 만든 해골에 1106.18캐럿에 달하는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아 넣어 <신의 사랑을 위하여>(2007)를 완성했다. 이 작품은 빛나는 투명한 수정으로 조각된 고대 아즈텍의 두개골의 연상시킨다.

 

→ 고대 아즈테카인이 만들었다는 일명 ‘크리스탈 해골’은 영화 소재가 될 정도로 유명한 불가사의한 유물로 알려졌으나 오래 전에 ‘가짜’로 판명되었다.

 

 

* 221쪽

귀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1819)이다.

 

→ 작품 연도가 잘못 적혀 있다. 1866년에 나온 작품이다. 1819년은 쿠르베가 태어난 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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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12-21 2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에다가 이런 댓글 달기가 좀 웃기긴 하지만, 시루스 박사님.
2018 당연한 서재의 달인 축하드리구요.
2018 레드스타킹 만나서 인생 이모작(??) 시작하신 것도 축하드리구요.
2018 하여간 축하드려요 ^-^

카알벨루치 2018-12-21 23:51   좋아요 0 | URL
웃긴다 쇼님 ㅋ

cyrus 2018-12-23 15:53   좋아요 1 | URL
인생 사모작입니다. 일반인 최 씨, 알라딘 cyrus, 레드스타킹, 우주지감... ㅎㅎㅎㅎㅎ syo님도 축하드립니다. 서재의 달인, 댓글왕 2관왕이네요.. ^^

2018-12-21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23 15:56   좋아요 0 | URL
깡‘똥’을 왜 90개나 만들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많이 팔려고 만든 거겠죠? ㅎㅎㅎㅎ

2018-12-21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23 16:01   좋아요 0 | URL
사람들은 <예술가의 똥>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할 겁니다. 가령, <예술가의 똥>을 보고 불쾌감을 느끼거나, 그 안에 있는 내용물이 진짜인지 아닌지 알고 싶은 호기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겠죠. 이러한 여러 가지 반응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이 지향하는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은 ‘미술 작품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관객의 반응을 거부합니다. ^^

카알벨루치 2018-12-24 1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박사님, 메리 크리스마스^^늘 건강하시고 좋은 글로 늘 우리에게 큰 도전 계속 주시길 바랍니다 시루스박사님 뵈면 체호프와 전쟁과평화가 생각납니다 ㅎㅎ 늘 감사해요

cyrus 2018-12-25 08:41   좋아요 1 | URL
메리 크리스마스~ 카알벨루치님처럼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있어서 올해도 책을 꾸준히 읽을 수 있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

레삭매냐 2018-12-25 1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탄절이네요...

저도 싸이러스님 덕분에 램프의 요정
에 안착할 수 있었네요 ㅋㅋ
아무도 찾지 않는 블록 시절에도 꾸
준히 덧글도 달아 주시구...

감사하고 메리 크리스마수입니다.

cyrus 2018-12-26 17:16   좋아요 0 | URL
레샥매냐님의 진가를 알아 봐주는 알라디너들이 늘어날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레샥매냐님이 알라딘에 활동하지 않았으면 독서 욕구가 많이 생기지 않았을 거예요. ^^

서니데이 2018-12-25 1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크리스마스 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어제보다는 덜 춥지만 날씨가 차갑습니다.
따뜻한 성탄절 휴일 보내시고, 좋은 시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영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 (Queen)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에 대한 국내 반응이 식을 줄 모른다. 사실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유명 가수의 삶을 재조명하는 구태의연한 영화일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퀸의 리드 싱어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의 전기 영화가 아니라 프레디 머큐리와 퀸의 음악 모두에 초점을 맞춘 풍성한 영화였다.

 

 

 

 

 

 

 

 

 

 

 

 

 

* 『보헤미안 랩소디 O.S.T』 (Universal)

 

 

 

퀸의 공연을 본 적이 있다면 둘 중 하나다. 외국 공연장을 직접 찾는 엄청난 행운을 누렸거나, 텔레비전 또는 유튜브 화면 속 머큐리를 보며 소박한 행복을 느꼈다거나. 나도 그렇고, 대다수가 후자에 속한다. 이런 아쉬움을 <보헤미안 랩소디>가 어느 정도 달래줄 수 있다. 눈보다는 귀로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주연은 열창하는 라미 말렉(Rami Malek)이 아니라 영화에 울려 퍼지는 퀸의 명곡들이다.

 

 

 

 

 

 

 

 

 

 

 

 

 

 

 

 

 

* 정유석 《Queen 보헤미안에서 천국으로》 (북피엔스, 2018)

* 미야시타 기쿠로 《몸짓으로 그림을 읽다》 (재승출판, 2018)

 

 

 

 

영화를 보기 전에 ‘퀸에 관한 모든 것’을 정리한 《Queen 보헤미안에서 천국으로》 (북피엔스)를 읽으면 좋다. 퀸 1집부터 머큐리의 유작 앨범까지 소개하고 전곡을 해설했다. 그뿐만 아니라 퀸의 이름으로 발표한 라이브 앨범, 콘서트 실황을 담은 영상 등에 대한 설명도 있다. 책 속에는 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QR 코드가 있다.

 

퀸의 전성기 시절은 공교롭게도 금지곡 시비가 많았던 군사정권 시기와 겹친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1989년까지 금지곡이었다. “Mama, just killed a man. Put a gun against his head, pulled my trigger, now he’s dead(어머니, 난 사람을 죽였어요. 그 사람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어요)” 등 직접적으로 살인을 묘사하는 노랫말 때문에 금지곡이 되었다. 1985년 퀸은 영국 웸블리 스타티움에서 펼쳐진 역사적인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Live AID)에 등장하여 20여분동안 최고의 무대를 보여줬다. 그해에 MBC에서 이 공연 영상 일부를 녹화 방영한 적이 있었는데, ‘보헤미안 랩소디’를 부르는 장면이 통째로 편집되었다. 퀸의 대표곡이 금지곡으로 지정되는 바람에 1984년 내한 공연이 무산되기도 했다.

 

《몸짓으로 그림을 읽다》 (재승출판)라는 책에 퀸을 언급한 내용이 있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일본인인데, 퀸은 일본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다.

 

 

 영국의 록밴드 퀸의 노래 중에는 후렴 부분이 일본어로 된 ‘손을 맞잡고(Let Us Cling Together)라는 노래가 있다. (108쪽)

 

 

우리나라에 금지된 퀸의 노래가 ‘보헤미안 랩소디’만 있는 게 아니다. 군사정권 시절엔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퀸의 노래를 국내에 유통하지 못하게 한 적도 있었다. ‘손을 맞잡고’는 1976년에 발매된 퀸의 정규 5집 『A Day at the Races』 마지막에 수록된 곡이다.

 

 

 

 

 

 

 

 

 

 

 

 

 

 

* 『A Day At The Races』 (2011 Remastered, Island)

 

 

 

브라이언 메이(Brian May)가 만든 곡으로, 일본 팬들의 열화 같은 성원에 감동하여 만든 곡이다. 이 곡은 5집의 첫 곡 ‘Tie Your Mother Down’의 전주와 이어지면서 끝난다. 그런데 5집 음반이 우리나라에 발매되었을 때 음반에 수록된 첫 곡과 마지막 곡은 삭제되었다. ‘손을 맞잡고’ 노랫말에 일본어가 있어서 왜색 노래로 분류되었고, 어쩔 수 없이 이 노래와 연결된 ‘Tie Your Mother Down’도 삭제되어야 했다. 사실 ‘Tie Your Mother Down’도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순간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금지곡이 될 운명이었다. ‘Tie Your Mother Down’에 자신과 함께 밤새도록 놀려면 어머니는 묶어버리고, 아버지는 집에 가둬버리라는(…) 노랫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노랫말을 건전하게(?) 풀이하자면, 부모의 간섭을 무시하고 실컷 놀자는 의미이다. 그런데 문제는 노랫말 중에 친구의 부모를 모욕하는 패륜 드립(Your mammy and your daddy gonna Plague me till I die: 네 부모는 내가 죽을 때까지 페스트에 걸릴 거야)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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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3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1-23 16:33   좋아요 1 | URL
퀸의 노래를 좋아하신다면 꼭 영화를 보셔야 합니다! ^^

레삭매냐 2018-11-23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어려서 친구네 집에서 당시만 하더
라도 금지곡이었던 보헤미언 랩소디를
직직 긁히는 소위 빽판으로 처음 들었
었는데... 가히 충격이었습니다 -

아 이런 음악이 다 있구나 !!!

여적까지도 퀸의 음악을 즐깁니다.

cyrus 2018-11-23 16:36   좋아요 0 | URL
고딩이었을 때 퀸의 노래를 처음 알게 됐어요. TV나 라디오에 나오는 퀸의 노래를 무심코 들은 적 있었지만, 그게 퀸이 부른 노래인 줄 몰랐어요. 그 당시에는 퀸의 정규 앨범 전곡을 듣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유튜브가 있어서 얼마든지 퀸의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됐어요. ^^

2018-11-23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1-23 16:39   좋아요 0 | URL
퀸의 노래 중에는 수수께끼를 떠올리게 하는 노랫말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 노래들을 계속 듣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

stella.K 2018-11-23 14: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영화는 정말 큰 스크린으로 봐야하는데 말야.
퀸은 한때 나도 좋아했었는데 선듯 극장으로 발 길이
닿질 않는다. 노력해 봐야겠어.ㅎ

cyrus 2018-11-23 16:41   좋아요 0 | URL
정말 오랜만에 ‘영화관에 직접 가서 봐야 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영화가 <보헤미안 랩소디>에요. 진짜 이 영화는 영화관에 가서 봐야 합니다! ^^

카알벨루치 2018-11-23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보기 귀챦아하는 제가 이건 좀 보고 싶네요 과연...ㅎㅎ

cyrus 2018-11-23 16:44   좋아요 0 | URL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긴 하는데, 영화보다 책을 더 좋아해서 영화관에 가는 일이 거의 없어요. 대부분 주위 사람의 권유로 영화를 보는 경우가 많았어요. 퀸의 노래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영화관에 가는 일이 없었을 거예요. 저는 심야 시간에 이 영화를 봤는데, 그 때 사람들이 많이 없었어요. 지금은 좋은 시간대에 좋은 좌석 예약하기가 힘들 거예요. ^^;;

설해목 2018-11-23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고딩때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통해서 퀸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 참 많이 들었던 곡들이네요.
한동안 멀리하다가 최근 영화 개봉으로 요즘 다시 듣고 있는데 역시나 명곡은 언제 들어도 감동을 받게 되네요. ^^

cyrus 2018-11-26 17:10   좋아요 0 | URL
저는 운이 좋았네요. 라디오 시대가 아니라서 팝송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퀸의 대표곡을 wma, mp3 형태로 저장한 블로그를 발견하면서 퀸의 존재감을 알았어요. ^^

카알벨루치 2018-11-23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자꾸 “Bicycle”이 듣고 싶네요...

cyrus 2018-11-26 17:12   좋아요 0 | URL
Bicycle Race. 유명한 노래는 아니지만, 뮤직비디오는 유명하죠.. ^^;;

쟝쟝 2018-11-23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금지곡이었다니..... 넘 놀랍..

cyrus 2018-11-26 17:15   좋아요 1 | URL
노랫말과 뮤직비디오가 파격적인 퀸의 노래가 생각보다 많아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Bicycle Race의 뮤직비디오는 청소년 관람 불가입니다. ^^;;

북프리쿠키 2018-11-24 1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친구랑 영화보고 .. 아내와 또 봤네요^^

cyrus 2018-11-26 17:15   좋아요 2 | URL
생각날 때마다 다시 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

oren 2018-11-24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요일 밤에 아내랑 이 영화를 ATMOS 영화관에서 보고 완전 감동먹었어요.^^
그리고, 까마득한 옛날에 Radio를 통해 그토록 자주 들었던 노래들 가운데 아주 많은 곡들이 퀸의 노래라는 사실도 새삼 알았고요.^^ 어젯밤과 오늘 아침에도 라디오에서 퀸의 노래가 계속 나오더군요. 아마도 이 영화 때문인 듯싶어요.^^

cyrus 2018-11-26 17:25   좋아요 1 | URL
영화를 보고나서 퀸의 앨범 전곡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멜로디는 익숙한데, 제목은 모르는 퀸의 노래가 많을 것 같습니다. ^^

보물선 2018-11-29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번봐도 좋았어요!
 
몸짓으로 그림을 읽다
미야시타 기쿠로 지음, 이연식 옮김 / 재승출판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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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보통 언어의 교환만 대화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사소한 몸짓이나 미세한 표정 변화 하나하나 역시 언어가 될 수 있다. 누군가를 애절하게 사랑해본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으리라. 사랑하는 이의 표정 하나, 행동 하나가 얼마나 무겁고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것인가를. 의미의 교환이 일어나지 않을 때 싸움이 벌어진다. 사람들이 무심코 사용하는 몸짓은 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마음의 유리창과 같다. 우리는 말 이외에 몸짓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한다. 말보다 몸짓과 같은 비언어적 표현이 인간의 속내를 더 잘 나타낸다. 왜냐하면 말은 의식적인 통제 아래 표현되지만, 몸짓은 무의식 상태에서 표현되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몸짓 안에는 수많은 감정이 숨어 있다. 그런데 스마트폰과 1인 가구 생활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이웃이나 가족이나 연인이나 친구의 몸짓을 응시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 화면에 나오는 연예인의 몸짓만 응시할 뿐이다.

 

서양인들은 동양인보다 몸짓으로 감정을 더 많이 표현한다. 하나의 영토에 여러 민족과 어울려 살아온 역사가 긴 탓이다. 우리나라나 일본은 ‘단일 민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몸짓 언어를 잘 쓰지 않는다. 말보다 ‘몸’이 위주가 되는 공연은 서양에서 시작되었다. 몸 중심 공연 형식으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것이 마임(mime)이다. 마임은 ‘흉내’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됐다. 고대 그리스 · 로마 시대의 마임은 사람이나 사물을 몸짓으로 흉내를 내는 희극배우를 지칭했다. 이 마임이 중세에 이르러 언어를 배제한 채 몸짓으로만 이뤄지는 공연 양식을 지칭하게 된다. 교회가 연극의 현실 비판 기능을 누그러뜨리려 언어 사용을 금지한 데 대한 대응으로, 대사를 하지 않고 몸짓으로만 표현하는 마임의 양식화가 이뤄졌다. 마이머(mimer, 마임 배우)의 몸짓 자체가 언어이다. 연극의 대사만으로도 전달할 수 없는 감정의 모호함을 언어 없이 몸짓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 행위예술의 기본이다. 결국 마임은 몸에서 시작하지만, 환영(幻影)으로 끝나는 예술인 셈이다. 마이머가 침묵과 몸짓으로 건네는 말을, 관객들이 마음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대사 없이 인물의 몸짓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그림은 마임과 무척 닮았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몸짓 하나하나에 주목해야 하는 마임과 달리 그림으로 표현된 몸짓은 영구 보존된다. 감상자는 그림 속 등장인물의 몸짓을 천천히 살펴볼 수 있다. 따라서 그림 속 등장인물은 몸짓을 통해 의미를 전하고, 그림 밖 감상자는 인물들의 몸짓을 따라가면서 그림 속에 있는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다. ‘대사 없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는 그림이 인간들의 몸짓으로 표현되는 문화와 정서 속에 녹아들 때, 그 그림은 여전히 미술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훨씬 가까이 다가서 있지 않을까 싶다.

 

《몸짓으로 그림을 읽다》는 서양미술과 일본 미술에 표현된 다양한 몸짓에 주목하여 그림 속 이야기를 풀어낸다. 저자에 따르면 미술에 등장하는 몸짓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감정을 표현하는 몸짓(표정도 포함된다), 둘째는 의례적이고 관습적인 몸짓(정적인 몸짓), 셋째는 어떠한 특정 행동을 하기 위한 구체적인 몸짓이 있다. 그림은 전문가가 아니면 정확하게 화가의 의도를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알려준 40가지의 몸짓과 동작의 의미를 그대로 그림에 얹어 감상하기만 해도 온전히 그림 속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이 책은 미술 안내서로서 손색이 없다.

 

그러나 몸짓과 동작에도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동서양의 몸짓 언어 가운데 특히 수신호는 상반되는 것이 많다. 동양에서는 손가락을 굽히면서 수를 세지만, 서양에서는 손가락을 펴면서 셈을 한다. 우리가 승낙이나 돈의 사인으로 엄지와 중지로 동그라미를 만드는 것은 대부분 국가에선 비슷하나 브라질 등 일부 남미국가에선 여성의 은밀한 부위를 뜻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은 ‘승리’를 뜻하는 V자 손가락 동작을 하면서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줬다. 그러나 V자 손가락 동작을 할 때 손바닥을 바깥쪽으로 향해야 한다. 손등을 보이는 V자 손가락 동작은 욕설이다. 이 책은 같은 몸짓과 동작이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 어떤 의미로 해석되는지 풍부한 도판을 소개하면서 비교한다. 일본인 출신 저자의 집필 특성상 책에 실린 도판 중에 국내 독자들이 자주 접하기 힘든 일본 전통 미술 작품과 일본 근현대 미술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다만 저자가 동양 문화의 특징을 일본 문화로 한정하여 설명했기 때문에 한국, 중국 미술에 대한 언급이 적은 편이다. 이 책에 유일하게 (아주 잠깐) 언급된 한국 미술 작품은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다.

 

저자가 쓴 후기는 책을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이 책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3년에 걸쳐서 잡지에 연재한 글을 묶은 것이다. 글이 연재되는 기간에 저자의 외동딸이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생전 딸이 병원에서 지냈을 때, 가장 흥미롭게 본 글은 이 책에 실린 『기도하다』 편이었다. 기도는 ‘침묵의 언어’이다. 고백과 참회의 기도든, 희망과 염원의 기도든 극도의 진지함을 담은 침묵으로 기도를 한다. 기도하거나, 기도하는 사람(orans, 오란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보면 마음이 안정된다. 딸은 아버지가 쓴 글과 그 속에 있는 그림을 보면서 용기를 얻었고 마음의 안정을 찾았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그림은 그 자체가 치유이다. 미술을 감상하며 보내는 시간이 치유의 시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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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예술이 된다 - 셀피의 시대에 읽는 자화상의 문화사
제임스 홀 지음, 이정연 옮김 / 시공아트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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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은 어떻게 봐야 하나. 화가의 의도, 구성 방식 등 여러 사항이 있지만, 그것이 정답일 수는 없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상투적이지만, 그냥 천천히 하나하나씩 세심하게 바라보는 일이다. 자화상에는 화가의 기술적 숙련성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성격이나 관심 그리고 화가가 속한 한 시대의 풍경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므로 자화상은 화가 개인의 얼굴이고, 역사이고, 기억이다. 화가가 살아온, 살아낸 자취들로 자욱하다. 따라서 자화상은 책이다. 《얼굴은 예술이 된다》는 예술가의 ‘얼(spirit: 정신)과 ‘굴(form: 형상)을 담는 미적 표현으로 예술가의 자화상에 초점을 두고, 중세부터 시작된 ‘셀피(selfie)’ 문화 읽기를 시도한다. 이 책이 주목한 것은 자화상에 남아있는 예술가의 흔적, 즉 자기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이다. 그들은 어떻게 이 세상을 표현했고, 어떻게 자기 삶을 살고 갔을까? 예술도 적어도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면서 동시에 삶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한 방식이다.

 

미술사에서 자화상의 발전은 거울의 발명과 기술력에 의존해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고대에는 은이나 청동, 금속을 가공해서 거울을 만들었고, 오늘날에 쓰이는 유리 거울은 17세기 유럽에서 그 절정을 이루었다. 그림과 거울은 의미적인 면에서 다양함을 전해준다. 인간 존재와 거울의 갈등 관계, 즉 선악의 문제,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양면적 관계 속에서 늘 화가들은 고민해 왔으며 자화상을 통해 내면적 자아를 표출해 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은 유리 거울에 비친 상(象)을 똑같이 그리는 자화상의 일반적 정의가 자화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화가의 다양한 변주를 축소한다고 강조한다. 책의 저자는 자화상의 의미를 조금 더 확장하여 접근한다. 그는 또 거울 기술의 발달과 자화상은 크게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이제까지 통용되어 온 ‘거울 신화’는 자화상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중세 시대 미술의 참모습을 가려왔다. 그래서 이 책은 흔히 ‘암흑의 시대’로 알려진 유럽 중세를 찬란한 빛의 미술을 꽃피운 시대임을 강조하면서 중세에 나온 자화상들을 소개한다. 중세의 자화상은 수도원에서 제작한 필사본에 많이 등장한다.

 

책은 사회적 상황에 따라 예술가들의 ‘자신’에 대한 인식과 표현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여준다. 대부분 예술가는 아틀리에에 있는 거울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똑같이 재현한 건 아니었다. 15세기까지 예술가들은 자화상에 자신을 드러내더라도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들 정도로) 주변 인물로 등장하거나 심지어 다른 인물로 위장한 모습으로 묘사되곤 했다. 이 시대 예술가들의 사회적 지위는 그다지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자신의 재능과 명성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자화상이 등장한다.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는 화가로서 분명한 자의식이 담긴 자화상을 그렸다.

 

‘얼’, 즉 정신(영혼, 기분,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그것을 시각화한다는 것은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림이란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보일 수 없는 것을 어떻게든 시각화하고자 애쓰는 일이다. 시스티나 대성당 천장화는 미켈란젤로(Michelangelo)의 재능보다 혼(spirit)이 담긴 걸작이다. 미켈란젤로는 4년 동안 엄청난 작업의 진행 계획을 짜고 거기에 따라 일을 진행해나갔다. 천장 밑에 세운 작업대에 누운 채 천장에 물감을 칠해나가는 고된 작업이었다. 이로 인해 눈과 목에 이상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혼자서 4년 만에 이 대작을 완성했다. 몸을 혹사할 정도로 힘든 작업에 불만이 많았던 미켈란젤로는 한껏 몸을 뒤틀며 그림을 그리는 모습의 캐리커처를 통해 자신의 심정을 표현했다.

 

카라바조(Caravaggio)는 자신의 그림에 등장하는 살인자 혹은 살해당한 자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로 묘사했다. 그의 작품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을 보면 다윗이 잘린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다. 다윗은 젊은 카라바조를, 골리앗은 중년 카라바조를 의미한다. 젊은 카라바조가 타락한 중년 카라바조를 살해하는 의미로 해석되는 이 그림 속에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기도 했던 화가의 참회가 반영되어 있다.

 

온전히 ‘나’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는 일은 아무래도 어렵다. 수많은 자화상을 남긴 고흐(Gogh)는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을 아는 것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신을 그리기도 어렵다”고 고백했다[주]. 우리는 거울 안에 비친 제 모습으로부터 내면을 찾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거울은 내 외모를 잠깐 확인하게 해줄 뿐이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에는 ‘굴’만 있다. 내가 생각하는 ‘나’, 즉 ‘얼’은 이미 거울 속에 없다. 이 책에 나오는 자화상 대부분은 전통적인 자화상과 거리가 멀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모습을 똑같이 그리기보다는 참신하고 개성 있는 형태(다른 사람으로 변장하거나, 가면을 쓰거나, 얼굴 형태를 변형하는 방식)로 구현하면서 내면의 깊이를 전달하려고 했다. 따라서 자화상은 끊임없이 거울을 깨고 변화하지 않으면 틀(거울에 비친 상)에 갇히고 마는 장르이다. 자화상이 참된 예술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예술가 자신만의 시간도 필요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는 상상력도 필요하다. 훌륭한 자화상이란 완성되었어도 ‘지금도 나를 찾고 있는’ 그림이다. 자화상은 시간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내면의 감정을 가시화하는 현재진행형 예술이다.

 

 

 

[주] 제임스 홀, 이정연 옮김, 《얼굴은 예술이 된다》, 시공아트, 3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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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9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1-12 12:55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게다가 읽어야 할 책들이 많아서 북플 접속이 뜸해졌어요. ^^;;

페크(pek0501) 2018-11-10 18: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타인에 대해 알기 어려운 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알기 어렵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어떤 경험을 하면서 또는 책을 읽으면서 또는 다른 방법으로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을 뿐, 다 알았다고 마침표를 찍을 수는 없겠지요.
어제와 다른 오늘의 내가 있고, 오늘과 다른 내일의 내가 있을 테니까요.

cyrus 2018-11-12 12:57   좋아요 0 | URL
글을 쓰면서 과거에 했던 생각과 지금의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는 걸 느껴요. ‘나‘에 대해서 글을 쓰려면 자서전 같은 글 한 편으로는 안 되겠어요. ^^
 
화가는 무엇으로 그리는가 - 미술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도구들
이소영 지음 / 모요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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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실력이 탄탄한 화가라면 재료와 도구에 구애받지 않고 훌륭한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 화가들은 당대 최신 도구와 재료를 사용하는 데 누구보다 앞선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였다. 미술사의 여러 거장은 그럴듯한 그리기 방식만을 만든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필요한 재료와 도구를 직접 선정하면서 이용할 줄 아는 진정한 예술가들이다.

 

《화가는 무엇을 그리는가》서양 미술사를 빛낸 진정한 조연들에 대한 책이다. 화가가 주연이라면 화가들이 사용한 재료와 도구가 조연이다. 대부분의 미술사는 주연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이 책은 화가들이 즐겨 썼던 미술 재료와 도구를 통해 미술의 흐름을 읽어나가도록 한다. 화가들은 특별한 재료와 도구를 가진 것이 아니고,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을 이용하여 작품을 만든다.

 

 

 

 

 

 

인간은 불을 도구로 사용하여 다른 동물들과는 차별된 지점을 갖게 되고 인류로서 살아가게 된다. 인류학자들은 불을 사용하여 요리하며, 인류가 크게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불의 이용은 인류의 먹을거리 행태에도 큰 획을 그었다. 그뿐만 아니라 불은 동굴에서 사는 인간에게 ‘그림 그리는 방식’을 안겨주었다. 인간이 사용한 최초의 미술 도구는 ‘불’이었다. 구석기 시대 인간들은 불빛을 조명 삼아 동굴 벽화를 그렸다. 화려한 유채색은 아니지만, 동굴 벽화에서 발견되는 붉은색과 갈색도 그림의 역사에서 빠뜨릴 수 없다. 인간이 사용한 최초의 채색 안료는 붉은색 황토에서 추출한 물질이다. 인류 최초의 그림 쇼베(Chauvet) 동굴 벽화를 비롯한 라스코(Lascaux) 동굴 벽화 등 고대 구석기 시대 벽화는 대부분 곱게 간 황토로 만든 안료로 그려졌다.

 

 

 

 

 

 

유화가 나오기 전에 화가들이 많이 사용한 물감은 템페라(tempera)였다. 안료에 달걀노른자 등을 섞어서 만드는 템페라는 중세 이후에 유행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최후의 만찬』은 템페라로 제작된 작품이다. 템페라로 그린 그림은 빨리 마르는 것이 장점이지만, 이 때문에 색이 매우 불투명하고 강력해 계속 그림을 그려도 섞이지 않는다. 달걀은 템페라 물감의 중요한 재료였다. 책의 저자는 템페라를 ‘부엌에서 태어난 물감’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 역사적인 물감을 만든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화가가 아니라 ‘부엌에서 일하는 여성들’이었을 것이다. 템페라는 오래 보관할 수 없다. 여성들은 날마다 부엌에 가서 달걀노른자와 안료를 섞는 지루한 일을 반복했을 것이다.

 

화가들은 템페라 그림의 장단점을 보완한 이후로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이용해 그림을 제작한다. 이로써 목제 패널화, 판화, 캔버스에 그린 유화 등이 출현하게 된다. 기하학적 원근법을 특징으로 하는 근대 회화는 사진과 같은 원리로 작동되는 광학 장치, 즉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에 기초하고 있다. 렌즈와 거울을 사용하면서 간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나무 상자 형태로 발전한 카메라 옵스큐라는 18세기에 이르러 화가들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화가들은 손에 쥘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쓴다. 물감의 쓰임새도 다양하다. 손바닥이나 발바닥, 물건 등에 묻혀 꾹꾹 찍기도 하고, 문지르거나 뿌리기도 한다. 신문지, 모래, 돌멩이, 심지어 고철 기계 등 그림을 그리거나 공예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면 일상생활 속의 모든 것들이 다 ‘미술’이 된다. 헤겔(Hegel)은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되는 순간 예술은 끝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술비평가 아서 단토(Arthur Danto)는 헤겔이 말하는 ‘예술의 종말’을 ‘예술가들의 해방’으로 해석했다. 지금도 예술가들은 일상적인 것을 예술로 변용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주3].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인간이 지구를 떠나 우주에서 생활하는 시대에도 예술가들은 우주를 소재로 작품을 만들 것이다. 팝 아트(Pop Art)의 거장 로버트 라우션버그(Robert Rauschenberg)는 나사(NASA)의 초청으로 아폴로 11호 발사대에 접근할 수 있었던 예술가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나사가 추진하는 유인 우주 탐사 계획 ‘아폴로 프로젝트(Apollo Project)에서 인류가 지구를 넘어 우주로 새롭게 도약하는 희망의 증거를 발견했고, 아폴로 프로젝트를 주제로 한 연작 석판화를 제작했다.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라우션버그는 나사가 제공한 수백 장의 우주 사진을 이용했다.

 

우리 사회는 변화에 관대하지 않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 너무 지나치게 바꾸려고 한다면서 다소 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럴까. 변화의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게 능사일까. 변화를 지향하지 않는 세상에서 창조라든가 예술이라든가 하는 말은 가당치도 않다. 그렇지만 ‘얼리 어답터’인 예술가들은 변화와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그 순간 그들은 자신들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미의식을 구현하기 위해 새로운 재료와 도구를 찾아보거나 이것저것 다 사용해볼 것이다. 예술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재료와 도구는 어디에나 있는 법이다.

 

 

 

 

[주1] 로잘린드 마일스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 (동녘, 2005)

 

[주2] 카트리네 마르살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부키, 2017)

 

[주3] 아서 단토 《일상적인 것의 변용》 (한길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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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11-07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상적인 것의 변용, 을 생각하니 예전에 책에서 보았던 변기가 생각나네요. 변기로도 작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줬지요.

cyrus 2018-11-09 12:12   좋아요 1 | URL
똥도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된 적이 있어요. 이탈리아의 예술가는 캔에 담은 자신의 똥에 ‘예술가의 똥’이라는 이름을 붙여 전시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