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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의 행복 - 행복해지고 싶지만 길을 몰라 헤매는 당신에게
법륜 지음, 최승미 그림 / 나무의마음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책이 밥 먹여주랴.” 이 한마디면 누구나 할 말이 없다. 여기서 책에 대한 냉소적인 힐난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책에서 행복의 비결을 찾으려고 했다가 실망해 본 사람에게 이 말 한마디 해주고 싶다. “그래, 밥 먹여준다.” 책을 읽고 나서 깨달음이 퍼뜩 떠오른 경험 있는 독자라면 자신 있게 대답해야 한다. 행복해지고 싶은 인생길을 찾는 것. 누구나 고민해본 적 있는 심오한 문제다. 사람들은 《법륜 스님의 행복》(약칭 ‘스님의 행복’)이 어려운 고민을 해결해주는 책이라고 믿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행복해졌다는 사람이 있다면 나도 할 말이 없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사람의 뒤통수를 치고 싶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문법상 명사지만, 현실에선 동사에 가깝다. 행복을 글로 배운다고 해서 완전히 내 삶의 기쁨이 충만하기 어렵다. 행복을 글로 배우는 것과 정말 행복해지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한 것은 서로 엄연히 다른 경우다. 행복하기 위한 방법은 삶의 과정 또는 행위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스님의 행복》을 읽은 독자는 자신의 서평에 책 속에 있는 가르침을 가슴에 끌어안은 채 눈물을 흘렸고, 드디어 해답을 찾았다고 썼다. 그 독자는 수행자도 이루지 못한 깨달음을 불과 며칠 만에 알았으니 스님을 죽이는 일만 남았다. <임제록>에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달마를 만나면 달마를 죽여라’는 그 유명한 말이 있지 않은가. 이제 스스로 자기 삶을 다스리면 된다. 그런데 마음으로만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부처의 실체를 만나지 못한다. 즉 진정한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이러면 힘든 현실 앞에서 가슴이 답답함을 호소한다. 이러면 스님의 말씀이 별 의미가 없어진다.
스님은 인생에 정답이 없으므로 자기가 선택한 대로 사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스님의 명성을 믿고 이 책이 인생을 유익하게 해주는 정답이라고 믿으면 크나큰 오산이다. 스님의 가르침이 무조건 옳고 실천해야 한다고 볼 수 없다. 스님의 말씀도 자유로운 사유의 길을 막아버리는 편견과 구속의 벽이 되기도 한다. 나는 과거의 불행했던 기억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스님의 조언을 수긍하지 않는다. 스님은 고통스러운 삶의 한 장면을 그냥 지나가야 할 과거로 생각하고, 현재에만 집중하라고 말한다. 과거의 나쁜 기억을 계속 안으면 자신만 더 괴로워진다. 그래서 스님은 자신에게 불행의 씨앗을 안겨준 사람의 심정을 헤아려보면서 그동안 쌓인 원망의 짐을 내려놓으라고 조언한다. 나를 괴롭힌 가해자가 반성한다면 갈등 관계를 청산할 용의가 있다. 그렇지만 가해자가 일말의 반성도 없다거나 자신의 죄를 모르는 척하는 안하무인으로 행동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 상황에서 피해자가 가해자의 심정을 헤아리고 그를 용서하는 것은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양보하는 태도처럼 느껴진다. 오히려 피해자의 마음에 상처가 덧날 수 있다. 나쁜 기억을 스스로 내려놓으려는 의도는 좋다. 하지만 스님은 상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간단하다고 말한다. 고통의 짐이 너무나도 많으면 레테의 강 속으로 던져버리기가 쉽지 않다.
스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님의 행복》을 읽은 독자들까지 지적하는 나의 까칠한 태도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당연히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내 생각의 허점을 알려줘도 좋다. 그런데 다름을 인정하지 못한 사람은 내 생각을 비난한다. 불만이 있어도 제발 그러지 마시라. 스님이 말씀하셨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자고. 우리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스님의 보호 속에서 내 행복을 쌓을 이유가 없다. 법륜 스님을 만나면 그를 죽여라!
※ 서평대회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