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를 떠나보내며 - 상자에 갇힌 책들에게 바치는 비가
알베르토 망겔 지음, 이종인 옮김 / 더난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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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서가들은 서재 얘기든 책에 대한 책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그들이 좋아하는 책에 특별한 특징이 있다. 애서가가 쓴 책은 또 다른 어떤 책에 대한 입맛을 돋운다. 《서재를 떠나보내며》는 이 두 가지 모두를 만족시킨다. 고구마 줄기처럼 꼬리를 물고 나오는 ‘책 속의 책들’은 《신곡》, 《돈키호테》 같은 서양 문학의 알토란들이다.

 

책방 점원에서 시작해서 아르헨티나 국립 도서관장 자리까지 오른 알베르토 망겔(Alberto Manguel)은 자신만의 도서관을 만든 애서가이다. 학창 시절부터 망겔의 꿈은 도서관 사서였다. 작가가 되고 책을 모으다 보니 어느 사이에 책장들이 하나둘씩 늘어났고, 결국 프랑스 루아르강 계곡에 3만 5천여 권의 책이 소장된 개인 도서관을 만들었다. 그러나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이 있듯이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 망겔도 예외가 아니었다. 미국 맨해튼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면서 개인 도서관에 있던 책들을 떠나보냈다. 《서재를 떠나보내며》는 해체를 맞이하는 개인 도서관에 보내는 일종의 송별사(送別辭)다.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는 ‘서재 속에 죽은 사람들이 있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죽은 사람들’이란 책을 남긴 저자들의 정신이다. 결국 서재는 책들의 공동묘지이고, 서재를 애지중지 관리하는 애서가는 묘지기다. 그러나 프랑스에 있는 서재를 떠나보낸 망겔 입장에서는 사르트르의 비유가 우울하게 느껴질 것이다. 서재의 해체는 곧 ‘서재의 죽음’, ‘기약 없는 이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싸는 행위를 받아들일 수 없다. 책을 한 권 한 권 서가에서 빼내고, 그 책을 종이 수의 속에 집어넣는 것은 우울하고 사색적인 행위로 마치 오래도록 지속되는 작별 인사 같은 것이다. (60쪽)

 

 

서재에 잠든 ‘죽은 사람들’을 지켜본 묘지기가 공동묘지 하나가 사라져가는(죽어가는) 모습까지 봐야 한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에게 서재는 온전히 나에 대한 ‘자서전’이며, ‘나’라는 존재의 일부이다. 서재는 오로지 나를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자기 맘대로 책을 꽂을 수 있다. 도서관에 있는 책은 공공 소유물이다. 도서관 책에 밑줄을 긋거나 필기를 하면서 읽을 수 없다. 그러나 개인 서재에 꽂힌 책은 개인 소유물이다. 망겔은 책을 빌려주는 행위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그는 개인 서재를 잃은 것에 대한 아쉬운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나는 책은 나의 소유물이고 또 나라는 사람의 일부라고 느낀다. 나는 책을 빌려주는 것을 귀찮아한다. 나는 책을 빌려준다는 것은 절도를 유혹하는 행위라 믿는다. 나의 서재는 나라는 사람을 에워싸고 또 반영하는 온전히 사적인 공간인 것이다. (17~18쪽)

 

 나는 늘 공공 도서관을 사랑했지만 한 가지 모순은 고백해두어야겠다. 나는 도서관에서 글을 쓰거나 일을 하면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 조급한 나는 원하는 책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빌려 온 책의 여백에 필기를 하지 못한다는 것도 너무 싫다. 책에서 어떤 놀랍고 진귀한 것을 발견했는데 그 책을 도서관에 다시 반납해야 하는 것도 싫다. 나는 탐욕스러운 약탈자처럼 내가 다 읽은 책이 나의 것이 되기를 바란다. (28~29쪽)

 

 

서재를 떠나보내고 난 뒤에 망겔은 국립 도서관장이 된다. 그는 자신의 임무를 염두해서 그런지 책의 후반부에 국립 도서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가 운영하고 싶은 국립 도서관은 누구나 마음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보금자리 같은 곳이다. 망겔에게 서재와 도서관은 개인과 사회 전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이다. 글의 영감과 간접경험을 얻는 곳이기도 하고, 때론 번잡한 삶에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안식의 장소였다. 책 속에 담긴 방대한 인류 정신의 원형을 기억하게 만들고, 활자와 세상을 향해 더 열린 상상력을 갖게 하는 곳이기도 했다. 서재는 삶의 기록이며, 독서편력의 역사이다. 다소곳하게 책이 놓인 서재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따스해진다. 서재는 우리의 마음에 활력을 불어주는 오아시스 같은 천국이다. 책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서재야말로 보르헤스(Borges)가 원했던 ‘천국의 도서관’이 아니었을까.

 

 

 

 

※ Trivia

 

2쇄를 찍을 때 다음과 같은 오자들을 교정해야 한다.

 

28쪽에 안나 슈웰(Anna Sewell)의 사망 연도가 ‘1978년’으로 되어 있다. 그녀는 1878년에 세상을 떠났다. 52쪽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작가 이름을 ‘마르셀 푸르스트’라고 표기되어 있다. 176쪽 옮긴이 주에 ‘프루스트’로 적혀 있는 걸로 봐선 52쪽의 ‘푸르스트’는 인쇄 오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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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8-22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8~29쪽)의 글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cyrus 2018-08-23 16:54   좋아요 1 | URL
망겔의 책을 다 읽고 도서관에 반납했을 때 기분이 이상했어요.. ㅎㅎㅎ
 
어떻게 일할 것인가
아툴 가완디 지음, 곽미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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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은 마음속에 숨기고 있는 것을 털어놓는 행위다. 모든 것을 거짓 없이 쏟아내는 이 행위는 진실로 귀결되는 인간의 솔직한 언어이다. 이런 면에서 고백의 언어로 채워진 현직 임상 외과 의사 아툴 가완디(Atul Gawande)의 글은 독자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오고, 독자들의 가슴에 새겨진다.

 

 

 한때는 의사로서 가장 힘든 싸움이 기술을 터득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비록 일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하려는 찰나 실패를 겪고 좌절하곤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업무가 주는 긴장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가끔 지칠 대로 너덜너덜해지기는 해도 말이다. 내가 깨달은 바로는, 의사라는 직업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는 능력 안의 일과 능력 밖의 일을 아는 것이다. [주1]

 

 

‘전문 의료인’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난 그의 솔직함을 보여주는 말이다. 그러나 그 솔직함이 의사의 능력에 대한 불신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인 의사도 위험과 책임이 따르는 일에 고뇌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 일할 것인가》(웅진지식하우스, 2018)는 전문 의사가 쓴 자성록이다. 가완디는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는 수술실에서 화약 냄새나는 야전병원까지 넘나들면서 고군분투하는 의료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다양한 의료현장 사례를 되돌아보면서 최선의 의료 행위가 무엇인지 질문하고, 그 행위에 합당한 의료인의 역할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한다.

 

출판사가 새롭게 붙인 ‘어떻게 일할 것인가’라는 제목보다는 원제(Better: A Surgeon’s Notes on Performance)가 책의 핵심을 보여주는 명확한 표현이다. 책의 원제에 들어있는 단어 ‘Performance’는 ‘의사 일을 하면서 얻는 성과’보다는 ‘개인과 사회에 작용하여 그것들을 변혁시키는 실행’을 의미한다.

 

저자는 자신의 첫 번째 저서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동녘사이언스, 2003)에서 의학은 ‘불완전한 과학’이며, ‘오류에 빠지기 쉬운 인간의 모험’이라고 했다. 또 의학을 ‘목숨을 건 외줄 타기’에 비유하기도 했다. 목숨을 건 모험이 없으면 의학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목숨을 건 외줄 타기’를 하는 의사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변혁의 목소리는 언제나 실천이 함께 하지 않으면 속이 비어있는 말로만 남는다. 삶 안에서 구체적 실행이 이루어지는 만큼 세상은 변할 수 있다. 저자는 손 씻는 일을 하찮게 여기는 의사들의 습관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 병원 감염관리팀 사례를 들려주면서 의사들의 덕목 가운데 하나로 ‘실천’을 강조한다. 인간은 완벽하게 합리적인 결정만 하도록 진화한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싫어하고 문제 해결 과정을 단순화하려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성실함’의 미덕을 가볍게 여긴다. 그렇지만 저자는 최악의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성실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어떻게 일할 것인가》는 의사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 아니다. 이 책 속에 인생의 진리가 있다. 사람이 하는 일에 완벽이란 없다. 사람이 하는 곳에는 반드시 실패가 생기므로 사람은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개선책을 찾아내어 변화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개선은 우리에게 주어진 ‘끝없는 노동’[주2]이다. 실패를 받아들여 개인 및 사회의 문제점을 끊임없이 개선하려는 노력은 성실한 태도에서 나온다. 《어떻게 일할 것인가》는 질주하듯이 살아가는 삶에서 잠시 멈춰 설 수 있도록 도와줄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현재의 삶을 더 나은 삶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주1] 아툴 가완디 지음, 곽미경 옮김, 《어떻게 일할 것인가》, 웅진지식하우스, pp. 190.

 

[주2] 같은 책, pp.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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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
김살로메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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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한 권의 책과 같다. 어리석은 사람은 대충 책장을 넘기지만 현명한 사람은 공들여서 읽는다. 그들은 단 한 번 밖에 읽지 못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독일의 소설가 장 파울(Jean Paul)의 말이다. 그가 하려는 말은 알겠는데 내 독서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인생은 단 한 번뿐이라서 책을 과식하는 편이다. 관심 가는 책이나 감동을 많이 주는 책에는 무의식적으로도 손이 먼저 간다. 읽고 또 읽을 때마다 번번이 새로운 깨달음과 감동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생기는 이러한 정서적 반응은 책과 마음이 전기가 통하듯 강하게 교류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고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감정의 동기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마음에 위로와 감동을 주는 책은 꼭 소설만이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진실이 담긴 수필을 읽고 감동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수필은 감동을 주는 삶의 새로운 진실을 발견하는 일과는 거리가 먼 일상적이고 진부한 ‘일기’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보는 사람을 민망하게 만드는 수필이 나오는 이유는 글쓴이들이 수필을 붓 가는 대로 쓰는 쉬운 글로 잘못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수필은 자기 고백적 글쓰기다. 자기 고백적 글쓰기는 경험을 의미화하고 객관화함으로써 경험과 자신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만든다. 그리고 그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은, 글쓴이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느끼는 독자들의 반응, 즉 감정이다.

 

괴롭거나 부끄러운 일일수록 망각과 ‘추억 보정’에 기대어 잊어버리고 싶을 텐데 굳이 글쓰기로 풀려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치유를 목적으로 글을 쓰고 싶어 한다. 그들은 부정적인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감정의 덩어리를 재료 삼아 글을 써서 견딜 만한 수준의 내용으로 다듬는다. 내게 이런 의미가 있었다는 식으로 해석하게 되면 한결 그 일을 돌아보는 게 쉬워진다. 따라서 자기 고백적 글쓰기, 즉 수필은 아픔의 상처를 다른 느낌으로 재생한다는 뜻에서, 덧난 상처를 아물게 하는 ‘연고’가 될 수 있다.

 

 

 “안동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을 보냈다. 수몰민으로 대도시에 버려진 채 십 대와 청춘을 버겁게 앓았다. 그 시절의 트라우마가 글쓰기의 자양분이 되었다. 아픈 어제가 모여 꽃핀 오늘로 거듭나는, 치유로서의 글쓰기에 매혹을 느낀다.”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 작가 소개중에서)

 

 

일상생활 속에서 잔잔하게 가슴 저미게 했던 느낌들을 차분한 글로 풀어내 첫 번째 수필집을 펴낸 소설가 김살로메. 그녀는 치유로서의 글쓰기, 자기 고백적 글쓰기에 깊은 관심이 있다. 그런 관심에 부응한 책이 바로 이 첫 번째 수필집이다. 그녀는 삶의 흔적을 찾듯 끼적거렸던 글들을 오롯이 담아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아시아, 2018)이란 수필집을 펴냈다. 김살로메의 수필은 특별히 화려한 문체를 자랑하거나 하지 않는다. 내용도 특별할 게 없다. 그저 일상의 세목을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을 뿐인데, 그 잔잔함이 요즘같이 과장되고 억지수를 써야만 겨우 존재를 인정받는 세태에서 오히려 적잖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일천 글자 분량의 수필은 소중한 일상을 엮은 마음의 동화 같은 글이다. 마음속 동화이기 때문에 흘러가 버린 시간에 대한 향수를 불러온다. 너무 바쁜 일상 때문에 잊고 살아온 너와의 관계에 대하여 소중했던 가치를 일깨워준다. 『엄마의 재봉틀』은 스치듯 사라진 일상 속 미세한 풍경을 되살린 글이다. 쉼 없이 돌아가는 재봉틀 소리는 어린 시절 엄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소재가 된다.

 

 

 엄마가 남긴 베갯잇, 방석, 이불보 등 다양한 소품들을 보면서 재봉틀을 돌리고 돌리던, 굳은살 밴 엄마 뒤꿈치를 오래 기억할 것이다. 바늘 자국이 지나간 엄마 오른손 검지의 상처를 떠올리며 당신 노동의 숭고함을 되뇌는 것도 잊지 않겠지. (엄마의 재봉틀23)

 

 

많은 이들이 자신을 미워하거나 타인을 미워하면서 산다. 어린 시절 글쓴이는 재봉틀 소리를 싫어했고, 그것을 쉼 없이 돌리는 엄마의 삶을 ‘동조 없는 연민’[*]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어른이 된 글쓴이는 치유로서의 글쓰기를 통해 부끄러운 기억을 억압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자신의 눈앞에 그대로 펼쳐놓고 실체를 확인한다. 『엄마의 재봉틀』은 글쓴이의 마음뿐만 아니라 소중한 추억이 깃든 엄마의 물건을 보듬고 쓰다듬는 치유력을 지닌다.

 

김살로메는 경륜을 찬미하는 목소리가 드센 이 시대에 새삼 ‘진정한 어른 되기’를 고민하는 작가이다. 『꼰대라는 말』, 『시청과 견문』은 ‘어른 되기의 어려움’에 대한 수필이다. 글쓴이의 표현에 따르면 ‘시청(視聽)은 흘깃 보는 것이고, ‘견문(見聞)은 제대로 보고 듣는 것이다. 꼰대는 제대로 보고 들은 것이 없으면서도 ‘견문’했다고 큰소리친다. 그리고 ‘내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젊은 세대를 가르치려고 한다. 꼰대는 “요즘 애들은”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어른은 시간이 지난다고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가다듬는 과정의 결과로 얻어지는 칭호이다. 수필집에는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한 작가의 내적 성찰이 돋보이는 글이 수록되어 있다. 큰 것, 강한 것, 힘센 것, 자극적인 것이 세상의 중심에서 위압하는 이 시대에 김살로메는 작은 것, 소박한 것이 우리 삶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이야기한다. 독자는 그녀의 수필집에서 마치 진흙 속의 연꽃처럼 성찰과 마음의 다스림을 실천하는 한 사람의 성숙한 어른을 만난다.

 

독자는 교리적인 글에서보다는 정서에 호소하는 글에 감동한다. 문학에서의 감동이란 내면을 두드리는 언어의 힘에서 나온다. 일천 글자로 채워진 소박한 수필에 인간적 애정을 가지고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힘이 있다.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은 소박한 경수필만 모은 책이 아니다. 그 속에 세상을 밝고 긍정적으로 보면서 그 가운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글쓴이의 지혜가 있다. 성숙해진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생각했던 것을 얼마나 더 절실하고 강도 높게 살펴보고 그렇게 해서 자신의 삶과 존재를 어떻게 바꾸는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요즘은 반성과 성찰이라는 감정 상태가 아예 없어서 사유를 거부하는 꼰대들도 글을 쓴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엉망진창이라고 해도 이 땅에는 순수한 영혼을 향한 지향을 일상에 잊지 않고 글을 쓰는 김살로메가 있기에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

 

 

 

[*] 엄마의 재봉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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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6-16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글쓴이의 지혜,라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cyrus 2018-06-18 16:43   좋아요 0 | URL
스쳐 지나갈 법한 평범한 일상을 주제로 삼아 간결하게 글을 쓴 살로메님의 필력에 감탄했습니다. 프레이야님처럼 살로메님도 리뷰집이나 영화 리뷰집 한 권 내시면 좋겠어요. ^^

페크(pek0501) 2018-06-16 14: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요를 열 번 누르고 싶은 리뷰입니다. 잘 쓰셨다고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cyrus 2018-06-18 16:46   좋아요 0 | URL
수필집에 보면 ‘문장 털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글이 있어요. 이 글에서 살로메님이 깃털로 치장하듯이 화려한 수사가 장식된 글보다는 알짜배기 문장만 남은 글이 더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그런 무색, 무취의 리뷰를 쓰고 싶었는데, 실패했습니다.. ^^;;

sprenown 2018-06-16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없이 끄적거린다고 해서 모두 ‘글‘이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 리뷰 네요^^. 반성합니다!

cyrus 2018-06-18 16:51   좋아요 0 | URL
매일 틈만 나면 배설되는 문장들과 과시용 사진을 보고 싶지 않아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계정을 멀리 했어요. 짧은 글도 좋은 건 아니에요. 글이 길든 짧든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싶은 진짜 ‘알맹이’가 있어야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2018-06-16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18 16:54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1000자 이내의 리뷰를 쓰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어요. 글을 쓰면서 수필집의 매력을 한 가지만 소개하는 것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서니데이 2018-06-16 1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좋았어요. 간결하게 오래 공들여 쓴 느낌이 들었어요.
cyrus님의 리뷰 잘 읽었습니다.
오늘은 더운 토요일입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cyrus 2018-06-18 16:59   좋아요 1 | URL
뛰어난 소설, 수필을 두루 쓸 줄 아는 작가는 흔치 않아요.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많이 글을 쓴 작가도 소설의 분량보다 적은 경수필을 쓰기 어려워 할 것입니다. 독자에게 전달하고픈 메시지가 명확히 담겨 있는 경수필을 쓰는 것도 꾸준한 노력 아니면 쓰기 힘든 일입니다. ^^

2018-06-17 0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18 17:02   좋아요 1 | URL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취향과 유행을 이해하려면 독서모임에 참석해야 합니다. 20대들과 대화를 나눠 보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젊은) 문화를 알 수 있습니다.. ㅎㅎㅎ 20대들이 공유하는 문화를 모르면 꼰대가 되기 쉬워요. 꼰대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든요.

프레이야freyja 2018-06-17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곁들인 사진도 엄마의 재봉틀이 가장 좋았어요^^ 저는.

cyrus 2018-06-18 17:05   좋아요 0 | URL
이 책에 적재적소에 배치된 사진들이 글의 가치를 높여주었습니다. 수필집에 사진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
 
헝거 : 몸과 허기에 관한 고백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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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리직톤은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를 욕보인 죄로 아무리 먹어도 허기를 시달리는 저주를 받았다. 그가 워낙 탐욕스럽게 먹어치우다 보니 나중엔 음식 구할 돈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자 자신의 딸을 팔아 식탐을 채웠다. 그러고서도 배고픔을 억제하지 못해 자신의 몸을 뜯어먹었다.

 

에리직톤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식욕을 억제하지 못해 고민에 빠진 사람이 많다. 그들은 땀이 비 오듯 내릴 정도로 뛰기도 하고,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굶기도 한다. 그래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란 쉽지 않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나 자신과의 전쟁. 아마도 여성들이 다이어트에 대해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아름답고 멋지게 보이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에는 남녀노소가 없다. 역사적으로 보면 아름다움의 기준은 절대적이지 않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아야 하는 보통사람들이 동시대가 규정하는 아름다움의 조건에서 자유롭기는 쉽지 않다. 특히 TV 브라운관에서 뿜어내는 강력한 영상에 나만의 빛깔로 대항하기란 역부족이다. 개성에 주목하는 사회가 돼 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외모는 우리 사회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요소인 것이 변함없는 사실이다.

 

음식과 여성은 떼려야 뗄 수 없다. 여성들은 먹는 것 앞에서 환호하고 먹는 것 앞에서 절망한다. 음식과 여성은 애증이 교차하는 관계다. 먹어도 먹어도 또 먹고 싶다. 처음에는 배가 고파 허기진 듯이 먹었고, 그다음에는 많이 먹고 기운을 차려 일을 열심히 하겠다고 먹었으나 이제는 먹고 싶어서 먹는다. 먹고 또 먹다가 보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비만이 되었고, 비만이 되다가 보니까 끝없이 음식이 당겨 먹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끔 됐다. 한때 끊임없는 자기혐오로 스스로 자신의 마음에 상처를 낸 록산 게이가 그러했다. 그녀는 과거 몸무게가 261kg까지 나간 적이 있다. 《헝거》(사이행성, 2018)는 사람들의 쏟아지는 시선에 고군분투하는 자신의 몸에 확대경을 들이댄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몸을 저주받은 몸뚱이로 훑지 않는다. 그녀는 몸과 허기진 욕망을 덤덤하면서도 진지하게 고백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자신을 ‘당당한 여성’으로 보듬는다.

 

 

이 책을 쓰는 건 고백을 한다는 것이다. 나의 가장 추하고, 가장 연약하고, 가장 헐벗은 부분을 드러내겠다는 말이다. 나에겐 이런 진실이 있다고 털어놓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내) 몸에 대한 고백이라고 말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대체로 내 몸과 같은 몸의 이야기들은 무시되거나 묵살되거나 조롱받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 몸과 같은 몸을 보고 쉽게 단정해버린다. 왜 저 사람이 저런 몸이 되었는지 안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들은 모른다. 나의 이야기는 승리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말해야만 하고 더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다. [1]

 

 

그녀는 왜 뚱뚱해졌는가? 따지고 보면, 비만은 그녀의 잘못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열두 살에 성폭행을 당했다. 그녀는 그 끔찍한 기억이 할퀴고 간 자신의 삶을 이렇게 표현한다.

 

 

내 인생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별로 깔끔하지 않지만 반으로 나누어져 있다. ‘비포’가 있고 ‘애프터’가 있다. 몸무게가 늘기 전. 몸무게가 늘어난 후. 강간을 당하기 이전. 강간을 당한 이후. [2]

 

 

‘애프터(after)’가 된 삶은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어린 게이는 홀로 상처를 감당해야 했다. 학교에서 거의 매일 놀림을 당했다. 결국, 친구보다 ‘적’이 더 많아졌고, 늘 혼자였다. 그녀는 그 일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어른이 돼서도 치유의 시작도 못 한 영혼은 여전히 열두 살에 머물렀다. 그때마다 찾아오는 절망과 공허감에 외로웠다. 그 허기를 자연스레 먹는 것으로 채웠다. 그녀는 스트레스를 식탐과 폭식으로 메웠다.

 

식탐은 마음의 허기가 원인이다. 일부에선 살찐 사람을 단순히 절제력이 없다며 힐난한다. 그러나 세상살이의 억울함, 분노를 외부로 발산하지 못한 채 먹는 것으로 푸는 경우도 많다. 게이는 자신의 몸을 ‘감옥’ 또는 ‘성벽’으로 비유한다. 몸이 비대해지면 다른 사람들의 공격적인 시선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살을 찌우기 시작하면서 많은 것을 잃어야 했다. 특히 누군가를 좋아하고,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으며 인정받을 수 있는 진심 어린 애정을 포기한 적도 있다.

 

《헝거》는 비만을 혐오하거나 동정하는 시선들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저자가 고통을 무릅쓰고 다이어트를 결심하게 되는 경위를 독자에게 털어놓는다. 뚱뚱한 사람은 게으르며 덜 지적으로 여겨지는 반면 몸매 좋은 사람을 그 반대로 본다는 건 타인의 몸을 바라볼 때마다 빠지지 않는 고정관념이다. 그러고 보면 뚱뚱한 사람을 힘겹게 만드는 것은 무거운 체중만이 아니다. 사회적 편견과 냉대는 더 무서운 칼이 된다. 여성은 무수히 쏟아지는 음식 광고, ‘먹방’ 등 식탐을 조장하는 환경 속에 살면서 미디어로부터 날씬하기를 요구받는다. 끊임없이 자기 몸을 검열하며 다이어트에 몰두하고, 호시탐탐 몸을 찢고 보형물을 삽입할 궁리를 해야 하는 여성은 괴롭다. 록산 게이는 이런 모순된 환경 속에서 여성들은 삶의 무게를 가중하는 우울증에 짓눌리고, 자기혐오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한다.

 

록산 게이의 꿈은 소박하다. 다른 사람들처럼 마음대로 먹고, 옷을 입고, 글을 쓰면서 활동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에게는 ‘별것 아닌 일’이 그녀에게는 꼭 하고 싶은 꿈이다. 그러려면 자신의 몸을 자기만의 감옥이나 성벽에 가둘 필요가 없다. 나만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선 그것들을 무너뜨려야 한다. 남의 눈에 평생이 좌우되는 삶보다는 내 몸과 내 운명에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 그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움으로써 열두 살 이후로 잊어버린 ‘목소리’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인간의 실체를 외모지상주의와 성적 대상으로서의 가치만 바라보는 세상 속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너지지 않는 나’를 찾는 일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 몸에 눈뜨는 일, 그리고 더 나아가선 나의 세계를 건강하게 짓는 일이다. 그 세계를 보게 만드는 거울이 바로 이 책, 《헝거》이다.

 

 

 

 

 

[1] 23쪽

[2]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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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7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4-17 18:49   좋아요 0 | URL
허기를 지울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는지 고민해야겠습니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허기를 잊으려고 하는데요, 이 방법만으로는 안 되겠어요.. ㅎㅎㅎ
 
책 읽다가 이혼할 뻔
엔조 도.다나베 세이아 지음, 박제이.구수영 옮김 / 정은문고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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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각각 다른 공간에서 살던 남녀를 하나의 공간으로 합쳐 놓는다. 사람만 결합하는 게 아니다. 남자가 수집한 피겨(figure)는 공동의 공간으로 오고, 여자와 함께 살던 반려동물이 이사 온다. 취미가 같은 사람들의 경우엔 어떨까. 둘 다 작가인 남편 엔조 도와 아내 다나베 세이아는 독서를 좋아하는 부부이다. 결혼하면서 각각 소장하고 있던 책을 모두 공동의 공간으로 가져왔다. 그러나 책은 부부의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서로 완전히 다른 독서 취향이 문제가 된 것이다.

 

 

독서 취향이 전혀 맞지 않는다. 타니스 리의 은빛 연인이란 소설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인데 남편에게 읽으라고 추천해봤지만 표지 일러스트만 보는 등 마는 등하더니 얼렁뚱땅 넘겨버렸다. 용서 못 해! (다나베 세이아, 14쪽 각주)

 

 

아내는 괴담, 도시 전설, 환상 괴기 소설 등을 선호한다. 반면 남편은 순수문학, 과학, 역사, 인문학 등 제목만 봐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분야의 책들을 읽는다. 남편은 괴담, 도시 전설을 잘 믿지 않는다. 아내가 괴담과 도시 전설 등을 모을 때마다 싸늘한 눈빛을 보낸다. 부부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부부 교환 독서를 시작한다. 부부는 번갈아 가며 상대에게 권하고 싶은 책 한 권을 정한다. 상대가 권한 책을 읽고 서평을 쓴다. 책 읽다가 이혼할 뻔(정은문고, 2018)은 책 읽는 부부가 서평을 주고받으면서 부부 싸움 하는 과정을 엮은 책이다. 서평으로 부부 싸움을 하다니. 이 말이 선뜻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부부는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면서 부부 싸움을 하고 있다. 이 책의 제사(題詞)는 부부 교환 독서가 지향하는 바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글은 부부가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서로에게 책을 추천해온 격투의 궤적이다.

 

 

책 읽다가 이혼할 뻔은 부부가 공동으로 집필한 서평집이 아니다. 극과 극으로 나뉘는 독서 취향을 둘러싼 전쟁의 경과를 기록한 책이다. 남편은 무서운 그림을 싫어한다. 남편의 말에 따르면 무서운 표지의 책이 눈에 띄지 않게 딴 곳에 숨기거나 책을 뒤집어 놓는다고 한다. 남편이 스스로 폭로(요샛말로 자폭이라고 한다)한 약점을 파악한 아내는 서평 말미에 남편에게 가벼운 선전포고를 날린다.

 

 

이전 연재에서 남편은 표지가 무서운 책이 싫다고 폭로한 바 있다. 그렇다면 내가 아는 한 가장 무서운 표지의 책을 골라야지. 참고로 현재 남편은 아파서 이불 안에서 끙끙거리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읽는 쿠조(스티븐 킹의 소설-cyrus )는 또 다른 맛이 있지 않을까. (다나베 세이아, 43)

 

 

부부는 상대의 독서 취향에 볼멘소리하는 전쟁 같은 글쓰기로 서평을 연재하기 시작한다. 특히 서평 본문 밑에 부부가 각주를 달면서 아웅다웅하는 모습이 이 책의 백미. 그러나 어차피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 부부 교환 독서의 목적은 상대를 이해하기. 부부에게 책은 자신의 분신이다. 부부는 애지중지하게 여기면서 읽은 분신과 같은 책을 서로 바꿔 읽는다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거로 믿는다. 릴레이 서평이 거듭될수록 부부는 함께 살면서 알지 못했던 상대의 새로운 면을 조금씩 확인한다. 아내는 친분이 있는 편집장으로부터 처음으로 남편이 닭똥집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남편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아왔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스러워한다. 그녀는 복잡한 감정을 서평에 솔직하게 드러낸다.

 

 

남편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자신이 없어졌다. 그런 관계라고 생각한 건 나뿐인가. 결혼식 피로연 때 한 편집자의 엔조 씨 하면 닭똥집을 좋아하는 분으로…‥라는 말을 듣고서야 남편이 닭똥집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으니, 어쩌면 남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지도. 이 연재로 부부 사이가 나빠졌다는 것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때때로 남편은 아무 말 없이 기분이 나빠져 있는데, 그것도 분명 원인이 있겠지. 아무튼 되도록 빠른 시일 내 사과해야겠다. 미안해. (다나베 세이아, 87)

 

 

각자 오랜 취향에 익숙했던 두 사람에게 이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공통의 취미를 가진 사람들의 결합은 마이너스보다는 플러스가 많은 법이다. 부부는 상대의 취향을 이해하기보다는 인정한다. 직업이 같고, 취미도 같은 부부도 여느 부부와 다를 것 없이 크고 작은 갈등이 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결혼으로 맺어진 부부는 안 통하는 것이 정상이다. 공통의 취미만으로 서로를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없다는 건 결혼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부부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임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는 존재이다. 부부가 인생을 함께 걸어가려면 서로 다름을 받아들여야 한다. 결혼이 가슴에 와 닿지는 않는 비혼주의자에게 부부 생활은 남의 나라 일처럼 느껴진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편하게 이 책을 읽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이 독서라는 공통분모로 하나가 되고 싶은 애서가 부부에게 유용한 책이 될 거로 생각한다. 이 책에 부부가 언급하는 일본 서적 대부분이 국내 독자 입장에선 상당히 낯설다. 부부가 읽는 책 내용을 아는 게 중요한가? 책 읽다가 이혼할 뻔》은 서평집이 아니다. 이 책을 '서평집'이라고 생각하면서 펼치치 마시라. 부부가 책과 서평을 매개로 어떻게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지 살펴보시라. 이 책 제목을 처음부터 책 읽다가 더 사랑할 뻔이라고 정했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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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8-04-01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리보기가 없어서 내용이 많이 궁금했었는데 사이러스님 덕분에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재밌을 것 같아요. 일단 보관함으로 모셨습니다. ㅎㅎ

cyrus 2018-04-01 19:26   좋아요 1 | URL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평가가 좋지 않아요. 부부가 언급한 책 중에 번역된 것이 많지 않아서 우리나라 독자 입장에서 보면 서평에 공감하기 어려워요. 사서 읽는 것보다는 도서관에 빌려서 읽는 것이 좋습니다. ^^

북프리쿠키 2018-04-01 18: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고유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고 더욱더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러한 실천들이 무관심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면요.흔히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취향‘조차 닮아야 된다는 건 넌센스고 욕심아닐까요^^

cyrus 2018-04-01 19:27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배우자의 취향을 무시하는 것도 이혼 사유가 될 수 있어요.. ㅎㅎㅎ

AgalmA 2018-04-01 19: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앤 패디먼 <서재결혼시키기>랑 또 다른 책이네요^^
이곳 다른 분들도 그렇겠지만 책을 그냥 물성으로 보지 않는 터라 같은 책이어도 다른 사람 책은 다른 사람 책이죠! 분명 읽은 책이어도 남의 책으로 보면 정말 낯설어요;;

cyrus 2018-04-01 19:33   좋아요 1 | URL
저도 앤 패디먼의 책이 생각났어요. 가까이 지내는 부부도 서로 추천한 책들을 읽지 않는다고 해요. 예전부터 그래왔지만 저는 상대가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제가 읽은 책은 추천하지 않아요. 저도 상대가 추천한 책을 잘 안 읽어요. 결국, 애서가는 본인 알아서 책을 읽는 사람들입니다. ^^

stella.K 2018-04-02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장)읽게될 것 같지는 않지만 재밌을 것 같네.ㅋ

cyrus 2018-04-02 16:15   좋아요 0 | URL
부부가 소개한 책들이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것이라서 서평 내용에 공감하기 어려울 거예요. ^^;;


페크(pek0501) 2018-04-02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편과 저도 책 취향이 달라서 각자 사 보는 편입니다. 가끔 둘 다 읽는 책이 낄 때가 있으면 반갑지요. 책 취향이 같다면 책 값 절약이 될 터인데, 하고 생각한 적 있지만
어찌 보면 서로 다른 게 좋은 것 같아요. 각자 고유의 영역이 있는 게 좋기도 하고
나만의 책, 이란 게 좋기도 하거든요.

cyrus 2018-04-02 16:20   좋아요 1 | URL
독서 취향이 같은 사람끼리 계속 만나면 지루해요. 그리고 책을 고르는 선택의 폭이 좁아져요. 알라딘 서재/북플 활동에 익숙하면 낯선 사람과의 친밀도를 유지하기가 수월해요. ‘좋아요‘와 ‘댓글‘을 서로 주고 받는 사람끼리 친해지기 쉽죠. 그런데 이런 분위기가 늘 좋은 것만 아니에요. 요즘 독서모임을 하면서 독서 편력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온라인 관계의 한계를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