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과 종이 만날 때 - 복수종들의 정치 아우또노미아총서 80
도나 해러웨이 지음, 최유미 옮김 / 갈무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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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도나 J. 해러웨이(Donna J. Haraway)20세기 후반기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철학자 중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다. 그녀는 철학은 물론 문학, 생물학, 과학기술학, 페미니즘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새로운 문제와 관점을 제시하면서 얽히고설킨 지적 모험의 지평을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화려한 명성에 비해 생소하고 까다로운 학자가 해러웨이다. 그녀는 인공지능 기술과 유전공학의 발전 속에서 과학과 페미니즘을 접붙인 철학자로 명성을 누렸다. 해러웨이는 1985년에 발표한 논문사이보그 선언(A Cyborg Manifesto)에서 남성 중심 과학이 초래한 여성과 과학기술의 분리된 관계를 비판하고, 인간과 비인간인 기계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린다그녀에게 사이보그는 /, 백인/흑인(을 포함한 유색인), 인간/비인간(동식물, 기계) 등의 근대적 이원론을 극복하는 존재이다.


해러웨이의 이원론 해체는 단순히 공동체 안에 있는 서로 이질적인 의견과 정체성을 하나로 융합하기 위한 숙원의 과제가 아니다. 다양한 의견과 정체성이 만날 때 생기는 모순을 이해하고 적응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면 서로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면서 돌보는 주체적인 결속이 가능해진다근대적 이원론의 재료인 인간중심주의는 지구상 모든 존재의 공존을 도모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간중심주의는 단절과 차별,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해러웨이는 한쪽만 일방적으로 우위에 있게 만드는 모든 형태의 인간중심주의를 거부한다해러웨이의 사이보그는 인간, 기계, 동물, 주류로부터 배제됐던 그 밖의 존재와의 만남을 선호한다. 그들은 모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합일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모순을 외면하거나 억압하지 않는다. 모순에 응답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선 세상을 만들려는 해러웨이의 지적 모험은 2003년에 나온 반려종 선언(The Companion Species Manifesto)에서 이어진다해러웨이가 첫 번째 지적 모험에서 만난 존재가 사이보그라면, 두 번째 모험 중에 만난 존재는 개는 인간과 아주 친한 반려동물이다. 개를 애완동물이 아닌 반려동물로 보는 관점은 개와 인간의 친밀한 관계를 강조한다. 그렇지만 개를 친근하게 바라보는 인간의 눈앞에 인간과 비인간을 무 자르듯이 구분하는 인간중심주의가 아른거린다. 인간중심주의를 투과한 인간의 시선에 비친 개는 반려동물이다반려동물이라는 언어로 된 철창에 갇힌 개는 인간의 손길을 받으면서 자라는 수동적인 존재가 된다반려동물은 인간이 허용한 관계의 영역 안에서 살아간다. 인간이 만든 도시는 반려견이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는 거대한 감옥이다. 반려견은 산책할 때마다 목줄과 입마개를 착용한다. 인간의 보호와 통제에 벗어난 반려견이 인간을 공격하는 순간, 그들은 동물이 되고 안락사해야 할 존재가 된다.


해러웨이는 반려종 선언에서 온정적이지만, 여전히 개를 인간에게 의존하는 비인간으로 보는 인간중심주의에 갇힌 개를 구출한다. 반려종은 사이보그와 마찬가지로 종(, Species)의 경계 위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반려종에 속한 개와 인간은 자연과 문화 또는 동물과 인간으로 구분되는 이원론을 아늑한 거처로 삼지 않는다. 거처 밖에 이원론에 맞지 않은 기이하고, 잡다한 존재들이 돌아다닌다. 해러웨이는 이들을 묶어 크리터(critter)’라고 부른다크리터와의 만남이 지속되면 범주가 무의미해지고, 모든 존재가 뒤죽박죽 섞인 관계망이 만들어진다. 이 관계망 속에서 종과 종은 서로에 대해 관심을 멈추지 않으며 차이를 존중하면서 만난다. 해러웨이는 서로 영향을 주면서 돌보는 함께 되기(becoming with)의 삶을 강조한다.


사이보그 선언반려종 선언은 나온 지 상당히 오래된 글이다. 이 두 편의 글은 2019년에 번역되었다(해러웨이 선언문: 인간과 동물과 사이보그에 관한 전복적 사유, 황희선 옮김, 책세상). 우리말로 번역되기 전까지 사이보그 선언반려종 선언은 일부만 인용된 채 소개되었다. 길어야 서너 줄인 인용문은 해러웨이의 철학을 설명하는 글에 박힌 장식품에 가까웠다. 그동안 독자는 해러웨이의 철학을 장식품에 의존하면서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이접근해야 했다. 이러면 얽히고설킨 해러웨이의 철학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자기가 보고 싶은 부분만 보려는 오독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래서 해러웨이는 이해하기 까다로운 철학자다종과 종이 만날 때: 복수종들의 정치(When Species Meet, 2008)해러웨이가 쓴 사이보그 선언반려종 선언의 주석서반려종 선언에 일부만 소개된 스포츠 기자 딸의 노트도 수록되어 있다. 해러웨이는 스포츠 기자로 살아온 장애인 아버지의 삶과 가족 전체의 일상에 영향을 준 반려종을 되돌아본다(respecere).[주1] 독자는 스포츠 기자 딸의 노트에 기록된 그녀의 지적 모험을 유쾌하고 따스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해러웨이는 반려 종 선언의 초기 원고를 토대로 종과 종이 만날 때2장과 4장을 썼다. 그래서 종과 종이 만날 때134쪽에 있는 사진은 해러웨이 선언문222(반려 종 선언)에도 나온다.


종과 종이 만날 때을 혼자 읽어도 버겁다면, ‘반려 독서를 해보면 어떨까. ‘반려(companion)’는 라틴어 쿰 파니스(cum pains)’에서 유래됐다. 쿰 파니스는 빵을 함께 하다(먹는다)’라는 뜻이다. 해러웨이가 강조한 반려는 식탁에 함께 앉아 서로 마주 보고, 서로 돌보면서 식사하는’ 존재. 내가 생각하는 해러웨이식 반려 독서는 이렇다. 여러 사람이 탁자에 함께 앉아서 혼자 읽은 책을 다시 본다(respecere). 반려 독서에 참여한 사람들은 각자가 읽은 내용을 알려주고, 이에 대한 자기 생각을 밝힌다. 이 모임에서 본인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말자. 그리고 상대방의 의견이 내 의견과 다르더라도 존중해주고 받아들이자. 반려 독서의 목적은 지식을 더 많이 얻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반려종인 우리는 ‘함께 읽기를 통해 서로 다른 지식과 정체성이 만나면 생기는 차이(또는 모순) 속에서 함께 번영하는 법[2]을 배워야 한다.






[주1]레스프레체라고 읽는다. respecere는 종의 어원인 specere로부터 나온 말로 respect의 어원이다. specere보다라는 의미이므로 respecere 거듭해서 보다는 뜻이다. (종과 종이 만날 때: 복수종들의 정치, 1장 종과 종이 만날 때: 서문, 31쪽 각주)


[주2] 종과 종이 만날 때, 371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 196




 

P. T. 바눔 P. T. 바넘(P. T. Barnum)

 

 




* 198쪽 각주(옮긴이 주)

   




 마거릿 생어(Margaret Sanger, 1883[주3]~1966)는 간호사로산아제한 운동을 활발히 벌였던 여성 운동가이다.


[주3] 마거릿 생어의 출생 연도는 1879이다.

 

 




* 204




 

콜로라도 록키즈(Colorado Rockies) 콜로라도 로키스

   

 

 



* 후주, 381


 



A. N. 화이트헤드, 과학과 근대세계, 오영환 옮김, 서광사, 1990.

[주4]

 


[주4] 2008개정판이 출간되었다.

 

 




* 후주, 402


 



낸시 파머, 아프리카 소녀 나모, 김백리 옮김, 느림보, 2007.[주5]

 

[주5] 초판이 출간된 연도는 2005이다.

 

 




* 후주, 428

 




Brian Harre Brian Hare [주6]

 

 

[주6] 브라이언 헤어는 작년에 화제가 된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이민아 옮김, 디플롯)의 공동 저자 중 한 사람이다.

 

 




* 후주, 448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닥터 아인의 마지막 비행[주7]



[주7] 번역명: 아인 박사의 마지막 비행, 이수현 옮김, 체체파리의 비법, 아작, 2016.

 


 



* 후주, 449

 




드니 디드로의 달랑베르의 꿈[주8]

 


[주8] 김계영 옮김, 한길사, 2006.

 

 




* 후주, 452

 





해리포터 영화에 나오는 여장을 한 발데모트 경 

볼드모트(Lord Voldem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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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10-07 2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출판사에선 필독으로 읽어야 할 페이퍼 라고 생각합니다 ㅎㅎ
축하드립니다 *^^*

cyrus 2022-10-08 02:57   좋아요 1 | URL
이 글을 인스타그램에도 올렸어요. 출판사가 제 글을 확인했고, 오자를 고친다고 답변을 주셨어요. ^^

그레이스 2022-10-07 22: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이하라 2022-10-07 22: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cyrus님^^

서니데이 2022-10-07 22: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과학기술학자 임소연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여성과 과학 탐구를 출간하기 전에 이 책에 포함된 내용을 소개하는 발표회에 발표자로 나섰다. 그녀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책 4장에 나올 입덧과 태반 형성의 연관성을 설명했다. 그러자 청중 한 명이 질문했다.





















[레드스타킹 7월에 읽은 책]

* 임소연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여성과 과학 탐구(민음사, 2022)

 


남편도 입덧한다고 하는데, 이 경우에 입덧의 원인은 사랑인가요?”

대답은 “그것은 입덧이 아닙니다.”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72)




이 일화는 저자의 책 4장 후반부에 나온다저자에 따르면 입덧은 임신한 여성의 태반에서 비롯되는 물질적 현상이다. 음식물을 섭취하면 호르몬인 인슐린이 혈중 포도당 농도를 낮춰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일을 한다. 인슐린은 태반에서 융모성 생식샘자극 호르몬(hCG)이 생성되는 것을 억제하기도 한다. 인슐린 수치가 줄어들고 hCG 분비가 늘어나면 입덧이 일어난다. 입덧이 잦은 임신 3~4개월에 태반이 형성된다.


청중은 쿠바드 증후군(Couvade syndrome)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쿠바드 증후군이란 아내가 임신했을 때 남편도 아내와 똑같이 신체적 증상과 정서적 반응을 겪는 현상을 말한다주로 메스꺼움, 두통, 감정 기복, 근육통 등 여러 증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증상은 대개 임신 3개월에 나타나 몇 달 만에 사라졌다가, 아기가 태어나기 한두 달 전에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 아민 A. 브롯, 제니퍼 애쉬 진짜 아빠 백과사전: 초보 아빠를 위한 세상의 모든 지식(보물창고, 2018)




쿠바드는 프랑스어로 부화를 뜻하는 쿠베르(couver)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쿠바드 증후군의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아빠들의 아빠라는 별명을 가진 미국 최고의 아빠 육아 전문가 아민 A. 브롯(Armin A. Brott)은 칼럼니스트 제니퍼 애쉬(Jennifer Ash)와 함께 쓴 진짜 아빠 백과사전에 여러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쿠바드 증상이 나타나는 다섯 가지 원인을 제시했다.



1. 임신한 아내에 대한 동정 혹은 죄책감


임신한 아내가 입덧으로 고생하면 그 옆에서 지켜보는 남편은 자기 때문에 아내가 고생한다고 생각한다. 남편의 무의식적 죄책감이 메스꺼움과 진통 등을 유발한다.



2. 질투


임산부는 남편보다 훨씬 더 많이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 쿠바드 증후군을 겪는 남편은 부성을 과시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릴 수 있다.



3. 호르몬 생성


임산부의 몸속에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옥시토신은 엄마와 자녀의 친밀감 형성을 높여준다. 임산부와 같이 사는 남편의 몸속에서도 옥시토신이 생긴다. 그뿐 아니라 스트레스를 조절해주는 코르티솔과 모유 분비를 유도하는 프로락틴도 형성된다.



4. 가장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


결혼한 남자는 가정의 생계를 전적으로 책임지는 가장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배운다. 경제적 걱정이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 노동 계급의 남성이 중산층 남성보다 쿠바드 증후군이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5. 아내와 태어날 아이에게 보내는 남편의 메시지


남편 자신이 가족 관계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임신한 아내에게 보여주기 위한 화학 반응이다. 쿠바드 증후군은 아내와 아이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보여주는 동시에 남편이자 아버지가 된 남성이 훌륭한 부양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일 수 있다.
















* [절판] 티나 캐시디 출산, 그 놀라운 역사(후마니타스, 2015)




아주 오래전부터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경험으로만 인식되어왔다.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은 산파가 되었다. 그렇다면 과거의 남편들은 아내가 힘겹게 출산하고 있을 때 뭐 하고 있었을까? 그들은 분만실 밖에서 아기가 무사히 태어나길 바라면서 기다려야 했다. 당시에 남성이 출산을 지켜보는 행동은 부도덕한 일로 여겨졌다. 놀랍게도 이 금기를 깬 남자들이 있었다1522년 독일의 의사 베르트(Wertt)와 몇몇 의사들은 출산 과정을 알고 싶어서 여장을 한 채 분만실에 들어갔다. 하지만 베르트의 무모한 속임수는 발각되었고, 분만실 잠입에 가담한 의사들과 함께 화형당했다임신과 출산을 여성의 영역으로만 규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남성은 출산과 무관하다는 성 역할 고정관념(gender role stereotype)을 단단하게 만들어놓았다.


미국의 기자 티나 캐시디(Tina Cassidy)가 쓴 출산, 그 놀라운 역사에 남편을 출산에 배제하는 문화 속에서 묻힌 분만실 안의 남편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소수의 비서구권 원주민 사회에 남편이 아내 출산에 관여하는 문화가 있다분만실에 남편이 들어와서 안 된다고 믿은 서구인은 아내의 출산을 지켜보는 남편을 용인하는 원주민 사회가 야만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원주민의 생활상을 연구한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브라니슬라프 말리노프스키(Bronislaw Malinowski)는 남편이 아내의 산고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의식의 순기능에 주목했다.
















* 브로니슬라프 말리노프스키 야만 사회의 섹스와 억압 (비천당, 2017)




말리노프스키는 1927년에 발표한 야만 사회의 섹스와 억압에서 남자에게 출산의 고통을 체험하게 하는 전통 의식이 사회 유지에 필수적 기능을 작용한다고 썼다. 그는 쿠바드 증후군을 유발하는 전통 의식이 서구인들의 눈에는 터무니없어 보이겠지만, 아버지와 자식 사이의 도덕적 유대를 강조하는 부족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우주지감 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2019년 7월에 읽은 책]

* 웬다 트레바탄 여성의 진화: , 생애사 그리고 건강(에이도스, 2017)




쿠바드 증후군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학자들은 분만실 안의 남편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한다. 국내에 여성의 진화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책의 저자인 진화인류학자 웬다 트레바탄(Wenda Trevathan)[주]분만실 안의 남편옹호론자다. 그녀는 자신의 책 <Human Birth: An Evolutionary Perspective>(1987)에서 남편에게 출산 과정에 참여하도록 권장하는 몇몇 문화권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남편이 분만실에 들어가서 아내의 출산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부부 모두가 정서적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분만실 안의 남편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비판하는 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분만실 안의 남편문화가 임신에 대한 남성의 관음증적 호기심을 부추기며 임산부의 몸을 성적 대상화로 보는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여성의 출산 과정을 가까이서 본 남편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을 수 있다. 이러면 아내와의 성생활이 불가능해지며 아기와 유대감을 형성하거나 아내를 곁에서 지원하는 데 어려워한다.


쿠바드 증후군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평소에 눈길을 주지 않은 육아 및 출산과 관련된 책을 몇 권 집어 들게 되었다. 책을 보다가 확실한 생각이 들었다. 임신과 출산을 막연하게 알아선 안 된다는 점. 쿠바드 증후군의 실체를 인정하지만, 과학적으로 접근할 땐 회의주의적 시선을 유지하면서 바라볼 것.






[] 출산, 그 놀라운 역사에서는 웬다 트레버선으로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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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8-01 09: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입덧이 아니라 쿠바드 증후군이군요. 저 원인을 설명해놓은거 보니싸 진따 인간이란 얼마나 복잡하고도 오묘한 존재인지 싶네요.

cyrus 2022-08-02 18:57   좋아요 1 | URL
네, 임산부가 하는 입덧과 쿠바드 증후군의 증상인 메스꺼움은 달라요. ^^

mini74 2022-08-01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어요. 쿠바드 증후군, 남자입덧은 없는거군요.

cyrus 2022-08-02 18:59   좋아요 1 | URL
사실 쿠바드 증후군에 대해서 알아보기 전에는 저도 임산부의 남편은 입덧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입덧이 생기는 원인을 자세히 알고 나니 ‘남편 입덧’이라는 표현을 쓰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

파이버 2022-08-02 2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임산부의 남편이 하는건 입덧이 아니었군요;; 쿠바드 증후군이라니 인간의 몸과 마음은 정말 연결되어있는 것 같아요 신기하네요

cyrus 2022-08-03 07:01   좋아요 1 | URL
입덧의 원인을 잘 모르면 이게 메스꺼움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예전에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
 
매일 같은 밥을 먹는 사람들 - 식사를 선택할 수 없는 삶,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
권기석 외 지음 / 북콤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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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보릿고개란 말이 있다. 지난해 가을에 걷은 식량이 다 떨어지고 새로운 보리를 수확하기 전인 초여름 시기(4~6)를 뜻한다. 이때는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했으며 굶어 죽는 사람 또한 속출했다.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 이런 시절이 있었다. MZ세대에게는 까마득한 옛이야기다. 과거에 비해 지금은 굶주림이 생존에 위협이 될 수준까지는 아니다먹을 게 넘쳐난다하지만 여전히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돈 없으면 하루 세 끼를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런데도 가난한 사람이 무얼 먹고사는지 모른다. 삼시 세끼 잘 챙겨 먹고 있는지 관심도 없다. 대부분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 먹고사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오히려 일할 의지가 전혀 없고, 무료 급식소가 제공하는 밥을 받아먹으면서 사는 그들을 비난한다. 잘 먹으면서 잘 사는 우리는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가 된다. 빵을 달라고 외친 시민을 본 프랑스 왕비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하지만 왕비가 실제로 한 말이 아니다. 어쨌든 가난한 사람의 식사에 무심한 우리는 프랑스 왕비가 한 것으로 잘못 알려진 망언을 가져와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집밥이 없으면 편의점에 파는 김밥이나 라면을 먹으면 되지.” 밥을 제대로 챙겨 먹을 수 없을 때 우리는 싸고 간편한 김밥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그렇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김밥과 라면을 주식으로 삼고 있다.


매일 같은 밥을 먹는 사람들은 영양 과잉 시대로 들어서면서 나타난 식사 빈곤 문제에 주목한 책이다. 이 책을 기획한 국민일보 소속 네 명의 기자는 가난한 사람이 집에서 어떤 음식을 먹는지 취재했다. 기자가 만난 사람들은 무료 급식 대상자인 노인, 임대아파트에 혼자 사는 중년 남성, 자식과 함께 사는 주부, 고시원에 살면서 국가고시나 취업을 준비하는 20대 청년 등이다. 이들은 종일 쫄쫄 굶지 않을 정도로 밥을 먹는다. 매일 같은 밥을. 반찬 가짓수는 많아야 세 개. 다 떨어질 때까지 매일 먹는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 고기로 만든 반찬은 만들지 않는다. 제철 과일을 사서 먹는 건 그들에겐 사치다. 집밥이 없으면 저렴한 가격의 음식이 나오는 식당이나 편의점으로 향한다


기자와 인터뷰한 사람들이 직접 차린 밥상이나 하루에 먹은 것들을 찍은 사진은 식품 불안정성(food insecurity) 문제가 우리 사회의 새로운 과제임을 보여준다. 식품 불안정성은 양적 · 질적으로 좋은 음식을 먹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 가난할수록 식비를 아끼게 된다. 그렇게 되면 먹는 음식의 양이 적어지고, 주식 이외의 음식을 충분히 먹지 못한다영양학적으로 불균형한 식습관은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준다. 건강이 좋지 못한 저소득층은 약값과 진료비 부담을 크게 느낀다. 그래서 식비 지출을 줄이려고 하는데,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건강 상태가 더 나빠진다. 우리나라 저소득층은 이러한 형태의 빈곤에 처해 있다(이 책에 나오지 않은 사회 취약 계층에 속한 장애인, 외국인 근로자, 북한 이탈주민, 의료적 트랜지션[주1]을 받는 성소수자도 매일 같은 밥을 먹을 수밖에 없는 식사 빈곤을 겪을 수 있다).


이 책이 보여준 빈자의 식탁사진은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가 아니다. 이 책의 기획 의도는 저소득층에게 동정과 연민의 눈길을 주게끔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선택권이 없다. 오로지 배를 채우려고 매일 같은 음식을 먹는다헌법에 제시된 기본권은 평등권, 자유권, 참정권, 청구권, 사회권이다. 사회권은 인간다운 생활을 한 권리다. 삶의 질이 높아지려면 식품 안정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인간은 최소한 배고프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건강을 위해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먹을 권리도 있다이제는 식품 안정성과 관련된 사회권 보장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 무료 급식소를 더 짓는 것이 아니라 사회 취약 계층에게 양적으로, 질적으로 좋은 음식을 제공하는 복지제도가 정착되어야 한다.






※ 주



[주1] 의료적 트랜지션(medical transition)


트랜스젠더에게 필요한 정신과 진단이나 호르몬 치료, 성전환 수술 등의 의료서비스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호르몬 치료와 성전환 수술 비용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트랜스젠더 당사자에게는 큰 부담이 된다. (관련 도서: 김승섭, 박주영, 이혜민, 이호림, 최보경, 레인보우 커넥션 프로젝트 오롯한 당신: 트랜스젠더, 차별과 건강, 책공장더불어, 2018)






정오표




* 51쪽





 복지관에 음식 지원을 신청한 노인은 주말에 인기 많은 대형 쇼핑물 주차장에 들어간 운전자와 같은 신세다.

 


대형 쇼핑물 대형 쇼핑몰






* 136

 




 우리가 얻은 교훈은 가난한 사람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현금이 아니라 음식을 건네야 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은 이리저리 돈 나갈 구멍이 많았다. 현금을 손에 쥐어 주면[주2] 식사하는 데 쓰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식비는 늘 의료비와 교육비, 학비에 밀렸다.



[주2] 쥐여 주면이라고 써야 한다. 쥐여 주다무언가를 남에게 건네주는 상황일 때 쓴다. 쥐어 주다스스로 무언가를 잡았을 때 쓰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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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6-19 12: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란 책이 생각나요 부모의 빈곤한 식사에 의해 약하게 태어난 아이들의 잘병, 그런 부모들이 또 중년기에 이르러 질병으로 무너지면서 가난이 더 악화되는 모습들 ㅠㅠ

cyrus 2022-06-25 09:30   좋아요 1 | URL
mini님, <매일 같은 밥을 먹는 사람들>을 읽으면서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가 생각이 났어요. 그런데 책 제목이 길어서 정확한 제목은 몰랐지만요.. ^^;;

짜라투스트라 2022-06-21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드시 필요한 주장인데 이게 되지 않는 현실이 참 안타깝네요

cyrus 2022-06-25 09:32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 복지 문제가 정치 이념과 연관되어 있어서 이에 대한 의견을 소신 있게 밝히기가 힘들어요. 그리고 사는 게 팍팍해질수록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불신감은 커지지요.

mini74 2022-07-08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하며 읽었던 리뷰 👍축하드립니다 *^^*

이하라 2022-07-08 1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기분 좋은 소식 축하드립니다.^^
상쾌한 날들 되세요.^^

새파랑 2022-07-08 1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 또 즐거운 책 만나시길 바랍니다~!!

강나루 2022-07-09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당선 축하해요^^

thkang1001 2022-07-10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휴일 보내세요!

꼬마요정 2022-07-10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려요!!
정말 먹는 문제는 중요하죠. 특히 아이들을 생각하면 맘이 많이 아픕니다. 국가가 먹는 문제만이라도 잘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이권 다툼 이런 거 하지 말구요ㅠㅠ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위한 의료윤리학의 질문들
김준혁 지음 / 반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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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도덕과 윤리가 없으면 사회와 국가라는 공동체가 흔들린다. 도덕과 윤리는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지켜야 하는 행동규범이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도덕과 윤리의 정의다. 라틴어 ‘mores’는 도덕과 풍습을 뜻한다. 도덕적 또는 윤리적 삶은 오래전에 만들어진 공동체의 규율이나 관례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도덕과 윤리는 우리 귀에 대고 ‘반드시 해야 한다라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Nietzsche)는 윤리가 풍습을 지키기 위한 복종과 같다고 봤다. 그는 자신의 책 아침놀에서 가장 윤리적인 사람이야말로 공동체의 풍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런 사람은 개인의 자유와 비판 정신을 말살하는 도덕과 윤리에 따지지 못한다.

 

의료윤리학자 김준혁은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따지는 윤리의 역할을 따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선택의 갈림길에 여러 번 선다. 이때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고민한다. 김준혁은 우리에게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문이 윤리라고 말한다. 그런 다음,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윤리를 가지고 의학이 우리 사회에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는지 따진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삶의 변화를 앞당겼을 뿐만 아니라 감염병에 철저히 대비하기 위해 지켜야 할 도덕적 관습을 낳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만든 가장 대표적인 도덕적 관습은 사회적 거리두기마스크 쓰기. 정부는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식당 및 카페의 영업시간과 모임 인원을 제한했고,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시행했다. 코로나19 확진자는 주변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비난을 한 몸에 받는다. 팬데믹에 지친 사람들은 확진자에게 책임을 묻거나 과도하게 비난한다. 확진되지 않은 사람(사실 이 표현에 문제점이 있다)은 확진자들을 비도덕적 인간으로 간주한다.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았거나 사람이 많이 모인 장소에 돌아다녀서 확진자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백신을 안 맞았는데도 확진 판정을 받지 않았고, 게다가 감기도 걸리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일수록 자신이 건강하다고 확신하며 건강하지 못한 확진자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니체는 아침놀서문에서 도덕에 대한 지나친 신뢰를 철회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김준혁은 개인과 인간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건강의 정의와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대한 지나친 신뢰를 따지기 위해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을 썼다. K-방역으로 알려진 신속항원검사는 한때 전 세계가 주목했다. 하지만 저자는 K-방역의 장점으로 주목받은 빠른 진단 검사에 지나치게 신뢰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문제를 제기한다. 모든 의학적 검사 결과는 완벽하지 않다. 양성과 음성으로 판정하는 신속항원검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는데도 확진자로 진단받을 수 있고(위양성), 감염되었는데도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 나올 수 있다(위음성). 위음성으로 의심되는 결과를 받은 확진자는 스스로 건강하다는 확신 속에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낀다. 그들은 자신을 확진되지 않은 사람으로 인식하겠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확진되지 않은이라는 표현에 결점이 있다. 우리는 건강의 정의를 질병의 부재와 동일시한다. 그러므로 확진자가 아니더라도, 몸이 아프지 않으면 자신의 건강 상태가 좋다고 착각한다.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은 질병이 생각보다 많다.

 

건강 상태가 안 좋으면 그 원인을 개인의 생활 습관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개인의 부주의한 건강 관리와 생활 방식을 지적하는 것을 질병의 개인적 책임담론이라 한다. 개인적 책임 담론은 건강의 정의를 개인의 능력과 결부시키는 관점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개인의 책임과 사회의 책임이라는 이분법적 틀로 의료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을 비판한다. 질병의 원인을 환자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보게 되면 사람을 병들게 하는 사회구조의 문제점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저자는 개인과 사회가 건강 문제에 함께 관심을 가지는 동시에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의학과 의료 제도가 우리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실외 마스크 의무와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조치에 기분이 들뜨기 쉬운 지금 시기에 읽어야 할 책이다. 감염병 유행은 돌고 돈다. 그러면 팬데믹 시대의 문제점도 다시 나온다. 확진자를 향한 차별과 배제는 일상적인 일이 된다. 마스크를 잘 쓰고 다니고, 몸에 이상이 없는 사람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확진자를 비난하면서 선량하고 건강한 차별주의자가 된다. 팬데믹이 길어지면 장애인과 노인의 돌봄 사각지대는 더 커진다. 지구에 오래 살고 싶은 인간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매개체로 밝혀진 야생동물을 무차별적으로 죽인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생각하게 만드는 윤리가 제 역할을 해줘야 한다. 네가 건강해지려면 무조건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명령하는 윤리와 헤어지자. 건강한 윤리는 자신을 따르라면서 우리에게 강압적으로 명령하지 않는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과 자연, 동물이 건강해질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재차 묻는다.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 30

 




 보통 나이가 들수록 몸 여기저기의 기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렇다. 청년과 노인을 비교하면 청년보다 노인의 신체 상태가 일반적으로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므로[주] 노인은 무조건 건강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경험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건강하다고 할 수 있는 나이 든 사람은 많다.

 


[]그러므로라는 표현을 삭제하면 문맥이 자연스러워진다.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 102, 104쪽에 있는 25번과 26번 주의 출처는 ‘Judith Butler, Precarious Life: The Powers of Mourning and Violence(2004)’. 출처에 원서명만 나와 있는데 주디스 버틀러의 책은 불확실한 삶: 애도와 폭력의 권력들(양효실 옮김, 경성대학교출판부, 2008)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10년 뒤에 새로운 역자와 출판사를 만나면서 제목이 바뀐 위태로운 삶: 애도의 힘과 폭력(윤조원 옮김, 필로소픽, 2018)으로 재출간되었다104쪽의 인용문은 위태로운 삶서문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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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유전자 정치 - 우생학에서 인간게놈프로젝트까지 그린비 장애학 컬렉션 12
앤 커.톰 셰익스피어 지음, 김도현 옮김 / 그린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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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점  ★★★★☆  A






우생학은 역사상 가장 악명을 떨친 유사 과학이다영국의 유전학자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이 만든 우생학은 인종주의와 나치즘(Nazism)이 만연하던 시절에 인종 차별과 집단 살해(genocide)를 정당화하는 학문으로 자리 잡았다독일의 나치 정권은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유대인과 장애인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나치즘을 비판한 지식인들 역시 우생학에 열광했으며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데 동참했다사회주의자와 페미니스트들도 우생학의 대중화에 동참했. 페미니스트들은 임신 중절이 합법화되면 장애인이 없는 세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과거에 수많은 희생자를 낸 우생학이 과학의 가면을 쓴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알고 있그런데 우생학이 죽은 학문이 된 지금, 장애인 차별 문제와 장애인 권리를 무시한 사회 정책은 사라졌는가? 장애와 유전자 정치는 역사로 남은 과거 우생학을 비판만 하고 있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의 저자들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는 우생학을 주목한다. 하나의 유령이 비장애인 중심 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그것은 우생학이라는 유령이다.[주] 우생학 유령은 계속해서 과학과 사회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유전공학이 발전하면서 유전자 검사가 상용화되었다. 유전학자들은 유전체 편집 기술로 유전 질환을 치료할 수 있을 거로 기대한다. 유전체 편집 기술은 유전체 내 특정 유전자를 삽입하고 교정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이 도입된다면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고, 유전병에 걸리지 않은 건강한 아이가 태어날 수 있다. 유전공학 기술과 관련한 윤리적 문제에 민감한 유전학자들은 유전학의 최신 성과와 과거 우생학을 철저히 구분하기 위해 개혁 유전학또는 신유전학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제시했. 신유전학에 기반을 둔 의료기술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장밋빛 전망을 심어준다. 하지만 저자들은 신유전학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접근한다신유전학 관점에서 바라본 장애와 질병은 치료해서 제거해야 할 비극적인 문제이다. 하지만 장애인은 장애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산다. 장애를 불운한 경험으로 인식하고, 마땅히 교정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는 것도 장애인의 주체적인 삶을 무시하는 차별이다.


비장애인 페미니스트들은 장애아 출산과 보육에 부담감을 느낀 여성들을 위해서 임신 중절이 합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임신 중절 합법화를 옹호하지만, 임신 중절이 장애 문제에 대한 바람직한 해결책으로 내세우는 것에 비판한다신유전학과 장애아 선별 임신 중절은 장애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고 보는 우생학적 관점이 되살아난다. 신유전학은 19세기부터 유럽을 떠돌던 우생학 유령이 21세기 유전학에 빙의되어 생긴 학문이다.


그렇다면 이 오래되고 끈질긴 우생학 유령을 사냥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학자/지식인 집단과 시민이 합심하여 동맹을 맺어야 한다저자들은 유전학이 모든 사람을 위한 학문으로 발전되기 위해서 학자와 시민이 유전학의 윤리적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과학자들은 유전공학 기술의 문제점과 부작용을 외면해선 안 된다. 유전학의 연구 성과와 그로 인한 부작용을 시민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게(이러한 행위는 가르치는 것에 가깝다) 아니라 시민들이 과학자들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질의하면서 비판할 수 있도록 토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시민과의 토론에 참여한 과학자는 장애인의 장애 경험을 경청할 수 있다


공산당 유령이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계급과 자본의 사적 소유를 철폐하려고 했듯이 우생학 유령은 건강하면서도 똑똑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만들려고 장애와 질병을 제거하려고 했다. 두 유령의 의도는 좋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유령들이 권력을 잡으면서 일으킨 심각한 문제점을 역사를 통해 배웠다. 교조적 공산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말살했다면, 우생학은 장애인으로서 살아갈 권리를 외면했고 장애인을 억압하는 정책을 만들었다. 장애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는 것도 개인의 자유이며 국가가 침해할 수 없는 생명권이다우생학 유령은 지금도 우리 곁에 있다. 정의와 평등을 지향하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우생학 유령이 극우주의자들만 따라 붙는다는 편견을 버리시라. 이러한 편견은 우생학 유령을 사냥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 공산당 선언의 첫 문장을 패러디했다.



* 47,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에 대한 역주

 

 극작가 겸 소설가이자 사회비평가다. 그의 작품 중 피그말리온은 뮤지컬로, 마이 페어 레이디는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며[주], 1925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 피그말리온(Pygmalion)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는 제목이 다르지만, 내용이 같은 작품이다뮤지컬과 영화 제목 모두 마이 페어 레이디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는 1956년에 초연되었고,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이 출연한 동명의 영화1964년에 개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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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9-04 22: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우생학의 유령에서 자유롭지 않은 거 같아 뜨끔했습니다. 장애인들 다 없애야해 이런 극단적인 건 아니지만, 저 깊숙이는 백인이 더 우월할 것만 같은 맘이 있는 거 같아요. 의식적으로 안 그러려고 하지만요... 왜 이런 씨앗이 심어졌는지 똑땅...
<마이 페어 레이디>가 피그말리온이라는 이름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네용!ㅎㅎ

cyrus 2021-09-05 23:17   좋아요 4 | URL
똑똑하고, 잘생긴 사람은 누구나 좋아할 수 있어요. 저도 좋아해요. 그건 본능에요. 그런데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완벽하다고 생각하면, 그들과 다른 모습과 능력의 진가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