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책을 찾아주세요" Book #24

《반 고흐, 지상에 유배된 천사》 율리우스 마이어 그레페,

최승자, 김현성 공역 / 책세상 (1990년)

 

 

 

 

 

 

 

 

 

 


율리우스 마이어 그레페(Julius Meier-Graefe, 1867~1935)는 빈센트 반 고흐를 위대한 예술가의 명당에 오르게 한 장본인이다.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그레페는 독일에서 미술사학자로 활동했다. 영국의 화가 겸 미술평론가 로저 프라이(Roger Eliot Fry, 1866~1934)와 함께 인상주의 회화의 연구에 앞장섰다. 그레페는 고흐뿐만 아니라 세잔, 르누아르, 뭉크, 마네 등 화가의 평전을 남겼다. 그의 대표적인 화가 평전이 바로 1921년에 발표한 고흐 평전이다. 1926년에 나온 영문판의 제목은 <Vincent Van Gogh: A Biographical Study>이다. 고흐 사후 100주년인 1990년에 국역본이 나왔다. 제목은 《반 고흐, 지상에 유배된 천사》(책세상)다. 이 책은 공동 번역인데 번역자 한 사람이 《이 시대의 사랑》(문학과지성사)의 시인 최승자다. 최승자 시인은 이 책의 2, 5, 6장의 번역을 맡았다. 

 

 

 

 

 

 

이 책은 딱히 특별한 내용은 없다. 그레페는 고흐를 광란의 기질을 주체하지 못해 불행하게 살다간 비극적 인간으로 재현했다. 그는 서문에서 고흐의 삶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라고 말한다. 흔히 고흐를 소개하면 항상 ‘광기’와 ‘천재’가 들어간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이런 과장된 꼬리표를 달게 만든 사람이 그레페다. 그는 고흐의 내적 고통이 확연히 드러나도록 고흐가 발작하는 장면에 자신이 직접 고흐의 영혼으로 변신한다. 그리고 발작으로 흥분한 고흐가 주절거리는 것처럼 독백 대사를 넣기도 한다. 이 책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이후부터 작가나 미술 비평가들은 고흐의 그림을 이해하는 코드를 ‘광기’로 뭉뚱그려 축약시켰다. 그레페 덕분에 고흐는 불행한 천재로 알려지게 되었고, 그의 그림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하지만 ‘정신분열’, ‘광기’로 고흐를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부실한 평전들이 양산됐다.

 

20세기 초반에 나온 책인 만큼, 최근에 알려진 고흐에 관한 각종 자료와 비교하면 상당히 오래된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고흐 평전을 많이 읽어 본 독자가 그레페의 책을 읽으면 지루하게 느낀다. 고흐가 런던의 하숙집에서 지냈을 때, 그곳 하숙집의 딸 외제니 로이어를 짝사랑했다. 고흐는 용기 있게 구혼했다가 거절당했다. 예전에는 외제니 로이어를 ‘우르슐라(또는 우르슬라)’라고 소개되었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하숙집 딸을 우르슐라로 지칭하면서 썼다. 그러나 우르슐라가 외제니 어머니의 이름으로 밝혀져 하숙집 딸의 진짜 이름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우르슐라 대신에 외제니 로이어로 소개하는 책들이 많아졌다.

 

최승자 시인이 (부분) 번역한 책이라고 해서 이 책에 군침을 흘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헌책방에서도 만나기 힘든 책이라서 굳이 사서 보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그레페의 책은 잊혀도 고흐와 그에 관한 이야기들은 여전히 살아남아 우리 가까이에 있다. 그 이야기들은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복제되어 구전되어 화가의 존재감을 더욱 빛나게 해준다. 그러니까 시공아트, 마로니에북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고흐 관련 책들은 그레페의 책을 참고해서 모방한 복제물이라고 보면 된다. 세월의 그늘 속에 먼지가 되어 사라질 뻔한 고흐를 다시 대중 앞에서 부활시킨 최초의 인물이 그페레라는 사실, 그것만 기억해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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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6-02-16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그대 페이퍼를 읽고 있노라면 군침이 흐르기 마련이야 ㅋ

cyrus 2016-02-17 13:50   좋아요 0 | URL
고흐 마니아라면 이런 책 한 권은 있어야 됩니다. ^^

북다이제스터 2016-02-16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승자 시인이 번역일도 하셨군요.
그분 팬이란 제 표현이 머쓱해 집니다. ㅠㅠ

cyrus 2016-02-17 13:52   좋아요 1 | URL
생각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존재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역자가 최승자 시인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사면서 처음 알았습니다.

yamoo 2016-02-18 01:50   좋아요 1 | URL
최승자 시인 번역 많이 했어요. 유명한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에 대하여>도 번역했지요. 그 분이 번역한 까치 출판사의 책을 몇 권 갖고 있습니다만..ㅎ

초딩 2016-02-16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탐나요!!!

cyrus 2016-02-17 13:53   좋아요 0 | URL
진짜 별 것 없습니다. 도판은 모두 흑백입니다... ^^;;

단발머리 2016-02-16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레페란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데, 고흐에게 `광기`와 `천재`라는 단어를 붙여준 사람이라니 너무나 흥미로운데요. 근데 cyrus님이 읽지 말라 하시니, 나는 패쓰할래요. ㅎㅎㅎ

cyrus 2016-02-17 13:53   좋아요 0 | URL
네. 지금도 고흐 관련 책이 나오니까 그걸로 읽어도 충분합니다. ^^

붉은돼지 2016-02-16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요
제 기억에 옛날엔 분명히 `고흐`가 아닌 `고호`로 표기했었는데요
그게 아마 1990년 이전인 모양입니다^^

cyrus 2016-02-17 14:0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좀 오래된 책은 `고호`라고 표기되어 있어요. 고호가 고흐보다 좀 더 투박한 느낌이 듭니다. ^^

비로그인 2016-02-26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흐를 부활시켰다니.
시인분이 번역하시고 기대되는 책입니다.

cyrus 2016-02-17 14:08   좋아요 0 | URL
인지도 높은 `책세상`이라서 재출간을 기대해도 좋은데, 워낙 내용이 뻔한 것이라서 다시 나올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요즘 고흐를 재해석한 책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

페크pek0501 2016-02-17 13: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고흐에게 호감을 가졌던 건 그가 그의 형에게 쓴 편지를 읽고서였어요. 글도 잘 쓰는 화가라는 걸
알았거든요. 문학적인 표현이 눈에 띄었죠. 그 글을 읽고 예술가는 다 글을 잘 쓰는 게 아닐까, 예술은 다 하나로 통하는 걸까 생각했어요. 꽤 오래전의 일입니다.

cyrus 2016-02-17 14:10   좋아요 1 | URL
고흐가 독서를 좋아했어요. 그림을 그리기 전에 서점 직원으로 일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고흐의 삶에 특별한 애착이 느껴져요. 혼자서 무언가에 몰두하는 그의 모습이 저랑 비슷해요. ^^
 

 

 

 

연초부터 알라딘/북플 시스템에 시비 거는 반골 성향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다. 이러다가 서재의 평화를 무너뜨리는 '병신년' 문제아로 찍힐 것 같다. 개인적으로 ‘북플 친구’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친구 대신에 ‘이웃’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친구와 이웃. 의미상으로 유사한 점이 있지만, 엄연히 말하면 구체적으로 가리키는 대상이 다르다. 친구는 가깝게 사귀는 사람이다.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는 존재다. 이웃 역시 친근한 감정으로 만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이웃과 친구의 정의가 모호해진다. 그렇다면 국어사전을 뒤적여보자. 사전에서 나오는 ‘이웃’의 정의는 이렇다. 나란히 또는 가까이 있어서 경계가 서로 붙어 있는 것. 그래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는 이웃의 정의를 아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대체로 근린의식(近隣意識)을 갖는 범위의 사람이나 지역공동체를 뜻하지만, 이러한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이웃사촌이라는 말처럼 사회적 거리의 가까움도 포함된다. 그러나 이웃은 근린의식에 따른 친밀감으로만 연결되어 있지 않고 이웃이기 때문에 오히려 갈등관계에 있는 경우도 많다.

 

 

보통 이웃이라 하면 흔히 가깝고 친한 사이를 강조한다. 우리는 항상 이웃을 친구의 의미와 가깝게 사용한다. <응팔> 드라마의 ‘쌍문동 태티서’처럼 서로 언니, 동생하면서 마치 가족처럼 정겹게 지내는 이웃이 있다. 서로 말이 통하는 가족 같은 이웃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이 착한 이웃들은 어디로 ‘가’셨는지 주변에 족 같은 이웃이 많아졌다. 오늘날의 이웃은 먹고사니즘에 자유롭지 못해 아옹다옹 싸우면서 지내는 옆 사람일 뿐이다. 내 살 길 바쁘다 보니 서로 챙겨줄 여유도 없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이웃의 의미는 복잡하다. 단순하지 않다. 좋은 의미만 있는 것도 아니다. 친밀감을 느끼던 이웃의 심(心)지에 갈등의 불이 붙이는 순간, 피로를 유발하는 골치 아픈 이웃으로 돌변할 수 있다. 남북 대치 상황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이웃 간의 냉전 상황이다. 그동안 참고 지냈던 분노가 폭발하면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복수전으로 펼쳐진다. 층간 소음 전쟁이 일어난다.

 

 

 

 

 

 

 

 

 

 

 

 

 

 

 

 

 

 

 

 

 

 

 

알라딘/북플 친구가 100명이든 1,000명이든 여기서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숫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 영국의 인류학자 로빈 던바는 사회집단의 크기가 커질수록 그 모임을 유지하기 위해서 더 큰 두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뇌의 신피질이 클수록 교류하는 친구가 많아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던바는 적절한 친구 수로 150명을 제안했다. 이것이 바로 ‘던바의 수’다. 150명은 다소 많은 것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서로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를 느끼고 친교를 쌓아야겠다는 의무감을 느끼는 존재를 모두 합하면 이 정도는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말은 평균적인 수라고 하지만, 150명은 너무 많다. 솔직히 한 번 이상 만난 적 있는 200명의 전화번호가 있는 전화번호부를 가지고 있어도 실제로 안부 인사를 하는 사람이 열 명 넘을까 말까 한다. 진짜로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에게만 연락하게 된다. 연락이 뜸하고, 연락 횟수가 적은 친구일수록 그 사람이 뭐 하고 지내는지 관심이 없다. 알라딘/북플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알게 돼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면 몇 년 전부터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던 이웃 알라디너와의 관계가 소홀해진다.

 

영장류는 온종일 상대의 털을 매만진다. 털에 있는 기생충을 잡아낸다. 자, 내가 네 털에 있는 기생충을 잡아줬으니 너도 내 털 좀 만져 줘. 영장류는 털 고르기 행동으로 서로에게 보상을 주고받는다. 이러한 관계가 두터울수록 유대감이 형성되고 집단 내 동질감이 강화된다. 털 고르기를 거부하고 혼자 노는 영장류는 집단으로부터 외면을 받는다. 친하게 지낼 수가 없게 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친하게 지낼 수 없는 상대방을 멀리하고, 자신과의 친밀도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만나려고 한다. 이러한 사회적 인지력의 차이에 따라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의 숫자가 결정된다.

 

부족한 점이 많고, 늘 재미없는 책 이야기만 남기는 나를 좋게 봐주시는 이웃들이 정말 고맙다. 나는 보답의 차원으로 항상 로그인하고 이웃의 글에 ‘좋아요’를 누른다. 비회원 상태에서 ‘좋아요’를 누르면 서재 지수 합산이나 서재의 달인 선정 과정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친하게 지낸다고 해서 즐거운 기분이 한결같을 수만 없다. 언젠가는 사소한 갈등의 불씨 하나로 인해 서로에게 깊은 상처만 얻고 남남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예상치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을 각오하고 알라딘/북플에서 노는 중이다. 지나친 긍정은 독이다. 정이 많은 사람이 갈등과 이별의 순간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무기력한 시간 속에서 헤맨다. 행복한 만남이 있으면 아쉬운 이별이 있는 법. 이것이 바로 '이웃'이라는 이름의 사람들이 모여서 만나는 네트워크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 알라디너 유형에 관한 내용만 삭제했습니다. 내용이 너무나 주관적인데다가 알라디너 간의 위화감이 형성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서 삭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개인 사정으로 인해 블로그 답글을 확인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그분들의 상황을 헤아리지 못하고 안 좋은 쪽으로 표현했습니다. 제가 상대방을 함부로 재단하거나 평가하는 내용을 썼습니다. 앞으로 그러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또 한 번 이런 실수를 하면 혼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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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6-02-16 13:27   좋아요 2 | URL
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실수는 더더군다나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객관적이어야 할 역사조차도 사실은 힘 있는 자들의 주관적 시선이 들어가 있잖아요. 뉴스 기사도 방송사나 신문사의 입장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곳에 쓰여지는 글들은, 그래서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글에 공감하느냐 반박하느냐는 온전히 읽는 이들의 몫이 아닐까요?^^
알라딘의 이웃에 대한 주제를 던져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역할을 하셨습니다ㅎㅎ(사실 님의 글을 읽고 몇 달째 `대답없는 너`를 슬그머니 삭제하고 나름 후련해했다는ㅋㅋ^^;)

cyrus 2016-02-16 13:36   좋아요 1 | URL
다행히 제 생각에 반박한 분은 없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글을 수정한 것이 아닙니다. ㅎㅎㅎ

그래도 이런 글을 공개하면서 이웃분들의 진솔한 생각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나비종 2016-02-16 13:40   좋아요 2 | URL
이해합니다, 격하게 공감한 1인으로서ㅎㅎ
이런 주제를 던져주시는 것, 바람직합니다. 저도 덕분에 다른 분들의 생각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작은 독서토론의 장이 연상되었습니다~^^

alummii 2016-02-16 16:45   좋아요 1 | URL
저도 대답없는 너...에 격하게 공감했는데요 뭘ㅎㅎㅎ 오늘 저도 친구 정리 좀 하고 와써요.... 쓰읍ㅋㅋ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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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전래 동요 모음집 《마더 구스의 노래》에는 흥미로운 내용의 동요가 많다. 나 혼자 알기가 너무 아쉬워서 잘 알려지지 않은 동요 몇 편 소개해본다. 출처는 1996년 팬더북 출판사의 《마더 구즈의 노래》다.

 

 

 


* Little Tommy Tucker (리틀 토미 터커)

 

Little Tom Tucker

  Sings for his supper.

What shall we give him?

  White bread and butter.

How shall he cut it

  Without a knife?

How will he be married

  Without a wife?

 

리틀 토미 터커

  노래를 불러야 저녁을 주지.

무엇을 먹을 건가?

  흰 빵에 버터를 발라서.

어떻게 그걸 자를 건가,

  나이프도 없는데?

어떻게 부부가 될 건가,

  아내도 없는데?

 

 


아~ 나이프도 없고, 아내도 없고, 동렬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

 

그런데 이 동요, 잘 보면 성적 코드가 숨겨져 있다. 프로이트 식으로 해석하면 칼(knife)은 성기다. 그런데 토미 터커는 성기가 없거나 있어도 작았을 것(little)이다. 내가! 내가! 고자라니! 고자는 어떻게 부부가 될 수 있는 건데? 아내를 만날 수 없다. 아내가 있어도 그녀를 만족하게 해줄 수 없는데? 그래서 주인공은 ‘그것’이 작은 토미 터커였다.

 

 

 


* Three wise men of Gotham (고담의 세 명의 현자)


Three wise men of Gotham,

They went to sea in a bowl,

And if the bowl had been stronger,

My song had been longer.


고담의 세 명의 현자,

주발을 타고 바다로 나갔다.

주발이 조금만 더 단단했다면

내 노래도 계속되었을 텐데.

 


고담대구에 거주하는 나로서는 참으로 반가운(?) 동요다. 고담은 뉴욕 시의 별명, 만화 <배트맨>의 배경 도시로 많이 알려졌다. 원래는 바보들만 사는 영국의 마을 이름이었다. 그런데 고담은 진짜 바보들만 잔뜩 모여 있는 이상한 마을이 아니었다. 고담 마을 사람들의 바보 행세를 의미한다. 말 그대로 바보인 척한 것이다.


영국의 존 왕(1166~1216)은 고담을 관통하는 큰 도로를 건설하려고 했다. 그런데 도로를 건설하려면 고담 마을 주민들의 노동력이 필요했다. 마을 주민들은 ‘도로 건설 결사반대 모임’을 만든다. 그들은 일하지 않으려고 바보처럼 행동했다. 마을 주민들의 집단행동에 왕은 백기를 들었고, 결국에는 고담 마을을 우회해 도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미국의 작가 워싱턴 어빙은 19세기 초 뉴욕 시민을 비유해 처음으로 ‘고담’이라는 표현을 썼다.


대구 어르신들이 조금만 더 생각이 있었다면 새누리당의 쾌재가 멈추었을 텐데.

 

 

 


* Taffy was a Welshman (타피는 웨일스 사람)


Taffy was a Welshman, Taffy was a thief;

Taffy came to my house and stole a leg of beef;

I went to Taffy's house and Taffy was in bed;

So I picked up the Gerry pot and hit him on the head.

Taffy was a Welshman, Taffy was a thief;

Taffy came to my house and stole a piece of beef;

I went to Taffy's house, Taffy wasn't in;

I jumped upon his Sunday hat and poked it with a pin.

Taffy was a Welshman, Taffy was a sham;

Taffy came to my house and stole a piece of lamb;

I went to Taffy's house, Taffy was away,

I stuffed his socks with sawdust and filled his shoes with clay.

Taffy was a Welshman, Taffy was a cheat,

Taffy came to my house, and stole a piece of meat;

I went to Taffy's house, Taffy was not there,

I hung his coat and trousers to roast before a fire.


타피는 웨일스 사람, 타피는 도둑.

우리 집에 와서 쇠고기 한 덩어리를 훔쳐 갔다.

타피의 집에 갔더니 타피는 없었다.

타피가 우리 집에 와서 도가니 하나 훔쳐 갔다.

타피의 집에 갔더니 타피는 안에 없었다.

타피가 우리 집에 와서 밀방망이를 훔쳐 갔다.

타피의 집에 갔더니 타피가 자고 있었다.

나는 부삽을 집어 들어 그놈의 머리를 후려쳤다.

 


17~18세기 영국의 농부는 가난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이웃의 양식을 훔치는 도둑이 되거나 여행하는 방랑자들의 지갑을 노리는 강도가 되었다. 타피는 이웃의 물건을 상습적으로 훔치다가 끝내 이웃의 부삽을 맞고 영원히 잠들고 말았다. 빈곤의 그늘이 만들어 낸 암울한 시대상이 반영된 동요다.

 


타피 대신에 ‘웨일스의 전설’을 대입해서 노가바를 한 번 만들어봤다.

 

 

긱스는 웨일스 사람, 긱스는 도둑.

우리 집에 와서 내 여자 친구를 훔쳐 갔다.

긱스의 집에 갔더니 긱스는 없었다.

긱스가 우리 집에 와서 내 행복을 훔쳐 갔다.

긱스의 집에 갔더니 긱스는 안에 없었다.

긱스의 집에 갔더니 긱스가 젊은 여자와 함께 자고 있었다.

나는 부삽을 들어 내 형의 머리를 후려쳤다.

 

 

※ 라이언 긱스는 웨일스 출신의 축구선수다. 1990년부터 2014년까지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선수 생활을 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현재 친정 팀의 수석 코치로 활동 중이다. 선수 시절의 경력과 업적은 화려하나 선수 말미에 일어난 불륜 스캔들 때문에 완벽했던 명성에 한순간 금이 가고 말았다. 동생의 아내와의 불륜이 발각되어 막장 선수로 조롱을 받았다. 긱스의 막장 불륜에 군침을 흘리던 황색언론들은 긱스가 장모(!)까지 탐했다는 찌라시를 퍼뜨리기까지 했다. 재미로 만든 것뿐이니 긱스를 좋아하는 축구 팬들이 노가바 때문에 화를 내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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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5 2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5 2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금행복하자 2016-02-15 22: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더구스에상상을초월할내용들이 많습니다. 영어환경에 노출시킨다고 그냥 틀어놓을 노래들은 아닌것이 많구요. 명작동화에 대해서는 경계를 하면서 왜 이런 노래에는 무방비일까요. . . .

cyrus 2016-02-15 23:16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나중에 그점에 대해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영감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
 

 

 

 

* "그 책을 찾아주세요" Book #23

《바닷가의 한 아이에게》 고형렬, 씨와 날 (1994년)

 

 

 

한때 집 근처에 바다가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한 적이 있다. 그들은 멋진 해변의 풍경을 마음껏 감상하면서 뛰어놀 수 있다. 또한, 싱싱한 생선회를 먹을 수도 있고. 그런데 당사자들은 육지 사람들의 부러움이 불만스럽다. 바닷가 사람들은 타지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이는 해수욕장의 번잡스러운 분위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바닷가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생선회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생선의 비린 맛 때문에 회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바닷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이 뭔지 아시는가. 생선회를 자주 먹는다는 이유로 부러워하거나 싸고 맛 좋은 횟집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하는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바다는 수많은 도시인의 발길을 내준 휴가지로 변했다. 같은 물소리에도 듣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다가오는 의미가 다르다. 바닷바람에 흥분한 도시인은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물속으로 첨벙 뛰어든다. 바다와 함께 살았던 토박이들은 차분하다. 모래사장에 돗자리를 깔고 가족끼리 오순도순 둘러앉아 준비해온 도시락을 먹기도 하고, 소주 한 병에 새우깡 한 봉지로 생활의 시름을 달랜다. 아이들은 바닷물이 적신 모래밭에 모래성을 짓는다. 인형 같은 손등에 모래를 끼얹어 예쁜 지붕을 만든다. 파도에 금방 무너지는 모래성이지만, 아이에게는 최고의 궁전이다. 바람이 불어도 파도가 와도 영원히 쓰러지지 않는 추억 속의 집이다.

 

나이 탓인가. 사람들의 뜨끈한 날숨이 섞인 바닷바람보다는 짠 내 나는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해변의 풍경을 혼자 거닐고 싶다. 사람으로 붐비는 해변을 바라보면 어지러운 전쟁터 같다. 피서객들은 바다에 오자마자 편안하게 쉬고 싶은 자리를 먼저 찾는다. 요즘은 좋은 자리를 얻으려면 자릿세를 내야 한다. 모래벌판에 음식을 먹느라 냄새를 피우고, 고성방가하며 술에 취해 인사불성 되어야 멋진 휴가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보다 더 심한 건 모래 속 깊숙이 묻어버린 쓰레기다. 하얗던 백사장 곳곳에 자본주의의 얼룩이 남아 있다. 시커먼 비닐종이, 썩은 내 진동하는 음식물 찌꺼기, 깡통, 신발까지 마치 전쟁터에 남겨진 전리품 같아 바라보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태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바다를 구경하기가 어려운 시대다. 바다의 벗인 토박이들은 정든 고향을 하나둘씩 떠난다. 토박이들이 떠나고 없는 빈자리에 외지인들을 유혹하는 상점과 숙박업소가 들어선다. 자본의 외풍 앞에 바다는 힘없이 쓰러져 가고, 고유의 풍경이 사라져 간다.

 

 

 

 

 

 

 

 

고형렬 시인의 시집 《바닷가의 한 아이에게》(씨와 날, 1994년)는 우리가 잊고 있던 바다의 진짜 모습을 담으려고 시도한 시집이다. 시집의 앞표지와 뒤표지는 온통 파랗다. 강하게 짙은 파란색을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바닷물이 연상된다. 시집은 강원도 속초 바다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시집을 펼치면 바닷가의 한 아이를 만난다. 바닷바람을 먹고 자란 아이는 훗날 바다의 신성한 기운을 받아 시인을 잉태한다.

 

 

 


나는 바닷가의 한 아이를 생각한다

바닷가의 한 아이는 나의 어머니셨다
나의 어머니가 된 계집아이는
이젠 허물어져 없어진 속초 역전
경찰서 통신계장네 집 셋방에서 산다
아무 죄 없는 바닷가 어린아이는

 

(‘바닷가의 한 아이에게’, 9쪽)

 

 

 


시인은 도시에 살면서도 바다가 품은 고향을 잊지 못한다. 소라 껍데기에 귀 기울이면 파도 소리가 윙윙 들려온다. 바다가 그리운 시인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서울 방바닥에 귀를 대본다. 그러나 꽉 막힌 콘크리트 벽에 파도 소리 한 줄기 스며들 틈이 없다. 불현듯 이부자리에 비친 바닷가의 달빛이 시인의 향수를 잠재우는 유일한 위안거리다. 

 

 

 

이레 전은 사월 초파일
어제는 비가 진종일 내렸다.
불을 끄자마자
이미 번져 있는 환한 그림자
심장이 멎을 것만 같다.
이부자리에 비친 옛 바닷가의 달빛
누워서 동편 하늘을 내다보니
아 이건 정말 밝기도 하구나.
흙을 밟고 온 사람아
새벽이 왔는가 봄이 왔는가.
벌써 세월은 흘러
서울 방바닥에 귀를 대고 누웠다.

 

 

(‘화곡동 창’, 20쪽)

 

 

시인은 붉은 칸막이로 이루어진 원고지에 푸른 바다의 추억을 옮기는 시도를 한다. 원고지는 모래알 같은 문자들이 가득한 모래사장이다. 시인은 아이가 되어 원고지 속으로 뛰어들어 문자들을 가지고 논다. 그 문자들을 차곡차곡 뭉쳐 쌓아 올리면 한 편의 멋진 문장의 성이 만들어진다. 시인은 바다를 기억하려고 추억을 아교로 삼아 문장의 성을 지으려고 한다. 하지만 시인이 다시 만지고 싶었던 옛것들은 세월의 파도에 떠밀려 사라진 지 오래다. 그리운 것들을 더 이상 만날 수도, 만져볼 수 없는 현실에 시인은 좌절한다.
 

 

여기는 누구의 태생지인가.
어민으로 살다가 붉은 줄 쳐진 원고지를 깔고
한 생애를 정리하고 싶은 여기는

 

(중략)

 

덜컹거리는 상점 유리창으로 내다보는
너의 태생지인 바닷가 바다
이미 옛것들이 사라졌고
이제는 섬세한 그의 몸짓도 생활에 묶여진 지 오래
남은 시간은 붉은 줄 쳐진
하얀 바탕의 편지지에 쓰고 싶은 안부 같은 것
이제 너는 너의 고향에 대해여 말하지 않는다.

 

 

(‘사진리’ 중에서, 100~101쪽)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추억은 향기가 되어 마음에 파도처럼 몰아친다. 시인의 문장은 오랫동안 바닷바람에 절이면서 말린 오징어 한 조각이다. 이 문장의 조각을 눈으로 씹어 먹을수록 머릿속에 바다의 소금기가 느껴진다. 바다를 포근하게 안아보고 느껴본 사람만이 이런 감동을 문장으로 표현할 줄 안다. 시인은 시집의 후기에서 이웃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속초 바다의 정경을 걱정했다. 시인의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여름만 되면 바다에는 도시인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진짜 바다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보다 더 안타까운 사실이 또 있다. 진짜 바다를 기억하는 이 시집도 서점에 찾아볼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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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2-14 1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이 복간이 안 되는 것은 정말 안따까운 일입니다. 최측의농간`인가요 ? 그 출판사는 그러한 아쉬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출판사라고 하더군요.. 이 얼마나 반가운 의도입니까..
이번에 고형렬 산문집 가운데 연어`` 제목이 갑자기 생각이 안나는데.. 하튼, 그런 산문집 하나 나왔더군요..... 읽어봐야겠습니돠..



저도 속초에서 1년 정도 살아서인지... 뭔가 느낌이 옵니다..

cyrus 2016-02-14 17:33   좋아요 0 | URL
출판사 덕분에 최근에 고형렬 시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제 헌책방에 시집을 발견했습니다.

알라딘에 검색되지 않는 책이었어요. 이런 책이 안타깝습니다. 씨와 날 출판사에 대한 정보도 없었어요.

서니데이 2016-02-14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2016-02-14 1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5 0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6-02-15 1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cyrus 2016-02-15 18:09   좋아요 1 | URL
네. 고맙습니다. ^^

표맥(漂麥) 2016-02-15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바닷가, 해수욕장, 회센터... 바로 거기에 살고 있습니다.^^

바닷가에서 자랐기에 집을 이쪽으로 구했지요.
말씀 하신대로 전 여름이 너무 싫습니다. 시끌시끌~ 빵빵~
이른 봄과 늦가을의 모래사장이 좋습니다. 뛰기도 좋구요...

다만...
전 시인처럼 강원도 속초의 바닷가가 아니라 남도의 바닷가지요...
거친 파도가 아닌 아기 같은 바다...

이 글 읽으면서 살짝 웃음이 나오네요. 뭐~ 포근한 느낌이었달까요.^^

cyrus 2016-02-15 19:54   좋아요 0 | URL
바다 근처에 사시는 것만으로도 부럽습니다. 여름에 바닷가에 가면 고성방가에 난동 부리는 관광객들 진짜 싫습니다. 차라리 사람 발길이 드문 바닷가 주변에 조용히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알라딘 북 캘린더 2월 달을 확인했습니다. 역시나 그랬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작은 선물을 전달하는 마음은 좋습니다.

 

하지만 일본 제과업체들의 얄팍한 상술에서 시작된 밸런타인데이 때문에

가슴 아픈 역사적 순간이 잊어지는 사실이 씁쓸합니다.

 

1910년 2월 14일,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하고 체포된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날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발렌타인데이가 아니라 ‘밸런타인데이’로 써야 합니다.

 

오늘은 주말이라서 알라딘 직원의 수정 작업이 불가능합니다.

월요일에 서재지기님에게 건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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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2-13 1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슨 데이 데이....정말 내키지 않는 데이 ㄷㄷㄷㄷ

cyrus 2016-02-13 18:38   좋아요 0 | URL
사투리 라임을 이용한 겁니까? ㅎㅎㅎ

transient-guest 2016-02-13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아나는 건 온 나라...그런 날인줄 이제 알았습니다 잊지 않을게요

cyrus 2016-02-13 18:42   좋아요 0 | URL
저도 어제 알았습니다. 혹시 국뽕이 들어간 이야긴줄 알았는데, 자세히 확인해보니까 사실이었습니다. 안중근이 아닌 살만 루슈디 사형 선고 받은 날은 역사적인 날로 기록되어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2016-02-13 1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