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는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와 달리 복기(復棋)라는 독특한 절차가 있다. 한 판의 대국을 마치고 나면 두 대국자는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바둑의 판국을 비평하면서 두었던 대로 다시 처음부터 놓는다. 그 과정에서 본인과 상대방이 놓은 수들의 잘잘못을 검토한다. 대국에서 패배한 대국자는 자신의 실수를 분석하면서 되씹는다. 복기를 해보면 대국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묘수가 발견될 수 있다.
출판사 혹은 인터넷 서점이 주관하는 서평대회는 글로써 승부를 겨루는 게임과 같다. 나는 누구보다 서평대회에 응모하는 것을 즐긴다. 평소에 글 쓰는 날보다 집중력이 높아진다. 퇴고를 엄청나게 열심히 한다. 대회 심사 위원에게 잘 보이기 위한 문장을 쓰려고 며칠 동안 고민한다. 그렇지만 노력한다고 해서 좋은 성과가 무조건 오는 것은 아니다. 나보다 열 배나 뛰어난 작문 실력을 갖춘 분들이 많다. 달콤한 축배보다 쓰디쓴 고배를 많이 마셨던 날이 더 많다. 보통 서평대회에 응모했다가 낙선되면 씁쓸한 감정을 애써 지우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나만의 절차가 따로 있다. 서평 대회 결과를 확인하면 내가 응모한 글과 대회 당선작들을 다시 읽어 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는 편이다. 왜냐하면 내 글이 낙선된 이유를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행동은 결과를 승복하지 못한 태도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내가 쓴 글을 다른 글과 비교하면서 읽는 절차를 나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냥 내 스스로 내 글의 문제점을 진단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바둑이 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바둑을 기록하고 복기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서평대회에서 당선될 만한 글을 잘 쓰고 싶어서 내 글을 복기(復記)한다. 즉, 완성된 글을 해체하고 마음으로 다시 써보는 것이다. 내 글과 잘 쓴 글을 비교해서 읽어 보면, 표현력과 내용 전개 방법 등에서 확연한 차이가 나는 사실이 눈에 보인다. 이 일이 생각보다 재미있다. 글 속에 글쓴이 생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글쓴이가 책을 읽으면서 자신만의 관점으로 느낌을 풀어나가는 글의 전개를 눈으로 따라가면 감탄을 하게 된다. ‘저 사람은 이 책을 이런 관점으로 읽었구나, 정말 대단한걸!’ 내가 책을 읽으면서 놓쳤거나 생각하지 못한 사실을 알게 된다. 덤으로 글쓴이의 문장 표현법도 배우게 된다. 그러면 내 글이 왜 당선되지 못했고, 어디가 부족했는지 파악할 수 있다.
가끔은 당선작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글을 볼 때가 있다. 내 눈에는 당선작인데도 2% 이상 부족하게 보일 때가 있다. 그런 글들은 대부분 책과 저자를 향한 찬양의 수사로 휘황찬란하게 장식되어 있다. 그러면 나는 절대로 저런 글을 쓰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끝까지 읽지 않는다. 이런 글에는 일정한 레토릭(rhetoric)이 있다. 글쓴이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는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책 속의 저자 생각이 자신의 삶에 끼친 사례를 열거한다. 글의 결론에서는 독자에게 호소한다. ‘이 책을 꼭 읽어보십시오. 최고로 좋습니다요.’ 이러한 레토릭은 약장수들의 언변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약, 건강에 좋아요. 내가 한 번 약을 먹고 나니까 병이 씻은 듯이 다 나았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이 약 먹으면 나처럼 건강해질 수 있어요.” 칭찬의 수사에 쓰는 일에 재미 들린 글쓴이는 자신이 독자인지 책을 판매하는 사람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서평대회 심사를 맡은 출판사 직원은 이런 글을 안 좋아할 수가 없다. 독자가 자신들 대신해서 책을 열정적으로 홍보하고 있으니까. “그래, 글이 아주 좋아서 책 홍보용으로 써도 손색이 없군. 이 글을 최우수작으로 선정하자고.”
어떤 이는 자신의 경험담을 고백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글쓴이는 자신이 경험했던 일을 책의 내용에 투영하면서 책을 소개한다. 이런 전개 방법은 좋다. 읽기 쉬운 글이다. 하지만 이 글도 단점이 있다. 글쓴이가 경험담 소개에 치중하면 책에 대한 단점이 가려질 수 있다. 즉, 책을 평가하는 태도를 놓치고 만다. 서평이든 독후감이든 글 한 편 속에 자신에 관한 이야기가 책 이야기보다 더 많이 보이는 것도 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건 잘 쓴 에세이지, 잘 쓴 서평/독후감이 아니다. 평소에 이렇게 글을 써도 좋다. 서평/독후감을 에세이의 일종으로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서평 대회에 응모하려면 서평/독후감에 부합되는 내용을 써주는 것이 맞다. 그렇다고 해서 책 소개만 이루어진 지루한 글을 쓰라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경험담을 아예 쓰지 말라고 엄격한 자세를 취하는 것도 아니다. 책의 저자가 하는 말에 조금이라도 의문이 나거나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면 솔직하게 쓰는 것이 좋다.
책을 비판하면서 읽는 방법 또한 독서의 한 과정일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독서법이 독자가 함부로 해서는 안 될 금기처럼 여긴다. 특히 서평 대회에 응모하는 글에 책이나 저자에게 조금이라도 시비를 걸면 심사 위원이 된 출판사 직원에게 밉보여서 당선에 불리하다고 생각한다. 책을 비판적으로 읽은 관점이 다른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을 정도라면 자신 있게 써도 된다. 자신감이 부족한 글쓴이는 책에 대한 찬사 위주의 내용을 쓰려고 고집한다. 이런 글들이 서평대회 당선작이 되면 결국 불리한 건 우리 독자들이다. 당선작을 읽는 독자들도 글을 제대로 보는 눈이 있다. 책의 단점이 뻔히 드러나는 데도 책을 좋다고만 쓴 서평을 보면 눈살을 찌푸린다. 그러면 글쓴이를 오해하게 된다. 혹시 저 글을 쓴 사람은 출판사 직원일까? 그런 의심을 한 번쯤을 할 수 있다. 서평/독후감을 작성한 독자와 그 글을 읽는 독자들 간의 보이지 않는 오해가 생기고, 독자가 독자 서평을 신뢰하지 않는 상황까지 생긴다.
“출판사 직원들에게 잘 보이도록 쓴 글은 서평대회 당선작이 될 확률이 높다” 꽤 많은 사람이 서평대회 당선작을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이 생각을 정말 싫어한다. 그리고 억울하다. 나도 예전에 서평대회 응모하는 글을 썼을 때 책을 칭찬하는 레토릭을 포기하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안 쓰면 손해를 볼까 봐 두려웠다. 그러다가 책을 칭찬하는 서평이 당선작이 된 적이 있었다. 기분은 좋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서평이 출판사 직원들의 기분만 맞춰주는 글이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칭찬의 수사를 자제하고 책을 꼼꼼하게 따지는 서평/독후감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출판사가 서평대회를 여는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책 홍보다. 그러나 서평대회는 책과 서평을 좋아하는 독자들을 위한 특별한 행사이기도 하다. 그만큼 서평대회에 참여하는 독자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책을 보는 생각이 사람마다 제각각 다를 뿐만 아니라 책이 모든 사람을 다 만족하게 해주지 못한다. 책 그리고 저자의 생각에는 장단점이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책에 대한 평이 없는 서평과 독후감은 출판사의 손아귀에 들어간 영혼 없는 글이다. 저자와 책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도 사람들의 감흥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니까 문제를 아주 예리하게 알려준 서평과 독후감은 독자, 출판사 직원 그리고 저자 모두를 공감하게 한다. 이런 글이 서평대회 당선작이 되어야 한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독자들 앞에서 솔직해지는 서평/독후감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