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
스티븐 호킹 지음, 배지은 옮김 / 까치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주가 신(God)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유신론자들에게 우주는 기적이 일어나는 신비스러운 세계이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행성이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지구에 인간을 비롯한 다양한 생명체가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기적을 일으킨 존재가 신이다. 그러나 확실성을 추구해온 과학은 발전을 거듭할수록 종교의 불확실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에 세상을 떠난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은 신을 찾을 필요 없이 과학의 법칙으로 우주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호킹의 마지막 책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줄여서 ‘빅 퀘스천’)을 읽고 있자니 ‘오컴의 면도날(Ockham’s Razor)이 떠오른다. 중세 영국의 철학자 윌리엄 오컴(William of Ockham)은 논리적이지 않은 군더더기는 불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쉽게 풀자면, 가장 단순한 설명일수록 진리에 더욱더 가깝고 아름답다는 원칙이다. 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 가정(假定)은 최소한으로 해야 하며 쓸모없는 가정을 면도날로 잘라버리듯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호킹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근거는 존재론적 검약의 원리인 ‘오컴의 면도날’에 따를 때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호킹은 생전에 여전히 풀리지 않은 우주의 법칙,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류의 운명에 대해 고민했다. 《빅 퀘스천》은 그 고민과 관련된 거대한 질문(Big Questions) 10가지에 대한 최후의 대답이다. 이 책은 그의 관심사를 확인할 수 있는데, 질문의 주제는 ‘지적 생명체 존재 여부’, ‘인공지능의 미래’ 그리고 ‘우주 식민지 건설 가능성’ 등이다. 그는 또 이 책에서 인류가 향후 천 년 안에 핵전쟁이나 환경 재난이 일어나서 지구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거라고 경고한다. 사실 그의 경고는 이 책이 처음은 아니다. 생전에 언론과 인터뷰를 했을 때나 대중 강연을 했을 때 얘기했던 내용이다. 호킹은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우주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미래의 인류를 위한 대안으로 ‘우주 식민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그는 달이나 화성에 인류가 정착할 수 있는 행성이라고 전망한다.

 

우주에 인류를 보내야 한다는 그의 야심 찬 생각에 동의하지만, ‘식민지’라는 표현을 왜 써야 했는지 궁금하다. 과연 우주 식민지는 지구를 대체하는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모든 사회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인류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문명의 발전 과정에서 전쟁은 필수 불가결한 상황이다. 미래의 인류는 우주에서 새로운 문명을 세우려고 할 것이고, 지구와 비슷한 환경이 유지되는 우주의 신세계를 차지하기 위해서 전쟁도 불사할 것이다. 호킹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은 인공지능의 발전에 누구보다도 우려를 표시한 학자이다. 그는 ‘성능 좋은 AI 무기’가 등장하게 되면 군비 확장 경쟁이 지속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지구를 넘어 우주로 뻗어가는 군비 확장 경쟁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인공지능 연구는 우주 개발 사업과도 깊이 연계돼 있다. 우주 식민지 개발이 착수하면 사람의 노동력이 투입되는 대신 인공지능 기술에 의존하는 일이 늘어날 것이다. 우주에서 군비 확장을 노리는 강대국들은 우주에서도 쏠 수 있는 미사일과 이에 대한 방어체계를 구축할 것이다. 실제로 미국 트럼프 정부는 2020년까지 ‘우주군’을 창설하고 이와 관련해 향후 5년간 80억 달러의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주]. 우주 패권을 둘러싼 강대국 간의 경쟁이 심화한다면 냉전시대 우주 전쟁 시나리오가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

 

 

 나는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 위에 살면서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 205쪽)

 

 

출처는 확실하지 않지만, 호킹은 “자신을 장애인이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장애인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 그는 장애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고, 장애에 갇혀 살지도 않았다. 오히려 연구를 통해 더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 그칠 줄 모르는 호기심은 그의 삶을 완성했다. 호킹은 전 세계 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주었던 시대의 영웅인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성공적인 미래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고개를 들어 우주를 바라보자는 그의 당부가 장애인들에게 공감을 살지 미지수다. 호킹은 지구라는 행성 위에 사는 인류를 ‘우리’라는 대명사로 호명하면서 미래에 무관심하다고 지적한다. 그가 말하는 ‘우리’에는 분명히 장애인들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장애인이 꿈꿔야 할 미래와 장애인이 꿈꿔야 할 미래는 같지 않다. 호킹이 쓴 대명사 ‘우리’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미래의 의미를 보지 못하게 한다. 대부분 장애인은 이동권이 보장되어 마음 놓고 편하게 나들이할 수 세상을 원한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꿈꾸는, 아주 현실적인 문제이자 ‘미래’이다. 장애인들도 우주를 향해 눈길을 돌릴 수 있고, 우주에서의 생활이 가능한 미래에 기대할 것이다. 그렇지만 장애인 이동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한, 그들이 우주에 정착하고 적응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선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고민도 안고 가야 한다. 그런데 호킹의 글에는 그러한 고민의 흔적이나 문제의식이 보이지 않는다.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장애인이라 생각하지 않은 장애인’, 즉 ‘비장애인’의 위치에 서서 쓴 것처럼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인가. 호킹은 자기 생각을 ‘간결하게’ 쓰고 싶은 바람에 면도날을 너무 많이 휘두르고 말았다.

 

 

 

 

[주] <[달 착륙 50년 요동치는 우주패권] 美 우주군 선언 · 러는 우주방어 현대화…불붙는 ‘스타워즈’> (서울경제, 2019년 1월 10일)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onnight 2019-03-29 0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학을 사랑하는 직장동료가 이 책을 읽더니 제목만큼 간결하거나 쉽지 않다고 해서 엄두를 못 내고 시무룩했는데ㅠㅠ cyrus 님 존경합니다@_@;;;;;;;

cyrus 2019-04-08 05:43   좋아요 0 | URL
정말 쉽게 쓴 책입니다. 작년에 나온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일부 내용과 비슷해요.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은 번역한 이종필 씨의 해설이 곁들어 있어서 호킹의 업적을 이해할 수 있는 입문서로 좋습니다. ^^

페크(pek0501) 2019-03-30 1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비판 자세 좋습니다. 응원합니다.

cyrus 2019-04-08 05:46   좋아요 0 | URL
비판 없는 독서는 재미없어요. 가끔은 저자의 생각에 의문을 품고, 도발하는 일도 있어야 해요. 그래야 책 읽을 맛이 나죠. ^^
 
진화의 배신 - 착한 유전자는 어째서 살인 기계로 변했는가
리 골드먼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라는 말이 있다. 많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얻은 승리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고대 그리스의 명장 피로스는 로마와 싸워 승리를 거뒀지만, 자신도 적지 않은 손해를 봤다. 그의 부대는 수많은 장군과 숙련된 병사들을 잃었기 때문이다. 아군의 몰락을 불러올 승전이라면 패배한 것과 다름없다. 이것이 그 무섭다는 승자의 저주(The winner’s curse)이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즉 인간이 지구상에 살아남은 것은 행운이다. 그러나 지금 인간은 새롭게 우리를 위협하는 질병 속에서 신음한다. 인간은 진화에 성공하여 오랫동안 지구상에 살아남은 승리자가 되었지만, ‘승자의 저주를 피하지 못한다. 질병과의 전쟁은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중세 유럽에 흑사병이 유행하여 인구의 4분의 1이 희생되고, 장원제가 붕괴하는 거대한 변화를 야기했다. 인플루엔자 치료제가 없었던 1918년에 전 세계를 휩쓴 스페인 독감은 제1차 세계 대전과 맞물려 유행하면서 50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대재앙이었다. 육체적으로 매우 취약한 인간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물론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 인간은 유전자 교환을 통한 유성 생식이 가능한 종이다. 유전자의 다양성은 인간의 장기적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 유전적 다양성이 풍부해질수록 질병 면역력이 강한 인간이 태어난다. 그러나 그들 중 일부는 특정 질병에 취약한 속성을 물려받을 수도 있다.

 

진화의 배신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닳고 닳은 소재지만, 저자의 시각만큼은 무척 참신하다. 심장병 전문 의사인 저자는 인류는 역사적으로 너무나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먼저 강조한다. 생존율을 높여주는 네 가지 유전 형질 덕분에 인류는 멸종하지 않았다. 저자가 제시한 유전 형질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굶주림을 피하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음식을 먹으려는 유전 형질이다. 초기 인류는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포만감을 느낄 정도로 음식을 먹었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식량이 귀한 시절이었다. 초기 인류의 과식은 생존을 위한 본능이었다. 그러나 현생 인류는 식량 부족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얼마든지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과식이 일상화되면서 당뇨와 고혈압 같은 질병에 걸릴 확률은 높아진다.

 

두 번째, 물과 소금을 많이 섭취하려는 욕구이다. 초기 인류는 아사(餓死)뿐만 아니라 탈수로 인한 죽음의 공포도 시달렸다. 그러므로 탈수 방지를 위해 물과 소금을 많이 섭취하는 습관이 생겼고, 인류는 체내의 물과 소금을 적절히 보존할 수 있도록 진화되었다. 그러나 현생 인류는 소금에 중독되었다. 우리의 뇌는 짠맛을 통해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짠맛이 주는 만족감에 익숙해진 뇌는 그 맛을 잊지 못해 계속해서 짠 음식을 찾는다. 과도한 염분 섭취는 성인병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염분 섭취량이 많아지면 갈증이 유발되어 물을 많이 마시게 된다. 물을 너무 많이 섭취하면 체내의 염분이 부족해지고, 전해질이 희석돼 물 중독 증상이 나타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위기 상황을 스스로 인식하거나 그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생존 본능이다. 인류는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폭력, 살인, 전쟁 등)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이러한 심리적 반응은 우리의 내면이 보내는 경고 신호이다. 위험한 상황일 수 있으니 얼른 피하라.’ 과거에 비하면 현생 인류는 비교적 안전한 세상 속에 살고 있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불안에 떠는 성향은 우울증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자살까지 불러일으킨다.

 

마지막 네 번째는 과다 출혈을 막는 응고 작용이다. 혈액 응고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면 과다 출혈로 목숨을 잃는 일은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현생 인류는 혈액 응고 작용으로 인해 목숨을 잃을 확률이 높아졌다. 응고가 너무 많이 일어나면 혈전이 생긴다. 혈전이 생기면 심장마비, 뇌졸중 발생 위험이 커진다.

 

네 가지 유전 형질 덕분에 각종 질병에 면역력이 강한 개체의 인류가 살아남았고, 자손도 남길 수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현대에 들어서는 이 기능들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승자의 저주에 빠진 인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저자는 미래의 인류가 겪을 수 있는 상황을 세 가지 시나리오로 제시한다. 하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다음 후손들이 태어나기 전에 모든 인류는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가 죽는다는 시나리오다. 두 번째는 건강해지기 위해 인류가 스스로 제 몸을 관리한다는 시나리오다. 세 번째는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건강을 유지한다는 시나리오다. 다만, 이 시나리오는 과학에 완전히 의존하는 인류의 탄생을 예고하는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에 가까운 발상은 아니다.

 

이 책은 유전자와 진화의 배신이 인간을 성인병 위험에 노출된 연약한 존재로 만들게 한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건강이 나빠진다고 유전자 탓만 할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인간은 그동안 진화의 문턱을 수차례 넘어서면서 살아남은 지구의 승리자인 것처럼 살아왔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은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있었다. 그런데 인간은 승리감에 도취해서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자만과 방심은 금물이다. 진화의 배신은 인간을 진화의 배신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마는 연약한 존재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쓴 책이 아니다. 저자는 비관주의자도, 낙관주의자도 아니다. 이 책은 인간은 언제나 좋은 방향으로 진화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진화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인류주연의 장대한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백질의 일생 - 탄생에서 죽음까지, 생명 활동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은밀하고 역동적인 드라마
나가타 가즈히로 지음, 위정훈 옮김, 강석기 감수 / 파피에(딱정벌레)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백질 도둑’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모른다면 다행이다. 몰라도 될 말이면서도 절대로 써선 안 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단백질 도둑’은 성적 속어이다. 속어로 쓰이는 ‘단백질’은 정액을 뜻한다. 정액은 성관계나 자위(수음)를 통해 체외로 분출된다. 대개 남성들은 포르노 여배우의 과장된 연기를 보면서 자위를 한다. ‘단백질 도둑’은 남성에게 성적 자극을 주는 포르노 여배우, 특히 포르노에 중독된 남성들이 선호하는 포르노 여배우를 일컫는 속어이다. ‘단백질 도둑’을 처음 만든 사람은 정액이 고단백질로 이루어진 물질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액의 90%는 수분이며 나머지 10% 정도가 단백질과 지방, 과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단백질 도둑’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혐오 표현이면서도 단백질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단어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필수 물질 중 하나인 단백질이 잠깐의 욕구 분출에 의해서 나오는 정액과 같은 의미로 알려진다는 건 단백질에 대한 모욕이다.

 

대부분 사람은 단백질의 장점보다 단점에 더 주목한다. 동물성 단백질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각종 성인병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단백질의 장점은? 단백질은 근육의 재료일 뿐 아니라, 면역 세포를 구성하는 주성분이다. 그러므로 단백질을 너무 적게 먹는 것도 좋지 않다. 우리 몸의 생리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데, 사실 문장 한 줄로 단백질의 장점을 언급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지금도 여러 가지 종류의 단백질은 24시간 내내 우리 몸의 구성이나 기능에 중대한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단백질의 일생》그냥 묻히기엔 아까운 과학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20여 년 동안 단백질 연구에 몸담은 일본의 생리학자이다. 책 제목인 ‘단백질이 일생’은 저자가 주도하면서 참여한 단백질 연구 프로젝트의 이름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 몸속에 있는 다양한 단백질이 어떻게 움직이고 상호작용하는지 ‘인간의 일생’에 비유하여 보여준다. 우리가 몸을 움직이는 것도, 지금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것도 모두 단백질 덕분이다. 몸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단백질의 눈부신 활약 덕분에 ‘인간’이라는 존재가 태어나고 만들어지는 것이다. 단백질도 인간의 일생처럼 ‘탄생’, ‘성장’, ‘성숙’, ‘노화’, ‘죽음’을 겪는다. 단, 인간의 일생과 단백질의 일생의 차이점은 ‘노동의 강도’이다. 인간은 하루 절반을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그러나 단백질은 우리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쉬지 않고 계속 일한다.

 

단백질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아미노산이다. 단백질은 20여 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몸의 기능은 기본적으로 단백질의 아미노산에 의해 수행되며 이는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DNA에 의해 생성된다. DNA의 염기쌍(A-T-G-C) 중 3개가 조합된 아미노산이 DNA의 염기 서열에 따라 결정되어 단백질을 이룬다. 이른바 ‘단백질의 탄생’이다. 어느 정도 성숙기에 접어든 각각의 단백질은 신체 각 부분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이 중 일부 단백질은 세포의 성장에 관여하는 반면 일부는 세포가 죽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단백질은 몸 안의 나쁜 세포를 자살로 유도하는데, 이를 ‘아포토시스(apoptosis)라고 한다. 그러나 단백질이 항상 좋은 일만 하는 건 아니다. 단백질도 인간처럼 수명이 있으며 노화되면 저절로 분해된다. 이것이 바로 ‘단백질의 죽음’이다. 그런데 노화된 단백질이 분해되지 않은 채 우리 몸에 계속 남아 있으면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결국 단백질이 만들어져서 분해되는 과정에는 우리 인간의 목숨이 달려 있다. 인간의 삶이 완전히 멈출 때까지 몸속의 단백질은 셀 수 없을 정도로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면서 살아간다.

 

단백질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단백질은 외부 반응에 민감한 편이다. 특히 단백질은 고온(열 충격)에 의해 변형되어 기능을 잃을 수 있다. 그래서 단백질 세계에서도 변성된 단백질이 제 기능을 다 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보호자’가 있다. 그것은 ‘보호자’를 뜻하는 프랑스어 ‘샤프롱(chaperon)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스트레스 단백질이다. 이 ‘샤프롱 단백질’은 연중무휴로 다양한 스트레스로부터 단백질이 변형되는 걸 막는 일을 한다.

 

우리 몸의 생성을 위한 세포 분열, 그리고 우리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죽은 세포를 분해하여 대체하는 세포 재생은 단백질이 종류별로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합성되어 활동해야 가능한 일이다. 고맙게도 단백질은 쉬지도 않고 신진대사를 촉진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 몸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다양한 단백질의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하더라도 단백질의 일생은 알고 있어야 한다. 단백질은 우리 몸속에 있는 존재이고, 우리 삶의 기본 단위다. 단백질의 일생을 잘 이해하면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명확하다. 그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우리는 스트레스를 잘 다스려야 한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단백질을 화나게 해선 안 된다. 그들이 분노하면 병이 생긴다. 단백질이 잘 살아야 우리도 잘 살 수 있다.

 

 

 

 

 

※ Trivia

 

 

* 179쪽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라는 『나무꾼 이야기(竹取物語)(나무꾼 노인이 대나무 속에서 발견한 가구야 공주가 아름답게 성장한 뒤 5명의 귀공자와 천황의 구혼을 물리치고 달세계로 돌아간다는 이야기. - 옮긴이)에서도 구혼자들에게 가구야 공주가 명한 보물찾기의 하나는 ‘봉래의 보물 가지’ 즉, 불로불사의 선약이었다.

 

 

타케토리 모노가타리. 원래 이름은 ‘타케토리 오키나 모노가타리(竹取翁物語解)’다. ‘竹取翁’은 대나무를 주워 파는 노인을 뜻한다. 따라서 ‘竹取物語’를 ‘나무꾼 이야기’로 번역하는 것은 내용상 맞지 않다. ‘나무꾼’이 아니라 ‘대나무 장수’라고 번역해야 한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3-11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3-11 13:17   좋아요 1 | URL
단백질을 위협하는 외부 요인은 앞으로 더 많아질 거예요. 정확한 연구가 나와야겠지만, 미세먼지도 단백질 변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어요.

2019-03-11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1 14: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1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1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03-11 14: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백질 도둑은 책에선 다루지 않는 거지?
그런 건 또 어디서 알고...ㅎㅎ

이런 책이 있었구나.
나도 수년 전 엄마가 대장암 수술 받고
주위에서 몸을 추스리려면 단백질을 많이 섭취해야
한다고 해서 새삼 단백질이 그렇게 중요한 건가 좀 놀라웠지.
나름 파워 블로거인 네 덕분에 이 책이 주목 받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작년이 이런 책이 나왔을 거라곤 꿈에도 몰랐다.ㅋ

cyrus 2019-03-11 17:29   좋아요 2 | URL
남초 커뮤니티에 종종 보이는 속어에요. 당연히 책에 없는 내용입니다. ^^;;

가장 싸게 구할 수 있는 고단백질 식품이 닭 가슴살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닭 가슴살 특유의 퍽퍽한 느낌이 싫다고 하지만 저는 좋아요. 통풍이 생긴 이후로 튀긴 닭고기 대신에 삶은 닭 가슴살을 먹고 있어요. 나이가 들면 신체 활동량이 적어지고, 근육의 양도 줄어들어요. 그럴 때 많이 섭취해야 할 영양소가 단백질이에요. ^^

붕붕툐툐 2019-03-11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만으로 단백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cyrus 2019-03-11 23:08   좋아요 0 | URL
단백질을 제대로 알면 생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기나긴 과정까지 이해할 수 있어요. 단백질은 우리 몸 안에서 정말 중요한 일들을 많이 합니다. ^^
 
해부학 교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일본 최고의 지성이 안내하는 해부의 역사와 인간의 존재
요로 다케시 지음, 박성민 옮김 / 궁리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죽은 사람의 몸을 가까이 보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며 내키지도 않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체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의사가 되기 위해 인체의 구조를 알아야하는 의대생들이다. 의대생에게 해부학은 성인식과 같은 일종의 통과의례다. 의대생들은 직접 사체를 해부하면서 의사가 갖춰야 할 담대함을 배운다. 사체 기증자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잊지 않는다. 해부학 실습 전에 교수와 학생들은 고인의 넋을 기리는 위령제를 연다.

 

해부해본 적이 있는 의대생이나 해부학을 전공한 사람을 만나면 꼭 한번 묻고 싶은 것이 있다. “해부 실습실에 안치된 진짜 사체와 공포영화에 묘사된 사체 중 어느 게 무섭지 않으세요?” 나 같은 사람은 죽은 사람을 해부하는 일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 마련이다.

 

《해부학 교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는 일반인에게는 으스스하게만 느껴질 해부학을 알기 쉽게 소개한 책이다. 인체의 구조, 해부의 기본 순서와 원리, 해부용 사체, 해부학의 역사 등에 관해 알려준다. 이 책의 저자는 해부학과 뇌 과학을 전공한 작가 요로 다케시(養老孟司)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그의 대표작 《바보의 벽》(재인, 2003)은 자신이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스스로 귀를 닫아버리는 인간의 행동을 뇌 과학적 관점으로 설명한 책이다. 요로는 인간의 뇌 속에는 타인과의 대화와 소통을 가로막는 ‘바보의 벽’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벽으로 인해 인간들은 알고 싶지 않은 것, 자신과 반대되는 내용에 대해서는 스스로 정보를 차단해버리면서 크고 작은 갈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해부학 교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는 청소년을 위한 해부학 입문서로 1993년에 처음 출간되었으며 2005년에 문고판으로 다시 나왔다. 자신의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한 호기심 많은 청소년부터 의학 상식을 배우고 싶은 어른들까지 두루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의대생들의 해부학 실습 정도를 다루겠지 하면서 본다면 오산이다. 책은 해부에 관한 지식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에게 무거운 질문을 연거푸 던진다. 인간은 왜 해부를 금기시하면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해부를 시도하려고 했을까. 사체는 ‘죽은 몸’일까, 아니면 ‘물건’일까. 몸과 마음의 관계는? 분량이 많지 않은 책인데도 저자가 던지는 질문들을 만나면 훌훌 책장을 넘길 수 없을 것이다.

 

해부학은 의학에 바탕이 되는 기초 학문이다. 대부분 사람에게는 해부학이 의대생들을 위한 전문적인 학문으로 인식될지 모르나 해부학은 몸을 알기 위해 배울 게 많은 학문이다. 우리는 어릴 적 한 번쯤은 인체 장기를 본뜬 모형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 경험이 있다. 소독약 냄새나는 실험실에서, 약간 겁먹은 눈으로 과학 선생님의 설명을 듣다 보면 “내 몸 안에도 저런 것들이 들어 있을까?”하고 생각한 적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몸에 대한 소소한 깨달음을 얻기도 했을 것이다. 굳이 여러 가지 사례를 열거하지 않더라도 동서양에서는 몸이 중요한 주제였다. 학문의 역사 속에서 몸은 사색의 대상이자 탐구의 대상이었다. 과학이 발달하고 의학이 발전하면서 이러한 호기심은 해부학의 영역을 확장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요로 다케시가 생각하는 해부의 목적은 몸을 아는 것이며, 더 넓게 말하자면 해부는 ‘인간’을 알기 위한 과정이다. 몸은 지구상의 어떤 피조물보다 복잡 오묘하고 경이롭다. 그래서 몸은 ‘소우주’,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로도 불린다. 몸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것이 인식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대상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몸을 바라보는 주체와 대상, 그리고 그 환경과 문화 같은 외부적 요인에 영향을 받는 장소가 모두 몸이다. 그런 점에서 몸을 아는 것은 세상을 온몸으로 느끼는 인간의 과거 · 현재 ·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과정이다.

 

이 책을 읽으면 해부용 사체를 다시 보게 되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사체는 ‘죽은 몸’이지만, 죽음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완전히 해체되기 전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나는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을 무엇으로 선택할까. 누군가의 눈이 될 수도 있고 심장이나 간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의학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진열대 위에 누워 있어야 하나?

 

 

 

 

※ Trivia

 

  재판에서 갈릴레오는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재판이 끝나고 나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중얼거렸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138쪽)

 

 

→ 갈릴레오의 명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갈릴레오 사후에 작가가 만들어낸 말이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2-13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13 16: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13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9-02-14 1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소년을 위한 해부학 입문서라면 제가 읽으면 좋을 책 같습니다. 다방면의 독서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요즘입니다. 전혀 상관 없는 책 같지만 막상 읽어 보면 어떤 책과 어떤 책 사이에 어떤 연결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예술로 가는 길은 하나다, 또는 배움의 길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져요.

cyrus 2019-02-18 15:21   좋아요 0 | URL
이 책이랑 김승섭 씨의 <우리 몸이 세계라면>과 같이 읽으면 좋아요. 두 책에 연결고리가 있거든요. ^^
 
떨림과 울림 - 물리학자 김상욱이 바라본 우주와 세계 그리고 우리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는 “자연이라는 거대한 책에 언어가 있다. 그 언어를 아는 사람만이 책(자연)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언어가 바로 수학”이라고 말했다. 갈릴레오는 수학을 자연의 기본 언어이자 자연 전체에 적용되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수학과 물리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므로 물리학을 공부하게 되면 수학을 피해갈 수 없다.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Richard Feynman)은 수식을 동원하지 않고서도 일상의 익숙한 사물에 빗대어 물리학 이론을 능숙하게 설명할 줄 알았다. 생전에 그는 수학의 도움 없이도 물리학의 모든 이론이 설명될 수 있는 날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날이 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일반 대중 앞에 선보인 TV 방송 강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불행히도 수학을 모르면 자연의 가장 심원한 아름다움을 실제로 느끼기 어렵다고. 앞서 갈릴레오가 말했듯이 수학은 자연의 언어이며 물리학자들 또한 수식을 대체할 다른 언어로 복잡하면서도 오묘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떨림과 울림. 이 책의 제목만 보면, 대체 이 책이 물리학의 어떤 측면을 어떻게 설명하려 하는 것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요즘 방송 출연으로 인지도가 높아진 김상욱 교수는 물리학이 인간적으로 보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떨림과 울림》을 썼다고 한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수식으로 설명해야 하는 물리학은 ‘차가운 물리학’이다. 물리학은 인간이 보지 못하거나 감각으로 느끼지 못하는 자연 현상을 보이게 해준다. 그런데 ‘차가운 물리학’은 불친절하다. ‘차가운 물리학’은 자연 현상을 검증할 수 있는 간단한 수식을 보여주기만 한다. 그런데 수학과 물리학을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는 수식이 간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건 수식이 아니라 알아먹기 힘든 ‘외계어’이다. 결국 이들은 물리학에 진절머리 나는 경험을 하게 되고, ‘물리학’ 하면 복잡한 수식을 떠올린다. 우리가 수학 다음으로 물리학과 친하게 지내지 못한 이유이다. 그리하여 ‘차가운 물리학’은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학문으로 남게 된다.

 

김상욱 교수는 독자들이 천천히 손발을 담글 수 있게 얼음물처럼 ‘차가운 물리학’을 데운다. 물리학이 어느 정도 미지근해지면 독자들은 그 속에서 전해지는 ‘떨림’과 ‘울림’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그가 보여주는 물리학의 ‘떨림’과 ‘울림’은 의외로 단순하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현재까지도 ‘떨림’과 ‘울림’이 반복되고 있는 거대한 물리의 세계이다. 이를테면 전자기파는 물이 떨면서 흐르는 것처럼 진동하는(물리학 용어로 ‘파동’이라고 한다) 빛의 일종이다. 1초 동안 많이 진동할수록, 전자기파의 에너지는 높아진다. 진동수에 따라 전파기파의 종류는 다양하다. TV나 라디오를 살아 숨 쉬게 하는 힘은 이 전자기파에서 흘러나온다. 전자기파가 계속 진동하지 못한다면 모든 가전제품의 작동은 멈췄을 것이다. 우리가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듣는 것은 소리가 일으키는 파동, 즉 울림이 만들어낸 근사한 효과이다. 우리가 자주 듣는 음악은 소리라는 물리적 현상이 있기에 가능하다. 우리 뇌는 이 소리의 파동을 ‘음악’이라는 형태로 받아들인다. 김상욱 교수는 우주를 포함한 이 거대한 세상에 눈으로 볼 수 없는 떨림과 울림이 공존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 미세한 진동으로 숨 쉬고, 말하면서 움직인다.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 세상의 크고 작은 ‘떨림’과 ‘울림’은 이해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확실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세상이, 우리가 오감을 통해서 세상에 대해 받아들인 정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리학자들은 만물의 ‘떨림’과 ‘울림’을 눈으로 보이게끔 설명할 수 있게 되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떨림’과 ‘울림’이 남아 있다. 그래서 김상욱 교수는 이 책에서 ‘불투명한 세계’ 속에 사는 과학자들이 갖춰야 할 자세를 언급하면서 삶에 대한 문제의식을 놓지 않는다. ‘차가운 물리학’은 경험이나 증거를 들어가면서 어떤 현상의 실체를 증명하려고 한다. ‘차가운 물리학’에 익숙한 과학자들은 과학적 증거를 가지고 세상을 분석하려고 했다. 그리고 간결한 수식으로 물리 현상을 설명할 수 있어야 직성이 풀렸다. 그들은 수식과 과학적 증거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비과학’으로 취급했다. 물리학이 차가우니 그것에 익숙해진 과학자들의 태도가 쌀쌀맞을 수밖에 없다. 이러면 과학자들은 독단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자신들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게 된다. 김상욱 교수는 ‘과학은 무지를 인정하는 태도’라고 말한다. 그의 말은 대중들 앞에서 복잡한 물리 현상을 설명하는 데 어려워한다면서 고백한 파인먼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파인먼은 세상이 불확실하고, 불투명하다는 걸 알았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과학자들이 자기들이 보는(보고 싶은) 눈, 자기가 아는 언어(수식)로 세상을 설명한다면 ‘우물 안 개구리’의 어리석음을 저지르게 된다. 물리학과 물리학자들이 차가워질수록 그 속에 있어야 인간성은 시들게 된다. 일말의 인간성이 남아있지 않은 물리학은 ‘얼어 죽은 물리학’이다. 이런 학문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ransient-guest 2019-01-17 0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분이 아마 팟캐스트 ‘과학하는 사람들‘에도 종종 나오시는 걸로 압니다. TV보다는 팟캐스트에서 더 많은 시간을 강의하셨고 ‘알쓸신잡‘에서는 편집이 좀 그랬는지 많이 나오지는 않더라구요. 이학과 공학은 제가 늘 어려운 분야라서 좀더 많이 읽고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cyrus 2019-01-17 13:52   좋아요 0 | URL
김상욱 교수의 책을 처음 읽었는데, 글이 담백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저자가 물리학의 기본적인 내용을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