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일에 올푸리 출판사의 전자책인 오비의 빛이 새로 업데이트(개정)되었다. 예전에 내가 확인한 연도 표기 오류뿐만 아니라 맞춤법도 고쳐졌다. 415일 이전에 다운받은 전자책이 e-Book 책장에 있으면 그걸 삭제하고 다시 다운로드하면 된다. 그러면 업데이트된 전자책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올푸리 출판사 공식 블로그에 공지되어 있다.

 

링크: https://orpuhlee.blogspot.com/

 

      

새로 업데이트된 전자책을 다운받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나는 출판사의 공지 사항을 보면서 처음에는 업데이트된 전자책을 다시 사야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사들이지 않고도 업데이트된 전자책을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e-Book] 아서 맥킨 오비의 빛(올푸리, 2019)

 

    

 

이번에 업데이트된 전자책에 또 하나 추가된 내용은 저자명 표기에 대한 부연 설명이다. 나는 오비의 빛리뷰에 작가 Arthur Machen아서 매켄또는 아서 매컨으로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입장을 표명한 내 글을 올푸리 출판사 편집자가 답변을 보냈다. 출판사 편집자의 답변을 읽고 난 뒤에 생각이 달라졌다.

 

달라진 내 생각은 이렇다. 첫 번째, ‘아서 매켄또는 아서 매컨으로 반드시 표기해야 할 의무는 없다. 두 번째, 아서 메이첸또는 아서 맥킨(올푸리 출판사가 표기한 저자명)으로 표기하는 것이 틀렸다고 말한 내 입장은 잘못되었다.

 

Arthur Machen에 관한 국립국어원의 권장 표기법은 없다. 주로 많이 쓰이는 게 아서 매켄아서 매컨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의 표기법을 많이 쓴다고 해서 올바른 저자명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아서 메이첸또는 아서 맥킨으로 표기하는 것은 틀렸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주관적인 잣대로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고 만 셈이다. 국립국어원의 권장 표기법이 없는 단어를 둘러싸고 어느 표기명이 맞느냐 틀렸느냐 식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

 

 

 

 

 

 

 

 

출판사 편집자의 말에 의하면 실제로 원어민들이 ‘Machen’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조사하고 검토했다고 한다. 편집자가 내게 제시한 참고 자료는 1937년에 아서 매켄이 BBC의 웨일스 지역 방송에 출연하면서 남게 된 육성 자료. 놀랍게도 이 귀한 자료는 유튜브에 있다. 이 영상에 흘러나오는 방송 진행자의 말을 들어보면 Machen맥킨또는 매킨에 가깝게 발음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411일에 등록된 오비의 빛관련 글 두 편을 수정했다. 잘못된 내용에 취소 선을 그었다. 예전에는 아무도 모르게 문장을 지웠다. 정말 간단한 일이다. 내 글에서 드러난 결점을 말끔하게 지울 수 있다. 하지만 남몰래 내 결점을 숨기는 게 과연 잘한 일일까? 나의 좋은 점이 부각된 글은 보여주고 내 결점이 분명하게 남아있는 글을 숨기는 데 급급하면 제대로 된 반성을 하지 못한다. 내 결점을 분명히 확인했다면 그게 왜 그렇게 나왔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피드백을 거치고 난 후에 글의 결점을 삭제해도 늦지 않다.

 

 

 

 

 

 

 

 

 

 

 

 

 

 

 

 

 

 

 

 

 

 

 

 

 

 

 

 

 

 

 

 

* 한스 로슬링, 올라 로슬링, 안나 로슬링 뢴룬드 팩트풀니스(김영사, 2019)

* 은유 다가오는 말들(어크로스, 2019)

* 은유, 이은의, 윤정원, 박선민, 오수경 불편할 준비(시사IN, 2019)

*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김영사, 2017)

 

    

 

스웨덴의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Hans Rosling)실수를 부끄러워하기보다 실수에서 호기심을 가지라[1]라고 말한다. ‘내가 그 사실을 어쩌면 이렇게 잘못 알 수 있을까?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실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게 되는 결점 중 하나이다. 그렇지만, 로슬링이 말한 대로 결점에 호기심을 가지면 새로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마음속으로 교훈을 얻는 데 그친다면, 금방 잊어버리기 쉽다. 글로 써서 남겨야 한다. 작가 은유이성복 시인의 말을 인용하면서 글쓰기는 오만한 우리를 전복한 일이라고 말한다[2]. 내 결점과 한계를 글로 기록하면 온전한 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내 결점을 확인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나와 다른 생각이 틀렸다고 단정 지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나는 주관적인 생각에 가까운 확신이라는 오만함에 잠깐 눈이 멀었다. 은유는 확신에 찬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 했다[3]. 그녀는 40대 후반이면 그걸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요즘 2, 30대의 젊은 사람은 자기주장이 너무 강해서 확신에 찬 사람이 되기 쉽다.

 

어제 읽은 카알벨루치 님의 글[4]에서 유발 하라리(Yuval Harari)가 한 말을 발견했다. 경험하면 기록하라. 기록하면 업로드하라, 업로드하면 공유하라[5] 나는 내 결점을 확인하고 난 뒤에 성찰하는 피드백(feedback) 과정도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피드백 과정을 글로 기록하고, 업로드하고, 공유할 수 있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그리고 내 결점을 떳떳하게 글로 공개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나의 장점을 드러내고, 나를 자랑하기 위해 글을 쓰는 건 분명 재미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내가 오만한 나’를 따끔하게 혼쭐내기 위한 글쓰기도 재미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은 부끄러운 나의 진짜 모습을 글로 표현하기가 망설여진다면, 은유의 문장[6]을 주문 삼아 외워보자.

 

남에게 보여주는 용기, 약점과 결핍을 드러내는 용기, 글에 대한 어떤 평가도 받아들이는 용기, 다시 글을 쓰는 용기.

 

 

 

 

[1] 한스 로슬링 외, 이창신 옮김, 팩트풀니스, 김영사, 2019, 357

 

[2] 은유, 나로 살고 싶은 여성의 글쓰기, 불편할 준비, 시사IN, 2018, 193

 

[3] 은유, 다가오는 말들, 어크로스, 2019, 19

 

[4] [투명사회의 기괴한 라디오], 2019418일에 등록됨

 

[5] 유발 하라리, 김명주 옮김, 호모 데우스, 김영사, 2017, 529~530

 

[6] 은유, 불편할 준비,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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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9-04-19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 속으로 교훈을 얻는 것이 아니라 글로 써서 남겨야 한다는 것. 공감합니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지요. 작은 용기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

cyrus 2019-04-20 10:22   좋아요 0 | URL
윤동주처럼 좋은 시를 쓰지 못하지만, 윤동주처럼 종이를 거울삼아 자신을 되돌아보는 글을 쓰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
 

 

 

상대방에게 ‘재미있는 책’을 추천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상대방이 생각하는 ‘재미’의 조건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책을 추천하지 못한다. 나는 책을 추천하는 것보다 책을 ‘추천받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상대방으로부터 추천받은 책들 전부 다 읽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책의 제목과 저자, 출판사는 꼭 기억해둔다. 꼭 한 번은 그 책을 읽어야 할 순간이 온다. 상대방이 계속 재미있는 책을 추천해달라고 조르면, 나는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이렇게 대답한다.

 

 

 “평소에 본인이 읽고 싶다고 생각한 책이 있어요? 정말로 그 책이 있다면 그게 당신이 원하는 ‘재미있는 책’이에요.”

 

 

‘재미있는 책’을 만난다는 건 ‘모 아니면 도(all or nothing)’다. 한 번 보고 책이 재미있으면 다행이고, 반대로 그렇지 않으면 주저 없이 책을 덮으면 된다. 간혹 상대방에게 책을 추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상대방에게 ‘서점이나 도서관에 직접 가서 책을 한 번 살펴보라’고 당부를 한다. 그러니까 내가 추천한 책을 온라인 서점의 ‘장바구니’에 담되, 바로 주문하지 말라는 것이다. 책 주문은 그 책이 어떤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 하나다 나나코, 기타다 히로미쓰, 아야메 요시노부

《책방지기가 안내하는 꿈의 서점》 (앨리스, 2018)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상대방에게 책을 추천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다. 그게 바로 ‘죽은 자’를 위해 책을 추천하는 일이다. 말도 안 되는 일로 보이겠지만, 실제로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서점이 있다. 일본에 있는 ‘겟쇼쿠 서점(月蝕書店)’이다. 특색 있고 개성 있는 22개의 일본의 중소 서점을 소개한 《책방지기가 안내하는 꿈의 서점》이라는 책에 첫 번째로 나온다. ‘겟쇼쿠’는 ‘월식을 뜻한다. 이 서점 주인의 주 고객은 고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보겠습니다. 대체 ‘죽은 자를 위한 추천 도서’라는 게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씀드리면, 돌아가신 분을 위한 책을 준비해서 제안하는 일입니다. 묘소나 불단에 꽃이나 고인이 좋아했던 음식을 올리잖아요. 그것을 책으로 대신하는 것이지요.

 

고인이 자주 읽던 책을 공양하는 건가요?

아니요. 그것과는 조금 달라요. 고인의 장서나 생전에 좋아했던 물건 등을 보고 그분이 살아계셨으면 분명 샀을법한 신간이나 장서와 관련 있는 책을 추천하는 겁니다.

 

 

(《책방지기가 안내하는 꿈의 서점》 9, 11쪽)

 

 

서점 주인은 고인의 장서나 유품을 확인한 뒤에 고인이 좋아할 만한 책을 고른다. 책은 고인을 위한 공양품(供養品)이다. 이 일이 쉬워 보일지 모르지만, 직접 해보면 전혀 다를 것이다. 자기 일을 충실히 하려는 서점 주인 입장에선 나름대로 생각을 많이 할 것이다. 서점 주인은 고인이 가지고 있던 장서나 유품을 통해서만 고인이 샀을 법한 책을 추정하는데, 고인의 장서가 아닌 책을 생전에 고인이 읽지 않은 책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책을 사지 않고도 서점 혹은 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바야시 서점(小林書店)을 운영하는 고바야시는 자신이 직접 쓴 서평으로 손님에게 판매할 책을 추천한다. 그가 쓴 서평도 상품이다. 서평 한 편당 300엔이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약 3,000원이다. 서평만 따로 살 수 있다. 그가 남긴 서평만 해도 수천 편이 넘는다. 나도 제법 서평을 많이 썼지만, 고바야시처럼 내가 읽은 책을 상대방에게 추천하기 위해서(내가 읽은 책을 구매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서평을 쓰는 건 아니다. 나는 ‘이런 책이 있다’는 식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알리고 싶어서 서평을 쓴다. 내 서평이 상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품 가치가 어느 정도 있는 서평을 쓰려면 책 구매자들이 선호하는 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구매자의 관심을 끌도록 맛깔나게 잘 써야 한다. 나는 그런 글을 쓸 능력이 없고, 그렇게 쓸 생각은 없다.

 

나는 널리 알려지지 못한 채 독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책,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절판본을 알리는 서평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즉 내 서평은 ‘죽은 책을 위한 글’이다. 서평을 쓰는 나 자신을 직업으로 비유하면 ‘묘비를 만드는 사람’이다. 죽은 책을 기억하기 위해 묘비명과 같은 글을 쓴다.

 

 

 

 

 

 

 

 

 

 

 

 

 

 

 

 

 

 

* 천상병 《천상병 전집: 시》 (평민사, 2018)

 

 

 

 

 

 

 

 

 

 

 

 

 

 

 

 

 

* 크리스티나 로세티 《로세티 시선》 (지만지, 2013)

* [절판] 김천봉 옮김 《빅토리아 여왕 시대 2》 (이담북스, 2011)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픽션들》 (민음사, 2011)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픽션들》 (민음사, 1994)

 

 

 

 

만약에 내가 죽으면 공양품이 될 책은 어떤 것일까, 상상해본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젖는 종이책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주1] 하늘에 지내면서 읽을 만한 책이 뭐 있을까? 과연 이승 너머에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가 단편 『바벨의 도서관』에 언급한 ‘천국’과 같은 도서관이 있을까? 어차피 사람은 죽으면 어떤 것을 ‘가질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니 책 공양은 안 받는 걸로…‥.

 

 

 내가 죽거든, 사랑하는 이여,

 나를 위해 슬픈 노래 부르지 말아요.

 내 머리맡에 장미도 심지 말고,

 그늘 드리우는 책도 놓지 말아요.

 내 무덤 위에 있는 푸른 풀이

 소나기와 이슬방울에 젖도록 내버려 두세요.

 그리고 당신이 기억하고 싶으면, 기억해 주세요.

 또 당신이 잊고 싶으면, 잊어 주세요. [주2]

 

 

 

 

 

[주1] 천상병의 시 『귀천』 1연 구절을 변형했음. 원문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주2] 크리스티나 로세티(Christina Rossetti)의 시 「내가 죽거든, 사랑하는 이여」 1연 구절을 변형했음. 원문은 ‘내가 죽거든, 사랑하는 이여, / 나를 위해 슬픈 노래 부르지 말아요. / 내 머리맡에 장미도 심지 말고, / 그늘 드리우는 사이프러스도 심지 말아요. / 내 무덤 위에 있는 푸른 풀이 / 소나기와 이슬방울에 젖도록 내버려 두세요. / 그리고 당신이 기억하고 싶으면, 기억해 주세요. / 또 당신이 잊고 싶으면, 잊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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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3-15 2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되도록 두껍지 않고 재밌게 술술 읽히는 책을 선호하고 이런 책을 추천하려고 합니다.
한 가지 조건이 더 있는데 깨달음을 주는 것. 게다가 문장까지 좋으면 금상첨화.
요즘 단편소설에 빠졌어요. 주로 장편을 많이 읽었는데 찾아보니 빼어난 단편이 많더군요.
단편 독서의 장점은 좋은 작품은 한 번 더 읽을 수 있다는 거예요.

고인이 좋아할 법한 책을 찾는 것, 쉽지 않겠습니다. 고인이 좋아하던 작가의 신간이면 되려나요?

죽은 책을 위한 님의 서평 쓰기. 의미있네요. 응원합니다!!!

cyrus 2019-03-18 11:58   좋아요 0 | URL
짧은 글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분량이 많은 책을 끈덕지게 읽지 못하겠어요. 책에 몰입이 되지 않아요. 그렇다 보니 저도 단편소설이나 짧은 분량의 책을 찾게 됩니다. ^^;;

고인을 위한 책을 고를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었네요. 맞아요.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작가의 신작 도서를 공양품으로 바치면 되겠어요. ^^

카르페디엠 2019-03-17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아주 재미있게 보았어요. 일본의 서점문화가 이렇게 발전했나싶기도 하고..

cyrus 2019-03-18 12:00   좋아요 0 | URL
지난 달 모임에 도현 쌤이 <꿈의 서점>이 재미있다고 말씀하셔서 읽게 되었어요. 그 때 성은 쌤은 <아침의 피아노>를 추천하셨고요. 두 권 모두 좋았어요.

쌤 댓글을 보자마자 ‘우주지감’ 카페에 접속했는데, 이번 달 모임 신청 끝났더군요... ㅠㅠ
 

 

 

 

지난 달 ‘우주지감-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선정 도서는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호밀밭의 파수꾼》이었다. 지난 한 달 동안 가장 많이 들춰본 책은 ‘Little Brown & Company’에서 출간된 《호밀밭의 파수꾼》 원서와 3종의 번역본(민음사, 문예출판사, 동서문화사)이다.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The Catcher in the Rye》 (Little Brown & Company, 1991)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이덕형 옮김 《호밀밭의 파수꾼》 (문예출판사, 1998)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공경희 옮김 《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2001)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이가형 옮김 《백년의 고독 / 호밀밭의 파수꾼》 (동서문화사, 2008)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이가형 옮김 《백년의 고독 / 호밀밭의 파수꾼》 (동서문화사, 2016)

 

 

 

 

내가 가지고 있는 번역본은 민음사 판본이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가장 많이 알려진 《호밀밭의 파수꾼》 번역본이다. 그러나 이십 년 전부터 거론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민음사 판본의 오역 문제는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사실 국내에 출간된 여러 가지 《호밀밭의 파수꾼》 번역본들 중에 가장 번역이 잘 된 것은 없다.[주] 민음사 판본 다음으로 인지도가 높은 문예출판사 판본에도 오역으로 볼 수 있는 문장 몇 개가 있다. 동서문화사 판본은 당장 절판시켜야 할 최악의 번역본이다. 왜 그런지는 리뷰로 따로 밝히겠다.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윤용성 옮김 《호밀밭의 파수꾼》 (문학사상사, 1993)

* [절판]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김욱동, 염경숙 옮김 《호밀밭의 파수꾼》 (현암사, 2005)

 

 

 

그 밖의 《호밀밭의 파수꾼》 번역본으로는 문학사상사 판본(윤용성 옮김)현암사 판본(김욱동, 염경숙 옮김) 등이 있지만, 번역을 검토하는 작업을 나 혼자 감당하기에 무리가 있어서 살펴보지 않았다. 영문학을 전공하지 않았으며 번역 일에 전혀 관련이 없는 일반 독자인 내가 더 나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민음사 판본과 문예출판사 판본 중심으로 번역문을 대조하면서 읽은 뒤에 번역문에 해당하는 원서의 문장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검토했다. 다른 분들이 지적한 오역 사례들도 참고했다. 많이 도움이 됐다. 번역에 대한 내 견해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글에 대한 지적이나 다른 의견은 언제나 환영한다.

 

 

 

[주] <“영미문학 완역본 54%가 표절”> 한겨레, 2004년 2월 13일.

 

 

 

 

 

 

 

1

 

 

* 원문

 

 She had a big nose and her nails were all bitten down and bleedy-loooking and she had on those damn falsies that point all over the place, but you felt sort of sorry for her.

 

 

※ bleedy: 피가 나는

※ falsies: 여자의 가슴을 더 커 보이게 만들기 위해 브라 안에 넣는 물건

 

민음사, 12쪽

 

 셀마는 큰 코를 가지고 있었고, 손톱은 하도 물어뜯어서 애처로울 정도인 데다가, 터무니없이 커다란 브래지어를 하고 있었다.

 

문예출판사, 10쪽

 

 코가 유난히 컸고 손톱은 물어뜯어 그 밑의 살에서 피가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가슴이 커 보이게 하는 브래지어를 하고 있었는데 안쓰러울 정도였다.

 

 

 

민음사 판본의 번역문은 ‘bleedy-looking(피가 비치는, 피가 보이는)’이 나오는 구절이 빠져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문제가 있는 건 민음사 판본의 역자와 문예출판사 판본의 역자 모두 ‘falsies(폴시즈)’를 브래지어로 번역한 점이다. 원문에는 브래지어(brassiere)라는 단어가 없다.falsie’는 ‘가짜’, ‘모조품’을 뜻하는 단어인데, 원문에 나오는 ‘falsies’는 ‘가짜 유방’, 즉 브래지어 안에 넣는 패드를 뜻한다.

 

 

※ ‘falsies’에 대한 오역을 지적한 글 (작성자: asnever)

https://asnever.blog.me/70188360728

 

 

 

 

 

 

 

2

 

 

* 원문

 

 “We studied the Egyptians from November 4th to December 2nd,” he said. “You chose to write about them for the optional essay question. Would you care to hear what you had to say?”

 

민음사, 22쪽

 

 「우린 11월 넷째 주부터 12월의 두번째 주까지 이집트인들에 대한 공부를 했었다. 자넨 선택 문제로 이집트인들에 대한 에세이를 쓰기로 했어. 자네가 뭐라고 썼는지 한번 들어보겠나?」

 

문예출판사, 22쪽

 

 “우리는 11월 4일부터 12월 2일까지 수업 시간에 이집트인을 공부했지. 자네는 자유 논술 문제에서 이집트인을 주제로 택했더군. 그런데 뭐라고 썼는지 한번 들어보겠나?”

 

 

 

 

 

 

3

 

* 원문

 

 The first football game of the year, he came up to school in this big goddam Cadillac, and we all had to stand up in the grandstand and give him a locomotive―that’s a cheer. Then, the next morning, in chapel, be made a speech that lasted about ten hours.

 

 

※ grandstand: 야외 경기장의 지붕이 씌워져 있는 관람석

※ locomotive: 기관차

 

민음사, 29~30쪽

 

 그 해 학교에서 첫번째 축구 경기가 열렸을 때 오센버거는 죽여주는 캐딜락을 타고 학교로 왔다. 그래서 우리는 관람석에서 모두 일어나 열렬한 환호와 박수 갈채를 보내야만 했다. 그 다음 날 아침, 예배당에서 그가 연설을 했다. 열 시간도 넘었을걸.

문예출판사, 30쪽

 

 그해 첫 축구 시합에 그자가 큼직한 캐딜락을 타고 왔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스탠드에 일어나 그에게 기차박수를 보냈다. 다음날 아침 예배당에서 그자가 설교를 했는데, 그 설교는 무려 열 시간이나 계속되었다.

 

 

 

‘기차박수’라는 표현이 생소하다. 국어사전에 등록되지 않은 표현이지만, 인터넷에 검색하면 적게나마 이 표현이 사용된 글을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박수 소리를 기차가 움직일 때 내는 소리(‘칙칙폭폭’)를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원문에 ‘환호(cheer)’라는 표현은 있지만, ‘박수(clapping)’라는 표현은 없다. 두 역자 모두 왜 원문에 없는 단어를 썼을까?

 

 

 

 

 

 

 

4

 

* 원문

 

 I didnt answer him right away. Suspense is good for some bastards like Stradlater.

 

 

※ suspense: 긴장감, 마음을 졸이는, 초조해 하는

※ bastards: 새끼, 개자식

 

민음사, 44쪽

 

 나는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스트라드레이터 같은 놈들도 약간은 걱정이라는 걸 해봐야 한다.

 

문예출판사, 47쪽

 

 나는 당장 대답하진 않았다. 스트라드레이터 같은 개새끼들에겐 어정쩡한 미결의 상태가 약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문예출판사 판본의 번역문이 원문의 의미를 살리지 못한 ‘어정쩡한 상태’의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어정쩡한 미결의 상태’라는 표현은 무슨 의미인지 확 와 닿지 않는다. 번역문을 어렵게 쓸 필요가 있을까?

 

 

 

 

 

 

 

 

5

 

 

* 원문

 

 All of a sudden―for no good reason, really, except that I was sort of in the mood for horsing around―I felt like jumping off the washbowl and getting old Stradlater in a half nelson. That’s a wrestling hold, in case you don’t know, where you get the other guy around the neck and choke him to death, if you feel like it. So I did it. I landed on him like a goddam panther.

  “Cut it out, Holden, for Chrissake!” Stradlater said. He didn’t feel like horsing around. He was shaving and all. “Wuddaya wanna make me do―cut my goddam head off?”

  I didn’t let go, though. I had a pretty good half nelson on him. “Liberate yourself from my viselike grip.” I said.

 

 

panther: 흑표범

※ for Chrissake: 빌어먹을

Wuddaya: ‘What do you’의 줄임말

viselike: (바이스처럼) 단단히 죈

 

 

민음사, 47쪽

 

 갑자기 난 세면대에서 뛰어내려 스트라드레이터를 하프 넬슨으로 확 누르고 싶어졌다. 그저 장난을 좀 치고 싶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이유도 없이 말이다. 하프 넬슨은 레슬링에서 쓰는 용어로 상대방의 목을 뒤에서 있는 힘껏 졸라 반 죽여놓는 것을 뜻한다. 난 그렇게 했다. 그 녀석에게 딱 달라붙어 목을 조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만둬. 홀든. 제기랄!」 스트라드레이터가 말했다. 그는 장난치고 싶지 않은 모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면도를 하고 있던 중이었으니까 말이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묵을 벨 뻔했잖아」

  그렇지만 나는 그를 풀어주지 않았다. 이건 상당히 좋은 하프 넬슨 기술이었다. 「어디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 보시지」

 

 

문예출판사, 50쪽

 

 갑자기 그저 장난을 치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는데, 세면대에서 뛰어내려 스트라드레이터 자식을 하프 넬슨 수법으로 목을 졸라버리고 싶었다. 하프 넬슨이 뭐냐 하면, 상대방의 목을 뒤에서 졸라 원하면 죽일 수도 있는 레슬링의 기술이었다. 나는 표범처럼 그를 덮쳤다.

  “제발 그만둬!” 하고 스트라드레이터가 소치렸다. 그는 장난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면도를 하는 도중이었으니까. “어쩌려고 이래? 내 모가지라도 베려는 거야?”

  나는 여전히 손을 놓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꽤 그럴듯한 하프 넬슨 기술을 걸고 있었다. “풀어보시지. 바이스같이 억센 내 팔을…‥” 하고 내가 말했다.

 

 

 

민음사 판본에 ‘I landed on him like a goddam panther’라는 구절이 빠졌다. 문예출판사 판본의 역자는 ‘panther’를 ‘표범’이라고 번역했는데, 우리에게 많이 익숙한 얼룩무늬의 표범은 ‘Leopard’이다. ‘panther’는 흑표범을 뜻한다.

 

 

 

 

 

 

 

 

6

 

* 원문

 

 My brother Allie had this left-handed fielder’s mitt. He was left-handed. The thing that was descriptive about it, though, was that he had poems written all over the fingers and the pocket and everywhere. In green ink. He wrote them on it so that he’d have something to read when he was in the field and nobody was up at bat.

 

민음사, 57쪽

 

 동생인 엘리는 왼손잡이용 미트를 가지고 있었다. 그 애는 왼손잡이였기 때문이다. 얼마나 묘사적이었냐 하면, 그 애는 손가락 위도 좋고, 주머니도 좋고, 어디에나 시를 써놓았다. 초록색 잉크로 말이다. 그 애 말로는 수비에 들어갔을 때 타석에 선수가 나오지 않았을 때 같은 때 읽으면 좋다는 것이다.

 

문예출판사, 62쪽

 

 내 동생 앨리는 왼손잡이 야수의 장갑을 가지고 있었다. 그앤 왼손잡이였다. 그 장갑에 대해서 무엇이 묘사할 만한가 하면, 앨리는 야구 장갑의 손가락이고 주머니이고 어디든 간에 시를 적어 놓았던 것이다. 녹색 잉크로 쓴 시였다. 그렇게 써놓으면 자기가 수비에 들어가서 타석에 아직 선수가 들어오지 않았을 때 읽을거리가 있어서 좋다는 것이다.

 

 

 

내가 밑줄 친 민음사 판본의 문장은 문법이 맞지 않은 ‘비문’이다.

 

 

 

 

 

 

 

7

 

* 원문

 

 I usually buy a ham sandwich and about four magazines. If Im on a train at night, I can usually even read one of those dumb stories in a magazine without puking. You know. One of those stories with a lot of phony, lean―jawed guys named David in it, and a lot of phony girls named Linda or Marcia that are always lighting all the goddam Davids pipes for them.

 

 

puking: [puke의 현재분사] (속이) 뒤틀리는, 토하는

phony: [구어] 가짜, 허위의, 겉치레의

※ lean―jawed: 야윈(마른)

 

민음사, 77쪽

 

 평소처럼 햄샌드위치와 잡지를 네 권 샀다. 밤 기차를 타고 갈 때면, 이따위 잡지에 실린 지겨운 기사들도 그럭저럭 읽을 만하다. 그런 기사들은 대부분 데이비드란 이름에 턱이 길고, 사기꾼 같은 녀석들과 린다니 마르샤니 하는 이름을 가진 여자들이 언제나 담배에 불을 붙여주곤 하는 얘기들이다.

 

문예출판사, 85쪽

 

 나는 보통 햄 샌드위치를 한 개 사고 잡지를 네 권 가량 산다. 야간에 열차를 타면 그런 잡지에 실린 지루한 소설도 그럭저럭 읽게 된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엉터리 같고 턱이 훌쭉한 데이비드라는 놈과 항상 그놈의 파이프에 불을 붙여주는 린다니 마르시아니 하는 여자들이 등장하는 소설 말이다.

 

 

두 역자 모두 ‘puking(속이 뒤틀리는, 토하는)’을 ‘이따위(민음사)’, ‘그런(문예출판사)’으로 순화해서 번역했다. 평소 비속어와 과격한 표현을 입에 달고 사는 홀든 콜필드의 모습을 돋보이기 위해 ‘puking’을 직역하는 게 낫다고 본다.

 

pipe’도 담배의 일종이지만, ‘cigarette’와 다르기 때문에 ‘파이프 담배’로 정확하게 번역해야 한다.

 

 

※ ‘pipes’에 대한 오역을 지적한 글 (작성자: asnever)

https://asnever.blog.me/220209751917

 

 

 

 

 

 

 

 

8

 

 

* 원문

 

 Old Marty talked more than the other two. She kept saying these very corny, boring things, like calling the can the <little girls room>, and she thought Buddy Singers poor old beat-up clarinet player was really terrific when he stood up and took a couple of ice―cold hot licks. She called his clarinet a <licorice stick>.

 

 

※ beat-up: 낡아빠진

※ licorice: 감초 

 

민음사, 104쪽

 

 마티는 다른 두 여자보다도 좀 말을 많이 했다. 그나마 그녀가 하는 말도 케케묵은 이야기에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화장실을 <어린 소녀들의 방>이라고 부르지 않나. 버디 싱어의 밴드에서 불쌍할 정도로 말라비틀어진 첼리스트가 보여준 정말 썰렁하기 짝이 없는 연주를 듣고는 멋있다고 하면서, 그 첼리스트를 <감초 줄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문예출판사, 116쪽

 

 마티가 그래도 제일 많이 지껄였다. 그녀는 화장실을 ‘어린 소녀의 방’이니 뭐니 하면서 너절하고 지루한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그리고 버디 싱어 악단의 말라빠진 늙은 클라리넷 주자가 일어서서 몇 소절을 정열적으로 연주하자 아주 멋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의 클라리넷을 ‘감초의 줄기’라고 말했다.

 

 

두 역자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beat-up’을 ‘말라비틀어진’, ‘말라빠진’으로 번역했다. 새로 번역한다면 ‘늙어빠진’으로 쓸 수 있다. 민음사 판본의 번역을 맡은 공경희 씨는 ‘clarinet player(클라리넷 연주자)’를 ‘첼리스트(cellist)’로 잘못 번역했다. 심지어 원문의 의미와 전혀 맞지 않는 문장(‘첼리스트를 <감초 줄기>라고 부르기도 했다’)까지 썼다. ‘감초 줄기(licorice stick)’는 악기 연주자를 비꼬기 위해 붙인 별명이 아니라 그가 연주하는 악기, 즉 클라리넷을 우스꽝스럽게 비유한 표현이다.

 

 

 

 

 

 

 

9

 

* 원문

 

 “You’re goddam right they don’t,” Horwitz said, and drove off like a bat out of hell. He was about the touchiest guy I ever met. Everything you said made him sore.

 

민음사, 115쪽

 

 「그렇게 생각하면 됐어요」 호이트가 말했다. 그러고는 총알처럼 사라져버렸다. 그 사람은 이제까지 만났던 사람들 중 가장 화를 잘 내는 사람이었다. 내가 한 말은 전부 그 사람을 화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문예출판사, 128~129쪽

 

 “됐어요. 그놈들도 죽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면 됐어요.” 호위트는 이렇게 말하고 지옥에서 튀어나온 박쥐처럼 차를 몰고 사라졌다. 그렇게 성질이 급한 사람은 생전 처음이었다. 무슨 말을 하든 모두 그를 화나게 하는 것이었다.

 

 

 

민음사 판본의 오역 문장은 나를 화나게 한다…‥.

 

 

 

 

 

 

 

 

 

10

 

 

* 원문

 

 “You ought to go to a boys’ school sometime. Try it sometime,” I said. “It’s full of phonies, and all you do is study so that you can learn enough to be smart enough to be able to buy a goddam Cadillac some day, and you have to keep making believe you give a damn if the football team loses, and all you do is talk about girls and liquor and sex all day, and everybody sticks together in these dirty little goddam cliques. The guys that are on the basketball team stick together, the Catholics stick together, the goddam intellectuals stick together, the guys that play bridge stick together. Even the guys that belong to the goddam Book-of-the-Month Club stick together. If you try to have a little intelligent―”

 

민음사, 176~177쪽

 

 「언제 한번 남학교에 가봐. 시험삼아서 말이야. 온통 엉터리 같은 녀석들뿐일 테니. 그 자식들이 공부하는 이유는 오직 나중에 캐딜락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야. 축구팀이 경기에서 지면 온갖 욕설이나 해대고, 온종일 여자나 술, 섹스 같은 이야기만 지껄여대. 더럽기 짝이 없는 온갖 파벌을 만들어, 그놈들끼리 뭉쳐 다니지 않나. 농구팀은 자기들끼리 몰려다니고, 가톨릭 신자들은 자기들끼리 뭉치지. 똑똑하다는 것들은 자기들끼리 몰려다니고, 브리지 하는 놈들은 또 저희끼리 모이거든. 그러니까 네가 영리하다면‥…」

 

 

문예출판사, 196~197쪽

 

 “언제 시간 있으면 남학교에 가보는 게 좋을 거야.” 하고 내가 말했다. “시험삼아 한번 가봐. 엉터리 자식들이 우글거릴 테니까. 놈들이 하는 일은 장차 캐딜락을 살 수 있는 신분이 되기 위해 공부하는 일뿐이야. 그리고 축구 팀이 지면 분해 죽겠다는 시늉이나 하고, 하루 종일 여자와 술과 섹스 얘기만 지껄여대는 거지. 게다가 더러운 파벌을 만들어 결속까지 하거든. 농구 팀은 그들대로 뭉치고, 천주교 신자들도 그들대로 뭉치고, 지랄 같은 지성인들도 그렇고 놀음하는 놈들은 저희끼리 뭉치거든. 심지어 월간 추천도서 클럽에 가입한 놈들도 끼리끼리 뭉친단 말이야. 그러니까 좀 똑똑하려면‥…”

 

 

민음사 판본에 ‘밑줄 친 원문’을 번역한 구절이 없다.

 

 

 

 

 

 

 

 

11

 

 

* 원문

 

 I remember Allie once asked him wasn’t it sort of good that he was in the war because he was a writer and it gave him a lot to write about and all. He made Allie go get his baseball mitt and then he asked him who was the best war poet, Rupert Brooke or Emily Dickinson. Allie said Emily Dickinson.

 

 

※ War poet: 전쟁 시인

※ Rupert Brooke: 영국의 시인(1887~1915)

※ Emily Dickinson: 미국의 시인(1830~1886)

 

민음사, 188쪽

 

 한번은 앨리가 형은 작가니까, 전쟁에 나가면 작품에 쓸 수 있는 자료를 듬뿍 얻을 수 있으니 좋은 게 아니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자 형은 앨리에게 야구 미트를 가지고 오라 그러더니, 루퍼트 브루크와 에밀리 디킨슨 중에 누가 더 훌륭한 시인이냐고 물었다. 앨리는 에밀리 디킨슨이라고 대답했다.

 

문예출판사, 210쪽

 

 지금도 기억하는데, 앨리가 형에게 형은 작가니까 전쟁에 참가하면 작품 쓸 자료를 많이 얻을 수 있어서 좋지 않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러자 형은 앨리에게 야구 미트를 가져오게 하고는, 루퍼트 부루크와 에밀리 디킨슨 중에서 누가 훌륭한 전쟁 시인인가를 물었다. 앨리는 에밀리 디킨슨이라고 대답했다.

 

 

‘전쟁 시인’은 전쟁에 직접 참여해서 경험한 것을 토대로 시를 쓰거나(종군 시인), 전쟁을 주제로 시를 쓰는 시인을 말한다.

 

그나저나 에밀리 디킨슨은 ‘전쟁 시인’이었던가? 그녀는 남북전쟁이 일어나던 시기에 살았다. 그녀의 삶이 전쟁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긴 한데, 전쟁을 주제로 한 디킨슨의 시를 본 적이 없다. 내가 제대로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디킨슨의 시를 다시 봐야겠구먼.

 

 

 

 

 

 

 

12

 

 

* 원문

 

 When I came around the side of the bed and sat down again, she turned her crazy face the other way. She was ostracizing the hell out of me.

 

 

※ ostracize: (사람을) 외면하다

 

민음사, 221쪽

 

 내가 침대 옆으로 다가가자 피비는 얼굴을 반대쪽으로 아예 돌려버렸다. 완전히 나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문예출판사, 247쪽

 

 내가 침대 가에 가서 앉자, 피비는 얼굴을 반대편으로 돌렸다. 나를 탄핵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 초반부에 홀든 콜필드는 자신의 어휘력이 부족하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런 그가 행정 용어‘탄핵하다(impeach)라는 표현을 쓴다는 건 말이 안 된다.

 

 

 

 

 

 

 

 

13

 

 

* 원문

 

 The mark of the immature man is that he wants to die nobly for a cause, while the mark of the mature man is that he wants to live humbly for one.

 

 

※ cause: 이유, 대의명분

※ humbly: 초라하게, 겸손(겸허)하게

 

민음사, 248쪽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 묵묵히: 말없이 잠잠하게

※ 겸손하게: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문예출판사, 277쪽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고귀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비겁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

 

 

 

홀든 콜필드가 직접 찾아가서 만난 엔톨리니 선생이 인용한 말이다. 이 말을 한 사람은 독일의 정신분석학자 빌헬름 스테켈(Wilhelm Stekel)이다.

 

‘cause’는 ‘이유’라는 의미의 단어이지만, 이 원문의 의미를 살리려면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나 본분을 뜻하는 ‘대의(명분)으로 쓰는 것이 낫다. 문예출판사 판본은 ‘비겁한 죽음’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원문의 의미와 다른 오역이다. 원문을 보면 알겠지만, ‘죽음’을 뜻하는 단어가 없다. 그리고 두 판본 모두 ‘humbly’를 부정적인 뉘앙스로 번역했는데, ‘성숙한 인간’의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 ‘겸손하게’로 번역해야 한다.

 

 

이 오역에 대해서 이미 asnever 님과 로쟈 님이 지적한 적이 있다.

https://asnever.blog.me/220238007548 (작성자: asnever)

http://blog.aladin.co.kr/mramor/3131995 (작성자: 로쟈)

 

 

 

 

 

 

 

 

14

 

* 원문

 

 “Where’re the mummies, fella?” the kid said again. “Ya know?”

I horsed around with the two of them a little bit. “The mummies? What’re they?” I asked the one kid.

“You know. The mummies―them dead guys. That get buried in them toons and all.”

Toons. That killed me. He meant tombs.

 

 

※ Toon: (식물) 인도 마호가니

※ tomb: 무덤

 

민음사, 266쪽

 

「미라는 어디에 있어요? 알고 계신가요?」 그 아이가 다시 물었다.

난 그 꼬마들을 상대로 잠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미라라고? 그게 뭐지?」 내가 그 아이에게 물었다.

「정말 모르세요? 미라 있잖아요. 사람이 죽어 있는 거 말이에요. 에 들어 있는 것 말이에요」

이라. 정말 아이들은 어쩔 수 없었다. 아마 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문예출판사, 298쪽

 

 “미라는 어디 있나요? 알고 계세요?” 하고 그 아이가 다시 물었다.

나는 이 아이들을 상대로 잠깐 농담을 나누었다. “미라라니? 그게 뭐지?” 하고 내가 한 아이에게 물었다.

  “모르세요? 미라 말이에요. 그 죽은 것 말이에요. (toon) 속에 있는.”

이라니? 여기엔 손들고 말았다. 그 애는 무덤(tomb)을 생각하고 말한 것이었다.

 

 

 

샐린저의 소설을 원문으로 읽어보면 언어유희를 이용한 재미있는 표현을 확인할 수 있다. 인도산 마호가니 나무의 이름인 ‘툰(toon)’과 ‘무덤(tomb)’은 동음이의어다. 그런데 민음사 판본의 번역문은 원문이 주는 유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 공경희 씨는 ‘툰’과 ‘무덤’이 들어간 문장을 국내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건’과 ‘관(棺, coffin, casket)으로 번역했다. 그러나 이 문장을 여러 번 봐도 ‘건’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공경희 씨가 쓴 ‘건’의 의미를 아시는 분? 네이버 국어사전에 등록된 ‘관’의 의미는 10개나 넘는다. 그리고 ‘tomb’을 ‘관’으로 번역한 점도 의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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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5 1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3-05 17:30   좋아요 0 | URL
제가 처음으로 읽은 <호밀밭의 파수꾼> 번역본이 민음사 판본이었어요, 그때도 읽는데 바로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들이 있었어요. 문장 이해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느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겨울호랑이 2019-03-05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 cyrus님 이번 리뷰를 작성하시느라 정말 고생하셨을 것이라 짐작해 봅니다. cyrus님 자신에게도 큰 공부가 되셨겠지만, 좋은 자료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cyrus 2019-03-05 17:37   좋아요 1 | URL
제가 독서모임에 참석하는 쌤들한테 민음사 번역본을 추천했어요. 번역이 엉망인 걸 알았을 때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ㅎㅎㅎ 모임 날에 저를 포함해서 15명이 독서모임에 참석하셨는데요, 두 분 빼고 나머지 분들은 민음사 번역본을 읽었어요. ^^;;

반유행열반인 2019-03-05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음사랑 동서문화사 것이 집에 있는데 내가 제대로 보긴 한 걸까 싶어지는 시점이네요. (아마 처음 볼 땐 문예출판사 걸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봤던 듯 하고.) 좋은 번역이란 이렇게 어렵고 외국어를 잘 못 하니 번역에 불만이어도 늘 뾰족한 수가 없네요. 번역가를 욕하다 아니 그래도 그나마 이 정도라도 해석해 줘서 내가 읽게 해 주는구나 고맙다 아니 또 욕 나온다 반복하며 읽곤 합니다...

cyrus 2019-03-05 17:45   좋아요 1 | URL
가독성이 좋다고 느껴진 책이 나중에 번역이 좋지 않은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번역가에게 속은 느낌이 들어요... ^^;;

카스피 2019-03-06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정말 대단하시네요^^ 번역자들이 좀 각성해야 될것 같습니다.그래도 유명한 문학작품의 경우 번역가들이 나름 신중학에 번역하지만 장르소설의 경우 날림 번역이 많은 편이지요.그래도 번역만 해주면 장르 애독자들은 감지덕지 합니다ㅜ.ㅜ

cyrus 2019-03-06 18:32   좋아요 0 | URL
번역가 입장에서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장르문학 작품을 처음으로 번역하는 일에 부담감을 느낄 것입니다. 이미 유명해질 대로 유명해진 셜록 홈즈 시리즈를 번역하는 게 부담이 덜 되죠. 기존의 번역본들을 어느 정도 참고하면서 새로 번역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러한 번역 관행이 지속되면 번역의 질은 점점 나빠질 것입니다.
 

 

 

 

 

 

 

존 러스킨(John Ruskin)《참깨와 백합》은 1864년에 대중을 상대로 한 두 차례 강연을 묶은 책이다. 아마도 이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는 제목만 봐서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참깨’는 첫 번째 강연 제목 「참깨: 왕들의 보물」을 뜻하며 올바른 독서법의 의미와 그 중요성을 다룬다. ‘백합’은 두 번째 강연 「백합: 여왕들의 화원」을 의미한다. 이 강연은 여성의 사적 · 공적 역할과 여성이 받을 수 있는 교육의 범위를 다룬다.

 

 

 

 

 

 

 

 

 

 

 

 

 

 

 

 

 

 

 

 

 

* 존 러스킨 《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 (민음사, 2018)

* 리처드 프랜시스 버턴 《아라비안나이트 V》 (동서문화사, 2010)

* 앙투안 갈랑 《천일야화 5》 (열린책들, 2010)

 

 

 

첫 번째 강연 내용을 보면 ‘옛적 아라비아 마법의 곡물이며 닫힌 문을 여는 참깨로 빚은 빵’[주1]이라는 구절을 확인할 수 있다. 아라비아, 마법, 닫힌 문을 여는 참깨. 이 세 개의 단어는 《아라비안나이트》‘알리바바와 40명의 도둑’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보물을 가득 숨겨둔 동굴 앞에 선 알리바바가 동굴의 문을 열기 위해 외친 마법의 주문이 ‘열려라, 참깨(Open sesame)이다. 러스킨이 말하는 ‘참깨’는 동굴 속에 있는 ‘보물’을 찾기 위한 열쇠이며, ‘보물’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러스킨은 ‘최고의 지혜’로 채워진 유익한 책을 ‘왕들의 보물’로 비유하면서 독서의 참된 의미를 강조한다.

 

 

 

 

 

 

 

 

 

 

 

 

 

 

 

 

 

 

 

* 존 러스킨 《존 러스킨 라파엘 전파》 (좁쌀한알, 2018)

* 티머시 힐턴 《라파엘 전파》 (시공사, 2006)

* 팀 베린저 《라파엘 전파》 (예경, 2002)

 

 

 

백합의 꽃말은 ‘순결’, ‘변함없는 사랑’이다. 그래서 중세 시대의 고귀한 여성을 상징하는 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러스킨이 ‘백합’에 보인 지대한 관심은 중세 시대 문화를 동경하던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와 관련되어 있다. 라파엘전파에 소속된 화가들은 함축적인 의미가 담긴 사물 또는 자연물을 그림에 그려 넣었다. 라파엘전파 화가들은 꽃말에 관심이 많았는데, 꽃말은 자신들이 그리고자 하는 그림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일종의 단서로 활용했다. 라파엘전파가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사람이 러스킨이다. 그는 고전주의에 벗어나지 못한 주류 화단으로부터 비난받은 라파엘전파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백합: 여왕들의 화원」을 한마디로 평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글’이다. 이 글에서 드러난 러스킨의 여성관은 여성을 능동적인 존재로 인식하지 못한 빅토리아시대의 케케묵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러스킨은 산업자본주의의 폐해를 날카롭게 지적한 진보적인 사상가였지만 여성을 억압하는 인습에 얽매인 빅토리아시대 남성 지식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편견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여성을 ‘전쟁(논쟁)을 중재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존재로 본다. 러스킨은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고 정확하게 판단을 내리는 여성의 역할을 찬양하고 있지만, 그러한 능력을 남성이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여성은 중세 귀부인처럼 ‘남성에게 보호받아야 할 고귀한 존재’인 것이다. 러스킨에 따르면 여성이 다스리는 ‘가정’은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지켜야 할 평화적인 안식처이다.[주2] 그는 세상을 온갖 위협과 유혹으로 가득한 일터와 가정으로 나눈 후 남성과 여성을 각 공간의 책임자로 배치한다. 러스킨 본인은 ‘남성은 공적 영역, 여성은 사적 영역’으로 철저히 나누는 이분법적 젠더 구분을 반대하면서도[주3] 여성이 공적 영역에 진입하는 데 필요한 교육의 범위를 한정짓는다. 그는 여성은 ‘자기 계발을 위한 지혜’를 멀리해야 하며 ‘신학’을 공부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러스킨이 선호하는 여성은 ‘남편을 섬길 줄 아는 지혜롭고 아름다운’ 여성이다.

 

 

 

 

 

 

 

 

 

 

 

 

 

 

 

 

 

 

 

* 존 스튜어트 밀 《여성의 종속》 (책세상, 2018)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책세상, 2018)

* [절판] 케이트 밀렛 《성 정치학》 (이후, 2009)

 

 

 

케이트 밀렛(Kate Millett)은 자신의 주저 《성 정치학》에 「백합: 여왕들의 화원」을 대차게 비판한다. 이때 그녀는 러스킨을 궁지로 몰아세우기 위해 《참깨와 백합》을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여성의 종속》과 비교한다. 밀렛은 《여성의 종속》을 ‘역사를 통틀어 여성이 처한 현실적 입장을 가장 조리 있게 저술한 저서’[주4]라고 높이 평가한다. 한술 더 떠서 《자유론》에 버금가는 강력한 주장을 담은 책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비록 러스킨의 편협한 여성관과 남성중심주의를 비판하기 위해서 그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밀을 좀 더 좋게 평가한 것도 있지만, 급진적 페미니스트로 알려진 밀렛이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고전을 열렬히 호평하는 반응은 이례적이다. 사실 《여성의 종속》을 통해 알 수 있는 밀의 자유주의 페미니즘도 한계가 있다. 《성 정치학》이 나온 1970년대 이후에 밀의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논문들이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밀의 《여성의 종속》에 대한 비판적인 논평은 다음에 다루기로 한다.

 

빅토리아시대 남성은 여성을 ‘어른 아이’로 여겼다. 그러니까 그들은 여성을 미성숙한 ‘소녀’로 인식했던 것이다. 그래서 러스킨은 소녀들을 고상하게 가르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면서 소녀를 가르칠 수 있는 가정교사의 역할을 강조한다. 실제로 러스킨은 아홉 살의 소녀 로즈 라 투셰(Rose La Touche)에게 드로잉을 가르치는 가정교사로 일했다. 이미 한 번 이혼으로 인해 사랑에 실패한 경험[주5]이 있는 러스킨은 로즈를 사랑하게 된다.  「백합: 여왕들의 화원」에서도 러스킨은 소녀를 ‘순수한 존재’로 언금한다. 러스킨이 생각하는 백합은 아름다운 여성으로 자라기 위해 보호받아야 할 순진무구한 소녀를 의미한다. 밀렛은 소녀에 집착하는 러스킨의 관심을 ‘노망난 에로티시즘’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주6].

 

 

 

 

 

 

 

 

 

 

 

 

 

 

 

 

 

 

* 설혜심, 박형지 《제국주의와 남성성》 (아카넷, 2016)

* 존 러스킨 《존 러스킨의 드로잉》 (오브제, 2011)

 

 

 

사실 「참깨: 왕들의 보물」도 시대적 한계가 보이는 글이다. 러스킨의 강연을 듣는 대중은 주로 중산층에 속하는 부유한 사람들이다. 이 글에 젠체하는 러스킨의 오만한 엘리트주의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양질의 책을 읽어서 지혜로운, 고상한 국민인 ‘신사(紳士)를 치켜세우면서 저속한 ‘군중’을 지적한다. 그가 생각하는 ‘군중’은 지나치게 감정적이며 사리분별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다. 「참깨: 왕들의 보물」과 「백합: 여왕들의 화원」에서 드러나는 러스킨의 남성성은 ‘점잖음’을 중시하는 빅토리아시대 신사와 ‘백합’ 같은 고귀한 여성을 보호하고 싶은 중세 기사의 모습에 가깝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책 중 한 권이 코번트리 펫모어(Coventry Patmore)의 장편 담시 『집안의 천사』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집안의 천사’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희생하는 여성성을 상징한다. 러스킨은 「백합: 여왕들의 화원」뿐만 아니라 드로잉의 기초를 설명한 《존 러스킨의 드로잉》에서도 『집안의 천사』를 ‘뛰어난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이쯤 되면 그가 과연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 장 자크 루소 《에밀》 (한길사, 2003)

* 장 자크 루소 《에밀》 (책세상, 2003)

* 장 자크 루소 《루소의 에밀 읽기》 (한길사, 2003)

 

 

 

 

 

 

 

 

 

 

 

 

 

 

 

 

 

* 케르스틴 뤼커, 우테 댄셸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 (어크로스, 2018)

 

 

 

《참깨와 백합》 옮긴이는 러스킨을 ‘여성의 교육에 앞선 교육 개혁가’라고 소개했다.[주7] 러스킨은 사회 참여적인 교육가이지 ‘여성을 위한 교육 개혁가’로 평가받을 만한 인물이 아니다. 그의 여성관과 여성 교육에 대한 입장은 《에밀》에서 ‘여성의 역할은 남성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 루소(Jean Jacques Rousseau)와 유사하다. 루소도 여성을 남편과 가정을 위해 집안일 하는 존재로 한정 지었다.

 

 

《참깨와 백합》을 해설한 옮긴이의 설명은 빈약하다. 왜냐하면 1871년에 《참깨와 백합》 개정판을 내면서 새로 추가된 러스킨의 서문세 번째 강연 「The Mystery of Life and Its Arts」에 대해선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정판 서문과 세 번째 강연을 번역하지 않더라도 이에 대해서 언급했어야 한다.

 

 

 번역하는 내내 바른 가르침을 받는 행복감으로 충일했고 저자의 탄탄한 지성과 면밀한 논리는 생명을 살리는 먹거리가 차려진 소박하나 소중한 밥상과 같았다.

 

(옮긴이의 말, 14쪽)

 

 

옮긴이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참깨와 백합》을 읽는 내내 러스킨의 젠체함과 공허한 논리에 거부감이 생겨서 ‘밥상’ 같은 책을 엎고 싶은 느낌이 들었다.

 

 

 

 

[주1] 유정화 옮김, 「참깨: 왕들의 보물」, 80쪽

 

 

 

 

 

 

 

 

 

 

 

 

 

 

 

 

 

* [절판] 존 러스킨 《베네치아의 돌》 (예경, 2006)

 

 

[주2] 러스킨은 고딕 건축 양식과 베네치아 고딕 양식을 분석한 저서 《베네치아의 돌》에서 건축의 세 가지 미덕을 제시한다. 그 중 하나는 건물의 효율성이다. 그는 자연재해와 외부의 침입을 막을 수 있는 기능성이 있어야 좋은 건물이라고 주장한다. 러스킨이 「백합: 여왕들의 화원」에 언급한 ‘가정’은 기능성을 최대한 살린 건축의 의미와 일맥상통하다.

 

[주3] 유정화 옮김, 「백합: 여왕의 화원」, 121쪽

 

[주4] 김전유경 옮김, 《성 정치학》, 191쪽

 

[주5] 필자의 졸문 「에피 그레이의 재앙」을 참조하길 바란다.

 

[주6] 김전유경 옮김, 《성 정치학》, 190쪽

 

[주7] 《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 옮긴이의 말, 9쪽

 

 

 

 

 

난센스 퀴즈의 정답은 스킨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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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5 17: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2-26 00:06   좋아요 0 | URL
급할 거 없습니다. 다음 달에 날씨가 좋아지니까 날 맞춰서 만나요. ^^

stella.K 2019-02-25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설마! 넘 심했다.ㅎㅎㅎㅎㅎㅎ

cyrus 2019-02-26 00:09   좋아요 0 | URL
러스킨이요? ㅎㅎㅎㅎ 러스킨과 에피 그레이의 이혼 스캔들이 너무나 유명해서 러스킨과 로즈 라 투셰의 관계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요. 러스킨과 같은 시대에 산 루이스 캐럴도 소녀 앨리스 리델을 좋아했어요.. ^^;;

AgalmA 2019-02-26 0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성, 여성의 차이에 대해 결정론적 해석을 하는데 유전학이 어쩐지 기여를 하고 있는 것 같죠?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폭력성의 관계 등등.
대니얼 리처드슨이 <심리학자들이 알려주지 않는 마음의 비밀>에서 고찰했듯이 복잡한 상황은 모두 무시한 채 인물에 집중하는 ‘기질적 귀인 오류’ 인지작용도 있죠.
이런저런 사고 오류에 대해 말해도 안 들으려는 사람은 안 들으니ㅜㅜ;;

cyrus 2019-02-26 00:22   좋아요 1 | URL
유전학의 흑역사가 우생학이에요. <그들은 왜 극단적일까>라는 책을 쓴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몇몇 심리학자는 어용 학자입니다. 어용 학자는 특정 집단이 권력을 유지하는 데 유리한 이론을 강조하고, 자신들이 지지하는 특정 집단에 반하는 타 집단을 부정적으로 규정하는 이론을 만들어요.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입니다. 이들은 개인이 환경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개인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쉽게 동조하게 되고, 집단 구성원이 되어 동질감을 느끼려고 하죠. 이게 더 발전되어 나온 이론이 ‘집단 극단화 이론’입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하나의 집단이 만들어지고, 집단의 폐쇄적인 환경으로 인해 개인의 의견은 무시되고, 집단을 대표하는 입장이 남게 됩니다. 이러한 집단은 자신들의 입장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타 집단의 입장을 무시합니다. 그런데 집단 극단화 이론의 단점은 동질감의 긍정적 기능을 무시하고 집단의 목소리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듭니다. 예를 들면 임금 인상을 원하는 정당한 노조 파업은 집단 극단화 이론에 따르면 집단이기주의로 규정될 수 있는 거죠.

오늘 AgalmA님이 소개한 <심리학자들일 알려주지 않는...>을 보면서 심리학 이론을 무조건 받아들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해로행(薤露行)토머스 맬러리(Thomas Malory)아서왕의 죽음을 각색한 단편소설이다. 5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 나쓰메 소세키, 박현석 옮김,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현인, 2018)

* 나쓰메 소세키, 노재명 옮김, 런던 소식(하늘연못, 2010)

    

 

 

 

 

 

 

 

 

 

 

 

 

 

 

 

 

 

 

 

 

 

 

 

 

 

 

 

 

 

 

 

 

 

* 토머스 맬러리, 아서 왕의 죽음(나남출판, 2009)

* [절판] 토머스 불핀치,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황금가지, 2004)

* [절판] 토머스 불핀치,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들(현대지성사, 1998)

 

 

 

 

아서왕의 죽음은 아서왕(King Arthur)의 일대기와 원탁의 기사들에 대해 쓴 장편 산문이다. 이 작품은 중세 유럽의 문학과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 다루어져 왔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집대성한 토머스 불핀치(Thomas Bulfinch)는 여러 판본으로 전해져온 아서왕 전설을 추려 엮어 펴냈는데, 국내에선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The Age of Chivalry, or Legends of King Arthur)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 [e-Book] 앨프레드 테니슨, 김천봉 옮김, 율리시스: 테니슨 시선(글과글사이, 2017)

* [e-Book] 앨프레드 테니슨, 테니슨 시선(지만지, 2015)

* [품절] 앨프레드 테니슨, 테니슨 시선(지만지, 2011)

* [절판] 김천봉 엮음, 빅토리아 여왕 시대 1: 19세기 영국 명시(이담북스, 2011)

* 앨프레드 테니슨, 눈물이, 부질없는 눈물이(민음사, 1975)

 

 

 

 

영국의 시인 앨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22년에 걸쳐 아서왕 전설을 주제로 한 장편 서사시 국왕 목가(The Idylls of the King)를 썼다. 이 작품의 분량이 방대해서 국내에 완역된 적은 없다. 소세키는 테니슨의 장편 서사시를 칭송하면서 해로행을 쓰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언급한다. 해로행의 두 번째 이야기 제목은 거울인데 샬럿의 여인(The Lady of Shalott)에 대한 내용이다. 테니슨은 맬러리의 아서왕의 죽음에 나오는 랜슬롯(Launcelot)과 일레인(Elaine) 이야기를 바탕으로 샬럿의 여인이라는 시를 썼다. (눈물이, 부질없는 눈물샬럿의 여인이 수록되지 않은 테니슨의 시 선집이다)

 

랜슬롯은 원탁의 기사 중 한 명으로 그가 아서왕 전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일레인은 랜슬롯에 한눈에 반해 짝사랑하는 영주의 딸이다. 테니슨은 일레인의 비극적인 사랑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그녀를 저주받은 여성으로 설정했다. 테니슨이 묘사한 일레인은 혼자 샬럿 섬의 성에 지내면서 직물을 짜야 하는 저주에 걸려 있다. 그녀는 성 밖에 나가지 못한다. 방 안에 있는 거울에 비쳐진 바깥 세계의 풍경(거울의 특성을 생각하면 거울 속 세상은 실재가 아니라 환영이다)을 보면서 산다. 거울은 일레인이 사는 성 근처를 지나가는 랜슬롯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레인은 거울 속에 나타난 랜슬롯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그 후로 그녀는 랜슬롯이 자신의 성 앞을 지나가기를 애타게 기다린다. 일레인은 거울의 환영을 계속 봐야하는 자신의 처량한 신세에 불만을 가진다. 결국 그녀는 저주를 무시하고, 랜슬롯을 좀 더 가까이 보기 위해 창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그 순간 저주가 깨지면서 거울은 산산조각이 나고, 그녀가 짜고 있던 직물은 풀어진다. 일레인의 저주가 깨지는 극적인 순간과 그녀가 랜슬롯을 찾기 위해 홀로 방황하다가 쓸쓸히 최후를 맞는 장면은 중세 문화에 심취한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 화가들이 즐겨 그린 주제였다.

 

해로행런던 소식(하늘연못)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현인)에 수록되어 있다. 전자의 책을 번역한 노재명 씨는 고인이다. 그러나 고인이라고 해서 그의 번역에 대한 비판의 칼날을 거둬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노재명 씨의 번역에 대해 따지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해로행북망행으로 바꾼 점이다. 노재명 씨는 제목을 바꾼 이유를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일문학을 전공하지 않았으며 일본어를 쓰고 말할 줄 모른다. 번역해본 적도 없다. 네이버 일본어 사전과 구글 번역기를 이용하면서 오역으로 의심되는 문장 하나하나 검토했다. 일어를 독해하고 이것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능력이 없어서 해로행』 '거울' 편만 검토했지만, 생각보다 오역이 많았다. 이건 정말 심각하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독자는 엉터리로 번역된 나쓰메 소세키의 단편소설을 읽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에 번역을 검토하면서 하늘연못 판본의 별점을 네 개에서 두 개로 변경했다.

 

오역인지 아닌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 문장에 대해선 의견을 피력하지 않았다. 일본어와 번역 비전공자인 내가 의견을 밝히면 주제넘은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대신 원문과 두 가지 번역본의 문장을 한 눈에 비교할 수 있게 써놨다.

 

 

 

 

 

* 해로행원문 출처: http://www.natsumesoseki.com/home/cairoko

      

 

 

 

 

 テニソンのアイジルス優麗都雅において古今雄篇たるのみならず性格描写においても十九世紀人間古代舞台おどらせるようなかきぶりであるからかかる短篇するにはおおいに参考すべき長詩であるはいうまでもない

 

 

テニソンの: 알프레드 테니슨(1809~1892, 영국의 시인).

古今雄篇: 고금의 웅편. 

 

* 하늘연못

  테니슨의 <아이딜스>[원주]는 유려한 문장이 돋보이는 위대한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성격 묘사에 있어서도 19세기 인간을 고대라는 무대에 되살려 낸 작품이다. 이 소설을 쓰는 데 테니슨의 장시(長詩)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원주] The Idylls of the King의 약칭. 목가적인 서사시. 아서 왕과 그 기사들이 중심이다. 

 

* 현인 (387~388)

  테니슨의 아이지루스[역주]는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고상하다는 점에서 고금의 웅편(雄篇)일 뿐만 아니라, 성격의 묘사에 있어서도 19세기 사람을 고대의 무대에서 뛰어놀게 한 듯한 필치이기에 이 단편을 집필하는 데 커다란 참고로 삼아야 할 장시(長詩)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역주] 테니슨의 샬럿의 아가씨(The Lady of Shalott)를 말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2 

 

 

 あるときはかしらよりただ一枚わるる真白上衣うわぎかぶりて眼口手足しかとちかねたるがけたたましげにかねらしてぎるもゆるこれはらいをやむ前世ごうをみずからぐるむご仕打ちなりとシャロットのるすべもあらぬ

 

 

けたたまし: 요란한

:

: 나환자

前世: 전세의 업

: 세상에 알리는

むご: 잔혹한

シャロットの: 샬럿의 여자

      

* 하늘연못

  또 어느 때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윗도리 하나만 걸친 사람이 나타난다. 도무지 몸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형체가 거울에 비친다. 이 사람은 전생에 나병이라도 앓은 사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 현인 (396)

  또 어떨 때는 머리부터 단 한 겹이라 여겨지는 새하얀 상의를 뒤집어쓰고 눈과 입도 손과 발도 분명히도 알아볼 수 없지만 요란하게 징을 울리며 가는 모습도 보였다. 이는 문둥병 환자가 전세의 업을 스스로 세상에 알리는 잔혹한 행동이라는 사실을 샬럿의 여자는 알 길이 없었다.

 

 

하늘연못 판본에 요란하게 징을 울리며 가는 모습도 보였다(원문에 밑줄 친 구절)라는 구절이 없다. 현인 판본에 문둥병 환자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나병 환자를 낮잡아 부르는 말이다. 문둥병 환자’, ‘문둥이는 나병 환자를 비하하는 혐오 단어이므로 번역할 때 이러한 표현을 써선 안 된다.

 

 

 

 

 

 

3

 

 旅商人たびあきゅうどのせにえるつつみのにはきリボンのあるか下着のあるか珊瑚さんご瑪瑙めのう水晶真珠のあるかめるらさねばにあるものはにはらず

 

 

旅商人: 떠돌이 장사꾼

きリボン: 붉은 리본

下着: 하얀 속옷

 

      

* 하늘연못

  상인들의 등짐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무엇일까? 흰 의복이라도 들어 있을까? 산호, 마노(瑪瑙), 수정, 진주라도 들어 있는가? 포장 속에 있는 것들은 거울에 비치지 않는다.

      

* 현인 (396)

떠돌이 장사꾼들이 등에 짊어진 보따리 속에는 빨간 리본이 있는지, 하얀 속옷이 있는지, 산호, 마노, 수정, 진주가 있는지, 보따리 안을 비추지 않으면 안에 들어 있는 물건도 거울에는 비치지 않았다.

 

 

 

하늘연못 판본에 원문의 빨간 리본(きリボン)이 빠져 있고, 노재명 씨는 햐안 속옷(下着)흰 의복으로 번역했다.

 

 

 

    

 

 

 

4

 

 シャロットのるは不断はたであるむらの萌草もえぐさのれる釣鐘めるるときはのいつくべしともえぬほどのであるうなのうねりなみのかすときは底知れぬさを一枚きにあるときはじにゆるほのおのにて十字架濁世じょくせにはびこる罪障すきまなく天下いて十字れる経緯たてよこのにもるとしくのみははたをれてばんとす

 

 

不断: 평소(=독특하지 않은), 끊임없음(계속하거나 이어져 있던 것이 끊이지 아니하다)

: 꽃 그림자

うな(海原, うなばら): 넓고 넓은 바다

うねり: 파도

: ~(), ~처럼(동작 · 상태 따위를 나타내는 데 씀)

濁世: 더러운 세상

罪障: 죄장. 성불의 장애가 되는 죄업 

 

* 하늘연못

  샤롯 여인이 짜는 그림은 독특한 것이 아니다. 풀밭을 배경으로 종() 모양의 꽃을 짤 때는 꽃 그림자가 지금이라도 당장 솟아나올 것처럼 보인다. 짙은 꽃이다. 넓은 들판을 배경으로 ()과 지는 꽃을 수놓을 때도 있다. 어느 때는 검은 대지를 배경으로, 타오르는 불꽃같은 십자가를 만든다. 그 순간 그림 속의 불꽃들은 그림을 떠나서 공중으로 날아오를 듯하다 

 

* 현인 (399~400)

  샬럿의 여자가 짜는 것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단이었다. 수풀에 새로 돋은 풀이 무성하게 우거진 바탕에 초롱꽃이 잠겨있는 모습을 짤 때는 꽃이 언제 떠오를지도 모를 만큼 짙은 색이었다. 널따란 바다의 파도 속으로 눈처럼 떨어지는 물결의 꽃을 새길 때는 끝을 알 수 없는 깊이를 한 겹 얇은 천에 새겼다. 어떨 때는 검은 바탕에 타오르는 불꽃과 같은 색으로 십자를 새겼다. 더러운 세상에 만연한 죄업(罪業)의 바람은 온 천하에 불어, 십자를 짜는 날줄과 씨줄 사이에도 들어가는 듯, 불꽃만은 비단에서 나와 치솟으려 했다.

 

 

 

원문의 不断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항상’, ‘평소’, ‘끊임없음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인용한 문장을 보면 샬럿의 여인이 직물로 짠 그림에 묘사된 대상들은 하나같이 역동적이다. 이런 그림이 독특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노재명 씨는 원문의 넓고 넓은 바다의 파도(うなのうねり)넓은 들판으로 번역했는데 명백한 오역이다.

 

 

 

 

 

   

5

 

 まことの横縦くぐらせばせてげるマリヤの姿となるいをたてにりをよこにあられふる木枯こがらしせば荒野ひげリア面影ずかしきくれないとめしき鉄色をよりせてはうてえたるむべく温和おとなしきがれるかわるがわるにめばわれし乙女おとめのわれはがおにぶれるさまをたもとくにまつわるえぬねがいれなるべし

 

 

, あられ: 싸라기눈(빗방울이 얼어 떨어지는 쌀알 같은 눈)

木枯(), こがらし: 초겨울(늦가을)의 찬바람

: 밝은

リア: 리어 왕

: 만나다

: 길다

, たもと: 소맷자락

まつわる: 휘감긴

いえぬ: 말할 수 없는

, ねがい: 소망

: 어지러운

      

* 하늘연못

  사랑의 실()과 정성의 실을 종횡으로 연결하면, 두 손을 어깨에 올려놓고 하늘을 향한 마리아의 모습이 된다. 광기와 분노를 섞어 고목을 만들면 그 모습은 흰 수염의 리어(King Lear)가 된다. 부끄러운 붉은색과 한 맺힌 회색을 섞으면 떠나간 사람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다. 또 온화한 황색과 기운찬 자색을 섞으면 마귀에 홀린 여인의 흥분된 얼굴이 나타난다. 이렇듯 그녀의 베틀에는 구름에 휘감긴 사람들의 소원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다.

      

* 현인 (400)

  사랑의 실과 정성의 실을 가로와 세로로 물레의 북을 지나게 하면 손을 어깨에 엇갈려 얹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마리아의 모습이 되었다. 광기를 종으로 분노를 횡으로, 진눈깨비 날리며 삭풍이 부는 밤을 베틀 앞에서 밝히면, 황야에서 흰 수염을 흩날리는 리어의 모습이 나타났다. 부끄러운 주홍과 원망스러운 쇳빛을 한데 모아 간절히 만남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을 읽어낸 듯했으며, 온화한 노랑과 흥분한 보라를 차례로 짜면 마법에 걸린 아가씨가 자신의 얼굴에 감동한 모습이 나타났다. 기다란 자락에 구름처럼 휘감긴 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는 소망의 실이 헝클어진 모습이었다.

 

 

 

원문의 木枯고목이 아니라 목고로 읽는다. 마를 고이다. 리어 왕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 사람이 맞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싸라기눈(あられ)은 빗방울이 찬바람으로 만나 얼은 상태에서 내리는 눈을 뜻한다. 싸라기눈과 진눈깨비는 다르다. 진눈깨비는 비가 섞여 내리는 눈이다[출처].

 

[출처] <카드뉴스> 가루눈보다 굵고 함박눈보다 가는 것은? (뉴스웨이, 2018113) http://www.newsway.co.kr/news/view?tp=1&ud=2018011217351479073

 

 

 

 

 

 

 

6 

 

     

うつせみの

うつつめば

みうからまし

むかしも

うつくしき

うつす

やうつろう

なに

 

 

うつせみ: 이승, 이 세상

うつつ: 제 정신

      

 

* 하늘연못

허망한 세상을

혼미하게 살면

살기 힘들다네

옛날도 지금도

아름다운 사랑이

비치는 거울에

색이 비치리라

아침 저녁마다

      

* 현인 (401)

이 세상을,

맑은 정신으로 살면

살기 괴로울 테지,

예나 지금이나.

아름다운 사랑,

비치는 거울에

색이 비치네,

아침저녁으로.

 

 

노재명 씨는 원문에 없는 허망한이라는 표현을 썼다.

 

 

 

 

 

 

 

7 

 

   

らしてすえる

 

すえる: 응시하다, 눈여겨보다

      

* 하늘연못

여인은 순간 숨을 몰아쉰다. 눈을 감는다. 

 

* 현인 (402)

여자는 숨을 멈추고 눈을 고정시켰다.

 

 

 

すえる(응시하다)눈을 감는다로 번역하다니…‥.

 

 

 

 

 

   

8

 

 

 このシャロットのサー・ランスロットんでそばにかけってあおきいだすとはきに地震くにける

ぴちりとがして々こうこうたる真二つにれるれたるおもてはびぴちぴちとくがこな微塵みじんになってしつの七巻ななまき八巻やまきりかけたる布帛きぬはふつふつとれてなきに鉄片はほつれ千切ちぎれもつれてつち蜘蛛ぐものくにシャロットの髪毛にまつわる。「シャロットのすものはランスロットランスロットをすものはシャロットのわが末期まつごののろいをうてかたへ両手げてちたる野分のわきをけたる五色あざむく砕片るる[革堂][cyrus ]どうとたおれる

 

[cyrus ] 원문에는 (가죽 혁)+(집 당)이 합쳐진 한자(‘이 부수인 한자)로 표기되어 있음. 네이버 한자사전, 일어사전에도 등록되지 않은 한자라 뜻과 음은 모르겠음 

 

 

サー: ()

ランスロット: 랜슬롯

きに地震: 멀어져 가는 지진

: 지나가다, 달리다

 

       

* 하늘연못

  그때 샤롯의 여인은 다시 소리친다. “랜슬롯 경!” 여인은 창문 쪽으로 몸을 돌려 놀란 얼굴을 세상 속으로 반이나 내민다. 사람과 말이 하나가 된 물체는 높은 저택 아래를 그냥 지나쳐간다.

      

* 현인 (402~403)

  이때 샬럿의 여자가 다시 랜슬롯 경.”하고 외치며 홀연 창 옆으로 달려가 창백한 얼굴을 세상 속으로 반쯤 내밀었다. 사람과 말은 높다란 전각 아래를 멀어져가는 지진처럼 달려 나갔다.

  쩍,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교교하던 거울이 갑자기 한가운데서 2개로 갈라졌다. 갈라진 표면이 다시 쩍쩍 얼음이 갈라지듯 산산조각 나서 방 안으로 튀었다. 일곱 두루마리, 여덟 두루마리, 짜던 비단이 갈가리 찢어져 바람도 없는데 철조각과 함께 날아올랐다. 붉은 실, 초록 실, 노란 실, 보라색 실은 흐트러지고 끊어지고 풀리고 엉켜 땅거미가 친 그물처럼 샬럿의 여자의 얼굴에, 손에, 소매에, 기다란 머리카락에 휘감겼다. “샬럿의 여자를 죽이는 것은 랜슬롯. 랜슬롯을 죽이는 것은 샬럿의 여자. 내 마지막 저주를 짊어지고 북쪽으로 달려라.”라며 여자는 두 손을 높이 하늘로 올리고 썩은 나무가 태풍을 맞을 때처럼 오색실과 얼음과도 같은 파편이 어지러운 가운데로 털썩 쓰러졌다.

      

 

노재명 씨는 해로행의 결말에 해당하는 문장을 번역하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해로행거울편과 테니슨의 시 샬럿의 여인의 결말은 다르다.

 

 

 

 

 

 

 

 

 

 

 

 

 

 

 

 

 

  

* [품절] 에드거 앨런 포, 우울과 몽상(하늘연못, 2002)

 

 

지금은 절판되어 사라졌지만, 하늘연못 출판사하면 반드시 언급되는 최악의 번역본이 있었다. 그 책이 바로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단편소설들을 수록한 우울과 몽상이다. 그 책에 엉터리 번역문이 많았지만, 가장 최악의 오역은 진자와 함정의 결말 마지막 문장이 누락된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졸문을 참고하시라[출처].

      

[출처] 책을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 알 것 같습니다(20151214)

http://blog.aladin.co.kr/haesung/8052770

 

 

 

 

 

 

+1

 

 

 

 

 

 

 

 

 

 

 

 

 

 

 

 

* 팀 베린저 라파엘 전파(예경, 2002)

 

 

 

이왕에 이렇게 된 거 오역 사례 하나 더 언급한다. 예경 출판사라파엘 전파160‘The Lady of Shalott’샬롯 양으로 번역했다. 샬럿은 여인의 이름이 아니라 섬 이름이다. 이 섬에 있는 성에 저주받은 여인이 산다고 해서 샬롯의 여인으로 알려진 것이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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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8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2-18 18:14   좋아요 0 | URL
지난달에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독서 일정이 꼬였어요. 토요일 새벽에 번역문 대조 작업을 했어요. 이거 하느라 오늘 페미니즘 독서모임을 위해 읽어야 할 책을 읽지 못했어요. 제가 다른 책을 보느라 독서모임 책을 안 읽은 것도 있었지만, 괜한 작업 때문에 힘을 너무 많이 소모했습니다... ^^;;

syo 2019-02-18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렸다...... 역시 당신은....bbbb

cyrus 2019-02-18 18:15   좋아요 0 | URL
일문학 전공자가 나쓰메 소세키의 단편소설을 다시 읽어보라고 말씀하셔서 읽어봤는데 정말 노재명 씨의 번역에 문제가 많았어요. 대조하면서 글 쓸 때 정말 짜증이 났어요... ㅎㅎㅎ

oren 2019-02-18 1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어도 공부하시지 않으셨는데, 정말 꼼꼼히 비교하셨네요. 고생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글의 제목과 본문에서도 간혹 잘못 입력된 이름들이 보입니다. ㅎㅎ
(나쓰메 소메키, 캐슬롯)
책에서든 블로그에서든 오탈자들은 그나마 애교로 봐줄 수도 있지만,
판매중인 책에서 발견되는 엉터리 번역은 정말 끔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cyrus 2019-02-19 15:13   좋아요 1 | URL
오자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주말 새벽에 글을 써서 그런지 실수가 많네요. 이 때 정말 힘들었어요... ^^;;

카알벨루치 2019-02-18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시루스박사!!!!🔥🔥🔥

cyrus 2019-02-19 15:14   좋아요 0 | URL
저는 아마추어입니다.. ^^

transient-guest 2019-02-23 0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울과 몽상‘은 여러 모로 많이 아쉽고 덕분에 최근에 나온 전집을 다시 구매했지요. 번역이 어려운 것도 이해하고 운문/산문을 가져오는 것도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제가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번역문제는 결국 불성실한 editor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야말로 모든 오역/오탈자 등에 대한 최후의 방어선이 editor라고 생각하는데 종종 이런 건 좀 편집하면서 걸러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합니다.

cyrus 2019-02-24 16:26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역자가 번역하면서 잘못 쓴 단어라든가 인쇄 중에 발생한 오식은 편집자가 확인해야 합니다.

2019-02-25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25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25 1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