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당나귀가 길을 걷다가 맛있어 보이는 건초 더미를 발견했다. 그쪽으로 발걸음으로 옮기는 순간, 그 옆에 있는 다른 건초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이것도 맛있어 보이는군.’ 당나귀는 두 개의 건초 더미 모두 맛있어 보였다. 왼쪽으로 가면 오른쪽 건초가 더 먹음직스러워 보였고, 오른쪽으로 가면 왼쪽이 먹고 싶어졌다. 밤새도록 갈팡질팡하던 당나귀는 굶어 죽고 말았다. 그는 건초 한 개도 입에 대지 못했다. 자기 앞에 놓인 두 개의 건초 더미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나은지 줄곧 고민하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당나귀의 어리석음을 풍자한 이 우화는 뷔리당의 당나귀(Buridan’s ass)’로 알려졌다.

 

당나귀가 말해주듯 때때로 선택의 자유는 당황스러운 상황을 만들거나 개인의 삶을 좀 더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당나귀는 다른 건초 더미를 배제하고 어떤 한 건초 더미를 선택할 충분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둘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하는 순간 자신의 선택은 오직 부분적으로만 정당화될 뿐이었다. 어떤 것을 선택했다고 해서 선택하지 않고 남겨진 것이 곧바로 하찮은 것이 되어버리는 것도 아니다. 당나귀는 미련하고 욕심이 너무 많다. 우리 또한 당나귀처럼 무언가의 결정을 눈앞에 두고 우왕좌왕하는 우매한 모습을 드러낸다. 뷔리당은 당나귀를 통해 자유의지의 무력함을 조롱했다.

 

 

 

 

 

 

 

 

 

 

 

 

 

 

 

우화의 주연은 당나귀지만, 그의 최후에 영향을 준 건초 더미를 무시할 수 없다. 중세에 건초 더미는 인간의 욕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으로 해석되었다. 그렇게 되면 뷔리당의 당나귀는 두 개의 건초 더미 사이에서 고민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욕심이 자유의지의 힘을 잃은 것으로 볼 수 있다. 15세기 네덜란드에는 이런 유행가가 있었다고 한다. 하느님이 인간을 위해 지상의 훌륭한 것들을 건초 더미처럼 쌓아 올렸는데, 사람들이 그 더미를 혼자 독차지하려고 서로 다툰다는 내용의 노래다. 그 노래에서 가장 유명한 가사 한 구절이 건초의 부정적 의미를 강조한다. 결국, 그것은 모두 건초일 뿐이다.” 욕심 많은 인간은 보잘것없는 건초마저 탐낸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건초 수레(1500, 삼면제단화 중앙 부분)

 

 

히에로니무스 보스는 인간의 무력함을 풍자하기 위해 건초 더미 수레를 소재로 한 똑같은 그림 두 점을 제작했다. 엄청난 높이로 쌓아 올린 건초 더미 수레가 지나가자 온갖 직업과 계급의 사람들이 뒤따라온다.

 

 

 

                    

 

 

농부뿐만 아니라 왕과 왕비(혹은 귀족 부부), 교황으로 추정되는 화려한 복장의 인물들도 행진에 동참한다.

 

 

 

                  

 

건초 더미 수레 위에는 노래를 연주하는 젊은 연인들이 앉아 있다. 그들의 모습이 부러워서인지 몇몇 사람들은 건초 더미 위에 올라가려고 시도한다. 이들의 행진은 즐겁고 유쾌하다기보다는 혼잡하다. 이와 중에 서로 싸우는 시민들도 있다.

 

 

 

                  

 

 

그림 오른쪽 밑에 시골 아낙네들이 건초 더미를 자루에 실어 넣는다. 뚱뚱한 수도원은 아낙네들의 일을 앉아서 지켜보기만 하고 있다. 건초 더미 수레는 어디로 향하는 걸까? 괴상한 짐승처럼 생긴 악마들이 수레를 끌고 있다. 그들은 건초 더미에 욕심을 부리는 인간들을 유혹하여 지옥으로 이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감지한지 못한 채 행진한다. 하늘 위의 예수도 개판 5분 전인 속세의 상황을 말리지 못한다.

 

기독교의 일곱 가지 대죄 중 하나가 탐욕(Avaritia)이다. 보스는 죄악 앞에서 무력한 인간들의 세상을 보여준다. 그들의 눈에는 건초는 소유하고 싶은 물화(物貨). 탐욕은 갈등을 초래한다. 탐욕에 눈이 먼 사람들은 더 많이 가지려고 폭력을 불사하면서까지 빼앗으려고 한다. 탐욕을 경계하라고 강조하던 종교인들마저 악덕의 그림자에 점령당했다. 수도승은 아낙네들이 바치는 건초 더미를 받으면서 자신의 욕심을 채운다. 건초 더미 꼭대기 위의 연인들은 환락의 잔치를 즐긴다. 사람들은 그들을 동경한다. 재물이 많을수록 달콤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확신에 사로잡힌다. 이들의 욕심은 부질없다. 어차피 죽으면 소유할 수 없다. 하나뿐인 인생에 헛된 욕심만 부리면서 살기에는 너무 짧다. 탐욕은 자꾸만 우릴 부추긴다. 하나도 모자라서 하나 더를 원한다.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해 남이 가진 것을 노린다. 그래서 내가 남보다 얼마나 가졌는지 비교해보기도 한다. 뷔리당의 당나귀 같은 사람은 양적으로 질적으로 비교하면 별반 차이 없는 두 개의 재물 앞에 생각이 많아진다. 둘 중 하나를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어리석은 당나귀가 있다. 뷔리당의 당나귀처럼 그 역시 두 개의 건초 더미 앞에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한다. 두 개의 건초 더미의 양은 동일하다. 양쪽 건초에 가격표가 있다. 왼쪽 건초의 가격은 5만 원, 오른쪽 건초의 가격은 천 원이다. 당나귀는 고민하지 않고, 왼쪽 건초를 먹는다. 건초의 양이 비슷해도 높은 가격으로 매겨진 건초가 맛있어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당나귀는 5만 원짜리 건초 더미를 실컷 먹고 왔다고 동료 당나귀들에게 자랑할 것이다. 그런데 이 당나귀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베블런(Veblen)의 당나귀. 당나귀 이름의 의미가 이해가 안 되는 분은 인터넷 검색창에 '베블런 효과'를 검색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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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3-08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블런효과..이거 사진 찍다보면 뽀대주의자를 간혹 보게 됩니다.
사진 실력이 자신이 가진 카메라 가격과 동일시하는 착각....
돼지목에 진주인지는 고려한 바가 없었거든요..

cyrus 2016-03-09 14:20   좋아요 1 | URL
사진 찍는 일에도 베블런 효과가 작동되고 있었군요. 사진 실력이 그저 그런 수준인데 값비싼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긴 합니다.

림스네 2016-03-09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세시대에는 건초더미를 인간의 탐욕의 대상으로 해석했네요.
그림 해석이 재미있어요.
베블런 당나귀도 재미있고,

cyrus 2016-03-09 14:24   좋아요 0 | URL
중세 역사를 공부할 때 재미있는 내용이 중세에 유행한 상징들에 관한 것입니다. 중세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든 자연과 사물이 신의 의미가 들어있는 피조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중세 상징에 종교적 분위기가 남아있습니다.

서니데이 2016-03-09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세시대 사람들이 생각하는 종교적 의미가 강조된 그림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cyrus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cyrus 2016-03-09 20:26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서니데이님도 편안한 밤 보내세요. ^^
 
[세트] 마스터스 오브 로마 1부 + 2부 세트 - 전6권 (본책 6권 + 가이드북) - 로마의 일인자 1~3 + 풀잎관 1~3 마스터스 오브 로마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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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만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가 선호하는 로마 남자가 더 있다. 시오노는 매력남의 조건을 ‘성공하는 남자의 조건’이라는 수필에 공개했다. 이 글은 《남자들에게》(한길사)라는 책에 있다. 시오노는 성공하는 남자의 몸 전체에 밝은 빛이 있다고 말한다.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조용한 동작 하나에서 은은한 분위기를 띠는 밝음을 의미한다. 이런 분위기를 이탈리아어로 ‘세레노(sereno)’라고 한다. 이탈리아어 사전에 찾아보면 ‘밝은, 평온한, 깨끗한’이라고 씌어 있다. 시오노는 한니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스키피오 장군을 그런 매력적인 성품을 들며 ‘담백하고 소탈한 분위기가 풍겨 나오는 남자’로 묘사했다.

 

그러나 이 지구상의 남자 중에 ‘세레노’에 가까운 사람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시오노는 ‘세레노’에 고뇌와 상처가 없는 산뜻한 매력을 부여한다. 뭐지? 이건 뭐 에피큐리언(epicurean)이 되라는 건가. 살면서 마주치게 될 온갖 정념(情念)을 완벽하게 피할 수만 있다면 심란하지 않은 마음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시오노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 그녀는 자신이 이탈리아 남자와 결혼해서 살고 있어서 로마 남자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앎의 깊이가 그리 깊지 않은 듯하다. 그녀가 고대 로마 남자들의 진짜 성격을 알고 있으면 밝고 평온한 세레노를 다른 인물에게서 찾아야 했다. 스키피오는 물론이고, 로마 남자들은 세레노와 거리가 먼 종족들이다.
 
나는 로마 남자를 한 단어로 정의하고 싶다. 로마초(Romacho). 로마(Roma)와 마초(macho)를 합쳐서 만든 단어다. 로마 남자들은 마초였다. 로마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키비스 로마누스(civis Romanus), 즉 ‘로마 사람’으로 살아간다. 특히 로마 남자들은 ‘로마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을 마음껏 표출했다. 어디든 가면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기세당당한 자세로 상대방을 대면했다. 자신감이 넘친 로마 남자들은 여자보다 모든 것을 지배하고 싶은 욕망이 더 컸다. 여자뿐만 아니라 같은 남자들에게도 우월성을 과시했다. 남들 앞에 순종적인 자세나 행동을 보이면 수치스러운 일로 간주했다.

 

콜린 매컬로의 《로마의 일인자》와 《풀잎관》의 주연 마리우스와 술라는 ‘로마초’ 기질을 가진 로마 사람이다. 혹자는 마리우스가 세레노에 적합한 인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설득력이 있는 인물평이다. 그는 자신의 신부가 된 율리아의 제안을 수용하기 때문이다. 마리우스는 율리아의 노후 생활을 보장해주기 위해서 그녀와 함께 재산을 공동 소유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 역시도 상대방 앞에서 굽히는 모양새를 싫어하는 전형적인 로마 남자다. 그의 남자다움은 자기 아들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집안의 절대 권력자인 가장은 가족 구성원들이 자신을 복종하도록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었다.

 

 

아이의 큼직한 회색 눈은 대담하게도 아버지를 평가하고 있는 듯했다. 마리우스가 보기엔 예절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달라질 것이다. 이 장난꾸러기 녀석에게, 아버지란 아들이 함부로 지배하고 조종할 사람이 아니라 존경하고 우러러봐야 할 사람임을 알려줄 작정이다. (《로마의 일인자》 1권 310~311쪽)

 

 

마리우스는 시라아의 무녀 마르타의 예언에 집착한다. 칠순에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곱 번째 집정관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한다. 결국, 자신이 로마를 이끄는 유일한 지휘자라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원로원에서 시커먼 오물 같은 권력욕의 온상을 여러 차례 목격했음에도 침착하지 못한 행동을 보인다. 마리우스는 자신이 포르투나(fortuna)의 도움을 받는다고 믿었다. 그것은 운명적인 힘이다. 하지만 그의 심장 한가운데 세워진 포르투나는 자만심과 우월감이 빚어낸 어설픈 조각상에 불과하다. 마리우스는 한때 로마를 사랑했고, 사랑하는 조국의 건강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 시절에 마리우스는 원로원 의원들에게 최하층민들도 키비스 로마누스가 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크게 높였다. 여기서도 마리우스는 로마인 특유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우리는 모두의 존경을 받으며, 외국으로 여행할 때면 사람들은 우리의 의견에 따릅니다. 비록 최하층민일지언정, 자신을 로마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조차 다른 어떤 부류의 사람보다 낫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단 한 명의 노예도 없을지라도, 그는 세상을 지배하는 무리 중 하나입니다. 노예 한 명 없어 직접 천한 일을 할지라도 그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로마인이다, 나는 그 외 다른 모든 인간들보다 낫다!’” (《풀잎관》 1권 373쪽, 글쓴이가 발췌 편집했음)

 

 

그의 정의로운 사자후는 늙은 오만한 여우로 변했다. 광기 어린 여우는 이성의 기운이 쇠약해진 늙은 마리우스의 심장을 물어뜯었다.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늙은 지도자는 자신이 다른 모든 집정관을 능가하는 로마의 일인자라고 생각한다.

 

 

 

 

“등짝을 보자!”

로마 남자들은 동성애로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했다.

 

 

 

술라는 마리우스보다 ‘로마초’ 기질이 심하다. 그는 젊은 시절에 남성성을 억눌린 채 살아왔다. 의붓어머니 클리툼나, 애인 니코폴리스와 함께 매일 방탕한 쾌락의 밤을 보낸다. 두 여자는 술라를 자신 곁에 두려고 적극적으로 유혹의 손짓을 보낸다. 두 여자의 기세에 지쳐버린 술라는 아름다운 소년 메트로비오스를 만난다. 술라의 동성애는 쾌락을 위한 남색 행위라기보다는 자신의 남자다움을 마음껏 과시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다. 로마 남자들의 남근은 남녀 불문하고 꼿꼿하게 솟았다. 침대 위에서도 남성성을 과시하고 싶었다. 그들은 타인이 자신에게 복종해야 직성이 풀렸다. 술라는 메트로비오스를 만나 복종을 요구하는 남성성을 마음껏 표출한다. 술라는 한집에 사는 두 여자를 멀리해서 잃어버린 자존심을 회복하는 동시에 권력의 사다리로 올라갈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

 

매컬로는 술라를 ‘뼛속까지 배우’ 같은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그렇지 않다. 마리우스를 포함한 원로원 의원들 모두 ‘완벽한 로마 남자’라는 배역을 완벽하게 연기하면서 살아왔다. 모두가 ‘로마 사람’들이다(All the People of Rome). 이들은 상황에 따라 맞춰 쓸 수 있는 가면이 얼마든지 준비되어 있다. 로마 남자들에게 허세를 빼면 시체다. 남들 앞에 우월한 척해야 자신의 존재감이 드러난다. 로마 남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딱 한 가지가 있다. 정력이 사라지는 것. 그렇게 자신만만한 남자들도 노화의 섭리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어쩌면 자존심 많은 로마 남자들은 자신이 늙고 병들어가는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마리우스의 장인 카이사르는 투병으로 고생하다가 인간 아니 로마 남성의 존엄성이 무너져버린 상황을 깨닫고 자결한다. 로마 남자들은 남들 앞에서 남성성의 가면을 벗는 걸 두려워했다. 아, 마리우스가 딱 한 번 가면을 벗은 적이 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한참 지나서야 로마에 귀국했는데, 아버지의 죽음에 슬퍼서 율리아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로마의 일인자》 1권 311쪽) 그가 슬피 울기 전까지만 해도 아들을 제대로 가르치려는 권위적인 가장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로마 남자들은 눈물을 함부로 흘리지 못했다. 눈물을 흘리면 나약한 남자로 놀림 받는다. 로마 사회에 성공하려면 남성성이 철철 넘치는 남자가 되어야 했다.

 

로마 남자들이 이토록 권력에 집착하고 과시하고 싶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남성성을 공공연히 드러내야만 했던 특수한 사회 풍조 때문이었다. 시대가 영웅과 괴물을 키워내지 않았다. 로마 남자들은 그 시대 풍조에 적응하면서 살았을 뿐이다.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 영웅 혹은 괴물이 되는 길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양쪽 길을 모두 포기하면 사회에서 낙오된다. 그들은 ‘두 얼굴을 가진 배우’로 살아가느라 고생했다. 24시간 내내 남성성의 가면을 쓰고 다녔다. 알고 보면 로마 여자들뿐만 아니라 로마 남자들도 괴롭게 살다가 진토가 되었다. 우린 정말 로마에 태어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 이 글은 해당도서 서평 대회 참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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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일인자 1~3 세트 - 전3권 (본책 3권 + 가이드북)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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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병주는 소설에 인간의 세 가지 감정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흐느껴 우는 여인의 눈물, 발랄한 청춘의 웃음소리 그리고 성난 열정의 외침.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은 문장은 감동이 없다. 그 문장은 이미 죽었다. 한 권의 책으로 태어나자마자 사산(死産)한다. 반면 활어처럼 살아 숨 쉬는 문장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는 독자의 마음을 꿈틀거리게 한다. 마스터스 오브 로마 1부 《로마의 일인자》의 문장은 살아 숨쉰다. 로마인들의 돈과 권력을 둘러싼 기득권 세력과 그 체제에 대항하는 신진 세력 간의 암투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1부는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술라를 주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천민 출신의 마리우스는 귀족으로 상승하는 데 성공했지만, 근본 없는 혈통이 그 인생의 발목을 잡았다. 자신에 대한 잡음을 잠재우려면 자신을 드높이게 하는 권위의 정당성이 필요했다. 마리우스는 파트리키(구 귀족) 출신 원로원 의원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첫째 딸 율리아와 정략결혼을 한다. 이로써 그는 관직의 사다리에 오르는 기회를 잡았다. 그의 눈앞에 원로원으로 향하는 문이 활짝 열려 있다. 귀족 출신이었으나 자신의 미래가 불투명했던 술라도 운 좋게 카이사르 가문과 관계를 맺어 원로원 세계에 진입한다.

 

일부 독자들은 마리우스와 술라의 이야기만 봐도 로마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돈의 위력은 로마를 쥐어 잡을 정도로 실로 어마어마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로마를 단순히 돈의 제국 또는 욕망의 제국으로 단정할 수 없다. 권력자들의 이야기만 쫓아가면 이 소설의 또 다른 재미를 놓친다. 우리는 《로마의 일인자》를 읽음으로써 특별한 교훈을 얻으려고 한다. 로마의 권력형 비리와 정경 유착은 우리나라 사회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시대를 초월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확인한다. 하지만 나는 《로마의 일인자》를 돈과 권력 앞에서 조종당하는 인간의 헛된 욕망을 반성하도록 이끄는 반면교사로 삼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반성? 어림없는 소리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교훈을 되새기는 마음은 좋다. 그렇다고 역사소설을 읽는데도 미래를 위한 교훈를 찾아내야 하는가. 이건 역사소설을 지루한 역사 교과서로 만드는 뻔하고도 너무 진지한 발상이다.

 

《로마의 일인자》의 주연은 마리우스와 술라가 아니다. 이 장대한 드라마 속에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서브 주연’이 있다. ‘마스터스 오브 로마’의 《로마의 일인자》 부문 여우주연상을 뽑으라면 율리아, 율릴라 자매를 공동 수상자로 선정하겠다. 이들이 없었다면 《로마의 일인자》는 남자 냄새만 풀풀 나는 ‘남자들의 이야기(History)’가 될 뻔했다.

 

율리아와 율릴라 자매는 각각 이성과 감성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언니인 율리아는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았는데도 곧 쉰을 바라보는 마리우스와 결혼한다. 그녀는 마리우스에게 호감을 느껴서 결혼한다고 말하지만, 그녀의 혼인 선택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준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바로 그녀의 아버지 카이사르다. 카이사르는 가문의 명예를 한 단계 상승하고 유지하려고 신진 귀족 세력 마리우스를 끌어들였고, 권력의 사다리를 올라가고 싶었던 마리우스 역시 그 절호의 기회를 절대로 놓칠 리가 없었다. 두 사람은 율리아 몰래 정략결혼 준비에 착수했다. 《로마의 일인자》 1권에 카이사르와 마리우스는 자신들이 서로 원하는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 확인한 뒤에야 정략결혼에 대해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다. 카이사르는 두 아들의 출세를 위해 딸을 마리우스에게 팔아넘기고, 마리우스는 자신의 출세를 위하여 귀족의 딸을 소유하는 꼴이 된다.  

 

《로마의 일인자》 1권에 남긴 어떤 독자서평에서는 이 장면이 너무 작위적이라고 지적했다. 그건 로마 사회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무지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로마인들은 우리처럼 사랑을 전제로 결혼하지 않았다. 그들은 결혼을 개인의 입신양명, 더 아나가 사회에 책임지는 로마인들을 생산하는 의무로 여겼다. 특히 로마 여성들은 자신이 원하는 남편을 만나 결혼할 권리가 없었고, 가장이 고른 신랑감을 만나야 했다. 그 순간부터 여성의 보호자는 가장에서 남편으로 바뀐다. 이제 남편을 뒷바라지하고, 자녀를 재생산하는 존재로 살았다. 그녀들은 남편에 대한 사랑하는 감정을 함부로 표출할 수도 없었고, 거리 밖에서 손을 잡을 수도 없었다. 로마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품위 유지를 강조했다. 그래서 율리아는 집정관 자리에 오르기를 원하는 남편만 바라보고, 남편을 향한 애틋한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는 듯한 태도를 유지한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남성중심 사회 체제 속으로 편입시킨다.

  

반면에 그녀의 동생 율릴라는 남성중심 사회 체제에 거부감을 드러낸다. 그녀는 언니와 다르게 감성적으로 생각한다. 술라를 너무 좋아해서 그에게 사랑의 징표와 같은 풀잎관을 건네준 사실이 발각되자 부모는 화를 낸다. 심지어 그녀의 어머니는 율릴라가 가족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면서 심한 말까지 한다. 이건 매컬로가 일부러 과장해서 만든 설정이 아니다. 그녀는 로마 시대에선 지극히 정상적인 장면을 아주 실감나게 묘사했다. 결혼하지 않은 처녀는 부모 동의 없이 남자와 교제할 수 없고, 결혼도 못했다. 키스와 성관계마저도 용납하지 않았다. 남성이 지배하는 로마 사회에서 여성들은 정숙함(pudicitia, 푸디키티아)을 유지해야 로마인으로 대접받을 수 있었다. 정숙하지 못한 여성은 개차반 취급을 받게 되고, 심하면 가족들의 손에 죽게 된다. 일종의 명예 살인이다. 율릴라는 운 좋은 편이다. 카이사르의 나이가 조금만 젊었으면, 가장의 권한으로 율릴라의 삶을 강하게 통제했거나 죽였을 것이다. 술라는 그녀의 가벼운 행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틈만 나면 포도주를 마시고, 자신의 몸을 쓰다듬어서 애정을 갈구한다. 지금 시대라면 율릴라의 욕구 불만이 이해되나, 로마 세계에서는 풍기문란을 일으키는 일탈 행위로 규정되었다. 포도주를 마시는 여자는 문란하게 인식했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애정 어린 스킨십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이 드라마에서 율리아와 율릴라는 비운의 여주인공들이다. 율리아가 율릴라보다 행복해 보인다고? 천만의 말씀. 율리아가 지적이고 현명한 여자라고 해도 그녀는 남성을 복종하고,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는 수동적인 여성일 뿐이다. 과연 율리아의 사랑은 진실일까? 그녀 또한 고결한 여성으로서의 존재감으로 돋보이려고 마리우스를 선택했을 수도 있다. 반면에 율릴라는 술라로부터 애정을 받지 못하게 되자 화려했던 외모의 빛이 점점 사라진다. 그녀는 혼자 포도주를 홀짝거리면서 흐느껴 운다. 이미 아버지의 깐깐한 통제를 지겨웠던 그녀는 남편의 통제마저 감당하지 못한다. 그녀 곁에는 고통을 이해해주고,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어째서 여자들은 절대로 자기가 할 일을 직접 선택할 수 없는 거야?” (《로마의 일인자 2》 38쪽)

 

가슴에 성난 열정을 품은 율릴라가 고작 할 수 있는 건 자신을 고립하게 하는 남성들의 벽을 향해 아우성을 치는 것뿐이었다.

 

매컬로는 자신의 출세작 《가시나무새》를 능가하는 불후의 걸작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에게 로마를 종이에 복원하는 일은 형벌과도 같았다. 매컬로는 남성들이 만든 거대한 제국의 울타리 속에서 갑갑하게 지내야만 했던 로마 여성들의 삶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개인의 삶을 보장받지 못했던 로마 여성들이 처량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매컬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로마 여성들의 삶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종이 위에 자신의 감정들까지 쏟아부었다. 그것이 바로 흐느껴 우는 여인의 눈물, 그리고 성난 열정의 외침이었다. 고맙게도 매컬로는 로마 남자들의 이야기 속에 파묻힌 여성들의 진짜 목소리를 되살렸다. 이런데도 어딜 감히 매컬로에게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찬양하는 시오노 나나미를 비비려고 하는가. 단지 로마를 소재로 역사소설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매컬로를 남성 영웅을 예찬하는 작가로 이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로마는 영웅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로마의 일인자》는 로마를 좋아하는 남성들을 위한 소설이 아니다. 조금은 불편해도 여성들이 이 소설을 읽었으면 한다.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의 작동 원리를 볼 수 있다. 페미니즘에 관한 독서에 관심 많은 누님들에게 추천한다. 이 소설 속에 페미니즘이 보인다.

 

 

 

 


※ 딴죽걸기

 

 

* 「굳어 있던 술라의 심장이 깨어났다. 느긋하게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하면서 깨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갑자기 세상과 맞닥뜨린 기분에 휩싸였다. 제우스의 이마에서 완전히 자라고 무장까지 갖춘 아테나 여신이 클라리온을 불며 튀어나왔던 것처럼.」 (《로마의 일인자 2》 318쪽) 

 

제우스와 아테나는 그리스식 표기다. 로마식으로 제우스는 유피테르, 아테나는 미네르바로 써야 한다.

 

 

* 이 글은 해당 도서 서평 이벤트 참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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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호 2016-03-04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싶다 시험합격후에

cyrus 2016-03-05 09:02   좋아요 0 | URL
합격하기를 기원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6-03-04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온지 꽤 된 책인데 서평 이벤트가 좀 늦네요. ^^

cyrus 2016-03-05 09:05   좋아요 0 | URL
책이 나오자마자 동시에 서평대회가 진행되는 경우는 흔치 않아요. 저는 운이 좋은 편입니다. 이미 서평을 썼었으면 책을 다시 읽고, 서평을 작성했을 겁니다. ^^;;

책한엄마 2016-03-07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마를 작가 시각으로 각색한 책인가봐요.재미있을 것 같아요.시오노나나미와 비교하면 더 재미있을까요?^^

cyrus 2016-03-05 09:12   좋아요 1 | URL
작가가 로마 역사 관련 자료들을 참고하면서 글을 썼다고 합니다. 이야기 전개를 위해서 사실과 다르거나 작가가 가공한 설정이 있긴 합니다만 재미있게 글을 잘 썼습니다. 나나미는 소설을 써놓고선 자신을 역사가라고 생각하죠. 그녀의 책에 오류가 몇 개 있던데 애초에 소설로 썼다면 욕을 덜 먹었을 겁니다.  꿀꿀이님 말씀을 듣고 보니 나나미의 책도 읽어보고 싶어져요. 매컬로의 소설과 제대로 비교해봐야겠어요. ^^

비로그인 2016-03-05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대의 그리스와 로마의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하죠. ;^^

cyrus 2016-03-05 12:07   좋아요 0 | URL
북플 이웃님들이 매컬로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습니다. ^^

transient-guest 2016-03-05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거 사놓고 나중에 다 완성되면 읽으려고 기다리고 있어요. 꼭 교훈을 얻지 않더라도 그저 재미있는 책을, 또는 잘 만들어진 책을 즐길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제 서평이랄까, 후기랄까, shallow한 이유 내지는 변명이 되겠습니다.ㅎㅎ 저는 언제 이런 멋진 글을 남길 수 있을까요?ㅎㅎㅎ

cyrus 2016-03-05 12:09   좋아요 0 | URL
서평대회 상금 받으려고 `보여주기`식으로 쓴 글입니다. 과분한 말씀입니다. ^^;;

시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편이 얼른 나왔으면 좋겠어요. ^^

목나무 2016-03-05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의 변화>라는 다큐를 봤었는데 사랑으로 맺어진 결혼의 역사는 몇 백년 밖에 안 되었다고 하더군요. 님의 리뷰를 읽다가 문득 이 부분이 생각났어요.
저 역시 처음에는 마리우스와 술라를 중심으로 읽어나가기 시작했는데 제가 여자라서 그런가 이야기가 더할수록 서브인물 특히나 율리아와 율릴라 자매에 관심이 가더라구요. 술라의 주변 여인들에도 관심이 가고...후반분에 등장하는 카이사르의 아내에게도 관심이 가고....
제가 지금까지 읽은 최고의 역사소설입니다. (물론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

cyrus 2016-03-05 22:25   좋아요 0 | URL
고대 로마뿐만 아니라 중세,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도 신분이나 지위 상승을 위한 결혼이 성행했어요. 지난주부터 <로마의 일인자>와 <풀잎관> 독자서평을 읽어봤습니다. 예상대로 마리우스와 술라 같은 남성 인물들에 대한 평이 가장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설을 읽었을 때 여성 인물들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여성 작가가 로마 여성들의 삶을 어떻게 그렸는지 궁금했어요. 역시 그녀들의 삶 또한 흥미진진했습니다. 이 소설이 시오노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보다 먼저 나왔는데도 인지도가 밀렸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습니다. ^^

2016-03-05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5 2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6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6 18: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03-05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ㅋ.
난 1권을 사 놓고 아직 읽어 보지도 못했다.
나도 진작 서평대회 알았으면 어떻게든 덤볐을 텐데..
이병주가 그런 말을 했군. 기억해야겠어.
콜린 맥컬로우 대단한 사람 같아.
<가시나무새>도 다시 읽어보고 싶고...ㅠ

cyrus 2016-03-05 22:40   좋아요 0 | URL
솔직히 말하면 서평대회가 열지 않았다면 전 이 책을 안 읽었을 거예요. 생각보다 이야기가 재미있어요. 흡입력 있는 소설을 오랜만에 만납니다. ^^

CREBBP 2016-03-06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의 억압적인 측면에서 봐도 정말 이야기 거리가 풍부하군요. 저도 사 놓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아직도 1편까지만 읽었는데 리뷰대회 덕분에 리뷰만 돌려 읽어도 다시 슬금슬금 불이 붙는 것 같습니다 당장 읽어야겠어요.

cyrus 2016-03-07 22:06   좋아요 0 | URL
나머지 마스터스 오브 시리즈가 더 일찍 나왔더라면 기세를 몰아서 끝까지 읽었을거예요. 《풀잎관》에서 이야기가 멈추는 것이 정말 아쉬워요. 3부가 나올 때까지 다른 로마 관련 서적을 읽어봐야겠습니다.

에이바 2016-03-06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았던 건 스쳐가는 인물 하나하나에 스토리가 있단 거였어요. 예를 들어 아우렐리아의 몸종 카르딕사라던가 마리우스의 첫번째 부인 그라니아도 캐릭터 배경이 있어서 좋았어요. 저는 아우렐리아와 리비아 드루사에게 여주상을 주고 싶어요. 특히 리비아는 2부 풀잎관에서 더 대단하거든요. 저는 율리아는 현숙한 파트리키 여성상을 구현한 그 자체라고 봤고요, 율릴라는 자기 절제가 안 되는 충동적인 인물로 봤어요. 시대상을 고려하면 아버지 카이사르가 너무 오냐오냐 키운 것 같았는데 의견이 좀 다르네요 ㅎㅎ 전 현대판 율릴라는 왜 조울증을 앓는 연예인이라 스케줄 펑크에 스캔들에 매니저가 진땀흘리는 모습 그런 상상을 했어요 ㅋㅋㅋ

cyrus 2016-03-07 22:11   좋아요 0 | URL
언니가 거의 완벽한 여인으로 나와서 그런지 율릴라는 항상 뭔가 부족하고 언니보다 못한 존재로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그라니아 너무 불쌍하지 않던가요? 사실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그녀에 대한 언급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율리아, 율릴라 자매에 관한 이야기에 치중해서 그만 놓치고 말았습니다. 더 쓰고 싶은데 분량이 길어질까봐 포기했습니다. ^^

레삭매냐 2016-03-07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서평대회... 탐은 났지만 실력도 안되고
뭐 그래서 그냥 패스했습니다.

요즘 그냥 재밌게 책읽기가 좋아서요.

존 반빌의 <신들은 바다로 떠났다> 다시 읽고
있습니다. 지난 가을에 읽다가 접었는데
다시 보니 생각보다 재밌네요 :>

cyrus 2016-03-07 22:14   좋아요 0 | URL
상금, 적립금이 걸린 서평대회를 알게 되면, 좋은 글 한 편 쓰려고 평소 글쓰는 날보다 생각이 많아집니다. 그래서 하루 날 잡아서 다 작성하고나면 피곤합니다. 다음 날에 책이 눈에 안 들어오고, 기록하는 것도 귀찮아져요. ^^;;

yamoo 2016-03-07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가시나무새>를 괜히 처분했구나...ㅜㅜ
이병주 산문집도!!ㅜㅜ

cyrus 2016-03-07 22:15   좋아요 0 | URL
저는 《가시나무새》의 명성만 들었지, 아직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

서니데이 2016-03-07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오늘도 퀴즈 준비합니다.^^

cyrus 2016-03-07 22:19   좋아요 1 | URL
오늘 같이 날씨 좋은 날에 하필 예비군 훈련이 있어서 하루종일 엉뚱한 곳에서 봄바람을 맞았습니다. 몸이 피곤해서 그런지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네요. 편안한 밤 보내세요. ^^

비로그인 2016-03-14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롤리팝에서 알파벳으로 바꿨습니다.
cyrus님 좋은 하루되세요.

cyrus 2016-03-14 22:16   좋아요 0 | URL
저는 예전 닉네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막심 고리키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기가 끔찍이 싫어했을 것이다. 고리키는 필명이다. 원래 ‘고리키(Горький)’는 ‘불쌍한, 고통스러운’을 뜻하는 단어다. 세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와 함께 외가에서 자랐다. 그러나 어머니는 재혼하면서 아들을 남겨둔 채 홀로 떠나고 말았다. 홀몸 신세가 된 고리키는 가난의 현실을 스스로 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학교를 중퇴하고, 러시아 전역을 떠돌면서 접시닦이, 제빵사, 구두수선공, 심부름꾼 등 다양한 일을 했다. 고리키는 자신의 어린 시절의 경험을 소재로 소설을 썼다. 그의 초기작들은 하층민이나 부랑자들이 주인공이다. 그래서 고리키 초기 문학을 ‘부랑자 문학’으로 부르기도 한다.

 

 

 

 

 

 

 

 

 

 

 

 

 

 

 

 

 

※ 『마카르 추드라가 수록된 번역본

 

소녀와 죽음(소담출판사, 1996)

고리끼, 그 영혼의 여행(거송미디어, 1999)

아침을 기다리는 사람들(맑은소리, 2003)

고리키 단편선(범우사, 2004)

고리키 단편집(지만지, 2012)

어머니 / 밑바닥 / 첼카쉬(동서문화사, 2014)

 

 

『마카르 추드라』는 ‘고리키’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리게 한 처녀작이다. 마카르 추드라는 오랜 세월 동안 떠돌면서 많은 일을 해본 늙은 집시다. 비록 흰머리가 희끗희끗해지고 몸이 쇠약해진 노인이지만, 자유가 선물한 삶의 기쁨을 잊지 못한다. 추드라는 화자인 젊은이에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로이코 조바르의 삶을 들려준다. 조바르는 자유를 인생의 최고 가치로 내세우면서 살아온 젊은 집시였다. 모험심이 강했고, 바이올린 연주 실력이 뛰어났다. 집시 동료들 사이에서 조바르의 존재감은 더욱 빛이 발했다. 그러나 자유로운 삶을 만끽하면서 살아온 조바르는 도도한 집시 처녀 랏다를 만나 한 눈에 반한다. 랏다의 아름다운 미모는 혈기왕성한 집시 남자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조바르의 뜨거운 심장도 그녀 앞에만 서면 주체하지 못했다. 조바르는 용기 있게 랏다에게 청혼해보지만 거절당한다. 랏다는 자신이 조바르의 구애를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조바르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명령한다. 조바르는 자신의 삶 절반이라 다름없는 자유를 포기하고 한 사람만 바라보는 사랑을 선택한다. 그러나 조바르는 자유를 스스로 포기한 비굴한 태도가 부끄러워 참지 못한다. 결국, 다음 날에 자신의 삶을 속박하려는 랏다를 죽인다. 자신의 딸이 죽어가는 장면을 목격한 랏다의 아버지는 단검으로 조바르의 심장을 찌른다. 자유와 사랑을 꿋꿋하게 지향하던 두 젊은 남녀는 같은 날에 허무한 최후를 맞았다. 추드라는 자유과 사랑 사이의 갈등에 시달린 조바르의 사례를 들려주면서 사랑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젊은이에게 충고한다.

 

 

 

 

 

 

 

 

 

 

 

 

 

 

 

 

 

 

 

추드라는 텍스트 밖에 있는 독자들 앞에서도 힘껏 목소리에 힘을 실어 넣는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노예가 된다. 그러니까 이곳저곳 세상을 돌아다녀 보고, 실컷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라고 말한다. 추드라에게 조바르는 커다란 자유의 광맥 같은 존재다. 그러나 추드라는 자유와 사랑 앞에서 갈등하는 조바르의 태도에 실망한다. 추드라처럼 온갖 풍상을 다 겪어 본 알렉시르 조르바라면 조바르의 죽음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는 자유인들을 욕되게 하는 수치스러운 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거친 말을 툭툭 내뱉는 야생인답게 조바르를 무시하는 조르바의 모습이 상상된다. 아마도 조르바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젊은 사내 녀석이 여자 한 사람 때문에 빌빌거리다가 개죽음당하다니, 한심스럽기 짝이 없소. 두목. 적어도 나 같았으면 하룻밤 동안 그녀의 몸을 기쁘게 해주고 다음 날 아침에 당장 떠났을 것이오. 그 녀석은 자유가 뭔지 모르는 얼뜨기에 불과하오. 병신 같은 놈.”

 

 

자유를 염원하던 조바르는 자유를 누릴 자격을 쉽게 포기해버리고, 자신의 자유를 유보한다. 결국 조바르 또한 조르바와 동행하는 ‘두목’과 비슷한 유형의 인간이다. 현실(랏다와의 사랑)에 갇혀 있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감히 떠나지도 못하는 상황에 부닥친다. 랏다 앞에서 무릎을 꿇는 순간, 자신이 세워놓은 자유로운 세계가 와르르 무너졌을 때 무척 괴로웠을 것이다. 그래서 『마카르 추드라』의 결말은 모호하다. 젊은 화자는 추드라의 충고를 긍정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침묵은 《그리스인 조르바》의 두목이나 늘 조르바를 열망하기만 하는 독자들의 착잡한 심정과 동등하게 이해할 수 있다. 현실과 자유 사이의 만날 수 없는 간극이 『마카르 추드라』의 밑바닥에 어떤 막연한 슬픔으로 풍경처럼 깔렸다.

 

삶의 목적을 향해 쉬지 않고 달리는 자에게 자유는 아직 바람의 대상일 뿐이다. 우린 문자로 세운 ‘자유로운 세계’가 허상인 것을 번번이 확인하면서도 그 세계의 높은 문턱을 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도 조르바를 찾는다. 손발에 묶인 현실의 사슬을 풀어달라고 조르바에게 간곡하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조르바마저 현실의 노예들을 구원하지 못한다. 인간은 단순한 동물이다. 로이코 조바르처럼 자유를 행하려는 의지를 뒤흔드는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자유는 여전히 먼 곳에 있고, 여전히 열망의 단어다.

 

 

 

 

* 덧붙이기

 

 

 

 

 

 

 

 

 

 

 

 

 

 

 

 

 

 

그리스를 대표하는 자유로운 영혼이 조르바라면, 그에 걸맞은 러시아의 자유로운 영혼으로는 첼카쉬가 있다. 첼카쉬는 고리키의 동명 단편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첼카쉬는 떠돌이 도둑이지만, 거칠 것 없는 자유를 사랑하면서 살아간다. 카잔차키스와 고리키는 조르바와 첼카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도둑이나 부랑인 같은 비천한 사람들도 긍정적인 자유의 본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고리키의 또 다른 단편소설 『이제르길 노파』는 『마카르 추드라』와 유사한 플롯을 보여준다. 화자에게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상의 성별이 다를 뿐, 이제르길 역시 추드라, 첼카시처럼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이제르길 노파는 자신의 젊은 시절 경험담을 들려주면서 그 때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녀의 모습은 《그리스인 조르바》의 오르탕스 부인과 닮았다. 오르탕스 부인은 늙은 창녀지만, 젊었을 때 남자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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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3 2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3-04 19:34   좋아요 1 | URL
좋은 말씀입니다. 비록 이상에 도달하지 못해도 후회없이 노력했으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북깨비 2016-03-04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집에 안 읽은 책이 한가득이라 일단 보관함에 두었습니다. Cyrus님 덕분에 또 흥미로운 작가를 알게 되서 (언제 읽게 될 지는 모르지만) 너무너무 설레요. :-)

cyrus 2016-03-04 19:35   좋아요 0 | URL
생각날 때 읽으셔도 좋습니다. 남들 따라서 억지로 책을 읽으면 체합니다. ^^

서니데이 2016-03-04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오늘도 퀴즈 준비합니다.

cyrus 2016-03-04 20:44   좋아요 1 | URL
주말 잘 보내세요. ^^
 

 

 

 

 

수식 없이 이해하는 상대성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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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느세표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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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3-03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쓰시는 분들의 서평 기대 하겠습니다^^..

cyrus 2016-03-03 17:32   좋아요 1 | URL
저도 이번에 신청하고 싶은데, 참여인원 수가 10명이라서 당첨되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

스텔라 2016-03-03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어려울것 같아서 저는 엄두도 못 내겠습니다.^^ 좋은 서평 기대하겠습니다~~

레삭매냐 2016-03-03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도전해 보고 싶으나,
어려운 책일 것 같아 쉬엄쉬엄 가려고 패스합니다.

사실 과학 관련 서적은 여엉~

마키아벨리 2016-03-03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망설이고 있는 중인데 벌써 많은 분들이 신청하셨더라고요 ㅠㅠ

cyrus 2016-03-03 21:30   좋아요 1 | URL
되든 안 되든 신청해보려고요. 안 되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