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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지구는 대만원 1 - SciFan 제43권 SciFan 43
로버트 블로흐 / 위즈덤커넥트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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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신인류’라는 말이 유행한 것은 1990년대 초반일 것이다. 1993년에 나온 015B 4집의 타이틀곡 <신인류의 사랑>이 없었으면 평소에 ‘신인류’라는 말을 사용하는 상황이 없을 것이다. 노래 제목은 거창하게 ‘신인류의 사랑’이라고 했지만, 여기서 말하는 ‘신인류’는 ‘신세대’를 의미한다. 시간이 흘러 신세대는 나이 많은 ‘쉰 세대’, 즉 구세대가 된다. 그러나 신인류가 단순히 구습을 벗어나 기성세대와는 다르게 사고하고 행동할 줄 아는 젊은 세대를 의미하지 않는다. 일탈과 파격으로 구세대에게 충격과 공포를 준 신세대는 인류사가 시작된 이래 그 어느 시대에도 늘 있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인류가 등장하려면 인간의 생물학적 측면에서 ‘진화적 변화’가 진행되어야 한다.

 

진화를 거쳐서 등장하는 신인류라는 소재는 그 성격상 SF 작가들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좋은 영양분이다. 신인류가 사는 SF소설의 미래 세계는 유토피아(utopia)보다는 디스토피아(dystopia)가 많은 편이다. 미래 세계의 모습을 비관적이거나 암울하게 묘사한 작품이 많다. ‘엘로이’‘몰록’이라는 미래의 신인류가 나오는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타임머신》(The Time Machine, 1895)은 디스토피아 소설의 고전으로 꼽힌다. 그런가 하면 유토피아의 신인류를 그린 것인지 아니면 디스토피아의 신인류를 그린 건지 분류하기 어려운 로버트 블록(Robert Bloch, ‘로버트 블로흐’로 표기하는 사람도 있다)《지구는 대만원》(This Crowded Earth, 1958)이 있다. 로버트 블록은 영화가 더 유명한 《사이코》(Psycho, 1959)의 원작자이다.

 

폭발적인 인구 증가로 살기가 어려운 미래의 지구. 푸른 별에 거주하는 인구의 수가 1,000억 명에 이른다. 좁아 터지는 지구의 모습이 상상이 안 된다면 우리나라 전 지역의 모든 지하철의 통근 길을 ‘지옥철’로 상상해보시라. 해리 콜린스는 인구 초과 밀집 도시에 생활하는 삶을 견디지 못해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고 레핑웰 박사의 주도로 설립된 심리 치료 센터에 입원한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이 정부의 실험 대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심리 치료 센터의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지구는 대만원》은 여타 SF소설들과는 다르게 기묘한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많은 SF 작가들은 과학기술에 맹신하는 인류의 미래가 어두울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지구는 대만원》은 그 클리셰(Cliché)를 살짝 거부한다. 이 소설에 나오는 신인류는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 덕분에 수명을 멈추게 하는 장애물이 없는 장밋빛 삶을 살고 있다. 그야말로 질병이 없고, 전쟁도 일어나지 않은 완전 평화의 시대이다. 하지만 전 인류의 무한한 번식과 수명 연장은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이어지고, 완벽해 보이는 평화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내부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는 일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구 조절 정책을 내놓는다. 여성은 임신할 때마다 호르몬제 주사를 맞아야 한다. 호르몬제 주사를 맞은 아이는 다 성장해도 난쟁이로 살아야 한다. 난쟁이들의 수명이 짧기 때문에 인구가 번식해도 인구 증가 문제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 정책이 실현되면서 난쟁이의 수가 정상인의 수를 넘어선다. 호르몬 주사를 거부한 키가 큰 정상인은 정부가 강요하는 진화를 거스르는 불순 세력으로 낙인찍힌다.

 

《지구는 대만원》은 단순히 인류의 어두운 미래를 그리지 않는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신인류의 복잡다단한 감정을 섬뜩할 만큼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 소설은 해리 콜린스가 자살을 시도하는 시점인 ‘현재’를 시작으로 65년 후의 미래까지 보여준다. 65년이라는 짧으면서도 긴 세월 동안 해리 콜린스를 비롯한 신인류는 정부의 통제에 의해 진행되는 진화의 흐름 앞에서 전전긍긍한다. 이 소설에 실려 있는 12개의 이야기는 저마다 사연이 있는 인물들(윈드롭 대통령, 미니 슐츠, 마크 카벤디시, 에릭 도노반, 제시 프링글, 리틀존 등)의 등장과 가볍지 않은 문제의식(정부와 과학의 은밀한 결탁,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부의 통제, 생명 윤리, 인종 차별 등)을 통해 인류의 미래를 다양한 각도에서 그려내고 있다.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의 중간 경계에 서 있다. 전염병, 기아, 전쟁에 대한 근심이 사라진 지구는 유토피아에 더 가깝지만, 인구 증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윤리적인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인류가 사는 지구는 디스토피아다. 이상적인 세계이건, 아니면 암울한 세계이건 간에 과학기술 자체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크게 영향을 주즌 것이 아니다. 과학기술의 혜택을 누려왔던 우리가 인류 문제를 과학 기술에 책임 전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잘 살고 싶은 인간의 본능적 욕망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인간의 욕망을 한결같다. 삶의 욕망을 멈추지 못한 인류는 장밋빛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선택을 한다. 그런 만큼 《지구는 대만원》에 묘사된 인류의 미래는 구체성과 현실성을 지닌다. 사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상은 급속도로 변화하는 사회 환경이 아니라 어느 틈엔가 달라져버린 우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의 욕망이 숨 가쁘게 우리의 세상을 변모시키고 있는 것이다. 변화에 잘 적응하는 누구는 미래가 유토피아로 보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누군가의 미래는 디스토피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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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6 15: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0-27 13:47   좋아요 1 | URL
인구 절벽 현상을 소재로 한 SF작품이 나오면 어떻게 묘사될 지 궁금해요. 거시적인 예상 시나리오를 신문에 본 적이 있어도 미시적인 예상 시나리오를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

sprenown 2017-10-26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뜩한데요..차라리 지금 우리나라 저출산상황이 다행이다 싶을 만큼.^^

cyrus 2017-10-27 13:48   좋아요 1 | URL
늙은이들만 있는 나라도 끔찍해요. 늙어서도 일을 해야될껄요.. ㅎㅎㅎ

겨울호랑이 2017-10-26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015B 노래 나왔을 때 신세대였다가 지금은 구세대로 나아가는 중입니다 ㅋㅋ

cyrus 2017-10-27 13:49   좋아요 1 | URL
저도 구세대입니다. 015B 노래가 빼빼로 CM송으로 사용했던 것도 기억해요.. ^^

이하라 2017-10-26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f소설들은 미래에 대한 기대도 걱정도 만들어내니 요물 아닌 요물이네요^^;;

cyrus 2017-10-27 13:50   좋아요 0 | URL
좋은 표현입니다. 그게 바로 SF의 매력이죠. ^^

transient-guest 2017-10-27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신인류‘라는 표현이 일본에서 온 것 같습니다. 일단 앞서 ‘새로울 신‘자를 붙이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80년대 중후반에 번역해서 들여온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집이나 일본사회현상을 진단하는 책들이 당시 젊은이들을 ‘신인류‘라고 표현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SF는 다양한 모습의 미래를 보여주면서 현실을 투영한다는 얘길 본 것 같습니다. ‘지구는 대만원‘에서 그려지는 세계도 혹시 지금 우리의 모습이 우화적으로 그려진 건 아닌가 생각해봤습니다.

cyrus 2017-10-27 13:51   좋아요 0 | URL
《지구는 대만원》 1부에 인구가 넘치는 도시 풍경 묘사가 나옵니다. 요즘 도시의 풍경과 분위기가 조금 비슷해요.

Jeff 2018-05-20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즈덤커넥트쪽 번역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소개해주신 작품 말고 몇개를 봤는데 집단 번역이라 작품별 퀄리티가 보장안되고 글이 딱딱하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cyrus 2018-05-23 15:40   좋아요 0 | URL
위즈덤커넥트에 나온 전자책을 많이 읽어보지 않아서 번역의 질에 대해서 의견을 내기 어렵네요. 그런데 제가 읽었던 위즈덤커넥트 전자책 중에는 비문과 오자 몇 군데 보였습니다.
 
[eBook] 지구는 대만원 2 - SciFan 제44권 SciFan 44
로버트 블로흐 / 위즈덤커넥트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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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대만원》 리뷰 : http://blog.aladin.co.kr/haesung/9673824



※ 오식

* ˝만약 그게 마음에 안 든다면, 자연주의자들에게로 가명 돼.˝ (1권 138쪽)

* 레핑웰읭 방법 (1권 147쪽)

* 헬리콥터을 타고 (2권 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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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신을 찾는 짧은 여행 SciFan 33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 위즈덤커넥트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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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체 게바라)

 

 

 

바이킹족은 거대한 뱀이 우주를 똬리 틀고 있다고 믿었다. 고대 이집트인은 사자 머리의 신이 하늘을 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래전, 고대에 살았던 사람들도 우주에 대해 나름대로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들은 신의 말씀에 의지했고,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바라보면서 점성술로 미래를 알아내려고 했다. 오늘날 인간은 ‘과학’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통해 우주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그러나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에는 궁극적으로 한계가 있다. “우주에 정말로 우리뿐이라면, 이 공간은 엄청난 낭비일 것이다.” 칼 세이건의 이 말은 우주 어딘가에 살고 있을 지적인 존재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되어 있다. 의미심장한 말이기는 하지만 세이건도 고대 우주관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인간의 이성과 과학의 한계성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겸손의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제프 윌리엄스라는 미국의 우주인은 우주를 여행할 때마다 신의 존재를 더욱 확신하게 된다고 말했다. 과학이 궁극적으로 정밀해진다고 해도 우주에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차원이 존재한다.

 

레이 브레드버리의 단편소설 《신을 찾는 짧은 여행》(원제: A Little Journey)은 우주라는 공간적 의미를 통해 인간의 존재와 삶의 조건을 탐구한 작품이다. 아흔을 바라보는 벨로위 부인은 신에게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서 터켈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화성 왕복 여행을 신청한다. 터켈 화성 왕복 여행에 신청한 사람들은 벨로위 부인의 나이와 비슷한 칠순, 여든이 넘은 노부인이다. 이들은 화성 여행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터켈은 우주에 한 번도 여행해본 적이 없는 사기꾼이었다. 그가 화성에 가면 신을 만날 수 있다고 홍보한 것도 거짓말이었다. 또 터켈이 마련한 우주선은 사용 불가능한 고철 덩어리였다. 터켈은 우주에 신이 있다고 믿는 부인들이 어리석다고 화를 내지만, 벨로위 부인은 터켈에게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차분하게 알려준다.

 

 

“당신이 우리에게 약속한 것들은 아주 훌륭하고 매력적인 것들이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생각 중 하나였어요. 우리가 신에게 실제로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스스로를 속인 것이 아니에요. 그것은…‥ 마치…‥ 사람들의 말도 안 되는 꿈이었어요. 아주 오래된 꿈 말이에요.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은 생각하고 기대려고 애쓰는 그런 종류의 꿈이었다고요.”

 

 

벨로위 부인은 ‘훌륭하고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그렇지만 말도 안 되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우주선에 탑승한다. 그녀의 설득에 부인들도 우주선에 타기로 결심하고, 터켈은 처음으로 우주선 조종기를 만져 보게 된다. 과연 벨로위 부인의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인간들은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어떤 이들은 과거에 우주의 중심이었던 신을 찾으려고 한다. 우주에 신도 없고 다른 어떤 지적인 존재도 없다면, 우주는 텅 빈 집처럼 쓸모없는 공간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인간은 지구에 갇혀 사는 존재이므로 지구라는 경계를 넘어 지구 밖 세상으로 넘어갈 수 있는 자유를 갈망한다. 인간은 우주에서 합리적이고 실질적인 것을 찾으려고 하지만 우주는 공허하고 침묵할 뿐이다. 수직으로 상승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끝나는 지점인 우주에서 세상을 내려다본다면 수평 공간(지구)에서 알 수 없었던 특별한 경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우주 속 인간은 극히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다. 그리고 우주에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무슨 꿈이든 간에 현실의 관성을 넘어서려는 인간의 도전은 위대하고 아름답기만 하다. 자신의 꿈을 당당하게 밝힌 벨로위 부인의 모습을 보게 되면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고 외치던 체 게바라의 말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체 게바라의 말처럼 진정한 리얼리스트란 눈앞의 현실뿐 아니라 불가능한 꿈까지 담아야 한다. 반전의 희망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도 벨로위 부인의 가슴속에는 뜨거운 꿈의 기운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리얼리스트였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불가능한 꿈’을 꾼 멋진 사람이다. 《신을 찾는 짧은 여행》은 꿈꾸는 자를 위한 아름다우면서도 비극적인 한 편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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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모르텔 2017-10-18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성에서 전생에 살았다는 아이, 보리스카가 문득 떠오르네요.
체 게바라 사진들을보면 그 시가를 한번 피워보고 싶어요.,ㅎㅎ

cyrus 2017-10-18 12:34   좋아요 0 | URL
저는 비흡연자이지만, 시가를 문 남자를 보면 간지나게 느껴져요. ^^
 
일러스트레이티드 맨 - 문신을 새긴 사나이와 열여덟 편의 이야기 환상문학전집 35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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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설을 읽으면 잠시 책을 덮고,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힌다. 피가 솟아오르는 흥분을 멈추고 나면 가슴속에 뜨거운 무엇이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가 이 이미지가 넘쳐흐르는 시대에 문학이라는 지푸라기를 잡고 있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요즘처럼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 언어 텍스트가 주는 재미를 느끼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그렇다고 영상 텍스트가 주는 감동이 문학보다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문학이 마음속에 단단한 무엇이 자리 잡게 해준다면 영화는 우리 마음을 어떤 방식으로든 슬쩍 쓰다듬고 간다. ‘미디어는 마시지다(The Medium is the Massage)’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이 의미심장한 말을 꺼낸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은 미디어는 인간 능력의 확장이고 미디어는 인간 오감을 어루만지면서 애무한다고 말했다. 매클루언이 말하는 미디어란 신문이나 TV와 같은 언어와 이미지적인 소통뿐 아니라 광고까지 포함한다. 그는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언어적 소통 명제에서 나아가 ‘미디어는 마사지다’라는 신체적 소통 명제로 의미를 확장한다. 미디어가 특정 감각 기관을 연장해주고 강화한다. 그 감각기관의 기능을 관장하는 두뇌에 마사지를 가하게 되며 결국 사고방식, 행동 양식이 달라진다.

 

매클루언은 미디어를 ‘인간(감각기관)의 확장’이라고 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미디어는 인간의 눈, 입, 귀의 역할을 한다. 시간이 좀 지나면 미디어는 손을 뻗어 인간의 촉각을 자극한다. 매클루언에게는 실례가 되는 말이지만, 미디어의 위력을 일찍 먼저 감지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다. 매클루언의 명제가 세상에 처음 알려졌던 시기가 1960년대 초반이다. 브래드버리는 1950년대에 미디어에게 마사지를 받으면서 생활하는 인간의 생활상을 묘사한 단편소설을 썼다. 1951년에 발표된 연작 소설집 《일러스트레이티드 맨(The Illustrated Man)》에 수록된 『여는 글: 일러스트레이티드 맨』『대초원에 놀러오세요(The Veldt)』는 상상 이상의 현실을 만들어내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의 위력을 정확히 내다보고 있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일러스트레이티드 맨’을 우리말로 풀어쓰면 ‘문신을 새긴 사나이’다. ‘사나이’는 한창 혈기가 왕성한 젊은 남자를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소설에 나오는 ‘문신 남자’가 젊다고 보기 어렵다. 문신 남자의 말에 따르면 스무 살이었던 1900년에 서커스단에서 일했으며 불행하게도 일하다가 다치는 바람에 사십 년 동안 일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면 그의 나이는 대략 60대로 추정된다. 문신 남자의 몸에는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문신이 남아 있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나’는 이 불가사의한 문신 남자를 만나면서 몸속에 새겨진 열여덟 편의 이야기를 확인하게 된다. ‘나’는 누운 채로 문신 남자의 몸을 바라본다. 그는 현실감 있는 영상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그가 본 첫 번째 문신에 담긴 이야기가 『대초원에 놀러오세요』다. 이 이야기는 벽에 아프리카 대초원의 풍경이 그려진 아이들의 놀이방이 나온다. 아이들의 부모는 놀이방을 만든 것에 후회한다. 특히 입체 스크린 속에 입을 활짝 벌리면서 포효하는 사자의 모습을 볼 때마다 꺼림칙한 기분을 지우지 못한다. 부모는 놀이방에서 놀기만 하는 아이들이 걱정되어 놀이방을 폐쇄한다. 그러나 가상현실의 마사지에 푹 빠져버린 아이들은 부모의 결정에 반대한다.

 

『콘크리트 믹서(The Concrete Mixer)』는 미디어 시대의 병적인 중독 현상을 풍자한다. 소설의 제목은 영상에 지배되는 현대인의 의식을 상징한다. 이 소설에 나오는 미래의 지구인들은 영화가 흘러나오는 스크린에 지배당한 상태다. 이 기계의 창조주인 지구인은 소유물의 노예가 되어 영화를 생산한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영상 매체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작가이다. 이 작품은 미디어 영상이 지배하는 미래에 대한 작가의 비관적 전망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작품 중 일부는 영화나 TV 드라마로 재탄생되었고, 작가는 자신이 만든 문자 텍스트가 영상 텍스트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봤다.

 

작가는 영상 미디어가 인간의 삶에 깊숙이 침투한 세상을 순순히 인정할 걸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미디어의 긍정적인 효과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일상성을 조물조물 마사지하듯 지배하는 미디어의 힘을 경계한다. 미디어의 마사지에 익숙하면 다른 생각을 가질 여유를 주지 않고, 몰입하게 만든다. 심지어 미디어가 주는 쾌락을 독차지하기 위해 폭력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방문객(The Visitor)』의 최면술사 레너드 마크는 상대방이 보고 싶은 세상을 눈앞에서 재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의 최면술을 경험한 솔 윌리엄스는 최면술사를 ‘소유’하려는 욕심을 느낀다. 레너드 마크는 최면술사가 아니라 ‘영상 전달자’다. 스마트폰은 현대인을 즐겁게 해주는 최면술사다. 지금 그것은 우리에게 최면을 걸고 있다. 중독성이 강한 감각적 자극을 잊지 못한 우리는 스마트폰 화면에 나오는 영상에 눈을 떼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인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언어의 시대 최후의 이야기꾼’이다. 지금처럼 생동감 있는 영상을 보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에 사람들은 그의 재주에 홀딱 넘어가 마치 영화가 눈앞에서 상영되는 것 같은 재미에 흠뻑 빠질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미디어 영상이 언어 대신 현실을 재구성하고, 이제는 미디어 영상이 우리를 매일 즐겁게 해준다. 이야기의 재미가 외면받는 시대 속에 레이 브래드버리는 문학의 설 자리를 다시 마련하기 위해 창작욕을 불태웠다. 영상에 밀려 종이책을 외면하는 이 시대에 미래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미래의 풍경을 자세히 이야기해주는 레이 브래드버리와 같은 이야기꾼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레이 브래드버리의 재능을 반만 닮은 이야기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이 시대의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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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9-27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아주 좋은 책인가 보다. 세계 어떤 영화 감독도 다 책에서 영감을 받았고, 엄청난 독서광이라잖아. 그런 걸 보면 책의 위력은 약화될 수는 있어도 소멸되지는 않을 것 같아. 네가 이렇게 쓰니 이 책 읽고 싶어진다.^^

cyrus 2017-09-27 18:26   좋아요 0 | URL
레이 브래드버리의 단편소설을 드라마로 각색한 프로그램도 있어요. 영어 실력은 안 되지만, 유튜브로 드라마를 보고 있어요. 브래드버리의 단편을 읽어보면 재미있어요. 어떤 이야기는 허를 찌르는 결말이 나오고, 또 어떤 이야기는 감동을 주기도 해요. ^^

북프리쿠키 2017-09-27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디어의 긍정적인 효과를 부정하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사실 미디어 그 자체로서 순기능도 많을건데요. 만약 우리 시대가 미디어의 늪을 벗어날 수 없다면
부정적인 담론만 확대 재생산하여 피하려고만 하는게 좋은 방법일지,
아님 잘 활용하는 방안으로 갈지..
또 다른 길이 있는지...고민해 볼일인거 같네요.
다방면으로 좋은 글 쓰시는 싸이러스님 감사합니다^^;

cyrus 2017-09-27 18:29   좋아요 1 | URL
미디어의 부정적인 문제점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내세우되 미디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말은 쉽지 실제로는 어려운 일이죠. 이미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져서 문제점을 막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미디어의 문제점을 해결한다고해서 미디어 활용을 규제하고 제한하면 역효과가 일어납니다. ^^;;
 
레이 브래드버리 - 태양의 황금 사과 외 31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8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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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예견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것이 있다. ‘우주 개발이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기술력이 뒷받침된다면 달보다는 지구와 환경이 비슷한 화성이 우주개발로는 더욱 매력적이라고 한다. 지구에서 나고 자란 자원을 화성의 토양에 이식하고, 그곳에 세워진 도시에 지구인들이 사는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꿈같은 얘기지만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인간의 화성 이주계획을 착착 진행 중이다. 우주여행을 하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로켓(Rocket)이다. 로켓이라고 하면 우선 미사일(missile)로 대표되는 살상용 무기가 연상된다. 그러나 이런 반인륜적인 도구는 로켓의 기능 중에서도 가장 추악한 사례에 속할 뿐이다. 오늘날 로켓은 우주 개발 사업 발전을 선도해갈 최첨단 고부가가치 기술이다.

     

그런데 먼 훗날에 우주여행이 가능하고, 화성에 정착할 수 있다고 해도 먹고 살기 바쁜 일반인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우주로 향하는 인류의 시대를 동경했던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도 그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브래드버리가 본격적으로 SF를 쓰기 시작했던 4, 50년대나 지금이나 일반인이 로켓을 타고 우주로 갈 가능성은 복권에 당첨될 확률과 같은 엄청난 행운이다. R은 로켓의 R(R Is for Rocket), 로켓(The Rocket / Outcast of the Stars)은 우주여행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단편이다. 하지만 각종 조건에 부합되지 않아 우주여행을 하지 못하는 사람도 나오며(R은 로켓의 R), 로켓을 타는 일은 부자들만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일이라면서 우주여행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로켓). 작가는 서로 상반된 인물을 배치하여 우주여행이 가능한 미래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여준다. R은 로켓의 R의 크리스토퍼의 독백은 곱씹어 볼 만한다.

      

나의 꿈을 생각했다. 달로 가는 로켓. 그 로켓은 더 이상 내 일부가, 내 꿈의 일부가 아니다. 내가 그 로켓의 일부가 될 것이다.

 

(R은 로켓의 R중에서, 275)

      

누구나 어린 시절에 한번쁨은 하늘을 훨훨 날고 우주로 여행하는 꿈을 가진다. 이때 우주와 로켓은 동경의 대상이며 꿈의 일부였다. 하지만 알다시피 모두가 그 꿈을 끝까지 지켜가지는 못한다. 상상 속에서만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실현하게 된 인간은 지구인이 아니라 우주인이 된다. 우주인은 로켓과 우주 일부가 되어 푸르른 지구를 바라보면서 생활한다. 그런데 우주인의 행복은 잠시 순간일 뿐이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크나큰 괴리감은 우주 생활에 적응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완벽한 우주인이 되려면 매일 통제된 일상을 살면서 자신의 감정을 통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어린 시절 우주를 동경했던 순수했던 꿈이 점점 희석된다. 로켓맨(The Rocket Man)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기처럼 삶의 절반을 우주를 위해 바치는 로켓맨이 되지 말라고 당부한다.

     

지구인이 우주인으로 되어가는 과정 중에 우주를 날고 싶어 하는 욕망은 우주를 경제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려는 욕망으로 탈바꿈한다. 여기 호랑이가 출몰한다(Here There Be Tigers)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에 우주와 행성을 지구인들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고 소모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인간 중심주의는 인간과 자연을 구분하고 인간에게 우월적 지위를 부여한다. 이 말에 들어있는 단어인 자연대신에 우주를 넣어도 말의 의미는 변함없다. 작가는 우주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행성의 자연환경을 존중하는 인물의 입을 빌려 인간 우월주의를 간접적으로 비판한다.

     

안개 고동(The Fog Horn), 끝없는 비(The Long Rain) 이 두 편의 단편소설은 거대한 환경 속에 갇히고, 시간의 힘 앞에서 무력한 살아있는 존재들을 그린 이야기다. 여기서 말하는 살아있는 존재는 인간뿐만 아니라 암흑으로 둘러싸인 심해에 숨어 사는 괴물도 포함된다. 공룡을 닮은 괴물은 100만 년 동안이나 숨어 사는데, 괴물의 고독을 달래주는 유일한 대상이 바로 등대에서 울려 퍼지는 안개 고동이다. 안개 고동1951년에 발표된 소설이다. 이때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고독이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작가는 인간적인 관점을 뒤집어 심해 괴물도 지구상에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끝없는 비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혼란과 절망에 빠지는 인간의 감정 상태를 보여준다. 세 명의 우주 탐사 대원은 온종일 궂은비가 쏟아 내리는 열악한 행성인 금성에 갇혀버린다. 그들은 인공 태양이 설치된 돔 구조물을 찾기 위해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하고, 비를 쫄딱 맞으면서 걷기만 한다. 결국, 화성의 극단적인 환경이 주는 위압감을 견디지 못한 우주 탐사 대원 한 명은 이성을 잃어버려 미치게 된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아름다운 환상의 커튼으로 가려진 우주의 세계를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아름다운 환상의 커튼이 걷어진 우주는 어떻게든 적응하고 견뎌 내야 하는 막막한 고독의 시공간이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우주 속 지구인을 동경하면서도 그들 곁에 드리우는 그림자도 놓치지 않는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SF는 인간 본연의 고독과 상실감 등 심리 탐구에 집중한다. SF는 이렇게 의외로 철학을 그리기도 하며 독자들에게 진지한 성찰을 요구한다. ‘레이 브래드버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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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라 2017-09-21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켓맨이라는 제목에서 김정은이란 이름이 떠오르는건 트럼프 미대통령 때문이겠죠^^? 화성이주 계획이 실현될 즈음에 지구가 어떤 상황일런지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SF소설들에서도 우주여행에 대해 밝은 미래보다 암울한 미래상을 그린 작품들을 더 보았었는데요 자발적으로 화성이주를 선택하는 이들 중에 동경이 아닌 못견디겠는 현실 때문에 등떠밀리듯 화성이주를 선택하는 이들이 많으면 어쩌나 싶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이 댓글 참 엉뚱한 댓글이네요^^;

cyrus 2017-09-22 19:57   좋아요 0 | URL
엉뚱하긴요. 충분히 그러한 일이 발생할 수 있어요. 화성 이주가 가능한 날이 오면 돈 없는 사람들은 재생불가능한 지구에 남아 있을 겁니다. 우주 시대가 와도 빈부 격차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세실 2017-09-21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켓을 타고 우주여행을...
비용이 문제기는 하겠네요.
저가 로켓도 나올까요?ㅎ

cyrus 2017-09-22 19:58   좋아요 1 | URL
자동차 한 대 살 수 있는 가격이면 좋겠는데, 걱정되는 점은 성능입니다.. ㅎㅎㅎ

겨울호랑이 2017-09-22 05: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우주보다는 먼저 바다 이주 계획부터 실현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라 생각이 되네요. 수소와 헬륨으로 구성된 우주보다 생명을 탄생시킨 경험있는 바다에서의 생활이 더 수월할 것 같아요^^:

cyrus 2017-09-22 20:02   좋아요 1 | URL
<날아라 슈퍼보드> 에피소드 중에 손오공과 원숭이 무리들이 수중도시에 생활하는 장면이 있어요. 물 속에 있는데도 호흡할 수 있어요. 만화라서 가능한 일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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