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책읽기 - 세상을 이해하는 깊고 꼼꼼한 읽기의 힘
로버트 P. 왁슬러 지음, 김민영 외 옮김 / 문학사상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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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것은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설은 읽어도 남는 게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소설은 유용한 정보를 주는 책이 아니다. 소설 속에도 지식이 있지만, 전문 분야를 다룬 책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래도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소설을 많이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소설은 누군가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 인생의 정답이 없다. 그래서 소설 한 권 읽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소설 읽기의 가장 큰 목적은 소설 속 상황에 부닥친 등장인물을 로 설정한 후 감정이입을 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등장인물과 더불어 웃고 울고, 슬퍼하고, 기뻐한다. 때로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분노를 터뜨리기도 한다. 소설을 읽을 때는 등장인물의 감정에 공감하면서 재미를 느끼게 된다. 소설 속 인물에게 깊이 감정이입을 할수록 재미있고, 그렇지 못할수록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이미지와 영상, 소리에 익숙한 사람들은 소설 속 인물에 대한 감정이입을 낯설어한다. 그래서 그런가? 이제 사람들은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다. 아예 책을 멀리하고 인터넷이 있는 스마트폰을 더 좋아한다. ‘마음의 양식이 될 만한 책은 아무도 찾아 읽으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오감을 자극하는 쾌락을 찾는 데 점점 더 익숙해져 간다. 그래도 어떤 이들은 끈질기게 책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책의 매력을 느끼려면, 그것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위험한 책읽기언어로 빚어진 이야기(linguistic narrative)를 이해하기 위해 깊이 읽기(deep reading)를 강조한다. 언어로 빚어진 이야기는 종이책 속에 있다. 위험한 책읽기에 언급되는 깊이 읽기종이책을 느리게 읽으면서 사색하는 방식이다. 위험한 책읽기의 저자가 깊이 읽기를 강조하는 것은 작가의 화려한 문체를 익혀 좋은 문장을 쓰라는 말이 아니다. 책을 천천히 읽으면서 나 자신과 타자를 둘러싼 미지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라는 것이다. 결국 책을 깊이 읽는다는 것은 나 자신이 누구이며 내가 타인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해하는 과정이다.

 

깊이 읽기는 산책(散策)으로 비유될 수 있다. 산책은 천천히 걸으면서 자연의 언어를 읽는 일이다. 산책은 한 그루의 나무, 한 포기의 풀, 흙냄새와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언어에 집중하는 깊이 읽기와 다르지 않다. 저자는 독자 스스로 읽을 수 있는 여덟 가지 산()코스를 공개하면서 자신만의 해석을 들려준다. 코스는 다양하다. 창세기 1~3, 프랑켄슈타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암흑의 핵심, 노인과 바다, 호밀밭의 파수꾼,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파이트 클럽,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등이 있다. 코스의 순서에 신경 쓰지 말고, 원하는 대로 가면(읽으면) 된다.

 

그런데 저자는 왜 책 읽기가 위험하다고 생각했을까. 왜냐하면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줄거리가 아닌 이야기로 표현된 유한한 인간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문학과 조우하는 것은 언제나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것과 가지지 않은 것은 무엇이며, 우리가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지, 우리에게 친숙한 것과 낯선 것은 무엇인지 상기시켜준다.

 

(27)

 

 

  우리는 상황을 용이하게 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데이터와 정보를 수집한다. 그러나 내러티브는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 인간을 질문으로 몰아넣는데, 중요한 것은 질문 자체이다.

  이야기는 무엇이 인간 세계에서 지속되며 무엇이 이 세상의 인간을 만들어내는지를 상기시킨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우리의 삶이 가진 불안정함, 그리고 우리의 나약함과 평범함이다.

 

(291)

 

글꼴을 굵게 하고 밑줄 친 문장은 필자가 강조하기 위해 표시한 것임.

 

 

작가와 독자 모두 인간이며 불완전하고 유한한 존재이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나약한 면모를 이야기를 통해 노골적으로 전하고, 독자도 자신 또한 초라하고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따라서 앞서 언급했듯이 소설에는 인생의 정답이 없다. 인간은 날마다 인생은 무엇이다라고 여러 번 정의를 내리면서 살아간다. 독자는 그러한 정의를 수차례 번복하면서까지 소설을 읽는다.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독서는 내가 누구인지, 나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알아가는 지적인 여정이다.

 

저자는 깊이 읽기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타인에 대한 공감 불능이다. 갈수록 사람들은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데 인색해진다. 그들은 타인이 겪는 삶의 고통이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하고,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오로지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듣기 위해서는 우선 타인을 향한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감정이입을 이끌어내는데 독서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책을 접할 때 비로소 독자는 자신과 타인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발견한다. 그렇게 받아들인 타인의 이야기는 독자의 자아를 성장시킨다.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비로소 책은 따분하고 위험한 대상이 아니라 즐거움의 대상이 될 것이며 평생 내 곁을 지켜주는 소중한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Trivia

 

*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의 말을 인용한 문장에 큰따옴표(”) 한 개가 없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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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2-11 1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읽는 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전보다 조금 더 그런 생각이 들어요.
cyrus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cyrus 2019-02-12 16:20   좋아요 1 | URL
소설도 독자에게 생각거리를 많이 주죠. 그래서 소설은 절대로 저평가해선 안 되는 장르입니다. ^^

레삭매냐 2019-02-11 18: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주로 소설을 읽습니다만.

소설읽기를 통한 내재화의 쾌락
은 그 무엇에도 비할 바가 없습니다.

단언코.

cyrus 2019-02-12 16:22   좋아요 0 | URL
요즘 소설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 솟아나고 있습니다. 독서모임을 통해서 만나는 분들이 소설을 즐겨 읽어서 제가 이분들 덕분에 편식 독서를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

뒷북소녀 2019-02-14 12: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전 소설을 재미로 읽는데, 사람들도 만나고... 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들보다는... 회사에 보고서 제출할 때도 훨씬 빠르고 쉽게 작성하는 것 같구요... 소설도 도움이 되는데... 왜 ㅠㅠ

cyrus 2019-02-14 17:20   좋아요 1 | URL
대부분 사람은 소설을 ‘시간 때울 때 읽는 재미있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소설이라는 장르를 가볍게 보는 거죠. ^^;;

카알벨루치 2019-02-14 13: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문학은 위대합니다!!!

cyrus 2019-02-14 17:22   좋아요 1 | URL
맞아요. 소설이 위대한 이유는 그 속에 다양한 사람들의 서사를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뒷북소녀 2019-02-14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이 문학의 깊이를 알면 좋을텐데요. 킬링타임용 소설만 있는게 아닌데, 안타까워요. 저도 예전에 대표님께 소설책 나부랭이 읽는다고 여러 말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갑자기 울컥하네요ㅠㅠ

cyrus 2019-02-18 15:28   좋아요 0 | URL
상대방이 어떤 장르의 책을 읽느냐에 따라 시선과 반응이 다르죠. 상대방이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으면 ‘재미있는 책을 읽는구나’ 정도로 생각하지만, 인문학 책 같이 생소하고 어렵고 분량이 많은 책을 ‘들고 있기만 해도’ 그 사람을 대단하게 여깁니다. ^^;;

페크(pek0501) 2019-02-14 1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알기까지 여러 권을 읽어야 합니다. 수십 권 정도?
저는 소설을 읽으면서 인간에 대해 알게 된다고 느낍니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 소설을 읽었는데 그런 게 나와요. 큰 농장을 가진 주인이 나이가 들어 자신은
늙었고 언젠가는 죽게 될 텐데, 하면서 자기 대신 농장을 경영할 사람이 없나, 하고 고민합니다.
딸이 대신 농장을 물려받아야 하는데 딸은 그곳 좁은 지역에서 사는 게 답답하다고 말합니다. 큰 도시로 가고 싶어도 아버지의 농장 때문에 갈 수도 없고... 결국 많이 가진 아버지와 딸은 불행한 사람인 거죠. 소설 주제는 다른 거예요. 그런데 주제보다 저는 주제와 관련 없는 이런 이야기 - 부자들은 근심이 많다, 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소설로 배웁니다. 소설을 읽어야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톨스토이의 <이반일리치의 죽음>을 읽으면 인간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는지 생생하게 느끼게 되지요. 실제로 죽기 직전까지 가 보지 않아도 소설을 통해 그 느낌을 공유하게 되어요. 이런 게 소설의 위대한 힘이 아닐까 합니다.

cyrus 2019-02-18 15:33   좋아요 0 | URL
소설을 많이 읽으면 다양한 삶을 살고, 다양한 성격을 가진 인물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아요. 비록 가상 인물이기는 하지만,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했기 때문에 전혀 낯설지가 않아요. 종이 위에 살아 숨쉬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페크님의 말씀처럼 소설을 읽어야 인물을 이해할 수 있어요. ^^
 
처칠의 검은 개 카프카의 쥐 - 우울증은 어떻게 빛나는 성취가 되었나
앤서니 스토 지음, 김영선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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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총리를 지낸 처칠(Winston Churchill)은 평생 자신을 괴롭힌 우울증을 검은 개(Black dog)라고 불렀다. 누구나 함께 살 수 있는 반려견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우울의 정도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공허감에 시달리며 세상만사가 귀찮고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물론 이런 감정은 흔히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대개는 우울함이 정상 범위를 넘어서도 치료하지 않고 가볍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런 증상들이 장기간 지속한다면 심각한 우울증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우울증을 절대적으로 위험한 병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극심한 우울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우울증은 때론 창작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처칠, 카프카(Franz Kafka), 뉴턴(Isaac Newton), (Carl Gustav Jung) 등 위대한 작가나 학자, 예술가들은 정신병의 위협 속에서 아주 훌륭한 작품들을 남겼다.

 

처칠의 검은 개 카프카의 쥐는 인생에서 애증의 반려견인 우울증과 그 밖의 정신병을 주제로 한 책이다. 영국의 세계적인 정신분석학자 앤서니 스토(Anthony Storr)는 유명인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인간을 따라다니는 여러 형태의 마음의 그림자들을 해부한다. 저자가 말뚝 삼은 전제는 우울과 불안, 강박 등이 부정적인 것만이 아닐뿐더러 창조력의 근원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저자가 언급한 사례가 그것을 입증한다. 처칠은 꼬리를 흔들면서 자신을 따라오는 검은 개를 외면하기 위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렸다. 카프카는 늘 불안에 떨었다. 그가 쓴 글에는 독선적인 아버지와 아무 힘이 되어주지 못했던 연약한 어머니 사이에서 무력했던 카프카의 감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싫어하지만 결국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에 대한 혼란스러운 양가감정은 우울증이나 공황발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한 카프카는 여러 차례 파혼 끝에 결국 평생 미혼으로 살았다. 카프카는 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글을 썼다. 그에게 글쓰기는 예술이기에 앞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외로운 투쟁에 가까웠을 것이다. 카프카의 글에 나오는 인물들은 가정과 사회에서 멀찍이 떨어진 채 외롭게 살다가 떠난 카프카 자신이었다.

 

뉴턴은 세 살 때 어머니가 재가하는 바람에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그래서인지 성격이 약간 뒤틀려 있었고,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다. 그는 정신 발작에 시달렸는데,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인지 의심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자신이 세상을 바꾼 위대한 인물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뉴턴이 이룬 성취는 그칠 줄 모르는 탐구 열정이 만들어 낸 것일까, 아니면 이성에 완전히 벗어난 정신으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나온 것일까. 저자는 뉴턴의 학문적 성취 일부는 자존감을 높이려는 욕구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자존감이 낮은 뉴턴을 자신의 능력을 의심했고, 그러한 극심한 불안은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뉴턴을 괴롭힌 병적 불안은 그가 뛰어난 업적을 남기는 데 어느 정도 이바지했다.

 

수많은 정신병 환자를 만난 융도 검은 개를 피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우울증을 개인적 고통으로 인식하지 않고, 중년에 이르는 모든 사람이 겪는 고통으로 인식했다. 융은 중년의 위기에 관심을 기울인 최초의 심리학자이다. 융의 성인 발달 연구는 프로이트(Freud)를 비롯한 당대 정신분석학자들이 외면한 중년 우울증을 학문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발판으로 작용하게 된다. 프로이트는 성적 억압이 신경증의 원인이라고 주장하지만 융은 프로이트 심리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융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신경증은 환영할 일이다. 너무 심한 신경증은 일상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들지만, 적당한 신경증은 자기 자신을 다시 볼 수 있게 만드는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래서 융은 그 사람이 신경증에 걸리게 돼서 정말 다행이다!”라고 즐겨 말했다고 한다. 이 책에 수록된 두 편의 글 성인 발달의 양상: 융의 중년정신분석과 창의성: 프로이트프로이트 심리학과 융 심리학의 명확한 차이점을 아주 쉽게 설명한 글이다. 여기서 저자는 프로이트 심리학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융 심리학을 지지한다.

 

이 책에 나오는 유명인들은 모두 비범한 재능과 정신질환을 양손에 거머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서 공통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특별한 정신적 기질이 창의성과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우울증이 반드시 창의성을 높여준다는 식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펼치지 않는다. 진정한 천재는 광기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라는 글은 광기=천재라는 오랜 미신에 의문을 제기하는 글이다. 이 글에서 저자는 번뜩이며 스치는 영감(靈感)을 정신병과 연관 짓는 입장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정상’, ‘질서에 익숙한 사회는 이것에 살짝 벗어난 새로운 사람비정상’, ‘위험한 존재로 규정하여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런 사회에 태어난 노력하는 천재괴짜 천재가 되어 푸대접을 받기도 한다. 그는 프로이트를 비판하지만, 상상력이 불만으로부터 나온다는 프로이트의 말에 동의한다. 삶에 대한 불만족이 유발하는 우울증과 불안 장애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이다. 인간은 한 가지에 만족하지 않으며 계속해서 더 좋은 것을 원한다. 그래야 삶에 대한 불만족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인간은 그것을 양분으로 삼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저자는 영국의 작가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의 표현을 빌려 갈망하는 상상력의 가치를 강조한다. 따라서 인간은 항상 더 나은 것을 찾기 위해 상상하고 노력한다면 우울증이라는 약점을 장점으로 바꿀 수 있다. 처칠, 카프카, 뉴턴 등은 검은 개를 물리치기 위해 끊임없이 상상력을 펼쳤고, 오랜 노력 끝에 새로운 것을 창작해냈다.

 

이 책이 주는 교훈은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항상 더 나은 것을 위해 노력하는 태도를 잃지 않는 삶의 자세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죽을 때까지 간직해야 할 뷰티풀 마인드(Beautiful Mind)[]. ‘뷰티풀 마인드를 유지하는 것은 곧 희망을 이야기하는 일이다. ‘뷰티풀 마인드는 괴짜 천재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 정신분열증을 앓은 수학자 존 내쉬(John Nash)의 일생을 그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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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19-01-16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봐서는 ‘검은 개,‘ ‘쥐‘로 우울증 이야기하는 책인줄 모를 것 같아요. 늘 감탄하며 읽고 갑니다^^

cyrus 2019-01-16 08:10   좋아요 0 | URL
북사랑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제가 카프카와 ‘쥐’의 관계를 언급하지 않았네요. 카프카가 자신의 답답한 상황을 ‘쥐’에 비유해서 표현했어요. ^^

반유행열반인 2019-01-16 1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삶에 대한 불만족이 유발하는 우울증과 불안 장애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이라는 문장은 인용구인지 의견이신지 구분이 안 되지만 오해가 생길만한 표현 같아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인 ‘우울감’과 의학적 진단을 통해 병으로 명명되는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는 구분이 필요합니다. 원인도 ‘불만족’과 같은 욕구나 인식 차원이 아닌 신경 전달 물질의 이상과 같이 대체로 명확하게 원인이 밝혀져 있습니다. (따라서 그 원인을 해결시켜주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항우울제,항불안제로 완화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여나 환우분들이 정말 치료가 필요한 부분을 ‘예술의 원천’으로 승화시키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으며 고통을 겪는 시간이 길어질까 괜한 노파심에 긴 사족을 달았습니다.(정신 질환은 인지 시점과 치료 시작 시점의 간격이 짧을 수록 예후가 좋다보니 더더욱 감기처럼 ‘좀 더 견뎌보지-‘하면 안 되지...하며 괜한 걱정이 따라 붙은 것 같네요...) 궁금해지고 읽어보고 싶은 책 소개 글 자세히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cyrus 2019-01-16 14:27   좋아요 1 | URL
열반인님이 언급한 문장을 다시 보니 제가 우울증과 불안 장애를 너무 단순하게 일반화해서 표현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읽는 분들에게 오해를 줄 수 있어서 문장을 삭제하기로 했습니다. 제 글을 꼼꼼히 봐주시고, 의견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반유행열반인 2019-01-16 14:58   좋아요 0 | URL
으악 삭제까지 하실 것은...제 비루한 의견에 귀기울여 주셔서 감사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ㅠㅠ

cyrus 2019-01-16 15:09   좋아요 1 | URL
죄송할 일이 전혀 아니에요. 저는 좋은 의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 글(글의 일부 내용)에 대한 다른 분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걸 좋아해요. 북플이나 블로그에 접속해서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거나, 혹은 글 일부라도 자세히 읽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이런 환경 속에서 글을 쓰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독단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이 되기 쉬워요. 그래서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다른 분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

반유행열반인 2019-01-16 15:28   좋아요 0 | URL
좋게 받아들여 주시고 유연한 태도로 배울 점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독해력으로 오독하거나 숲은 못 보고 나무 둥지 밑 버섯만 보는 편협함도 있을테니 그럴 땐 꼭 논박하여 일깨워 주셔요ㅋ 사실 그 부분 빼고는 작가와 cyrus님께서 말씀하신대로라면 마음 아픈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아니 내 어깨 위의 뱀이 내 목을 조르기만 하는게 아니라 뱀 춤 추면서 내 캐릭터를 독특하게 설정해줄 수도 있겠구만?하는... 뭐 모든 어둠이 다 카프카의 쥐 처칠의 개 마냥 되는건 아니겠죠ㅋㅋㅋ)

이하라 2019-01-16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증이 창작의 원동력이 되었다니 발상의 전환이 확실히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울해질 때 그냥 쳐져있기만 해서는 안되겠네요.

cyrus 2019-01-16 19:54   좋아요 0 | URL
맞아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 새로운 일을 해보는 건 좋은 일이에요. ^^

감은빛 2019-01-16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을 보고 영화 [뷰티풀 마인드]를 떠올렸는데, 그 영화가 맞았군요.
어느 순간부터 저도 우울증에 대한 생각을 가끔 해요.
떠올려보면 10대 시절부터 그랬던 것 같기도 하구요.

책 제목과 표지는 좀 아쉽네요.
전혀 책의 내용이 전달되지 않는 느낌이에요.

cyrus 2019-01-16 19:59   좋아요 0 | URL
‘처칠의 검은 개’라는 표현이 우리나라 독자들에겐 생소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래서 제목만 보면 무슨 내용의 책인지 느낌이 오지 않을 수도 있겠어요. ^^;;
 
밥보다 일기 - 서민 교수의 매일 30분, 글 쓰는 힘
서민 지음 / 책밥상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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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19세기 최고의 피아노 연주자로 꼽힌다. 그의 연주 실력은 최초의 오빠 부대를 만들어낼 만큼 매우 뛰어났다. ‘리스토마니아(Lisztomania)라는 단어가 나올 정도로 팬들이 연주회장에 몰려 북새통을 이뤘던 풍경은 오늘날 인기 아이돌 가수의 그것과 꼭 겹친다. 리스트는 문필가로도 활동하여 음악과 관련된 글을 썼으며 쇼팽(Chopin)에 대한 평전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일기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리스트보다 어린 피아노 연주자가 그에게 왜 일기를 쓰지 않느냐고 물었다. 리스트는 세상을 사는 것만으로도 매우 힘들다. 그런 고통을 글로 남겨야 할 이유가 있는가? 일기는 고문실 안에서 쓰는 기록과 다를 바 없다라고 대답했다.[] 모국인 헝가리를 넘어 전 유럽에 명성을 떨쳤고, 사교계 여성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은 그가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살았다니 의외다.

 

아이들은 일기 쓰기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한다. 그들은 보통 쓸거리가 없다고 말한다. 정말 쓸 게 없어요. 어제와 똑같은 하루를 보냈는데 뭘 써야 하나요?” 사실은 쓸거리가 정말 없을 수도 있어서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특히 겨울에는 추운 날씨와 미세먼지 탓에 야외활동이 줄어들어 집 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일기장을 채울 수 있는 글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일기는 매일 써야 한다는 의무감과 부담감 때문에 밀리기 일쑤다. 이렇듯 아이들에게 일기는 짜증이 나게 하는 고문이다.

 

일기는 평범한 인간이 난생처음 쓰는 기록이다. 그러므로 일기는 쓰기 능력의 기초를 마련해 준다. 아이들이 일기와 친하게 지내지 못한 채 성장한다면 글 쓰는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글을 음식’, 글쓰기를 음식을 먹는 일이라고 생각해보자. 아이들은 쑥쑥 자라면서 점점 단맛이 나는 음식을 더 좋아하게 된다. 자기 입맛에 맞는 음식은 좋아하고 단맛이 아니거나 많이 씹어야 하는 음식 앞에서는 입을 꾹 다문다. 대부분 아이들은 생후 6개월에서 만 3세경에 음식에 대한 호불호를 느끼고 표현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아이들은 새로운 음식을 싫어하고, 음식의 형태, 혹은 씹는 질감에 민감하게 반응해 편식하게 된다. 부모가 자녀의 편식 습관을 고치려고 강압적으로 음식을 먹이려고 하면 자녀는 식사를 거부하려고 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쓰기는 공든 탑을 쌓듯이 차근차근 해나가야 재미가 붙게 되고 실력도 늘어난다. 글쓰기는 일기 쓰기를 통해 기본을 닦을 수 있다. 대부분 부모와 교사는 일기를 매일 해야 하는 숙제인 것처럼 가르친다. 일기는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자기 글을 쓰는 경험인 만큼, 일기를 과제의 의미에 맞춰 무조건 써야(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줘선 안 된다. 이러면 아이들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면서 어제와 별로 다를 바 없는 붕어빵 일기를 쓴다.

 

글이란 자신의 내부에 들어있는 것을 쏟아놓는 작업이다. 그래서 머릿속에 다양하고 좋은 생각이 많이 들어있는 사람은 좋은 글을 쓰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쩔쩔매게 된다. 글 쓰는 기생충 박사 서민 교수는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글쓰기 훈련법으로 일기 쓰기를 제안한다. 하루 30분씩 일기를 쓸 것. 글쓰기가 어렵다고 호소하는 사람에게 밥보다 일기를 권한다. 누군가는 먹고 살기 바쁜데 일기를 써야 하나요?’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생각 속엔 어렸을 때부터 형성된 일기에 대한 고정관념이 들어 있다. 틀을 만들어 놓은 일기장은 우리 생각을 틀 속에 가두어 버린다. 밥보다 일기는 일기가 귀찮은 글쓰기의 대명사가 된 이유를 알려준다. 흔히 일기는 반성하는 글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일기는 말 그대로 하루의 기록이므로 좋았던 일, 슬펐던 일, 화났던 일 등을 솔직하게 쓰면 된다. 매일 똑같은 방식으로 일기를 쓰는 것은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다. 따라서 다양한 주제나 방식으로 일기를 쓸 수 있다. 하루의 일과를 소설 형식으로 써보거나 1인칭(‘’)이 아닌 상대방의 시점으로 일기를 써본다. 잠자기 직전에 일기를 쓰지 않아도 된다. 잠잘 시간에 졸음과 싸우면서 일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생각날 때마다 틈틈이 써야 한다. 일기장이 아니어도 좋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노트에 기록해도 된다. 글이든 일기든 뭐든 빨리 쓰고 싶으면 뭘 쓸지 미리 생각하고, 그걸 노트에 기록한다.

 

어떤 주제를 놓고 글을 써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 주제에 대한 사전 경험이 없으면 훌륭한 글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사전 경험은 대부분 일기로부터 온다. 이처럼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게 되는 글쓰기는 독립된 행위가 아니라 일기 쓰기와 밀접하게 연결된 일련의 행위다. 일기 쓰기를 가볍게 생각하면서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기본적인 입력도 하지 않고 출력을 시도하는 것과 다름없다. 간혹 어렸을 때 쓴 일기장을 폐기물 처리하듯이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어른이 되어서 기억할 과거가 없는 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다. 일기장에 남아 있는 과거의 내 모습은 어른의 눈에는 창피하고 가치가 없어 보일지는 모르지만 한 번씩 생각날 때마다 꺼내 볼 수 있는 귀중한 추억 보관함이다. 우리는 과거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이 가능한 세상을 꿈꾼다. 타임머신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펜과 일기장,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쓰려는 진심, 이 세 가지만 있으면 타임머신을 만들어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현재까지 있었던 일을 기록한 일기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를 확인할 수 있는 타임머신이 된다. 한 개인의 역사로 일기장만 한 게 또 무엇이 있을까. 괴발개발 썼더라도, 창피한 내용이 담겨 있더라도 제 손으로 쓴 제 삶의 기록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기억할 수 있다는 건 소중한 일이다.

 

 

 

[] 메이슨 커리, 강주헌 옮김, 리추얼, 책읽는수요일, 2014,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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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1-14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보다 일기> 리뷰를 쓸까 하고 있었는데, 와, 되게 기죽네요;;

cyrus 2019-01-15 07:09   좋아요 0 | URL
syo님이 평소처럼 쓰던 대로 쓰면 되죠. syo님이라면 이 책을 재미있게 소개하실 것 같아요. ^^

2019-01-14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5 0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01-14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책 중 가장 재밌게 읽은 책 같아.
물론 항상 재밌게 쓰시긴 하지만.
네 얘기 나온 거 알고 진짜 많이 웃었다.
책으로 이렇게 웃길 수 있구나.
뭔가 희망을 보는 것 같더군.ㅋ
오늘 일기는 뭘로 쓸까 미리 생각하고 쓰라는 말에 동감이야.
그거 생각 안하고 쓰면 뭘 쓸까 정말 막막하지.

마태님이 지난 주말 우리 집과 비교적 가까운 모처에서
강연회를 가지셨다는데 못 갔다.

cyrus 2019-01-15 07:38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님이 저와의 첫 만남을 기억해주셔서 무척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제가 과거에 썼던 책을 가져와서 마태우스님이 많이 당황하셨을 거예요. 다음에 그 분 강연에 가게 되면 근래에 나온 책을 가져와서 사인을 받아야겠어요. ^^

마태우스님이 일기를 쓰는 방식이 제가 글 쓰는 방식과 조금 닮았어요. 저도 미리 뭐 써야할지 생각해놓고 쓰거든요. 가끔은 생각나는 대로 바로 글을 쓸 때도 있지만, 아무래도 저는 생각한 것들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나서 글을 쓰는 방식이 편해요.

잭와일드 2019-01-14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뜻 쉬운것 같으면서도 꾸준히 지켜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게 일기쓰기인것 같아요.

cyrus 2019-01-15 07:41   좋아요 0 | URL
평소 재미있어서 자주 즐겨하던 것도 가끔 하기 싫을 때가 있어요. 일기쓰기나 글쓰기도 그런 것 같아요. 계속 잘 쓰다가 어느 순간 쓰고 싶지 않는 날이 와요. 그럴 땐 안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

페크(pek0501) 2019-01-15 2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매일 일기를 쓰지 않고 며칠에 한 번씩 쓰는데 며칠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한 것도 쓰고 한 칸 띄우고 오늘의 기분에 대해서 쓰기도 하고 한 칸 띄우고 미세먼지에 대해서 또는 내가 본 드라마나 영화에 대해서 쓰는데요. 한 칸 띄우는 것은 다른 주제로 넘어간다는 뜻이니 한꺼번에 여러 날의 일기를 쓰는 거라고 할 수도 있어요. 기록하는 일은 신기한 힘이 있는 듯해요. 일기를 쓰고 나면 마음속에 뒤죽박죽인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도 같고 앞으로 할일에 대한 구상을 하게 되는 것도 같고 그래요. 특히 기분이 안 좋을 땐 기분 전환이 되어 좋은 것 같더라고요. 블로그에 쓰는 글과 달리 잘 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점이 일기의 장점인 듯싶습니다.

cyrus 2019-01-16 08:20   좋아요 1 | URL
<밥보다 일기>에 블로그에 일기 쓰는 것과 일기장에 글을 쓰는 것을 비교한 내용이 있어요. 마태우스님은 이 책에서 일기장 글쓰기의 장점을 많이 강조했어요. 블로그 일기를 ‘전체 공개’로 하면 모든 사람들이 그 일기를 볼 수 있어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자신의 글에 관심을 가지는 건 기분 좋은 일이지만,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자신을 포장하면서 글을 쓰려는 욕구가 더 강해져요. 이게 마태우스님이 지적한 블로그 글쓰기의 단점입니다. 저도 블로그 활동을 오래 하면서 나 자신을 과대 포장하면서 글을 쓴 적이 있어서 마태우스님의 말씀에 공감했어요. 그래서 저는 이곳, 알라딘 블로그에는 일기 형식의 글을 잘 쓰지 않아요. 이 글을 보는 분들이 제가 평소에 어떻게 지내지 궁금하지 않을 것 같아서 일기를 안 써요. ^^
 
즐거운 식인 - 서구의 야만 신화에 대한 라틴아메리카의 유쾌한 응수 서울대 인문 강의 시리즈 7
임호준 지음 / 민음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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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사순절(四旬節) 기간에는 예수의 행적을 생각하며 고기를 먹지 않는 풍습이 있었다. 사순절은 ‘40일’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으며 부활절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의 기간을 일컫는다.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사순절은 예수의 삶을 묵상하는 기간이자 경건의 훈련을 하는 경건한 기간이다. 카니발(carnival)은 사순절을 앞두고 떠들썩하게 먹고 마시며 즐기는 기독교 전통 축제이다. 카니발이란 말은 ‘육식 금기’를 뜻하는 라틴어 ‘carne vale’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가면과 화려한 복장을 하고 카니발에 참여할 수 있어 이때만큼은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평등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미하일 바흐친(Mikhail Bakhtin)은 시끌벅적한 축제처럼 보이는 카니발에서 인간의 깊은 내면을 열어 보여주는 유용한 열쇠를 찾아냈다. 인간은 질서에 순응하여 살면서도 동시에 전복을 꿈꾼다. 바흐친에 의하면 카니발은 인간의 이런 이중적 면모를 가장 잘 드러내는 문화 현상이다. 카니발은 해방된 삶이다. 카니발 기간에는 위계질서가 무너지고 모든 것이 무질서 상태가 된다. 보통의 삶에 제약을 가하던 모든 금기와 구속이 일시적으로 제거된다. 카니발은 ‘거꾸로 뒤집힌 세상’이다. 모든 금기가 제거된 카니발에서는 거꾸로 된 논리, 반대로 된 논리가 상식을 제압한다. 왕이 거지가 되고, 거지는 왕이 되며, 성직자는 모독당하고 광대는 추앙받는다. 권위는 추락하고 금욕주의는 조롱당한다.

 

사람이 인육을 먹는 풍습을 ‘카니발리즘(cannibalism)이라 한다. 이 용어는 과거 식인 풍습이 있다고 알려진 서인도제도의 카리브 인들을 가리키는 스페인어에서 유래됐다. 15세기경 서인도제도에 처음으로 가본 스페인 정복자들은 카리브 인들이 인육을 먹는다고 믿었다. 스페인의 후원을 받아 바하마 제도에 도착한 콜럼버스(Columbus)는 항해 일지에 카리브 해 식인종의 존재에 대해 언급했다. 역사적으로 사람이 인육을 먹는 행위는 여러 가지 이유로 행해졌다. 주술 혹은 미신이나 종교에 의해 인육을 먹으면 특별한 힘이나 현상이 나타나거나 먹은 사람이 생전에 갖고 있던 힘을 이어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먹을 것이 부족했을 때 생존을 위해 인육을 먹는 경우도 있다.

 

서구인들은 자신들의 우월성을 유지하려고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설정했다. 그러면서 아메리카 원주민의 풍습과 신앙은 ‘야만인’의 특성으로 알려졌고, 서구인들의 상상력에서 나온 ‘식인종 신화’는 유럽 전역에 전파되었고, 식인종은 야만인의 표본이 되었다. 야만인은 문명인에게 길들지 않은 존재를 지칭했다. ‘식인종 신화’는 야만인들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즐거운 식인》은 문명인들이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식인 풍습을 ‘카니발’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라틴아메리카의 ‘식인주의’를 소개한다. 식인주의. 국내에서는 생소한 용어이지만, 1920년대 브라질에서 처음 시작된 저항 예술을 설명하는 데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개념이다. 식인주의는 라틴아메리카의 주체적인 문화적 정체성이다. 라틴아메리카의 모더니스트들은 식인주의를 내세워 식인종 신화에 맞서 유쾌하게 응수했다. 야만인 담론, 식인종 신화가 유럽인의 문명 우월주의를 부각하기 위해 식인 풍습을 ‘혐오 행위’로 보게 했다면, 식인주의는 유럽인의 시각이 반영된 식인 풍습을 라틴아메리카인들이 즐기는 ‘축제 행위’로 바꾸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바흐친이 확인한 ‘카니발’의 특징과 비슷하다. 라틴아메리카의 식인주의는 서양 문화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골라 먹는’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식인주의 운동은 유럽 문화를 씹고, 뜯고, 맛을 보면서 소화해 식민주의에 저항하는 자산으로 만들려는 문화 운동이다.

 

라틴 아메리카인들에게 있어서 식인주의는 모든 민중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진정한 자유와 평등한 웃음이다. 라틴 아메리카 지성인들은 식인주의 운동을 통해 유럽 식민주의적 권력의 억압과 위선을 깨부수고, 자신이 속한 세계에 생성과 갱생의 기운을 불어넣으려고 했다. 카니발은 유럽 기독교 문화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흐친이 현재까지도 살아있다면 유럽을 ‘씹어대고 배설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카니발 문화를 보면서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도 그는 카니발에 주목한 책을 다시 썼을 것이다.

 

 

 

 

※ Trivia

 

* 11쪽

어떨결에 → 얼떨결에

 

 

* 39, 40쪽

1943년 → 14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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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8-12-07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흥미롭군요. 일단 보관함에 담았습니다.

cyrus 2018-12-08 08:20   좋아요 0 | URL
라틴아메리카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

2018-12-07 14: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08 08:39   좋아요 0 | URL
기독교, 이슬람교는 중동에서 시작됐어요. 서로 다른 면이 많지만, 조금은 비슷한 면도 있어요. ^^

페크(pek0501) 2018-12-08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복과 지배는 어느 쪽에서 보느냐,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거역할 수 없는 진리가 있지요. 모든 인간은 존중 받아야 한다는 것.

오자를 잘 밝혀 놓으셨네요.

cyrus 2018-12-09 16:08   좋아요 0 | URL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 현상은 다양한 관점으로 볼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평가가 달라질 수 있어요. 모든 인간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진리는 절대 진리죠.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관계를 읽는 시간 - 나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바운더리 심리학
문요한 지음 / 더퀘스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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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사람은 친숙한 것을 좋아하고 낯선 것을 불편해한다. 심리학에 ‘단순노출 효과(Mere Exposure Effect)라는 용어가 있다. ‘단술노출 효과’란 자주 보는 것만으로 호감이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미 알고 있는 악마가 아직 알지 못하는 악마보다 낫다’라는 서양 속담처럼 새로운 것은 호기심과 동경을 불러일으키지만, 불확실성에서 비롯되는 불안감과 경계심도 동반한다. 따라서 친숙함은 익숙한 것에 길들게 함으로써 낯선 상대방에 다가서거나,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는 동기를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낯선 사람, 낯선 경험에 대한 새로운 접촉과 관계 맺기를 가로막는 것이다. 따라서 풍성하고 성숙한 인간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친숙한 것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다.

 

흔히 인생을 항해에 비유한다. 항해에는 반드시 여러 개의 목적지가 있다. 그곳에는 가족, 친구 등이 모여 살고 있다. 인생이란 항해에서 어떤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것인지 명확히 결정해야 한다. 한 번뿐인 인생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지,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항해하고 싶은지 고민해야 한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려면 ‘건강한 인간관계’로 나아가는 길목을 알려주는 ‘나만의 항해 지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해마다 달라지는 지리 정보를 재빨리 감지하고 이를 지도에 반영해 업데이트를 해야 하듯이 ‘인간관계 지도’도 상황에 맞게 바로바로 업데이트할 수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모든 인간관계의 틀을 가정 안에서 배우게 된다. 사회에서 맺는 동료나 친구와의 관계는 이미 형제자매와의 관계에서 그 틀이 만들어진 것이며 결혼 후의 부부관계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를 보고 배운다. 어머니의 애정은 아이에게 안도감을 주었고 어머니가 곁에 있을 때 아이는 낯선 주변을 더 많이 탐색했다. 심리학자 존 보울비(John Bowlby)의 연구에서 볼 수 있듯이 어려서 어머니와 올바른 애정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아동은 성장한 이후 대인관계를 잘 갖지 못한다. 그러나 무조건 자녀를 사랑하기만 한다고 해서 자녀가 올바르게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의 과보호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부모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성향이 강하고,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것을 두려워한다. 애착 대상, 즉 부모로부터 분리될 때 또는 분리될 것을 예상했을 때 느끼는 불안을 그대로 방치하면 대인관계를 피하거나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어린 시절 몸에 밴 이러한 애착의 패턴들을 지닌 채로 가정을 떠나 사회로, 결혼 관계로 나아간다. 우리가 흔히 관계 맺기 어려워하거나 빈번히 실패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정확히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 문요한은 인간관계 속에서 나도 모르게 저지르게 되는 실수와 갈등의 원인이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우쳐주고, 동시에 인생의 발목을 잡는 과거의 관계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조언한다. 《관계를 읽는 시간》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바운더리(boundary)다. 바운더리는 인간관계에서 ‘나’와 ‘내가 아닌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자아의 경계인 동시에 관계의 교류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통로이다. 건강한 바운더리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은 두 가지 기능을 필요로 한다. 하나는 ‘보호’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교류’이다. 전자는 자신을 돌보는 것이며, 후자는 상대방과 친밀하게 지내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인간관계가 생긴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인간은 부정적인 자아상을 갖게 되는데, 이 책에서는 순응형, 돌봄형, 지배형, 방어형이라는 4가지 틀로 나타난다.

 

《관계를 읽는 시간》은 인간관계 변화의 출발점으로 ‘바운더리’에 주목한다.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되풀이하고 있는 관계 방식, 이것을 이해하고 바꾸지 않는 한 관계에서 겪는 괴로움도 반복된다. 그 관계 틀을 알아보고 바꾸는 여정은 ‘바운더리 심리학’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바운더리 심리학은 ‘지금 모습으로 충분하다’는 위로의 심리학이 아니라 관계를 재구성하는 ‘변화의 심리학’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관계 맺음이 유난히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은 성장 과정을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런 성찰을 바탕으로 지금 여기에서 내가 또 어떠한 형태의 애착 관계를 반복하고 있는지를 먼저 깨달아야 한다. 이 책이 그럴싸하게 심리학을 이용한 자기계발서와 구별되는 점은 단기적으로 처방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스스로 문제 원인을 알아볼 수 있게끔 하는 데 있다. ‘족집게’ 자기계발서가 당장의 문제 상황을 잘 해결해 주는지 몰라도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는 못한다. 우리가 관계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방향을 설정하지 않으면 복잡하게 꼬여버린 인간관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또 관계가 회복한다고 해서 그다음부터는 아무 문제없이 잘살게 되는 건 아니다. 살아가면서 문제는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 저자는 사람을 만나면서 반드시 겪게 될 사회적 고통(이별 또는 상대방 간의 갈등에 직면하면서 느끼는 고통)은 관계를 잘 돌보라는 신호라고 말한다. 어떤 난감한 상황을 만나든 그 상황을 풀어가는 과정이야말로 자신의 관계를 돌아볼 기회이다.

 

개별적인 인간은, 그리고 그런 두 인간 사이의 관계는 언제나, 당연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된 내 관계에 대한 바운더리는 몸과 마음에 익은 습관과 같아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쉽지 않다. 자신의 삶에서 상대방과의 관계가 늘 불편했다면,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중요한 문제라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나 자신과 정직하게 만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자기 자신과 대면하고 대화하는 일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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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12-02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자신과의 대화는, 저의 경우엔 일기 쓸 때와 혼자 산책할 때 가능한 것 같습니다.

cyrus 2018-12-02 12:39   좋아요 1 | URL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일정에 맞추면서 살아가게 되면 내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는 여유마저 줄어드는 같아요. 그래서 혼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기가 힘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