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 시작한 프루스트 2권을 (번역본 기준 3,4권)을 봄, 여름까지 이어 읽다가 8월 마지막 날에야 완독했다. '스완부인의 주변에서' 화자의 첫사랑이랄까 스완씨의 딸인 질베르트와 사귀기 시작하는 겨울이 아픈 이별 후 '고장들의 명칭'에서는 화자가 해변 휴양지 발벡에서 보내는 여름으로 이어진다.


 머릿속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절벽과 중세 성당의 발벡을 담고있던 사춘기 소년의 눈 앞에 쨍한 여름 해변, 고급 리조트, 화려함을 힘껏 뽐내는 다양한 사람들이 귀족 부터 신흥 부르주아, 또 가난한 종업원에 더해 길가의 상인들이 덮치듯 펼쳐진다. 화자는 새로운 풍경과 인물을 관찰하고 (소심하게) 사귀고 사람을 대하는 여러 기술도 하나 둘 배운다. 눈치 없는 십대 후반의 화자의 곁에 다가오고 스치듯 멀어가는 인물들은 때론 우습고 또 애틋하게 (특히 온 마음을 다해주시는 외할머니의 친근한 모습) 그려진다.계속 엿보며 또 생각하는 것은, '아 저 여인은 나와 사랑에 빠질까'하는 어쩌면 흔하고 위험한 비밀, 그리고 그 어린 화자를 촘촘하게 그려내는 중년의 화자. 그 둘 사이를 파도 처럼 때리는 수 많은 기억과 이미지, 향기, 맛, 너무 많은 시간 저편의 반짝임. (알베르틴과 공식적으로 통성명하던 파티에서 화자는 커피 '에클레르'를 먹는다. 나는 티라미수 홈런볼을 두 개씩 먹으면서 그들의 대화를 읽었다.) 


 발벡의 해변에서 미지의 걸그룹을 만나고 그 중 한 명인 알베르틴느에게 연정을, 환상과 욕구를 느끼고 시도하고 상대의 '정체'에 대해서 (또한 그 정체를 고민하는 자신의 정체도 함께) 고민한다.  피어나는 소녀들은 여러번 꽃처럼, 인상파 그림 속 바다 (의 님프)처럼 어룽거리는 여러 겹의 색조와 겹치는 선들로 표현된다. 


피크닉에서 알베르틴느에게 핀잔을 듣고 나서 침울하게 걷다가 만난 '산사나무' 와 마음의 대화를 나누며 혼자 위로하는 화자. 


질베르뜨가 소녀에 대한 나의 첫사랑이었듯이, 그것들은 꽃으로 향한 나의 첫 사랑이었다. "그래요, 나도 알아요, 그 꽃들이 유월 중순이면 떠나지요, 하지만 여기에서 그들이머물던 곳을 보니 기쁘군요." 내가 대답하였다. "내가 병석에 누웠을 때, 그들이 나의 어머니를 따라 꽁브레의 내 침실에도 왔었어요. 그리고 마리아의 달 토요일 저녁에 우리가 다시 만났어요. 여기에서도 마리아의달에 그들이 교회당에 갈 수 있나요?" - "오! 물론이에요! 게다가,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교구인 쌩드니 뒤 데제르 교회당에서 그 아가씨들이오는 것을 매우 중요시해요." — "그렇다면 이제 그들을 보려면?" – "오! 다음해 오 월이 되기까지는 불가능해요." - "하지만 그들이 다시 오리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 "매년 어김없이 오니까요." - "하지만 내가이곳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 "물론 그러실 거예요! 그 아가씨들이 하도 명랑하여, 찬송을 부를 때를 제외하고는 웃음을 중단하는 법이 없는지라, 결코 길을 잘못 접어드실 리 없으며, 이 오솔길 끝에서 이미 그 아가씨들의 향기를 느껴 아실 수 있을 거예요." (펭귄 2, 680) 


다시 오월이면 그 꽃들을, 소녀들을, 향기를 맡을 수 있을까. 화자는 이곳으로 돌아올까, 나는 다시 이 부분을 두번 째로 읽을 수 있을까. 


알베르틴느는 (민음사 4권 말미에 실린 해설의 내용 처럼) 종잡기 힘든 자유로운 인물이다. 처음 화자의 눈에는 그녀의 친구 앙드레와 구별이 가지 않았고 생동감 넘치는 얼굴이었지만 (심지어 그녀 얼굴 위의 점의 위치도 달라진다) 점차 하나의 개별적 인물로 틀이 잡힌다. 하지만 아주 똑똑한 것도 아니고 부르주와 그룹의 친구들과 다르게 '가난한' 집안인데, 하지만 소위 고위직 가정에 초대도 자주 받는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피크닉에서 즉흥적으로 종이 쪽지에 '당신이 좋아요'라고 써 건네고 혼자 묵는 호텔방에 놀러오라고 화자를 초대도 한다. 헤퍼보이는가 싶더니 화자의 적극적인 성범죄 시도에는 단호하게 자신을 방어하고, 또 그에 기죽은 (그렇지만 다른 소녀들에서 환상의 대상을 물색하고 있던) 화자에게 황금색 연필을 선물하며 달래주기도 한다. 그러다 갑자기 서둘러서 먼저 발벡을 떠나버리는 알베르틴느. 화자와 그녀 사이에는 박자가 조금씩 어긋난다. 사랑, 이라고 부를 뻔 하지만 아직은 그 표현을 맞게 써넣을 수 없는 화자.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그들의 관계와 서열을 의식하면서 이해하려 애쓰는 화자는 결국 그 여름의 끝자락에 와서야 발벡에 조금 익숙해진다. 한 두 템포 늦게, 그는 그 여름을 그리워하고, 강제로 늦잠을 자야했던 천정 높은 호텔 방 두꺼운 암막 커튼이 제껴지던 순간을 꼼꼼하게 되살리면서 잃어버린 여름, '태고의 것'을 불러왔다. 그리고 서울의 뜨거운 여름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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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9-06 08: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알베르틴 너무 매력적인거 같아요 ㅋ 2권은 여름 냄새가 물씬 난다는~~!! 알베르틴은 밀당의 고수? 같아요 ㅎㅎ 3권 완독도 응원하겠습니다

유부만두 2021-09-06 10:18   좋아요 2 | URL
알베르틴은 질베르트와 꽤 다른 인물이네요. 그런데 모자이크 같은 느낌이 들어서 잘 상상이 안 돼요. 맞아요. 이번 권은 여름 여름이었어요.
이제 이어서 3권, 그러니까 번역본 5,6권도 천천히 읽어가겠습니다. 새파랑님의 격려 감사합니다. ^^
 

전작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를 재미있게 읽어서 이꽃님 작가의 신작도 읽었다. 200쪽 정도로 얇고 (각 챕터마다 종이 여백도 많다) 흐름이 빠른데다 문장이 매끄러워서 앉은 자리에서 끝내고 말았다. 


이미 한 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 생 서은이 학교 뒤 공터, 그래도 학교 안에서 사망했다. 오후 혹은 저녁 늦게 학교 안에서 사건이 벌어졌고 그 시신은 다음날 이른 아침에야 발견된다. (여기서 부터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리고 유력 용의자는 흉기로 추정되는 벽돌에 지문이 찍힌 단짝 친구 주연.


서른 몇 개의 챕터는 여러 사람이 목격한 이 두 여학생의 관계다. 이들은 진짜 친구였을까, 그리고 수연을 죽인 진범이 주연일까. 


한 인물의 사후에 주변 목소리를 듣는 구성은 전에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청소년 인물들의 갈등을 현재 학원, 학교 폭력, 이성 교제, 경제 격차, 등과 함께 그린 소설들도 많다. 그런데 이 소설은 아주 매끄러운 솜씨로 독자를 끝까지 데려간다. 그리고 어느 정도 예상했던 혹은 반전을 만난다. 독자는 매 챕터마다 소설 속 그 누구보다 많은 정보를 듣고 쌓아간다. 그리고 사망한 서은과 재판장에 선 주연의 이야기를, 그 둘만의 이야기를 알게된다. 범죄소설로 보자면 허술한 편이고 두 청소년의 관계 이야기라고 보기에도 아쉽다. 전형적인 인물들이 배경으로 쓰인다. 인물들이 '소모'되는 소설이라 한호흡에 (재미있게) 읽었으면서도 책을 덮으면서 '아, 못됐어'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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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8-27 08: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흠. 지금 읽고 있는 책이 하필이면 <이웃의 아이를 죽이고 싶었던 여자가 살았네>랍니다.
우연이죠? ^^

유부만두 2021-08-27 08:55   좋아요 1 | URL
그러네요. 그 소설에서도 아이가 죽나요?

Falstaff 2021-08-27 09:06   좋아요 2 | URL
아이를 살해하고나서 몇 년 후 정형외과 질환이 생겨 고통 속에 죽어가는데, 친구이자 죽은 아이의 엄마는 다량의 수면제를 건네주지 않아 끝내 아파하며 죽어가게 내버려둡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죽음의 침상에서 친구에게 속삭입니다.
아이는 살아있어. 내가 간호사로 근무하는 병원에 딸린 육아원에서 살아.
친구는 고통 속에서도 편안한 얼굴로 생을 마감합니다. 작가 페트루셉스카야는 ˝행복한 미소˝까지 띄었다고 썼네요.
21편의 단편 가운데 하나니까 이 정도 스포일러는 용서하시겠지요 뭐. ^^

유부만두 2021-08-27 09:10   좋아요 1 | URL
아… 그 아줌마 못됐네요!

붕붕툐툐 2021-08-27 2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제목이 세네요~ 게다가 한자리에서 읽으셨다니 궁금합니다!!

유부만두 2021-08-28 17:21   좋아요 0 | URL
흔한 소재에 정형화된 인물들의 빠른 사건 전개를 아주 매끄럽고 감각적으로 묶은 이야기에요. 3화 짜리 드라마 시리즈를 본 느낌입니다.

책읽는나무 2021-08-28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종류의 책도 있군요?
못된 인물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호기심이 입니다.실컷 욕해 주기 좋잖아요?ㅋㅋ
나중에 한 번 찾아 읽어봐야 겠어요..그리고 딸들한테도 한 번 권해줘야겠구요ㅋㅋ

유부만두 2021-08-28 17:27   좋아요 1 | URL
복합적이고 다양한 인물의 사정과 심리를 그리려 했던 것 같은데 심지어 그것도 공식적으로 나와요. 부잣집 아이는 부모님의 기대가 크고, 가난한 집 아이 엄마는 식당에서 일하고, 예쁘고 우등생인 아이가 왕따인 아이를 구해? 주고, 하지만 그 관계는 등등요.

제가 ‘못됐다‘라고 느낀 건 인물 보다는 (인물들이 너무 뻔해서 그냥 종이 위에만 남아있어요. 그냥 다 지어낸 게 티가 나요) 이 책 전체로 받은 인상이에요. 이 책에선 ‘성장‘ 하는 인물이 안 나와요. 어른들은 아이들을 돕거나 이끌어주기는 커녕 자기들 어린 시절의 ‘한‘에 매달려 있고요, 다들 자기들 공포나 억울함에 급급해요. 두 주인공 청소년은 죽거나, 아니면 길을 잃죠. 작가가 성급하게 쓴 것 같아서 좀 그랬어요. 이 책은 나무님댁 아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2020년 여성 소설상을 받은 작품이다. 미뤄두었다가 곧 번역본이 나온다기에 서둘러 읽었다. 햄닛은 열한 살 나이에 전염병으로 사망한 셰익스피어의 아들 이름이다. 북유럽 전설 속 왕자 이름 햄릿/햄닛 만큼이나 아들 이름 햄닛이 그의 슬픔과 함께 작품 명에 녹아있으리라는 가정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셰익스피어 보다는 그 부인 앤 해서웨이의 이야기다. 이름이 앤 대신 애거서로 나오는 여인은 (의붓)어머니 잔의 구박을 받으며 '독특한' 인물로 남동생 바톨로미유를 아끼며 성장한다. 그녀의 생모는 16세기 자연치유의 대모 같은 분위기로 그려진다. 애거서가 연하의 책만 보는 샌님 셰익스피어를 만나고 (그의 이름은 소설에 나오지 않는다) 사랑에 빠지고, 결혼 후 그의 폭력적 아버지네 집으로 들어간다. 다행히 샌님은 부인을 아끼지만, 자신의 꿈(문학, 연극)을 장갑 장인이며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아버지 집에서는 펼칠 수 없다. 이 책은 남편이 런던으로 상경한 후 애거서가 시댁에서 세 아이를 키우고, 보내고, 다시 만나는 이야기다.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지만 문장이 곱고 예쁘다. 또한 여러 인물의 시점으로 (주로 여성) 이야기가 그려지는데 쌍둥이 남매의 출생과 그들의 애틋한 우애가 인상적이다. 거대한 16세기 작가도 밥해주고 빨래해주는 주변의 여인들이 있었고, 그동안 묻혀서 보이지 않던 그 여인들과 아이들, 가족, 동네 사람들을 이 소설에서는 만날 수 있다. 그 시절의 끔찍한, 차마 그 이름을 말할 수도 없는 전염병 또한 이 책의 주요 인물이다. 햄닛을 죽이는 그 병원균의 발단, 그 시작인 '벼룩의 여행기' 챕터가 이 책의 하이라이트이다. 이번엔 박쥐 대신 원숭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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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8-26 09: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작에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는데 미루지 말고 얼른 구매해야겠어요. 읽을 자신은 없지만 구입은 자신 있습니다!!🤗

유부만두 2021-08-26 09:15   좋아요 1 | URL
번역본으로 읽어도 좋죠. 셰익스피어 작품과 연결되는 지점을 번역서가 짚어주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문장은 안 어려운 편입니다.

수이 2021-08-26 09: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구매했는데 아직도 책장에 모셔두기만 했어요. 9월에는 시작해야겠어요. 밥 하기 싫어요 언니 🤣

유부만두 2021-08-26 09:16   좋아요 2 | URL
아 저도 밥하기 싫어요. 국수 삶기도 질려요.

수이 2021-08-26 09:33   좋아요 2 | URL
파스타 삶기도 지겨워요, 그래도 밥보다는 파스타가 편해요, 한식은 반찬, 국이나 찌개 이러니 넘 복잡해요.

유부만두 2021-08-26 09:58   좋아요 1 | URL
전 무조건 한그릇 음식입니다. 기운이 조금 남으면 국/찌개 추가고요. 어휴 그래도 힘들어요. 우리집엔 먹깨비들이 둘이라 ㅠ ㅠ

새파랑 2021-08-26 09: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실제 셰익스피어의 아내 이름이 앤 해서웨이 였군요. 처음 알게된 사실이네요 😅 저는 글 보고 영화인가? 그랬어요. 앤 해서웨이 사진은...아름답네요 😄

유부만두 2021-08-26 09:17   좋아요 2 | URL
동명이인이죠. ^^ 책 읽을 때 배우 앤 해서웨이를 떠올리니 잘 어울렸어요. ^^

미미 2021-08-26 09: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배우 앤 해서웨이와 얼굴 윤곽부터 많이 비슷하네요?
배우인 어머니가 일부러 이름을 셰익스피어 부인 따라 지었다고 하더라고요ㅎ😉

수이 2021-08-26 09:32   좋아요 3 | URL
더구나 앤 헤서웨이는 영문학도 출신!이더라구요.

미미 2021-08-26 09:38   좋아요 1 | URL
셰익스피어에 관해 배울때 기분이 묘했을것 같아요ㅎㅎ

유부만두 2021-08-26 09:50   좋아요 1 | URL
의도한 작명이었군요!

blanca 2021-08-26 09: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저 책 안 그래도 팟캐스트에 나와 주문하려다 말았는데 지루할까봐요. 책장은 잘 넘어가나요? 극찬을 하던데 왠지 지루할 것 같아서...

유부만두 2021-08-26 09:50   좋아요 1 | URL
잔잔한 편이에요. (네 좀 졸려요)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에선 분노와 탄식도 나오고요.

blanca 2021-08-26 09:53   좋아요 1 | URL
오, 또 마음이 동하네요.주문해야하나 갈등합니다.

유부만두 2021-08-26 09:56   좋아요 0 | URL
아.. 저도 막 강추 까지는 아닌데, 좋은 부분도 많았어요. 흥미진진에 대한 기대는 접으시고 고운 손바느질 같은 문장을 즐기시면 어떨까요. 줄거리도 (벼룩 이야기 빼면) 평이합니다. 고민을 더하는 댓글이죠? ㅎㅎ

단발머리 2021-08-26 10:00   좋아요 1 | URL
블랑카님~~ 사세요! 사셔야 할 것 같아요. 고운 손바느질이래요. 고운 손바느질 같은 문장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고운 손바느질 살 거에요^^

수이 2021-08-26 10:03   좋아요 1 | URL
흥미진진 기대 접으라 하시니 지루하면 어쩌지 라는 마음 살짝 품게 되지만 전 이미 질렀어요 블랑카님 함께 읽어요 😊

blanca 2021-08-26 10:15   좋아요 1 | URL
벼룩 이야기 ㅋㅋㅋ 아, 저 솔직히 지금은 못 사요. 양심불량 ㅋㅋㅋ 책탑 쌓여 있으니 좀 소진시키고요. ^^;; 위 댓글 읽고 빵 터져요. 나도 밥 하기 싫다 ㅋㅋㅋㅋ

persona 2021-08-26 2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궁금했는데 후기 감사드립니다!^^

유부만두 2021-08-27 07:35   좋아요 0 | URL
여성 소설상 소식에 저도 궁금했거든요.

바람돌이 2021-08-27 0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원서도 읽으시는 유부만두님 존경 존경!
저는 한국어를 좋아합니다. 한국어만.....ㅎㅎ

유부만두 2021-08-27 07:37   좋아요 1 | URL
저도 한국어를 좋아합니다.
외국어는 해외 거주 경험이랑 전공 공부 때문이에요. 다 몸으로 고생한 거라 .... 칭찬해주시면 아주 묘한 기분이 들어요. 근데 책읽기는 일단 (소설의 경우) 그 속으로 들어가면 언어는 이차적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거긴 이야기가 있고 또 제가 있고 (...아, 막 이런다 ....) 또 재미가 있으면 끝! 십점 만점의 십점이 되는 거죠.
 

존경하는 알라디너 분들께서 추천하신 작품을 미루다가 이제야 읽으면서 게으른 과거의 나를 탓하고 흠뻑 빠져 읽었으면서도 제대로된 감상문은 커녕 몇 줄 남기기도 어려워서 버벅거리는 현재의 나를 탓하는 중이다. 


다른 분들의 리뷰 처럼 멋지고 심오하게는 못쓰지만 그저 나의 솔직한 감상은 적어둬야지. 안 그러면 미래의 나는 기억을 잃을테니까;;;; 


순진하달까, 맹한 펠리시아는 뻔한 시골처녀 답게 뻔한 동네 놈팽이 (그런데 대도시 공장에 다니면서 추석 때나 고향에 오는)와 사랑의 결실을 품었다. 기다리다 불안해져서 그 대도시(라지만 수도도 아님) 공장만 아는 주제에 민쯩도 없이 집안의 돈뭉치를 들고 밤차/배를 탄다. 그리고 낯선 곳을 헤매다 뻔한 오십대 뚱남 포식자의 눈에 띈다. 그는 그러니까, 십여 년 전 어머니 사후에 (그전에도 싱글이었지만) 홀로 큰 집에 살면서 여러 번 여자들과 우정을 나눌 뻔, 나누기 시작하다 떠나보낸 슬픈 과거가 있다. 이 사람의 즐거움은 소소하게 고가구나 문진 따위를 모으고 LP판으로 노래를 듣고 또 섬세하고 호방한 (?) 장보기와 식사하기다. 그의 직업도 공장 구내 식당 감독. 그는 다른이의 인정을, 눈에 띄어 '다른이와 함께 하는' 인상을 주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외로버. 소설은 1990년 초반의 아일랜드와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데 어쩐지 1980년대 분위기도 보이고, 미국의 범죄 스릴러 느낌도 난다. 그러니까 뻔한, 어떤 공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있다.


집나온 시골 처녀, 애인을 찾을 것인가. 

낯선 도시에서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 도움은 덫이 아닐까. 

저 낯선 이는 친구일까, 적일까. 

이 낯선 이의 과거는 어떠한가. 

상황은 어디까지 나빠지고 그 바닥은 어디일까.


50대 뚱남의 묘사는 매우 전형적인 연쇄살인마인데, 강박적 규칙 준수와 넓은 정원과 이어지는 숲, 과거의 여자들, 군인을 동경했으나 입대를 거절당하고, 비틀린 모자 관계와 부재하는 아버지 상 등이 그 타입의 뻔한 인물상을 또렷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의 눈 앞에 펠리시아가 짠. 


그런데. 


뻔한 시골 처녀가 뻔한 50대 뚱남을 만났는데도 게다가 뻔한 광신(기독) 전도사 아줌마 까지 나왔는데 그리고 어쩔 수 없는 결말을 그리고 있는데, 그 하나 하나가 뻔하지 않은 소설이 되었으니 기가 막힐 수 밖에. 모든 면에서 정반대에 위치한 두 인물이 외로움이라는 교차점에서 만났다가 다시 멀어진다. 인물 하나 하나가 짜증나게 생생한데 은근 살짝 빗겨나가며 독자 반발짝 앞에 서서 (애쓰지 않으며) 능수능란한 작가의 호흡으로 흥분 혹은 긴장한 독자를 바라보는 기분마저 들었다. 


나도 뭔 말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벌써 점심 밥 때라 일어나야 하고요. 

그러니까, 잘 썼어요. 정말. 


그래서 영화도 찾아봤는데.


아 이건 <힐디치씨의 여정> 이고요, 영화 초반, 그의 집을 보여주는 건 좋았는데 자꾸 '양들의 침묵'이랑 '싸이코' 영화가 생각나게 히디치 씨의 모자 관계를 과하게 설정하기도 했고 힐디치 씨가 접했던 '과거의 여성들' 묘사도 도드라져서 펠리시아가 가려졌더라구요. 그래서 펠리시아의 여정, 그 끝은 어디냐, ... 영화에선 사탕을 많이 발라놨어요.



아 이제 정말 밥하려 가야해요

일요일엔 오뚜기 카레냐 짜파게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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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8-22 12:0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ㅋㅋㅋ잘 쓰셨습니다. 정말~ 근데 저는 어느 선까진 힐디치가 정말 좋은 사람일 거라고 호의로 펠리시아를 도와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니까요! 하.. 저는 진짜 좋은 사람만 만났나봅니다.(현실은 문학적 상상력이 부족하거나 스릴러 영화를 너무 안 봤거나..ㅋㅋ)

유부만두 2021-08-22 18:01   좋아요 1 | URL
붕붕툐툐님께선 그러셨군요. 전 처음 몇 문장은 좋았지만 (음식사랑 좋은사람?) 곧바로 아, 이 ㅅㄲ 위험하다 싶었어요. 하지만 시침 뚝 뗀 소설가는 느긋하게 계속 이야기를 풀어가고 전 책을 덮을 수가 없더라고요.

레삭매냐 2021-08-22 12:0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주말에는 짜파게티로 대동단결 !!!

유부만두 2021-08-22 18:02   좋아요 1 | URL
ㅋㅋㅋ 아이들은 짜파게티, 어른들은 비빔밥이었습니다.
어쩐지 더 늙은 기분도 들어요. (그런데 애둘이 세 봉을 먹어서 어쩔 수 없어요)

scott 2021-08-22 12: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전 이작품 영화 부터 봤습니다. 대가 트레버의 스토리 전개에 감탄! 유부 만두님 점심은 짜파로!

유부만두 2021-08-22 18:03   좋아요 2 | URL
아이들 점심만 짜파게티였어요. 집에 있는 게 딱 고만큼이었거든요.

영화는 소설과 꽤 다르던데요. 펠리시아가 금발도 아니고 쇼핑백도 없... 아니, 그것보다 주인공이 힐디치 아저씨 였고요, 그 엄마 묘사도 너무 달라서 아예 다른 이야기를 읽는/보는 기분이 들었어요.

페넬로페 2021-08-22 12:1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다 모여서 이 책을 가지고 토론을 한번 해보고 싶더라고요.
유부만두님, 일욜은 그냥 아점 한끼로 해결하는게 어떠신지요^^

유부만두 2021-08-22 18:04   좋아요 2 | URL
아,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펠리시아 토론방!

주말엔 두끼만 먹었으면 좋겠는데, 우리집 애들이 힐디치 못지 않게 먹기를 챙깁니다. ㅜ ㅜ 간식도 먹는답니다?

blanca 2021-08-22 12:3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죠. 저도 다 읽고 온몸에 전율이... 이래서 대가라고 하나봐요. 윌리엄 트레버는 그저 리스펙트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저는 특히 이름 없이 죽어간 소외되는 여자들에게까지 시선이 닿는 점도 너무 감동적이더라고요. 독자를 억지로 설득하거나 자기 세계관으로 끌어들이려는 의지를 안 보이면서 포섭하는 능력이 있는 작가인듯...유부만두님 글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트레버 장편 더 많이 번역되었으면 좋겠어요.

유부만두 2021-08-22 18:05   좋아요 1 | URL
그죠 그죠.
어쩜 이야기를, 특히 회상 꿈 이야기를 능숙하게 버무리면서 인물과 배경을 내놓는 데 감탄할 수 밖에요. 정말 멋진 작가에요.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으려고 합니다. ^^

잠자냥 2021-08-22 13: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호방한 장보기에서 빵 터졌어요. ㅋㅋㅋㅋ 아이고 힐디치 씨 정말 먹는 거 하나엔 호방하게 진심인 남자. 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08-22 18:06   좋아요 1 | URL
실은 저도 그러잖아요. 먹기와 장보기에 진심을 다하고요. 그런데 왜 힐디치는 나쁜 사람인건가. ㅜ ㅜ

잠자냥 2021-08-22 13: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호방남이 펠리시아 돈 훔칠 때 진짜!!!!! 호방하게 한 대 갈겨주고 싶었습니다. ㅜㅜ

유부만두 2021-08-22 18:08   좋아요 2 | URL
전 소리내어 욕을 냅다 질렀습니다.


그리고 이 ㅅㄲ가 펠리시아 병원 데리고 가는 거요.
다른 소설에서 성폭행 하는 것 보다 더 끔찍하게 ‘착취‘하는 것 같아서 무서웠어요. 완전히 펠리시아의 신념, 습관, 정체성 등을 다 갈아버리는 거 잖아요. 으....

다락방 2021-08-22 14: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소설이 주는 기쁨을 한껏 만끽할 수 있었어요. 크-

유부만두 2021-08-22 18:08   좋아요 2 | URL
그쵸. 문장 문단 읽으면서 입과 뇌에 호사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어요. 바로 이 맛이야, 라고 생각했어요.

그레이스 2021-08-22 16: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영화 봐야겠군요~
반드시...

유부만두 2021-08-22 18:09   좋아요 2 | URL
영화는 강력추천은 아니고요, 책과는 다른 이야기 해석을 보여주는 듯해요. ^^

그레이스 2021-08-22 18:10   좋아요 2 | URL
정보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 2021-08-23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도 읽어 보고 싶고...유부만두님의 다이나믹한 리뷰 읽을때마다 재미져서 자꾸 클릭 클릭!!!!
밥 시간때 쫓겨 사는 인생도 느껴져 허탈한 긴장감!!!! 늘 흥미진진 합니다.
저는 맨날 오뚜기 백세카레 해먹다가 요즘 카레의 여왕 만들어 먹었는데...와...먹을만 하더라구요.종류별로 다 먹어 보고 있는데 이거 이거 이러면서 내가 카레의 여왕이 되는 거???싶더군요.
내일 점심땐 저도 애들 개학 기념으로 짜파게티 해줘야 겠네요.메뉴팁도 얻어 갑니다.알찬 서재~^^

유부만두 2021-08-24 20:07   좋아요 0 | URL
정리 안 된 감상 쪼가리에 인사 건네 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이들이 집에서 밥을 먹으니 라면, 카레 등 인스턴트 음식이라도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네요. 저희집은 (일본식) 숙성카레와 (인도식)티아시아 카레를 좋아합니다. 볶음밥이나 국수 등 한그릇 음식이 제일 편하고 좋아요.
개학은 했지만 방학의 연장인 기분이에요. 이젠 힘들다는 말도 하기 힘... ㅜ ㅜ
 

열아홉 구수정은 용한 점쟁이에게 스무살 되기 전에 죽는다는 통고, 혹은 예언을 듣고 명을 길게 하려고, 죽기 싫어서 길을 떠난다. 등에는 백설기 가득 지고. 


작가의 말과 해설에 나온대로 '북두칠성과 단명소년'을 토대로 쓰인 소설인데 첫 장과 마지막 장 사이는 어지럽고 복잡한 세계를 주인공 수정이가 쏘다니는 바람에 따라다니는 독자는 '투쟁'을 하듯, 특히나 나이 든 독자는, 허덕거리...다가 생각해 낸다. 이상한 나라의 수정이? 


길가메시, 혹은 앨리스, 오딧세이와 여러 설화와 이야기 속의 목숨 을 건, 내던진, 바라는 영웅들 이야기. 라고 쓰고보니 나도 해설을 흉내내고 앉았... 모든 걸 비유나 상징으로 풀자면 한없는데 그렇다고 깊이 있는 독서 경험도 아닌데다 어쩐지 집중도 안되고 재미도 별로고 지루하기도 하다. (이 얇은 책을 하룻 밤 건너 뛰고 이틀에 걸쳐 읽었다니) 


두 개의 흑 백 가름끈이 표지의 얼굴 만큼이나 당당하다. 그런데, 뭐랄까, 이 소설의 의미는 텍스트 밖에 너머에 있어서 자꾸만 말을 더해야 비로소 .... (이거봐 이거봐 또 평론가 흉내내고 앉았...) 


추신: 수정이에게 불어터진 떡볶이를 권하던 그 새끼는 성매수자 같고, 맞고, 그런데 어떤 남선생과도 겹쳐지고, 이 소설을 읽고 난 직후라 나도 문장이 마구 .... (아 그만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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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1-08-13 10: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박지리 문학상이란 것도 있었군요??
책 표지가 서늘합니다.

2학기 전면등교는 애초에 물 건너간거죠!!!!!
그래서 포기한지가 오래지만...
삼 시 세끼도 포기하고 싶을때가 문득문득!!!
하~~~~ 아무생각없이 늘 하루종일
아침 먹으면서 점심 뭐먹지? 점심 먹으면서 저녁 뭐먹지? 저녁 먹으면서 내일 아침은???
심지어 잠을 자면서까지도....내일 세 끼는??
이건 아무생각이 아닌 게 아닌 거죠~ㅋㅋ
웃으려니 갑자기 눈물도 나올뻔 했네요ㅋㅋㅋ
밥 하면서 한 번씩 유부만두님 생각 났었어요.
그 많던 집밥 메뉴들의 사진들!!!
요즘은 뭘 해 드시려나??하면서요^^
그래도 여전히 책 열심히 읽으시고 건재하셨었어요.
제 예상대로요^^

유부만두 2021-08-13 10:58   좋아요 2 | URL
시지프스의 밥상은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다만 사진 찍기에 물려서 그만 뒀고요. ^^
그냥저냥 메뉴는 반복과 변주를 하고요, 책은 계속 읽고 사고 사고 사고 읽어요.
아, 우리 눈물은 감추도록 하죠, 아직 울 날이 너무 많을 것 같아요.

이 책은 오리지널 작품이라기 보다는 ‘다시 쓰기‘ 성격이 더 강하게 보여요. 그래서 지루했는지 모르겠군요. (끝까지 늙은 독자 감성 탓은 안 하겠읍니다)

파이버 2021-08-13 1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무살이 되기 전에 죽을 운명이어서 단명 소녀였군요... 152쪽이니 얇긴한데 당당한 두 개의 가름끈에서 피식했어요ㅎㅎ

유부만두 2021-08-13 10:59   좋아요 2 | URL
책 내용에 두 개의 칼, 두 개의 명부, 두 명의 인물, 두 갈래 길 같은 생과 사의 이미지가 반복되요. 아마 그래서 의도적으로 두 개의 가름끈을 만들었을 거 같아요. 독자에 따라선 한 호흡에 읽을 수도, 저 처럼 가름끈을 이용해 하룻밤을 보내기도 하겠죠? ^^